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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님의 서재입니다.

구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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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피에
작품등록일 :
2015.03.19 05:37
최근연재일 :
2015.05.15 21:12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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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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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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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19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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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 폭풍의 전조-1

해동국 최북단. 민족의 영산, '흰두루산'. 그곳은 민족의 정기가 샘솟는 못이었으며, 한민족을 수호하는 영험한 기운이 펄떡이는 맥박이었다. 이곳에 구름을 벗삼고 도를 닦던 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도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천하를 재패한 거대 제국인 천자국은, 수천의 군대와 귀신을 부리는 술객들을 앞세워 도사들을 죽이고 민족의 영산을 빼앗고 말았다. 천자국은 한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영산의 곳곳에 쇠말뚝을 박고, 귀신들을 모시는 신사를 세웠다.




DUMMY

1. 폭풍의 전조



해동 반도의 심장부에 위치한 해동국의 수도 ‘새벌’엔 일치감치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평소 같으면 괭이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해야 할 새벌의 밤공기가 오늘 따라 숨 가쁘게 요동치고 있었다. 멀찍이 소쩍새가 우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 꼬리를 붙잡고 군인들의 발소리가 요란했다. 거멓게 그늘진 구름 한 점이 달빛을 가리며 육박했다. 성 안 집집마다 을씨년스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대장군 진가람의 사저 앞에는 무장한 십여 명의 병사들이 수레 한 대를 호위하여 빙 둘러서 있었다. 그중 상급 무관처럼 보이는 자가 나섰다. 주춧돌 위에 서서, 그는 몇 번을 망설이며 손을 거두었다. 결국 그는 대문을 두드렸다.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청지기가 문을 열고 몸을 한 자나 이쪽으로 기울였다. 무관이 말했다.

“장군님께 말씀 전해 주시게. 미추홀에서 막 다녀오는 길일세.”

대장군의 부장, 환찬은 해적들이 나타났다는 급보를 받자마자 친위대 반 령(1령-1000명)을 이끌고 미추홀로 달려갔었다. 미추홀은 해동 반도의 서쪽 바닷가에 위치한데다 수도와 멀지 않았으므로, 환찬은 병마를 이끌고 나간 지 채 이틀이 채 되기도 전에 돌아올 수 있었다. 미추홀로 향할 때는 급보를 전해 받고 부리나케 달렸던 탓이 컸다. 지금, 환찬은 대부분의 군사들을 막사로 돌려보내고 수행원들과 함께 대장군에게 보고를 하러 찾아온 것이었다.

횃불 아래 일렁이는 환찬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상황의 심각함을 직감한 청지기는 가타부타 더 말없이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환찬은 잿물이라도 들이킨 양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뒤쪽의 수레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괜찮은가?”

그러자 병사 한 명이 횃불을 수레 쪽으로 기울였다. 말먹이 풀이 깔린 수레 위에는 한 소년이 온몸을 비틀다 지쳐 완전히 퍼진 채 신음하고 있었다. 아이의 옷은 군데군데 헤지고 찢겨졌으며 불에 타고 그슬린 자국이 역력했다. 옷 위로 드러난 몸뚱이에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여기저기 찰과상에 으깨진 피부 사이로 피딱지가 파충류의 비늘처럼 도드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얼굴에 입은 화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얼굴의 반 이상이 불에 타 무명으로 싸매고 있었으며, 미처 가리지 못한 부분에서는 피와 진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의원을 불러야 합니다.”

병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천을 내려 아이의 나머지 얼굴마저 덮었다. 아이가 가느다란 호흡을 내쉴 때마다 얼굴을 감싼 천이 염통처럼 펄떡였다. 코와 입이 가려지고 어둠에 잠기자 잠시 잊었던 고통이 몰려오는지 아이는 풀을 꽉 움켜잡으며 울부짖었다.

그때, 집안 쪽에서부터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저마다 초롱을 든 하인들이 종종걸음 치며 이쪽으로 몰려 왔다. 문간에 멈춰선 그들이 양쪽으로 갈라지자 번쩍이는 비늘갑옷을 갖춰 입은 대장군 진가람이 보였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든지 출전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진가람은 거의 뛰다시피 이쪽으로 다가왔다.

환찬은 진가람을 향해 절을 올렸다.

“대나마 환찬, 대장군께 인사 올립니다.”

“상황은? 행색을 보아하니 교전을 한 것 같진 않구나.”

하지만 진가람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우려된다는 투였다. 횃불 위에 떠 있는 공기처럼 가볍게 떨리기까지 하였다. 환찬은 참으로 뵐 낯이 없다는 듯이 더욱 머리를 숙이며 드문드문 말을 이었다.

“말씀대로입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 해적들은 이미 자기들의 소굴로 돌아가 버린 뒤였습니다.”

숱한 전투로 잔뼈가 굵은 대장군 가람이었으나 그 말을 들으니 벼랑 끝에 서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돛대만 남아 있던 장군선이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드는 것처럼, 상황을 파악하려 신경을 곤두세울수록 더더욱 아연해졌다.

“미추홀은 어떤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가?”

환찬은 더 못 견디겠다는 듯, 주춧돌 아래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그를 따른 병사들도 함께 엎어지며, 감정을 주체 못해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을은 초토화 되었습니다. 백성의 가옥들과 정박해 있던 배는 모두 불타고, 논밭은 시체로 뒤덮여 있습니다. 해적들은 가축과 식량을 남김없이 가져가 버렸습니다. 남은 사람이 없습니다. 산 자들은 모두…… 모두 끌려가 버렸습니다.”

그 또한 예사 무인이 아니었으나, 해적들의 전례 없는 대규모 공격이 남긴 참상이 떠오르자 차마 목이 메어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대장군의 눈썹이 짓밟힌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해동국의 무인으로서 전장을 누벼온 날들 동안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그였다. 드높은 명성 탓에 뭇 백성의 존경과 적들의 경외를 한 몸에 받은 그 나름의 자부심이, 이번 공습으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 없는가? 정말 아무도 못 구했어?”

환찬은 아예 투구 쓴 채로 머리를 주춧돌에 박으며 격하게 말했다.

“천운으로 저 아이 하날 구했습니다.”

소년은 불에 탄 초가의 잔해 앞에서 엎드려 있었다. 화상으로 인한 충격에 반쯤 혼절해 있던 순간, 마침 바람 방향이 바뀌면서 축축한 구름 한 자락이 미추홀 위로 떠 왔던 것이다. 구름이 는개(안개비 보다 조금 더 입자가 굵은 비)를 뿌리는 탓에, 정신이 든 소년이 지나던 병사를 향해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환찬은 장군을 수레 앞으로 안내했다. 장군은 수레를 붙잡고 아이를 굽어보았다. 이제, 아이의 입에서는, 허파에 바늘귀만한 구멍이 난 것처럼 호흡 줄이 떨리는 실낱을 간신히 이으며 새어나오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매우 위태로운 상태였다.

진가람은 놀라며 외쳤다.

“아니, 죽어가잖은가! 의원부터 찾아갈 일이지 어째서 여길 먼저 왔는가?”

“송구합니다. 하지만 장군님께 상황을 알려드리는 것이 먼저라 사료되어……”

“허, 참. 뭣들 하고 있어? 당장 수천(受天) 선생을 모셔와, 당장!”

진가람의 노기 띤 일갈에 하인 중 하나가 의원을 부르러 달려가고, 병사들은 수레를 밀어 저택 마당으로 옮겼다. 남은 하인들은 대장군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저택 안으로 흩어져 버렸다.


구름에 가리었던 달이 드러났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새벽녘으로 접어들었고, 저만치 허공 위로 떠오른 달빛은 그믐이 가까운 듯 허여멀겋게 이울고 있었다. 갑주는 벗었으나, 진가람은 여전히 칼을 차고 후원을 거닐고 있었다. 세 걸음마다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흡사 저 달빛이 해동국의 쇠한 국운의 환유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상념에 빠져, 진가람은 환찬이 바로 가까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환찬은 여전히 갑주를 벗지 않고 있었다.

“소장 환찬, 대장군께 누를 끼쳤습니다.”

환찬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러자 진가람은 곧 굳은 얼굴을 풀며 말했다.

“아닐세. 그냥 잠이 안 와서 그런 게야. 대나마, 왜 쉬러 가지 않는가.”

“수심에 잠긴 내 주인을 두고 잠을 이룰 종이 어디 있습니까?”

묵직한 충정이 절절히 느껴지는 말투였다. 대장군은 미소 지었다.

“허, 참. 그럼 내일 임금님께 할 말이라도 준비하게 현장을 본 자네 느낌이나 좀 보태보지.”

“해적들의 이번 공격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정말 대규모였습니다. 수채를 지키던 군사들은 아마 두 시진(1時辰-2시간)도 되기 전에 모두 전멸했을 겁니다. 워낙 방비가 미흡했습니다.”

“미추홀에 정박되어 있던 다른 나라의 선박은? 모두 전멸했나?”

그때였다.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환찬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은은한 노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 낌새를 파악한 진가람은 뭔가 심상찮음을 느꼈다. “장군,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이 어리석은 종이 대장군의 귀를 좀 가까이 빌었으면 합니다.” 진가람은 후원 구석 감나무 아래로 환찬을 이끌었다. 감꽃이 뒹굴고 있는 바닥에서 그윽한 향이 물씬 풍겼다.

주변을 살피던 환찬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장군님. 아뢰옵기 송구스러우나, 소장이 생각하기에, 이번 일은 참사 이상으로 꺼림칙한 뭔가가 있는 듯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대나마는 이번 해적의 습격에 내막이라도 있단 말인가?”

환찬은 다시 한 번 주변에 엿듣는 자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잔뜩 몸을 기울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 파손된 선박은 모두 우리의 것으로, 천자국이나 개비랑국의 것은 선박은커녕 상인들의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장도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살펴보았나이다.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진가람은 생각에 잠겼다. 미추홀은 비록 큰 성읍은 아니었으나 개비랑국과 해상 교역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서 상선들의 수도 많아지고, 외국 상인들을 위한 객장도 자리 잡기 시작하여 곧 남쪽의 가마뫼 만큼이나 중요한 기항지가 될 전망이었다. 미추홀은 한창, 전성기로 이어지는 과도기를 겪고 있었다.

‘해적놈들, 남쪽 해안 마을만 노략질하던 놈들이, 본거지와 훨씬 먼 미추홀로 들어왔어.’

진가람은 자기도 모르게 피부 표면에 땀구멍이 오소소 일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간 듯,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장군님?”

환찬이 고개를 들었다.

대장군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하늘엔 구름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추홀을 덮던 어두운 구름이 이곳 새벌까지 당도한 모양이었다. 구름은 모여들어 성벽처럼 두꺼운 먹장구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진가람은 서서히 구름 뒤로 사라져가는 마지막 달빛의 아우성을 주시했다.

“환찬.”

환찬은 화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진가람은 하늘에 고정된 시선을 떼지 않으며 길게 내쉬는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곧 폭풍이 오려는 모양이다.”




나날이 국운이 쇠해가고 있던 해동국. 해동국의 항구도시 '미추홀'에 살던 소년 하람은, 해적들의 습격에 아버지와 얼굴 반쪽을 잃고 대장군 진가람의 저택에서 종으로서 살아간다. 장군의 아들 가천의 관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하람은 새벌의 각설이 가리울을 만나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된다. 몸은 왜소하고 얼굴은 흉측하지만, 선골을 타고 나 도사의 자질을 가진 소년, 하람.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그의 일대기가 이어진다.


작가의말

이 소설의 설정, 배경, 신화 모두 한국 고유의 것을 참조는 했지만, 역사적 고증을 하진 않음을 알려 드립니다. 예를들면 고구려의 관직 제도와 고려 시대 때의 대 외국 무역의 모습이 혼용된다든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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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8. 살 오를 꽃-4 <1기 연재 종료> 15.05.15 179 0 14쪽
32 8. 살 오를 꽃-3 15.05.15 126 0 10쪽
31 8. 살 오를 꽃-2 15.05.15 124 0 11쪽
30 8. 살 오를 꽃-1 15.05.15 146 0 10쪽
29 7. 여우구슬-4 15.05.15 122 0 10쪽
28 7. 여우구슬-3 15.05.14 168 0 14쪽
27 7. 여우구슬-2 15.05.14 178 0 9쪽
26 7. 여우구슬-1 15.05.14 174 0 13쪽
25 6. 가림새 마을 - 4 15.05.13 124 0 9쪽
24 6. 가림새 마을 - 3 15.05.12 177 0 10쪽
23 6. 가림새 마을 - 2 15.05.12 121 1 13쪽
22 (재업로드) 5. 새벌을 떠나다-3 15.05.12 160 0 12쪽
21 6. 가림새 마을 - 1 15.05.12 138 0 13쪽
20 5. 새벌을 떠나다-4 15.05.06 140 0 10쪽
19 5. 새벌을 떠나다-2 15.04.29 275 0 13쪽
18 5. 새벌을 떠나다-1 15.04.27 252 0 13쪽
17 4. 불꽃의 원기-5 15.04.25 17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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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4. 불꽃의 원기-2 15.04.18 257 0 11쪽
13 4. 불꽃의 원기-1 15.04.14 187 0 10쪽
12 3. 도사, 가리울-3 15.04.11 121 0 15쪽
11 3. 도사, 가리울-2 15.04.09 270 0 11쪽
10 3. 도사, 가리울-1 +2 15.04.06 296 1 11쪽
9 2. 개구멍받이-5 15.04.03 268 1 13쪽
8 2. 개구멍받이-4 +2 15.03.31 278 1 10쪽
7 2. 개구멍받이-3 +2 15.03.28 410 1 13쪽
6 2. 개구멍받이-2 15.03.25 241 0 11쪽
5 2. 개구멍받이-1 15.03.23 318 0 10쪽
4 1. 폭풍의 전조-4 15.03.22 266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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