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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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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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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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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30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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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쪽

71

DUMMY

발걸음도 가볍게 학원장실을 나온 리아는 복도를 걷고 있다가 쳐다보는 에르의 시선을 느꼈다.


자신을 살펴보는 듯한 그 시선은 어딘지 모르게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다. 여자라 그런지 남자였을 때보다는 확실히 잘 느껴져 알기도 쉬웠다.


‘에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지만. 헷’


안타까운 생각을 한 리아는 몸을 비비 꼬았다. 그러다 주변에 사람이 적어지자 정신을 차리고는 그 틈을 타 에르에게 슬쩍 물어봤다.



“왜 그러세요?”

“으음. 아무것도 아니야.”


평정을 가장했으나 살짝 흠칫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끝까지 물어봤을 리아라도 남편인 에르에게는 아니다. 무언가 있겠거니 모른 척 다른 이야기를 슬그머니 했다.


이게 멋진 아내의 덕목이다.



“에르, 아까 마법을 사용하셨죠?”

“응. 리카드 녀석 이상한 데서 발목 잡지 말라고.”


꽤 쌀쌀맞게 말하고는 있지만 에르의 목소리에서는 어렴풋하게 동정에 가까운 감정들이 묻어나왔다.


‘확실히 리카드 씨 일이 많은지 돌아갈 때쯤에는 좀 피곤해 보이기도 했지?’


새삼 착한 남편의 마음씨에 콧대가 높아진 리아는 조금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기분 좋게 복도를 나아갔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보는 에르의 눈빛은 다정――하긴 했는데, 아직도 살짝 눈치를 보는 듯 분위기가 약간 이상했다.


잠시 그러고 나아가다 복도의 코너를 돌고, 다시금 사람이 적어지자 이번엔 에르가 말을 걸어왔다.



“리아. 혹······시 리카드가 나트알에서 저질렀던 일을 마음에 담고 있어?”


뜬금없는 고향 이야기에 리아는 고개를 꼬았다.


‘분명 리카드 씨와의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다고 할만한 건 아니었다만.’


그래도 그 일은 마족과 인간. 서로의 사이가 나빴기에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였을 뿐이다. 리카드도 진심으로 사죄했으며 티아리드와 아시리트, 둘도 그런 그를 용서해줬다.


주민들은 좀 탐탁지 않아 하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가족과 마찬가지인 사람을 중태로 만든 거니 어쩔 수 없다.


이건 리아도 그렇게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도 중상을 입은 티아리드를 떠올리면 화가 났다. 덕분이랄까, 사람은 너무 화나면 오히려 피가 전혀 안 흐르는 것처럼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는 희귀한 경험도 해봤다.


근데 지금까지 이어져 왔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리카드는 말주변이 없어 오해받기 좋아 보이기는 해도 평범하게 괜찮은 사람이었다.



“제 안에서는 이미 다 끝난 일이에요. 리카드 씨는 편견에 얽매여서 틀렸는데도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아시리트 씨나 티아리드 씨, 그리고 그 외에 분들하고도 사이좋게 술을 드시기도 했고.”


학원에서 마족을 당당히 말할 순 없으니 에둘러 표현했다. 그래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전해졌을 거다.



“그렇군······”

“그런데 그 일은 갑자기 왜요?”

“벼, 별 건 아니지만, 보고 있자니 리카드를 종놈―― 편안하게 대하길래.”

“그래 보였나요? 으으음······ 어쩐지 거침없이 대했던 거 같기도 하네. 리카드 씨의 부드러운 분위기 때문인가?”

“자각은··· 하고 있었구나······”

“네?”


먼눈을 하고 있던 에르는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보다 어디로 갈 거야?”

“글쎄요. 루비아 씨 아직 훈련하고 있으려나.”


그렇게 씩씩댔던 모습으로 보면 지기 싫어서 아직도 개인 실습장에 있을 거 같다.


고민하던 리아는 입을 열었다.



“일단 방으로 돌아가죠. 아이리스도 수업이 끝나서 돌아왔을 테니 들렀다가 루비아 씨에게 가요.”


한 번 고개를 끄덕인 에르는 앞장서 사용인 역할을 수행했다.


학원장실은 중앙에 위치한 학사건물―― 학생들에게는 교수동이라 불리는 학사건물은 대규모 학회나 세미나에 쓸 강의실 몇 개, 교직원들의 연구실 등이 전부였기에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간혹 일부 교수에게서 쭉 훑어보는 징그럽게 느껴지는 시선이나 몇 학생들이 시기 어린 질투의 눈길도 보내왔지만, 대다수는 그저 동물원에 있는 신기한 동물을 봤다는 느낌이었다.


그 정도는 괜찮았다.


나트알의 마족 주민들. 굉장한 무언가와 마주한 듯 열렬하다 못해 경건해지는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동률이거나 할 때의 이야기다. 마족 주민들의 몇 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보니 상상하던 것 이상의 압박이 존재하였다.


그 전부가 자신만을 향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만만히 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중의 시선이라는 게 이렇게나 부담스러울 줄이야.


마족 주민들의 그 눈빛들이 그립다고 생각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리아도 몰랐다. 그런데다가 요즘 들어 쳐다보는 시선에 담긴 감정들도 다양해져서 이전처럼 그저 호기심만을 갖고 보진 않았다.


그것이 더욱 중앙학사를 나온 리아의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그렇지만 리아는 키가 작았다. 암만 빠르게 하더라도 다른 성인들에 비하면 매우 느렸던 거다.


더 빠르게―― 하려고만 한다면 사람들 눈에 보이지도 않게끔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모양새가 안 산다.


‘그전에 다리가 사라지고 둥둥 떠다니다니······’


괴상한 소문이 생길 거 같다.


그 괴담의 주인공은 될 수 없는 데다, 귀족은 당당하고 우아하며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야 한단다. 물론 이쪽은 평민이지만, 나름 국빈이기도 하니 아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아이리스에게 영향이 갈 수도 있었고.


이래저래 할 수 있는 최대가 다른 사람들이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는 수준이 한계였다.


그나마 아무도 말을 걸라고는 하지 않아서 다행이랄까.


서쪽 기숙사에 들어서야 사람이 적어져 약간 어깨에 힘을 뺄 수 있었던 리아는 정신적으로 피곤해져서 방앞에 도착했다.


에르가 열쇠를 꺼내 문에 넣었다.


단 하나밖에 없는 열쇠지만 가족들은 편안히 드나들 수 있게 에르가 마법으로 처리해두었기에 아이리스도 혼자서 문제없이 들어올 수 있다.


문을 열고 팔을 뻗어 멋진 자세로 안내해주는 에르를 지나쳐 리아는 터벅터벅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실로 가 아이리스를 찾는 리아의 눈에――



“늦어!!”


루비아가 보였다.



“또 먼저 실례하고 있었어요, 리아 양.”


라프리트도 있었다.



“어. 연습하시던 거 아니었어요?”


익숙한 광경에 리아는 물어보면서 아이리스를 힐끔 쳐다봤지만, 아이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내젓기만 했다.


페리는······ 팔자 좋게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다.


며칠 전 《머, 멍청―― 너도 무섭게 변하거나 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며 잔뜩 떨던 고양이가 맞나 싶다. 참고로 그때의 대답은 자신도 사람이니 가끔 그럴 때가 있다였다.



“응? 뭐야, 리카드에게 못 들은 거야?”

“뭘요?”


당연히 들었던 말이 없는 리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 생각보다 늦었던 거군. 리카드 자식 일부러 그랬나. 일단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늦었으니까 얼른 바로 가자.”


묻는 말에는 대답도 해주지 않고 루비아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두르는 모습이 꽤 다급해 보였다. 차를 마시지 않고 기다렸던 것도 치우는 시간을 아까워한 것 같다.


그렇게 어리둥절하고 있자니 루비아는 손을 잡고 억지로 이끌었다.


하지만 레딧츠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들었던 말이 없었는지 당혹스러워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멈춰선 루비아는 둘러보더니 말했다.



“뭐 하는 거야? 너희도 다 가는 거라고.”


모두를 대표해 라프리트가 물었다.



“이번엔 또 어딜 가신다는 거죠? 갑자기.”


루비아는 얼굴을 팍 구겼다. 차마 공주로서는 보이지 못할 모습이지만, 얼마나 짜증 내고 있는지는 주변에 잘 전해졌다.



“리카드 자식······ 그 자식이 말만 해줬어도 설명이 복잡해지진 않았을 텐데. 두고 봐, 정말.”

“리카드―― 학원장님이요?”

“아, 됐어됐어. 가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 설명할게. 야, 페리. 그만 자고 따라와.”


이 상황에서도 쿨쿨 자고 있던 페리는 느긋하게 하품하며 눈을 떴다. 아마 모두 나갔어도 모르지 않았을까.


야생에 있던 고양이가 정말 맞는 건가······



《밥시간이냐?》

“네 먹이 줄 시간은 아니야. 다만 얼른 오지 않는다면 맛있는 것과는 작별이지 않을까 싶은데.”

《간다!》


크흥!


한번 운 페리는 폴짝 뛰어내려 서더니 다가왔다. 갑자기 생기가 넘쳐났다.


리아는 먹을 거에 간단히 설득되어 버리는 식탐 많은 고양이를 어이없게 쳐다봤다. 그러다 순간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루비아 씨! 페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어요?!”


루비아는 눈을 한번 끔뻑였다.



“아니. 동물의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 너, 꿈도 참 좋다?”

“어. 그러면 어떻게······?”

“그냥 보고 있으면 분위기라든가, 낌새로 어렴풋이 알 수 있잖아.”

“아, 아뇨······ 그런 걸로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그럴만한 수준이 아닌데요?”

“내가 잘났으니 그런 거겠지. 그보다 빨리 가기나 하자고. 진짜 예상보다 좀 늦었어.”

“근데 진짜 어딜 가는 거예요?”

“가면서 설명한다고 했잖아. 그만 떠들고 빨리빨리 이동하자. 안네! 너는 라프리트를 데리고 따라와.”


당당하기 그지없는 명령조다.


주인인 라프리트의 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주의 말이다. 최근 상당히 편하게 대해주기는 했지만, 안네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곤란스러울 거다.



“하아······ 가도록 하죠. 루비아 님, 제대로 말씀해주시는 겁니다?”

“아아. 걱정하지 말라고. 어차피 설명을 안 할 순 없으니까.”


한번 한숨을 더 쉰 라프리트도 일어서고, 방에 있던 전원은 루비아의 뒤를 따라 방을 나갔다.


그래. 전원이다.



“어라? 소베르비아 님. 저도 가는 겁니까?”


리아가 손을 잡아끄는 탓에 따라오게 된 아이리스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음이었다.



“당연하지. 아니면 무슨 약속이라도 있어?”

“아뇨. 딱히 약속은 없습니다만.”

“그러면 상관없잖아. 너 혼자 남아서 뭐 하게. 그리고 네가 빠진다는 게 말이나 돼? 기껏 소개하는 자리인데 말이야.”


소개?


리아와 라프리트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소개요?”

“그래! 편한 날 말하라 했더니 아예 그럴 낌새조차도 없잖아. 그래서 내가 먼저 자리를 준비한 거야. 보나 마나 넌 ‘어······ 맨날 보고 있으니 소개한 거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같은 얼빠진 소리나 할 테고 말이지.”


듣고 있던 리아는 눈을 부릅떴다. 의외로 능숙한 루비아의 성대모사에 놀란 건 아니었다.



“정확해요!”

“······봐봐. 맞지? 근데 암만 그렇다고 해도 형식이라는 건 의외로 중요한 법이야. 상대방에게 결례이기도 하고. 너희들도 라프리트에게 배웠다면 어느 정도 알 거 아니냐? 으음··· 뭐, 편하게 생각해주는 건 알겠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루비아가 말한 대로였다.


조금 미안해진 리아는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루비아 씨.”

“괜찮아. 말했잖아 편하게 대해줘서 그랬다는 걸 안다고. 그리고 잔뜩 보충을 받아낼 거니까 전혀 신경 안 써.”

“보충이요?”


묻는 말에도 루비아는 웃음으로만 때웠다.


재촉하기도 하고, 말해주지도 않을 것 같은 모습에 리아들은 조용히 루비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학생들이나 선생들이 가져온 마차를 세워 놓는 데였다.


즉 마차장이다.


도중부터 목적지를 예측할 수 있었던 리아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밖으로 나가실 건가요?”

“그래. 외출 신청도 다 해놨으니까 바로 출발하면 돼.”


준비성이 철저했다.


리아가 감탄하고 있는 사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있던 라프리트는 어느 한 지점을 보고는 멈췄다.


못 볼 것을 본 듯한 라프리트―― 입을 벌리고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그녀에 리아도 라프리트가 보고 있던 곳, 마차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굳어 멈췄다.



“소베르비아 님. 저걸 타고 가는 건가요?”


굳어있던 둘을 대신해 아이리스가 물었다. 그저 신기하게만 여기는 것이 리아나 라프리트보다는 확실히 여유로워 보였다.



“그렇긴 해. 그런데······ 루비아로 불러달라고 했잖아. 님도 됐다고 했는데 말이야.”


찌릿 째려보는 눈빛에 아이리스는 살짝 미소 짓고 대꾸했다.



“알겠어요, 루비아 씨.”

“호······ 확실히 좀 어른스럽긴 하네. 꼬맹이들이 좋아할 만도 하겠어.”

“네?”

“아니야. 그나저나 저거 어때? 나름 괜찮지?”


곁눈질로 가리키고 하는 말에 아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멋져 보이긴 하네요.”

“헤~ 보통이라면 저런――”


루비아는 옆에 있는 리아와 라프리트, 안네를 가리켰다.



“웃긴 얼굴이 되던데 말이야. 너도 그렇고 찬크에르 씨도······ 무덤덤하네. 부자끼리 닮은 건가?”

“아뇨. 저도 꽤 놀라고 있어요.”


언뜻 평온해 보이는 말투지만, 은근 발끈하는 기운이 도는 아이리스.


그런 아이리스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피식 웃은 루비아는 전원을 다독였다.



“자, 그만들 하고 어서 타기나 해.”


루비아가 억지로 잡아끄는 손길에 정신을 차린 리아는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탈것을―― 마치 검붉은 언덕이 솟아난 것 같은 곳을 쳐다봤다.


전, 현생을 통틀어 이러한 탈것이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그럴만한 것이 일단 마차라 해야 할지―― 미니 집이라 부를만한 것을 매고 있는 생물조차도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매고 있다는 표현은 틀린 게 아니었다.


금속으로 보강된 줄이 거대한 거구의 허리와 어깻죽지라 부를만한 곳에 빙 둘러서―― 배낭을 앞으로 멘 듯한 모양새로 있었다.


그리고 그걸 매고 있는 생물은······ 거구에 어울릴 만한 한 쌍의 큰 날개와 그 첨단에 있는 퇴화한 듯 보이는 앞발, 굵지만 짧은 뒷다리와 반대로 굵고 긴 꼬리를 지녔다.


전체적으로 파충류의 피부 같은 질감을 가진 이 생물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본다면 백방 이렇게 말할 것이다.


――드래곤이라고.


그 드래곤처럼 보이는 생물이 앞발을 땅에 짚고 집을 보호하는 자세로 마차장에 있었다. 언뜻 불편하게도 보였지만, 정작 드래곤은 편안해 보이는 것이 아마 평상시에도 저런 네발로 엎드린 자세로 있는 듯했다.



“오······ 이분은 드래곤인 가요?”


에르가 용일 때의 생김새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영락없이 만화나 게임에서 보는 듯한 자태다.


가까워지자 곰보 코코넛 나무쯤 되는 거구에서 오는 위압 넘치는 압박감이 장난 아니다.


이에 리아는 조금 감동했다.


남자는 커다란 걸 좋아하는 법이다. 로망과도 같은 거다. 지금은 여자라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비슷한가. 드래곤의 후예쯤은 되니까.”

“그럼 드래곤은 아니신 거예요?”

“드래곤은 특유의 광포한 마력 파장을 뿜어낸다고 하더라. 근데 이 아이에게서는 그런 게 느껴지진 않잖아? 외형은 드래곤에 가깝지만, 드래곤은 아니라는 거지. 보통 이런 얘들을 아종이라고 따로 분류해. 개인적으로는 마수나 마물은 외형이 다들 천차만별이니 얼추 닮았으면 한데 묶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을 한 루비아는 대기하고 있던 아종 드래곤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한 입 거리 간식밖에 안 될 모습에 깜짝 놀랄만했지만, 레딧츠는 말리지 않았고, 아종 드래곤도 익숙하게 자신의 얼굴을 내밀어 턱을 쓰다듬는 루비아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아종 드래곤은 기분 좋다는 듯 눈가가 작게 일그러졌다.


순한 아인가보다 라고 판단한 리아도 루비아의 뒤를 따라 다가갔다. 그리고 반갑게 인사하려 했다.


다가오는 존재에 눈을 뜬 아종 드래곤은 힐끔 내려봤다가 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지진이라도 난 듯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뒷걸음질로 쭉쭉 물러났다.


저만한 거구가 움직이니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으나, 일부러 주변을 다 치워놨는지 다행히 다른 마차가 있지는 않아서 피해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



“어? 왜 그래, 에인샤론드.”

“······.”


루비아의 말에도 에인샤론드라 불린 아종 드래곤은 경계 어린 눈초리를―― 아니, 자세히 보면 벌벌 떨면서 꽃사슴 같은 눈망울이 되어 리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명백히 두려워하고 있는 거다.


어리둥절한 루비아가 다시 불러보지만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슬금슬금 리아에게서 멀어지려 발을 끌고 있다.


‘여, 역시 착각이 아니었구나.’


페리를 만났을 때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리아는 낙담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저 아종 드래곤―― 에인샤론드를 떨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리아는 조용히 손가락을 튕겨 [염화]를 사용했다. 대상은 당연히 에인샤론드다.



『안녕하세요. 전 이스피리아라고 해요. 왠지 놀라게 해버려서 죄송해요.』


갑자기 머릿속에서 들리는 말에 에인샤론드는 한층 더 격렬히 몸을 떨었으나, 곧 이쪽이 말을 걸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잔뜩 움츠러든 자세로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그러고는 마력이 움직인다 싶었더니 마법을 사용했다.



『다, 다다···다, 당신께서는 누구십니까?』

『오! [염화]를 하실 줄 아세요?』


의사도 깔끔하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감탄한 리아는 마력레벨을 알아보는데, 고개를 살짝 저은 에인샤론드가 대답했다.



『지, 지금 당신께서 하시는 걸 보고 따라 했습니다.』


보고 바로 따라 하다니.


굉장하다고 생각했으나 [염화]임에도―― 아니, 의사를 전하는 [염화]이기에 그런 건가, 엄청나게 절박한 심정이 잘 묻어나왔다.


리아에게는 마치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생존본능이 십분 능력을 발휘하게 하여 [염화]를 즉석에서 익히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 정도로 내가 무섭단 말인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리아가 조용해지자 에인샤론드는 화들짝 떨더니 턱을 땅에 바짝 붙였다.


쿵.


작은 진동을 만들어내면서 에인샤론드는 말했다.



『저, 저저저···저 같은 것이 감히 함부로 따라 하여 정말 죄송하으읍니다! 부디! 부디 죽이지만은 말아주십시오!! 전 아직 공주님과 함께 더 날고 싶습니다!!』

『······.』


무서운 정도를 넘어서 언제 자신은 극악무도한 악당이 되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하질 않았는데······


멋들어진 이름과는 달리 나약하고 핍박당하는 선량한 시민 같은 에인샤론드의 발언과 벌벌 떠는 행동에 리아의 눈에선 빛이 사라져갔다.


그렇지만 곧 에인샤론드의 말을 듣지 못하여 이상한 사태로 비칠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아니······ 오히려 못 들어서 다행인가.’


만약 들었다면 어떠한 오해를 받았을까――


잠시 생각하던 리아는 빠르게 고개를 흔들고는 저절로 그려지던 상상의 나래들을 떨쳐냈다.



『제가 당신을 해할 리가 없잖아요. 도대체 무슨 착각을 하시면 그렇게 되시는 건가요? 그리고―― 그 자세는 뭔가요.』

『항복의 자세입니다만······ 호, 호호혹시 만족스럽지 못하십니까? 그렇다면――!』


뭔가 기괴한 자세를 선보일 것만 같았기에 리아는 서둘러 막았다.



『아뇨. 됐으니까, 그만두세요. 집 같은 것도 메고 계시잖아요.』


에인샤론드는 우뚝 멈춰 섰다.


······정말 아주 극악무도한 악당에게 명령받는 것 같다.


리아는 나올 것 같은 한숨을 참고 어째서 이렇게 된 건가를 고민했다. 그러다 이제는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눈망울인 에인샤론드가 보였다.


‘어?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눈앞에 당사자가 있으니 답안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런데다가 여태 동물들이 피하던 이유 모를 원인까지 알 수 있게 되는 거다.


명안이라 자화자찬한 리아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에인샤론드 씨라 하셨죠? 도대체 절 왜 그렇게까지 무서워하시는 거예요?』


묻는 말에 에인샤론드의 눈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어쩐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감이 잡혔다. 분명 에인샤론드는 한마디라도 잘못 뻥끗한다면 좋지 않은 일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있는 걸 거다.


‘와~~ 실제로 눈이 저리 돌 수도 있구나······ 극한의 상황에 부닥치면 저리되는 모양이네.’


물론 모든 걸 알아차린 리아는 현실도피라는 최강의 회피기술로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만――



《히끆.》


육성으로 괴상한 소리를 내는 에인샤론드 때문에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은······ 위용 넘쳤어야 할 외관의 드래곤이 당장에라도 오줌을 지릴 듯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다.


방금보다 더 심각해졌다.


분명히 뭔가의 착각이 보태졌을 테지만, 뭐가 됐든 저 거구가 정말 지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리아는 서둘러 아이를 달래듯 다정한 어투로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저는 당신께 아무 짓도 안 할 거고, 아무 짓도 안 당할 거예요. 무서운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는 소리예요. 그리고 전 루비아 씨의 친구예요. 루비아 씨가 아끼는 당신을 제가 해를 입힐 일은 없어요.』

『고, 공주님과?!!』

『네. 저랑 루비아 씨랑 같이 오는 것도 보셨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러셨습니다.』


정말 이제 와서 떠올린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무서웠던 거야? 내가??’


다시 낙담으로 리아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고 있다 자신과 루비아를 번갈아 쳐다보는 에인샤론드가 눈에 띄었다.


그 모습에는 ‘어쩌다가 공주님과 이런 사람이 친구가 된 거지?!’같은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것과 비슷한 낌새가 어려있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내 착각이겠지.’


리아는 지친 얼굴로 루비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직접 보여줘서 증명하기로 한 것이다.



“응? 뭐야. 넌 또 갑자기 왜?”

“아니요······ 저분이 절 굉장히 무서워하시는 거 같아서요. 주인인 루비아 씨랑 친한 모습을 보여주면 좀 진정하지 않을까 해서요.”


루비아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무서워하는 정도가 아닌데. 그냥 도축장에 끌려 나가는 가축이잖아, 저건.”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지만, 그렇게 보이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에인샤론드도 비슷한 각오를 한듯했고.



“아휴······. 시간 아깝게 뭐 하고 있는 건지 원······”


까칠하게 말하면서도 루비아는 어색하게 웃는 리아의 손을 뿌리치거나 하지 않았고, 지켜보던 에인샤론드에게서는 눈에 띄게 경계심이 사라졌다.


아마 진짜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는 걸 알아봤을 거다. 더불어 자신이 온화한 사람이라고 인식했겠지.


리아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루비아도 상태를 알아보고는 리아를 데리고 에인샤론드 앞에 갔다.



“에인샤론드, 도대체 얘의 뭘 무서워하는 거야. 덩치가 아깝게스리. 이건 적만 아니라면 무해해.”

“이거라뇨!”


‘사람을 위험물처럼 취급하다니.’


발끈하는 리아의 머리에 루비아가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쓰담쓰담. 가끔 얼굴로 비벼주기도 했다.



“자 봐, 알겠지?”


곧바로 헤벌쭉해진 손쉬운 리아를 본 에인샤론드 눈에는 빠르게 이해의 빛이 번졌다.


뭘 이해한 건가.


그런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머리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루비아의 손길과 부드러운 볼의 감촉에 금세 사라졌다.


에인샤론드가 이래저래 대강 진정하자 루비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뒤를 돌아봤다.



“너희들, 어서 타도록 해. 바로 출발할 거야.”


부르는 말에 다가오긴 했지만, 조금 전의 묘한 행동 때문인지 라프리트와 안네는 불안한듯했다.



“루비아 님······ 이 아종 드래곤, 공국 왕실의 에인샤론드가 맞지요?”

“내가 부르는 걸 들었잖아. 그 에인샤론드가 맞아.”

“유명한 분이신가 봐요. 에인샤론드 씨는.”


껴들어 묻는 리아에게 라프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뭔가 환상이 깨진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라프리트는 불안해하던 게 아니었을지도······



“아종이라지만 드래곤이잖아요. 우리나라의 비젠탈 씨만치 유명한 마수에요.”


약간 얼떨떨해하는 분위기도 섞여 있었다만, 타국의 마수임에도 라프리트는 솔직히 칭찬해줬다.


그런데 듣던 루비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자존심 상하지만 비젠탈만큼은 아니야. 1:1로 겨뤄봐야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다가 끝나기만 할걸? 덩치에 안 어울리게 질질 짜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힘이나 명성, 어느 하나라도 비젠탈과 비교하기엔 아직 멀었어. 살아온 세월도 적어도 2배 이상은 차이 날 거고.”

“그, 그래도 에인샤론드는 공국에 300여 년간 헌신하고 있는 충직한 마수에요.”

“기간만 좀 될 뿐이지, 한 일이라고는 그냥 마차의 대용이 고작이야.”

“······.”


벨루디스의 사람인 라프리트가 수습해주려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노력이 무색했다.


거기에 방금 덩치 차가 몇십 배나, 잘하면 백 단위로 넘어갈 만큼 차이가 나는 자신에게 빌빌거렸던 모습 때문인지 주변에서도 납득하는 분위기만 흘렀다.


페리마저도 에인샤론드를 올려다보더니 비웃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외견은 멋지기만 한 드래곤이 한낱 고양이에게 마저······


정말 안타까운 평가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불합리하거나 이상한 평가는 아니었던 게, 비젠탈의 마력레벨은 551이라는―― 자신이 만나봤던 존재 중엔 에르 말고는 제일 높은 수치였기 때문이었다.


실제 만났던 리아로서는 막 초월자에 들었던 시기라면 비젠탈에게 꽤 쉽게 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자신은 딱히 만화에서처럼 한눈에 ‘으음?!, 아니?!’라면서 상대의 강함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학원에 오는 동안 보았던―― 마차를 달고서도 시속 300~400km 되는 속도로 뛸 수 있는 각력과 그 상태로 몇 시간을 달려도 지쳐 보이지 않는 체력. 이 두 가지만으로도 이미 그 당시의 자신을 뛰어넘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다가 비젠탈은 그게 전력도 아니었다.


당연히 힘과 체력이 좋다고 절대적으로 강하다고는 할 수 없고, 그때의 자신도 마력레벨만을 중시해 다른 훈련을 하지 않아 지금보다도 훨씬 언밸런스한 상태였다는 핑계가 있긴 했다.


하지만 비젠탈은 뛸 때 마력이 불필요하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딱 적정량만을 조절하는 심오한 컨트롤을 했었다. 전쟁을 최전방에서 겪었다던 마수답게 허투루 소모되는 마력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는 듯했다.


즉 쉽게 충전할 길도 그다지 없는 마력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실천까지 하는 마수라는 거다.


결코 약할 리가 없다.


오히려 이 비젠탈이 있는데 아무리 신성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다고는 하나 세인트리안이 벨루디스를 건드린다는 게 이해가 안 될 정도다.


그에 비해 에인샤론드의 마력레벨은 188······ 비젠탈과 비교하기에는 좀 낮다.


그나마 마수종에 들어가는 드래곤의 아종인지라 마력은 전체적으로 압축되어 있고, 마력량 자체도 리카드보다 2배쯤은 많았다.


다만―― 덩치가 문제였다.


맞붙는 어지간한 스포츠 경기들은 체급을 정한다.


왜 그러한 것들을 그램 단위까지 까다롭게 정하겠는가. 힘과 덩치에서 오는 무게의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상대보다 크다면 높은 고점에서의 타격 또한 유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덩치가 어지간한 빌라만 한 크기에 높이는 60m 이상은 되어 보이는 에인샤론드는 어떠한가.


지구에 이런 생물이 존재했다면 분명 단일 개체로서는 최강이다. 대적은커녕 맞상대할 존재가 있을 리도 없다. 그냥 괴수나 마찬가지다. 다들 꼬리를 말고 도망갈 거다.


핵무기라도 사용하지 않는 한은―― 그것마저도 에인샤론드가 보호막과 치유마법, 정화마법까지도 사용할 수만 있다면 피해 따위는 없다.


방사능 오염이나 기타 독의 피해도 정화마법이면 충분히 나을 수 있을 테고, 화력을 집중하여 겨우 다치게 만들어도 치유마법이면 즉시 원상복구다.


무적이나 다를 바 없다. 그저 에인샤론드가 수명이 다해 죽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을 거다.


다만 이 모든 건 지구에도 마력이 있을 거란 가정하에 따른다.


만약 지구에 마력이 없다면······ 에인샤론드는 최대한 마력을 아낀다 한들 몇 년 못 살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마력이 있다면 지구에서는 최강일 것이 확정인 에인샤론드라도 오엘문리아라면 최강이라는 단어의 ‘최’자에도 근접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오엘문리아에서는 덩치라는 이점이――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그 의미가 크게 상실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동일한 힘과 속도를 지녔다면 덩치가 큰 쪽과 작은 쪽, 어느 쪽이 좋겠는가.


같은 조건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덩치가 작은 쪽이 압도적으로 좋다.


지구라면 10m 단위로 차이가 나는 상대와 동일한 힘을 지닌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모든 존재가 마력이라는 신비한 힘을 다루는 이곳이라면 가능했다.


높이라는 이점은 지구와 다를 바 없겠지만, 그마저도 마법이나 투기술 등으로 충분히 메꿀 수 있다.


비젠탈은 말 중에서는 나름 컸지만, 에인샤론드에 비교하면 귀여울 수준으로 작았다. 그런데 힘이나 속도는 예상하건대 에인샤론드보다는 한참 뛰어날 거다.


동률이라도 불리한 판국에 밀리기까지 한다······


자신보다 힘도 세고 빠르기까지 한, 한참이나 작은 상대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능력치가 밀리는 시점부터 덩치는 좋은 표적에 불과했다.


에인샤론드에게는 안타깝지만 정말로 비젠탈과 붙는다면 루비아의 말대로 일방적으로 맞다가――


울지 않을까 싶다.


방금까지 보였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엉엉 울면서 엄마를 찾는 모습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려졌다.


안쓰러운 마음이 된 리아는 속으로 힘내라고 응원하면서 에인샤론드를 따스하게 바라봤다.


‘부디 언젠가는 고양이가 무시하지 않는, 외관에 어울리는 멋진 드래곤이 되길.’


자신의 눈길을 받고 한 차례 에인샤론드가 떠는지도 모르는 채 리아는 빌었다.


――그런 리아의 귀에 툭 내뱉는듯한 루비아의 말이 들렸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나중에 비젠탈을 뛰어넘는 최고가―― 제일 유명해질 마수가 될 거야.”


마치 이루어질 미래처럼 선언하는 루비아에게서는 의심 따위, 미혹의 그림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뿐이랴, 루비아답지 않게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마저 있다.


비단 놀란 건 자신만이 아니었는지, 라프리트도 눈을 크게 뜨고 루비아를 쳐다봤다.


당사자인 에인샤론드는 주인이 이렇게나 극찬하자 애교를 부리듯 루비아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루비아가 다치지 않게 조절은 하고 있지만, 덩치에 어울리진 않았고 머리만으로도 충분히 거대했다.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루비아는 살짝 웃음을 흘리고는 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에 에인샤론드는 페리처럼 끙끙대며 좋아했다.


꼬리라도 흔들 것만 같은 기세다.


후웅, 스윽. 후웅, 스윽. 퍽. 퍽.


‘······응?’


이상한 소리에 슬쩍 몸을 기울여봤다.


그리고 에인샤론드의 발밑으로 굵고 긴 꼬리가 빠르게 땅을 쓸더니 급기야 내리치는 광경을 목격했다.


――강아지냐?


드래곤도 꼬리로 의사를 드러내는 건가. 강아지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단 말인가.


‘어쩌면 에르나 아이리스도?’


심도 있는 고민에 빠져들던 리아였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짜증이 잔뜩 섞인 루비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거다.



“근데 얼른 타라고 하지 않았어? 도대체 언제까지 꾸물대고 있을 거야.”


마력까지 뿜어져 나왔다.


‘루, 루비아 씨도 꾸물댔으면서――’



“으응?!!”

“헙!”


안광을 번득이는 루비아의 재촉에 못 이긴――무서운―― 리아는 입을 다물고 레딧츠가 안내해주는, 에인샤론드가 매고 있던 집에 들어갔다.


1마리와 7명이라는 꽤 많은 인원수를 수용할 수 있나 걱정도 했지만, 의외로 내부는 넓어 여유롭진 않더라도 편히 쉴 정도는 되었다.


리아는 현관 같은 곳에 서서 내부를 둘러봤다.


실내는 복층으로 구성되어 공간 활용을 잘해놓았다. 그런데 이동 때문인지 물건이 그다지 많이 놓여있진 않아 횅해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신발을 벗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딧츠는 현관의 옆에 있는 붙박이장을 가리켰다.


‘오오, 신발장이었던 거야?!’


확실히 의자가 없고 낮은 테이블만 있기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 좌식이었나 보다.


오엘문리아에서는 목욕할 때 말고는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생활하기에 벗는 일은 그다지 없었지만 리아에게는 이쪽이 익숙했다.


어쩐지 반가운 기분이 든 리아는 신나서 제일 먼저 에르가 만들어준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었다.


그러고는 실내에 들어서는데, 뒤에서 루비아가 말을 걸었다.



“잠깐! 리아, 너 맨발이잖아. 양말도 안 신었어?”

“어······ 네. 맨발이 편해서요.”


루비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공주로서는 불합격인 얼굴에 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가 떠오르는 생각에 퐁, 주먹 쥔 손을 손바닥에 내렸다.



“괜찮아요. 냄새나지 않을 거예요. 자요.”


땀이 나지 않는 몸으로 되어 얻게 된 최고의 장점이었다. 그런데다 신발은 에르가 매일 세탁해준다.


리아는 자신 있게 한쪽 발을 내밀었다.


진짜 냄새가 안 나는지가 신경 쓰였는지, 아니면 리아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인가, 루비아의 고개가 흐름에 맡기듯 살짝 내려갔다.


점점 가까워지고, 냄새의 진위여부를 판별할 수 있을 때쯤―― 뚝 하고 멈췄다.



“이 나에게 뭘 하게 만드는 거야?!”


퍽.


리아는 루비아에게 꿀밤을 맞았다.


인정사정없었다. 힘 조절 따윈 없는 강력한 한방이었다.



“아, 아프잖아요.”


찔끔 눈물이 나온 리아가 맞은 곳을 부여잡고 항의해봤지만 루비아는 눈을 부릅떠 단방에 일축했다.



“그, 그래도 냄새는 안났죠?”

“······.”

“죄······송해요.”


불쌍한 표정을 짓는 리아의 뒤로, 현관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아, 아가씨. 여성이 발을 드러낸다니요.”

“나라마다 특색이 있겠죠. 그렇다고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도 없잖아요. 리아 양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요. 그보다 안네도 빨리 청결마법으로 깨끗이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어······ 나도 해야 하는 건가? 페리는 어떡할래?”


어수선한 상황이 된 현관에서 리아는 보고야 말았다. 시력이 좋았기에―― 방금 혼나 눈치를 살폈기에 보고야 말았다.


――루비아의 매끈하고 이쁜 이마에 혈관이 튀어나오는 것을.



“모두 나가서 해!!”






············.


우여곡절 끝에 테이블을 둘러서 도란도란 모여있는 이들에게서는 말이 없었다. 간간이 맨바닥에 앉는 것이 어색한지 움찔움찔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말은 나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리아의 옆에 엎드린 자세로 있는 페리만은 맨날 하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자세였기에 편안해 보였다.


슬슬 눈이 감기는 것이 곧 있으면 잘지도······


조용한 분위기 속 레딧츠는 미닫이 창문을 열고 밖을 향해 외쳤다.



“출발해주십시오.”


살짝 덜컹거리면서 후웅, 하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몸이 뜨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너무 궁금했지만, 이 분위기에서는 차마 창문으로 갈 용기가 없었던 리아는 앉아있는 상태로 창문 밖을 쳐다봐 에인샤론드가 날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 분위기가 유지되는 걸까.’


무릎 꿇고 앉아있는 건 별로 어색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았지만, 리아는 다른 의미로 근질거렸다.


그러다 마침내 조용하기만 한 실내의 침묵을 라프리트가 깼다.


리아는 그녀의 용기에 감동했다.



“루······비아 님?”

“뭔데?”


까칠한 말에도 라프리트는 물었다.



“저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어디긴 어디야? 공국이지.”

“네?!”

“에인샤론드까지 타고 가는데 가까운 데라고 생각한 거야?”

“아, 아뇨! 갑자기 공국이라뇨?! 리아 양이나 제가 말도 없이 타국에――”

“――허락은 받았어.”


말을 자른 루비아는 레딧츠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레딧츠는 품속에 손을 넣더니 한 장의 고급스러운 인장이 찍힌 종이를 꺼냈다.


어리둥절하면서도 라프리트는 건네받았고, 순간 눈이 커졌다.



“와, 왕가의 문장?”


‘어디서 봤다 했더니 벨루디스 왕가의 문장이구나.’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리아와 달리 라프리트는 왕가의 서신과 루비아를 번갈아 보기 바빴다.



“어, 어째서? 아니, 그전에 언제 왕가와 연락을······”

“어째서긴 뭘―― 하아. 결국 내가 설명해야 하는 거야? 리카드 자식, 진짜 두고 봐.”


리카드의 안부가 쬐금 걱정됐지만 리아는 루비아가 해주는 설명에 귀 기울였다.



“다 건너뛰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가 벨루디스 폐하께 너랑 리아를 데리고 공국에 놀러 갔다 온다며 서신을 보냈고, 답신이 온 거뿐이야.”

“폐하께서 허락하셨다고요?”

“서신을 보면 알잖아.”


루비아의 말에 따라 라프리트는 이미 밀랍이 뜯긴 서신을 열어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리아도 궁금했기에 머리를 가까이 붙였다.


다가오자 리프리트는 움찔하면서도 리아가 보기 편하게 종이를 기울여줬다.


거기에는 중후한 필기체로 이리 적혀있었다.



――리벨리타스 가의 장녀, 라프리트 로 디안 리벨리타스와 국빈, 이스피리아를 벨루디스의 사절단으로 공국으로의 출국을 허가한다.


짤막한 글귀 밑, 출국 기간이 적혀있는 곳 옆에는 진짜임을 증명하는 왕가의 문장이 찍혀있었다.



“사절단이요? 저, 저야 그렇다지만―― 아뇨, 저도 이상한데 리아 양은 왜?”


리아도 놀라 외쳤다.



“놀러 가는 게 아니었어요?!”

“······.”


실내엔 다시 적막감이 돌아오고야 말았다.



“······저건 놔두고. 뭐, 시기상으로는 그렇게까지 이상하지 않잖아.”

“네. 매년 이맘때쯤에는 베르다드에 입학한 귀족들의 안부라든지 여러 협정 때문에 방문하니까요.”

“그렇지. 그러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벨루디스를 나올 수 있지.”

“그 말씀은······”

“이 방문의 목적은 교단에 한 방 먹이기 위한―― 아니, 이게 첫 한 방이 되는 시발점이야.”


고혹하면서도 진한 미소가 번졌다.


놀라는 주위를 둘러보면서도 여간 즐거운지 목소리가 들뜬 루비아에게 모두 집중했다.


리아도 계속 무시당하고만 있을 수 없기에 수업과 비슷함에도 졸거나 하지 않고 제대로 머리에 집어넣었다.


――결코 삐진 게 아니다.


작가의말

진짜 오늘의 마지막 화입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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