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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님의 서재입니다.

구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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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작품등록일 :
2015.03.19 05:37
최근연재일 :
2015.05.15 21:1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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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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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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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 불꽃의 원기-1

해동국 최북단. 민족의 영산, '흰두루산'. 그곳은 민족의 정기가 샘솟는 못이었으며, 한민족을 수호하는 영험한 기운이 펄떡이는 맥박이었다. 이곳에 구름을 벗삼고 도를 닦던 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천하를 재패한 거대 제국인 천자국은, 수천의 군대와 귀신을 부리는 술객들을 앞세워 도사들을 죽이고 민족의 영산을 빼앗고 말았다. 천자국은 한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영산의 곳곳에 쇠말뚝을 박고, 귀신들을 모시는 신사를 세웠다.




DUMMY

4. 불꽃의 원기



이튿날,

조반을 마치고, 하람과 마루는 한동안 방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 이제 일하러 가야 한다니깐!” “어허, 하람아. 가만히 좀 있어보라지 않느냐. 뼈대만 이야기 하지 말고 이야기의 살갗이 가진 땀구멍까지 낱낱이 고해바치지 못할까.” 다 듣고 난 마루는 한편으론 잘 되었다고 여기면서도 가슴 속을 쟁여오는 쓸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신촌락을 향해 함께 떠나진 못하겠구나.’ 대장군의 양자로 살면서 겪은 행복한 기억들은 모두 하람과 함께 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게 될 것 같으니?”

“잘 모르겠어. 확실한 건, 어딜 가도 안전하지 않다는 거야.”

마루는 고개를 내저으며 짐짓 하람을 말렸다. 한편으론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침과 동시에 하람의 결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너무 위험해. 언제 누군가로부터 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거야.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나와 함께 가자. 다음 해에는 나도 이곳을 떠날 거야. 그때 아버님께 말씀드려 너를 몸종으로 데리고 갈 거야. 혼자 이곳에 남겨 두지 않을 테니.”

그러나 하람은 단호했다.

“난 지금껏 주는 것도 없이 네게만 의지해왔어. 나약하고 흉측한 병신이라 당연히 네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 했어. 하지만 드디어 내게도 천운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실 분이 나타났어.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칠 순 없잖아.”

마루는 하람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그 변화는 하람의 왜소한 몸을 타오르는 거대한 하나의 불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필요치 않는 하람에 대한 어떤 흐뭇함과 쓸쓸한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마루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는 다시 웃는 낯으로 돌아와 말했다.

“그래, 알았어. 난 네 동무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말리지 않을 거다. 내가 더 도울 건 없어? 먼 길을 떠나려면 노자가 필요할 텐데.”

하람은 몇 번 망설이다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주인어른께도 신세를 많이 졌어. 환찬님께도. 내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이신데, 나는 아직 보답도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어떻게 하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난 이 집안에 매여 있는 몸종이니까.”

“이제 와서 말인데, 네가 이곳에 매여 있는 건 맞지만 엄밀히 말해 이 집안에 증서 같은 걸로 소속되어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사실 난 내가 갈 곳을 어렴풋이 생각해 두었어. 그곳에 미리 기틀을 마련하러 먼저 널 보내 놓겠다는 말로 아버님을 설득시킬 거야.”

“그래 알았어.”

그때, 방문이 열리며 머슴 하나가 들어와 환찬이 찾아왔음을 알렸다. 하람은 마루에게 작별을 하고는 집안일을 도우러 가 버렸다. 마루는 한숨을 쉬며 한쪽에 세워 둔 연습용 목검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환찬은 청색의 저고리와 바지 위에 반비(소매가 짧은 저고리.)를 덧 걸치고 머리에는 수탉의 꼬리 깃털을 꽂은 조우관을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련님, 무술을 수련하실 시간입니다. 준비는 되셨는지요?”

그러자 마루가 마주 절하며 말했다.

“예, 사부님.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이 목검을 부딪치며 대련에 임한지 몇 합이나 지났을까, 환찬이 마루의 목 가까이에 목검을 들이대며 말했다.

“검 끝이 예리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십니다.”

마루는 땀을 비 오듯 쏟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저 조금 피곤하여 그런 것뿐입니다. 사부님께선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껏 공격해 주십시오.”

그러나 환찬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릿속 잡념이 검을 내지르는 팔에까지 흘러들어 검 끝을 자꾸 흔들리게 하고 있는데, 더 해 보아야 무엇 하겠습니까? 도련님께선 잠시 쉬고 계십시오. 소장은 잠깐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환찬은 목검을 곁에 세워 두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마루는 대청에 앉아 땀을 식히며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가슴 속이 뻥 뚫려 바람이 새어드는 듯, 시리고 아려오기 시작했다.

‘여리구나, 마루여. 근심 따위에 연연하여 마음을 다잡지 못하다니.’

마루는 일어나 별채의 뜰을 거닐었다. 그러다 높이 솟은 감나무에 이르렀다. 감나무의 겨울눈은 마치 피부에 돋아난 여드름처럼 검붉게 익어 있었다. 마루는 어릴 적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해마다 늦봄이 되어 간밤에 비라도 온 날엔, 다음 날 어김없이 감꽃이 뜰에 떨어져 있었다. 마치 잘 구워낸 과자처럼 노랗게 말려 올라간 감꽃을 씹으면, 처음엔 떫었지만 갈수록 달게 느껴졌다. 가을에는 탐스러운 주황색 열매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렸다. 하람과 마루는 어린 시절부터 늦봄에는 감꽃을 주워와 씹고, 가을에는 열매를 따 먹으며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뜰의 곳곳에 시선을 줄 때마다 추억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마루의 눈앞에 그리운 광경을 펼쳐놓았다. 마루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후, 환찬이 돌아왔다. 환찬은 양 손에 무언가를 쥐고 돌아왔다. 환찬을 발견하자 마루는 깜짝 놀라 상념에서 깨어났다. 환찬이 가져온 것은 진검 한 자루였다.

“도련님. 지금 처소에 가셔서, 장군님으로부터 받으신 명진국의 검을 꺼내 오십시오.”

“사부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오늘은 진검으로 대련을 하도록 합니다.”

마루는 식은땀이 흘렀다. 대나마 환찬, 특히 해동반도를 어지럽히는 온갖 도적들과의 싸움마다 그의 무예는 일당백으로 마치 태산을 쪼개는 것 같았다 했다. 해동이 자랑하는 가장 날랜 장수 중 하나인 환찬과 진검으로 승부를 해야 하다니.

“어쩌자고 이러시는 것입니까? 제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입니까?”

환찬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마루를 쏘아보며 엄하게 말했다.

“좋은 검사는 좋은 검을 알아보는 법입니다. 도련님께선 좋은 검을 알아보실 수 있습니까? 검의 몸은 질기고, 검의 날은 잘 갈려 있어야 하며, 볕에 비추면 찬란하게 빛나고, 티 없이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실력 좋은 대장장이가 만든 검이라도 갈고 닦음을 게을리 한다면, 그 빛을 잃고 녹이 슬고 결국 못쓰게 되고 마는 것이죠.”

마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환찬은 말을 이었다.

“마찬가지로, 무예의 목적은 사람을 해하는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해동국의 전통 무예는 그렇습니다. 무예의 목적은 자신역시 한 자루의 검으로 여겨, 스스로를 갈고 닦아 심신을 수련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도련님은 지금 잡념에 사로잡혀 동작이 흐트러지고 힘을 잃었으니, 평소처럼 해보았자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여, 소장은 사부로서 진검을 쓰기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설명이 충분합니까?”

환찬은 검을 뽑아들었다. 날 길이가 다섯 자요, 자루는 두 자 다섯 치(1치-3센티미터)에 이르렀다. 마루는 검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자신을 베어오는 듯, 뒷목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 어서 검을 가져 오십시오. 소장은 이미 도령께서 새벌의 대장장이에게 맡겨 검을 잘 벼려 두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 마루는 환찬의 결심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야 말았다. 마루는 처소로 돌아가 보검을 꺼내왔다. 검의 자루와 검집은 금동을 녹여 만든 용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마루는 검을 뽑았다. 진검은 확실히 둔탁하기만 했던 목검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날이 세워져 있는 물건이 목적을 가지고 상대방을 겨누게 되자, 황망했던 신경이 하나로 좁혀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마루는 비로소 환찬의 말에 숨은 뜻을 깨닫고는 호흡을 고르며 땅에 발을 힘 있게 내딛어 보았다. 곧 그의 몸과 정신은 검과 하나가 되어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냈다. 이미 그를 늪처럼 옭아매고 있던 상념들은 모두 사라진 채였다.

마루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본 환찬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먼저 들어오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먼저 들어갈까요?”


가리울은 바위 위에 정좌한 채 하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람은 가리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스승님!”

하람이 외치자 가리울은 껄껄거리며 말했다.

“야야, 하람아. 어색하다. 일어나라. 나도 처음 제자를 받는 거라 스승 소리 듣는 게 참 어색하다. 손에 든 그것은 무어냐? 이번에도 먹을 것을 싸 온 게냐?”

하람은 바가지 두 개를 맞붙이고 무명 보자기로 단단히 싸맨 것을 들고 있었다. 보자기를 열고 바가지를 들어 올리자, 아직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따뜻한 밥 위에 듬뿍 퍼 넣은 고추장과 김치와 나물, 콩자반이 보였다.

“시장하실까봐 부뚜막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허허, 마음이 참 지극하구나. 고맙지만 이제 매번 이러지 않아도 되느니라. 그 옛날 어떤 광인은 석벌이 모아둔 꿀과 메뚜기를 잡아먹고 개구리 알을 마시며 연명했다고 허지. 나도 산 속 생활이 오랜 지라 이미 그런 것들에 익숙하단다.”

하람이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남은 찬이 이것뿐인지라 부족하여 오히려 죄송스럽습니다.”

“걱정할 바가 못 된대두. 아니다, 내가 보여 주마. 하람아, 주위를 돌며 마른 이파리들을 주워오겠느냐?”

“뭐에 쓰시려 하십니까?”

“일단 시키는 대로 해 보아라.”

그러자 하람은 주위를 돌며 누렇게 변해 떨어진 솔잎들과 나뭇잎들을 주웠다. 그동안 가리울은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한 곳에 쌓아놓고 있었다.

“그 정도면 되었다. 이 위에 쌓아놓아라.”

“불을 피우시려 하십니까?”

하람이 시키는 대로 하자, 가리울은 품에서 부싯돌을 꺼내어 불을 붙였다. 불쏘시개가 된 이파리는 빠직거리며 삽시간에 마른가지에 불을 옮겼다. 가리울은 지팡이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는 모닥불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가리울의 오른손에 불꽃이 옮겨 붙었다. “스승님!” 하람은 비명을 지르며 스승을 구하려 했으나 가리울은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나날이 국운이 쇠해가고 있던 해동국. 해동국의 항구도시 '미추홀'에 살던 소년 하람은, 해적들의 습격에 아버지와 얼굴 반쪽을 잃고 대장군 진가람의 저택에서 종으로서 살아간다. 장군의 아들 가천의 관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하람은 새벌의 각설이 가리울을 만나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몸은 왜소하고 얼굴은 흉측하지만, 선골을 타고 나 도사의 자질을 가진 소년, 하람.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그의 일대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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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8. 살 오를 꽃-4 <1기 연재 종료> 15.05.15 178 0 14쪽
32 8. 살 오를 꽃-3 15.05.15 125 0 10쪽
31 8. 살 오를 꽃-2 15.05.15 124 0 11쪽
30 8. 살 오를 꽃-1 15.05.15 146 0 10쪽
29 7. 여우구슬-4 15.05.15 122 0 10쪽
28 7. 여우구슬-3 15.05.14 168 0 14쪽
27 7. 여우구슬-2 15.05.14 178 0 9쪽
26 7. 여우구슬-1 15.05.14 174 0 13쪽
25 6. 가림새 마을 - 4 15.05.13 123 0 9쪽
24 6. 가림새 마을 - 3 15.05.12 177 0 10쪽
23 6. 가림새 마을 - 2 15.05.12 120 1 13쪽
22 (재업로드) 5. 새벌을 떠나다-3 15.05.12 160 0 12쪽
21 6. 가림새 마을 - 1 15.05.12 138 0 13쪽
20 5. 새벌을 떠나다-4 15.05.06 139 0 10쪽
19 5. 새벌을 떠나다-2 15.04.29 274 0 13쪽
18 5. 새벌을 떠나다-1 15.04.27 252 0 13쪽
17 4. 불꽃의 원기-5 15.04.25 177 0 9쪽
16 4. 불꽃의 원기-4 15.04.21 161 0 14쪽
15 4. 불꽃의 원기-3 15.04.19 235 0 11쪽
14 4. 불꽃의 원기-2 15.04.18 256 0 11쪽
» 4. 불꽃의 원기-1 15.04.14 187 0 10쪽
12 3. 도사, 가리울-3 15.04.11 120 0 15쪽
11 3. 도사, 가리울-2 15.04.09 269 0 11쪽
10 3. 도사, 가리울-1 +2 15.04.06 296 1 11쪽
9 2. 개구멍받이-5 15.04.03 267 1 13쪽
8 2. 개구멍받이-4 +2 15.03.31 278 1 10쪽
7 2. 개구멍받이-3 +2 15.03.28 409 1 13쪽
6 2. 개구멍받이-2 15.03.25 241 0 11쪽
5 2. 개구멍받이-1 15.03.23 318 0 10쪽
4 1. 폭풍의 전조-4 15.03.22 266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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