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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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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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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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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DUMMY

수도의 상업지구로 가는 길――


그곳에 거주하는 직인이나 장인, 계약이나 시제품을 보러온 계약주들, 혹은 단순 길을 지나고 있던 행인. 그들 모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시작은 우연찮게 하늘을 보고 있던 누군가가 외친 말에서였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위를 올려다보기 시작했고, 검붉은 새 같은 것을 봤다.


그리고 저게 드래곤인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높이 떠 있었기에―― 거기다 네모난 무언가 때문에 형체를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력이 좋았던 몇 명과 투기술로 시력을 높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제대로 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진짜 드래곤이라고 외치니 허풍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진실로 받아들였고, 삽시간에 전파되듯 거리로 퍼져나갔다.


드래곤은 객체 차가 극심하다고는 전해지나, 드래곤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이 대항하기 어려운 막강한 생물이다. 저 개체는 드래곤들 중에서 약골에 속한다, 같은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분명 상업지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구역에서도 비슷한 소란이 발생했을 거다.


그런데 비상사태가 발령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건만, 소란은 금세 가라앉았다.


――왜냐하면 불과 몇 시간 전 완전히 동일한 소동이 벌어졌으니까.


그때 위병이라든지,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에게 저 드래곤이 무엇인지 들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귀찮아하면서도 은근 자랑하듯이 알려줬고, 패닉에 가까웠던 혼란은 순식간에 호기심과 경외 어린 감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드래곤―― 정확히는 아종인 드래곤의 비행경로를 눈으로 뒤쫓았다.


내일부터 주말이라 이곳 상업지구에 있는 멜리다 상회로 가던 필므 또한 주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손을 동그랗게 말아 위를 보고 있었다.


다만 필므는 단순히 잘 보기 위해 손을 만 것이 아니었다. [현미]―― 특별한 도구 없이도 극단적으로 가깝게 보이게 하는 마법을 사용한 상태였다.


모조품은 아닌지 감별해야 하는 상인에게는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사기를 당할 위험성은 극도로 낮아지기에, 마법엔 그다지 소질이 없는 필므가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익힐 수 있었던 마법이었다.


덕분에 투기술로 시력을 높인 사람보다도 조금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저건······ 공국 왕실의? 그렇다는 건 소베르비아 공주님이신가. 저 드래곤은 에인샤론드이고.’


드래곤에게 붙어있는 듯한 네모난 물체 밑바닥에 그려진 문장으로 그리 파악한 필므는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내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개인적으로는 공국만이 유일하게 사역한 단 하나뿐인 드래곤, 에인샤론드까지 불러들여 어딜 가는지가 무척이나 관심이 갔지만―― 미련 없이 떨쳐냈다.


괜한 것에 궁금증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서우니까.


속이 불탈만한 일은 사양인 거다.


저절로 빨라지는 발걸음과 함께 빠르게 목적지인 멜리다 상회에 도착하니 입구 앞에는 아버지인 막시 멜리다가 오면서 보았던 사람들과 똑같이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부지.”

“어어. 왔냐.”


돌아보는 막시 멜리다는 필므와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답게 키도 작고 어딘가 믿음직스럽지 못해 보였다. 그렇지만 적당히 붙은 살집과 인상으로 인해 인심 좋은 아저씨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상인으로서는 나름 나쁘지 않은 외견이다.



“뭐 하는데?”

“드래곤이다 뭐다 난리지 않냐. 나도 구경이나 해보자 한 거지.”


쉽게 못 볼 구경거리라지만 그만두는 게 좋다.



“하······ 됐으니까 관심 꺼. 모르는 게 약인 것도 있잖아.”

“응?”

“그보다 그건 어떻게 됐어?”

“아아, 그렇지.”


밖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순간 상회의 주인―― 상인의 얼굴이 된 막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회 안으로 들어갔다.


장사 끝이라는 문패까지 내걸고는 확실히 문까지 잠근 걸 확인한 둘은 상회 안쪽에 있는 가장 보안이 좋은 접견실로 향했다.


마주 앉은 필므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어때, 잘 만들어질 거 같아?”


묻는 말에 막시는 신음을 흘렸다.



“왜 그래? 뭐가 잘 안됐어?”

“아니. 완벽해.”

“그러면 왜? 틀을 만들어줄 공방, 마광석을 다뤄줄 곳과의 계약도 빈틈없이 끝내뒀잖아.”

“······그래. 모두 차질 없이 잘 됐어. 그리고 이게 시제품이다.”

“벌써 완성된 거야?”


필므는 막시 상자에서 꺼내주는 시제품―― 손전등을 받아들었다.


정교하기 그지없는 나사선과 알고 보니 망치로 내려쳐도 금하나 안 가는 엄청난 강도의 유리가 장착된―― 그대로 똑같이 만들기엔 단가가 걱정되는 이스피리아의 작품보단 상당히 간략화했지만, 완성도 자체는 훌륭했다.


작동도 문제없이 되는 게, 이 정도라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했다.



“괜찮게 완성됐네. 가격은 어떻게 할 거야?”

“필므, 네가 생각하는 적정 가격은 얼마냐?”

“음······. 이 정도라면 주은화 2장이나, 주은화 1장이랑 원은화 9장쯤일까. 처음은 상품을 알리는 느낌으로 하고, 나중에는 주은화 3장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나쁘진 않아. 하지만 순서가 잘못됐어. 처음에는 주은화 4장으로 가는 게 좋을 거야.”

“어째서? 그리고 너무 비싸지지 않아?”


막시는 고개를 저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네가 말한 대로 가는 게 맞긴 해. 하지만 [광구]의 마도구 가격은 보통 얼마냐.”

“대충 원금화 1개 정도 하지?”

“그래. 따라서 주은화 4장이라는 가격에도 잘 팔리겠지.”

“어, 그러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어. 선점 효과를 노리는 거지? 하지만 네가 착각하는 게, 너무 싸면 어떨 거 같아?”

“당연히 잘 팔리겠지······?”

“하아······ 너무 싸면 의심이 생길 거다. ‘정말 작동은 하는 건가? 쉽게 망가지지 않나?’라면서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처럼 아예 새로운 물건은 처음에 가격을 낮게 측정하면 후에 올리기도 쉽지 않아.”

“······왜?”

“저 물건은 이 가격이다―― 라는 인식이 생기니까 그런 거잖냐, 바보 아들아. 가격을 올리려 해도 비슷한 물건조차 없는 판국에 기준점조차 없으니 사람들은 반발할 거야. 자고로 신상품이란 가치를 최대한 높여놔야 나중에 딴말이 없어. 가격을 내리는 건 이후에 경쟁상대가 생겼을 때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

“그런······ 거야?”


멍하게 있는 필므를 보며 막시는 거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 꼬락서니를 보니 알만하군.”

“뭐, 뭘?”


못마땅한 표정으로 막시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도 시원스러운 바보 취급에 욱한 필므는 따지려 했다.


하지만 그전에, 막시가 먼저 꺼낸 이야기에 필므 안에서 피어오르던 불평은 싹 사라졌다.



“이스피리아 라고 했나? 이걸 넘겨준 아가씨는.”

“어어······ 맞아.”

“후······ 제대로 감사는 전한 거냐?”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필므는 일단 끄덕였다. 그러자 막시에게서는 오히려 못마땅해하는 표정이 더욱 짙어졌다.



“넌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으면서도 장사에 가장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 인간관계에서만큼은 정말 꽝이야. 그뿐이라면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넘어갈 만해, 상인으로는 절대 대성――은커녕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객사할 게 뻔하지만. 그런데 안타깝게도 넌 인간과의 관계를 가볍게 보는 경향까지 있어. 아들이라지만 어떻게 나한테 이런 놈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야.”


신랄한 비평이다.


다만, 필므 자신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던 점이니 딱히 불평할 맘은 들지 않았다. 실로로 얼마 전 그러한 경향 때문에 험한 일을 당할 뻔까지 했다.


라프리트와 소베르비아, 그녀들의 눈빛은 지금까지도――


――강한 척 해봐야 소용없다.


아마 꽤나 긴 세월을 따라다닐 거다. 앞으론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가볍게 떠보는 미친 짓거리는 평생토록 하지 않겠지.


돈을 줄줄이 낳을 것 같은 굉장한 만남이 있던 날이지만, 일부러 괜스레 꺼내기는 싫은 악몽 같은 기억이다.



“호······ 전혀 안 변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금은 봐줄 만해졌구먼. 방금 말은 취소해야겠어. 과연 베르다드. 굴지의 명문답군. 보내면서도 반신반의했는데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


무서웠던 그 날의 일을 떠올린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는지 막시는 오늘 본 것 중에서―― 솔직히 근 몇 년 중에서는 최고로 기분이 좋은 듯했다.


발끈한 필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부지가 보내준 게 아니라, 내가 합격해서 들어간 거야.”

“돈은 내가 보태줬으니 그게 그거지.”


불만스럽게 입을 삐쭉 내미는 필므를 무시하고 막시는 사뭇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직 한참 멀고도 멀었어. ······그 이스피리아 라는 아가씨 말이야, 공국의 공주님과 리벨리타스 후작가의 영애와도 친분이 있다고 했었지?”

“어. 우리나라의 국빈이시래.”

“그런가······”


진정한 신분―― 리카드 디안 클로디아노의 딸이라는 건, 아마 자신 말고는 거의 알고 있는 사람이 없겠지.



“그런데 그게 왜?”

“쯧쯧. 그래서 네가 아직 멀었다고 하는 거다.”

“······”


더 대차게 혀를 찬 막시는 잠시 손전등―― 공방에서 만든 시제품이 아닌 이스피리아가 만든 시제품을 들었다.


딱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단순 생각을 정리할 요량으로 만지는 듯했다.



“국빈이라면 그 아가씨 자체도 분명 신분이 엄청 높겠지. 그런데 귀족같이 높은 신분의 사람치고는 정말 착한―― 아니다. 배려심이 좋다고 해야겠군······ 너 같은 평민도 이리 잘 챙겨줬으면.”

“계약금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것도 포함이다. 이거 원래는 유리라든지 나사선 같은 건 없었다고 했지?”

“어······. 없었는데 그게 왜?”

“바보 같은 자식아, 생각을 해봐라. 이것들이 없는 것과 있는 것, 어느 쪽이 따라 하기 쉽겠냐?”


고친 [광구]의 술식은 대단했지만, 따라서 복제하려고만 하면 그다지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만큼 간단하기도 했고.


그렇지만 유리나 나사선 이야기가 나온 건 잘 이해가 안 됐다.


원작처럼 정교하기 짝이 없는 나사선도 아니고 정신 나간 강도의 유리도 아니다. 여러 가지로 제작하기 쉽게 변형된 지금의 시제품이라면 통째로 따라 하는 건 생각보다도 쉬울 거다.


아버지답게 자신의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막시는 고개를 내저었다.



“에휴. 넌 진짜 사람에 대해 좀 더 알 필요가 있어. 그 아가씨가 준 [광구] 술식을 다른 상회에서 복제하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 거 같냐?”

“구매해 가서 분해해 봐야 하니까, 아마······ 한 달? 술식 자체는 쉽지만, 맡아줄 공방이라던가 알아봐야 하잖아.”

“웃돈을 낸다고 하면 한참 빠르겠지. 그럼, 유리와 나사선이 추가되지 않은 몸체는?”

“그건······ 못해도 1주일이면 가능할 거 같은데.”

“추가된 건?”

“그것도 한 달쯤이나 걸리겠지.”

“믕~청한 놈. 적어도 5달은 걸린다. 제대로 물량을 채우기엔 1년 이상도 걸려.”

“어째서?!”


단순 추가할 뿐인 작업 아닌가?


왜 그렇게까지 시간이 늘어나는지 필므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쯧, 바보 같은 녀석. 따라 할 놈이 한 둘이겠냐? 거기다 별거 아닌 걸로 보이는 이 공정의 추가 때문에 한 군데 공방에서 모두 처리할 수 없게 됐어. 틀 만드는 데에서 유리까지 만드는 거 봤냐? 막상 뛰어들기엔 생각보다도 귀찮고 큰 수주라는 거지. 공방도 뭔가 다른 일을 맡으면서 하기엔 물량 수급이 안 돼서 본전도 못 찾아. 그렇다고 다른 공방을 찾기엔 당장 아무 일도 안 하는 빈 공방들이 많겠냐. 기껏 따라 해봐야 한두 상회만 가능할 거다.”


아직 막시가 뭐라 핀잔을 주며 말하고 있지만, 도중부터 필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돈 냄새를 잘 맡는 필므는 계산도 빨랐다. 왜 복제하는 데 오래 걸리는지를 알았다면 끝이다. 얼마큼의 이득이 들어올지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우리가 급할 필요가 전혀 없잖아.’


히트 상품을 따라 하려는 짓은 많았다. 그렇기에 먼저 신상품을 발 빠르게 출시해 원조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건 매우 중요했다. 특가로 처음은 싸게 내놓으려 했을 만큼.


바로 지적당했지만······


‘아부지는 다른 상회의 추격이 느리다는 걸 알고······?’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신상품에 대한 의견도 틀리진 않았을 거다.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도 못 맡는 막시지만, 장사판에 한에서는 분명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났으니.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새삼 차이가 심하다고 재차 되새기게 됐네. 그리고 이스피리아 님도······. 상인도 아닌 분이 여기까지 내다보실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당연하겠지만. 그런데 설마 공정의 추가가 우리 상회를 위한 일이었다니. 그건 예상치도 못했어.’


이젠 평소 어벙한 모습은 그냥 연기로밖에 생각되지 않은 무시무시한 혜안의 소유자다. 그런데다가 단순 계약 상대인 일개 상인 나부랭이에게도 마음을 써주는 넓은 아량······


왠지 감개무량해진 기분으로 필므는 말했다.



“그러니까 안달이 난 다른 상회가 달려들 테지만, 유리를 뺀다든지 급하게 복제한 조악품을 내면 소비자가 눈길을 줄 리가 없느니 1년여쯤은 온전히 우리만의 독점이라는 거지?”

“그렇지. 다만 그리 오래가진 않을 거야.”

“음······ 그렇긴 하겠지. 한 번 사면 계속 쓸 수 있으니까.”


그래도 원조라는 이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히 계약기간인 7년 정도는 무난히――


‘어······? 계약이 7년인 것도 잘 팔리는 기간을 산정해서······ 에이, 서, 설마 아니겠지. 어떻게 거기까지······ 아닐 거야.’


하지만 부정하는 마음과는 반대로 이스피리아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넌 앞으로 그 아가씨에게 매일 밤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하고 자라.”

“아, 아니. 그건 좀 너무 그렇지 않아?”

“뭐가 그렇지 않아냐?! 짜식아!”


쿵.


막시는 필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뭐, 뭐 하는 짓이야?! 아프잖아!”

“아파도 싸. 미련한 것아, 아직도 모르는 거냐? 그 아가씨가 계약서에 클로디아노 공의 이름을 적어줬잖냐.”

“아······?”

“아?? 아??? 아오. 이 멍청한 것이. 클로디아노 공이 계약주인 건에 다른 상회가 손댈 걸로 보여? 뻔뻔한 아들아, 이만큼까지 배려를 받아놓고는 자기 전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도 못 한단 말이냐.”


그 말을 듣고 비로소 필므는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이스피리아가 얼마나 배려를―― 자비를 주었는지를.


막상 출품할 단계에서 덩치가 큰 악덕 상회가 껴들어 자금으로 쪼이거나 앞으로 물건을 일절 수주 안 한다는 으름장 등, 일을 맡긴 공방을 압박하여 이쪽과의 계약을 파기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공방 쪽도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인해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겠지만, 앞으로의 일거리가 끊기는 것보단 훨씬 싸다.


그러고는 갑자기 손이 빈 그 공방에 본인들 상회의 일을 맡긴다거나, 멜리다 상회에서 수주했던 일 그대로 납품하는 상회만 바뀌지 않을까.


당연히 불법이지만, 악덕 상회가 그런 걸 신경 쓸 턱이 있나. 힘이 없는 이쪽으로서는 법에 물고 늘어지더라도 낙엽처럼 순식간에 나가떨어질 것이다.


막시―― 멜리다 상회의 주인인 그는 이걸 말하고 싶었던 거다.


장사의 시작조차 못 할 수 있었단 것을······


하지만 리카드 디안 클로디아노―― 왕에게 신임받고 있는 학원장이 계약주라면 암만 큰 상회라도 감히 압박하려 들진 않을 거다.


국빈도 나름 꺼려지긴 할 테지만, 클로디아노 라는 이름값보다는 확실히 격이 떨어져 보이긴 했다. 실은 이스피리아나 학원장, 둘 다 거기서 거기인 클로디아노지만 알 수 있을 리도 없고.


‘진짜······ 진짜로 이걸 위해? 혹시 학원장님에게 보답이라든가 말씀하셨던 건―― 내가 부담을 갖지 않게 하려고?!’


너무 앞서 나간 터무니없는 생각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이 방면으로는 뛰어난 아버지가 말하는 거다.


그리고 무턱대고 믿지 않기에는 그녀―― 이스피리아의 이미지는 너무 거대해졌다.


‘당시 별생각 없어 보였던 이스피리아 님은······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연기를 하셨던 건가. 한낱 상인인 날 위해―― 잠시라지만 이용하려고도 생각했었던 이런 날 위해――’


그녀가 이런 더럽기 짝이 없는 자신을 몰랐을 리는 절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응. 자기 전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자.”

“기도까지는 좀 오버 떠는 거 같기도 하지만, 감사하는 건 좋은 거지. 요 조그마한 상회에서 클로디아노 공의 계약을 따는 실적 같은 건 두 번 다시는 없을 테니.”

“괜찮아.”

“응?”

“그분이시라면 왠지 앞으로도 여기에 맡겨주시지 않을까 해.”

“오. 네가 장담하는 거니 기대할 수 있겠군. 멜리다는 쑥쑥 커져 나가겠구먼. 물론 만족할 만한 성과를 제대로 내야 하겠지만.”

“어. 그렇게만 한다면 앞으로 바빠질 거야.”

“그 아가씨가 그렇게나? 어딘가의 장인이라도 됐던 거야?”

“그런 어중이떠중이랑 비교하지 마. 그분은 이 시대 최고의 장인인 분이시니까.”

“너랑 동갑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 술식을 고쳐서 제작했다고 했나. 어린 나이에 굉장하긴 하네. 암만 그래도 시대를 대표하는 장인까진 좀―― 어? 너······ 왜 그러냐?”


뭔가 무서운 거라도 봤는지 막시는 화들짝 놀라며 주춤 물러섰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이쪽을 가리키는 거겠지만――



“으응? 뭐가?”

“뭐가는! 너 눈탱이가 맛이 갔어. 마치 세뇌당한······ 그래! 저기 온종일 교회에 서성거리기만 하는 녀석들 같아.”

“무슨! 그딴 무례한 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그런 광신도―― 음음. 어쨌든 그런 녀석들과 같을 리가 없잖아. 나의 이 순수한 믿음이 그딴 거랑 같을 거 같아?!”

“――놈들은 모두 다 그리 말하더라.”

“뭐라고?! ······잠깐. 아니지? 화를 낼 게 아니었어. ――어차피 아부지도 곧 알게 될 날이 올 거 아냐.”

“아들아······. 네가 뭐에 맛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거란다.”

“아니, 곧 알 거야. 확실해.”

“······.”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느꼈는지 막시는 조금 안쓰럽게 제 아들을 바라보고는 볼일을 보러 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거라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막시, 그도 몰랐을 거다.


자신 또한 아들과 비슷한 눈이 될 거라고는――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 입니다!


오늘의 2번째 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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