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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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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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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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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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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쪽

54

DUMMY

다그닥 다그닥.


일정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나아가는 마차 안에서 라프리트는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는 안네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그래? 안네.”

“······.”


묻는 말에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던 안네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응?!”


사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말을 건 것이었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안네이기에 많은 이목이 쏠렸을 리아와의 포옹을 나무랄 것으로 예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라 당황하였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안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


혼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얼렁뚱땅 둘러댔는데, 다행히도 먹혀들었다. 안네는 더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러나 입을 다물어 버려 마차 안은 조용해졌다.


아무런 말 없이 이동하는 게 처음도 아니건만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기분이 들어 조금 조바심이 들었다.


결국 이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 라프리트는 조심히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안네 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앗, 으응! 아니, 갑자기?! ――크흠. 갑자기 사과라니 무슨 일이에요, 안네.”


찌릿, 째려보는 안네의 시선에 라프리트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


다시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 눈치를 살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안네의 표정이 이상하게 어두워져만 갔다.


정말 어찌 된 일인가.


당혹스러우면서도 이런 그녀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어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안네는 고개까지 숙여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또 한 번 사죄했다.



“도와준다며 잘난 척 말씀드렸건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데다, 그것도 모자라 그분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괜히 제가 쓸데없는 말을 하여 아가씨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 같아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뭔 소리래.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당혹감에 휩싸인 라프리트는 차분히 안네의 말을 정리해봤다.


그리고 이해하게 됐다.


‘안네도 참. 너무 사람이 좋아서 탈이라니까요.’


괜한 것까지 신경 써주는 안네다.


그런 그녀에게 평소 자신을 돌봐줬던 감사함도 가득 담아 라프리트는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괜찮아. 안네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난 지금의 상황도 아주 마음에 들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어.”

“아가씨······”

“그러니까 안네도 이제 얼굴 펴. 난 정말 괜찮으니까. 응?”


다정하기만 한 말에 안네는 벌떡 일어나 마차 안임에도 무릎을 꿇고 예를 보였다.



“다시는······, 다시는 이러한 추태를 보이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도움이 되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아가씨.”

“아, 아니, 추태랄 거까지야. 그리고 안네는 언제나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걸.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지금처럼――”

“――아닙니다! 다음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신변 조사를 철저하게 하여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신변 조사······?”

“예. 설마 그분께서 결혼하셨을 줄은. 제 일생 통한의 실책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도와주겠다며 다리를 놓아줄 생각을 했다니······ 창피할 따름입니다.”

“다리······??”


뭔가 이상했다.


벨루디스 뿐만이 아니라, 공국과 제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리아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나? 그것에 도움을 주지 못하여 사죄한 게 아니었던가?


이해할 수 없음에 라프리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안네? 리아 양이 결혼한 거랑 내가 친하게 되는 거랑 무슨 연관이 있어?”


리아가 찬크에르와 결혼한 건 축복해 마지않을 일이다.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을 아는 자신이기에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기쁘기만 했다. 친구가 되더라도 분명 문제 될만한 건 없어 보였다.


그러하건만······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언젠가 보았던―― 현실을 인정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을 안네가 딱하다는 감정까지 담아 보내왔다.


어쩐지 조금······ 기분이 나빠진다. 그렇지만 안네가 자신에게 이러한 시선을 보내오는 것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라프리트는 대답을 바라는 눈초리로 바라보자 안네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 저에게는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안네, 어떤 상황이라도 아가씨의 편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세상 모든 위협이 아가씨를 향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안네의 충절은 정말 고마워. 약간······ 무서울 때도 있지만······. 그런데 그건 그거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아······. 도저히 인정하려 드시질 않으니 어쩔 수 없군요. 저도 본의는 아닙니다만 말씀드리도록 하죠.”


다시 한번 언젠가 있었던 일과 비슷한 안네의 말에 라프리트의 눈썹이 살짝 움찔했다.



“아가씨, 세상에는 멋진 남성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



“그러니 한 번의 좌절로 너무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자신을 열심히 가꾸신다면 반드시―― 분명 찬크에르 씨 정도의 멋지고 품위 있는 남성이 아가씨께도 찾아올 겁니다.”


······???


······!!!!



“에엑?! 뭐!!! 아, 안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왜, 왜, 왜 내가 찬크에르 씨랑!”

“서, 설마, 본인의 마음도 눈치채지 못하셨던 겁니까. 딱하게도······.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모한다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시게 되셨으니 다음번에는 더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지금처럼 주위만 맴돌다 끝나진 않으시겠지요.”

“잠시, 잠깐만!”

“그래도 이스피리아 님과 친구가 되시고 기뻐하시니 아예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군요. 첫 경험치고는 나름 훌륭했다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살짝 꼴사나워지신 점이 있긴 하지만요.”

“기다려!!”


라프리트는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안네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소리도 한 듯했지만 다급했던 라프리트의 머릿속으로는 입력되지 않았다.



“정말로 기다려줘, 안네.”

“네에······.”


놀난 눈치로 고개를 끄덕이는 안네.


그런 그녀에게 라프리트는 분명 빨개졌을 자신의 얼굴을 들이 내밀었다.



“우선! 어째서 그런 착각을 하는 거야? 아. 일단 말해두겠는데, 내 얼굴이 빨개진 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거야. 마음을 들켜서 부끄러워졌다든가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네······. 그런데 착각······이요?”

“그래! 착각!”

“전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입학식이 끝나고 만나 뵈셔도 될 것을 일부러 도착하시는 시간에 맞춰서, 그것도 몰래 숨어서 바라보시기까지 했잖습니까?! 왜 이제 와서 아닌 척을 하시는지요?”

“아니야! 난 찬크에르 씨를 보러 간 게 아니라고!”

“에? 그럼······ 설마!”

“후우······ 그래. 뭘 어떻게 봤길래 내가 찬크에르 씨를 노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제야 이해하는 듯한 안네.


라프리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리로 돌아가려 했으나······ 어쩐지 불안했다. 조금 전 안네의 말을 이해했다, 생각했건만 전혀 달랐기에 더욱이나.


그래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확인해보려 했는데······ 묻기도 전에 결과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표정에 모든 게 드러났으니.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기에 내적 갈등이 심해 보이는 안네에게 물어봤다.



“안네?? 지금 내가 누굴 만나러 갔다고 생각하고 있어?”


안네는 경악한 표정을 수습했다.



“일부러 저에게 확인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아가씨의 뜻을 존중――”

“――아니. 난 진지하게 묻는 거야. 누굴 보러 갔다고 생각해?”

“그······ 아이리스 군을······.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그런 데다가 아이리스 군은 찬크에르 씨의 아드님이시니 성장하시면 분명 멋진 청년으로――”

“――아니야!”

“엇. 그럼······ 설마!”

“그래. 리아 양을 보러 간 거야.”


계속 나올 것만 같은 한숨을 참으면서 라프리트는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그러고는 안네가 함부로 발설하지 않을 것을 다짐받기로 했다.


평소라면 똑 부러진 안네에게 이런 일은 하지 않을 테지만, 지금은 조금―― 아니, 꽤 불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심상치 않은 시선을 안네가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그 눈빛에 라프리트는 움찔하고는 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

“으응? 아니, 부르셨나요? 안네.”

“지금 제가 하는 말은 모두 아가씨를 위한······ 아뇨. 아가씨와 이스피리아 님, 두 분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아가씨도 소중한 이스피리아 님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으시겠지요?”

“다, 당연하지요. 어찌 제가 리아 양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 아가씨. 전 언제나 아가씨의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다만······ 이번만은 마음을 접어주세요.”

“뭘······요?”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고, 저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혼까지 하여 아이까지 있는 화목한 가정을 파탄 내는 행동은······ 제아무리 아가씨라 하더라도 저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네?”

“오늘따라 더 고집불통이시군요. 그만큼 이스피리아 님께 향한 마음이 강하시다는 거겠지만. 후우. 어쩔 수 없군요. 그렇다면 저도 가슴이 아프나 아가씨를 바로잡기 위해 인내하겠습니다.”


숨을 들이마신 안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내뱉었다.


――전혀 엉뚱한 소리를.



“백번 양보해서 여성끼리 사랑을 할 수도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이미 남편에 아이까지 있는 유부녀를 가로채 가려 하다니요!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다지만 아가씨는 상도덕도 없습니까!”

“······.”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어서 그런지 안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머리는 완전히 정지하지 않아 천천히 한 글자씩 입력된 말들을 해석하였다. 덕분에 이내 모든 뜻을 정리할 수 있었다.


――사랑에 눈이 먼 자신이 찬크에르에게서 리아를 빼앗으려 한다는 그 말이.


정말 어디서부터 꼬이면 이러한 상황이 될 수 있을까······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황당하달까, 어처구니없달까, 아니면 화가 난달까.


복잡하기 그지없는 심경이었지만, 라프리트는 흔들리는 멘탈을 붙잡고 외쳤다.



“그것도 아니야!!”


온 감정을 담아서 소리친 라프리트는 안네를 붙잡고 그녀가 착각하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되물어가며 일일이 정정해주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어지간한 일은 모두 해낼 수 있던―― 완벽하게만 보였던 자신의 전속 사용인은 ‘연애’라는 종목만큼은 아주~ 취약하다는 것을.


아니, 취약하다는 표현은 안네를 위해 순화한 거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젬병이었다.


하지만 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겐 기회가 없었으니.


어렸을 때부터 계속 자신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안네가 언제 연애와 관련되어 본 적이 있겠는가.


막 성인이 되자마자 거의 바로 후작 가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전에 사랑을 해봤더라도 단순 어린아이의 소꿉놀이 수준이었을 터다.


‘그런데다가······ 생각해보면 안네가 자주 보던 책들은 전부 연애소설이었죠.’


여태 알지 못했던―― 꿈꾸는 소녀 기질이 강한 안네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 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더 큰 착각을 하기 전에 알았다고 생각하면 다행이었고, 가족과도 같은 안네와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기뻤다.


복잡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라프리트는 평소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안네를 훈계하였다.



“아, 아가씨······ 도, 도착한 듯합니다.”


면목 없다는 표정의 안네가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했고, 진이 빠질 대로 빠진 라프리트는 맥없이 대답했다.



“하······ 그렇군요.”


라프리트는 안네가 열어주는 마차의 문을 나와, 마부, 루케가 내밀어주는 손을 잡고 힘없이 내려왔다.



“아가씨, 상당히 소란스러웠던데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뇨. 별일은······ 조금 있긴 했는데 괜찮아요. 고생하셨어요, 루케 아저씨.”

“별말씀을.”


일단 주인이 노고를 위로하기에 고개를 숙이며 답했던 루케였으나, 궁금증을 참을 순 없었는지 안네에게 시선으로 물었다.


하지만 안네에겐 자신의 치부나 다름없는 이야기였던데다, 발설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했기에 말할 리가 없었다. 모른 척 그냥 흘려넘겨 버렸다.


그러한 안네로 인해 루케는 더욱 궁금한 듯싶었지만, 차마 주인이 갈 길을 막을 순 없어 곧장 물러서며 예를 취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가씨.”

“네. 금방······ 다녀올게요.”


길을 열어주는 루케에게 다시금 감사를 전한 라프리트는 자신의 아버지―― 엘리아드 아포이 디안 리벨리타스의 호출로 돌아오게 된 별장을 바라봤다.


부른 이유는 짐작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추측할 필요조차 없었다.


‘분명 리아 양 때문이겠지요.’


최고 국빈으로 지정된, 화제의 중심인 그녀와 친하게 지낸다는 건 유명하니 아버님에게 흘러 들어갔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다만 아버님―― 리벨리타스 후작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라프리트의 손에 살짝 땀이 났다.


매번 자신에게 떼쟁이 같은 모습만 보여주던 친근한 아버님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후작이라는 지위에 걸맞은 위엄과 냉혹함을 겸비한 사람인 것이다.


그것을 직접 느껴보기도 했다.


더불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후작 가의 장녀라지만, 오라버님도 있는 자신은 권한이나 권력은 거의 없다시피 한걸.


그러니 지금 리벨리타스 후작과 만나는 이 일은 매우 중요했다.


여차하면 리아를 도와줄 협력자를 얻을 수도 있는 중요한 자리이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어느 날인가 차갑게 거절당했던 때를 떠올리며, 라프리트는 안네가 열어주는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라프리트 아가씨.”

“다녀왔어요. 아버님은 어디에 계세요?”

“서재에 계십니다.”


반겨주는 사용인들을 뒤로하고 라프리트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안네······”

“네, 다녀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안네가 아무리 자신의 전속 사용인이라 하더라도 이 자리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심적으론 꼭 데려가고 싶었지만.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라프리트는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아버님, 라프리트예요.”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온 건 이 집의 집사였다.



“오셨습니까, 라프리트 아가씨.”

“네. 아버님은?”

“안쪽에 계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중후한 생김새의 집사, 바탄 오를란스가 안내해주는 곳을 따라 라프리트도 실내로 들어섰다.


그리고 서재에는 예상치 못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오라버님?”

“어서 오거라, 라프리트.”

“네에······ 다녀왔습니다.”


의문은 들었지만 라프리트는 일단 바탄이 꺼내주는 의자에 앉았다.



“오라버님은 어째서 여기에? 영지에 가 계신 게 아니었나요?”


물음에 자신과 같은 연둣빛의 머리칼을 넘기는 오라버님이자 차기 가주인―― 아즈랄 샬리온 디안 리벨리타스는 살짝 웃었다.



“너도 그리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구나.”

“으읏. 농담하시지 말고요.”

“하하하. 미안하다. 네가 꽤나 밝아진 듯해서 나도 모르게 조금 골려주고 싶었구나. 분명 베르다드에서 좋은 만남을 가졌던 거겠지.”

“네. 정말 좋은 친구가 생겼지만······ 오라버님은 그걸 듣고 싶으셨던 게 아닌지요? 일부러 영지에서 오신 것도 이 때문이고.”

“······.”


말없이 아즈랄은 차를 마셨다.


그런 그의 태도에 조금 조바심이 들었으나, 라프리트는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바탄이 어느새 가져다준 차를 마시며 차분히 기분을 가라앉혔다.


그러던 때에――


탁.


여태껏 조용히 서서 책을 읽고 있던 리벨리타스 가의 가주, 엘리아드 아포이 디안 리벨리타스 후작이 읽고 있던 고서를 덮고 다가왔다.



“잘 돌아왔단다, 라프리트야.”

“네.”


꿈속의 내용을 떠올렸던지라 라프리트는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레 대답했는데, 엘리아드 후작은 마음에 두는 기색도 없이 밝게 웃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냉철한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하아······ 아버님. 괜히 서로 떠보지 말고 이야기하도록 하죠. 이스피리아 양―― 리아 양 때문에 부르셨죠?”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응?’


뭔가 석연찮은 후작의 반응에 라프리트는 의아했다.



“나도 일단 이야기를 듣고 싶다만······ 먼저 가 볼 곳이 있단다.”

“가······ 볼 곳이요?”

“음. 폐하께서 부르시는구나.”

“네?!”


‘왜 폐하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혹스럽긴 하지만 벨루디스의 왕인 아크티알이 부르는 거다. 신하인 라프리트에게 거부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얌전히 따를 수밖에.


다만, 한 가지 의외였던 점은 마저 차를 마실 시간을 줬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에게 껌뻑 죽는 아버님이라도 이러한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여 곧장 출발할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다.



“잘 마셨습니다, 바탄.”


조용하고 무거운 티타임을 마친 라프리트는 머리 숙여 배웅하는 바탄과 사용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후작 가의 깃발이 걸린 마차에 얌전히 올라탔다.


안네도 뒤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마차에 올라타는 것을 보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찰싹!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려 하는 후작의 손을 때렸다.



“얘, 얘야.”

“아버님은 저쪽, 오라버님 옆에 앉으세요.”

“하, 하지만 오랜만이지 않니. 우리 함께 즐거운 이야기라도――”


찌릿――



“아, 알겠구나······”


엘리아드 후작은 “내가 뭣 하러 귀엽지도 않은 아즈랄 옆에······”라 투덜거리며 맞은편에 앉았다.


대놓고 차별하는 듯한 발언에 아즈랄은 어색하게 미소만 지었다.


라프리트는 그런 둘을 내버려 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고 도착할 때를 기다렸다.






왕성에 도착해 먼저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린 아즈랄이 내밀어 오는 손을 잡고 라프리트도 내려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라프리트는 엘리아드 후작과 함께 왕성으로 들어갔다.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방문을 허용했는지, 도중 한 번도 제지되지 않고 경비병들의 인사도 받으며 곧바로 아크티알의 집무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에 라프리트는 긴장하며 열린 문으로 후작을 따라 들어가 정중히 인사했다.



“폐하의 옥체를 뵈옵니다.”

“음. 잘 왔다. 고개를 들라.”

“예.”


라프리트는 고개를 들고 많은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아크티알을 쳐다봤다.



“학업에 정진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호출하여 미안하구나, 라프리트여.”

“아닙니다, 폐하. 신하 된 도리로서 부르신다면 언제라도.”

“고맙구나. 자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 불렀단다. 서서 하기는 그러니 일단 앉거라. 자네들도.”

“감사드리옵니다.”


라프리트는 같이 예를 표한 후작과 아즈랄을 따라 일어나 집무실에 마련되어 있는 손님용 의자에 자리했다.


모두가 앉은 걸 본 아크티알도 집무를 보고 있던 책상에서 일어나 라프리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동석이라니······.


아무리 같은 왕족의 피가 흐르는 사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신분의 차이가 있건만, 차기 가주도 아니고, 기껏 따져봐야 조카에 불과한 라프리트에겐 이 또한 엄청나게 파격적인 우대였다.


그만큼 자신을 통해 듣고 싶은 내용이 절실하다는 것이겠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알진 못하겠다.


그런 의문과 함께 벨페르가 그의 뒤에 대기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차도 준비하지 않고 미안하군.”

“급하게 부르신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배려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흠.”


아크티알과는 그리 많이 만나보진 않았지만, 언제나 친근하고 다정하게 대해주긴 했었다.


물론 대놓고 각별히 대하거나 한 적은 없었고, 그마저도 아마 친척으로서 조카를 이뻐한 것에 불과한 일이겠지만······ 오늘따라 유독 친근하게 대한다는 느낌이다.


착각은 아닐 거다. 이례적인 행보를 계속 보여오니 말이다.


다만 그것이 리아를―― 친구를 재보는 듯한 느낌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기다리지 않고 먼저 운을 띄었다.



“실례지만, 폐하께서 저를 호출하신 까닭은 리아 양······ 이스피리아 양 때문으로 사료되옵니다만. 맞습니까?”


함부로 왕에게 먼저 질문하는 무례에 엘리아드 후작이 나무라는 시선을 보냈으나 무시했다.


아크티알도 너스레 웃으며 용서했다.



“그렇단다. 그런데······ 친밀하다고는 들었다만, 벌써 애칭으로 부르는 사이가 되었느냐?”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라프리트는 의혹이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그리 무서운 눈초리로 보지 않아도 된단다. 그저 짐의 명으로 국빈이라 지정한 사람들이니 어떻게 지내는지 신경이 쓰여 부른 거란다.”

“직접······ 리아 양을 부르셔서 물으셔도 되지 않습니까? 국빈이니 성으로 부를 명목은 많으실 텐데요?”

“라트리트!”

“괜찮다네, 엘리아드 후작.”

“실례했습니다, 폐하.”


옆에서 후작이 사과하는데도 라프리트는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아크티알을 볼 뿐이었다.


그런, 평소와 너무 다른―― 패기가 넘친다고 해야 하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듯한 모습에 조용히 보고만 있던 아즈랄까지도 매우 당황했다.



“······솔직하게 말하도록 하지. 그녀들을 국빈으로 지정했다지만, 아는 것이 전혀 없다네. 그래서 라프리트여. 그대에게 이야기를 들으려 호출을 한 것이야.”

“저에게서 무엇을 듣고 싶으신 겁니까?”


물음에 아크티알은 대기하던 벨페르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벨페르는 조용히 마도구를 꺼내더니 작동시켰다.



“경계할 필요는 없다. 그저 주변에 말이 새어 나가지 않게 막는 것뿐이야.”

“상당히······ 조심하시네요.”

“불필요한 소동을 막고 싶을 뿐이란다.”


그 의견은 라프리트도 찬동하는 바였기에 불만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후 아크티알이 물어보는 이야기는 정말 별것 없는 것으로, 단순히 리아의 학원 생활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수업을 잘 듣고 있는지, 잘 적응은 하고 있는지.


이따금 라프리트도 못 들어본 ‘마력레벨이 300이나 되는 꼬마가 엄청난 마법을 손가락만 튕겨 사용한다’라는 소문이 퍼져있다는 것을 말해주어 놀라긴 했지만, 딱 그 정도다.


정말 학원 생활에 관한 질문들뿐으로, 마도구까지 사용하며 조심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잘 지내는 듯하니 다행이로군. 한데······ 리카드에게서 무언가 듣지 못하였나?”

“학······원장님이요?”

“그렇단다. 그녀들을 국빈으로 지정한 건 리카드가 적극 충언한 탓이기도 하다만, 결정은 짐이 했다. 책임이 있으니 개인적으로도 자세히 알아가고 싶구나.”

“딱히 말씀해주신 건 없습니다만······ 그것도 직접 학원장님에게 물으시면 되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혹시 리카드가 입을 열지 않았나?


이러한 의문이 라프리트의 머리에 떠올랐다.


애초에 리카드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건 반드시 학생이나 이 나라, 둘 중 하나에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학원장의 성품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아크티알도 이런 리카드의 충성심을 모를 리가 없다.


그렇기에 리카드를 신뢰하여 이름뿐인 귀족임에도 측근으로 둔데다가, 관직의 자리도 마다한 그의 의지를 존중하여 많은 반발에도 학원장에 앉혀 왕가의 이름까지 하사했던 거다.


물론 그에 따르는 실적이 없었다면 모든 게 불가능했겠지만, 현시대에선 뒤따를 자가 없을 만큼 리카드의 능력은 뛰어나니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하건만······ 어째서 리카드가 말해주지 않은 것을 아크티알은 지금 무리하면서까지 자신에게 들으려 하는 건가?


도대체 무엇을 듣고 싶어서 이러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학원장님을 이제 못 믿게 되신 건······ 아니겠지요.’


그 많던 엔딩에서 리카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크티알이 일을 추진한 적은 많았다. 어리석게도.


하지만 그 상황에서조차도 그는 끝까지 리카드를 믿었었다. 더불어 벌어진 결과에 믿음에도 일을 진행한 본인의 판단을 후회했었다.


그럴 거면 하질 말았어야지―― 라며 열불이 날 뿐이었지만, 막상 그 엔딩에서의 자신도 딱히 칭찬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기에 뭐라 할 순 없다.


‘······자괴감만 드니까 이건 넘어가죠. 그러면 왜······ 폐하는 리아 양에 대해서 이리 듣고 싶어 하시는 걸까요?’


자신이야 ‘세린’이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전해준 이야기로 인해 리아에 대해선 특정 부분은 리아 본인보다도 자세하게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었지만, 아크티알에게는 그저 리카드가 데려온―― 앞으로의 미래를 기대할 만한 정도의 인재일 터.


몇몇 소문이 도는 모양이긴 하나, 그 이상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제 일주일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보여주지도 않았으니.


‘[정화]나, 어마어마한 [치유]도 전혀 사용하시지 않았고 말이죠.’


그런데다가 굉장하다 못해 압도적이기까지 한 전투력도 전혀 선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그리모르의 수업에서 그 단면을 조금 보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미 초월자에 들어선 그녀는 혼자서 3국의 연합을 이길 정도로 강하다는 걸······


‘애당초 초월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 외에도 찬크에르 씨 또한―― 응?! 설마?’


문득 떠오른 생각에 라프리트는 아크티알과 뒤에 대기하고 있는 벨페르를 봤다. 하지만 둘 다 역시 왕과 재상에 괜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지 표정으로 얻을 정보는 없었다.


덕분에 아닌가도 싶었다.


그러나 라프리트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아크티알과 벨페르······ 그리고 자신의 아버님과 오라버님은 찬크에르의 정체를 알고 있거나, 혹은 짐작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자꾸 그러한 의혹이 머리를 들이민다.


‘그렇기에 찬크에르 씨에 대해 전혀 묻지 않은 건가요······’


리아와 마찬가지로 국빈인데다가, 눈에 띄는 정도를 넘어서는 외모와 기품도 고루 갖춘 찬크에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리카드가 말하지 않았다면 더욱이나.


그럼에도 묻지 않은 걸 보니 아마 확실할 듯하다.


거기에 더해 아이리스에 대한 질문도 하나 없었거니와, 왕성으로 출발 전 엘리아드 후작이 보인 의아한 발언으로 보면 거의 확정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야 그렇겠지요. 심판자······ 용왕에 관한 이야기이니 조심할 수밖에.’


별장에서 후작이 보던 고서도 그에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래서 마도구도 사용했겠지.


하지만――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주제로 나아가기 위한 미끼로 리아를 대충 언급한 것이란 생각이 드니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쁜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닐 거다. 그렇지만 친구를 홀대하는 모양새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던 라프리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왕 앞에서 보일 모습이 아니기에 또다시 엘리아드가 눈치를 줬지만, 이번에도 라프리트는 가볍게 무시했다.



“찬크에르 씨······ 그분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으신 건가요?”

“······.”


감추려 했지만 다들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아······ 제가 어떤 말을 해주길 원하시는 건가요?”

“라프리트! 폐하 앞에서 무슨 버릇이더냐!”


이번엔 참지 못하고 엘리아드가 소리를 질렀지만, 라프리트는 더욱 크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아버님. 아버님에게도 폐하와 이 나라가 소중하듯, 제게도 리아 양은 정말 소중한 분이에요. 그리고 벨페르 공작님이 영부인이신 밀리아나 님을 아끼시는 것만큼 정말 많이 아끼는 분이에요. 저에게 있어 리아 양은······”


살기랄까······ 적개심이 가득한 라프리트 말에 벨페르는 움찔했다.



“주제넘으나 한 가지만······ 충고하겠습니다.”


이상하리만치 무겁게만 느껴지는 라프리트의 말에 누구도 끼어들지 못했다.


방금 막 라프리트를 나무랐던 엘리아드조차도 숨을 삼키고 본인의 딸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각자 소중한 사람이 있듯이 남들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정말로 당연한 말이지만, 부디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특히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잘못됐다며, 집요하리만치 물고 늘어지면서 괴롭히는 짓만은 절대 하지 마세요. ······반드시 대가가 돌아옵니다. 상상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요. 그때 가서 후회해도 늦습니다.”


누군가를 괴롭히면 그에 걸맞은 대가가 돌아온다······.


어린애들에게나 할 법한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에 말을 꺼내는 자신도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결코, 한 나라의 왕이나 중직을 맡은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 이것을 강대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까먹기 일쑤였다.


‘그러니 그런 사달이 벌어졌겠죠.’


한 번도 아니라 수십만 번을······


어찌어찌 너그러이 생각하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소중한 사람이 그리되었으니.


라프리트――나――도 그 비슷한 기분을 누구보다 많이, 진하게 느껴봤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분풀이하듯, 애먼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괴롭히는 게 허용될 리가 없다.


심히 기분이 나빠진 라프리트는 이 자리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싶어 할 말만 하기로 했다.



“감히 주제넘은 발언을 하여 면목이 없사옵니다. 저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진 듯합니다. 부디 용서를 바라며, 알고 싶으신 걸 전해 드리겠습니다. 찬크에르레이 씨는······ 폐하께서 예상하시는 대로 오직 다섯만이 계시는 그 존재가 맞습니다. 하지만 겨우 그러한 것으로 리아 양을······ 찬크에르 씨의 덤으로 취급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알겠노라.”


딱딱하게 대답하는 아크티알을 보며 라프리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듣고 싶으셨던 이야기도 다 들으셨으니, 전 이만 퇴석해도 되겠나이까. 내일 리아 양과 시내를 둘러보기로 약속했사옵니다.”

“허한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폐하.”


라프리트는 멍하니 바라보는 엘리아드 후작과 아즈랄을 내버려 두고 혼자 문 앞으로 걸어가 다시 한번 인사하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왕의 신변을 위해 사용인들은 집무실에서 조금 떨어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망설임 없이 그곳까지 빠르게 간 라프리트는 곧장 안네를 찾았다.


안네를 포함하여 따라온 리벨리타스 가의 사용인들은 혼자 온 라프리트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안네, 돌아갈 겁니다. 바로 출발은 가능할까요?”

“예······ 저희 사용인이 타고 왔던 마차라도 괜찮으시다면 즉시 가능합니다.”

“상관없어요. 다른 분들이 타고 올 마차는······”

“제 쪽에서 처리해두겠습니다.”

“네. 부탁해요.”


라프리트는 다른 사용인을 쳐다봤다.



“여러분,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아버님과 오라버님을 잘 부탁드려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라프리트의 모습에 사용인들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부디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고마워요.”


안네는 바로 돌아서는 라프리트 따라 즉각 앞장서서 마차가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그렇게 안네와 같이 마차에 올라탄 라프리트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하아. 너무 감정적으로 되었네요. 실수했어요······’


후회는 하지 않지만, 앞으로 도움을 줄 아군을 잃은 건 조금 뼈아프다고 느껴졌다.


다만 찬크에르의 정체도 알려주고, 경고의 의미로 위협했으니 저쪽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 자체는 적어졌을 것이다. 그 부분이 조금 안심되었다.


‘됐어요. 끝난 일이에요. 그만 생각하도록 하죠.’


왜 이렇게 된 지는 전혀, 조금도 모르겠지만.


더불어 이미 첫 시작―― 수많은 엔딩에서도 단 한 번도 없었던 전제조건으로 스타트라인을 끓은 리아가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거기에 더해 근근이 들리는 묘한 소문도 있죠.’


너무나 달라진 현재의 상태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쓸모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그런 것보단 내일 리아에게 소개해줄 곳을 생각하는 게 훨씬 건설적일 거다.


다그닥 다그닥.


그렇게 일정하게 말발굽 소리만 들리는 마차 안에서 라프리트는 미련없이 머리를 비웠고, 리아가 웃는 모습을 떠올리며 아네픽시르의 괜찮은 관광 명소들을 점찍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간만에 두통에 시달려 늦은 라스티아입니다!


흑. 카페인 중독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정말 별로 안 마신 듯한데...


어쨌든 덕분에 커피 대신 마실 차를 찾아야만 합니다!


혹시 추천해주실 게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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