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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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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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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30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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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DUMMY

고마운 마음도 전하고, 매번 자신만 공격당하는 것에 반격하고 싶어서 한 행동이었건만······ 아무런 말이 없는 조용하기만 한 에르.


리아 본인도 무안해할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에르는 한동안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이렇게 만든 책임도 있고 하니 리아는 자발적으로 솔선수범하여 리카드에게 설명해줬다.


리카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에르의 상태가 신경 쓰이는지 자꾸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기행의 이유 또한 궁금했는지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경청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적막감이 흘렀다.


황당해하면서도 당혹스러워하는, 그 외에도 여러 감정이 뒤섞인 복잡하기 그지없는 얼굴인 리카드다.



“뭔가 떠오를 듯했고, 그걸 확인하기 위함이었다는 겁니까. 뭔지도 모를 엄청난 결계까지 만드셔서?”

“······네. 마, 맞습니다. 죄송해요, 리카드 씨. 갑자기 이상한 부탁을 해서.”


리아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흥분이 가라앉고 보니 본인의 행동을 잘 되돌이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 찔리는 게 있어서가 아니다.



“괘, 괜찮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저도 덕분에 식견 높은 마법을 접견할 기회가 되기도 했고요.”


술식은 전혀 모르겠지만요, 라고 덧붙인 리카드는 다시 차를 내리러 갔다. 심적 갈증이 심했던 리아가 쭉쭉 들이킨 탓이었다.


능숙하게 차를 준비하는 리카드를 보며 리아도 준비해온 것을 꺼내기로 했다.



“에르, 그걸요.”

“······.”

“에르?”

“아아. 그거 말이군. 알았어.”


멍한 눈이었던 에르가 살짝 고개를 흔들더니 [차원수납]을 열어 3장의 종이를 꺼냈다.



“응?”

“일단 앉아보세요.”


바로 알려주지는 않는다. 찻주전자를 들고 있기도 하니 위험하지 않은가.


즐거운 듯한 리아의 반응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리카드는 소파에 앉았다.



“이건 뭡니까?”

“뭘 거 같으세요?”


겉으로 표출될 정도로 즐거워 보이는 리아의 말에 리카드는 빤히 테이블에 펼쳐진 3장의 종이를 쳐다봤다.


3장의 종이는 깔끔하게 잘리긴 했지만, 단순히 공책을 잘라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각각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조금씩 달라 보이는 술식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들을 잠시 자세히 살펴보던 리카드가 말했다.



“처음 보는 술식이네요. 닮은 구성을 가진 술식도 본 적이 없고요. 그래도 핵심 부분이 같은 듯하니······ 난이도나 효과를 달리해놓은 비슷한 마법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맞습니까?”

“정확해요. 대단하시네요.”

“도대체 무슨 마법이길래······”

“그건 직접 해보시면 아실 거예요. 아, 혹시 저기 제일 어려운 술식이요. 사용하실 수 있을 거 같나요? 제 나름대로 준비하긴 했는데 너무 어렵나 해서요.”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가능은 할 거 같습니다.”

“역시 리카드 씨. 그러면 제일 어려운 걸로 한 번 해보세요.”

“지금 말입니까? 그럼 제 연구실로 가시죠. 바로 옆에 있습니다. 여기서 하기엔 혹여 실수라도 하면――”

“――괜찮아요. 걱정 붙들어 매세요.”

“네?”


제일 어려운 마지막 단계의 술식은 생각보다 많은 마력이 들어가니 제어에 실패한다면 학원장실이 난장판이 될 거다.


그렇게 되면 이곳에 있는 서류들이나 여러 도구도······ 험한 꼴이 되겠지.


염려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리아는 얼른 보고 싶었다.



“위험해질 거 같으면 조정해드릴 거예요.”


에르를 한 번 쳐다본 리카드는 고민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했다.



“알겠습니다. 해보도록 하죠.”


아무리 조정도 해준다지만 리카드는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침착하게 술식을 살펴보고 간단한 모의 연습도 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


제법 시간을 소비해 진지하게 검증하는 작업까지 마친 리카드는 눈을 감고 마지막 정리를 했다.


‘드디어!’


기대감에 부푼 리아와 함께 리카드가 품에서 작은 지팡이를 꺼냈다. 간소한 장식이 있는 금속 막대기와 머리 부분에 푸른빛의 투명한 마광석이 끼워진 지팡이였다.


배웠던 대로라면 분명 값비쌀 마광석엔 특별한 술식 같은 게 새겨져 있진 않았다. 그렇지만 마도구가 아닌, 마법 보조용의 지팡이이므로 정상이었다.


이 마법 보조용 지팡이―― 일명 마법지팡이를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장점으로는 마력의 집결을 원활히 하는 데 있다.


부족한 마력조작 능력을 커버한다고 봐도 무방한데.


술식 마법은 술식을 만들고, 마력을 주입, 발동어――이미지――와 함께 마법이 구현. 이 3단계를 거쳐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기본 원리이다.


하지만 술식은 마광석의 가루로 진을 그려 놓은 것이 아닌 한, 보통은 마력으로 길을 그려 놓는 식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체되면 될수록 길은 흐려지고, 마법은 불발로 끝나게 된다.


즉 마력만 낭비하는 거다. 거기에 마력은 양이 많을수록 조작하기 어려워진다.


마력조작이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면 아무리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자신의 마력을 십분 활용할 수가 없었다. 마법에 한에서는. 간단한 마법밖에 못 하는 것이다.


이에 그걸 보충하기 위한 마법지팡이다.


마광석은 마력을 흡수한다. 이 성질을 이용하여 마법 발동에 필요한 마력을 마광석에 저장. 미리 준비하는 것으로, 술자는 술식의 길에만 집중하면 됐다.


이것으로 마력조작이 서툰 사람, 또는 마력조작은 능숙하나 마력량은 적었던 사람도 부족한 부분을 메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마법지팡이만 있으면 모든 게 만사 오케이는 아니었던지라, 마광석을 길들이는 작업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마광석은 마력을 흡수하기만 한다. 방출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즉석에서 방출하기 위해선 뛰어난 마력조작 능력이 요구됐다. 그게 아니라면 마광석의 마력을 원료로 하는 진을 그려 사용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된데다가 가장 중요한 술식의 길을 만들 때 사용하는 마력까지도 흡수해버린다.


마법은커녕 마력만 빼앗기는 꼴이다. 그래서 마광석을 길들이는 작업―― 자신의 마력에 물들게 해 수족처럼 부릴 수 있게 만들어야만 했다.


과정 자체는 지니고만 있으면 일상 중 자연히 나오는 마력을 빨아들여 알아서 소유자에게 맞게 변하니 간단했지만, 기간은 상당히 길어 족히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억지로 마력을 주입하더라도 길들이는 기간 자체는 크게 달라지질 않는다니 영락없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이것이 수도에서 봤던 모험가 같은 사람들과 달리 학생들은 작고 간소한 지팡이를 사용했던 이유였기도 하다.


마법지팡이 자체가 비싸기도 한데다, 어설프게 길들인 지팡이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사용해오던 지팡이가 훨씬 다루기 편하고 효율도 좋았던 거다.


일부 재력 있는 집안의 학생들만은 졸업 후에 사용할 더 좋은 지팡이를 미리 구해 수업이 끝난 후 길들이는 작업을 한다고 하나, 보통은 졸업한 이후에나 슬슬 새 지팡이를 구하는 실정이다.


이전에 생각했었던 것처럼 우수하니까 안 쓰는 게 아닐까 했던 단순한 이유는 아니었다.


이래저래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마법지팡이는 형태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루비아의 같은 경우 맨날 가지고 다니던 부채가 마법지팡이였다.


그 외에도 검 같은 무기를 마법지팡이로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잘못 손상되면 수년간 길들여왔던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지기에 잘 추천하진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라프리트는 평소에도 훈련의 연장선이라면서 지팡이를 아예 쓰질 않는다고 했다.


‘음―― 그래서 라프리트 씨는 마력의 압축을 하실 수 있었던 건가.’


리아가 볼 때도 마력조작의 훈련에는 지팡이 같은 외부적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훨씬 좋을 거 같았기에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결국 서로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완벽한 것은 없다는 거다.


마법지팡이를 쓸지 말지는 본인이 정하는 거겠지.


간단하게 정리한 리아는 마력이 모이는 것에 생각을 멈추고 앞을 봤다. 술식에 마력이 주입되고 있었다.


고대하던 순간이다.


여기서부터는 집중해야 한다. 리아는 혹여 리카드가 실수하진 않나 유심히 살피면서 지켜봤다.


과연 이랄까.


놀라게 해주려고 일부러 이미지 구축에 도움이 될 설명을 일절 해주지 않았건만, 마법의 발동은 충분히 가능할 듯싶었다. 전해져오는 감각과 마력도 밝은 초록빛으로 보이니 확실했다.


‘술식마법의 장점이기도 하겠다만 이건 순전히 리카드 씨의 역량이겠지.’


이윽고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리카드가 외쳤다.



“[발동].”


무슨 마법인지 모르니 임시로 정한 발동어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발동하는 것이 또 리카드의 우수함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왔다!’


마법의 효과 대상은 리카드 본인이었다.


마력이 의지를 가진 듯 리카드의 몸을 뒤덮고는 변환되어 사라졌다.



“······.”


리카드는 눈을 끔뻑였다. 한 차례 자신의 몸을 만지기도 하면서 살펴보던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실패······한 것입니까?”

“아뇨. 제대로 성공하셨어요. 과연 대단하셨어요. 그렇죠, 에르?”

“잘도 저딴 불편한 방법으로 해냈다고 나름 감탄하긴 했어. 그런데 정작 본인이 발동했는지도 모른다는 건 우둔한 걸 넘어서 한심스러울 뿐이야.”


말을 약간 순화해서 한 듯한 기분이다.


‘혀도 차고 있지만, 아마······ 아니겠지?’



“아하하··· 어, 어쨌든 제대로 하셨어요.”

“그렇습니까······”


기대하던 반응이 아니다.


무엇인지 말해줄 수도 있지만, 그러면 원하던 반응보다는 꽤 약한 어정쩡한 모습을 보일까 싫다.



“저기저기. 제일 쉬운 마법으로 해보세요.”

“네?”

“빨리요!”

“네, 넵. 알겠습니다.”


연기지도를 했던 일 때문인지 리카드는 빠릿빠릿하게 대답하고는 군말 없이 지시대로 술식을 보더니 눈을 감았다.


이번에도 제법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방금 해본 것도 있어서 그런지 곧장 눈을 뜨더니 술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력을 주입―― 마법은 실패 없이 즉시 발동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리카드 본인이 대상이다.


마력은 변환되어 사라졌다.


잠시 자신의 손을 진지하게 보고 있던 리카드는 말없이 재차 술식을 구축하고는 마법을 사용했다.


신중하기 이를 데 없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던 리카드는 곧 눈이 크게 뜨이더니 지팡이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팍!


자신의 손을 내리쳤다.


소리도 그랬지만 상당한 힘을 주고 내리쳤는지 리카드는 인상을 썼다. 그렇지만 아픔을 참고 곧바로 다시 술식을 구축하고는 마법을 발동시켰다.



“············.”


리아는 말이 없는 리카드를 기다렸다.



“이건······ 치유마법입니까······?”

“네!”

“세 가지 술식 전부 말입니까.”

“맞아요. 어느 정도에 맞춰야 할지 몰라서 3단계로 나눴는데. 기왕 분류한다면 제일 쉬운 게 하급치유, 다음이 중급치유, 제일 어려운 게 상급치유에요. 하급치유는 살짝 베이거나 타박상 정도를 치유할 수 있고요. 중급은 내상 같은 좀 깊은 상처까지는 아마 가능할 거예요.”

“상급은······”

“상급은 사지의 손실까지 치유할 수 있어요. 다만 너무 큰 부위면 여러 번에 걸쳐서 사용해야 할 거예요.”

“그렇······습니까······”

“네!”


밝게 대답한 리아는 기다렸다.


눈으로까지 전파되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기대감이 가득한 리아는 리카드가 소파에 앉는 것을 차분히 지켜봤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반응했다.



“감사합니다, 이스피리아 양. 혼자 모든 걸 다 하시게 해 면목 없습니다만······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리카드는 고개를 숙였다. 앉아있는 상태임에도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절절히 전해져왔다.



“어······ 아, 아뇨. 억지로 술식을 의식하는 건 좀 귀찮았는데 몇 번 연습하니까 쉽게 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 머리를 들어주세요.”

“그렇군요. 벌써 그렇게까지······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리카드의 고개가 더욱 깊이 내려갔다.


······


·········


············아니다.


이건 아니야.



“그게 아니야!!”


벌떡 일어난 리아는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절대 안 올라올 것 같았던 리카드의 머리가 빠르게도 올라왔다.


에르도 놀라면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리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손가락으로 척, 리카드를 가리켰다.



“제가 원한 반응은 그게 아니에요!!”

“예······?”

“졸도하실 것처럼 놀라 나자빠지셔야죠! 그게 제가 원하던 리카드 씨의 반응이에요!”

“예······?”

“예, 만 하실 게 아니에요! 얼른 해보지 않습니까?!”

“예······? ――가 아니고.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


리아는 테이블에 놓여있던 확성기를 잡았다.



“어······. 아······, 아! 우, 우와!! 저, 정말 놀랍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믿을 수가 없습니다. 벌써 제 목적에 한 발짝 성큼 다가갔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


확성기를 쥔 리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 어설픈 연기로······ 연기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이, 이스피리아 양. 진정하시고 이, 일단 그 서류뭉치를 내려놓으시겠습니까?”

“확성깁니다! ――안 되겠어요.”

“뭐, 뭐가 안 됩니까······”


리카드는 불길함을 느낀 듯 눈에 두려움이 담겨갔다.



“이런 상태로는 관객들 앞에 내놓을 수 없어. 루비아 씨만큼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창피당하지 않을 만한 상태로는 만들어야 해.”

“죄, 죄송합니다만. 이스피리아 양, 저는 학원장이지 극단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

“――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리카드 씨를 최고의 연기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처절한 리카드의 외침과 다시 연기지도가 시작되었다.


리카드는 도움을 바라며 에르에게 눈치를 줬지만, 돌아온 거라곤 안쓰럽게 쳐다보는 눈길이 전부였다.


박력 넘치는 리아에게 뭐라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잠시 후――


만족스러운 표정의 리아는 느긋하게 소파에 앉았다. 그 맞은 편에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눈에 초점이 흐린 리카드가 고개를 떨구곤 중얼거리고 있었다.



“연기라······ 학원장에게 필요한 덕목이었을까요······. 아, 사람들 앞에 설 일도 많을 테니 필요할지도 모르겠군요. 넓은 의미로 보면 귀족들을 상대할 때도 필요하고요. 이스피리아 양께선 그걸 깨달아서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시려 한 건가요······”


자포자기한 듯 뭔가를 받아들이고 있다.


‘아······ 좀 심했나.’


아무리 최고의 연기자라는 높은 목표라도 처음부터 강도 높은 연습이었다. 초심자인 리카드에게는 고된 일이었을 거다. 모든 상황극이 끝나고 차분해지자 조금은 미안해진다.


어색하게 위로의 말을 생각하던 리아의 눈에 건네준 3개의 치유마법 술식이 보였다.



“리카드 씨!”

“예······ 저의 연기력에 아직 부족한 점이 있습니까? 아, 당연히 많겠군요. 저따위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을――”

“――그건 이제 됐어요. 다음에 보충하면 돼요. 그것보다 리카드 씨. 리카드 씨도 마력의 압축을 하실 수 있으시죠?”


흐리멍덩했던 리카드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어, 마력의······ 압축이요?”

“네. 이렇게요.”


리아는 루비아들에게 설명했을 때처럼 손에 마력을 압축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뭐······뭡니까? 어떻게 마력이?!”


‘······응?’



“리카드 씨도 마력레벨 300을 넘기려 하셨을 거 아니에요? 지금······도 압축되어 있으신데요?”

“제······가요?”


믿을 수 없게도 정말로 모르는 듯싶다.



“네. 마력레벨 300쯤 되셨을 때 몸에 마력이 가득 차셨을 텐데요.”

“어······ 그러고 보니 그렇긴 했습니다. 멈춰있을 순 없어서 억지로 마력을 더 담았습니다만.”


‘아하. 그래서 전체적으로 압축되어 있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압축된 거로군. ······으응?’



“그러면······ 압축하시는 방법도 모르시고 어떻게 알고 하신 거예요? 몬스터의 마력이라도 살펴보신 건가요?”

“몬스터? 몬스터도 마력의 압축이라는 걸 합니까?”

“일단은 그래요. 마수종이나 마물종은 처음부터 압축해서 쌓고요.”

“뭐, 뭣이라?! 잠깐, 그렇다면······ 외형이 변하는 건 마력 때문에? 아니, 마력이 신체에 그만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소리인가? 몬스터나 마수, 마물종의 외형이 개체마다 다른 건 그러한 이유고. 그리고 몬스터가 그렇다는 건, 사람도 무언가의 변화가······? 그 외에도 또 무슨 영향이······”

“몰랐는데도 하셨다는 거죠?”

“아, 네? 예. 얼떨결에 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건 무슨······”

“······이게 아들이 말했던 재능충이라는 건가. 진짜로 있긴 했네.”

“예? 아이리스 군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리아는 소파에 깊게 몸을 묻었다.


기분이 나빠 보이는 모습에 에르와 리카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불안에 떨며 이를 지켜봤다.



“리카드 씨는 어떻게 몬스터를 알아보세요?”


혼자 잔뜩 고민에 빠져있던 리아가 묻자 조심스레 눈치를 보던 리카드는 화들짝 놀라면서 답했다.



“외형도 외형이지만 마, 마력이 저희―― 인간이나 동식물과는 다르게 느껴졌기에 그걸로 판단했습니다.”

“몬스터의 마력도 느끼실 수 있는 분이 본인의 마력이 어떤지는 모르셨습니까······”

“······네에.”


‘크으······ 확실히 재능충들은 주위에 짜증을 유발하는구나.’


먼 옛날 아들이 울화통을 치면서 말했던 더러운 재능충이라는 것을 떠올린 리아였지만······ 막상 곰곰이 생각해보면 혼자선 알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주위에는 마력레벨이 300 이상 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다, 만나봤던 몬스터라도 300을 넘기지 못한 단순 마력의 압축에만 성공한 몬스터뿐이었을 거다.


만약 300을 넘긴 몬스터와 조우했다면······ 술식마법만을 사용할 줄 아는 리카드로서는 대적하긴 힘들지 않을까 한다. 다른 비장의 뭔가가 있지 않은 한은.


‘잔뜩 준비하고 싸우려 해도 그 정도 되는 몬스터가 모를 리도 없고.’


그래도 몬스터의 압축된 마력을 정확히 느끼고도 몰랐다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았나.


‘아닌가······?’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이다. 몬스터가 자주 출몰은커녕 근처에 잘 다가오지 않는 나트알에서조차도 그랬다.


그런 시골에서조차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는데 문명 사회에서는 오죽할까.


분명 사람과 몬스터와의 비교 자체를 하지 않았을 거다.


그저 몬스터니 다르다고만 생각했겠지. 자신도 훌륭한 견본이자 조언자인 에르가 없었더라면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 다시 재능충인 리카드에게 짜증이 생겨났지만, 리아는 억지로 다스렸다.


‘그래. 멋진 여성은 쿨해야지. 리카드 씨가 엘리멘탈 마스터라는 창피한 이명 값을 할 뿐인 걸 어떡해.’


그렇다. 머리 한편에 에르나, 몬스터의 마력을 어렸을 때부터 손쉽게 느꼈던 자신이 스쳐 지나가서가 아니다.



“암. 나는 그런 재능충이 아니지. 난 제대로 된 노력파지. 어쨌든 리카드 씨.”

“예옛!”

“리카드 씨에게는 과제를 드릴 거예요.”

“과제요?”

“네. 치유마법을 연구해야 할 시간이 대폭 줄었으니 앞으로의 시간은 그쪽에 할당하세요.”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리카드를 향해 리아는 세 손가락을 펼쳤다.



“우선 첫 번째는 마력의 압축을 더욱더 하세요. 다만 이번엔 제대로 의식하면서 하세요. 꾸준히 하신다면 마력조작의 숙련도와 마력레벨도 향상될 거예요. 물론 제어가 가능한 범위에서만 하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잘 아시죠?”


아직 영문을 모르면서도 리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는 제가 쓰는 방식의 마법을 익히세요. 리카드 씨도 제가 다른 체계의 마법을 쓴다고 눈치채셨죠?”

“······예. 술식마법 자체를 모르셨던 데다 마법의 발동 속도, 술식으로는 구현하기 힘들 것 같은 현상들을 일으키셨기에 어렴풋하게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설명해드리자면 제가 쓰는 마법, 저는 일단 심상마법이라고 부르는데. 생각―― 이미지와 마력조작의 숙련도가 일으키고자 하는 현상에 부족함이 없다면, 거기에 마력량이 충분하다면 발동하는 마법이죠.”

“술식은······”

“술식은 고려하시지 않아도 돼요. 심상마법도 마력의 흐름―― 술식이라고 할만한 건 있는데 딱히 의식할 필요는 없고 일부러 길 같은 걸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구성되요.”

“그 말씀은······ 술식마법은 이스피리아 양이 부르시는 심상마법에서 파생된 마법이라는 겁니까?”

“그건 알 수 없죠. 제 고향과는 다르게 발전했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거죠.”

“그걸 제게······. 괜찮으신 겁니까?”

“네. 오히려 꼭 필요하실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신성――이라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까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진 리카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알고 계셨습니까.”

“루비아 씨와 라프리트 씨에게 들었어요. 일신성단이라는 집단과 함께요.”

“그분들께······”


여러 감정이 담긴 한숨과 함께 리카드는 차를 마셨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도 보인 리카드는 잠시 뒤 찻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숨기려고 말씀드리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그저 제 일에 더 휘말리시지 않게 졸업하실 때까지 입을 다물 셈이었습니다.”

“졸······업이요?”

“예. 이스피리아 양께서는 고향에 돌아가 학교를 세우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이곳 사정에 신경을 두시기보단 학업에 충실하셔야죠. 시간은 아직 넉넉할 테고요. 연구해놓은 치유마법 술식도 있으니 나머진 혼자서――”


듣다가 이상함을 느낀 리아는 말을 잘랐다.



“잠시만요! 시간이 넉넉하다고요?!”

“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루비아와 라프리트에게 들었던 이야기로는 분명 몇 년 안에 벨루디스는 크게 기울 수도 있는―― 아니, 기울 거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면 나라의 이상이나 정세가 변동하는 기운이 생겨날 것이다. 나라가 기우는 정도의 스케일이니 그 여진 또한 거대할 터.


그걸 아무리 학원에 기숙하고 있다지만 졸업할 때까지 변화해 가는 상황을 모를 수가 있을까.


암만 좋게 그려봐도 그렇게 생각하긴 어렵다.


그런데 리카드는 정말 시간이 넉넉하다고 여기고 있는 듯 보였다.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리카드 씨는 앞으로 몇 년간 사태는 급변하지 않을 테니, 제가 졸업할 때까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죠?”

“이, 이스피리아 양을 무시하거나 그런 건 결코 아닙――”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에요. 리카드 씨는 몇 년간은 벨루디스의 상황이 변하지 않을 거라 보시냐구요.”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아챈 듯 리카드의 눈이 커졌다.



“소베르비아 공주님께서······ 그리 판단하고 계십니까. 그래서 제게 과제 같은 걸 내리시고, 치유마법의 술식을 주신 겁니까?”

“네. 미리 대비하셔야 할 거 같아서요.”

“그런······겁니까. 그만큼이나 상황이······.”

“정말 모르셨나요?”

“예······ 교단의 활동이 활발해졌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거기까지 상황이 나빠졌을 거라고는 내다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문대로의 선구안을 지니셨다면―― 공국의 빛께서 말씀하신 대로 흘러가겠죠.”


아무런 반론이 없는 모습에 리아는 감탄했다.


‘역시 루비아 씨는 뭔가 굉장하신가 보네. 똑똑해 보이시기는 했지만.’


다만 그 자리에 있던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라프리트 씨도 알고 계시던데요?”

“······라, 라프리트 양께서도?”

“네. 루비아 씨와 죽이 척척 잘 맞았어요.”

“······.”


‘어, 어째 리카드 씨 정치의 흐름이라든지 잘 모르시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리카드는 입을 벌리고는 놀란 기색을 전혀 숨기지 못하였다.


아무리 후작 집안이라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된 라프리트가 아는 내용을 리카드가 모른다고 생각하니 좀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학원장이라는 직책에 있는 자다.


원에 있는 시간이 많을 테고, 암만 대단한 사람이라 칭송이 자자해도 결국은 사람. 각자 잘하는 분야와 못 하는 분야가 있는 것처럼 리카드도 마찬가지겠지. 몸이 두 개도 아니고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을 거다.


마법에 대해서는 굉장히 뛰어난 리카드라도 정세에 관해서는 많이 뒤처지는 모양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니 마음속에 꽤 높았던 리카드의 평가가 조금 곤두박질쳤다.


그걸 느끼며 역시 준비해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리아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루비아 씨가 교단에 대항하는 데 힘을 보태주시기로 했어요.”

“······녜? 아, 아뇨! 지······지금 무어라 하셨나요?!”


혀가 꼬였는지 발음이 이상했다.



“루비아 씨가 힘을 보태주기로 하셨다고요. 그 일의 시작으로 이미 벨루디스에서의 활동은 모두 철회하셨대요.”

“······그, 그게······ 그게 정말입니까?”

“음. 못 믿으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볼 때는 딱히 거짓말을 하시는 거 같진 않았어요. 저는 사실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


조용히 무언가 생각에 잠긴 리카드는 곧 깊은 여운을 남기는 신음을 흘렸다. 아마 무언갈 깨달은 듯했다.



“알겠습니다. 말씀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뭘 생각했기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리카드도 믿어주기로 한 모양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된 거니까 앞으로는 루비아 씨와도 연락을 취해서 대응해 나가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그게 세 번째 과제에요. 루비아 씨 엄청나게 똑똑하시니까 분명 도움이 되실 거예요.”

“예. 그분께서 함께해주신다면 무척 든든합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리카드는 빤히 쳐다봐 왔다. 그러더니 일어나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입학식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최대한의 예를 담은 인사를 해왔다.



“정말 무어라 감사를 전해야 할지.”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분위기다.


부담스럽다······


정말 너무너무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진짜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한다.


‘원판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다 큰 성인이 질질 짜는 건 좀······’


괜찮다고 해도 “아뇨, 그럴 순 없습니다!”라며 서로 사양하는 모양새로 길어질 거 같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리아는 서둘러 치마를 펼쳐 오른손은 가슴에 대는, 경의를 표하는 자세로 답례했다.



“리카드 씨가 나섰기에―― 리카드 씨가 노력하셨기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시작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일방적인 감사는 됐어요. 서로 뜻이 맞아 함께하는 거잖아요? 리카드 씨야말로 좋은 뜻을 갖고 노력해주셔서 감사해요.”

“······.”


······반짝반짝, 빛나는 뭔가가 좀 더 그렁그렁해졌다.


리아는 초조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 그리고 벌써 다 끝난 것처럼 좋아하는 것도 일러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르니까요.”

“······예. 그 말씀대로지요.”

“네. 그러니까 제가 내준 과제도 열심히 하셔야 해요. 세리오 씨도 리카드 씨가 지도해 해주셔야 하고요.”

“제가 말입니까?”

“가르치시다 보면 배우시는 것도 있을 거예요. 아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설명도 같이 부탁드릴게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자연스러운 척 자세를 푼 리아는 힐끗 리카드를 쳐다봤다.


‘괘, 괜찮나?’


아직 조용하기만 한 리카드다. 하지만 바람이 통했는지 한 차례 고개를 깊게 숙여 감사를 전한 리카드는 조금은 개인 얼굴로 일어섰다.


보이지 않게 주먹을 움켜쥔 리아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제 일도 다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 볼게요. 늦으면 루비아 씨가 잔소리할 거예요.”


제 할 말만 한 리아는 서둘러 입구로 갔다.



“이스피리아 양.”


뒤에서 조용히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리아는 못 들은 척 나가려고도 생각했다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신경 쓰여 돌아봤다.



“학원 생활은 즐거우십니까?”


리카드는 밝게 웃고 있었다.


이에 리아도――


“네! 즐거워요. 데리고 와주셔서 정말로 고마워요, 학원장님.”











끼익――


일부러 기름칠을 덜 한 경첩에서 작게 소리가 나며 문이 닫혔다. 숙인 고개를 들고 리카드는 테이블 위를 봤다.


손을 뻗어 3장의 종이를 집었다.


그저 공책을 찢은 종이다. 어쩐지 누군가의 의향이 반영되어 이렇게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보통이라면 이토록 중요한 내용을 간단한 쪽지 돌리듯이 공책에 적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치유마법······’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치유마법이 손에 들어왔다. 수년을 고생고생했는데도 얻지 못했던 것이 허무할 정도로 너무나도 쉽게.


자신도 막상 연구한다면 쉽게 치유마법을 술식으로 정립할 수 있었을 거로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이스피리아 양······”


단계별로 나누어진 술식.


분명 그녀는 자신이 바라던 목적―― 치유마법을 배포한다는 목적에 맞춰서 이렇게 나누었을 것이다.


협력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이만한 것을 자신이 만드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을 거다.


어쩌면 그녀가 졸업할 때까지도 완성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아니―― 사지의 결손까지 치유할 수 있다는 상급치유 술식은 그녀가 없었다면 아예 만들 시도도 못 했을 거다.


사지의 결손을 고치는 건 1급 신관 중에서도 소수만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한 치유사가 교단에 속하지 않을 리는 없으니 허튼 상상이 아니다. 그녀가 없었다면 꿈에 다가가기는커녕 지금도 제자리걸음이다.


그것도 모자라, 술식마법 보다 고등 마법이라 확신할 수 있는 심상마법이라는 것까지 전해줬다.


물론 알려주기로는 개인의 수행이 절대적인 마법인지라, 딱히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하여 대충 설명해준 것에 그쳤을 뿐이긴 했다.


그래도 방향은 제시해줬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자기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 불만 따위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여기까지 받기만 하고 불만을 표한다면 그건 너무 양심에―― 양심이 있는지나 모를 사람이겠지.



“[발화].”


화르륵.


리카드가 들고 있던 종이가 타들어 갔다.



“앞으로 바빠지겠군요.”


지금도 나름대로 바쁜데 더욱 격무에 휩싸인다······ 평소라면 연구할 시간이 줄어 한숨이 나올 일이지만 지금은 기대감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리카드는 갑자기 인상을 찡그렸다.



“그전에―― 감시자부터 어떻게 해야 하겠지만요.”


『리카드. 미행이 붙어있다.』


문을 나서며 [염화]로 전해준 찬크에르의 말이었다.


그쪽 일에 전문인 사람들인지 뭔가 걸리는 듯한 느낌은 들었었지만, 설마 미행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짚이는 사람은······ 아쉽게도 너무 많다.


공국, 제국, 그리고 벨루디스의 귀족 파벌들의 자제. 외에도 다양한 목적을 갖고 접촉하려 하는 사람들까지. 너무 짚이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먼저 정체를 밝혀내려 하기엔 상대의 목적도 명확하지 않고, 괜한 경계심을 부추길 수도 있다.


‘다음번에는 더욱 조심히 미행이 따라붙겠지.’


그렇다면 가만히 놔두는 게 상책일 거다. 알아차린 시점에서 미행 따윈 의미도 없으니. 평상시에 조금만 주의하면 될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찬크에르 씨는 정말 보기와는 달리 잘 챙겨주시는군요.”


미행을 알려준 것도 그렇지만, 슬그머니 학원장실에 마법을 펼쳐주는 것도 그렇다.


뭔 마법인지는 당최 모르지만, 오히려 그것이 찬크에르가 마음을 써줬다는 걸 보여주는 부분일 것이다. 필시 그만큼 엄청난 마법일 테니.


‘다정하신 용왕님이네요.’


생김새와 보여지는 인물상과의 괴리에 살짝 웃음이 나올 거 같았다.


똑똑.


결국 참지 못하여 잠시 웃고 있으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순간 분위기를 바꾼 리카드는 빠르게 방문자의 마력을 확인했다. 상황이 상황이고 하니 이제는 정말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확인한 방문자는 익숙한 상대―― 세리오 리벨리타스, 부학원장이었다.



“안녕하세요, 학원장님.”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들어온 세리오는 학원장실을 둘러봤다.



“······이스피리아 양은 벌써 돌아가셨습니까?”

“예. 너무 늦으면 소베르비아 공주 전하께 혼나실 거라더군요.”

“그렇습니까······ 저도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좀 아쉽네요.”

“앞으로 기회는 많으실 겁니다.”


리카드는 손을 펼쳐 외쳤다.



“[하급치유].”


마력이 세리오를 뒤덮고 술식에 따라 변환되어 사라졌다.



“어······ 이건···?”

“피곤해 보이셔서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체력은 좀 돌아오십니까?”

“조······금 편해진 거 같기도 한데······요?”

“그렇군요. 체력도 보충되는 모양이군요. 이거라면 며칠 더 밤을 새워도 되겠네요. 협력 감사합니다, 세리오 씨.”

“어, 아뇨. 감사할 거까지야―― 응? 에에에에?!! 이거 치유마법입니까?!”

“예. 이스피리아 양이 완성하셨습니다.”

“네?!! 벌써요?!”

“그렇습니다. 저는 아무 도움도 주질 못했는데 받기만 해서 면목이 없지만요.”

“호, 혼자서요?!”


눈이 떨어질 듯이 부릅뜨고 있는 세리오가 웃겨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 웃지만 마시고요. 제대로 설명해주세요!”

“아아, 죄송합니다. 일단 앉으세요. 제법 이야기가 길어질 겁니다.”


차를 준비한 리카드는 세리오의 잔에도 따라주고 마주 앉아 오늘―― 불과 몇 분 전에 일어났던, 지금도 꿈인지 믿기 힘든 일들을 말해줬다.


경악하며 소리도 높이며 묻기도 하였지만, 차분히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세리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치유마법이라든가 시련을 뛰어넘는 방법이라든지 그렇게 뚝딱 해치울 수 있었던 겁니까? 그, 그리고 벨루디스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었던데다, 소···소베르비아 공주 전하께서―― 루 몬테르 공국이 지원해 주기로 했다고요? 뭐, 뭐가 뭔지······”


혼란 가득한 세리오의 마음은 이해됐다.


치유마법이나 마력의 압축에 관한 건 차치하더라도, 소베르비아의 협력을 얻은 것―― 루 몬테르 공국의 협력을 얻는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것도 모양새로 본다면 벨루디스가 내놓는 대가도 없으리라. 국빈이라고는 하나, 실질적인 권한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 이스피리아가 벨루디스의 무언가를 담보로 약조할 수도 없으니.


순전히 이스피리아, 그녀가 이루어낸 업적―― 아니다. 그녀밖에 못 하지 않을까 싶을 업적이다.


실제로 벨루디스에서 협력을 구하려 해봐도 이미 세인트리안에 먹잇감으로 정해진 판국에 끼어들어 괜한 공국까지 불똥이 튀려 하진 않을 터다.


‘질 높은 마광석이 채취되는 광산을 넘긴다 한들 손익 가치를 따져보지도, 거들떠보지도 않겠지.’


그만큼 벨루디스의 입장에서는 협력을 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녀는 그런데도 해낸 거다.


‘조금 불온한 소문도 있는 소베르비아 공주님과 친하게 지내신다기에 걱정했건만 이러한 일을······ 응?’


순간 리카드는 걱정에 휩싸였다. 그 소문 그대로면 어떡하나 해서.


어쩌면 벨루디스 대신 그녀가 뭔가의 대가를 지불하는 게 아닌가.


고민에 빠진 리카드였지만―― 결론은 금방 났다.


‘찬크에르······ 그분이 계시니 어련히 잘하시겠죠. 애처가시니.’


――떠넘기기로.


모질 수도 있지만, 자신은 할 일이 많았다. 거기에 너무 주제넘게 나서면 찬크에르의 잔소리가 날아올 거다. 그것도 엄청나게 길게······


변명 아닌 변명을 생각한 리카드는 진지한 표정으로 세리오를 쳐다봤다.


지긋이 바라보니 세리오가 움찔했다.



“무, 뭐···뭐가 더 있나요?”

“예. 사실 세리오 씨에게 고백할 게 있습니다.”

“고, 고고고백, 고백이요?!”

“그렇습니다.”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마음이 약해졌지만 리카드는 자신을 다독였다.



“떳떳하지 못하여 말씀드리기 죄송스럽습니다만······”


말하기 어려운 듯 리카드의 목소리는 작아졌는데, 그때 세리오가 덥석 손을 잡았다.



“괜찮아요.”


달래주듯 다정한 목소리다.


살짝 홍조를 띠며 말하는 세리오에게 리카드는 눈을 떼지 못했다.



“세리오 씨······”


그녀에게서 용기를 얻은 것인가, 아까보다는 가볍게 말이 흘러나올 거 같다.


당사자임에도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다. 그런데 자신이 주저하거나 내뺄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새 꽉 손을 마주 잡은 리카드는 피하지 않고 당당히 고백했다.



“세리오 씨도 각오해주셔야겠습니다.”

“인제 와서 새삼 각오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 건 진작 돼 있었거든요.”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세리오의 눈이 똑바로 자신을 바라봐왔다.


‘그렇군요.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까. 각오가 부족했던 건 저였군요.’


크게 숨을 내쉰 리카드는 허리를 폈다.



“저와 함께해주십시오, 세리오 씨. 본심은 아직도 세리오 씨께서 이 일에 관련되지 않길 바라오나, 미행도 있고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말려든 꼴이 된 점은 정말 죄송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세리오 씨가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물어보실 것도 없이 전 당연히 리카드 님 곁에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말려들었다니요?”

“그렇죠. 각오를 굳히신 분께 드릴 말은――”

“――아뇨아뇨.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뭐에 말려들었다는 건가요?”


정말로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는 표정이다.



“교, 교단과의 일 말입니다. 암만 마음이 편해졌대도 함부로 발설하여 세리오 씨를 끌어들인 것이 아닙니까. ······세, 세리오 씨?”


이상했다. 어째서인지 이야기를 들은 세리오는 입을 벌리고는 멍하니 있었다.


당혹? 황당? 혼란?


딱 이거라고 정확히 꼬집을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세리오에게 교차하였다.


자신이 한 말 중에 무언가 그녀의 심중을 건드린 것이 있었던 건가.



“아! 세리오 씨, 전 세리오 씨의 안전을 염려했던 것뿐으로 결코 다른 뜻을 품지는――”

“하아······. 그렇죠. 그러시겠죠.”


조금 불량스러워진 얼굴이 된 세리오는 잡았던 손을 빼더니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옆에 쌓여 있던 서류들에 팔을 올리고 주먹 쥐어 턱을 괬다.


그러면서 “눼눼. 당연히 그럴 리가 없죠. 꿈도 야무졌지요.”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세, 세리오 씨?”

“아무것도 아임다. 헛된 희망을 품고 단순히 그것이 깨졌을 뿐임다.”

“······.”

“것보다 이건 뭠까.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아직도 서류로 장난을 칩니까.”

“그건 제가 그런 게 아니라 이스피리아 양이―― 아뇨,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철부지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세리오의 수많은 쏘아붙임을 리카드는 혼나는 학생처럼 얌전히 듣고만 있었다.


결국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마력의 압축인가 하는 걸로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으니 그걸로 나름 됐나”라, 중얼거리는 세리오의 말을 끝으로 겨우 어떻게든 정상적인 대화는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세리오의 눈치는 계속해서 살폈다······


암담했다. 어떻게 이리된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더욱.


게다가 이스피리아가 기념이라면서 주고 간 자신의 초상화―― 혹독한 연기지도 끝에 나온 침울한 표정의 얼굴이 그려진, 마법으로 그려 매우 사실적인 그 초상화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강탈해간 세리오가 감상했고, 그걸 지켜보다가 깨달았던 거다.


그때 이스피리아는 말했었다.


재현이라고······


그렇다. 그녀는 떠오를 듯했던 게 아니었다. 이미 진작에 떠올려놓고는 맞춰보고 있었던 거다.


단순히 즐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로 그런 거였다.


고작 그런 연유로 그 고된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니 믿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만 뭐가 됐든 오늘 이 기억도 오래갈 거다.


이스피리아에게 불평을 말하기엔 곁에 있는 그가 무섭고, 받은 은혜도 많다. 그저 연기력이 늘었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오늘 하루 받은 게 아무리 많았다지만, 정신적 타격으로는 극심한 손해였고 대적자였다.


‘아아······ 오늘은 정말 암담한 날이네요.’


그렇게 댕해진 리카드는 크게 낙담했다. 전해줘야 하는 말이자, 물어봐야 했던 일에 대해선 전혀 기억도 하지 못한 채.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헤헷. 몰래 새벽에 투척하고 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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