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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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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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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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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66.

DUMMY

*


마이클의 시점에서, 그는 계속해서 도약이 시행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돌아왔다가, 혹은 그의 시야가 돌아오기도 전에 곧바로 다음 점프가 이어졌다.


그가 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힘을 빼고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것을 믿을 뿐이었다.


불안함을 가질 만도 한 상황이었지만, 가진다고 상황이 변하는 것도 아니었다. 점퍼들의 추격전에 있어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고작해야 다가오는 점퍼의 빈틈을 노려 총으로 기습을 해보는 걸까. 그것도 상대가 근접 교전에 익숙한 상대라면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는 점퍼 조직의 비전투 인원의 시점에서 점퍼들이 임무를 해결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었다. 개중에서도 특수한 전투 요원들은, 점프 능력과 탁월한 신체 능력으로 비현실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는 한다. 전투직과 관련 없는 이들이 어지간한 기적이 없이 상처를 입힐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어쨌든 마이클은 확률이 적은 저항은 관두고 유진이 이끄는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도약을 멈추었다고 느끼고 눈을 뜬 곳은


새까만 우주였다.


갑자기 지구 상에서 눈을 감았다 뜨니 우주였다, 라는 이야기는 글자로 듣고 보는 것 이상의 당혹감이었다.


마이클은 물리학 박사로 다양한 천체물리학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지식으로 아는 것과 상황에 처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리고 어지간한 담력과 심장을 갖고 있는 그였지만, 나름대로 상식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이기도 한 그였기에 어느 정도 당황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수 있다, 라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작전이었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는 상황은 아무래도 다른 것이다.


그는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었다. 얇은 형태의 방호복은 분명 우주복과 비슷한, 혹은 그보다 더 튼튼하고 질 좋은 효과를 지닌 복장이기는 했다. 산소통이 없는 건 문제였지만. 내부의 공기로도 약간은 버틸 수 있었다. 단순하게 숨을 멈추어도 좋았고. 당장 무방비하게 진공 상태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것만이 그에게 있는 위안이었다.


아무래도 하기 싫고, 과학자이며 이성을 평생 갈고 닦으며 인생을 이끌어 온 그로서 떠올리기 싫은 불안감이었지만 이대로 유진이 실수를 하거나, 지상에서의 상황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는 이대로 여기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점퍼간의 갑작스러운 추격전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아무런 예고도 예상도, 계획도 없이 이렇게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냉철한 계획가인 그로서 최악의 결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늘 그럴싸하고 또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 아니었기에.


물론 논리적인 이야기였고, 개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마이클은 우주를 바라보았다. 별들을 바라보는 게 이토록, 고요하고 무서우며 또 당혹스러운 일인 줄은 알지 못했다. 지상에서보다 훨씬 가까울 게 분명하지만, 여전히 의미 없는 수준의 먼 간극이 있는 별빛들을 그의 시야에 담았다.


다른 촉감들은 기이한 이질감이 들었다. 어쩌면 상상일지도 모른다. 진공 상태의 우주공간. 방호복 내부 상태의 변화는 당장 없었지만 그저 주변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몸이 이상이 생기는 것만 같기도 하다.


차가운 우주의 냉기가 그의 몸을 감싸는 것 같기도 했고. 그는 우주 공간에서 기본적으로 멈추어 있었다. 그리고 침착함을 최대한 가장하든, 유도하든 해서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유진이 그를 다시 ‘불러오기’하려면 지금의 좌표 그대로 있는 것이 가장 좋았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건 다시 말해서 이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죽고 싶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었다.


널뛰려는 심장을 가다듬는 건, 그래. 심해에 잠수한 프리 다이버가 아무런 장비도 없이 그 자연 속에서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일과 비슷했다. 사람은 침착함에 따라서 순식간에 동시간 대비 소모하는 산소량이 급증하거나 급락한다.


산소량에 대해서도 그러했고, 곧 이어질 다음 상황에 대한 대비로도 그러했다. 마이클에게는 그 순간 나름의 믿음과 침착함이 필요했다.


물리학자로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순간일지 몰랐다. 지구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우주에 맨몸으로 던져져서, 그야말로 자유롭게 전방위로 뻗어오는 별빛을 맞이하며 감상한다는 건 말이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히 지구 최고의 유희거리라고 해도 좋을만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행히 그가 시꺼먼 공허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봐야하나 싶을 정도로 침체되기 직전에 상황의 변화가 찾아왔다.


익숙한 도약의 감각이 그를 감쌌다. 유진으로부터 이어지는 ‘불러오기’ 도약이었다. 텔레포터는 다행히 지상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대피처를 찾았고 추적을 피한 모양이었다.


오래 있다간 정신이 나갈지도 모르는 거대한 어둠과 공허 가운데서 마이클은 차라리 안락한 시야의 암전을 겪으며 도약으로 사라졌다.


지구로부터 수천만 km정도 떨어진 어딘가에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


마이클은 다시, 자신의 몸이 중력의 영향을 받는 걸 느끼며 내색하기 어려운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의 작품이 해냈다.


품위 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지는 않았다. 다만 땅바닥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알게 될 뿐이었다.


그리고 떠지는 시야는 익숙한 장소였다. 그들이 만들어 둔 비밀 거처, 대피소는 여러 곳이 있었따. 세계 각지에 수백 개 단위가 될 정도로 말이다.


개중에서도 제법 쓸만한 곳 중 하나였다. 낡은 빌딩 하나를 개조해서 만들어 둔 비밀방이 있는 장소.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기에도 좋았고, 간단한 트릭이었지만 도리어 점프 능력에 집중하기 쉬운 점퍼간의 추적전에서 상대를 따돌리기에 쓸만했다.


이런 평범한 준비점들이 결국 승부의 순간에서 결과를 가르게 마련이었다.


낡은 빌딩에 어울리는 인테리어였다. 비밀 방의 내부도 별다른 가구는 없었고. 값싼 카페트와 쉴 수 있는 의자와 소파, 간이 침대. 간단한 식료 정도였다. 소형 총화기도 몇 정, 그리고 그 탄약도 어느 정도 있었고 말이다.


전체적으로 웜 톤의 배색이었다. 낡은 벽지와 어우러지는 다양한 싸구려 가구들의 색 또한 말이다. 마이클은 자연스럽게, 무중력에 잠시 적응했던 몸을 소파에 뉘이며 입을 열었다.


“···따돌렸군.”


유진은 입매만 끌어올려 웃으면서 답했다. 표정이 그리 다양한 편은 아니었다, 늘.


“예 뭐. 생각보다 집요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유진 역시 다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동양인 청년과, 검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미국인 박사는 그렇게 잠시 걸터앉아 쉬기로 했다. 미치광이같은 짓조차 인간은 휴식을 필요로 했다.


*


결과적으로 마이클과 유진이 점퍼 조직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몇 개의 기적적인 타이밍이 겹쳐서였다.


‘재머’가 역장을 발휘하는 순간에 점프가 발동된다면 그 범위 내부의 점퍼는 모조리 재머의 앞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민서와 야가미는, 그 순간 낡은 아파트 빌딩에 도착한 뒤 상대의 흔적을 놓쳤다는 사실에 주변을 더듬었다. 그리고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고, 상대가 벌인 점프의 흔적도 찾지 못했기에 잠시 빌딩 외관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위치를 옮기기 위해 도약을 했다.


야가미와 민서가 점프를 하는 그 순간이 텔레포터가 마이클을 우주에서 건물 내부로 불러들이는 순간이었다.


일순간, 그 주변 지대에서 민서가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던 타이밍에 맞추어 마이클이 공간이동으로 모습을 나타낸다. JE2는 JE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은 점프의 전후 과정 중간, 아주 일순간 효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건 민서가 일종의 JE를 가지면서 점프를 할 수 없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였다.


JE2를 발휘하면서 동시에 JE를 이용해 점프를 할 수 없다. 민서가 점프에 참여하는 그 잠시, 다른 점퍼의 JE에 의해 몸이 감싸진 짧은 시간 동안 역장이 해제되는 것이다.


마이클과 유진은 아직 ‘재머’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그들이 인지하는 건 천문학적인 확률로 갑자기 나타난 조직의 점퍼의 모습이었고, 그들이 그들을 추격하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딱히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대조할 거리가 마땅찮은 고고도의 상공에서 벌어진 왜곡이었고,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벌어진 오류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 채로 벌인 추적전에서, 우연한 시간의 기적으로 도망을 칠 수 있었던 게 놀라운 일이었다.


야가미와 민서는 그들이 찾아온 건물의 외벽을 바라볼 수 있는, 건너편의 더 높은 빌딩의 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아무 사람도 없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캄캄한 새벽이었다, 뉴욕은.


둘은 건물의 외벽을 달빛이나 거리의 조명에 의지해서 한동안 살폈지만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다시 그들은 아까 이동했던 건물의 자리로 옮겨서, 미상의 도주자 점퍼가 도망을 쳤을 공간이나 루트를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다.


한 순간의 일이었을테니 분명 물리적인 방법으로 이동을 했을 텐데.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순간 헬기 따위라도 창가에 대기를 하고 있다가 순식간에 타고 먼 곳으로 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야가미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들은 일단, 시경찰에 수배 도움을 요청하며 추적전의 일단락을 지어야 했다.


*


조직에 있어서는 유례 없는 비상 상황이었다.


사상자는 생각보다 적었다. 운석처럼 상공에서 떨어졌던 포격들은 생각보다 화망이 좁은 편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 시간차마저 있었다.


물론 점퍼 조직의 감옥섬 자체는 초토화가 되었고 시설물 역시 있었던 흔적을 다시 상상해내기 어려운 수준으로 부수어지고 말았지만. 그 내부에 있던 이들은 제법 기민한 대처로 빠르게 대피를 해냈다.


순식간에 죄수들에 대한 처우를 결정 내리고 메뉴얼에 따라 점프 포인트에 모여 있다가 조직의 구출을 받은 것이 주요한 요인이었다.


조직의 요원들인 감독관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각 가장 가까운 점프 포인트로 대피해서 모여 있었고, 연락을 받자 마자 조직의 여력이 있는 점퍼들이 빠르게 대처를 해서 그들을 구출했다.


수감자들은 각자 도생의 길을 걸어 탈출을 하거나, 혹은 몇 명은 조직의 감독관들의 생명을 구해주고 보다 나은 대우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답을 받았다.


도저히 교화가 불가능한 듯 보이는 통제 불능의 사이코들의 경우 점퍼 감옥에 수감을 한 채 묶어두지만, 조금이라도 교화의 여지가 있고 대화가 통할 가능성이 있다면 어지간하면 그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돌리는 편이었다. 어찌 되었든 JE라는 건, 점프라는 능력은 현 지구에서 대체가 불가능한 귀중하고 특이한 자원이었으니 말이다.


현실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상황에서마저 손쉬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는 키포인트였다. 점프라는 건. 각국의 수뇌부들 역시 난국에서 그 타개책을 점퍼 조직에게서 찾은 적이 아주 많기도 했고.


젊거나 어린 시절, 다른 상식적인 사상적 영향을 적게 받고 다른 이들과 공감할 수 없는 능력과 조건으로 인해서 일탈처럼 저지른 짓이라면 대개는 참작을 하는 편이었다.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주면 될 일이었으니까. 송일우나 옌이 잡혀 들어왔다가 조직을 위해서 능력을 사용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감옥 시설의 붕괴는 어쨌든, 물리적인 손괴와 재산상의 피해 외에도 구속해 두었던 점퍼들이 자유를 얻었다는 점에 있어서도 점퍼 조직에게 부담을 더하는 일이었다.


앉은 채로 죽게 할 수 없어서 풀어준 것이지만, 어쨌든 어떤 일을 벌일 지 모르는 점퍼들이 전 세계에 더욱 분포된 상황이었으니.


점퍼 조직이 늘 감당하고 유지하려 애쓰는 가상의 리스크 수치가 다소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잡히지 않은 위험한 테러리스트의 문제가 있었다.


이미 두 번이나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하고도 잡히지 않은 이들은 용의주도한 작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전까지와 달리 점퍼 조직의 존재를 알고 준비를 해 온 듯한 낌새가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확실하게, 자신들을 대적할 단체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도주로를 짜고 또 정확하게 공격을 벌일 수는 없었다.


커맨더는 이전에 했던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더욱 확신하고 점퍼 조직에 한 번이라도 발을 담갔던 이들을 위주로 추적을 실시하고 있었다.


야가미와 김민서가 비록 상대의 종적을 놓쳤지만 아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상대가 목적이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다시 모습을 드러낼 테였다.


결국 점퍼 조직은 항상성을 유지하며 세계 질서의 유지에 이바지하기 위해 애를 쓸 테였고, 그런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들이 공격을 해오는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윤민혁이 감옥에서 탈주를 한 뒤에 그들에게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었다. 윤민혁은 점퍼들 중, 아니 모든 사람들 중 드문 정도로 확실하게 싸울 수 있는 인간 중 하나였다. 탁월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런 힘이 점퍼에게 주어졌을 때의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게 마련이다.


홍인수같은 존재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윤민혁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고, 반드시 회유하거나 잡아두어야 할 인물이었다.


상대가 어떤 점퍼이고 인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윤민혁의 가담은 조직의 위험 부담을 폭증시키는 일이었다.


조직은 거의 임전 태세에 준하는 상태로 돌입하고 있었다. 각 조직원들의 경계심이나 마음가짐의 문제도 있었고, 본격적으로 전투나 전쟁을 준비하는 물자의 운용 또한 있었다.


상대가 조직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수준의 역량이라면, 전투에 있어서 여유롭게 처지를 봐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생포하되, 사살을 염두에 두고 대비를 해야 한다.


교전 지역에 따라서 화력의 아낌없는 투사도 망설일 필요 없었고.


점퍼 전투 요원들은 24시 교전을 염두에 두고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방탄 피복을 입고 있었고, 헬멧 따위의 장구류 역시 자신이 움직일 때 늘 소지를 했다.


간단한 소형화기, 권총과 충분한 탄약 정도의 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점퍼 조직의 기지 역시 언제 비상 상황을 맞이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시에 준하는 물자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점퍼’가 조직을 노리는 상황은 극히 드문 상황이기도 했다. 보통은 조직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안다고 하더라도 개인으로서 조직에게 덤비는 이들은 극히 드문 경우였다.


또한 덤빈다고 하더라도, 점퍼 조직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건 그저 노름판에서 따낸 결과가 아니었기에 실제적인 전투력에서 무너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조직을 상대하는 건 근 한 세대로 분류할 수 있는 2-30년간 없었던 일이었다. 점퍼 조직 자체가 몸살 감기를 앓듯 조직과 체제를 키워내고 유지하면서 겪어야 했던 전쟁들은 보통 전 세대의 것들이었다.


그 마지막 발버둥이나, 전쟁의 끄트머리를 경험한 것들이 현재 조직의 수뇌부들이었고. 커맨더나, 코치같은 이들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태도가 달라지는 건 ‘쉴더’였다. 그는 점퍼를 통한 암살 시도에서 가장 주요하게 쓰임 받는 유닛이었으니.


다소 한직에 가까운 임무들을 받으며 조직 내외를 배회했던 이전과는 달리 조직에서 가장 곤두선 긴장감을 가져야 하는 인원이 되고 만다. 수성전의 전문가란 그런 법이었다. 일방적으로 공세를 펼치던 전황에서는 그다지 애를 쓸 것이 없었지만.


수세가 된다면 누구보다 앞장 서서 방패막이가 되어야 한다.


쉴더는 일단 수뇌부, 커맨더의 곁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재머로서 점퍼 기지의 주요 전략 자원이며 또 자체적인 점프 능력이 없는 김민서 역시 주요한 보호 대상이었지만, 그건 다른 전투 요원을 붙여주어도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조직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지휘부를 지키는 것이 일단 쉴더의 역할이었다. 전시에 커맨더는 평시보다 더 주요한 인물이 되게 마련이었다. 점퍼 조직의 운영은 실상 소규모 사병 부대, 군사 회사와 마찬가지였고- 소규모 군부대의 운영과 비슷한 것이었으니.


부대의 총 지휘관의 판단력은 전황의 향방을 결정짓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폭격이 있었던 12월 1일 다음 날, 12월 2일부터 야가미는 조직의 커맨더와 깊은 교류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어떤 상황이 있든 따라붙어 움직이게 된 것이다.


“······.”


커맨더는 지휘관실에 앉아서 상황 보고를 듣고 머릿속으로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상대의 심리를 읽는 것이 전략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떻게 움직일까.


과감하고, 전략적이며 치밀한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해오는 적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피해 따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이코패스인데 대담한 행동성과 상당한 규모의 일을 벌일 수 있는 자본또한 갖춘 듯 하다.


점퍼 조직의 형태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었고, 상당한 수준의 기밀에도 닿아 있는 듯하다. 그 정도라면 상당히 핵심적인 부처에서 일을 했던 이와 연이 닿아 있거나, 그 본인일 테였다.


최근 20년 간 점퍼 요원으로서 활동을 했다가 은퇴를 한 이들의 명단은 커맨더가 모조리 외우고 있었다. 그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때의 인물이었고, 또 그가 지휘관으로서 조직을 지휘할 때의 인물들이었으니.


한 세대에 점퍼가 백여 명을 조금 넘는 정도라는 걸 생각했을 때, 충분히 외울 수 있는 숫자였다.


그는 입을 꾹 다문채 집무 테이블에 앉아서 등을 뒤로 기대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점퍼 요원들 중 조직을 배신할만한 대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 각각의 개성과 집안 사정들까지 알고있는 그로서는 그러했다. 게다가 어느 정도 조직에서 추적 또한 하고 있어서, 최소한의 알리바이나 대략적인 생활상까지도 파악을 하고 있었다.


대개는 점퍼 요원으로서 헌신한 대가로, 풍족한 돈을 받고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즐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수십 년간의 조직에 헌신하는 기간 동안 다른 장대한 계획을 품고 있다가, 돌연 평온한 노후 생활을 포기하고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벗어난 이들 또한 신체적 문제가 있는 자들이었고, 그 외에도 조직이라는 공동체 내에서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었다.


그런 자들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완벽하게 속이고 작게는 수 년에서 수십년 간 연기를 한뒤에 갑자기 조직을 향해 칼을 들이밀 자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짧은 기간은 누군가를 속일 수 있어도, 아주 긴 기간 그러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연기의 아이러니는 늘 그 속에서 진짜 자신이 도리어 더 잘 보이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모두가 알리바이를 갖는 상황에서 지금의 적은.


진실로 갑자기 하늘에서 솟아나듯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점퍼 중 한 명이 우연히 저런 수준의 지원을 얻고 계략을 꾸며서 점퍼 조직을 적대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조직에서 점퍼로 착각하고 있는 ‘마이클’은 아무리 잘 쳐주어도 30대 중후반 이하로는 보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보통 대부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점퍼들은 20대에 조직의 레이더 망에 걸리게 마련이다.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면 말이다. 능력을 봉인한 채 긴 세월을 그저 다른 이들 속에서 살아간다면 조직으로서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지만. 그런 경후가 흔하지는 않다.


커맨더의 고민이 깊어갈 수록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그 집무실 책상 옆에 시립한 채로 있던 ‘야가미 소우타’는 조금 다리가 뻐근해졌다.


기본적인 메뉴얼은, 언제 어디서나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 약간의 유동성은 발휘해도 좋을 것이다.


야가미는 커맨더의 옆에서 민망하게 계속 서 있다가, 그것이 한 수시간째 변동이 없이 이어지자 슬쩍 위치를 바꾸어서 지휘관실의 다른 의자에 다가가 조용히 앉았다.


커맨더는 손가락으로 볼 어림이나 턱을 찔러 괴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다가 야가미가 눈에 들어와 처다 보았다.


야가미는 헝클어진 더벅 머리를 슬쩍 정리하며 자리에 앉고 있었고. 평범한 다운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차림이었다. 손가락에 낀 은색의 반지는 미혼이라 결혼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고, 연인과 맞춘 것이었다.


‘브레이커’라고 불리는 메리 포핀스와 짝을 맞춘 반지이다.


커맨더, 한형석이 문득 입을 열었다.


“자네 진짜로 24시간 대기할 건가?”


당신이 전시체제로 유지하라고 조직에 발령을 해놓고 무슨 소리십니까, 라는 눈빛으로 야가미가 형석을 처다보았다.


한형석은 두툼한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실제 상황 벌어지기 전부터 이렇게 FM으로 하다가 정작 중요할 때 퍼지려는 건 아니겠지?”


야가미는 잠깐 흐린 눈으로 형석 너머, 집무실의 벽 어딘가를 처다보면서 멘탈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예 뭐···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쉴더라는 코드 네임을 받았을 때부터 준비하던 상황이니까요.”


전쟁이 길어질수록 쉴더의 부담감은 커져간다. 보호 대상인 지휘관의 생체 주기에 따라서, 같이 식사를 하고 같은 시간에 화장실을 가고, 같이 씻고 하는 식으로 리듬을 맞추어야 했다.


어지간히 체력이나 정신력이 소모되는 일이었지만. 야가미는 그래도 그런 일에 능숙한 편인 인간이었다.


형석은 ‘그래···.’라고 짧게 대답하며 다시 집중을 하는 듯 하다가 문득 야가미의 손 께를 흘긋 훑었다. 그가 왼 손에 끼고 있는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자네는 결혼 했던가?”


야가미가 입을 슬쩍 벌리며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저도 점퍼 요원입니다만? 너무 소드 마스터랑 리시버만 챙기시는 거 아닙니까? 미혼입니다 사령관.”


형석이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자네는 평소에 워낙 눈에 안 띄는 베테랑이니까···.”


형석이 말을 이었다.


“애인이 있었지. 메리랑 사귄다고.”


야가미가 긍정했다. ‘예.’


형석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 아쉽구만. 우리 딸 애가 미혼인데 말이야. 자네도 참 괜찮은 친구인데. 혹시 물어보는데 헤어질 낌새는 없지?”


야가미가 다시 입을 벌렸다.


‘아니 이 양반이.’”부디 따님이 좋은 남성 분 만나시길 바라겠습니다.”


목구멍에 담았던 말과 실제로 나온 말이 달랐다. 다만 형석은 야가미의 표정을 보며 그 속내를 짐작하고는 민망하다는 듯 소리내어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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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실은 어두운 톤에 푸른 빛 조명이 나는 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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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88. 22.12.21 41 0 20쪽
92 87. 22.12.20 43 0 17쪽
91 86. 22.12.17 63 0 19쪽
90 85. +2 22.12.14 59 1 15쪽
89 84. 22.12.12 47 1 23쪽
88 83. 22.12.09 53 1 16쪽
87 82. 22.12.08 54 0 11쪽
86 81. 22.12.07 52 1 13쪽
85 80. 22.12.07 54 1 16쪽
84 79. 22.12.07 48 1 14쪽
83 78. 22.12.04 45 1 21쪽
82 77. 22.12.03 52 0 13쪽
81 76. 22.12.02 58 0 30쪽
80 75. 22.12.02 45 0 12쪽
79 74. 22.12.01 42 0 13쪽
78 73. 22.11.29 51 0 22쪽
77 72. 22.11.28 50 0 18쪽
76 71. 22.11.25 56 0 23쪽
75 70. 22.11.25 51 0 13쪽
74 69-2 22.11.25 36 0 11쪽
73 69-1 22.11.25 38 0 10쪽
72 68. 22.11.24 39 0 15쪽
71 67. 22.11.23 37 1 16쪽
» 66. 22.11.22 41 0 23쪽
69 65. 22.11.21 39 0 17쪽
68 64. 22.11.20 36 1 29쪽
67 63. 겨울 22.11.19 46 0 11쪽
66 62. 22.11.18 29 0 17쪽
65 61. 22.11.18 2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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