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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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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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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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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4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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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78.

DUMMY

*


연말이 지나고 신년이 왔다. 1월 1일. 23년의 첫 날이었다. 김민서로서는 24살의 첫 날이 시작되었다.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곳이 많았다. 그는 홍인수와 대담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일이었다. 조직이 소유하고 있는 어느 고층 빌딩의 라운지였다.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아 민서로서는 어색하지만, 서버가 있어서 일일이 메뉴를 설명하고 마실 것을 가져다주고,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홍인수는 익숙하다는 듯이 그에게 주는 따스한 녹차 라떼를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어···.”


홍인수는 녹차 라떼를 한모금 마시더니 멋쩍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닫고는 한 동안 뜸을 들였다. 민서는 그를 처다보고 있다.


“뭐부터 말해야 할까요. 일단, 당신 능력이 경이롭다는 점에 대해서 찬사를 해야 할까요.”

“경이라굽쇼.”


경이라면 그의 고등학교 동창인 박경이라고 있었다. 물론 그 얘기는 아닐 것이다.


홍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발휘하는 재머로서의 능력의 영역이 기존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반경 50km만 하더라도 사실 조직의 업무를 상당 부분 덜 수 있을 수준의 범위인데. 230km라니.”


반경 230km.


고난을 겪을수록, 민서가 발휘하는 재머로서의 능력 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다. 두드리면 단련이 되는 철처럼.


어쩌면 홍인수는 이 시간 김민서를 더욱 험한 현장에서 굴릴 생각을 구체적으로 짜고 있을 지도 모른다.


민서로서 그리 달가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어쨌든 반경 230키로미터는 한반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만큼 방대한 넓이였다. 한반도 중부 지역에 위치한다면 반도의 절반 이상이 범위에 들어가리라.

남한만을 계산한다면 전역이 범위에 위치할 테였고.


반도의 일부, 대한민국에서 움직이는 점퍼들의 활동을 전부 체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조직의 걱정과 염려, 리스크를 대폭 줄이는 일이었다. 그가 시기별로 돌아다니며 각지의 대도시들을 커버하기만 하더라도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활동하는 개인적인 점퍼들을 확인하고 정보망 아래에 넣어둘 수 있을 테니까.


점퍼를 대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최초의 발견이었다. 어느 정도 능력에 연차가 쌓이고 나이를 먹어가며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이상, 소규모로 이동하는 점퍼들을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이전까지 온갖 탐문 수사와 수색, 정보망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그러모은 것 자체가 대단한 확률을 뚫은 인고의 결과였다.


점퍼 조직, 그리고 그와 연계된 대단위의 단체들의 관점에서도 막대한 비용을 줄여줄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온갖 재래식의 수사 수색, 정보망을 사용하는 인력과 비용을 아낄 수 있을테니.


쩝.


홍인수가 입맛을 다시며 용건을 꺼냈다.


“중국 한 번 다녀오시죠. 여태까지 인력도 부족하고, 공안의 협조도 부족하고··· 너무 방대한 넓이라서 중국 대륙에 대한 탐색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레이더가 커버하기에도 지나친 공간이었고··· 다만 민서 씨가 하면 한 번 훑을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중국이라. 김민서는 몸을 슬쩍 뒤로 젖히며 미간을 찌푸렸다. 잘 알지 못하는 공간으로 가서 있어야 한다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게 마련이었다.


“중국이라. 얼마나요?”

“그다지. 그냥 길게 있을 일은 아닙니다. 전에 옌과 내가 대도시를 시간별로 한 번씩만 돌아본 것처럼. 그냥 전역을 한 번 훑는 데에 의의를 두고 움직이면 될 것 같습니다. 하루에 한개 포인트로 잡고··· 약 한 달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오호.”

“뭐, 체류비는 조직에서 얼추 대줄 겁니다. 가외적인 소비야 당신이 알아서 하는 거겠지만.”


민서는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지 못하는 일이었지만, 조직에서 모두 알아서 해준다는데. 가벼운 여행처럼 생각하면 될 일이다.


“뭐 전해주는 통신기로 바로바로 연락 하시고요. 조직에서 1명씩 교대로 계속 대기할 겁니다. 저번처럼 일이 터졌을 때 사고가 안 나도록. 이미 중국 쪽이랑도 말이 조금 되어는 있는데··· 그쪽이 세세한 현장에서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군요. 웬만하면 그냥 조용히 다니십시오.”


톡톡, 그가 상의의 가슴께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지급받는 글록도 잘 챙기시고요.”


자동권총의 이름이었다.


“쓸 일이 없는 게 가장 좋을 거긴 합니다만. 아무튼 고생하십시오. 중국 음식은 좀 좋아합니까?”


민서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경험해본 적은 없는데······. 이 참에 친해져 보죠.”


홍인수가 달가운 말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먹고 가겠습니까? 여기는 음식도 제법 맛있는데.”


그 말에, 민서는 메뉴를 찾아 고급 해산물이 잔뜩 들어가서- 영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의 짬뽕을 한 그릇 먹고 그 날의 이야기를 마쳤다.


*


중국 어느 변두리.


새해의 분위기는 떠들썩한 편이었다.


신년이 시작되고, 신정을 맞이해서 마을에서 대대적인 잔치를 하고 연회를 벌인다. 민서는 동네에서 그런 잔치에 참여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구석에서 분위기를 느끼고는 있었다.


눈이 마을 어귀에 내려 소복이 쌓여 있었다. 변두리, 산골짜기의 시골 마을이라 그럴싸한 편의적 시설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장소였다.


나름대로 깔끔하고, 단출하게 꾸며진 단층 짜리 단독 가구였다.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은. 특색이라곤 없이 회백색으로 칠해진 작은 건물 내에 갖출만한 것들은 대부분 갖추어져 있었고, 수도가 통하지 않아서 근처의 계곡에서 주기적으로 물을 떠 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한 거처에서 머무는 게 하루 정도에 불과해서, 그리 오랜 시간 이곳에서의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는 없는 점이었다.


오래된 가구들 위에 조용히 내려 앉은 먼지 따위들을 집 안에 있는 천에 적당히 물을 묻혀 닦아내고, 침낭 따위를 펴서 잠자리에 들고 일어난다.


새하얗게 부서지는 햇살은 겨울의 아침과 낮을 조용히 밝히고 있었고, 그런 하늘의 색깔과는 대비되도록 마을 주민들의 소란스러운 잔소리가 들려온다.


사부작사부작, 작은 집 안에서 요깃거리를 준비해서 간단하게 때우고, 청소를 하고, 소일거리를 보고, 집 주위를 둘러보며 산책을 하다가 책을 읽는 동안 바깥에서는 그들만의 일거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단찮은 일들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풍습대로 무슨 연극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같았고. 기본적으로 그런 일들은 길게 이어지지 않고 곧이어 떠들썩하게 아저씨나, 아줌마들이 떠들고 술을 즐기면서 음식을 나누는 것 같다.


민서는 외부인이었으므로, 선뜻 그 안에 끼기도 뭐했다. 며칠이고 그 자리에 머무는 것도 아니었고. 고작 하루다.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무언가를 나누면서 정답게 수다를 떠는 저런 장면에서 부러움이나 그리움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얼마 되지도 않은 콘크리트 벽의 두께와 창문 너머로 들리는 사람들의 소란이 즐겁다.


민서는 몸이 굳지 않도록, 매일 해야 하는 맨몸 운동으로 적당히 근육을 풀어주면서 그들의 소음을 배경 삼아 하루를 보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다행히도 어떤 오해의 골짜기나 불쾌한 소란 없이 하루종일 농담 소리나, 유쾌한 고함 따위만이 오가면서 늦은 밤까지 마을의 잔치가 계속되었다.


물론 중국어를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말투가 그랬다는 이야기다.


*


시골 지방에서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그리고, 도시에서 하루를 보낸 때도 있었다. 중국은 개발된 곳과 낙후된 지역의 격차가 유달리 심한 나라들 중 하나였다. 여러가지 정책적, 지도적 문제점으로 개발과 발전에 난항을 겪은 중국이라는 나라는- 현대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개발이 진척되면서 몇몇 대도시들을 가졌지만 그런 도시화에서 배제가 된 산간 지방에서의 삶은 어느 도상국의 빈민가나 다름이 없는 자연 친화적인 환경들이었다.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민서는 그런 격차와 변화의 과정을 전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애초에 거대한 넓이의 대륙은 온전하게, 세밀한 정도로 고도 발전을 이루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는 땅덩이이기도 했다.


아마 한 세대가 더 지나도 그 땅덩이 전역이 다른 소규모의 선진국들과 같이 조밀한 도시화를 이루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선제적으로 개발되어서, 공산주의를 표방하나 자본주의적 실제 논리로서 결국 중국을 지탱하고 있는 어느 대도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은- 근처의 황야로부터 모래 먼지 따위가 많이 불어오는 어느 도시였다. 민서가 있는 곳은.


너비가 큰 대로가 여러 군데 있었고, 시가지가 복잡하게 중앙부를 이루며 다소 외곽으로 빠지면 한산한 주택가가 나오는 곳이었다.


민서가 머무르는 주택은 점퍼 조직에서 종종 이용하는 거처인 듯, 이런저런 생활용품들이 잘 구비 되어 있었고 심지어 지하 대피소도 내부에 있었다. 역시 단독 주택이었고, 부엌의 식탁 아래 카펫에 가려져 있는 지하 출입구를 열어 들어가면 한참은 먹으면서 버틸 수 있는 비상 식량들 따위가 있다.


민서는 주택의 내부를 이곳저곳 구경하고, 하루라는 시간동안 머물게 될 도시를 잠깐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세계적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매핑 정보를 찾아보니 근처에는 강도 흐르고 있다고 한다.


몇몇 중국의 시민들을 지나가며 거리에서 보고는 했지만 말을 걸 일도, 걸릴 일도 없었다. 수상쩍게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공안들에게 괜한 의심을 사서 신문을 당할 수도 있었기에, 민서는 최대한 어색한 티를 감추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놓고 자연스레 걸었다.


그 나름대로는 불편하거나 길을 잘 모른다는 티를 내지 않도록 자연스러움을 가장하며 연기를 하기까지 했으나 잘 통했는 지는 의문이다. 홍인수가 말하길, 중국의 공안과 정부 조직에도 어느 정도 말은 되어 있다고 했으나.


이토록 방대한 넓이의 땅을 다스리는 행정 조직들이 과연 제대로 일원화가 이루어졌을 지는 의문이었다. 도중에 정보 교환에서 오류가 생긴다고 해도 즉시 연락이 이루어지고 수정이 되는 지도 의문이었고.


그저 현장에서 돌아다니는 치안 조직의 말단에게 잘못 걸려서, 수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설명할 틈도 없이 피곤해지고 마는 것이다.


적당히 인적이 드문 길들을 골라서 조용조용히 다니다가,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시장가의 어귀에 닿아서 과실 종류를 한 바구니 사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머무는 곳은 도시였으나 번화가는 아니었다. 괜한 소란을 만들어봤자 불법 입국자의 신분으로 체류하고 있는 것이라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었고, 주택가의 변두리에서 또 하루를 보내었다.


결국 일과는 대개 비슷했다. 집 주변의 광경과 상황을 살피는 짧은 산책, 그리고 조직에서 준비해 준 숙소의 점검과 요깃거리를 챙긴 뒤 독서나 실내 운동. 어느새부터 게임은 그다지 재미있지가 않았다. 원래도 그렇게 취미가 있는 편은 아니었으나, 점퍼 조직에 들어서서 실제로 총격전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 처하게 되자 왜인지 전투를 하는 게임의 광경에서 정말로, 그다지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현실에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그럴 지 모른다.


읽고 있는 책은 ‘헤아려 본 슬픔’이었다. 영미권의 세계적 작가인 C.S 루이스의 여러 명저 중 한 권이었다.


어딘가,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의 책들은.


민서는 어지간히 시달리면서 해댔던 운동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름대로 몸을 달굴 정도로 혹사시키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매번 다른 포인트로 이동을 할 때마다 챙겨다 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책을 보며 천천히 잠에 들었다.


*


잠에 든 민서를 반기는 것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였다.


‘오 맙소사.’


민서는 제법 극적이고, 상투적인 탄사를 속으로 뱉어냈다. 탄사라지만 즐거움의 소리는 아니었다. 중세 연극 풍의 감탄사가 튀어나온 것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반대급부였다.


한밤중. 그의 집에서 날만 한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깥에서 어떤 소란이나, 들고양이 따위의 것이 부스럭거리지만 않는다면. 애초에 문을 잠가두고 어떤 손님도 맞이할 일이 없는 시점에서 인기척이 들린다는 것은 불법적인 침입자를 의미했다.


그는 불을 끈 실내의 침대에서 참담함을 느끼면서 표정을 구겼다.


손바닥으로 눈매를 감싸면서 잠깐 끓어 오르려 하는 스트레스를 한 차례 누르고, 천천히 자신의 누운 상태에서의 소지품을 확인했다. 그는 곧바로 어디로도 뛰어나갈 수 있는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바지의 오른 주머니에는 점퍼 조직의 요원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통신기가 있었고, 베개의 밑에는 글록 자동권총이 있었다.


세계 권총계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 글로벌 기업의 스탠다드 모델이었다. 그런 세세한 정보 따위는 사실 알 바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그가 그 물건에 제법 손이 익은 상태였고, 언제든 자연스럽게 장전을 마치고 상대에게 겨눈 뒤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민서는 조용히, 소리를 내지 않고 손을 움직여 권총을 쥐었다. 조심스레 동작을 분절하고 최소화 시켜서 소음을 줄인다.


잠결에 밝은 귀가 들어버리고 만 인기척은 그것이 그의 착각이 아니었다는 듯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끼익, 끼익. 약간은 닳아서 기름칠이 필요할 것 같은 마룻바닥의 나무판들이 서로 이음새가 비틀리면서 소리를 낸다. 사람이 천천히 걷는 정도의 박자였다, 정확하게.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멀리 떨어진 낯선 중국 땅에서 그의 친구와 해후를 나눌만한 일은 그리 경우의 수가 많지 않으리라.


민서는 슬쩍 상체를 일으켰다. 주머니에 있는 통신기를 조작해서, 외부에 달린 버튼 하나를 누른다. 조직으로의 발신은 최대한 간단한 동작으로 수행 가능하도록 모드를 설정해 두었다.


그리고 슬며시, 끼익 거리는 외부의 소리에 맞추어서 조금씩 움직여 하체를 침대 아래에 두었다. 다소 두터운 이불을 모아서 그 내부에서 글록의 장전을 천천히 마친다. 끼릭, 덜컥. 플라스틱 몸체가 움직이면서 약간의 소음이 난다.


문 바깥의 상대가 무언가 알아차렸을 테인가. 어쨌든 민서는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중국에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잠시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방탄 피복을 벗어두는 적이 없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아마 상대가 별다른 무기가 없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민서가 위기에 처할 일은 그리 없을 테였다. 날카로운 무언가를 들고 있다면, 그가 뼈저리게 익혀 온 사격술로 상대를 해봐야 할 것이고. 만에 하나 총기류를 가져온 인종이라면 방탄 피복을 믿고 머리 부위의 사격만을 피하도록 노력해봐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물론 그런 노력들에 앞서 점퍼의 조직원이 이곳에 와준다면 더욱 다행이었고. 민서는 숨을 죽인 채 방문 안에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맞추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서 침대에서 벗어나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시야에 닿지 않도록 구석의 벽면에 달라붙는다.


강제로 몸에 박아 넣듯이 배운 근접 교전 시의 사격 준비 자세를 취하면서, 숨을 몰아쉬며 벽에 천천히 등을 기대었다.


상대가 만약 점퍼이고, 용의주도하며, 전투에 능한 데다가 총도 갖고 있는 상태라면 물론 한 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태였다. JE를 응용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의 시각 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 모든 점퍼들이 가능한 기예는 아니었지만, 만약 그렇다면.


민서는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스으으읍.


철컥, 하고 방문의 손잡이가 돌아간다. 그리고, 후욱, 하는 바람 소리와 같은 것이 실내에서 들려왔다. 외풍이 새어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점퍼가 이곳으로 이동하는 기척이었지. 그가 있는 침실 내부로의 도약이었다. 민서는 그 자리를 처다보지도 않았느나 통신기의 발신을 수신해서 다가 온 조직의 점퍼인 것을 알았다. 든든한 일이다, 아군의 증원이라는 건.


그러나 눈을 떼지 않고 돌아가는 손잡이를 바라본다. 벌컥, 하면서 문이 서서히 경첩을 울리면서 열렸다. 실내는 등을 키지 않은 어두움 속이었지만 창가로 비치는 달빛이나 별빛, 혹은 도시의 불빛 따위 미약한 광원들이 그림자나 외곽선, 희미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


민서는 그대로 총을 겨누었다. 상대는, 일순 바라봤을 때 손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보통 체격의 사내였다. 아마 동양인처럼 보인다. 그는 침착하게 방 안에 들어왔고, 민서는 그가 양손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게 없다고 확인되자, 총을 쏘았다.


탕!


망설임은 없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방아쇠에 검지를 걸고 침착하게 당기면 될 뿐이니. 곧게 편 팔이 살짝 뒤로 밀리며 반동이 왔다. 그가, 총을 쏜 자리가 물론 상대의 몸은 아니었다. 저항할만한 수단이 별로 없다고 생각되자 실시한 위협 사격이었다. 총성이 도시의 주택가를 시끄럽게 울렸다. 벽면에 파고들어갔고, 일순 상대의 움직임이 굳었다.


민서는 그 시점에 이미 총을 아래로 두고 달려든다. 방아쇠에서는 손가락을 뺀 상태였고, 팔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고 달리는 기세 그대로 프론트 킥으로 상대의 명치를 찍으며 뒤로 밀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발길질에 밀린 상대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민서는 그대로 거실 바깥으로 따라 나선다. 뒤에 나타난 점퍼 역시 그에게 거리를 좁혔다. 나타난 조직의 점퍼는 미셸 베르나르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여성이었다. 곱게 기른 블론드 헤어가 잘 어울리는 여성으로, 갈색의 카우보이 재킷을 입고 있었다.


나름대로 체격이 있는 그녀는 고도의 트레이닝을 통과한 전투 요원 중 한명이었고, 곧바로 상황을 인지하고 다가선다.


민서는 거실에 나서면서 벽면을 더듬어 불을 켜는 스위치를 찾아 눌렀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실내가 밝아졌다. 미셸이 좁은 방문을 나와 민서의 곁에 선다. 명치를 정확하게 얻어 맞아 바닥을 구르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내는, 중국인이었다.


별다른 반항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민서는 그 모습에 약간의 어색함이나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괴한을 일단 제압하기 위해 근처로 다가갔다. 남성은 사지와 몸통을 웅크린다. 함정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힘이 없고 어색한 모습이었다. 갑자기 날붙이를 꺼내 들 가능성도 있었으니, 민서는 거칠게 다루기로 했다.


그대로 웅크린 상대의 뒤통수 쪽으로 다가가 허리와 옆구리 쪽을 발로 거세게 누르며 엎드리게 만들었다. 체중을 실으면서 무릎으로 상대의 몸을 제압하며 양 팔꿈치를 세워 어깨를 누르며 낮게 다가갔고, 곧이어 물 흐르듯한 동작으로 상대의 등을 안듯이 다가가 팔을 끼워 넣었다. 바닥과, 억지로 누워 있는 상대의 목 사이의 공간에 말이다.


가볍게 백 초크의 준비 동작을 마친 민서가 목덜미를 조르며 이야기했다.


“당신, 어디에서 왔어. 누구야?”


한국말이 통할 확률은 아무래도 희박했기에, 민서는 영어로 말했다. 가급적이면 중국어로 소통을 하고 싶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상대는 몇 번인가 웅얼거리면서 말을 하려는 듯했으나,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민서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하는 사내의 목덜미를 쥔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고, 상대가 필사적으로 그의 팔을 긁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당신 누구야?”


상대는 영어를 모르는 건지, 대답할 생각이 없는 건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의 말로 웅얼거린다. 그러나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셸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눈매가 예쁘게 휘어진 미인이었다.


“어······. 강도인 것 같은데요. 재머. 아무래도···. 점퍼랑은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상대가 뱉었던 건 중국말인 모양이다. 미셸은 중국어에도 능통했고, 웅얼거리듯 하는 말도 알아 들었다.


“······어?”


그 말을 들으면서도 민서의 팔에는 힘이 풀리지 않았다. 그대로 조금 더 상대의 목을 조였고, 곧이어 그의 사지 육신이 추욱 늘어지면서 기절을 하는게 느껴졌다.


“······어?”


민서는 갑자기 아닌 밤중에, 강도를 잡게 되어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멍청한 소리만 뱉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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