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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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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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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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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글자수 :
908,591

작성
22.12.0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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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82.

DUMMY

*


겨울 날.


은 손이 시리다.


말단 뿐만 아니라, 몸의 전체가 차가운 한기 때문에 움츠러들고 아무래도 움직이기조차 부담스러운 계절인 것이 사실이다.


만물이 멈추는 듯한 추위 속에서, 뇌까지 얼어버리는 건 아닌지. 아무래도 굼뜬 몸에 영향을 받는 것이 분명했다.


어느덧 2월의 중순이었다. 2023년 2월 14일. 화요일. 오래도록 코트나 패딩 점퍼를 입고 다니고 계속되는 한파가 지긋지긋해질 무렵.


방구석에서 책을 읽으며 사색에 빠지기에는 또 적당한 날씨라지만 외부 일정이 아예 없을 수가 없는 것이 또 사람이 사는 일이었다. 오늘 있을 일도 꽤나, 중요한 것이라서 그녀는 추위를 뚫고 밖에 까지 나와야만 했다.


만나는 사람은 그렇게 색다를 것은 없는 인물이었다. 늘, 종종 보고는 하는 녀석.


그동안 서울은 시끄러웠다.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고, 온갖 뉴스에서 하루종일 같은 얘기만 한 동안 반복할 정도로 말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들에서도 한국에서의 일에 관심을 갖고 보도했다.


그런 와중에 수정은 무사히 졸업을 위한 준비들을 마쳤고, 사회로 한 발자국 걸어 나가야 하는 시점이다. 여전히 취업의 문턱은 높았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여러가지 있을 문턱 중 하나는 넘으려 했다.


만나는 지겨운 인물과도 관계가 깊었다.


어딘가에서 또 거친 일에 연루가 되어서 돌아다니다 온 것인지, 기운이 빠져 있는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그를 불러내어 약속을 잡았다. 늘 만나는 비슷한 장소이다.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동네의 시내, 광장.


롱패딩을 걸치고 청바지에 폴라 니트를 입었다. 그녀는 약속 시간 즈음, 해서 장소로 나갔고 자주 보던 자리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나왔다.


“오, 왔네.”


정겨운 목소리다. 굳이 따지자면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는 목소리였다. 다만, 그녀가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목‘소리’보다는 말투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 그 안의 감정과, 친밀도의 문제일 것이고.


날이 추웠다. 바깥에서 오래 기다리기엔 무리가 있는 날씨였고. 둘 모두 약속 시간에 거의 정확하게 맞추어서 나왔고, 알맞게 만났다.


눈이 오지는 않는다. 이번 주나 저번 주에 내려서 쌓였던 눈들의 흔적이 아직도 거리나,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약간은 질척한 느낌의 바닥 역시 마음 놓고 걸어 다니기에는 조금 번거롭다.


“그럼, 와 있지. 너는 나보다 일찍 오는 꼴을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그. 그러니까 김민서는 조금 투박하게 헝클어진 머리칼을 매만지며 다가왔다. 오래도록 어디에서 제대로 관리도 못 한 채 돌아다니기라도 했는지. 깔끔하게 씻은 모습이지만 어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고생스러움이 얼굴에 묻어났다.

김민서가 답했다.


“미안. 고멘. 용서해줄래?”

“그, 이상한 일본 여배우가 사과하는 영상 본 거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일본말로 사과를 하는 꼴이 썩 작위적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핸드폰으로 공유하던 웃기는 영상 중에 하나였다. 탁월한 미인 배우가 꽁트에서 사과를 하자 어떤 잘못도 남배우가 넘어 가준다는 투의 개그였다.


김민서가 미인이 아니라는 것도 넘어서,


“왜 남자 쪽이 늦는 건데. 일찍 좀 나와서 기다려주는 모습 연출하면 죽는 병이라도 있니.”

“아니···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전 날 혹독한 짓거리를 당해서 간신히 정신을 차리니 시간이 아슬아슬했단 말이지···.”


늦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해주라, 라는 투였다. 어쨌든 그런 게 중요한 용건은 아니었으므로 수정은 넘어갔다. 오늘은 해야 할 말, 하려는 말이 있었다.


그녀는 간질거리는 목구멍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뗐다.


“야.”

“응?”


눈이 마주쳤다. 수정은 민서의 맹한 눈동자를 보자 어딘가 화가 치민다고 느끼면서, 꺼낼 말을 뜸들였다.


“···아냐. 점심 안 먹었지?”

“그렇지. 거기 갈까? 백반집.”


늘 가는 곳이 있었다. 성현대 근처의 대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맛집. 한결같고 집밥의 아성을 뛰어넘고는 하는 정갈한 반찬이 일품인 밥집이었다. 메인 메뉴들도 싸고 푸짐했고.


“······응.”


수정은 괜스레 추운 날, 한기로 뺨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패딩 점퍼의 옷깃에 부비어 온기를 찾았다. 왜인지 이상스러운 태도에 민서는 신경이 쓰이면서도, 별 일 아니겠지 싶어 오래도록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수정을 데리고 근처의 밥집으로 걸어갔다.


*


“맛.””있어.”


민서가 먼저 운을 떼었고, 수정이 그것을 받았다.


자주 오는 밥집에서의 일이었다.


반찬들의 맛이 정갈한 편이다. 양도 많을 뿐더러. 아주머니의 손맛은 가끔 허기질 때 먹으면 어머니의 것이라 착각할만큼의 맛이었다.


둘의 입맛 역시 비슷한 편이다. 공유하는 맛집들의 리스트를 주욱 돌아다녔을 때 이미 알던 사실이었다. 웃는 타이밍도 늘 비슷하고. 감정선의 공유나, 정서적인 동일성은 깨나 오래도록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매일 하찮은 농담을 던지고, 시덥잖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변함 없는 태도가 때로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그녀는 다사다난함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이란 건 결코 평온함만이 주어지는 침대 위의 생활이 아니었다.


가정의 울타리, 누군가가 만들어 둔 사회의 안전망, 따위는 늘 있겠지만 스스로 개척해나가지 않으면 도저히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고난이 사실 삶의 본래 모양에 가까웠다.


그런 험로를 굽이굽이, 지나가고 파헤치기 위해서 어쩌면 믿음직한 대상일 것 같았다. 눈 앞의 남자는 파트너로서.


어쨌거나 조금 더 알아가고 싶다는 점에서도, 관계의 변화성이 필요할지 몰랐다.


수정은 주변적인 신변잡기들을 나누고, 오늘은 뭘 느꼈고 또 최근엔 어땠는지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었다.


하려던 이야기의 타이밍을 잡기가 다소 어려웠다. 늘 먹는 식사 자리의 반찬을 집는 젓가락조차 어색해질 무렵.


말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웠나, 생각하는 수정에게 민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최근에.”

“응? 응.”


제육 볶음을 집어 먹으면서 운을 띄웠다. 수정은 물컵의 물을 마시다 대답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목이 깊게 잠겨있는 채로 반응해 목소리가 튀었다.

부끄러울 일은 아니었지만 어색해 보였을까 봐 슬쩍 신경이 쓰였다.


“중국에 가 있었어.”

“중국? 또 그 일 때문에?”


민서가 하고 있는 일과를 다 꿰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의 상상은 가능했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리라. 그리고 아마, 주로 거친 이들을 마주해서 상대하는 경우가 많을 테였다.


“응. 뭐. 조직 전체를 위해서 할 일을 하는 거니까. 한 한달 정도? 연락이 드물었잖아. 만나지도 못했고.”

“아 지난 달에.”


확실히 1월은 연락이 뜸했다. 빈도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대화의 내용이 깊지는 않았다. 무언가에 신경을 쓰고 있는 듯 보였고, 무엇보다 시간이 비면 만나던 것이 지난 달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다.


한 달 24시간을 전부 사용해야 하는 임무였기에 그렇다. 중국 대륙을 약식으로, 대강이라도 훑는 일이었으니 개인의 시간 그 정도가 사용되어서 가능하다면 아주 해볼만한 시도였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음. 일단 뭣보다 한국이 그립기도 했고.”


신김치 볶음을 집어먹는 손길에서 어딘가 설득력을 가지는 멘트였다. 점퍼들이 포인트와 포인트 사이를 이동시켜 줄 때마다 식자재 따위를 가져왔지만, 그건 식료가 부족한 산간 지방 따위에서 지낼 때의 일이었고 보통은 현지 조달이었다.


시골 지방에서도 그냥 현지 재료로 끼니를 때운 적도 많이 있었고.


“그··· 중국 각지를 내가 정해진 지점 별로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입장이었거든. 탐문 수색같은 거나 비슷한 건데 따지고 보면···.”


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리고 나서 2월달 들어서 초에는, 갑자기 선배한테 불려가서 현장 임무에 같이 끼어서 돌아야 됐고. 그것도 중국.”

“거기서 일하다 보면 세계 여행은 원없이 하겠구나.”


수정은 얼추 식사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민서도 배가 거의 차기는 했다.


“응. 그런 거 같아. 진짜로. 그런데 뭔가를 둘러볼 여유는 전혀 없던데. 내가 느끼는 건 대부분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나, 폐공장의 구석에 쌓여 있는 먼지 구덩이의 냄새 같은 거야.”

“어··· 상당히 구체적이다?”


농담이라고 듣기에는 퍽이나 실감나는 감상이었다. 조직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수정은 살짝 불쌍해졌다.


“악의적인 대우를 받는 건 아니고. 현장이 위험하니까 어쩔 수 없지. 조심하다 보면.”


민서는 굳이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고, 말하면서 손으로 총을 쥐는 모양을 하고 검지를 까딱거렸다. 총알에 맞는 것보다는 바닥을 구르는 게 낫다는 설명이었다.


“아무튼. 멀리 떨어져서 돌아다니는 동안 보고 싶더라고.”

“응.”

“응?”


수정이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고 민서는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는가, 해서 반문을 다시 했다. 그녀는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 이야기를 놓친 모양이다.


민서는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단어를 골라 말을 건넸다.


“보고, 싶더라고.”

“응.”


뭐를? 하는 눈빛으로 민서를 처다보는 수정을 그 역시 바라보았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밥상을 앞에 두고 2초 정도 그러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연다.


“보고 싶었다고.”

“으응?”


수정이 영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뻔뻔하게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이 얄궃고, 민서가 볼 때 슬쩍 장난기가 서려 있는 것 같았다.


민서는 어느새 헤실, 거리면서 웃는 그녀의 얼굴빛에 눈가를 좁혔다.


“아무튼.”

“아무튼 뭐.”


헤헤, 웃는 그녀에게 민서가 다시 말했다. 여러 번 다시 듣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한 번만 말하고 마무리 짓는게 편해 보였다.


“너 생각 많이 났어.”


수정은 말하는 그를 빤히 처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생각해봤는데, 좀 더 많이, 같이 있고 싶더라. 깊이 알고 싶고. 지금에서 더. 정식으로.”


민서가 말을 마치자 이번에는 수정이 눈매를 찡그렸다. 표정을 감추는 건지, 속을 알 수 없는 낯빛이었다. 확실한 건.


“백반집에서.”

“···어?”


민서가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답잖게 쫄리는 심장을 감추고 있을 때, 수정이 답했다.


“밥먹다 하기에는 너무 무드가 없는 말인거 아냐?”


그녀는 방금 전까지 자기 조차도 백반집에서 어떤 말을 꺼낼까, 고민했던 일을 잊었다는 듯이 핀잔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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