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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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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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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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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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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DUMMY

루시아스 교의 총본산.


대륙의 중앙에 있는 이곳―― 수도가 곧 나라이자 성도인 생명의 신을 모시는 성국, 세인트리안. 그 중심에는 시작이자 심장부인 태초의 교회, 대성당이 있었다.


성국의 신도들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라는 듯 문이 활짝 열려있는 대성당이지만, 그 안에서도 가장 깊은 곳―― 사소한 부정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삼엄한 경비체제를 갖춘 곳이 존재했다.


1급 신관조차도 발을 디디는 것 하나 불허하는, 세인트리안에서 가장 엄중히 관리되는 이곳은 교회 이전―― 최초 생명의 신을 모신 신당이 있는 곳이다.


언제 이곳이 지어졌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이 신당은 기록이 존재하는 수십 세기 동안에도 여전히 발동되고 있는, 현시대에서는 비슷하게 구현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마법에 의해 지금까지 조금의 빛도 바래지 않았다.


그렇게 옛 시대 그대로 보존되어온 신당은 과연 신을 모시는 곳답게 크리 큰 장소는 아니었으나, 내부는 지금이라도 움직일 듯 지극히도 정교하게 조각된 여성의 석상과 함께 엄숙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루시아스 교단의 진정한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이 신성한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자는 몇 없다.


그렇기에 평소 조용한 적막감이 유지되는 신당이건만, 지금은 기도를 드리는 5명의 사람으로 인해 소음이 발생했다.


하지만 신성한 이곳 분위기를 해치기는커녕, 신도가 아닌 자라 할지라도 절로 정숙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경건함만이 더해졌다.



“생명의 신 루시아스 님의 인도 아래 생의 축복이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의 신께 감사드립니다.”


여성의 석상―― 생명의 신, 루시아스의 신상에 기도를 올리고 있던 사람 중 선두에 있던 초로의 남성이 말하자 이어 모두가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복창했다.



“생의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깊게 배례한 그들은 고개를 들고 신당에 마련된 원탁으로 둘러앉았다.


이 신당에 누군가가 있는 것도 신기하건만 기도를 마친 4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은 익숙한 몸동작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여유까지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 신당에 출입이 가능한 단 5명―― 성국의 왕이자 루시아스 교단의 교황, 그리고 4명의 주교들이기 때문이다.


매달 정기적으로 모이는 이들이기에 익숙할 만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는 신의 앞.


그렇기에 교황과 주교라는―― 성국의 최고 수뇌부들이라도 이들의 직급은 엄연히 상하관계가 존재했으나 상석 따윈 없었다. 신의 앞에선 모두 동등하기 때문이었다.


함부로 소란스럽게 하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며 의자 또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했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모습은 이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은지를 대략적으로나마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 기도를 마치는 걸 본 초로의 남성이 입을 열었다.


백발이 성성한 초로답지 않게 목소리는 정정했으며, 모두를 아우르는 눈빛은 강인한 기백이 담겨있었다.



“모두 잘 모여주었다.”


나머지 4명의 사람은 깊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그러고 나서 서로 눈으로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신당에 들어서면 가장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신께 기도를 올리는 것이기에 서로 인사할 틈도 없었던 거다.


다만 이 눈인사마저도 모두 무척이나 조심스런 행동들이었는데――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면 이제부터 회의를 시작하지.”


초로의 남성이 선언하는 말을 끝으로 이 자리의 전원―― 초로의 남성까지도 포함하여 모두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이미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이 무얼 더 끌어올릴 수 있을까 싶지만······ 그것이 아니다.


이들은 반대로 어깨에 힘을 풀었던 거다.


한눈에 보기에도 긴장감이 확 사라진 이들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다들 오랜만에 보는 듯합니다.”

“후~ 그러게. 왠지 진짜 오래간만에 보는 거 같아.”

“그만큼 다들 바빴던 것이 아니겠나요.”

“그렇긴 했지. 교황 예하께서도 잘 지내셨나이까?”

“나야 다를 게 있겠나. 변함없지.”


실제 어깨를 돌려 풀기도 한 자도 나온······ 좀 전의 엄숙한 분위기는 도대체 무엇이었나 싶을 정도의 변모다.


그렇지만 이 신당에서의 회의는 성국의 최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이다.


신의 앞에서 행해지는 의식인 이 회의에서는 거짓 따윈 일절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숨김없이 모든 걸―― 자신의 감정조차도 솔직히 모두 드러낸 것이다.



“자자,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얘기할 거리가 많지 않나. 루시아스 님께서도 우리들의 주절거림보다는 그쪽을 더 즐거워하실 터.”


타국에서의 활동은 제약이 많은 성기사단 대신 언제나 일신성단이 해왔다.


다만 그 활동에 투입되는 부대는 소수로, 이번처럼 일신성단 전체가 움직이는 작전은 수백 년만이다.


이 일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으니······


희끗희끗 머리가 세고 있는 남성―― 질서의 주교, 레이드안 발론드 니벨롱, 그의 주의를 환기하는 말에 다른 자들은 표정을 달리했다.



“음. 먼저 결과를 듣도록 하지.”


이를 위한 회의나 마찬가지였다.


교황의 말에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균형의 주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주교들도 서로 자신이 맡은 바 외의 일은 자세히 모르기에 경청할 준비를 하고는 집중했다.



“청익편성에게서 올라온 보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흑익편성이 벨루디스 중추에 스며드는 데 성공. 큰 지장 없이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합니다.”

“그런가. 노고하고 있는 그들의 고생이 많군.”

“예하의 그 말씀만으로도 충분한 보답이 될 겁니다.”

“그럼 다행이겠다만, 그들의 헌신에는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군.”


기도하는 교황을 따라 주교들도 성국을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기렸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는가?”

“예. 뭔가 있는 건 아닙니다만······”


말을 흐리는 균형의 주교―― 에쿠릴 브리오 자라나스타에게 일동 의아한 눈치를 보냈다.


에쿠릴의 신중한 성격은 알고 있다만, 숨김없이 모든 걸 사실대로 밝히는 이 장소에서 말하기 껄끄러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에쿠릴이 숨길 리는 없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동료이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지였다. 분명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의심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다.


그런 동료들의 심리를 대표하듯, 이 모임의 유일한 여성인―― 포용의 주교, 아베라 자르 디비치온은 입을 열었다.


시간을 벌어주는 듯한 그녀의 의도를 파악한 다른 자들도 특별한 이의재결 없이 넘어가 주었다.



“예하. 꼭 지금 타이밍에 간섭해야만 했나요? 외람되오나 마국―― 여태처럼 마왕 블러드티어가 움직일 낌새는 전혀 없습니다. 혹 잘못되어 벨루디스가 아예 무너지기라도 하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벨루디스는 지금 너무 성장해가고 있어. 이대로라면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명백하잖아.”

“네, 알고는 있어요. 다만 시기가······ 벨루디스가 조금만 더 안정된 상황에서 개입하는 쪽이 낫지 않았나를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

“아니. 인디아의 말대로 지금이 적기지 않을까? 리카드 클로디아노―― 시련을 넘어선 자도 나타났다. 이 이상 늦어진다면 그보다 더한 자가 나타날 수도 있어.”

“역시 레이드안. 잘 알고 있잖아. 모든 건 인간―― 성국을 위해서야. 완전히 무너질 거 같으면 우리가 좀 도와주면 그만 아냐. 사소한 건 대의를 위해서라면 감수해야지.”

“수많은 인간이 희생될 수 있는 겁니다! 사소하다뇨! 여신님의 종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뭐――”


――짝.


짧게 한 번 울리는 박수 소리에 마력까지 내뿜으며 과열되어가던 분위기는 사그라들었다.



“진정들 하게.”


흥분을 가라앉힌 인도의 주교―― 인디아 빌 쿠리스리움과 다른 두 주교는 살며시 머리를 숙여 서로에게 사과했다.



“흐음. 혼란이 빚어지지 않게 조심하려 했건만 그게 오히려 실수였나 보군. 나야말로 사과하지.”

“예, 예하?!”


머리를 숙이는 교황에 다른 주교들이 당황하고 있지만, 정작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편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이어서 말했다.



“리카드 클로디아노, 지금은 디안의 이름을 받았다고 했나? 여하튼 그가 현 마법체계에 의문을 가졌다는 모양이야. 마력레벨이 400 근처에 달하는 인물이다. 곧 진실에 도달할지도 몰라. 그래서 시급히 개입하려 한 거라네.”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 일신성단의 청익편성은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는 에쿠릴의 관할이다. 외부에서 오는 모든 정보는 그의 손을 거치기에 감추려고만 한다면 다른 주교들은 알 도리가 없다.


진작 나왔어야 할 정보가 정기적인 회의에서조차 나오지 않았던 것에 혼란이 생겨났다.



“어, 어째서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그저 단순히 의혹으로만 끝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잠시 사태를 보려 했다만······ 에쿠릴.”


호명 받은 에쿠릴은 고뇌를 멈추고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말로 하면 될 걸 왜?


그러한 의문을 가지면서도 쪽지를 전해 받은 주교들은 눈으로 교황에게 물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리카드와 베르다드의 부학원장―― 세리오 리벨리타스의 대화 내용이다.”


그 말에 주교들은 찬찬히 종이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분히 읽어 내려가던 3명의 주교들에게서는 곧 이해의 뜻이 담긴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미 확신하고 있군요. 그런데다가 치유마법의 배포―― 이를 위한 협력자까지······”

“성국에 대항이라―― 건방진 놈이. 아주 뵈는 게 없나 본데?”


포용의 주교, 아베라와 인도의 주교, 인디아.


여러 감정을 품고 있는 이 둘과 달리 질서의 주교 레이드안은 침착하게 여러 차례 내용을 읽어나갔다.


그러던 레이드안은 시선을 들고 물었다.



“예하. 이 협력자에 대한 상세 설명이 누락되어 있는 듯합니다만, 혹시 알아내지 못한 겁니까?”


그의 물음에 아베라와 인디아 둘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이런 중요한 인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거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교황은 조용히 에쿠릴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받은 에쿠릴은 즉시 대답했다.



“협력자의 이름은 이스피리아, 보이는 외견으로는 11~12세 정도의 소녀라고 합니다.”

“꼬마잖아? 세상 물정 모르는 애니 꼬드기긴 쉬웠겠네. 리카드 놈······ 애까지 끌어들여 이용하다니 몹쓸 녀석이구먼. 도리도 없는 건가. 그래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데?”

“우선 학원에서의 행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베르다드에서 새로운 정책이 시행됐다고 합니다.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알 리가 없잖아?”


아베라와 레이드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부터 베르다드는 연 단위 주기로 매년 마력레벨 측정을 시행한다고 합니다.”

“으응? 전원을? 리카드가 할 역량이 돼?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아닙니다. 무제한으로 마력레벨을 측정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발견한 듯 보입니다. 시간도 매우 짧은 것이 손만 가져다 대면 즉시 밝혀낸다고 합니다.”

“오. 나름 희귀한 물건이잖아. 그러면 문제없겠네. 그리고 그때 확인했으면······ 그 꼬마의 마력레벨은 몇이었는데?”

“······328이었답니다.”


눈을 끔뻑이는 주교들.


침착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던 레이드안조차도 눈을 크게 뜨고는 자신이 제대로 들었나 의심하는 눈치였다.



“자, 잠시만요. 그게 정말입니까?”


놀라 묻는 말에도 에쿠릴은 변함없이 차분히 대답했다.



“네. 신입생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시행했고, 타국의 고위 자제들이 놀라 발설해버린 탓에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지금은 베르다드 전체에 알려졌을 만큼 유명하다고 전해집니다.”

“······그, 그렇지만 그 나이에 그만한 마력레벨―― 시련을 넘었다니요.”

“······.”


경악하는 채로 말문이 막힌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에쿠릴은 이스피리아라는 협력자가 베르다드에서 보인 행적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듣던 주교들의 눈은 점점 커져만 갔고, 전해주는 에쿠릴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침묵하여 신당 안을 더욱 조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개를 흔든 인디아의 침음 소리에 적막감은 깨졌다.



“나이에 맞게 유유자적 생활하는구먼. 하는 짓거릴 봐선 그 꼬마는 자신이 무슨 일에 끼어들었는지도 모르고 있다 보는 게 맞겠지? 보통이라면 그런 일을 하는데 되도록 눈에 띄지 않으려 할 테니.”

“그것도 그렇다만······ 애초에 이 정보는 신뢰할 수 있는 건가? 들어보자면 손가락을 튕기는 묘한 행동이 있다만, 원초마법일 가능성도 보이잖은가.”

“그러고 보니. 묘하게 발동 속도라든가 빠르긴 하지?”

“정보는 청익편성의 ‘잿빛’이 직접 베르다드에서 얻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판단으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긴 어려움. 리카드의 착각일 가능성도 적진 않음.’이라고 합니다.”


출처와 상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니, 출처를 들었기 때문에 인디아와 레이드안은 게슴츠레한 표정이 되었다.


이들이 이러한 밋밋한 반응을 보이게 만든 ‘잿빛’이라는 인물은 청익편성에 배치된 지 얼마 안 되는 신출내기에 불과했다.


물론 그것뿐이라면 암만 신출이라 할지라도 성국을 위해 일하는 동지인데 의심은커녕 경의를 표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릴 거다.


그렇지만 잿빛은 사상이나 신앙심, 그 자질이 심히 의심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솔직히 에쿠릴이 어째서 이러한 자를 청익편성에 넣었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이런 모두의 생각을 읽은 듯 에쿠릴은 입을 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달리 잿빛은 저희 못지않은 신실한 신도입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은 청익편성 내에서도 최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따른 지식 또한 부족함이 없습니다.”

“······네가 그렇다면야.”

“그렇군.”


잿빛은 못 믿더라도 에쿠릴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다가 리카드와의 대화 내용이라든지, 혼자서 잘도 알아냈다고 생각할 만큼 잿빛의 능력 자체는 정말 출중했다.


불안만 없으면 모든 게 만족스러웠으니 확고하게 단언해주는 에쿠릴에게―― 그의 결정을 못 믿는 듯한 무례에 사과하며 인디아와 레이드안은 모든 의혹을 말끔히 걷어치웠다.



“그럼 그 꼬마 말이야. 이쪽으로 데려와도 되지 않아? 아직 어리기도 하니 이상한 사상에 크게 물들지도 않았을 테고, 교육하기도 쉬울 거 같은데.”

“인디아······”


가볍기만 한 언동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아니면 보이는 그대로――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며 잘 챙겨주는 인디아다.


그래서 혹 개인적인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한 것이 아닌지, 레이드안은 날카로운 눈으로 인디아를 쳐다봤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능력이 있는 애를 그런 데에다가 썩히는 게 아까워서 그런 거야.”

“저도 동의해요. 인디아의 뜻이 어떻든, 그리 이상한 말은 아니에요. 아이라면 충분히 교화가 가능할 거예요.”

“오오. 뭔가 걸리긴 하지만 아주 좋아, 아베라.”


2:1로 밀리게 된 상황에 레이드안은 혀를 찼다.



“처우를 결정하기 전에 우선 그 이스피리아라는 자는 어디서 왔는가?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만한 자가 갑자기 나타나다니 그럴 수도 있나?”

“벨루디스 어디 구석 산골짜기에서 왔겠지. 그런 곳이라면 우리가 아직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쓸데없는 주제로 내빼려고 하다니 좀 추하다고, 레이드안.”

“난 네가 아니야.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주장할 뿐이다. 인디아, 너도 말했잖나. 유유자적 생활한다고. 그러한 자가 그런 마력레벨을 가지고도 조금의 풍문 하나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으으음. 단순히 마력레벨만 높은 건 아닌 듯하니 뭔들 해도 눈에 띄긴 하겠네. 가만히 있을 애 같지도 않고. 그래도 우린 그쪽 관할이 아니니까 못 들은 거겠지. 그렇지? 에쿠릴.”


인디아는 확신을 갖고 쳐다봤으나······



“저 또한 시간을 들여 조사를 보내봤으나 어느 하나, 하물며 정확한 출신지조차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돌아온 반응은 반대였다.



“······뭐?”

“벨루디스의 사람은 아닙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듯합니다만, 정확한 소재지는 불명입니다.”

“시, 시골 중에서도 시골인 거 아냐? 있는지도 모를 정도의?”

“그렇게 보입니다. 그들은 베스티디논―― 마국 쪽 관문을 통해 왔다는 듯하니. 분명 아무도 모르는 시골이었을 겁니다.”

“······.”


모두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베스티디논이라······ 싹 다 정리한 줄 알았는데. 확실히 그 근방이라면 선배님들이 놓칠만하기도 하지. 꼬마가 온 곳은 아직 그것들이 남아있는 촌 동네라고 보면 되는 건가.”

“그러면 그 협력자는 정말로 원초마법을······”

“아뇨. 아무리 원초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나이에 시련을 뛰어넘었다는 건 별개의 일이에요. 뛰어난 재목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가능성은 다양하게 열어두고, 성급한 결정은 피해야 할 거예요.”

“그렇지만 이쯤 되면 확정 아니야? 오히려 그만한 힘을 지녔다는 게 납득만 될 뿐이잖아. 나도 아쉽긴 하지만 이 꼬마는 포기해야 할 거 같아, 아베라.”

“아직 모든 걸 안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그리고 교화를 통해서 충분히―― 아뇨,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저희들의 동료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요?”

“음.”

“······.”


분명 모든 진실을 알고도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자라면 동료로 맞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그 나이에 벌써 시련을 넘고 그에 걸맞은 힘도 지닌 듯한 아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일신성단 내에서 최상위를 다툴 것만 같은 아이인데, 앞으로 성장해 나간다면 신성―― 심판관에도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암만 그래도 심판관 중에서도 상위인 제 4위상 위로는 견줄 수 없겠지만, 충분히 미래를 기대할만한 인재라는 데에는 모두 동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자아가 확고하지 않은 아이라는 점이―― 아베라의 말대로 교화가 가능한 시기의 나이라는 게 처분을 생각한 인디아와 레이드안의 마음을 흔들었다.


인간을 위해, 성국을 위해라지만 엄연히 자신들은 루시아스 님의 종. 함부로 아이―― 인간의 생명을 해치기는 싫었다.



“이야기를 더 듣고 결정하셔도 될 겁니다.”


고민에 잠겨있던 둘은 시선을 돌렸다.



“우선 제국의 동향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갑자기?”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짐작되지 않았다.


성국에 협조적인 제국의 행보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저 성국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선에서 벨루디스에 이득을 취해 가려 할 거다.


그 정도라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가 다 아는 일이건만. 아니면 굳이 말해줘야 할 동향의 변화가 나타난 것인가.



“제국은 자원과 인재의 확보를 위해 여러 방면에 손을 뻗는 중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잖아. 잔뜩 부패한 머저리들은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되는지도 모르고 제국이 내미는 제안을 덥석 수락할 테고.”


주변국에 비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벨루디스는였다만 시대의 흐름이랄까. 점점 차이를 벌려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안쪽에서 부패해갔다.


너무나 어리석기 그지없다.


마법을 활용한 기술은 확실히 벨루디스가 타국보다 뛰어났다. 압도적인 차이로.


다만 못 따라잡을 정도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10년 정도만 머뭇거리고 있으면 금세 따라잡힐 거다.


그럼에도 그 이상으로 벨루디스가 더욱 발전한 듯 보이는 건 마국으로 인한 지리적 요건과 무엇보다도 너무나 풍부한 자원들―― 넘쳐나는 고품질의 마광석과 희귀금속이 나오는 광산, 무엇을 심든 잘 자라게 만드는 비옥한 대지가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견제가 전혀 없는 상황에 자원까지 풍부했던 거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발전을 벨루디스는 그들이 잘났기 때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부패해갔다.


하지만 그들이 자만하기에는 공국과 제국은 만만하지 않았다.


우선 몬스터를 길들여 활용하는 루 몬테르 공국.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능력에서 인간을 압도한다. 인간은 세상의 강자가 아닌 것이다.


몸 자체가 강력한 무기인 몬스터가 판치는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순전히 몬스터와는 달리 도구를 사용했기에―― 생존을 위해 인간끼리 뭉쳐 협조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전―― 800여년 전에는 지금보단 인간의 상황이 좀 더 나았지만, 그래도 몬스터란 존재는 그 당시에도 위협적이었다. 그런 몬스터를 이용한 공국은 타국에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기발한 작전의 수행도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마법이나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 의지하지 않는 제국.


제국은 공국이나 벨루디스처럼 내세울 만한 점이 하나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제국이 타국보다 뛰어났던 건 군사력―― 일신의 몸 하나에 의지한 무예만을 추구하는 제국은 병사 한명 한명의 질이 타국보다 월등했다.


2년마다 열리고 있는 최강을 뽑는 투기대회의 경기장은 전사들의 성지로 통하며, 그 대회에서 우승을 한 자는 제국을 넘어 무예를 익히는 모든 사람에게 경외를 받는다 한다.


이러한 공국과 제국은 수많은 역경까지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아무런 위협도 없이 편안히 지내기만 한 벨루디스가 과연 더 뛰어날는지······


이런 모두의 생각을 대변해 레이드안이 짤막하게 말했다.



“우매한 놈들.”


동의한다는 듯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을 좀 먹는 병충 같은 그들에게 줄 동정 같은 건 없다.



“그래도 벨루디스의 왕이나 재상은 괜찮았으니······ 몰래 슬금슬금 일을 벌여야 해서 결과는 시원찮으려나?”

“예. 그다지 큰 이익은 챙기지 못한 듯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연줄을 만들려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했나 봅니다.”

“연줄?”

“후일을 도모하는 거겠지요.”

“새 정권과의?”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용사’라는 자와 접촉을 꾀하고 있습니다.”

“어라라. 그거 그냥 헛소문 같은 게 아니었나.”

“실제로 용사라 불리는 자가 있다는 모양입니다.”

“용사라······. 저번에 듣긴 했지만, 이번엔 뭔가 정보가 있는 건가?”

“예. 벨루디스에서는 꽤나 감추고 싶어 했는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갑자기 정보들이 풀려나기 시작했다더군요.”

“일부러 풀었고 보면 되나. 그럼 역시 벨루디스에서 내세우는 선전용 간판 같은 거 아냐?”

“내부를 안정시키려 했다면······ 나름대로 일리는 있겠군.”


의견을 주고받는 둘을 보며 에쿠릴은 처음으로 난처한 표정을 보였다.



“‘잿빛’도 그다지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만, 그의 개인적인 평가를 보내온 것이 있습니다.”

“그? 남자였어? 선전용이면 여자가 좋지 않나.”


의문을 품으면서도 모두 에쿠릴이 품에서 새로 꺼내 나눠주는 종이를 받아들었다.


빠르게 훑어보던 이들의 눈은 조금씩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 뭐야. 이딴 놈을 용사라는 거창한 칭호까지 주면서 간판으로 내세운다고?”

“동감이다. 어째서 잿빛조차도 쉽게 제압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자를. 거기다 명예로운 이름치고는 인격과 인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니.”

“그, 그래도 제국이 원하여 접근하는 거니 무언가 있지 않겠나요?”


청익편성은 본격적인 전투를 위한 집단이 아니다. 그래도 일신성단의 일원이니 그 나름의 전투력은 지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투 위주의 부대인 백익편성이나 성기사단과 비교하기엔 매우 부족했다.


거기에 잿빛은 유독 전투는 떨어졌고, 정보수집 능력이 남달랐을 뿐이다.


그런 잿빛에게 제압된다······



“희생양인 건가? 그런 거라면야 이해가 가지만.”

“아니아니. 벨루디스를 한데 뭉치려 하는 데 이런 놈으로 그게 가능해?”

“그리고 이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시점에서 벨루디스를 뭉치게 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여요.”

“하긴. 출신이 다른 자를 구심점으로 내세울 순 없겠군.”

“그래. 당연히 반발하는 자가 생겨나겠지. 어디서 굴러온 게 나대냐고.”


자신의 의견이 차례차례 논파 당하자 레이드안은 작게 신음했다.


그렇지만 결코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를 용사로 내세우는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 확신하니까.



“음?!”

“에~ 너 또 내빼려고 하는 거야? 이게 네 안 좋은 점이야. 슬슬 고쳐보도록 하는 게 어때?”

“그게 아니다, 인디아. 이딴 놈을 제국이 탐낸다면 주면 그만이다. 성국에는 아무런 피해도 없다. 더불어 벨루디스가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 떠올려 봐라, 이야기의 흐름을.”


인디아는 고개를 꼬았다.


그런 그를 기다려줄 수 없었는지 레이드안은 먼저 말해줬다.



“공국이다. 공국은 벨루디스에서 뭘 하고 있나? 에쿠릴.”


질문을 받은 에쿠릴은 처음 보였던 껄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루에 두 번이나 목격하게 된 그의 처음 보는 모습에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 된 겁니까, 에쿠릴 옹.”

“아닙니다, 아베라······”


말을 흐린 에쿠릴은 무언갈 떨쳐내듯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공국이 그 협력자를―― 이스피리아를 탐내는 듯합니다.”


다시 한번 침묵이 생겨났다.


조용히 이어지던 분위기 속 말을 끌며 레이드안이 선두로 이 침묵을 끊어냈다.



“소베르비아가······ 나섰다는 건가. 그 소녀를 얻기 위해.”

“잠만잠만! 그 섬뜩한 년이랑 꼬마가 붙는다는 거잖아. 이거 벨루디스 따위보다 공국을 먼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소녀가 공국에 붙는 게 확정인 건 아니지만······ 그렇긴 하군. 우리 쪽에서 소녀를 먼저 확보하던지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하지만 공국 쪽에 무언가를 하기에는······”

“소베르비아 공주······”

“그 년――”


파스텔톤의 주황 머리칼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떠올린 모두는 골치 아픈 표정이 되었다.


소베르비아 루 몬테르―― 그녀는 성국에게 있어서 악몽 같은 존재였다.


처음은 그만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땐 단순 공주가 태어났구나, 하는―― 주교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화제로 오르지 않았던 평범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흐르고, 공주가 4살이 되던 해.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진 공국에서의 활동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지 못했다.


아무리 성국이란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했다지만, 700여 년 가까이 쌓아 올린 공들인 탑이었다. 공국의 명문 집안 자체가 성국의 손과 발―― 신도였을 정도로 아주 깊숙이 잘 정착했던 거다.


무슨 일이 발생해도 금세 상황을 알 수 있었고, 지시를 내려 대처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확실히 통제할 요건이 갖춰줘 있었다.


그런 공국에서 내부 정계 소식이 끊기거나 하는 일들이 발생했어도 우연이겠거니, 그저 무언가 착오가 있었겠거니 여겼었다.


근데 너무 오래 이어졌다. 이상 사태라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아니, 손 뻗을 공간조차도 남지 않았다.


너무나도 빠르게 성국의 기반들이 사라져나갔던 것이다.


연결되어 있던 귀족들은 반역죄에 가까운 죄명으로 좌천 ――몇 세대에 걸친 세월이기에 성국과 명확한 연결점은 찾지 못했겠지만――, 정계에서 힘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공국에 있던 교회의 입지 또한 매우 축소되었다.


이대로 모든 기반을 잃을 순 없었기에 성국도 일신성단을 투입, 어떻게든 개입할 공간을 만들어두려 했다만―― 그때마다 성국이 발 디딜 땅조차도 보이질 않게 미리 차단되었다.


이쪽의 모든 움직임을 아는 것만 같은―― 흡사 미래를 보는 것 같다고, 당시 투입되었던 흑익편성과 청익편성의 대원들은 전율하며 보고를 올려왔다.


도대체 누가 지시를 내리는 건가.


몇 년에 걸린 조사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사령탑은 어느 순간 밝혀졌다.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갑자기 알게 된 최고 명령권자는 그녀―― 소베르비아였다.


그리고 공국의 백성들조차도 어느새 그녀, 아직 어린아이일 뿐인 소베르비아 공주를 전폭적으로 지지. 열성적으로 따르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성국은 그녀를 제거, 더는 불안 요소를 남기지 않기로 하였다.


하지만――


암살을 위해 보냈던 대륙 최고의 암살조직, 카딜라신디의 수령을 고용해 보냈건만 그와 카딜라신디 자체가 공국에―― 암살대상자인 소베르비아 밑으로 들어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언제나 먼저 한 수 앞을 달리던 소베르비아다.


신성이나 백익편성을 보내기엔 꼬리를 잡힐 염려가 우려되어 성국과는 일체의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외부세력을 이용했건만······ 의뢰는 언제나 완벽히 달성하는 카딜라신디가 배반하는 것도 모자라 암살대상에 설득되어 붙어버리다니.


재차 제거하려는 방안도 암살에 대해서만큼은 최고인 카딜라신디의 눈을 속이긴 어렵다.


그런데다가 어쩐지 소베르비아는 제 죽음을 이용해 오랫동안 이어온 성국의 개입 정황을 낱낱이 밝혀내려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에 가까운 의혹마저 들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행보를 소베르비아는 보여왔다.


물론 심판관을 투입하면 공국의 제압은 손쉬웠다.


다만 공국―― 소베르비아는 성국의 연결점을 아예 끊지는 않으면서 힘은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했다.


전혀 흔적이 없는 성국의 연결점을 찾아내는 것도 놀라운데, 그녀는 신기라고도 볼 수 있는 줄타기를 한 치의 실수 없이 지속해왔다.


덕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못 내리는 시간은 늘어만 갔고, 손가락만 빠는 동안 공국 전체가 소베르비아의 의견에 움직이는 상황―― 그녀는 실질적인 왕과 같은 위치가 되었다.


공국 자체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지 않지만, 그로 인해 인간의 생활영역이 좁아지는 건 최악이다.


성국은 인간이 너무 발전하지 않게―― 너무 강해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조율자인 거다. 필요 이상의 약체화는 인간이라는 종 자체의 멸종을 우려한다.


그렇기에 결국 이래저래 공국도 선을 유지하니 손은 쓰지 못하고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에쿠릴, 자세히 알려주게.”


에쿠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국은―― 소베르비아 공주는 협력자, 이스피리아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협력자는 이미 벨루디스에서도 타국의 왕에 버금가는 국빈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엥? 시골 촌뜨기를? 아, 리카드도 뭔가 알아봐서 진언했으려나.”

“아마 그럴 거 같습니다. 협력자가 도착한 후 2일 만에 공문을 내렸다 하니.”

“빠르네······ 근데 그러면 벨루디스에서도 탐내는 애잖아. 쉽게 안 내줄 거 같은데?”

“그에 대해 협정을 했나 봅니다. 소베르비아 공주가 벨루디스에 공식서한을 보냈고, 이후 공국은 벨루디스 내에서의 활동을 완전히 멈췄다고 합니다.”

“그렇다는 건 걔를 주는 대신 공국은 향후 벨루디스에는 발을 딛지 않겠다는 거?”

“협의 내용까진 알 수 없었습니다만, 소베르비아 공주는 진심인 모양입니다. 오늘 공국에서 에인샤론드가 출발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그 아종 드래곤을? 꽤 본격적이네······ 당장 데려가려고 하는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소베르비아 공주가 협정하긴 했지만, 공식적인 건 아니니 공국에 사신을 데려가는 걸로 보입니다. 겸사겸사 협력자에게 공국을 어필하려는 모습이 아닌지 싶습니다.”

“하긴 억지로 데려가서야 공국에 힘을 보태줄 리도 없지.”

“예.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면서 우의를 다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 환심을 끌려 노력하는 거겠지요.”

“그 섬뜩한 년이 그렇게까지 한다라······”


모두가 고뇌에 빠진 깊은 신음을 내는 가운데, 아베라는 한숨을 내쉬고는 무겁고 진지한 눈이 되어 물었다.



“예하. 예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그녀의 말에 여태 말없이 회의의 양상을 보기만 하던 교황은 잠시 루시아스의 신상을 바라봤다.


이윽고 시선을 돌린 교황은 모두에게 눈을 돌렸다.



“레이드안, 자네의 생각은?”

“소녀의 확보 및 처분, 공국으로의 개입도 염두에 두어야겠다고 판단합니다.”

“인디아.”

“소녀의 확보가 최우선. 전선의 확대는 불확정 요소가 너무 많으니 공국―― 소베르비아의 견제는 벨루디스에서의 작업이 끝난 후가 좋을 거 같습니다.”

“아베라.”

“저 또한 소녀의 확보를 우선시하되, 사태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선결과제로 보입니다. 그 뒤에 행동하더라도 늦지 않을 겁니다.”

“에쿠릴.”

“아직 이렇다 할,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섣부른 선택을 하기에는 위험하오니 좀 더 정보를 모아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모두의 의견을 들은 교황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교황의 고뇌를 방해하지 않으려 주교들은 말을 아꼈고,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만치 조용한 신당 안에서 시간은 흘러갔다.


잠시 뒤, 눈을 뜬 교황은 선언했다.



“협력자, 이스피리아의 대한 처분 및 공국으로의 간섭은 보류―― 현 벨루디스의 작업을 우선하며 정보를 모은 뒤 추후 다시 논의하도록 한다.”

“예!”


이와 같은 교황의 결정에 일동 머리 숙여 알겠노라 했다.


이의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천년 간 인간을 위해, 성국을 위해 헌신하며 신의 말을 대신 전해왔던 교황의 의견에 토를 달 이는 성국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뭐, 세인트리안에선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 오갈 거야.”


에인샤론드가 메고 있는 집안―― 구름이 내려다보이는 하늘 위에서 루비아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원은 입을 벌리고는 경악했다.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에르조차도 놀랍다는 시선으로 루비아를 봤다. 다만 낌새로 보자면 에르는 어느 정도 이 여행의 목적을 이해한 듯 보였다.



“보, 보쌈이었다고?! 루, 루비아 씨. 진짜 놀러 가는 게 아니었어요?!!”

“······.”


눈을 부릅뜨면서 말하는 리아만은 왠지 혼자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는 듯했다.



“그게 중요한 거냐······ 넌 진짜.”


어이없어하는 루비아의 모습에 리아는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 그래도 모처럼의 주말인데 모두 모여서······ 아닌가?! 공국에서 놀면 되잖아! 벨루디스와는 다를 테니 처음 보는 것도 많을 거 같고 심심하지 않을 거 아냐? 그리고 공국은 몬스터―― 사람을 잘 따르는 동물도 많다고 하니.’


리아는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벌써 고양이를 현혹하는 마성의 손을 시험할 무대가 마련되다니.


급격히 즐거워진 리아는 싱글벙글해져 누가 봐도 기대하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저 속 편한 애는 놔두고. 대충 말하자면――”

“――네?! 전 애가 아니에요! 어엿한 성인이라고요.”


발끈한 리아가 뭐라 따지고 들지만 루비아는 무시한 채, 다른 이들도 크게 의식하지 않으며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벨루디스에 서한을 보내 협의를 봤다는 모양새가 됐으니 세인트리안은 공국이 방해할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 할 거야. 용의선상에 멀어졌다는 거지. 그래도 경계심을 부추겼으니 조심은 해야겠지만, 완전히 적대하는 길로 돌아섰다는 건 모를 거야.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쪽이 자유롭게 움직일 시간을 벌었다는 거지.”

“그, 그건 알겠습니다만······ 왜 저까지 공국에?”

“라프리트, 너는 아직 정계에 입문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너의 정식적인 데뷔를 위해 벨루디스가 보냈다는 착각을 만들어낸 거지. 이번 협의가 진실로 보이도록. 더불어 암만 후작 가의 영애라지만, 생초짜인 널 사신으로 보내는 거니 여차하면 공국과 벨루디스의 협의는 서로가 만족하진 않는다는―― 그닥 사이가 좋지 않다는 모양새로 만들 수 있지.”

“에인샤론드까지 부르신 건······ 그만큼 루비아 님이 리아 양을 원하고 있다는 어필을 보이기 위해선가요?”

“그렇지. 얜 내꺼다, 찜해 놨으니 거들떠보지도 말란 의미긴 하지. 이렇게 해놓으면 제국이나 쓸데없는 놈들이 알짱거리는 일도 없잖아. 옆에서 끼어들 오는 것만큼 성가신 것도 없으니 사전에 차단한 거야.”

“그······렇군요. 한 번의 행동으로 몇 수를······. 과연 대단하시네요.”


이해한 라프리트는 감탄하고 있지만······ 그녀를 보고 있던 루비아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작게 찼다.



“에휴. 라프리트, 너도 좀 쓸만하긴 하지만 아직 멀었어.”

“네?”


의문을 드러내는 라프리트는 놔둔 채로 루비아는 고개를 돌렸다.



“당신······ 찬크에르. 당신은 또 뭘 노리고 있는지 알았겠죠?”


갑자기 자신에게 돌아온 말에 에르는 당황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했다.


그런 그에게 리아는 눈을 빛내며 기대가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아내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는지 아니면 명색이 공주가 물어본 말을 무시할 순 없었는지, 에르는 아주 작게 숨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들이 학원에서 나온 틈을 타 빈방에 침입, 정보를 얻으려는 자―― 세인트리안과 연결된 사람을 축출. 또한 벨루디스의 정권에 있는 자들이 어떤 움직임을 취하는지를 보아 앞으로의 행동양식―― 아군이 될만한 자를 선별하는 거겠지.”


루비아에게서는 보기 드문 감탄 어린 시선이 나왔다. 자긍심이 넘치는 그녀치고는 가볍게 말을 놓는 에르가 별 신경에 거슬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정확해요. 그래서 남은 사용인과 정보원에게 무슨 짓을 하든 지켜만 보고 모른 척 놔두라고 해뒀죠. 정말······ 어쩌다 리아와 당신이 맺어졌는지 궁금할 정도로 훌륭하네요.”

“응? 당연히 서로 해롱해롱 반해서 맺어진 거죠. 그거 말고 뭐가 더 있겠어요. 루비아 씨도 참. 사랑에 대해서 너무 모르시네요.”

“······그러게. 나도 진짜 알고 싶네.”


왠지 평소라면 눈을 부릅뜨며 맞받아칠 루비아가 퀭한 시선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왜 그런 건지 조금 의아했지만, 남편의 멋진 모습을 보았던 거다. 리아는 다른데 주의할 여념도 없이 에르가 말해준 내용을 이해하려 최선을 다했다. 남편의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못난 아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국에 놀러 가는 것만으로 일석―― 몇조 라는 거지? 어쨌든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노림수를 챙겨가다니. 루비아 씨는 진짜 똑똑하네. 그리고 이 모든 걸 단박에 이해한 에르······ 역시 멋져!’


그렇게 저 혼자 부끄러워진 리아는 몸을 비비 꼬아 혹시 화장실 가고 싶은 거냐고 물어보는 일도 생겼지만, 큰 문제는 없이 에인샤론드는 공국을 향해 날아갔다.


제대로 이해한 건 하나도 없이. 그저 맘 편하게 공국의 여행을 즐길 셈으로.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 입니다


오늘의 첫번째 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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