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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님의 서재입니다.

구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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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작품등록일 :
2015.03.19 05:37
최근연재일 :
2015.05.1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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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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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구멍받이-1

해동국 최북단. 민족의 영산, '흰두루산'. 그곳은 민족의 정기가 샘솟는 못이었으며, 한민족을 수호하는 영험한 기운이 펄떡이는 맥박이었다. 이곳에 구름을 벗삼고 도를 닦던 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천하를 재패한 거대 제국인 천자국은, 수천의 군대와 귀신을 부리는 술객들을 앞세워 도사들을 죽이고 민족의 영산을 빼앗고 말았다. 천자국은 한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영산의 곳곳에 쇠말뚝을 박고, 귀신들을 모시는 신사를 세웠다.




DUMMY

2. 개구멍받이


해적들의 습격은 이후로도 계속되었으나, 대규모의 선단이 공격해 오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파괴된 미추홀의 참상은 대장군 진가람에 의해 조정에 상소되었다. 모본왕은 영을 내렸다. “중요한 항구마다 수채를 더 정비하고 군함을 늘려라. 해적들의 함선은 단단하지 못하니 항구마다 대포를 더 비치하라.” 덕분에 해동국의 해안 마을은 이제 해적들의 산발적인 침공정도는 쉽사리 격퇴할 수 있을 정도로 요새화 되었다. 그러나 저잣거리에선 이미 모본왕의 행정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이를 두고 쇠 잃고 외양간 고친다, 허지?” “고치기만 해도 어디여.” “쯧쯧, 우리 나랏님이 어디 백성 위한다고 저러나? 항구엔 외국 선박들도 많단 말여. 항구가 위험해서야, 누가 장사하러 해동의 항구에 오겠는가.” 그러한 수군대는 목소리들도 잠시, 동요하던 민심은 곧 안정되었다. 해동국의 백성들은 이미 침략에 익숙해져 버린 민족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금세 분노하고, 금세 체념했다. 민중이 체념한 나라엔 거짓된 평화가 어렵지 않게 찾아왔다.

미추홀 땅은 더 이상 사람들이 모여 살지 않는 불모지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감히 그곳에 정착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미추홀은 옛 부터 땅이 척박하고 소금기가 많아 농사에는 애초에 적합하지 못한 곳이었다. 게다가 무슨 연유에선지, 당국에서도 무너진 마을을 이전처럼 재건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고로 미추홀은 마을과 항구의 폐허, 불타고 부서진 배들의 뼈대만 남은 채 온전히 버려진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시간은 쏘아진 비수처럼 또 다른 폭풍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한 해가 지났다. 새벌 땅에 다시 한 번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야기는 다시 대장군 진가람의 사저로 돌아간다.


해가 뜨기 무섭게, 대장군 댁 머슴들과 여인들은 분주했다. 장군의 외아들 가천이 올해로 열다섯이 되어 관례를 치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해동국 귀족가의 관례란 더 없이 성대한 것이었다. 한 소년이 자라서 나라를 위한 어엿한 재목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이 잔치엔 돌잔치나 회갑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인원들이 초대되었다. 귀족가의 자제들인 가천의 학당 동무들은 물론이고, 대장군의 오랜 전우들, 혹은 장군과 친분이 있거나 그에게 아첨하려는 조정의 귀족들까지 모두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청지기 우담은 요 며칠 늘 신경을 곤두세웠으며 사소한 일에도 벌컥 화를 내기 일쑤였다. 운영 부인이 특히나 체면치레를 중요시하는 고로, 어제까지만 해도 음식 준비가 소홀하거나 관습에서 어긋났다느니, 관례에 필요한 옷가지가 제대로 지어지지 않았으니 다시 지어 오라는 둥, 머슴과 여종들이 게으르니 형틀을 놓고 매질을 해야겠다는 둥 한 밤중까지 잔소리와 으름장이었다. 때문에 우담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 이튿날 아침엔 눈에 잔뜩 독이 올라 있었다.

아침이었다. 일찍부터 우담은 마당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이제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주위를 바쁘게 오가는 하인들에게 계속해서 불호령을 내렸다. 아무리 봄이 되었다 쳐도 꽃샘추위가 한창인 계절이라 우담의 입에선 허옇게 입김이 뿜어지고 있었다. 흡사 그 답답한 속이 타 들어가는 연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해 뜬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도 꾸물대고 있어? 빨리 일하러 가라고! 어이, 여편네들! 거 아침상 준비하는 몇 명 빼고는 모두 잔치 음식 준비하라고 했잖아, 잊었어? 이제 겨우 닷새 남았다고! 햐, 답답하네. 좀 더 빨리 빨리 움직일 수 없겠나? 그 쌀가마니는 왜 그리로 져 가는 거야? 이봐, 내 말했잖아. 우리가 술 안 빚을 거라고. 그건 떡 쑬 거니까 저기 부뚜막 한 쪽에다 올려 놔. 또 지게 채 놓고 가서 한참 찾지 말고!”

머슴 중 하나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계속 팔다리를 문질렀다. 머슴은 어디 불가라도 없나 마당을 둘러보고 있었다. 청지기는 두 눈을 치켜뜨며 그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장부를 돌돌 말아 뒤통수를 쌔려 버렸다.

“어이. 아니, 자넨 뭔가? 지금 뭐하고 있느냐고?”

벌게진 손에 연신 입김을 불어 녹이고 있던 머슴이 몸을 잔뜩 움츠리며 말했다

“아이고, 청지기님. 아직 추울 때 아닙니까요? 간밤에 몸이 얼어 채 풀리기도 전입니다요!”

“이 사람아! 가뜩이나 해가 짧아 걱정인데 진시(辰時-오전 7시~9시)까지 재워놨더니 아직도 꿈꾸는 소리야? 할일 없으면 나가서 주막에 가서 술이나 받아오게!”

“힉? 아이구 우담 어르신 차라리 내 사지를 능지하십시오. 지금은 주모도 자는 시간입죠. 주모 성질 아시죠? 깨우면 뼈도 못추립니다, 저. 게다가 저는 지금부터 쇠죽 쑤러 가봐야 겠습니다. 일이 하도 바빠 사람들은 굶어도, 말 못하는 짐승들은 먹여야지 않겠습니까요?”

“…….”

하기는 해야 하는 일인데, 저 머슴 놈의 속을 우담이 짐작 못할 리 없었다. 분명 쇠죽 쑤는 곳이 따뜻하여 그곳에 처박혀 몸을 녹이려는 것이다. 머슴은 손을 비비며 더욱 능글맞게 웃었다. 그 꼴이 마치 쇠죽 냄새에 끌려드는 쇠파리 같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신지요? 그럼 저는 이만 일하러 가겠습니다요.”

말이 막히자 우담은 흑건 밑으로 손을 쑤셔 넣어 거칠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자 저만치 걸어가던 머슴은 그 모습을 돌아보고는 문득 우담이 가여웠는지 돌아와 말했다.

“하오면 하람이 녀석에게 대신 다녀오라 이르겠습니다요. 얼마나 받아오라 이를까요?”

그러자 우담은 안심하며 장부를 펼쳐 확인했다. 이내 우담은 기세 좋게 말했다.

“미리 받아놓은 게 스무 병에 앞으로 닷새 남았으니, 하루에 두어 병씩만 받아오면 될 듯하네. 삼베 한 필이면 충분하겠지! 언년이 어멈한테 가서 받아 가거라.”

청지기는 장부에다 뭔가를 휘적휘적 써 찢어서 머슴을 주었다. 그러자 머슴은 청지기에게 꾸벅 절을 하고는 물러나 휘적휘적 멀어져 갔다.

그때, 갑자기 대문간이 어수선해지며 아낙들의 비명소리가 요란했다. 청지기는 무슨 사단이 났기에 새벽 댓바람부터 비명인가 싶어 급히 달렸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앞에선 아낙네들이 홍두깨를 쥐고 모여 있었다. 아낙네들 앞에는 웬 땟국이 좔좔 흐르는 각설이 하나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분탕질을 벌이고 있었다.

“야, 이 인정 없는 연놈들아! 타령을 들었으면 마땅히 밥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니냐! 내 밥통이 쌀 구경 못한 지가 오래였느니라. 봄나물에 설익은 김치, 참기름에다 밥 버무려 내 놓아라! 히히, 거기다. 간간한 코다리라도 하나 조려 내 오거라.”

그러자 한 아낙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윽박질렀다.

“뭐, 코다리? 예가 수라간인 줄 아느냐?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알았어? 도대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러는 거냐?”

“대장군 진가람의 집이 아니더냐? 히히, 새벌 제일가는 명문 댁이라 해서 찾아왔더니, 왜 이리도 인심이 각박한 게냐? 앙?”

그러자 다른 아낙이 홍두깨로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아, 글쎄 줄게 없다고! 왜 밥 때도 되기 전에 미리 와서 지랄이냐. 느네 각설이들은 상도란 것도 없느냐?”

그러나 각설이는 막무가내였다.

“어어? 와, 이년 봐라 이거. 팔뚝이 장정만한 것이 쇠 한 마리 맨손으로 잡겠구나. 내 코가 개코야. 누굴 속이려 그려? 응? 요 며칠 이 집 도련님 관례 준비로 잔치 음식 준비가 한창이잖어? 뭐라도 만들어 놓은 게 뭐라도 있을 거 아닌고?”

“있어도 네놈한테 줄 건 없어! 가! 안가? 머슴들을 부를 테다!”

그러자 각설이는 흥하고 콧방귀를 한번 뀌더니 아예 그 자리에 대자로 드러누워 버렸다. 먹을 것을 내놓을 때까지 비키지 못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아낙들은 욕을 하건, 분통을 터뜨리건 말건, 각설이는 아예 코까지 골며 자는 시늉을 했다. 청지기가 달려와 말했다.

“아니, 마님께서 아시면 또 어쩌려고 아침부터 소란이야? 그깟 음식 얼른 줘 버리고 빨리 쫓아내!”

아낙들 중 가장 젊은 여인이 킬킬거리며 거지의 바가지를 가지고 부뚜막에 들어갔다. 그녀는 막 지은 밥 위에 김치와 나물, 고추장에 들기름까지 끼얹어 거지에게 내 주었다. 각설이는 냉큼 일어나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키야, 탄성을 질렀다. “이거 참 오지게 구수허니, 침이 절로 고이는 구나. 오늘 제대로 녹슨 위장에다 기름칠 좀 해 보겠구나!” 각설이는 모두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아이고, 여러분. 복 받으실 것입니다요! 그럼 장군 댁 도련님의 관례를 경하 드리는 의미에서, 소인이 또 한 번 한 곡조 뽑아 올리겠습니다요.”

청지기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일 없어, 이놈아! 밥 받았으면 냉큼 꺼지지 못하겠어?”

“허허, 우담 어르신. 어르신 얼굴에 화기가 어렸으니, 마음에 골병이 잔뜩 드셨나 봅니다. 자, 내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새벌 제일가는 각설이, 가리울이올시다! 일단 이놈의 타령 한 곡조를 들으면, 인삼 먹인 수소처럼 그냥, 정력이 뻗쳐 불지요. 흠, 흠.”

아낙들이 깔깔거리며 웃자, 청지기는 귀까지 벌게져 썩은 기와가 들썩일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정녕 잡아다 주리를 틀어주랴?”

“아이고, 예예!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갑니다!”

각설이는 바가지를 안고 문 밖으로 내빼었다. 우담은 더욱 골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나날이 국운이 쇠해가고 있던 해동국. 해동국의 항구도시 '미추홀'에 살던 소년 하람은, 해적들의 습격에 아버지와 얼굴 반쪽을 잃고 대장군 진가람의 저택에서 종으로서 살아간다. 장군의 아들 가천의 관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하람은 새벌의 각설이 가리울을 만나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몸은 왜소하고 얼굴은 흉측하지만, 선골을 타고 나 도사의 자질을 가진 소년, 하람.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그의 일대기가 이어진다.


작가의말

옛날 우리 선조들은 금속으로 동전을 만들어 화폐로 쓰기도 했지만, 이곳에 나타난 것처럼 삼베나 쌀을 교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저 문장은, 작금의 대한민국의 시사를 지켜볼 때 느껴지는 제 심정입니다.

“민중이 체념한 나라엔 거짓된 평화가 어렵지 않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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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8. 살 오를 꽃-4 <1기 연재 종료> 15.05.15 179 0 14쪽
32 8. 살 오를 꽃-3 15.05.15 126 0 10쪽
31 8. 살 오를 꽃-2 15.05.15 124 0 11쪽
30 8. 살 오를 꽃-1 15.05.15 147 0 10쪽
29 7. 여우구슬-4 15.05.15 122 0 10쪽
28 7. 여우구슬-3 15.05.14 168 0 14쪽
27 7. 여우구슬-2 15.05.14 178 0 9쪽
26 7. 여우구슬-1 15.05.14 174 0 13쪽
25 6. 가림새 마을 - 4 15.05.13 124 0 9쪽
24 6. 가림새 마을 - 3 15.05.12 177 0 10쪽
23 6. 가림새 마을 - 2 15.05.12 121 1 13쪽
22 (재업로드) 5. 새벌을 떠나다-3 15.05.12 160 0 12쪽
21 6. 가림새 마을 - 1 15.05.12 138 0 13쪽
20 5. 새벌을 떠나다-4 15.05.06 140 0 10쪽
19 5. 새벌을 떠나다-2 15.04.29 275 0 13쪽
18 5. 새벌을 떠나다-1 15.04.27 252 0 13쪽
17 4. 불꽃의 원기-5 15.04.25 17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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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4. 불꽃의 원기-2 15.04.18 257 0 11쪽
13 4. 불꽃의 원기-1 15.04.14 187 0 10쪽
12 3. 도사, 가리울-3 15.04.11 121 0 15쪽
11 3. 도사, 가리울-2 15.04.09 270 0 11쪽
10 3. 도사, 가리울-1 +2 15.04.06 296 1 11쪽
9 2. 개구멍받이-5 15.04.03 268 1 13쪽
8 2. 개구멍받이-4 +2 15.03.31 278 1 10쪽
7 2. 개구멍받이-3 +2 15.03.28 410 1 13쪽
6 2. 개구멍받이-2 15.03.25 241 0 11쪽
» 2. 개구멍받이-1 15.03.23 319 0 10쪽
4 1. 폭풍의 전조-4 15.03.22 26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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