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훈련
잘 부탁드립니다
“D급 던전 유령의 성··· 물리 계열 공격은 거의 먹히지 않고 마법이나 스킬이 아니면 잘 안 통하는 고스트 계열 마수나 이미 뒤진 놈들이라 핵을 부수거나 활동 정지 수준까지 신체를 없애야하는 언데드가 주로 이루어진 던전··· 혹시 메이 나한테 삐져서 일부로 이런 거 주는 거야···?”
실제론 이런 던전이니까 맡는 놈들이 없어서 빠르게 구했을 뿐이겠지.
“···흥”“메이?”
“인화씨는··· 너무 자신을 안 아껴요. 성유물을 얻으시고 방심하게 된 것 같아 고생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겪은 고생 기간이 니 인생 전체보다 길다니까 그러네···
뭐 나를 걱정해서 이러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애초에 언데드나 고스트 계열 마수들한테서 얻을 스킬들이 있나?
얻어도 뭔가 시체가 된 다음에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불길한 놈들만 잔뜩 있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이번엔 카르마 시스템으로 뭔가를 얻는 게 아니라 그냥 스탯 올리고 스킬과 무기에 익숙해지는데 중점으로 둬야겠어.
“그럼 난 들어가볼게.”
“무리하실 것 같으면 바로 스크롤 찢으셔야 합니다.”
“알겠어.”
오늘만 벌써 20번은 족히 들은 경고를 또 들으며 나는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
“이봐 알파,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던전이란 대체 뭐야?”
방금까지 문명화된 현대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공터였던 주위가 게이트 하나 넘었다고 마치 중세 공포 스릴러에 나올법한 낡은 성과 다리로 이어진 절벽으로 바뀌니 던전을 돌 때마다 항상 느끼던 의문이 떠올랐다.
알파도 그렇고 모든 성유물들은 결국 던전에서 나온 부산물일 텐데, 어쩌면 던전에 대해서도 알지 않을까.
[던전이란 본래 놈들의 영지이자 유배지···]
“뭐?”
[응? 내가 방금 뭐라고 했어?]
“놈들의 뭐이자 뭐라고 했는데 작아서 잘 안 들렸어.”
[놈들이 뭔데?]
“니가 말한 걸 왜 니가 묻냐···”
또 나를 비꼬는 건가 싶었지만 알파는 정말로 자신이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는 자각조차 없는지 목소리에 당황한게 느껴졌다.
어차피 다리를 넘기 전까진 마수는 공격해오지 않으니 보는 눈이 없을 때 대화 좀 해볼까.
“알파, 너 말이야, 나랑 계약하지 전의 기억 같은 건 아예 없어?”
[내 자아는 너랑 계약하면서 태어난 거야. 있을 리가 없잖아.]
“이제 막 자아가 태어난 것치곤 이상하단 말이지···”
[그건···]
알파 자신도 짚이는 게 없진 않는지 목소리가 흐려졌다.
“애초에 넌 뭐야?”
[···그게 지금 중요해?]
“중요하지. 나도 내 계약자가 누군지 알아야 하거든, 하물며 너한텐 더더욱 중요할테고.”
[나···?]
“그래, 너, 우리 서로 목표를 정하는 게 어때? 우리 각자 강해진다는 꿈을 이루기 위한 동기가 되어줄 목표를 말이야.”
[꿈을 이뤄줄 동기? ···나쁘지 않군.]
“그렇게 생각하지? 사실 나도 오늘 구체적이고 단기간적인 목표가 생겼거든.”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는 꿈.
언뜻 들으면 좋은 동기지만, 너무 추상적이다.
그러니 그 추상적인 꿈에 다다를 수 있도록 통로를, 꿈에 가깝지만 좀 더 나와 가깝고 현실적인 목표를 정해보기로 했다.
[호? 말해봐, 들어줄테니.]
“우로보로스 놈들을 쳐부순다.”
[단기간적이라며···]
“충분히 단기간 적이야. 놈들을 오래 놔둘 생각이 없으니까.”
마켓에서 있었던 테러로 깨달았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선 우선 사람들을 위협하는 녀석들을 부숴야 한다는 걸.
“우선 우로보로스, 더 가깝게는 고명호 그 자식을 쓰러뜨릴 거야.”
[그 힘 좀 쓰던 놈 말이지? 나쁘지 않아, 녀석의 스킬은 상당히 흥미로우니까.]
저 사람을 마수처럼 취급하는 것만 좀 고쳐주면 소원이 없겠다.
“아무튼 나는 우로보로스놈들을 박살내고, 알파 너는 너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거. 서로 딱 목표가 생기니까 좋네!”
[알겠으니까 이제 수다는 작작하고 빨리 출발해. 지금도 그 여자가 정해준 시간이 줄어들고 있으니까.]
“쯧, 하여간.”
*
으어어-
다리를 지나 성의 입구에 도착하기 무섭게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묘지들이 들썩이더니 D급 마수 좀비들 20여 마리가 덤벼들었다.
이 녀석들은 특별한 능력도 없고 힘도 별거 없어 E급 마수랑 큰 차이가 없지만 아까 말했던 언데드 특유의 끈질김이 성가신데다 보통 여러마리가 한번에 몰려와 D급으로 평가받는 녀석이다.
“언데드는 예전부터 둔기로 머리를 박살내는 게 답이랬어.”
혼자 망하기는 싫은 한국인의 물귀신 정신이 게이트를 너머 던전까지 전파됐는지 나를 동료로 만들기 위해 느리게 달려오는 구울들을 향해 인벤토리에서 워해머 한 자루를 꺼냈다.
사용하는 각성자들 자체가 현실적이기 않은 놈들이라 장비도 물리학적으론 많이 엇나가 보이는 형태가 많은 것과 달리 중급 헌터의 장비까진 실용성을 따져 현실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 워햄머도 그런 케이스라 망치의 크기가 생각보다 많이 심심했다.
“빙.”
성유물의 힘으로 망치 부분을 덩어리로 얼려 크기와 무게를 조금 더 불린 후, 우선 선두에서 어떻게 무는지 궁금할 정도로 치열도 더럽고 잇몸도 썩어있는 이빨을 드러내는 구울 하나의 머리를 내려쳤다.
-콰직.
중력의 가속도까지 받은 망치에 머리가 으깨진 녀석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지만, 다른 구울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의 시체, 아니 원래도 시체였지만 완전히 침묵해버린 녀석의 육체를 짓밟고 여전히 이쪽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앞에 있는 놈의 머리를 부순 다음 뒤로 한 발짝 물러나 거리를 벌린 다음 다가오는 놈 하나를 다시 박살냈다.
이 과정을 몇 번 더 반복할 때쯤 구울들의 절반 가량이 죽어있었고, 나는 이곳으로 올라올 때 지나갔던 다리로 돌아와 있었다.
[이봐, 진로가 막혔잖아. 어떻게 뚫을 건데?]
“막히긴 개뿔, 오히려 편해졌잖아!”
[뭐?]
“예전에 짐꾼으로 여기 왔을 때부터 생각했단 말이야. 다리 위에서 버티면 어차피 한 놈씩 밖에 못 들어오는데 사각에서 습격받을 일 없이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지 않나 하고!”
[···!]
역시 내 예상대로 밧줄과 나무 판자로 된 다리의 좁은 통로 탓에 구울은 한 번에 한 마리, 서로 붙어 와도 2마리가 한계였고 2마리가 올 땐 움직임이 느려져서 오히려 더 편했다.
밧줄로 되었다 해도 다리는 생각보다 튼튼한데다 구울들은 밧줄을 끊는다는 발상을 할 지성이 없다.
중간중간 죽은 놈들의 시체가 떨어지겠지만 구울에겐 애초에 가져갈 만한 소재도 거의 없고 나는 카르마 시스템 때문에 마석조차 가져가지 못하니 조금도 미련을 가질 게 없었다.
그야말로 구울에게만 통하는 안전한 공략법이라 이거지.
다리 위에서 한놈씩 한놈씩 머리를 으깨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며 나아간 결과, 그냥 둘러싸인 채 싸울 때보다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상처 하나 없이 구울들을 전부 쓰러뜨리고 안전하게 다시 성에 올라올 수 있었다.
“이제 또 성에 들어가기 전까진 안전하니까 잠깐 정비 좀 할까. 우선 수납.”
유용하게 쓴 워해머를 인벤토리로 집어넣은 다음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인 후 스탯이 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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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유인화
성유물:알파
힘:D+ 민첩:D-
저항:E+ 체력:C+
마력:F 행운:E+
스킬
빙
개미산(E)
의태:자이언트 맨티스(D)
검성의 자질(A)
카르마 시스템
하급 구울의 소울(23/500)
********
“올랐다!”
중간부터 힘이 조금 세진 느낌이 들어 혹시나 했는데 역시 힘과 체력 스탯이 조금이나마 성장했다.
“그건 그렇고 500마리라니···”
하급 구울이야 성안에서 몇 번 더 나올 수도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던전을 최소 5번은 돌아야 하는 횟수다.
“그러고 보니 사마귀 녀석은 고작 5번이면 충분했는데 같은 등급인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많아?”
[아마 너와의 상성 때문일 거야.]
“상성?”
[카르마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마수의 힘을 너의 힘으로 바꿔주는 힘이야. 마수의 힘이 너의 육체나 영혼과 상성이 잘 맞는다면 그에 필요한 소울도 조금밖에 필요 없지만 상성이 안 맞으면 그만큼 많은 영혼이 필요하겠지. 뭐 단순히 불사도 아니고 이미 다 썩어가는 시체와 상성이 맞는 인간이 있겠냐만은···]
애초에 이 녀석들한테 영혼이란 게 남아있긴 한 거야?
그렇다면, 나는 그 사마귀 보스랑 상성이 잘 맞는 몸이란 건데···
“벌레라는 거잖아.”
분명 능력은 마음에 들지만 곤충이랑 잘 맞는 몸이라는 게 뭔가 기분이 더럽다.
“어쨌건 스탯도 확인하고 숨도 골랐으니 슬슬 출발하자.”
메이한텐 몸조심한다곤 했지만 우로보로스놈들이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
무엇보다 고명호, 그 자식은 나보고 목 씻고 기다리라 한 걸 보면 앞으로 날 집요하게 노리겠지.
지난번엔 무력하게 눈 하나 가져가는 게 전부였지만, 다음엔 최소 팔은 뜯어갈 정도로 강해질 거다.
그러니까, 난 비누랑 로션 바르며 잘 기다릴 테니까, 너도 그 모가지 잘 닦고 기다리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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