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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파키 님의 서재입니다.

성유물이 심장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준파키
작품등록일 :
2022.05.14 20:02
최근연재일 :
2022.06.16 17:4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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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1
추천수 :
77
글자수 :
147,331

작성
22.05.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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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잘 부탁드립니다




DUMMY

[국제 테러 조직 우로보로스가 63빌딩을 습격한지 사흘이 지났지만 마켓 쪽은 아직도 보안과 프라이버시라는 명목으로 당시의 자세한 정황을 밝히지 않고 있어 당혹을 사게 만들고 있습니다.]


에디씨가 말했던 대로 63빌딩의 습격은 근 며칠간 뉴시에서 떠들썩하게 다뤄졌으나 나나 메이씨의 이름은 고사하고 인상착의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또한 이번 습격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A급 헌터 전호진씨의 소속 길드 ‘세발 까마귀’는 앞으로 우로보로스에 강경한 대응을 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번에 수습에 나섰던 봉황 길드 또한 이번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거란 의사를 표명했···]


삑-


“쯧.”


심심해서 뉴스나 틀었더니 정신 사나워지는 소리만 하고 앉았어.


“인화씨, 짐은 이걸로 다 싼 건가요?”

“어, 나머진 다 버려도 돼.”


내 낡은 원룸에 왜 메이가 와서 짐을 싸고 있는가 하면, 그건 지난번에 에디씨가 스쳐지나가듯 했던 방을 구해준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어제 진행됐기 때문이다.

에디씨가 앞으로 묵을 오피스텔을 구하면서 내 옆방까지 둘 다 전세로 구매해뒀다고 내일이라도 들어와 살라 해서, 이렇게 급하게 싸고 있다.


“이 집이랑 이제 작별인가···”

“정이 드신 건가요?”

“정은 무슨 정, 내 소유도 아닌데.”


매달 월세 꼬박꼬박 독촉받으며 사는 원룸은 설사 5년이 아니라 50년을 살아도 정이 들 리가.

오히려 이제부터 독촉에 안 시달려도 된다는 해방감만 있을 뿐.


“근데, 여기 짜장면 집 맛있었는데··· 단골이고 많이 주문한다고 맛탕 서비스로 매번 주고.”

“짜장면··· 여기서 종종 들어본 음식이군요, 좋아하시는 겁니까?”

“좋아한다기 보단, 부모님이랑 같이 먹은 기억이 나는 몇 안 되는 음식이다 보니 먹게 돼. 한 번 먹어볼래?”


그러고 보니 이사할 땐 짜장면을 먹는 거라고, 같이 일했던 헌터 아저씨가 말했던 적이 있다. 요즘 시대에 누가 그런 걸 신경 쓰냔 만은.


“근데 그 차는 미국에서 가져온 거야?”

“아뇨, 여기 온 첫날 인화씨와 해어지자마자 구매했습니다.”


마치 초등학생이 새로 산 책가방을 자랑하듯 메이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 끝에서 다른 소형, 중형들 사이에 그 이질적인 크기와 외형을 과시하는 지프의 본넷을 손바닥으로 쳤다.


“운전면허는 어떻게 딴 거야?”

“미국에선 돈만 넣으면 신분 정돈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헌터 쪽이랑 연관된 사람은 더더욱.”


때 하나 안탄 순진무구한 얼굴로 당연한 듯이 불법행위를 고백하지 말아줄래?

“인화씨, 마켓에서 주문했던 장비들이 배달됐다고 하던데 식사를 하고 보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아, 그래?”

기껏 대량으로 구매했던 장비들이 테러 때문에 배달이 늦어 오늘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래 바로 가보자. 식당은 여기 근처니까 걸어서 가자.”


필요한 짐을 트렁크에 넣고 식당으로 출발하려던 찰나, 아까부터 주위를 서성거리던 여자가 내 얼굴 보더니 갑자기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 유인화씨, 맞으시죠?! 혹시 저 기억하시나요?”

“넌··· 이름이 분명, 지윤이였지?”

나를 찾아온 건, 다름 아닌 호진이의 이복여동생 지윤이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병원분들이 알려주셨어요. 원래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첫날엔 제가 경황이 없어서.”


오빠가 눈앞에서 테러범에게 죽었는데 경황이 없는 게 당연하지.


“나한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거야?”

“그···”


오빠를 죽게만든 날 욕하러 온 걸까, 아니면 돈이라고 청구하러 온 걸까.

내 입장에선 차라리 이 둘 중 하나 때문에 온 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마 지윤이가 온 이유는···


“감사합니다, 오빠! 오빠 덕에 저주가 풀리고 봉황 길드가 진입할 수 있었다고, 저같은 비각성자들이 아무 이상 없이 살 수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걸 감사를 전하려고···!”

“그 이상 말하지 마.”

“네?”

“나한테 감사하지마. 내가 괜히 주제 모르고 설쳐서, 너희 오빠가 죽은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지윤이에게만큼은 듣고 싶지 않은 소리.

그건 비난도 분노도 아닌, 감사였다.

지키지 못한 대상한테 감사를 받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건지 몰랐다.


“하지만, 오빠가 아니었으면 저희는 지금도 병실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거에요!”

“아니야. 곧바로 봉황 길드가 왔었잖아. 내가 굳이 안 나섰더라도 너흰 구출 됐을 거야.”

“저, 쓰러지긴 했지만 다 봤어요!”

“···!”

“오빠가 쓰러진 저를 보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호진이 오빠를 다그쳐서 움직이게 하고, 저희를 구하려고 얼음으로 벽까지 세운다음 다른 테러리스트들이랑 싸운걸요! 그러니까, 그렇게 죄책감 가지실 필요가···!”

“닥쳐!”

“아···”


참지 못한 내가 고함을 치자, 지윤이는 겁을 먹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날 나쁜 놈으로 생각하고 욕해줘.


“저, 호진이 오빠한테 사실 오빠에 대한 거 들었어요.”

“내 앞에서 말했었잖아.”

“그 이후에도 호진이 오빠가 말해줬어요. 두 분이 어떤 관계인지, 호진이 오빠가 오빠한테 어떤 실수를 했는지까지요.”

“그게 이제 와서 뭐.”

“호진이 오빤, 줄곧 후회하고 있었어요. 그때 오빠한테 그렇게 굴었던 거.”

“그게 어쨌다고.”

“그러니까, 호진이 오빤 자기가 죽은 걸 절대 원망하지 않을 거에요. 죄책감 가지지 않으셔도 돼요.”

“···”

“그래도 정 납득하실 수 없다면,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나요?”

“···뭔데.”

“오빠 장례식 아직 안 가셨죠? 저랑 같이 가요. 아주 잠깐이라도 좋아요. 절 하실 필요도 없어요. 그냥 저랑 가주기만 해주세요.”


이 이상은 자기도 안 바란다며 지윤이는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숙였다.

남매가 쌍으로 날 엿맥이는 군.


“···절만 하고 나올 거야.”

“감사합니다!”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메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메이, 미안한데 우리 밥은 조금 미뤄야겠다. 차 좀 태워줘.”

“···뭐 어쩔 수 없죠. 뒤로 타세요.”



*


대형 길드의 잘 나가는 A급 헌터에, 현재 뉴스에서 뜨겁게 다뤄지는 사건의 대표적인 피해자라 그런지 호진이의 장례식은 벌써 나흘째인 데도 사람이 북적였다.

아카데미에서도 인싸였던 만큼 길드에서도 다른 헌터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는지 녀석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헌터들이 꽤 많이 보였다.


“이 고얀 년! 여기가 어디라고 또 기어 들어와!?”

“저분은···”

“호진이 오빠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의 전처세요···”


방으로 들어가자 초췌한 몰골의 아줌마 한 분이 뛰어와 대뜸 주위에 있던 식기를 들고 지윤이 쪽으로 던져 그걸 잡았고, 무슨 일인가 싶어 지윤이에게 물어보니, 다름 아닌 말로만 듣던 호진이의 홀어머니셨다.


“무슨 상황이냐···”

“호진이 오빠의 어머니께선 당신이랑 호진이 오빠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증오하시고 계시거든요. 호진이 오빠가 저를 챙겨주는 것도 탐탁치 않아 하셨는데 저 때문에 죽은 거라고, 며칠간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계세요.”

“···”


지윤이가 무슨 각성자가 돼서 호진이에게 따로 저주를 건 것도 아니고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만, 남편한테 버림받은 상황에서 손수 키운 외아들이 죽은 상황에서 호진이의 어머니에겐 논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을 거다.

그저 아들을 잃은 한을 풀 대상이 필요한 거겠지.

그렇다 해도 아무런 죄 없는 지윤이가 삿대질 받는 것도 이상했다.


“그만하시죠, 호진이 어머니.”

“넌 뭔데 저 년을 감싸!?”

“어머니가 화내실 대상은, 쟤가 아니라 접니다.”

“뭐?”“호진이 녀석은, 저 때문에 죽었습니다.”

“뭐라고?”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라는 말에, 호진이의 어머니는 마치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머니! 이분이 바로 인화 오빠에요. 호진이 오빠가 말해준 적 있으시죠?”

“인화? 유인화? 저 녀석, 아니 저 아이가?”


아까 지윤이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한테도 달려들려던 호진이의 어머니는 내 이름을 듣고 마치 죽은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다니는 모습을 본 것처럼 놀라시더니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 새끼 대체 날 어떻게 이야기 했던 거야.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자 입을 여시던 어머니는 마치 단념하듯, 주저앉은 채 오열하시기 시작했다.


“대체 왜···”

“저는 자세히 못 들었지만, 예전에 오빠랑 호진이 오빠랑 다른 분만 아시는 큰일이 있으셨다면서요? 오빤 특히 그 일에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연락할 염두도 못 냈었데요.”

“···”


그때 일 말인가.

비밀로 하라니까 새끼가 티 다 내고 있어.

오열하고 있는 호진이의 어머니를 잠시 지윤이에게 맡기고, 나는 인파를 해치고 나가 호진이 녀석의 영정사진 앞에 섰다.


“···너 내가 입단속 좀 하랬지.”


죽은 놈은 말이 없다니까 살아있을 때 열심히 떠들자 이거냐?


“알파한테 니가 힘 흡수하는 거 허락했단 이야기 들었어. 쓸데없는 짓 하긴···”


이 말이 하고 싶은 게 아닌데, 어째선지 자꾸 헛소리만 나온다.


“에이 씨발··· 누가 이런 거 달래? 거추장스럽게··· 어쨌건, 받은 게 있으니까 약속은 지켜줄게. 그러니까, 잘 가라.”

조용히 절을 3번 한 다음, 나는 사람들이 괜히 몰려오기 전에 자리를 나왔다.


“넌 절 안 해도 돼?”“전 첫날에 했어요.”

“그래도 오빠잖아, 한 번 더 해. 지금이라면 호진이 어머니도 뭐라 안 할 거야.”

“괜찮아요, 어머님 말대로 호진이 오빠네를 버린 건 저희 아버진데 오빠 장례식에 사람들 보는 곳에 기웃거리는 건 염치 없는 거에요.”

“···”


건물 나오기 직전, 지윤이는 다시 한 번 나한테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오빠랑 별개로 저랑 사람들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헌터분들께 감사하지만, 호진이 오빠랑, 오빠, 그리고 그 메이라는 분 셋이 없었으면 못 버텼을 거에요.”

“···그래.”


아까랑 같은 감사의 인사였지만, 너무나도 그 무게가 무거워 피하려 했던 아까랑 달리, 지금은 그걸 피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게는 조금도 줄지 않았지만 장례식장에서 호진이의 어머니와 다른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고 깨달았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선,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그 정도 무게는 짊어지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걸.

알파의 말대로 난 호진이를 죽게 만들어 놓고 그 능력을 뺏었다. 그러니 하는 김에 짊어주마, 죄책감도 원망도 감사도, 전부.


“메이, 곧바로 장비들 확인하러 가자. 오늘부터 다시 던전을 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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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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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인 22.06.02 53 2 11쪽
20 유령의 성 22.05.31 64 2 10쪽
19 유령의 성 22.05.30 61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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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적응 훈련 22.05.27 7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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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역공 22.05.21 8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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