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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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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5.01 00:4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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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7,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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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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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80

DUMMY

“병······이셨던 건가요?”


실례인 줄 알지만 묻지 않고 배길 순 없었다.


이에 레이니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어요. 정말 주무시듯 돌아가신 거죠. 당시 깨우러 갔던 사용인도 드물게 늦잠을 주무신다고 착각했을 정도였다고 증언했고요.”


‘오엘문리아의 사람이 갑자기 쥐 죽은 듯이 돌아갈 수도 있나? 지구라면 또 모를까 여기 사람들은 마력 때문에 훨씬 튼튼할 텐데······ 아, 그게 아니지.’


리아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사인이 어떻게 되든 죽은 이의 추억을 되뇌게 한 것이다.


자신도 지구에서 먼저 보낸 사람들을 떠올린 적이 많았기에 어떠한지 잘 공감할 수 있었다. 거기에 석연찮게 죽은 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죄송해요. 그······ 껄끄러운 얘길 꺼내서.”


아마 본인도 납득하지 못했다거나 혹 짚이는 점이 있었던가,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시종 날카롭던 레이니의 눈가가 부드러워졌다.



“리아가 미안할 게 어디 있나요. 오히려 제가 사과드려야죠. 갑자기 끼어든 것도 모자라 심란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아, 아뇻!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공왕비님께서 직접 알려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후훗. 리아는 정말 좋은 아이네.”

“아, 아이는 아닌데······”


이제는 그저 반사적이라고 여겨질 만한 리아의 반발이다. 그래도 레이니가 왕비라는 자각은 있어서인지 목소리가 매우 작았지만.


그런 모습이 재밌었는지 살짝 웃은 레이니는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그러더니 리아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나저나 리아는 정말 만능언어를 구사할 수 있네요. 궁금해서 그런데 다이로스와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저기 기둥의 마법이 나온 거죠?”


말하는 도중부터 분위기는 가벼워져 조금 안심했으나······ 그건 오산이었다.


눈을 빛내며 상당한 열기를 내뿜는―― 처음 만능언어를 한다고 들었을 때와 같은 필사적인 레이니가 돌아왔다.


이 부담스러운 레이니로부터 리아는 슬그머니 뒤로 발을 뺐으나, 이미 손을 붙들린 지금의 상황으론 여의찮다.


‘설마하니 도주로를 차단한 건가?!’


누가 루비아의 어머니 아니랄까 이 사람도 철두철미하구나······


어쩔 수 없이 리아는 숨결조차도 잘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바짝 붙어오는 레이니의 얼굴을 피해 최대한 뒤로 머리를 기울였다. 물론 레이니가 물러서는 만큼 그대로 따라붙어 별 의미 없는 행동이 되었지만.



“제, 제가 저 마법을 보강해도 되냐고 말이 오가다 그런 거였어요.”

“보강을 해······요?”


어쩐지 레이니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괘, 괜한 짓을 한 건가――”


‘아! 자, 잠깐. 나 혹시 전 왕세자 전하의 유품을 훼손한 거 아니야?!’


따지고 보면 저 마법을 유품이라 못할 건 없어 보였다. 어찌 됐든 간에 망자가 남기고 간 산물이란 점에서는 동일하니.


혹시 자신은 화가가 죽기 전 그려 완성했다던 인물화에 눈썹이 없다는 이유로 그걸 멋대로 그려놓은 꼴이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니 너무나 절실하게 와닿아 리아는 슬슬 몸이 떨려왔다.


――전 왕세자의 유작은 과연 배상금이 얼마나 할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리아는 자신의 현 상태를 생각해보았다.


여전히 수중엔 현금은 단 한 푼도 존재하지 않는 거지나 마찬가지인 자신과 가늠조차 안 되는 가치를 지닐 것으로 예상되는 왕세자의 유품······


덜··· 덜······ 덜덜덜.


본인의 주변만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간 듯 리아는 마구 떨었다.



“죄, 죄송해요! 제가 감히 고인의 유품을 멋대로!! 부, 부디 배상만은―― 아, 아뇨! 제가 몸으로 직접 때울 테니 그것으로 용서해주세요!”


손은 붙잡혔으나 최대한 팔을 쭉 뻗어 거리를 확보한 리아는 머리를 빠른 속도로······ 진자운동을 했다.


물론 이는 사과를 위함이었고,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다.


다만 이 사과를 받는 주체인 레이니는 멍한 눈으로 응시할 뿐이라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더욱 머리의 속도를 높이려던 리아였다만······ 정수리가 따끔해지는 고통에 멈춰 섰다.



《어지럽게 무얼 하는 게냐. 어른을 좀 더 공경할 줄 알아야지.》


아······ 그러고 보니 어깨에 다이로스가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잘도 이 진자운동 속에서 어깨 위에 용케도 서 있는 놀라운 재주를 선보였다.



“균형 감각이 좋으시네요.”

《갑자기 무어냐――》

“아, 아뇨. 죄송했어요. 갑자기.”


무안함에 고개를 돌리려니―― 더욱 강렬해진 열기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돌릴 수도 없다. 진퇴양난 같은 상황이다.


꿀꺽.


침을 삼킨 리아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레이니를 쳐다봤다.


······.


다 큰 성인 여성이―― 이런 말하면 미안하지만, 굉장히 아이 같은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 저! 지금!! 지금! 무슨 말씀을 나누신 거예요?!”


어깨를 잡혀 흔들리면서도 리아는 대답했다. 왠지 빨리빨리 대답하는 게 금방 끝날 거라는 예감 같은 것이 느껴진 것이다.


이 와중 다이로스는 또다시 흔들리는 것이 불만인 듯 이번엔 그냥 리아의 머리카락을 부리로 물어 버텨냈다. 날아서 잠시 다른 데로 가면 좋으련만 굳이 남아서.



“가, 갑자기~~ 제가~ 몸을 흔들어서~ 다이로스 씨가 불평하신 거였어~요!”


흔들던 레이니가 멈췄다. 그렇다고 딱히 리아의 말을 듣고 한 행동은 아닌 모양으로, 레이니는 그저 자신의 말을 전해왔다.



“오오오! 제, 제, 제 말도 전해주세요! 전, 레이니라고 해요. 다, 다이로스와는 정말 얘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리아는 어깨 위에 있는 다이로스를 쳐다봤다. 다이로스도 머리칼을 놓고는 눈을 마주쳐왔다.



“――라고 하시는데요? 다이로스 씨.”

《······갑자기 이 무슨 촌극인교.》


다이로스는 황당해하는――아마도―― 듯한 기색을 풍겨왔다.


뭐가 됐든 왕세자의 유작에 손댄 걸 스리슬쩍 넘어갈 기회로 여겨진다.


의외로 약삭빠른 리아는 재빨리 말을 전했다.



“다이로스 씨가 갑자기 촌극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 그렇다는 건! 제 이름도 알고 계시는 건가요?!”

“아······ 그건 아시는 거 같아요. 아까도 공왕비님의 존함을 평범히 불러주시고 그랬어요.”

“오!!”


정말 기쁜 듯 밝게 미소 지은 레이니는 손을 놓더니 그대로 다이로스를 들어 안았다.


그런데 그 꼴이 왠지······ 거대한 불사조 인형을 끌어안고 좋아하는 성인의 모습이다. 다이로스 또한 얌전히 안겨있어 그러한 느낌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이 모습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리아는 입을 열었다.



“다이로스 씨, 안 그러실 거 같은데 공왕비님에겐 잘 대해주시네요.”


레이니의 눈이 커졌다.



“그런가요?!”

“네······. 지금 얌전히 안겨 계시는 것도 그렇지만, 제 이름은 잘 불러주시지도 않고 아가라고만 하는데 공왕비님은 제대로 불러주셔요.”

“다이로스······”


반짝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에 다이로스는 훌쩍 머리를 돌렸다. 아마 부끄러운 모양이다.



“헤에······ 나이 많으신 분도 부끄러워하시는군요.”


울컥, 이랄까―― 어딘가 여유롭고 어른스러웠던 다이로스가 허둥대면서 눈을 부라렸다. 그러면서도 레이니와는 되도록 눈을 마주치려 하질 않았다.


하지만 그래봐야 새다.


인간과 새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멀고도 멀다. 어느 인간이 새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겠는가.


그런 식으로, 실은 머리를 맑게 한 상태라 대강 화를 내고 있다는 건 알아봤지만, 리아는 모르는 척 밀어붙이기로 했다.


결코 정수리를 쫀 앙금과 계속 아가라고 부른 것에 대한 불만으로 다이로스가 당황하는 걸 즐기는 게 아니다.


――솔직해지자. 그 앙금이 맞다. 성인인 자신을 계속 꼬마 아이 취급하는 이 새를 좀 골려주고 싶었던 거다.


실실거리는 리아를 보고 다이로스도 리아의 감정을 알아본 듯 더욱 눈을 부라렸지만, 레이니가 안고 있어서 그런지 그 이상―― 마력을 내뿜는다든가, 살기를 내비치는 일은 없었다.



“훗.”


어디선가, 최근 들어본 듯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출처로 고개를 돌려보니······ 에르가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매우 즐거워하는 눈빛으로.


――아니다. 어딘가 비웃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에르? 무슨 일 있었나요.”

“아무것도. 저 땅딸막한 새의 꼬락서니가 조금 귀여워서 말이지.”

“그런······가요?”


확실히 심미안이 좋은 에르의 말대로 잡아먹을 듯 부라리는 눈만 아니라면 전체적으로 안긴 모습이 인형 같아서 귀엽긴 하다. 그런데다가 불길이 타는듯한 깃털이라 신비로운 감도 있어서 겉보기엔 좋다.


푸드드득.



“어······어. 다, 다이로스? 어디 가요?!”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던가. 다이로스는 몸을 틀어 레이니의 품에서 빠져나오더니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레이니가 황망히 손을 뻗어봤지만, 슝 날아간 다이로스는 이미 성벽 위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쫓으며 에르는 한 번 더 비웃듯 쳐다봤다.



“다이로스······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이거 내 잘못인 거 아니야?’


모처럼 유품 건에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위기가 찾아왔다. 애절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레이니를 보니 왠지 식은땀마저 나오는 기분이다.


리아는 저도 모르게 안절부절못하게 되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일단, 다이로스 씨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 대화해보심이 어떠한가요? 마력은 기억해뒀으니 마법으로 바로 부를 수도 있거든요.”


다시 눈이 반짝해진 레이니가 손을 덥석 잡아 왔다.



“정말! 정말 바로 불러주실 수 있으신 거죠?!”

“네, 네. [염화]라고, 속마음으로 대화하는 마법이 있거든요.”

“속······마음으로요?”

“네. 다이로스 씨의 마력은 알고 있으니 할 수 있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속마음으로 대화하는 마법이라면 저라도 마수나 마물―― 다이로스와도 대화가 가능한 게 아닌가요?”

“어······”


듣고 보니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리아는 이 질문에 대해 해답을 알고 있을 만한 자―― 에르에게 고개를 돌렸다.



“에르가 생각하기엔 어떨 거 같아요?”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에르는 멋들어지게 턱을 괴고 고민했다.



“흠. 결과야 얼추 알겠다만.”

“정말요?! 그럼 어떻게 돼요?”

“내가 말해주는 것보다 리아가 직접 알아보는 게 더 좋지 않겠어? 어차피 오늘 공왕비의 꿈을 이뤄준다고 했잖아. 여기저기 다니면서 동, 식물에게 말을 걸어보면서 알아보는 게 어때?”

“그, 그랬죠. 그런데 에···르. 혹시······ 화나셨나요?”


에르는 잔잔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으나, 다이로스에게 대한 행동이라든가 어딘지 모르게 조금 심기가 불편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에르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뇨. 아니에요. 응――? 아! 에르. 차, 착각하시면 안 돼요! 제가 공왕비님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지만, 결코 그런 뜻은 아니니까요!”

“응?”


순간 짚이는 것에 말해봤는데 정답이었나 보다. 그렇지만 역시라고 할까, 에르는 마음이 넓다. 이러한 사소한 일에 착각하고 화낼 리가 없는 거다.


리아는 세상 모든 기혼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저 모른 척 아내를 배려하는 멋진 남편의 모습을.


‘암암. 애초에 여자끼리 한 말이니 이런 거에 화를 낸다는 거 자체가 아웃이긴 하지만.’



“에에?! 그런 거였나요? 행복하게 해준다는 말씀을 믿었는데, 전 그냥 가지고 놀기 좋은 여자였군요. 너무해요, 리아. 훌쩍훌쩍.”

“······.”


리아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지만 이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런 건 아니었다.


‘뭐냐. 이 어색한 연기는.’


국어책을 읽어도 이거보단 나은 수준일 것이다.


거기다 훌쩍거리는 것조차 입으로 내는 어설픈 소리에 불과했다. 눈물을 훔치는 듯한 동작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정말 주변에 종이 뭉치가―― 확성기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리아는 생각했다. 만약 있었다면 지금 당장 저 말도 안 되는 연기를 하는 레이니를 뜯어고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왕비에게 무례라는 건 알겠지만, 그만큼 참을 수 없었다.


물론 레이니는 루비아와 달리 연기에 그다지 재능은 없어 보이니 저게 최선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능 같은 건 문제가 안 된다. 그딴 거야 피나는 연습을 통해 극복하면 될 뿐이니까. 최고는 될 순 없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저것보단 나아지리라.


용납할 수 없는 건 저딴―― 암만 왕비라 하더라도 연기를 우습게 아는 듯한 저런 행동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글지글 리아의 눈이 불타올랐다.


흠칫――


분노가 가득해지는 리아를 보았기 때문인지 화들짝 놀란 레이니의 사용인은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실례하겠습니다.”


팍.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레이니가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으으. 뭐, 뭐 하는 거예요, 엠마.”

“체, 체통을 지키지 못한 왕비님을 훈계한 겁니다.”

“······그 왕비의 머리를 촙으로 때려서?”

“······.”


엠마라 불린 사용인은 본인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돌려서 눈을 피했다.


――이 사람도 은근히 한 성격 하나 보다.


주위에 사람들도 할 말은 찾지 못하고 침묵이 흘렀다.


그런 분위기에 엠마는 당혹스러워하면서 황급히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잘못하신 겁니다. 아무리 연기라도 유부녀에게 오해를 살만한 발언을 하다니요.”

“그러니 촙으로 맞아도 싸다고?”

“촙에 그만 집착하시고. 혹여라도 이스피리아 님께 남사스러운 소문이라도 생기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에―― 여긴 우리밖에 없는데요. 리벨리타스 양이나 다른 분들이······ 어. 그러고 보니, 리아.”

“네네.”


이 어색한 분위기 속 나서긴 싫지만 부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마음이 반영되어 슬그머니 에르의 옷깃을 잡았다.


그런 리아를 본 레이니는 눈을 가늘게 했다. 이 또한 루비아와 많이 닮은 모습이다.



“그렇구나······ 그분과 혼약을 맺은 거군요.”


왠지 처음 들어보는 듯한 반응이다.



“어라? 루비아 씨에게 듣지 못하셨나요?”

“네. 전혀 듣지 못했어요. 하아······ 아마 그 아이는 저흴 놀리려고 말하지 않는 듯하네요. 그리고 얄밉게도 제대로 성공했네요. 저는 엠마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여요.”


리아에게 얄궂게 미소 짓는 루비아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장난이지 않을까······


엄청나게 예민한 루비아다. 후에 들키는 게 무서워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그려지는 상상이었다.



“리아의 낭군님―― 찬크에르 씨라 하셨나요. 저분께선 리아를 정말 많이 사모하시나 보네요.”

“그, 그리 봐주시니 너무 감사드리지만. 어, 어찌 그리 생각하시는지요?”


레이니는 조용히 손짓했다. 귀를 가까이 대라는 제스처였다.


에르에 대한 거다. 거기다 직접 에르에게 듣기엔 민감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다. 쉽게 말하면 무척이나 구미가 당긴다는 뜻이다.


리아는 바로 아직 쪼그려 앉아있는 레이니를 따라 드레스에 흙이 묻지 않게 조심히 배운 대로 고상하게 곁에 앉았다.


레이니는 다가온 리아에 스윽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입가를 가리곤 말했다.



“보통 암만 아내를 위해서라지만, 학원에 사용인을 가장하여 따라 오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그래요······?”

“그럼요! 여차 사실이 알려지면 괴상한 소문이 돌 수도 있거든요. 일은 어떻게 했는지, 소지금엔 문제가 없는지 등, 아니면 여차저차 좀 심한 오해로 수군거릴 수도······”


말을 하다 멈춘 레이니는 고개를 꼬았다.



“음? 리아 같은 경우엔 별로 그러진 않으려나.”

“그건 또 왜요?”

“으으음. 뭐라 설명해야······”


레이니는 살짝 에르를 쳐다보더니 더욱 바짝 붙어 목소리도 최대한으로 죽이고는 말했다.



“리아의 낭군님이요. ――솔직히 너무 잘생기셨잖아요. 일단 전 저렇게 아름다운 분은 처음 만나 뵈어요.”

“······네.”


그야 자신도 처음 봤을 땐 눈을 떼지 못하고 심장이 아플 정도로 벌렁거렸던 피해자였으니 충분히 공감되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건가.


궁금해하고 있으니 레이니가 이어서 말했다. 조금 답답해하며.



“그게 아니에요, 리아는 제대로 공감하고 있질 못하고 계셔요. 알겠나요? 한 나라의 왕비인 제가 처음 뵈었다고 할 정도의 미남이시라고요. 그란도 젊었을 시절 꽤 잘 생기긴 했지만, 저분과 비교하면 짐승과 사람 정도의 차이예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지, 짐승까진······. 공왕님도 나름 중후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이 꽤 미남이시지――”

“――아뇨!”


사심 없는 솔직한 의견이었지만······ 가차 없이 잘렸다.



“아내인 제가 하는 말이에요. 그란은 리아의 낭군님과 비교를 하기엔―― 아니죠, 비교 자체가 모욕과 같은 처사이어요. 어찌 저런 분과 그란을.”

“그, 그렇군요.”


압박감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리아의 입장으로서는 이곳 사람은 전부 잘생긴 미남이었다. 그런데 현지인은 조금 다르게 느끼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에르의 외모가 결코 평범한 건 아니었으니, 자신도 진정한 연예인이라 칭했을 만큼 무언가 한 차원 높은 곳에 있는 사람 같긴 했다.


물론 에르는 마법으로 인해 변한 외모라 순수 타고난 외모라 하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저 변형마법은 혼―― 얼마 전까진 오러 같이 흐리멍덩한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그것에 대응하여 육체를 조율하는 마법이다.


즉 혼에서 DNA의 역할 비스름한 정보를 토대로 육체를 만들었다는 거다. 그러니 에르의 저 외모는 성형 같은 영 생뚱맞은 미술작품 같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어째서!! 나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냐구!’


막상 떠올리니 정말 ‘조금’ 화가 났다.


――모처럼 꼬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건만.


만화에서도 자주 소재로 사용되는 이 외형, 종까지도 바꾸는 마법은 등장 빈도수만큼이나 어찌 보면 친숙한 마법이라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난이도조차 쉬운지 그곳에서는―― 비록 만화라지만 너무나 쉽게 육체를 바꾸었었다.


실제 세상에서는 물론 다르겠지만, 심상마법은 활용도 면에서는 무궁무진하기에 기대를 품기엔 충분하지 않은가. 바로 곁에 에르나 아이리스도 가능했으니 더욱이나.


그런데 막상 도전한 이 마법의 난이도는 혼을 토대로 거의 육체를 재구성하는 수준이라 만화에서처럼 뚝딱해낼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마력조작 능력과 마력량으로는 능히 해낼 만한 일이었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가능하다고 여겼었다.


그래서 신이나 미래의 자신―― 분명 쭉쭉빵빵해질 자신을 떠올리며 달려들었다.


그렇게 실패했다.


당시 혼이라는 건 몰랐다지만, 마법 자체는 DNA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조건을 만족했는데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마법의 발동 자체에 실패한 것도 아니었다.


마법은 제대로 발동했지만, 이상하게도 어찌 된 일인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발동하고도 아무 영향이 없는 마법은 겪어 본 적이 없는 터라 당혹스러웠고, 에르에게 물어보았는데도 그 또한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럼 대충은 알고 있는 게 아니냐 싶었지만······ 매우 심각한 표정을 보이는 에르에게 물어볼 마음은 들지 않았다.


덕분에 멋지게 성장한 여성으로의 변신은 반쯤 포기하게 되었다만······



“왜······ 그러신가요?”


걱정스레 부르는 말에 리아는 고개를 흔들어 흐리멍덩한 눈을 고쳐잡았다.



“아. 죄송해요. 잠시 딴생각을――”

“말해 보세요.”

“어, 별거 아니에요. 그거보다 공왕비님의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게······”

“제 이야기야말로 별 게 아니에요. 미남미녀에겐―― 특히 기품까지 고루 갖춘 상대에겐 어떠한 일이건 간에 이상한 소문 따윈 여간해선 잘 붙지 않는다는, 원초적인 인간의 본성 같은 걸 말한 거여요. 리아도 대강 무슨 뜻인지는 알겠죠?”

“알 것도 같아요.”


레이니가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미인과 미남은 별 이유 없이 여러 방면에서 득을 본다는 거다.


단순히 이쁘거나 잘생긴 이성을 보았을 때 잘해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됐는데, 본능적으로 이러한 사람에겐 왠지 밉보이기 싫다는 심리 같은 걸 말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만약 에르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레이니가 걱정하는 문제들은 발생하진 않을 거란 의미일 거다.


‘그 문제가 뭔진 모르겠지만.’



“이번엔 리아 차례에요.”

“네?”

“그러니까, 리아가 고민하던 거요.”

“저, 정말 별거 아닌데······”


어물쩍 말을 흐리던 리아였지만, 레이니는 똑바로 바라보아 도망칠 여지를 주질 않았다. 성격은 다르지만, 여러 부분에서 확실히 루비아와 모녀지간이라는 게 잘 느껴진다.


‘정말 모녀가 비슷하시네······’


뭔가 그리운 기분에 조금 마음이 편해진 리아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듣고 놀리시면 안 돼요?”

“그럼요. 제가 그 아이도 아니고 소녀의 고민을 우습게 여기는 일은 절대 없답니다.”


그 아이란 루비아를 말하는 거겠지.


새삼 여기서도 악동의 이미지가 강하다라는 걸 느끼며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레이니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물론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마법으로 차단했으며, 입 모양까지도 보이지 않도록 손으로 막는 꼼꼼함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은 레이니의 눈은 점점 커졌다.



“그게······ 끝인가요?”


당혹과 황당함이 섞인 애매한 반응이다.


한편으론 정말 별거 없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도 보였지만, 리아는 아닐 거라며 흘려 넘겼다.



“그, 그런데요?”

“······.”

“무, 뭐가 이상한―― 헉! 공왕비님도 너무 심각한 고민이라 보시는 건가요?!”

“······심각하다면 심각하긴 하네요.”

“역시나!”

“네. 심각하게 행복한―― 염장 지르는 고민이시네요.”

“예?”

“실례.”

“······.”


잘못 들은 건가 싶지만, 다시금 떠올려보면 선명하게도 레이니의 말이 재생 반복되었다. 분명 제대로 들은 거다.



“여, 염장이라뇨! 전 진지한 거예요.”

“리아, 당신이 무슨 심정이든 세상이란 곳에서는 그러한 걸 염장이라고 한답니다.”


뭔가가 싸늘하다. 아니다. 눈빛은 대놓고 싸늘하다.


이상했다. 그저 고민을 말했을 뿐인데. 그것도 거의 반강제적으로 말이다.


‘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이해할 수 없는 기분으로 있으니 레이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아. 그래도 절 의지해 말씀해드렸으니 격언 정도는 해주는 게 도리겠죠.”


축축 처지는 분위기로 레이니는 이어 말했다. 어딘지 모르게 엄청 귀찮아하는 느낌이다.



“리아, 당신은 저분―― 찬크에르 씨의 외모를 보고 혼약하신 건가요?”


‘윽······’


순간 아니려 말하려 했지만, 리아는 양심에 찔려 가슴에 손을 얹었다.



“무, 물론 아예 없다곤 못하지만······ 그래도 전 그런 겉모습만으로 에르와 결혼한 게 아니에요!”

“······솔직한 건 좋아요. 저런 분이신데 아예 사심이 없다면 그게 더 믿기 힘들죠. 하지만! 그건 찬크에르 씨, 저분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우응?”


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가질 않았다. 본인이라면 모를까, 에르가 짜리몽땅한 자신을 보고 해롱댄다는 게 전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애초에 레이니에게 말한 고민 자체가 에르와 대비되게 너무 어려 보이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였다. 다른 말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처럼 보인다는 뜻이기도 했다.


――흑.


새삼 직시하니 눈물샘이 느슨해지는 기분이다.


되도록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만큼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이던 주제였다. 더군다나 이젠 성장이 멈췄을 거라 추측되는 신체로 인해 가뜩이나 더욱 신경이 갔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이니는 작게 콧방귀 뀌었다.



“리아, 잘 들으세요. 혼약이라는 건 말이죠.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상대방―― 찬크에르 씨가 리아가 맘에 안 들었다면 혼약 따위 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아니면 리아는 좋아하지 않는 분과 맺어지더라도 괜찮나요?”

“그, 그럴 리가요! 에르 말고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도 없다구요!”

“그래요. 말했듯 그건 리아의 낭군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 누구라도 연모하는 분이랑 맺어지고 싶은 법이죠. 남의 눈이 신경 쓰이는 건 알겠어요. 또, 사람이니 당연히 배우자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려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다만 그게 배우자가 바란 건지, 아니면 혼자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지 잘 생각해보세요.”

“어······”


레이니의 말대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에르는 단 한 번도, 꼬마처럼 작은 아내를 못 마땅해하거나 불만스러워하는 기색 따윈 보인 적이 없었다. 대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쪽이 부끄러워질 정도의 호의밖에 없다.



“배우자에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게 꼭 신체의 성장일 필요는 없어요. 그런 일차원적인 걸로 고민하신다면 오히려 당신의 배우자는 그거밖에 안 되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꼴이에요. 그리고······”


레이니는 주먹을 꽉 쥐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크으. 저리 헌신하는 멋진 남편과 알콩달콩, 남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도 안 보이면서 이 무슨 사치스러운 고민인가요······”


분노조차 느껴지는 레이니의 말에 혹 부부 사이가 안 좋나 싶었다.


그래서 이런 일은 묻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걸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위기 센서도 위험을 알렸고.


······하지만 호기심에 졌다.



“호, 혹시 공왕비님께서는 사이가······ 안 좋으신가요?”


공왕비는 눈을 끔뻑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확 양손으로 리아의 얼굴을 감싸 공을 잡듯 부여잡았다.


몇 주 전에 볼이 아팠던 상황과 어딘가 비슷하다.



“으에?”

“후후······ 리아, 조금만 생각하시는 게 당신께도 이로울 거여요. 전 왕비―― 왕의 정실이라구요? 체통 때문이라도 눈꼴 시린 일은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다 제 ······가 있는데 창피해서 할 수도 없어요. 그런 건 리아처럼 젊고 파릇파릇한 아이의 특권이랍니다? 어른을 놀리는 게 아니어요. 알~겠~나~요?”


놀린 적 따윈 없었으나 리아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눈이 굉장히 무서웠던 거다.


그런 리아를 잠시 보고 있던 레이니는 얌전히 손을 풀었다.


볼이 따끔해지는 일이 없었기에 안도하면서도 리아는 더욱 긴장했다.


왜냐하면 확신할 수 있었던 거다.


이 사람은 분명히―― 그 누가 뭐라 해도 확실히 루비아의 어머니라고.


성격이 완전 다르다고 여겼던 건 완전한 대착각. 속 안에 있는 근본은 상당히 닮은―― 아니, 그냥 판박이다. 달리 모녀라 불리는 게 아니다.



“리아? 무슨 무례한 생각이라도?”

“아, 아니요!! 그런 건 없습니다요!”

“······좋아요.”

“······.”


예리했던 눈이 한순간에 옆집 언니같이 느슨해진 레이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자! 그러면 우리는 찬크에르 씨가 말한 대로 다른 동물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방긋――


엄청난 변신이다.


전의 상황은 어땠는지 알 길이 없는 이들은 다들 활기찬 목소리에 의아해할 뿐이다. 그들에겐 마법으로 소리를 차단했기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를 모르니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는지 레이니는 입을 다물었다. 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콤플렉스가 자극되는 주제였기에 절대로 입을 열 맘은 없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결정된 진로였지만 레이니에게 토를 달 사람도 없었고, 군말 없이 엠마라 불린 사용인의 안내에 따라 공왕가의 쉼터를 뒤로 했다.


에르만이 살짝 웃고 있는 게 보였지만······ 신경 쓰면 지는 거다.


부끄러웠던 리아는 모른 척 레이니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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