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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님의 서재입니다.

구름의 전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시니피에
작품등록일 :
2015.03.19 05:37
최근연재일 :
2015.05.1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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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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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림새 마을 - 3

해동국 최북단. 민족의 영산, '흰두루산'. 그곳은 민족의 정기가 샘솟는 못이었으며, 한민족을 수호하는 영험한 기운이 펄떡이는 맥박이었다. 이곳에 구름을 벗삼고 도를 닦던 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천하를 재패한 거대 제국인 천자국은, 수천의 군대와 귀신을 부리는 술객들을 앞세워 도사들을 죽이고 민족의 영산을 빼앗고 말았다. 천자국은 한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영산의 곳곳에 쇠말뚝을 박고, 귀신들을 모시는 신사를 세웠다.




DUMMY

가리울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내 솔직히 말하지. 이 마을은 평범한 마을이 아니오. 예부터 이 감악산 일대는 천지의 정기가 모여드는 곳으로 조상 대대로 신성한 땅으로 여겨져 왔소이다. 그래서 마을 위쪽에 소도를 두어 신들께 제사를 올리고, 먼 길 가시는 온 누리의 신들께서 잠시 쉬어가시도록 하였소. 이에 신들께선 우릴 어여삐 여기시어 속세의 사람들은 이곳을 결코 찾을 수도, 들어올 수도 없게 해 주시었소. 아침과 밤이면 마을 주변은 모두 안개로 뒤덮이고, 속인들은 방향을 잃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지. 그래서 마을 이름도 ‘가림새(숨기는 것)’라 하는 거라오. 해동 반도가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시끄러울 때도, 우리 마을만은 무사할 수 있었지.”

촌장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곰방대를 한 모금 빨았다. 가리울과 하람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것은 이 마을 사람들에게 진실을 털어놓아도 되겠느냐는 무언의 물음이었다.

촌장이 다시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오. 이방인들이 둘씩이나 버젓이 들어왔으니 어찌 아니 놀랍겠소? 자, 이젠 당신들의 이야기를 해 보시오. 속세의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란 말이오?”

가리울은 한숨을 쉬고는 그들의 정체와 지금까지 겪었던 일을 촌장에게 간략히 들려주었다. 촌장은 듣는 내내 입을 다물질 못했다. 가리울이 불씨가 꺼져가는 화로에 손을 내밀어 새로 불을 붙인 것처럼 활활 타오르게 만들자, 촌장은 손뼉을 치며 기뻐하였다.

“참말로 선인이시구려! 도사님들을 마을에 모시게 되어 촌장으로서 큰 영광이오!”

그러나 가리울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어르신. 말씀드린 것처럼 저흰 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이곳도 저희 때문에 위험해질지 모릅니다. 행여 마을에 피해가 가선 안 됩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몸이 나을 때까지만 신세를 지고, 몸이 나으면 바로 이곳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촌장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니오! 도사께선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오. 내 장담 컨데, 온 누리 어디를 뒤져봐도 두 분이 머물 곳 중에서 이 마을만큼 안전한 곳은 또 없을 것이오. 이곳의 소도는 산신, 이승신은 물론이거니와, 다섯 방위를 지키시는 오방신장들께서도 특히 자주 머무시는 곳이랍니다. 그 어떤 요괴, 사악한 무리, 나쁜 잡귀들 누구라도 이 마을을 침범하진 못하지요.”

“하오나…….”

“도사께선 제자와 함께 지낼 곳을 필요로 하시지요? 그래서 단둥으로 가시려는 것 아닙니까? 멀리까지 가실 필요가 있습니까? 두 분께선 아무 부담가지지 마시고 부디 이 마을에 계속 머물러 주시오. 촌장으로서 부탁드립니다.”

가리울은 촌장에게 절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리하여 하람과 가리울은 촌장의 집에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 받으며 계속 머물게 되었다.


가림새 마을은 소도 주변 신성한 땅에 만들어진 마을답게 신들께 경건하고, 세속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왕명이 아무리 지엄해도 이곳까지 미치진 못하였으니, 이들의 얼굴에서는 세속의 헛된 욕망이나 다툼과 분노의 흔적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감악산 산자락의 평야와 저수지를 마을 사람들은 공동으로 소유하였으며, 한 해의 농작물은 언제나 공평하게 나누었다.

이 마을의 씨족은 다섯 가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마(馬)씨, 우(牛)씨, 저(猪)씨, 구(狗)씨, 양(羊)씨가 그것이었다. 결혼은 다른 씨족끼리 하였는데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끼리만 혼인하여 모두가 먼 친척지간이었다. 각 씨족의 족장이 돌아가며 촌장을 맡는데, 지금의 촌장은 우 씨 집안의 족장으로 보통 ‘우 노인’이라 불리었다. 우 노인은 족장 회의에서 마을로 찾아오게 된 도사들의 사연에 대해 설명했고, 그 자리에 모인 족장들은 하람과 가리울을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이견이 없었다.

가림새 마을에는 다섯 가지 계율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성실하고 믿음으로써 거짓이 없을 것, 두 번째는 근면함으로써 게으르지 않을 것, 세 번째는 효도, 순종하여 어김이 없을 것, 네 번째는 염치와 의리 있어 음란치 않을 것, 다섯 번째는 겸손, 화목하여 다툼이 없을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이 다섯 가지 계율을 철석처럼 지키며 살아갔다. 덕분에 소도를 끼고 있는 마을답게 경건하고 평화로웠으며, 사람들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맘 편히 살고 있었다.

하람과 가리울이, 우 노인의 집에서 식객 생활을 한 지 어느 덧 이레를 넘었다. 그동안 하람은 매일 영양가 있는 음식을 대접받고 수천 선생이 지어준 약을 달여 먹은 데다 충분한 휴식까지 취하여, 마침내 완전히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가리울은 하람을 데리고 우 노인 댁을 나섰다. 온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하람과 가리울이 어떤 자들인지 알게 되었으므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공손히 절을 하며 존경을 표시했다. 하람은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새벌과는 너무도 달라, 한 동안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스승과 제자는 다른 네 족장의 집에 초청 받아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였으며 천지와 사람, 우주의 이치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듣기도 하였다.

가리울이 말했다.

“확실히 이곳 사람들은 순박하고 하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여 그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 같구나. 저들의 지혜에 비하면 내가 아는 것은 티끌 만큼에 불과하다.”

하람이 물었다.

“스승님, 그럼 저희는 계속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입니까?”

“그럴 수야 있겠느냐? 옛말에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하였다. 명진국의 한 고승은 아흔 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밭을 갈며 일을 하였는데, 제자들은 고령의 스승이 일을 하는 것을 보다 못한 나머지 스승의 연장을 감추었다. 그러자 고승은 제자들이 다시 연장을 돌려줄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마을 분들께 신세만 지고 있으니 이는 걸인이나 다를 바 없다. 이제 네게 도술의 기본적인 운용법을 가르치고 나면 곧 이곳을 떠날 생각이다.”

“예, 알겠습니다.”

가리울은 하람을 앞세우고 산을 향해 걸었다. 순간 가리울이 가슴을 움켜쥐며 얼굴을 찌푸렸지만 앞서 가던 하람은 알지 못했다.

하람과 가리울은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 노인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련할만한 곳을 묻자, 산 중턱에 있는 폭포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과연 그들이 산 중턱까지 오르자, 높이가 여섯 장(1장-약 3미터) 일곱 자에 달하는 폭포가 기암절벽을 타고 내리며 쏟아지고 있었다.

가리울은 탄성을 내지르며 외쳤다.

“마치 용이 바위를 타고 날아오르는 것 같구나!”

스승과 제자는 폭포수의 한 줄기가 웅덩이를 이루는 곳에서 옷을 벗고 몸을 깨끗이 씻었다. 때는 아직 이른 봄이었기에, 차가운 폭포수가 살갗에 닿자 하람은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하람이 자세히 보니, 가슴을 싸맨 가리울의 붕대에서 아직도 벌겋게 피가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가리울은 붕대를 풀지 않고 그대로 몸을 씻기 시작했다. 그러자 웅덩이에 피가 흘러들어 벌겋게 변해갔다.

하람이 놀라며 외쳤다.

“스승님! 상처의 피가……”

가리울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아, 괜찮다. 구미호의 요기가 아직 상처에 서려 있어 쉬이 아물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 말거라.”

몸을 말리고 옷을 주워 입은 하람은 문득, 폭포 너머 바위에 둘러싸여 김이 뭉게뭉게 오르고 있는 샘을 발견했다.

“스승님! 저기 좀 보십시오! 저 샘에선 김이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가리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막 몸을 씻었거늘, 너는 저런 게 눈에 들어오느냐?”

“아, 아뇨. 그런데 저 샘은 왠지 따뜻할 것 같지 않습니까? 아직 이른 봄이라 물이 얼음장 같지 않습니까. 애초에 저 곳에서 씻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응, 사실 네게 잊고 말해주지 않은 것이 있었다. 본래 이 폭포는 신성한 장소인데 우리가 도를 닦는 선인이라 하여 우 노인께서 특별히 출입을 허락하신 것이다. 단, 저 샘만큼은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 하셨다.”

“혹시, 마시면 늙지 않고 오래도록 살 수 있는 샘이라든가…….”

가리울은 지팡이로 하람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이놈아!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도사면 도사답게 그런 미신 따위 믿지 말고 수행에나 정진하도록 해라!”

하람은 정수리를 싸쥐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오랜만에 얻어맞는 지팡이가 너무 아파, 찰나지만 차라리 몸져누웠을 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가리울이 말했다.

“저 샘은 선녀들이 와서 목욕을 하는 곳이라 한다. 그러니 어찌 사람의 몸으로 성역을 더럽힐 수 있겠느냐? 목욕재계로 몸을 정갈히 함에 있어 물이 차면 어떻고, 더우면 또 어떠냐?”

하람은 겉으로는 수긍하면서도, 속으로는 우 노인에게 몰래 부탁해볼 작정을 하였다.




나날이 국운이 쇠해가고 있던 해동국. 해동국의 항구도시 '미추홀'에 살던 소년 하람은, 해적들의 습격에 아버지와 얼굴 반쪽을 잃고 대장군 진가람의 저택에서 종으로서 살아간다. 장군의 아들 가천의 관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하람은 새벌의 각설이 가리울을 만나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몸은 왜소하고 얼굴은 흉측하지만, 선골을 타고 나 도사의 자질을 가진 소년, 하람.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그의 일대기가 이어진다.


작가의말

마가, 우가, 저가, 구가, 양가는 우리 나라 고대의 씨족사회의 모습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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