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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님의 서재입니다.

구름의 전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시니피에
작품등록일 :
2015.03.19 05:37
최근연재일 :
2015.05.1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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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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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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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우구슬-2

해동국 최북단. 민족의 영산, '흰두루산'. 그곳은 민족의 정기가 샘솟는 못이었으며, 한민족을 수호하는 영험한 기운이 펄떡이는 맥박이었다. 이곳에 구름을 벗삼고 도를 닦던 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천하를 재패한 거대 제국인 천자국은, 수천의 군대와 귀신을 부리는 술객들을 앞세워 도사들을 죽이고 민족의 영산을 빼앗고 말았다. 천자국은 한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영산의 곳곳에 쇠말뚝을 박고, 귀신들을 모시는 신사를 세웠다.




DUMMY

잠시 잊고 있었던 스승이 생각나자, 하람은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더욱이 천군과 신녀들 앞에서 도술 자랑이나 하려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그는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럽고 한심스럽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하람은 속으로 무수히 자책하며 말했다.

“실은 스승님께서 지금 사경을 헤매고 계세요. 보통 사람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 때문이에요.”

수련은 하람 쪽으로 몸을 다가들며 부드럽게 물었다.

“무엇으로 인한 상처인가요?”

“……구미호요. 구미호한테 당하셨어요. 그놈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스승님의 가슴을 할퀴었어요. 벌써 이레가 지났는데 아직도 피가 멈추질 않아요! 상처는 더 심해져서 눈을 뜨기가 괴로울 지경이에요…….”

하람은 고개를 푹 숙이고 울먹이며 말했다.

수련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하람을 한동안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구미호는 천 년 동안 도를 닦은 여우가 마침내 능력을 얻은 영물이에요. 사람처럼 영물들도 선함과 악함을 가지고 있는데, 선한 구미호는 공덕을 쌓아 신선이 되거나 사람과 함께 살며 진짜 사람으로 변하기도 해요. 그러나 악한 구미호는 사람과 가축의 생명력을 빼앗아,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 바쁘죠. 사람을 해치는 것은 악한 구미호로, 그냥 할퀸 정도라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게 마련이에요.”

“하지만 스승님은……”

“끝까지 들어봐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고 더 심해지기만 한다면, 아마도 상처의 피와 살점으로 저주를 걸었기 때문 일거에요.”

하람은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저주…….”

“그래요. 분명 그분의 상처에는 저주가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낫지 않고 계속해서 썩어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거지요.”

마지막 희망이 무너져버리자 하람은 비 오듯이 눈물을 쏟으며 호소했다.

“천군님! 아아, 천군님! 스승님께서 돌아가시면 저는…… 전 어쩌죠? 전 어쩌면 좋아요? 무슨 짓이든지 할게요, 천군님! 살려주세요! 천군님 제발, 제발 저희 스승님 좀 살려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하람은 무릎을 꿇으며 목을 놓아 통곡했다.

잠시 하람을 바라보던 수련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천천히 하람의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하람의 몸이 진정되며 울음이 차차 가라앉았다. 수련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하람의 뺨을 문질러 눈물을 닦아 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자, 그만. 진정해요. 먼저 하늘의 뜻을 물어야겠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수련은 신녀들을 시켜 금으로 만든 대야를 가져오게 했다. 신녀들이 대야를 가져오자 수련은 품속에서 조롱박으로 만든 병 하나를 꺼내어 안에 든 것을 대야에 쏟았다. 금대야 안에는 거울처럼 투명한 물이 넘실거렸다.

“머리카락 한 올만 뽑아주겠어요?”

하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머리카락을 몇 가닥 잡아 뜯어 수련에게 건네주었다. 수련은 우아한 손놀림으로 하람의 머리카락을 집어 금대야에 넣고 잘 저었다. 그러자 대야의 물이 은을 녹인 것처럼 빛나며 수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수련은 고개를 숙여 금대야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한참 후, 수련은 두어 번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금대야를 한쪽으로 치우고 하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내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하셔야해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위험한 일을 해야 해요. 하람님은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하실 수 있나요?”

하람이 고개를 세차게 주억거리며 말했다.

“스승님을 살릴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버리겠어요!”

“그 마음이 정말 지극하네요! 옥제께서도 그 정성에 감동하실 거예요. 스승의 상처를 낫게 하자면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이에요. 구미호에게는 생명의 기운을 모으는 구슬이 있어요. 그것을 여우구슬이라고 해요. 사람의 생명력을 빼앗아 구슬에 모으는 것이죠. 그것을 가져와 가루 내어 상처에 바르고 물에 타 마시게만 한다면, 스승님의 상처는 씻은 듯이 나을 거예요.”

“어디서 여우구슬을 얻을 수 있죠?”

“보통은 구미호가 지니고 있답니다. 아니면 삼켜서 몸속에 간직하고 있지요. 다른 장소에 숨기거나 누군가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지요.”

하람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구미호를 잡아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수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던 거예요. 구미호를 잡지 않더라도 여우구슬을 몰래 훔쳐낼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 구슬이 없어지면 구미호의 천년 내공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간단히 내놓으려 하진 않을 거예요.”

하람이 절망하며 말했다.

“오, 천군님! 전 할 수 없어요! 스승님께서도 그렇게 당하고 마셨는데, 저 혼자서 어떻게 구미호를 상대할 수 있겠어요?”

수련은 하람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자, 용기를 내세요. 할 수 있어요. 믿음을 가지고 하늘에 자신의 운을 맡기도록 하세요. 차 한 잔 더 드세요. 차를 마시고 나시면, 한 가지 방도를 일러드리겠어요.”

하람이 마지못해 차를 마시고나자, 수련이 말했다.

“구미호가 비록 몸속에 여우구슬을 보관하고 있더라도 딱 한 번 사람의 생명력을 빼앗을 때만큼은 구슬을 꺼내야 하지요. 이때 입안에서 여우구슬을 굴리며 사람의 입을 통해 생명력을 빨아들인답니다. 이 기회를 잘 노리면 구슬을 훔쳐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훔쳐낸 다해도 바로 붙잡히고 말거예요!”

“다른 방법은 없어요. 하람님, 믿음을 가져요. 신들께서 반드시 하람님을 지켜주실 겁니다. 용기를 내요.”

하람은 온몸이 싸늘하게 차가워지며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서 머리를 산발한 채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내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구미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는 공포로 몸을 벌벌 떨었지만, 곧 구미호의 모습에 죽어가는 가리울의 모습이 겹쳐지며 하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다잡게 만들었다. 하람은 가까스로 두 주먹을 힘 있게 말아 쥐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잦아들었다.

“어디가면 구미호를 찾을 수 있죠?”

“구미호는 보름달이 뜨는 밤에 식욕이 가장 왕성해 진답니다. 달의 기운을 받아 구미호의 몸 전체에서 요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죠. 그때쯤이라면 아마 하람님께서도 그 특유의 기운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하람은 손가락으로 날짜를 헤아려보더니 짓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앞으로 엿새 후에…….”

수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람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엿새 후에 날이 어두워지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마을 밖으로 나가서 발이 이끄는 대로 가도록 하세요. 그러시면 하람님께서는 원하시는 바를 이루실 수 있을 겁니다.”

하람은 다시 신녀의 인도를 받아 쪽배에 몸을 실었다. 수련은 모든 신녀들과 함께 서서 하람의 뒷모습을 전송했다. 수련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람은 내심, 하늘의 뜻을 알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무당들에겐 늘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하람의 경우엔 천군을 만나기 전이나 만난 후에나 변함없이 오직 두려움과 걱정, 초조함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람이 꾸벅 절을 하며 작별 인사를 올리자, 수련은 우아하게 답례하며 말했다.

“걱정 말고 다녀와요. 기다리고 있겠어요.”


다음날 아침 묘시(卯時 오전 5-7시)가 되자, 하람은 혼자서 산에 올라 감악산 폭포를 찾아갔다. 보름까지는 이제 겨우 닷새를 남겨두고 있었다. 구미호와 맞서기 위해서, 하람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은 기간 아침마다 산에 올라 수련을 하는 것뿐이었다. 산을 오르는 하람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가리울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스승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람은 눈앞이 흐려지고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폭포에 도달하자, 하람은 폭포수 아래에서 몸을 씻으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데 더욱 공을 들였다. 옷을 다시 입은 뒤, 하람은 바위에 정좌한 채 눈을 지그시 감고 폭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곧 하람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떨림은 손발까지 전해지며 마음이 뒤숭숭하고 안정되지 못해, 결국 하람은 눈을 번쩍 뜨고야 말았다.

가리울의 모습은 하람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떠돌며 마치 갈빗대 사이로 가시나무를 찔러 넣은 것처럼 가슴 저리게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순식간에 독사와도 같은 눈빛으로 쏘아보는 구미호로 변해, 목을 조르듯 하람의 숨통을 죄어드는 것이었다. 스승을 구하고 싶다는 소망과, 구미호에 대한 두려움이 번갈아가며 하람을 괴롭혔다. 그러니 폭포 소리나 산새들의 울음소리 따위가 귀에 들려올 리 없었다.

하람은 바지자락을 틀어쥐며 울기 시작했다.

“스승님……. 이 못난 제자는 어찌해야 합니까!”




나날이 국운이 쇠해가고 있던 해동국. 해동국의 항구도시 '미추홀'에 살던 소년 하람은, 해적들의 습격에 아버지와 얼굴 반쪽을 잃고 대장군 진가람의 저택에서 종으로서 살아간다. 장군의 아들 가천의 관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하람은 새벌의 각설이 가리울을 만나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몸은 왜소하고 얼굴은 흉측하지만, 선골을 타고 나 도사의 자질을 가진 소년, 하람.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그의 일대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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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8. 살 오를 꽃-4 <1기 연재 종료> 15.05.15 17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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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8. 살 오를 꽃-2 15.05.15 124 0 11쪽
30 8. 살 오를 꽃-1 15.05.15 147 0 10쪽
29 7. 여우구슬-4 15.05.15 122 0 10쪽
28 7. 여우구슬-3 15.05.14 168 0 14쪽
» 7. 여우구슬-2 15.05.14 179 0 9쪽
26 7. 여우구슬-1 15.05.14 174 0 13쪽
25 6. 가림새 마을 - 4 15.05.13 124 0 9쪽
24 6. 가림새 마을 - 3 15.05.12 177 0 10쪽
23 6. 가림새 마을 - 2 15.05.12 121 1 13쪽
22 (재업로드) 5. 새벌을 떠나다-3 15.05.12 160 0 12쪽
21 6. 가림새 마을 - 1 15.05.12 138 0 13쪽
20 5. 새벌을 떠나다-4 15.05.06 140 0 10쪽
19 5. 새벌을 떠나다-2 15.04.29 275 0 13쪽
18 5. 새벌을 떠나다-1 15.04.27 25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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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4. 불꽃의 원기-2 15.04.18 257 0 11쪽
13 4. 불꽃의 원기-1 15.04.14 187 0 10쪽
12 3. 도사, 가리울-3 15.04.11 121 0 15쪽
11 3. 도사, 가리울-2 15.04.09 27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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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 개구멍받이-4 +2 15.03.31 278 1 10쪽
7 2. 개구멍받이-3 +2 15.03.28 41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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