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시니피에 님의 서재입니다.

구름의 전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시니피에
작품등록일 :
2015.03.19 05:37
최근연재일 :
2015.05.15 21:12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7,236
추천수 :
13
글자수 :
171,726

작성
15.05.15 21:04
조회
125
추천
0
글자
10쪽

8. 살 오를 꽃-3

해동국 최북단. 민족의 영산, '흰두루산'. 그곳은 민족의 정기가 샘솟는 못이었으며, 한민족을 수호하는 영험한 기운이 펄떡이는 맥박이었다. 이곳에 구름을 벗삼고 도를 닦던 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천하를 재패한 거대 제국인 천자국은, 수천의 군대와 귀신을 부리는 술객들을 앞세워 도사들을 죽이고 민족의 영산을 빼앗고 말았다. 천자국은 한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영산의 곳곳에 쇠말뚝을 박고, 귀신들을 모시는 신사를 세웠다.




DUMMY

달은 이제 서쪽 하늘을 향해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하람을 태우고 나는 듯이 안개 속을 달려 금세 산 아래에까지 도착했다. 고삐가 묶인 나무를 신경질적으로 툭툭 건드리고 있던 말은 하람이 다가오자,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하람이 말의 뺨에 얼굴을 갖다 대며 말했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이제 그만 돌아가자.”

하람은 나무에서 고삐를 풀고는 호랑이에게 절하며 말했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마을까진 멀지 않으니 저 혼자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호랑이가 말했다.

“아니다. 이왕 나선 거 마을 앞에까지 데려다주마.”

하람과 호랑이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하람은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서도 그들이 걷고 있는 산길이, 예전에 구미호에게 쫓겨 말을 달리던 바로 그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은 가끔씩 투레질을 하며 하람의 등을 떠밀었다. 빨리 마구간에 돌아가 쉬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람은 빨리 걸으려고 발을 놀리다가도, 어느새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 속으로 단미 공주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품속에 손을 넣어 공주가 준 비단주머니를 꺼내었다. 주머니를 바라보자 왠지 기분이 좋아진 하람은 연신 헤죽헤죽 거리기 시작했다.

“아픈 스승 생각은 저편으로 날려간 게냐?”

호랑이가 핀잔을 주었다. 하람은 화들짝 놀라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아, 아닙니다. 그저 이제 구미호를 잡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아, 그래? 그럼, 다행이지. 공주님께서 마침 그런 꽃을 갖고 계셨을 줄이야.”

하람은 호랑이에게 제발 스쳐가는 듯이 들리길 바라며 물었다.

“스승님을 고치고 나면 공주님께 이 주머니를 돌려드려야 할 텐데요.”

“폭포로 와서 날 불러라. 내가 전해드리지.”

“예…….”

호랑이는 다시 앞을 보며 걷기 시작했고, 하람은 말꼬리를 흐렸다. 누런 말은 벌써 세 번째 하람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하람은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경쾌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왜? 네가 직접 돌려드리고 싶은 게냐?”

하람은 뜨악하여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호랑이는 사람으로 친다면 장난기가 담긴 웃음처럼 보일,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하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람은 너무도 당황하여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호랑이가 말했다.

“공주님께선 아마 이 마을에서 며칠간 머무르실 게다. 소도가 있는 마을은 꽤 드물기 때문이지. 비록 선녀들의 시중이 있었다곤 하지만, 먼 길을 날아오시느라 꽤 지치셨을 테고.”

그러자 하람은 마음속에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경쾌해지는 하람의 발걸음을 예리한 신장의 눈이 놓칠 리 없었다.

“다시 공주님을 만날 거라면 어떤 분인지 알아야 그분께 제대로 예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어떠냐? 그분에 대해 들려줄까?”

하람이 얼른 대답했다.

“들려주십시오. 이번에는 절대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호랑이가 말했다.

“단미 공주님은 저승을 다스리시는 대별왕 전하의 막내 따님이시다. 즉, 옥황상제님의 손녀분이 되시지.”

하람은 깜짝 놀랐다. 호랑이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승에는 시왕국이 있어 염라대왕을 비롯한 열 명의 왕께서 죽은 사람의 생전의 착한 일과 죄를 심판하신다. 대별왕께선 그 시왕국을 포함한 광대한 저승의 주인이시지. 그런데 단미 공주님은 저승에서 계시다가 무슨 연유이신지, 이승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승을 여행하시다가 이제, 이곳 해동 반도에까지 오시게 된 것이다.”

“그, 그럼 올해 연세가…….”

호랑이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이란 것은 사람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냐? 온 누리의 만물에겐 각자 받은 이승에서의 시간이 있고, 그것이 지나면 저승에 가 새로운 몸과 수명을 받아 다시 태어나게 되거늘! 그런데 사람들은 나이를 세어가며 그토록 현재의 삶에만 집착하니, 이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느냐?”

“그럼 신들께선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까?”

“그건 아니다. 단지 늙지만 않을 뿐이다. 몸은 생명을 담는 그릇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이 상하면 제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별 수 없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지. 다만, 불멸의 영혼만은 신이든, 사람이든, 짐승이든 상관없이 모두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다.”

“그럼 귀신은 무엇입니까? 왜 죽은 뒤에 이승을 떠도는 겁니까?”

호랑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서 사람이란 어리석다 하는 것이다. 귀신은 이승에서의 삶에서 겪은 억울함이 한이 되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이지. 그러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다음 생이 엄연히 존재하고, 또 그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다. 헌데 모든 생물들 중에 어찌 사람만은 수많은 삶 중 하나일 뿐인 현세의 삶에 그토록 집착하는 건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단 말씀이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들은 어느새 안개 속을 빠져나와 있었다. 문득 멀리서 피리를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람은 그 소리가 하도 오묘하고 부드러워 인간 세상의 소리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서낭목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하람과 호랑이가 서낭목 앞에 다다르니, 한 사내가 돌무덤 위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내는 맨발에 얇은 회색 저고리와 바지만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다가가자, 사내는 피리를 놀리던 손을 멈추고 몸을 튕겨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걸어왔다.

“여어, 산신군웅신장 아닌가!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인가?”

호랑이는 사내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서낭신께서 어쩐 일로 이 시간에 나와 계시는 겁니까?”

서낭신이 피리로 하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소년이 내게 소원을 비는 것이 하도 간곡하여 나도 모르게 기다리게 되었네.”

하람은 그 사내가 서낭신임을 알게 되자,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서낭신이 말했다.

“흠! 그래, 스승이라면 지난번에 봤던 그 얼굴 지저분한 털보를 말하는 것이렷다? 갔던 일은 잘 되었느냐?”

하람이 기쁘게 말했다.

“예! 하늘의 도우심으로 약을 구해 스승님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낭신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거 다행이로구나! 네 치성에 하늘도 감복한 게다. 허면 나는 다시 나무속으로 돌아가 봐도 되겠지? 그럼 조심히 돌아가거라. 산신군웅신장도 수고하게.”

말을 마친 서낭신은 서낭목 앞에 서더니 한 줄기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하람은 서낭목을 향해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랑이가 말했다.

“이쯤 왔으면 이제 너 혼자서도 돌아갈 수 있겠지.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겠다. 어서 가서 스승을 구하여라.”

말을 마친 호랑이는 바로 몸을 돌려 산 속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하람은 호랑이가 사라진 숲 속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드디어 마을 입구까지 다다랐을 때, 하람은 멀리서 횃불 여러 개가 일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가가보니, 촌장 우 노인과 사냥꾼 찬솔을 비롯한 마을 사내들이었다. 찬솔은 하람의 모습을 발견하자 환성을 질렀다. 하람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녀석아! 이 시간이 되기까지 도대체 어딜 싸돌아다니다 온 거야? 걱정했잖아!”

우 노인이 찬솔을 꾸짖으며 말했다.

“찬솔! 도사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하람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요. 편하게 말하셔도 되요. 그런데 무슨 일이예요? 혹시 저를 찾으러 오신 건가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낫이나 곡괭이, 쇠스랑과 같은 농기구들을 들고 있었다. 우 노인은 참으로 다행이라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어린 도사께서 밤이 깊어도 돌아오시지 않기에 걱정이 되어 찾아나섰더랬소. 사람들이 말하기로 찬솔이와 제일 마지막까지 함께 계셨다기에 찾아가 물어보니, 저녁 때 헤어진 뒤로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하였소. 그래서 이렇게 마을 사람들을 모아 찾으러 나온 거요. 그런데 여기 계신 두 신장께서 말씀하시길, 어린 도사께서 구미호를 잡으러 가셨다기에 모두 놀라 되는대로 무기 될 만한 것을 챙겨 마침 나서려던 참이었소.”

그러자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천하대장군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 뭐랬나? 때 되면 올 거라니까! 멍청이들!”

지하여장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누가 누구더러 멍청이래?”

“마누라! 자꾸 끼어들지 마!”

“내가 틀린 말 했수?”

“근데 자꾸 이 사람이!”

“눈 부라리는 거 봐? 잘하면 치겠다!”

장승 부부는 또 다시 서로 고함을 치며 다투기 시작했다. 찬솔은 그들을 깨끗이 무시하며 하람에게 물었다.

“다친 곳은 없니? 구미호를 잡으러 갔다면서.”

우 노인도 말했다.

“큰 도사님조차(촌장은 가리울을 ‘큰 도사’라 불렀다) 구미호에게 큰 상처를 입은 마당에, 어린 도사께선 어떤 계략을 가지셨기에 무사하실 수 있으셨던 게요?”

하람이 쑥스럽게 말했다.

“계략이 아니에요. 구미호는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스승님을 낫게 할 수 있는 약은 구해가지고 왔어요.”

우 노인은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며 말했다.

“아, 그렇소? 거 다행이구려! 그럼 일단 어서 집으로 가십시다! 큰 도사님을 구해야지요.”

“예, 어르신!”

“자, 여보게들! 이렇게 어린 도사께서 무사하시니 우리도 이만 돌아가세! 모두 수고 많았네!”

마을 사람들은 우 노인에게 절을 올리고는 각자 집으로 흩어져 돌아갔다. 찬솔도 우 노인 몰래 하람에게 눈을 찡끗하더니 어둠 속으로 달려가 사라져 버렸다.




나날이 국운이 쇠해가고 있던 해동국. 해동국의 항구도시 '미추홀'에 살던 소년 하람은, 해적들의 습격에 아버지와 얼굴 반쪽을 잃고 대장군 진가람의 저택에서 종으로서 살아간다. 장군의 아들 가천의 관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하람은 새벌의 각설이 가리울을 만나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몸은 왜소하고 얼굴은 흉측하지만, 선골을 타고 나 도사의 자질을 가진 소년, 하람.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그의 일대기가 이어진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구름의 전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8. 살 오를 꽃-4 <1기 연재 종료> 15.05.15 178 0 14쪽
» 8. 살 오를 꽃-3 15.05.15 126 0 10쪽
31 8. 살 오를 꽃-2 15.05.15 124 0 11쪽
30 8. 살 오를 꽃-1 15.05.15 146 0 10쪽
29 7. 여우구슬-4 15.05.15 122 0 10쪽
28 7. 여우구슬-3 15.05.14 168 0 14쪽
27 7. 여우구슬-2 15.05.14 178 0 9쪽
26 7. 여우구슬-1 15.05.14 174 0 13쪽
25 6. 가림새 마을 - 4 15.05.13 123 0 9쪽
24 6. 가림새 마을 - 3 15.05.12 177 0 10쪽
23 6. 가림새 마을 - 2 15.05.12 121 1 13쪽
22 (재업로드) 5. 새벌을 떠나다-3 15.05.12 160 0 12쪽
21 6. 가림새 마을 - 1 15.05.12 138 0 13쪽
20 5. 새벌을 떠나다-4 15.05.06 139 0 10쪽
19 5. 새벌을 떠나다-2 15.04.29 275 0 13쪽
18 5. 새벌을 떠나다-1 15.04.27 252 0 13쪽
17 4. 불꽃의 원기-5 15.04.25 178 0 9쪽
16 4. 불꽃의 원기-4 15.04.21 161 0 14쪽
15 4. 불꽃의 원기-3 15.04.19 235 0 11쪽
14 4. 불꽃의 원기-2 15.04.18 256 0 11쪽
13 4. 불꽃의 원기-1 15.04.14 187 0 10쪽
12 3. 도사, 가리울-3 15.04.11 121 0 15쪽
11 3. 도사, 가리울-2 15.04.09 270 0 11쪽
10 3. 도사, 가리울-1 +2 15.04.06 296 1 11쪽
9 2. 개구멍받이-5 15.04.03 268 1 13쪽
8 2. 개구멍받이-4 +2 15.03.31 278 1 10쪽
7 2. 개구멍받이-3 +2 15.03.28 410 1 13쪽
6 2. 개구멍받이-2 15.03.25 241 0 11쪽
5 2. 개구멍받이-1 15.03.23 318 0 10쪽
4 1. 폭풍의 전조-4 15.03.22 266 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