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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님의 서재입니다.

구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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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작품등록일 :
2015.03.19 05:37
최근연재일 :
2015.05.1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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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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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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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살 오를 꽃-2

해동국 최북단. 민족의 영산, '흰두루산'. 그곳은 민족의 정기가 샘솟는 못이었으며, 한민족을 수호하는 영험한 기운이 펄떡이는 맥박이었다. 이곳에 구름을 벗삼고 도를 닦던 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천하를 재패한 거대 제국인 천자국은, 수천의 군대와 귀신을 부리는 술객들을 앞세워 도사들을 죽이고 민족의 영산을 빼앗고 말았다. 천자국은 한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영산의 곳곳에 쇠말뚝을 박고, 귀신들을 모시는 신사를 세웠다.




DUMMY

정신을 차린 여인들이 다시 하람을 쫓아 바람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여인들이 바로 뒤까지 쫓아오자, 하람은 비명을 지르며 숲속을 향해 외쳤다.

“신장님! 어디계세요! 쫓기고 있어요! 저 좀 살려주세요!”

그러자 마치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호랑이가 땅을 박차며 숲속에서부터 달려 나왔다. 그런데 호랑이의 등 위에는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 한 명이 붉은 도포를 휘날리며 타고 있었다. 하람의 앞에 가까이오자, 노인은 호랑이의 등에서 내리며 하람을 향해 꾸짖듯이 말했다.

“이놈! 네 어찌 감히 신성한 산을 어지럽히는 게냐!”

하람이 아연해져 몸 둘 바를 모르자, 호랑이가 다가와 하람에게 말했다.

“감악산 산신령님이시다. 절을 올리어라.”

그러자 하람은 황망히 산신령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산신령님, 저는 하람이라고 합니다. 스승의 약을 구하기 위해 구미호를 쫓던 중, 드디어 요괴들을 만나게 되어 구슬을 훔쳐 달아나던 중에 요괴들로부터 쫓김을 받아 도움을 청하느라 소란스럽게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산신령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요괴라니? 대체 요괴가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자 하람은 손을 들어 막 그들에게 다가온 두 여인을 가리켰다. 산신령이 여인들을 보며 작게 탄식을 하더니, 곧 그들에게 다가가 절을 하며 말했다.

“선녀님들께 폐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오.”

하람은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고 아연해져 또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호랑이도 하람을 향해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선녀들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절을 했다.

“감악산 산신령님을 모시는 산신군웅신장입니다. 선녀님들께 인사를 올립니다.”

그러자 선녀들도 우아하게 마주 절을 하며 말했다.

“미천한 선녀들이 산신과 신장님을 뵙습니다.”

산신령이 물었다.

“선녀님들께서는 어찌 이 밤중에 험준한 산길을 배회하시게 된 것입니까?”

그러자 한 선녀가 말했다.

“저희들은 대별왕 전하의 막내 공주이신 단미 공주님을 모시는 선녀들입니다. 공주님께서 이승을 여행하시다 잠시 쉬러 서천 극락에 들르게 되셨는데, 그때 대별왕 전하의 명으로 저희가 공주님의 이승으로 돌아가는 여행길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공주님께서 이번엔 해동 반도로 가시겠다고 하신 즉, 말씀을 받들어 이리로 모셔 그간의 피로를 풀고자 목욕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공주님의 목욕하시는 모습을 훔쳐보다 들켜, 공주님의 옷과 주머니를 훔쳐 달아나기에, 뒤를 쫓아오다 그만 산을 소란케 한 것입니다.”

다른 선녀가 말했다.

“자, 두 분 신께서 오셨으니 이제 더는 도망가지 못하겠지. 어서 공주님의 비단주머니를 내놓아라!”

하람은 손을 부르르 떨며 품속에서 비단주머니를 꺼냈다.

“그, 그럼…… 이건 여우구슬이 아니란 말입니까?”

산신령이 하람을 꾸짖으며 말했다.

“어허!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게냐! 어서 선녀님들께 물건을 돌려드리고 용서를 빌지 못하겠느냐?”

그때 사뿐거리는 발소리가 들리며 두 선녀 사이로 공주가 천천히 걸어왔다. 선녀들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단미 공주는 하람이 떨어뜨리고 갔던 옷과 목도리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옷 자체로도 아름다운 것이었으나, 공주가 입으니 마치 흰 나래와도 같이 하늘거리며 사방에 빛을 흩뿌리는 듯했다. 산신령과 신장이 얼른 걸어와 공주에게 절을 올렸다. 단미 공주도 그들에게 마주 절했다.

단미 공주는 하람에게 다가와 몸을 숙이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 주머니, 이제 그만 돌려주겠어요?”

마치 옥으로 만든 악기가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하람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를 내밀었다. 단미 공주는 방긋 웃으며 하람이 내민 주머니를 받아 품속에 넣었다.

선녀 중 한 명이 공주에게 다가와 말했다.

“공주 마마! 저 자는 사람으로서 감히 마마의 벗은 몸을 엿보았습니다. 게다가 마마의 옷가지와 주머니까지 훔쳐 달아났습니다. 이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죄입니다.”

다른 선녀도 공주에게 다가와 말했다.

“반드시 처단해야 합니다. 마마, 분부만 내리시옵소서!”

그러자 공주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선녀들에게 말했다.

“그 말뜻은, 이 아이를 헤쳐야 한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저승사자들을 시켜 시왕국으로 끌 고가야 합니다.”

“왜 그래야하죠?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고, 저는 잃은 게 없는 걸요. 게다가 산을 소란케하고 신들을 깨웠으니 어쩌면 잘못은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닌가요?”

선녀들과 산신령, 호랑이 신장, 심지어 하람까지도 눈을 둥그렇게 뜨며 단미 공주를 바라보았다.

단미 공주가 덧붙였다.

“두 선녀님들의 능력 정도면 아이를 충분히 붙잡을 수 있지 않았나요?”

“저 아이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선녀도 말했다.

“저 아이는 이상한 힘을 쓸 수 있습니다! 마치 신선들처럼…… 불을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호랑이가 단미 공주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소장이 감히 아뢰옵니다. 이 아이는 도술을 사용하는 도사로, 스승과 함께 가림새 마을에서 살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분 선녀님을 몰라 뵙고 실례를 저지른 것입니다.”

호랑이는 하람을 대신하여 두 선녀와 단미 공주에게 하람의 사연을 낱낱이 말했다. 그리고 한참 넋을 놓고 있는 하람을 툭툭 치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해명을 하라 일렀다. 그러자 하람은 어물어물거리는 목소리로 안개 때문에 길을 잃었던 일, 범상치 않은 기운을 찾아 헤맨 일, 마침내 선녀들과 공주를 발견하고 구미호로 여긴 일, 그리고 여우구슬을 얻기 위해 단미 공주의 옷가지와 비단주머니를 훔친 일 등을 말했다.

다 듣고 난 단미 공주는 감탄하며 말했다.

“어린 나이에 스승을 살리려고 목숨까지 내걸다니, 참으로 용감하군요! 두 선녀님들도 이제 그만 이 아이를 용서해주어요. 일부로 한 짓이 아니잖아요?”

“예, 마마.”

두 선녀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단미 공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하람을 부드럽게 내려다보았다. 하람은 차마 공주의 얼굴을 다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흉터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창피하게 생각되었다. 단미 공주는 미소를 지으며 하람의 손을 잡아 자리에서 일으켰다. 하람은 손에 전해져 오는 따스한 온기와 부드러운 살결에,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문득 단미 공주가 품속에서 비단주머니를 꺼내었다.

“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겠어요?”

하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녀들은 공주의 물음에 말도 없이 고개만 가로젓는 하람의 태도에 따지려 들었으나, 단미 공주는 선녀들을 제지했다. 공주는 비단주머니를 열어 안에 든 것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하람을 안개 속에서 사로잡았던 특유의 향기가 공중에 강렬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공주의 손에 쥐어진 것은 다섯 개의 금색 꽃잎이 붙어있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꽃 한 송이였다.

산신령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것은! 서천 꽃밭에서 자라는 꽃이 아닙니까?”

단미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네, 맞아요. 이 꽃의 이름은 ‘살 오를 꽃’이예요. 서천 꽃밭에는 진귀한 꽃이 많은데 이 꽃은 다섯 가지 환생꽃 중 하나예요. 이 꽃을 먹이면 어떤 상처라도 당장 나을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살조차 되살릴 수 있죠.”

하람은 꽃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단미 공주는 그 모습을 보며 방긋 웃더니, 다시 꽃을 비단주머니에 집어넣고 하람에게 주머니째 내밀었다.

“이 꽃을 줄게요. 가서 스승을 살리도록 해요.”

그러자 선녀들은 깜짝 놀라 단미 공주에게 달려가 말했다.

“공주 마마! 아니 되옵니다! 그것은 고불 전하께서 공주님께 드린 정표가 아닙니까?”

“맞사옵니다! 그 소중한 것을 어찌 한낱 사람에게…….”

단미 공주는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리 귀중해도 꽃에 불과해요. 어찌, 사람의 생명보다 귀할 수 있나요?”

“하오나…….”

“그럼 제가 하나 물어볼게요. 만일 이 말에 대답하실 수 있으면 이 꽃을 제가 다시 간직하도록 하겠어요.”

선녀들은 영문을 몰라 공주를 올려다보았고, 산신령과 호랑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공주를 바라보았다. 하람은 그저 초조하기만 할 뿐이었다.

공주가 말했다.

“이 꽃은 고불님께서 제게 주신 것이니 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꽃을 꺾은 것은 고불님이시니 고불님의 것이라 할 수도 있지요. 그럼 이 꽃은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선녀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단미 공주는 잠시 선녀들을 바라보더니, 곧 비단주머니를 하람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일 거예요. 그대의 지극정성에 하늘도 감동하셨을 테죠.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가져가도록 해요. 하지만 잊지 말아요, 행운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란 걸.”

하람은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단미 공주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려봤자 소용없다’라는 말이에요.”

공주의 그 말은 굉장히 소박하게 들렸고, 하람은 비로소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단미 공주도 마주 웃어 주었다. 선녀들은 어지럽다는 표정을 하며 중얼거렸다.

“아! 공주님께서 인간 세상에 너무 오래 계셨어…….”

공주는 서천 극락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수행해온 두 선녀들을 하늘나라로 되돌려 보냈다. 선녀들은 공주를 향해 절을 올리고는, 번쩍거리는 날개옷을 휘날리며 하늘로 올라갔다. 하람은 그 우아한 모습을 바라보며 잠깐이나마 요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산신령이 공주에게 말했다.

“공주께서 저희 산으로 왕림하시어 이렇게나마 뵐 수 있는 행운을 얻었으니, 산 위에 있는 정자로 모셔 여럿 신들과 더불어 대접해드리고자 합니다만 어떠신지요?”

“기꺼이 초대에 응하겠습니다.”

공주의 너무도 고운 자태에 넋이 나가있던 하람에게, 호랑이가 다가와 등을 치며 말했다.

“뭐하고 있어, 이놈아? 너도 어서 가봐야지 않느냐?”

하람이 허둥대자, 호랑이가 덧붙였다.

“한시라도 빨리 스승을 살리고픈 마음은 알겠다만 그러기 전에 먼저 네가 끌고 온 말부터 데려가도록 해라. 네겐 안 들리겠지만 아까부터 말이 애처롭게 울어대는데, 너를 몹시도 원망하고 있구나.”

“하오나, 안개가 짙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호랑이가 산신령에게 다가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밤이 깊어 어둡고 사방이 안개로 가득하니 아이가 길을 잃거나, 사나운 짐승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소장은 이놈을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허락하마. 다녀 오거라.”

“자, 등에 타라.”

호랑이가 하람에게 등을 내밀며 말했다. 하람은 단미 공주를 향해 얼른 큰 절을 올리며 말했다.

“스승님을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단미 공주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조심해서 가도록 해요.”




나날이 국운이 쇠해가고 있던 해동국. 해동국의 항구도시 '미추홀'에 살던 소년 하람은, 해적들의 습격에 아버지와 얼굴 반쪽을 잃고 대장군 진가람의 저택에서 종으로서 살아간다. 장군의 아들 가천의 관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하람은 새벌의 각설이 가리울을 만나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몸은 왜소하고 얼굴은 흉측하지만, 선골을 타고 나 도사의 자질을 가진 소년, 하람.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그의 일대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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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8. 살 오를 꽃-4 <1기 연재 종료> 15.05.15 178 0 14쪽
32 8. 살 오를 꽃-3 15.05.15 125 0 10쪽
» 8. 살 오를 꽃-2 15.05.15 124 0 11쪽
30 8. 살 오를 꽃-1 15.05.15 146 0 10쪽
29 7. 여우구슬-4 15.05.15 121 0 10쪽
28 7. 여우구슬-3 15.05.14 167 0 14쪽
27 7. 여우구슬-2 15.05.14 178 0 9쪽
26 7. 여우구슬-1 15.05.14 174 0 13쪽
25 6. 가림새 마을 - 4 15.05.13 123 0 9쪽
24 6. 가림새 마을 - 3 15.05.12 176 0 10쪽
23 6. 가림새 마을 - 2 15.05.12 120 1 13쪽
22 (재업로드) 5. 새벌을 떠나다-3 15.05.12 160 0 12쪽
21 6. 가림새 마을 - 1 15.05.12 137 0 13쪽
20 5. 새벌을 떠나다-4 15.05.06 139 0 10쪽
19 5. 새벌을 떠나다-2 15.04.29 274 0 13쪽
18 5. 새벌을 떠나다-1 15.04.27 251 0 13쪽
17 4. 불꽃의 원기-5 15.04.25 177 0 9쪽
16 4. 불꽃의 원기-4 15.04.21 161 0 14쪽
15 4. 불꽃의 원기-3 15.04.19 234 0 11쪽
14 4. 불꽃의 원기-2 15.04.18 256 0 11쪽
13 4. 불꽃의 원기-1 15.04.14 186 0 10쪽
12 3. 도사, 가리울-3 15.04.11 120 0 15쪽
11 3. 도사, 가리울-2 15.04.09 269 0 11쪽
10 3. 도사, 가리울-1 +2 15.04.06 295 1 11쪽
9 2. 개구멍받이-5 15.04.03 267 1 13쪽
8 2. 개구멍받이-4 +2 15.03.31 277 1 10쪽
7 2. 개구멍받이-3 +2 15.03.28 409 1 13쪽
6 2. 개구멍받이-2 15.03.25 240 0 11쪽
5 2. 개구멍받이-1 15.03.23 318 0 10쪽
4 1. 폭풍의 전조-4 15.03.22 266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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