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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님의 서재입니다.

구름의 전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시니피에
작품등록일 :
2015.03.19 05:37
최근연재일 :
2015.05.15 21:1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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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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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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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림새 마을 - 4

해동국 최북단. 민족의 영산, '흰두루산'. 그곳은 민족의 정기가 샘솟는 못이었으며, 한민족을 수호하는 영험한 기운이 펄떡이는 맥박이었다. 이곳에 구름을 벗삼고 도를 닦던 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천하를 재패한 거대 제국인 천자국은, 수천의 군대와 귀신을 부리는 술객들을 앞세워 도사들을 죽이고 민족의 영산을 빼앗고 말았다. 천자국은 한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영산의 곳곳에 쇠말뚝을 박고, 귀신들을 모시는 신사를 세웠다.




DUMMY

스승과 제자는 폭포가 떨어지는 여울 앞 바위 위에 정좌했다. 가리울은 하람에게 단전으로 호흡을 하여 온몸에 원기를 돌리는 법을 전수했다. 하람이 듣고 그대로 따라하자, 가리울이 웃으며 말했다.

“아침마다 이곳에서 참선하며 감악산의 정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도록 해라. 그 기가 몸에 쌓이면 네 도력도 그만큼 깊어지는 것이다. 또한 늘 정신을 깨어있게 하여 불필요한 잡념을 없애라. 마치 폭포수가 떨어지며 바위를 깎듯이 네 정신도 끝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

“스승님!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불가에서는 수행을 위해 음식도 가려 먹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전에 저희는 꿩을 구워 먹고 술도 마시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가리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좋은 질문이다. 불가에서는 불살생(不殺生)이라 하여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한다. 또한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수도에 방해가 되는 술도 함께 금한다. 그러나 우리는 음양오행을 지배하기 위해 자연 그대로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수행하는 자들이다. 천지만물이 저마다 오행의 기운을 띄고 있거늘, 음식을 가려서야 되겠느냐?”

“음식에도 오행의 기운이 있습니까?”

“그렇지! 오행 중, 불의 기운을 가진 음식은 적색을 띄고 심장을 건강하게 하며, 나무의 기운을 가진 음식은 녹색을 띄고 간을 보호한다. 물의 기운을 가진 음식은 검은색을 띄고 신장을 강하게 하며, 흙의 기운을 가진 음식은 노란색을 띄고 위의 기능을 높인다. 마지막으로 금의 기운을 가진 음식은 흰색을 띄고 폐를 보호하지. 내가 짐작하기로 너는 매운 음식을 좋아할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하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새벌에 있을 때 굶주린 스승을 위해서 밥에다 고추장을 한 가득 퍼 담아 오지 않았더냐?”

가리울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모르게 도술을 썼을 때 네게 가장 밀접한 불의 원기가 움직였을 것이다. 고추는 불의 기운을 가진 대표적인 음식이므로, 네가 매운 음식을 좋아할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아마도 네가 불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네 도력이 불의 원기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었기 때문일 게다.”

하람은 다시 옛 생각이 나려하자 공연히 슬퍼져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스승이 가르쳐 준대로 호흡을 고르고 정신을 집중하며 잡념을 없애는데 신경 썼다.

“하람아, 눈을 감아라.”

하람은 두말없이 눈을 감았다. 눈을 어지럽게 하던 형상들이 사라지자, 폭포 소리만이 귀에 들려오며 마음이 잔잔하고 맑아짐을 느꼈다. 가리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람에게 계속해서 가르침을 전했다.

“우주의 모든 만물의 탄생과 죽음은 모두 음양오행의 변화에 관계되어 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 그 이치는 모두 음양오행과 관계된 것이다. 잊지 말거라! 마치 우리는 도력으로써 오행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 스스로가 항상 오행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니라.”

이에 하람은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하람은 우 노인을 졸라 밭일을 따라나서겠다며 자청하였다. 가리울도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상처가 낫지 않아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우 노인의 엄한 목소리에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우 노인은 아들과 함께 소달구지를 끌고 나와 농기구를 싣고 위에 하람을 태웠다.

날은 풀릴 대로 풀려 이제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었다. 조금은 누그러진 하늬바람이 불어와 하람의 머리칼을 흩날리며 지나갔다. 하람을 알아본 마을 아이들은 그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하람은 얼굴이 빨게 지면서도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었다. 한 아이가 달려와 하람에게 바가지를 내밀었다. 바가지 안에는 방금 잡은 개구리 알이 한 가득 들어있었다.

“나 먹으라고 주는 거야?”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서 보고 있던 우 노인이 개구리 알을 먹으면 총명해진다고 슬쩍 한 마디 하자, 하람은 비릿한 걸 참으며 억지로 삼켰다.

우 노인은 하람을 ‘어린 도사님’이라고 부르며 언제나 예를 갖추어 대했다. 하람은 이 또한 어색하고 견디기 어려워 제발 편하게 대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지만, 우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하람은 별수 없이 체념해버리고 말았다.

하람은 우 노인에게 폭포 옆의 더운 김이 오르는 샘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우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 샘은 선녀님들이 보름마다 오셔서 목욕을 하고 가시기에 ‘선녀탕’이라 불리지요. 먼 옛날, 한 선녀께서 몸을 씻으러 내려오셨다가 물이 너무 차서 하늘로 다시 올라가실 수밖에 없었더랬소. 그래서 선녀는 신선들께 부탁하여 꺼지지 않는 화로를 얻어다 샘이 솟아오르는 밑바닥 깊은 곳에 넣고 돌로 막았다고 합니다. 그 뒤로 그 샘은 사시사철 더운 물이 솟아 나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목욕을 하면 피부가 백옥 같아지고 몸에서 향기가 솟는다고 하지요.”

“아, 그렇군요! 그럼 아직도 선녀님들께서 목욕을 하러 내려오시나요?”

“아무렴요! 그래서 자연스레 사람들은 가선 안 되는 곳이 되어버렸지요.”

그들은 거대한 호숫가를 지났다. 호수 위에는 기러기 떼가 수면 위로 활강하며 물고기를 찾고 있었으며, 파란 하늘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은 아름다운 산봉우리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올라 물결을 따라 일렁이고 있었다.

하람이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마을인 것 같아요!”

그러자 우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어린 도사께서 이 늙은이에게 마을 자랑을 할 기회를 주시어 고맙소이다! 우리 마을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뒤로는 감악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호수를 두고 있는 명당에 자리하였지요. 천지의 기운이 융성하여 이 땅에서 자라는 곡식마다 알이 굵고, 가축들은 살찌며, 사람들은 건강한 것이라오.”

마침내 달구지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일구는 넓은 밭에 이르렀다. 밭에는 벌써 마을 남자들이 모여 괭이질이 한창이었다. 그들은 잠시 일을 멈추고 우 노인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촌장 어른 오셨습니까?”

우 노인도 그들을 향해 반갑게 외쳤다.

“여, 늦어서 미안하네! 오늘은 특별히 어린 도사께서 손포를 덜어주러 오셨다네!”

하람은 또 다시 얼굴이 벌게지는 것을 느꼈다.

하람과 우 노인의 아들은 싣고 온 농기구를 내렸으며, 우 노인은 소를 달구지에서 끌어내어 밭으로 몰고 갔다. 우 노인과 아들은 소에 쟁기를 연결하고 쟁기질을 시작했으며, 하람은 그들을 도와 곡괭이로 땅을 일구었다. 밭일에 익숙지 않은 하람은 금세 어깨가 아파오고 땀을 비 오듯 쏟았지만 꾹 참았다.

밭일이 무르익자 우 노인은 구성진 가락으로 목을 길게 뽑아 앞소리를 매겼다.

“이편저편 좌우편 굼방님네!”

그러자 밭일 하던 사내들이 웃으며 뒷소리를 받는 것이었다.

“예이!”


자, 오늘 날두 선선허구 김도 맬 만허구

이집이 떡쌀이 세 가마 서말 석되 서홉 서작이니

옛날 젯적 젯날 젯적 떠꺼머리 총각적

헌 패래 고래적 나무 접시 맛있을 적에

노인네 허든 두레 소리 우렁우렁 해봅시다


예이(경기도 민요, <고양 김매기 소리> 중 ‘군말’ 출처 : <브리태니커 팔도소리>)


밭일은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멀리서 아낙들이 하나 둘 머리 위에 새참과 막걸리 병을 담은 소쿠리를 이고 나타났다. 남자들은 모두 일을 놓고 밭둑에 주저앉아 새참을 들었다. 하람과 우 노인 부자도 며느리가 이고 온 새참을 놓고 둘러앉았다. 참은 새로 돋은 산나물과 고추장을 넣은 비빔밥이었다. 하람은 밭일을 하느라 금방 배가 꺼져 버린 데다,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자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우 노인이 웃으며 하람에게 막걸리 한 잔을 권했다.

“어린 도사님, 수고가 많습니다. 술 한 잔 자시지요.”

“별 도움도 못 되는데 괜히 밥만 축내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천만의 말씀을! 손포를 덜어주신 덕분에 오늘은 다른 이들보다 밭갈이를 먼저 끝낼 수 있을 것 같구려!”

하람은 눈 깜짝할 새에 그릇을 비웠다. 참으로 꿀맛이었다. 배가 부른데다 막걸리까지 몇 잔 들이켜니 하람은 극락이 따로 없다고까지 생각되었다. 남자들은 모두 낮잠을 위해 자리를 깔고 누웠으며, 아낙들은 소쿠리에 빈 그릇을 담아 돌아갔다.

그때였다.

아까 하람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꼬마 중 한 명이,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오며 외쳤다.

“촌장님! 촌장님! 큰일 났어요!”

사람들은 모두 누우려다 말고 의아한 눈으로 꼬마를 바라보았다. 꼬마가 우 노인의 앞에 다다르자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도사님이, 도사님이 쓰러졌어요! 피를 한 바가지나 토했어요! 빨리요! 어서 가보셔야 해요!”

하람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멍청히 서 있다가 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나날이 국운이 쇠해가고 있던 해동국. 해동국의 항구도시 '미추홀'에 살던 소년 하람은, 해적들의 습격에 아버지와 얼굴 반쪽을 잃고 대장군 진가람의 저택에서 종으로서 살아간다. 장군의 아들 가천의 관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하람은 새벌의 각설이 가리울을 만나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몸은 왜소하고 얼굴은 흉측하지만, 선골을 타고 나 도사의 자질을 가진 소년, 하람.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그의 일대기가 이어진다.


작가의말

사람들이 부르는 노동요는, 경기도 민요 중 고양 김매기 소리 중 일부입니다.

우리 전통 민요를 들어 보신 적 있나요? 

잦은 침략의 역사 중 우리 심금 안에 켜켜이 쌓여오던 한 뿐만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해학과 재치 또한 숨어 있습니다. 


어때요, 재미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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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8. 살 오를 꽃-4 <1기 연재 종료> 15.05.15 178 0 14쪽
32 8. 살 오를 꽃-3 15.05.15 126 0 10쪽
31 8. 살 오를 꽃-2 15.05.15 124 0 11쪽
30 8. 살 오를 꽃-1 15.05.15 146 0 10쪽
29 7. 여우구슬-4 15.05.15 122 0 10쪽
28 7. 여우구슬-3 15.05.14 168 0 14쪽
27 7. 여우구슬-2 15.05.14 178 0 9쪽
26 7. 여우구슬-1 15.05.14 174 0 13쪽
» 6. 가림새 마을 - 4 15.05.13 124 0 9쪽
24 6. 가림새 마을 - 3 15.05.12 177 0 10쪽
23 6. 가림새 마을 - 2 15.05.12 121 1 13쪽
22 (재업로드) 5. 새벌을 떠나다-3 15.05.12 160 0 12쪽
21 6. 가림새 마을 - 1 15.05.12 138 0 13쪽
20 5. 새벌을 떠나다-4 15.05.06 139 0 10쪽
19 5. 새벌을 떠나다-2 15.04.29 275 0 13쪽
18 5. 새벌을 떠나다-1 15.04.27 252 0 13쪽
17 4. 불꽃의 원기-5 15.04.25 178 0 9쪽
16 4. 불꽃의 원기-4 15.04.21 161 0 14쪽
15 4. 불꽃의 원기-3 15.04.19 235 0 11쪽
14 4. 불꽃의 원기-2 15.04.18 256 0 11쪽
13 4. 불꽃의 원기-1 15.04.14 187 0 10쪽
12 3. 도사, 가리울-3 15.04.11 121 0 15쪽
11 3. 도사, 가리울-2 15.04.09 270 0 11쪽
10 3. 도사, 가리울-1 +2 15.04.06 296 1 11쪽
9 2. 개구멍받이-5 15.04.03 268 1 13쪽
8 2. 개구멍받이-4 +2 15.03.31 278 1 10쪽
7 2. 개구멍받이-3 +2 15.03.28 410 1 13쪽
6 2. 개구멍받이-2 15.03.25 241 0 11쪽
5 2. 개구멍받이-1 15.03.23 318 0 10쪽
4 1. 폭풍의 전조-4 15.03.22 266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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