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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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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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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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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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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DUMMY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시장 바닥같은.


싫다는 의미는 아니었고. 나름대로 목가적인 분위기마저 풍겼다. 초원도 기르는 식육동물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냥 비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분위기.


울타리 내부에 잘 쌓아둔 어떤 관계성 같은 것들이 풍성하게 꾸며지고 또 자라나서 행복한 한 때와 교제를 누리는 그런 시간이라는 이야기였다.


민서는 점퍼 조직의 기지 내에 있었다. 본부 건물. 본부 건물은 지하에 위치해 있었고, 그 정확한 좌표는 조직 내의 상급 기밀이라 조직 내를 이동해야 하는 점퍼 요원들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물론 기지 자체를 건축하고 투자에 관여한 이들이야 알고 있겠다마는. 환풍구를 제외하고는 밀실이나 다름 없는 지하 기지였고, 기본적인 출입 시스템은 점퍼들의 점프 뿐이었다.


기지 내 비점퍼 요원들의 퇴근과 출근 역시 점퍼들이 단체 도약을 통해서 관리하고 있었다. 물론 매일 하는 것은 아니었고, 수 개월 단위로 기지 내 인원들이 전부 교체되는 식이었다.


기지에 비상 사태가 발생해서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면, 그럴 때 사용할 비상구 정도는 만들어 두었겠으나 평소에 사용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기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 내에서, 기지의 위치는 지구상 어딘가에 위치한 오지라는 것이 대개의 인식이었다.


어쨌든 그런 지하 기지의 구조는 제법 깔끔하고 또 넓었다. 얼마만한 자본이 투입된 것인지, 고층 빌딩을 층별로 다소 쪼개서 지하에 잘 분배를 해둔 것과 같은 넓이나 구조였다.


대형 종합 병원 정도의 넓이도 되는 듯했다.


기지 내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내는 요원들은 좋던 싫던 그 자리에서 정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먹고, 또 자고. 일하고. 많은 일들을 하고 또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으니.


그래서 가끔 이런 이벤트도 있다.


크리스마스라던가, 대절기나 세계적인 기념일이 다가오면 다같이 파티라도 열어 한 때의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었다.


나름대로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고, 개성들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적당한 날을 구실 삼아서 문화나 삶의 배경과는 상관없이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모든 이들의 소망을 만족시켰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이브날로 일정이 잡혔다. 점퍼 조직, 기지 내에서는 나름대로 대대적인 행사였고 대부분의 인원들이 참여한다. 어쩔 수 없이 외부 임무를 맡고 뛰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가능하다면 바깥에서 제각각 친구나, 가족 혹은 연인들을 대동하기도 한다. 자주 있는 행사는 아니었으므로, 하루만은 특별 취급이었다.


대회의실, 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었다. 기지의 C동에 위치한 넓은 방으로, 얼핏 공터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아무 가구도 없이 텅 빈 공간만 있는 실내였다.


주로 활동적인 훈련을 하는 훈련실들보다도 조금 더 크다.


기지 내 다수 인원들이 모여서 대회의를 해야 할 때 사용하는 장소였고, 이런 날에는 파티의 분위기를 위해서 쓰이기도 한다.


어느덧 이전부터 야금야금, 각자의 사람들이 꾸며 놓은 실내가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풍겼다. 기지 내 창고 어딘가에 일 년동안 처박혀 있던 트리를 꺼내서 청소를 하고, 장식을 치장한다.


여기저기 모아 두었던 파티 용품들을 꺼내고 또 인테리어 가구들을 하나 둘 씩 모아두고.


파티를 위해서 테이블을 설치하고, 자리를 깔고. 단상에도 적당한 붉은 색 카펫 따위를 깔아 분위기를 돋운다.


그리고 당일이 되어 각종 요리와 케이크 따위들을 늘어놓으면, 지금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조명도 어느샌가 손을 대었는지 포근한 연말을 연출하기 좋은 약간은 붉고 따뜻한 기가 도는 빛깔의 색이었다.


점퍼 요원들을 비롯해서 각자 사정이 허락하는 한, 부르고 싶은 지인들 역시 함께 참여해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점퍼 요원들은 대부분 가족 중 한 두명, 친구, 혹은 아내나 연인 같은 이들도 데려온다.


민서는 개중에서 수정을 초대했다. 그녀 역시 지난 많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일을 알려준 민서 덕분에 내부 사정에 대해서 아예 문외한은 아니었다.


말할 수 없는 내용들 외에는 모두 말한 터였으므로, 심지어 조직 내의 여러 인원들에 대해 친숙하기까지 한 상태였다.


개중에는 아무래도, 민서에게 있어서 많은 영향을 미치는 홍인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수정 양."


홍인수는 대개의 경우 늘 정장을 빼입고 다니는 편이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게 일상복인 양 입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역시 훤칠한 키에 단정하게 차려입고서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멋들어진 모델처럼도 보인다.


"앗."


수정은 가볍게 탄성처럼 헛소리를 내뱉었다. 이야기로 자주 듣던 사람이기도 했고, 심지어 그녀의 기억 속에 있었던 사람인 탓이다. 그녀는 삶에서 점퍼를 마주치고, 뉴스로나마 사건을 접하면서 지난 날의 암시가 모두 풀린지 오래였다. 반복되는 강한 자극과 뚜렷한 인식 속에서 최면과 암시는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한 그녀가 그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민서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사실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나.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얽혀 있기 때문에 현실로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민서 군의 여자친구라고. 아무쪼록 늘 다치지 않도록 제가 잘 보호하고 있으니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어색할텐데, 오늘은 와줘서 고맙습니다. 편하게 즐기다 가시고요."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으며 인사를 건네곤 사라졌다. 이야기의 와중에 이것저것 걸리는 사실들이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여자인 친구는 맞다. 아직 여자친구는 아니었고.


홍인수는 손에 잔 하나를 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인사들을 해댔다. 조직의 중추로서, 많은 사람들을 살피는 건 어쩌면 필여적인 일인지도 몰랐다. 단순한 현장 요원을 벗어나서 수뇌부의 자리에서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인간 관계 역시 핵심적인 일이었다. 결국 조직 내부의 인원들에 대한 유대감을 쌓고 인원 관리를 해야만 조직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이었으니.


점퍼 조직같은, 이런 소규모의 조직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조직 자체의 규모는 방대한 편이었으나 그 핵심 인물들의 숫자는 적었다. 중소 기업 정도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평소에는 잘 마주치기 어려운 사람들까지 볼 수 있는 자리였어서 민서로서는 나름대로 행복한 자리였다. 그간 약 일 년 동안, 정확히 말하면 수개월동안 자주 함께 했던 이들과는 어느새 어색함이 사라질 정도의 기간이었지만 몇몇과는 나눈 대화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기왕이면, 자신이 어떤 조직에 몸을 담고 있다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편이 마음 쓰일 일도 적고 평안한 경우였다. 민서는 그런 성격이었다.


홍인수가 가벼운 안부 인사를 전하고 가자 수정은 버릇처럼 팔꿈치의 날을 세워서 민서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슬슬 버릇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타격의 각도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민서는 슬쩍 위기감을 느끼면서 말했다.


"그··· 갈수록 엘보가 날카로워지고 있는데 맞는 겁니까.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이러면 한쪽 갈비뼈가 다 사라지겠는데."


민서가 맞은 자리를 쓰다듬으면서 옆 테이블의 주스 잔 하나에 다가가 집어 들었다. 수정은 베이지 색과 노란 색이 섞인 밝은 톤의 원피스를 정갈하게 입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다.


"기분이 안 좋은 건 아니었어."

"···그럼?"

"그냥 답답해서 그러지. 그나저나, 괜찮아 보이는데. 사람들도 다들 좋아 보이고. 따뜻한 분위기네. 나도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그녀가 적당히 말을 돌리자 민서 역시 돌아가는 화제에 따라갔다.


"어, 좋은 곳이야. 다들 유대감도 각별하고. 거친 일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는지. 게다가 돈도 많이 나오지. 하지만 더럽게 무섭긴 해."


민서는 마지막 말은 중얼거리듯 흐렸다. 익숙해지고 싶다고 익숙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고공에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떨어지고, 총탄이 빗발치는 현장에서 몸을 웅크리는 일들은 말이다.


그런 건 익숙해지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평생, 그 하나하나 매번 해야 할 이유와 당위성을 깨닫고 그저 해나갈 뿐이다. 관성적으로 한다면 도저히 해나갈 수 없는 일들이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그래, 그런 목적성이라도 좀 필요할 지도 몰랐다. 민서에게는. 점퍼 조직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들은 위기의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움직이는 임무였다. 남들에 비해 특수한 능력과 조건을 갖고 있기에, 얼핏 난해해 보이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갖고 여유롭게 빠져 나온다.


그것이 순간이동자들의 일이었다.


"돈이 많이 나오는 건 좋은데. 만약 오래 다닌다면, 나 좀 먹여살려 주라."


수정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민서는 먹던 주스를 울컥하고 다시 토해낸 다음에 다시 마셨다.


"어··· 만약 네가 백수에 갈 곳도 없다면 외면하진 않겠지 내가 설마."


수정은 그 정도면 만족스럽다는 듯이 민서의 등을 쿡쿡 찔렀다.


"좋아. 든든한 보험 하나는 얻었구만. 맘 놓고 힘내서 취업 활동 할 수 있겠는데."


민서는 애써 딴 곳을 보며 주스를 홀짝였다. 다른 곳에서는, 한형석이 조직의 남자 요원들을 돌아다니면서 큰 딸의 혼처를 구해보기 위해 시도하고 있었다. 야가미는 아무래도 사이가 돈독해보였고, 홍인수는 괜찮은 녀석이었으나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커맨더는 최길우에게 다가가 어깨 동무를 하며 인생 이야기를 길게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



유진 쿠퍼는, 약 일주일 간의 신문 기간을 보내고 새롭게 지어진 조직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다량의 희생자들을 만들어낸 테러 계획의 주동자나 같은 인물이었고, 그 사상과 능력이 극히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조직에서 테러의 본체로 점찍었던 마이클은 놓쳤으나, 테러 행위의 결국 핵심이었던 점프 능력은 모두 유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내려진 처사였다.


유진은 그만의 특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텔레포터라는 능력은 상당히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었고, 구속하기에도 난이도가 높은 종류의 능력이었다. 광활한 공간, 이라고까지 느껴지는 밀실이었다.


별달리 최첨단의 소재나 기기로 내부를 채운 것도 아니었고, 단순하게 거대한 빈 공간을 단단하게 만들어둔 것에 불과했다. 그 내부에서 유진은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었고, 모든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다. 최소한의 인권을 위해서 내부 cctv는 없었으나, 그의 생체 데이터는 관리실에서 모니터링이 되고 있었다. 그가 지나치게 동요를 하거나 긴장을 하면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내부에는 통신 장치가 있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가 관리실과 연락을 취할 수 있었으나, 때때로는 관리실 쪽에서 무단으로 음성을 도청할 수도 있었다.


어지간한 운동장 수준의 넓이의 공간이었다. 하나의 독채처럼 따로 떨어진 공간은 대양의 어딘가에 있는 깨나 규모가 큰 무인도에 위치한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설을 완벽하게 지을 수 없었고, 적당한 가설 건물들로 채워진 신설 감옥이었다.


유진을 제어하기 위해서 항상 일정량 이상의 화력이 필요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공간을 벗어나지 않고도 원거리에서 타인을 불러들일 수 있는 텔레포터였으니까. 타인이 내부의 좌표를 알지 못할 때도 다른 공간에 있는 점퍼를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사전에 계획되지 않고 거대한 지구 상에서 정해진 인물과 정확한 교감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아무런 외부와 접할 수 있는 통신 매체도 두지 않고, 단색으로 지루하게 채색된 공간 내부에서 유진은 홀로 긴 시간을 보낸다. 점퍼 감옥 특유의 구속구가 그의 손 발에 채워져 있었다.


유진은, 마침내 자신의 삶에 대해 길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처럼 그 자리에 누워서 오래도록 사색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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