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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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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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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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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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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소베르비아의 말대로 잠시 시간이 지나니 피부가 반짝반짝해진 듯한,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는 이스피리아가 사용인을 대동하여 돌아왔다.


멋대로 자리를 뜬 것에 사과하는 그녀에게 다들 괜찮다고 하며 미소로 반겨줬다.


필므만은 굳어가는 얼굴 근육을 풀기 위해 몰래 살짝 마사지하는 일도 있었지만, 어찌 됐든 무사히 식사 시간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소베르비아의 여러 사용인이 집사처럼 보이는 고목처럼 단단한 이미지의 남성의 인도하에 카트에 음식을 싣고 왔다.


‘의외로······ 소소하게 드시네.’


보통 이런 사람의 식사라면 절대 다 못 먹을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들과 그걸 우아하게 한 입만 맛을 보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카트의 숫자는 3개로, 인원수에 비해 많다고 할 순 있으나 높은 사람의 식사라고 하기에는 뭔가 상상하던 거와는 달랐다.


‘혹시 안의 내용물은 엄청난 식자재를 사용했다거나?’


그런데 막상 덮고 있던 뚜껑을 열어 드러난 음식은 정말 생각 외로 평범한 축에 들어갔다. 시민들도 쉽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재료만 사용됐다.


물론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들이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었고, 만든 사람의 솜씨가 좋았는지 그럴싸해 보이긴 했다.


확실한 건 재료가 무엇이든 필므 자신은 맛보지 못할 고급음식이라는 거다. 쉽게 속아선 안 될 것이다.


‘향신료는 분명 최고급이겠지······’


딱딱하게 굳어가는 필므를 뒤로하고, 테이블에 깔리는 음식을 보던 이스피리아는 뒤에 있던 찬크에르에게 말을 걸어 도시락을 받았다.


‘뭐, 뭐, 뭐야······ 저건 또?’


놀라는 필므의 심경을 대변하듯 소베르비아가 물었다.



“이스피리아 양. 교실에서도 봤었는데, 저분께선 물건을 허공에서 꺼내시는 것 같습니다만.”

“아, 그거요? [수납]의 마도구에요. 편하고 좋아요.”

“호오······ 굉장한 것을 지니고 계시네요.”


감탄하는 소베르비아에게 이스피리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만······


‘아뇨아뇨!! 굉장한 걸 넘어 아티팩트 아닙니까?! 그리고 [수납]의 마도구가 맞긴 합니까?!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데?’


[수납]은 늘어나는 부피를 줄이고 운송할 때 쾌적한, 도난당할 일도 전혀 없는 상인들의 꿈이자 환상 속 마법이다.


그 윗 단계의 마법으로는 무게, 부피 아무런 한계가 없다는―― 시간조차도 멈춘 듯 보관할 수 있다는 [차원수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도 전해져왔지만, 직접 사용은커녕 아무도 본 적이 없기에 헛소리로 치부하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대륙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대상회라도 하나 보유할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아티팩트를 “굉장하다”, “편하고 좋다” 등으로 하하 호호 떠드는 눈앞의 광경은 신비롭기만 했다.


어쩌면 어설프게 따라 한, 들어가는 양도 적고 재수 없으면 넣은 물건이 사라지는 그런 마도구――이것조차도 가격은 어마하기만 했다――가 아닐까도 싶었다.


하지만 필므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건 진품일 거다. 어설픈 마도구일 리가 없다. 만약 어설픈 것이라 하더라도 [수납]이 아닌, 위 단계인 [차원수납]의 열화 판일 것이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티팩트를 만든다든가, 한 개 보기도 힘든 아티팩트를 여러 개―― 그것도 [수납]의 아티팩트를 봤다든가. 현실감이 없다.


살짝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저 이 모든 것이 꿈이라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소베르비아의 눈빛은 명백히 현실이기도 하고.


끄덕끄덕.


이스피리아에게 들키지 않게 알고 있다는 의사를 보낸 필므는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한데 아무리 고급진 음식이라 할지언정 맛을 느낄 새라도 있을까. 소베르비아의 사용인이 덜어주는 음식을 아기 새처럼 의무적으로 받아먹을 뿐이었다.



“응? 속이 안 좋으세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스피리아 님······이 아니라, 양!”


의아한 눈으로 잠시 보던 이스피리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사용인을 부르는 건가 생각했던 필므는 곧 그녀가 마법을 쓰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데 아무 일도 안 벌어졌다.



“어······”

“이제 속은 어떠세요?”

“네? 속이야 괜찮······ 엇?”


진짜 편해졌다.


타들어 가던 느낌이 거짓인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법인가······? 그런 것치곤 마력이 안 느껴졌는데.’


언뜻 듣기로는 마력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타인의 마력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만, 그런 일은 자신에겐 불가능했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마력만으로 판단해야만 했다.


‘마법이 아니라면 손가락을 튕긴 건 그저 신호를 보낸 거였나? 그리고 뒤에 있는 저 사용인이 마도구를 사용했다? ······어?! 잠깐, 그렇다는 건――’


[치유]의 마도구.


즉, 또 다른 아티팩트다.



“이건······ 이스피리아 니임―― 양이?”

“네.”


밝게 웃으며 말하는 리아를 보고 필므는 확고한 믿음과 함께 그녀를 경배했다.


――이 시대 최고의 장인을.


특정 한 부분만을 아티팩트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녀는 그냥 아티팩트를 통째로 만들 능력이 있는 것이다.


손전등의 스위치를 만드는 정돈 일도 아니었을 거다. 듣도 보도 못한 [치유]의 마도구도 만들 정도이니. 필시 누워서 물을 마시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겠지.


‘어쩌면 저 [수납]의 아티팩트도 만드신······건가?’


멜리다 상회의 주인인 아버지가 지금 이 생각을 들었다면, 뭘 잘못 먹었냐고 안쓰럽게 바라보는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하지만 필므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이스피리아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아티팩트는 전부 그녀가 만들었을 거라고.


그 외에도 몇 개의 아티팩트를 만들었나 상인의 피가 꿈틀대며 궁금증이 일었으나, 참았다. 이 이상 입 다물어야 할 비밀이 늘어나는 건 사양이었기에. 지금만으로도 위가 한계였다.


그렇게 속 편히, 실제로도 속이 편해진 덕분에 조금은 여유를 되찾은 필므는 드디어 어느 정도 맛도 느끼면서 천천히 식사를 끝마쳤다.


참고로 라프리트의 식사는 준비한 간단한 샌드위치로, 대귀족의 자제답지 않은 소박한 식사에 매우 놀랐었다.



“저, 이스피리아 님?”


입가를 닦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던 이스피리아는 즉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님은 괜찮다고 했잖아요, 필므 씨.”

“아닙니다! 부디 이대로 부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도 그게 마음이 편하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드릴 말씀이요?”

“예. 다름이 아니오라――”


필므는 이스피리아가 개발한 마도구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게요?”

“네. 분명히 잘 팔릴 겁니다. 가격은――”

“――좋아요.”


잠시 손전등을 보고 놀라던 이스피리아는 선뜻 허락했다.



“저······ 가격을 듣지 않으셔도 됩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긴 좀 그렇지만······ 작은 규모로 시작하기에 시험적 의미가 강해 만족하실만한 금액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만.”

“으으음. 실물의 제작은 필므 씨쪽에서 하시는 거고, 전 여기에 사용된 술식만을 알려주면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죠. 판매금액의 2%만 받도록 할게요. 만드시는 것부터 판매까지 모두 하시는 건데, 이런 거에 미리 돈까지 내면서 필므 씨가 손해 볼 필요는 없죠. 초기자본은 중요한 법이랍니다. 실제로 잘 팔릴지도 미지수 아닌가요.”

“그,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네.”


미소까지 짓고 말하는 이스피리아.


필므는 넋이 나갔다.


‘이런 거’라고 취급당할 정도가 아니건만, 정말로 그녀에겐 손쉬운 일이겠지.


말한 내용도 필므의 입장으로서는 좋기만 했다. 실제 멜리다 상회는 자금이 윤택한 곳이 아니었으니.


적정 금액을 맞출 수나 있을까 걱정하던 필므에게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다만, 이렇게 선뜻 믿고 거래를 진행하는 그녀가 조금 걱정되었다. 계약은 한다지만, 판매금액을 속이고 그녀에게 돌아갈 금액을 조작할 수도 있었던 거다.


당연히 그럴 마음은 조금도―― 한 톨도 존재하진 않았지만, 일부 악덕 상회에서는 이러한 일도 종종 일어난다. 그뿐이랴, 오히려 장인들을 핍박해 값싸게 물건을 도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보통은――국가 산업 규모의 큰 사업이 아닌 한―― 눈앞의 현찰로 미래의 수입까지 계산하여 금액을 측정해 지불하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신뢰가 쌓여야만 몇 개월 할부로 지급하는 때도 있다만.


쉽게 말하면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피리아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이 손전등을 품에서 꺼내고 있었다.



“아뇨아뇨! 그 물건은 괜찮습니다.”


손전등에 닿기가 두려운 듯 빠르게 필므는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이스피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건네주는 저 손전등을 덥석 잡고 싶었다.


세기의 발명인 것이다. 찬찬히 분석하면 아티팩트를 만드는 비법을 알아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건 만용이다.


목숨은 소중한 것이었다. 새로운 상품이 좋은 조건으로 들어온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견본으로 쓸 실물은 하나 필요한 게 아닌가요?”

“그게 아니오라, 제가 원하는 건 처음 이스피리아 님이 만드신 겁니다. 소베르비아 공주님과 라프리트 님에게 듣기로는 지금 그 손전등은 좀 더 세공이 들어갔다고 했습니다만, 그러면 단가가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아하. 그렇군요.”


공정이 추가될수록 가격은 당연히 오르기 마련이다.


변명일 뿐이지만, 리아가 수긍하는 모습에 작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 역시나 본인은 쉽기만 한 일이니 공정이 늘어났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시는구나. 분명 이분에겐 하나둘 추가해봐야 거기서 거기인 작업 난이도겠지.’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에르, 아까 쓴 쇳덩이 남아있죠? 그거랑······ 아! 마광석이 없다······”

“나중에 주셔도 됩니다. 오늘은 계약만 체결하셔도――”

“――혹시 이걸로도 가능하신가요?”


도중 끼어든 소베르비아에게 시선이 모였다. 그리고 내밀어 오는 그 손 위에는 저품질의 마광석이 올라가 있었다.


‘저건 아까 수업 시간에 만들었던 [광구]의 마광석이잖아? 이미 각인이 된 마광석을 어떻게 바꾸라고?!’


필므가 원한 건 이스피리아가 바꾼 술식이 들어간 마도구였다.


그러하건만 어째서 이런 짓을. 거래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잘못 판단했나.’


그저 평범한 술식의 마도구라면 손해뿐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아예 거래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만도 말할 수 없으니 편하게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표정이 굳어지는 필므를 내버려 두고 이스피리아는 사용인을 통해 건네지는 마광석을 받았다.


찬크에르에게도 평범한 쇳덩이를 받은 이스피리아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도 뒤에서 있는 남자 사용인에게 신호를 보내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는지 앞에 놓은 쇳덩이는 구불거리더니 형태를 바꾸었다.


기묘한 사태에 필므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어디서 본 듯한 형태의 쇳덩이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조]?! 아무 도구도 없는데??’


[주조]는 쇠를 물렁물렁하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그렇지만 경도만은 크게 변하진 않아서 형태를 잡을 모루나 망치가 필요했다. 저렇게 저 혼자 움직이면서 형태를 바꾸는 마법이 아니었다.


‘애당초 마법을 쓰신 게 맞긴 한 거야? 아무런 마력이 안 느껴졌는데. 아니면 이번에도 뭔가 아티팩트라도 사용하신 건가······? 혹시 앞엣것도 이런 식으로 만드신 거였나? 그럼 미리 준비한 게 아닌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젠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게 빠를 거 같았다.


필므는 멍한 머리로 이스피리아가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하, 하······ 굉장하네. 흰 모래 알갱이들이 저절로 떠올라 모여 유리가 만들어진다거나 말이야. 하하하······.’



“됐다! 자요, 필므 씨!”


기세등등한 이스피리아가 건네는 손전등을 찬크에르가 받아 건네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필므는 그것을 받아 살펴봤다.



“앞쪽엔 나사선을 만들어서 쉽게 분해할 수 있게 했어요. 거기다가 유리도 앞에 넣어놨으니 마광석도 보호할 수 있고, 안에 먼지 같은 이물질이 들어가서 밝기가 줄어들 일도 없어졌어요. 그리고 유리가 깨지더라도 새것으로 바꿔 끼기만 하면 수리도 쉽게 할 수 있어요.”


뿌듯한 듯 칭찬을 바라는 모습의 이스피리아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물인 마광석이 평범하니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분리할 수 있어 수리가 손쉽다는 것은 나름의 장점이 되긴 했다. 하지만 저렇게 세밀한 나사선은 제작 난이도가 올라가니 조금 바퀴 수가 적게 간단히 손을 봐야만 됐다.


그것만 빼면 전혀 손댈 곳 없이 전체적인 완성도는 좋았다.


하지만 약간의 관심이 생겼을 뿐, 그렇게까지 큰 기대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내용물이 변하질 않았으니 말이다.


그 기분대로 필므는 심드렁하니 여태와 마찬가지인 평범한 방식으로 마도구를 작동하기 위해 마력을 주입했다.


그리고 스위치를 조작하려 하려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마력을 주입한 순간 그대로 켜졌다.



“어라······?”


몇 번을 다시 봐도―― 앞으로 쬘 순 없으니 위로든 손전등에서는 제대로 불빛이 나와 정자의 천장을 밝혔다.


그리고 어쩐지 사용되는 마력의 양도 생활마법 수준으로, 이전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어떻게?”

“뭐가 잘못됐나요?”

“아, 아니요. 아무 문제도 없습――”

“――필므 씨는 이스피리아 양의 솜씨에 감탄하신 거예요. 그렇죠?”


소베르비아의 시선에 필므는 빠르게 긍정했다.



“마, 맞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스피리아 님.”

“네. 정말 잘 만드셨어요.”

“그런가요······?”

“하아아아······”


깊은 한숨 소리가 말을 잘랐다.


한숨을 쉰 사람은 라프리트로, 그녀는 필므뿐만이 아니라 소베르비아도 한 차례 노려봤다.



“잠시 봐도 되겠습니까? 필므 씨.”


날카로운 분위기에 잘못한 것도 없건만 잔뜩 위축된 필므는 다가온 안네에게 공손히 마도구를 넘겼다.


그렇게 넘겨받은 라프리트는 마도구에 마력도 주입하면서 살펴봤다.


조금 눈을 가늘게 뜨며 놀란 기색인 소베르비아와 작게 떤 필므는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마력이 다한 손전등이 꺼지고, 라프리트는 손전등을 필므에게 돌려주더니 제작자인 이스피리아를 쳐다봤다.



“리아 양.”


아무리 순진하더라도 지금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는지 이스피리아는 전원의 얼굴을 살피더니 조심히 대답했다.


“네, 네. 라프리트 씨.”

“보통이라면 이미 술식이 새겨진 마광석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네?”


‘착각이······ 아니었구나.’


멍한 표정을 짓는 리아에게 라프리트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물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일부 하실 수 있는 실력이 좋은 분이 계시긴 해요.”

“네엣?!”


‘그런 게 원래 가능했다고?!’


필므는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라프리트는 그런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리아 양은······ 넘어가더라도, 필므 씨가 모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죠. 효율이 너무나도 안 좋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미세하게 수정하더라도 몇 개월, 길면 년 단위로 시간이 들어가는데. 그것도 실력 좋은 장인하는데 말이죠. 새로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편이 빠를 겁니다. 그래서 보통은 제작하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꼼꼼히 술식을 검토하고, 만들 때도 틀리진 않았나 차근차근 확인하면서 진행하는 거고요.”


‘그렇구나······’


상품 개발을 위해 마도구 제작 수업을 듣긴 하지만, 그저 단순히 마광석을 낭비할 수 없으니 신중히 만드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고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아예 몰랐었다.


마찬가지로 전혀 몰랐는지 이스피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러면 제가 한 건······?”

“비록 간단한 술식이라지만 어떠한 장인도 흉내 내지 못할 속도로 수정하신 거죠.”

“그냥 쉽게 되던데······ 아무나 하실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라프리트씨나 여러분들도 분명 쉽게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당황한 이스피리아는 저리 말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겠는가.


‘일단 전 못합니다.’


필므의 마음속 외침과 동일하게 라프리트도 부정했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리아 양.”


딱딱하고 진지한 말에 이스피리아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쳐다봤다.



“마력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특징을 가진 마광석에 마법을 사용하는 게 어디 쉽겠나요?”


그래. 마광석은 마도구를 만드는 데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지만, 저 특성 때문에 수정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이다.


재료로써 가루가 된 마광석엔 그다지 많은 마력이 담기지도 않거니와 마력을 흡수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해야 할 필요성은 있지만, 한계치까지 도달하기 전에 무리 없이 마법을 발동시킬 만했다.


만약 한계치 이상의 마력을 흡수했다 하더라도 작게 불꽃이 튀기며 가루가 타는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익숙지 않은 사람은 저 때 마광석 가루를 잃게 되겠지만,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아. 완성된 마도구를 수정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고 위험도가 완전히 달라.’


보통 수정하기 위해 술식을 새기는 [각인]을 다시 사용하려 해도, 그 마력이 마광석 안으로 흡수된다. 그래서 마법이 발동하지 않는다. 마력이 없으니 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리하게 마력을 더욱 많이 집어넣어 발동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과는 좋지 못해 마광석이 한계로 인해 폭발하거나 부서졌다고 전해진다.


다치는 사람은 많았고, 결론적으로 수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방금까지는.


이런 생각을 하는 필므와는 달리 이스피리아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방법은 많지 않나요. 마력이 흡수되지 않게 제어한다거나, 마법 자체를 아예 외부에서――”

“――리아 양!”

“네넵!”

“전 욕심 없이 남에게 베푸는 그런 당신을······ 내 친구가 정말로 자랑스럽고 좋아해요. 하지만 리아 양만이 할 수 있거나, 혼자만 알고 있는 지식을 함부로 발설하거나 베푸는 행동은 자제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라프리트는 힐끗 소베르비아와 필므는 쳐다봤다.



“이용만 당할 수 있거든요.”


‘저, 저는 그럴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물론 이스피리아가 말하다 만 방법들이 신경 쓰이긴 했다.


마광석에 마력이 흡수되지 않게 제어한다거나, 잘리긴 했지만 대략 유추하자면 직접적으로 마법을 각인 된 술식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 방법들이 궁금하였다.


‘전혀 짐작도 못 하겠지만, 분명 기발하겠지.’


돈 냄새가 풍겨오니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폭주했다.


――공주와 후작 가의 영애가 있는 자리만 아니라면.


‘혹은 이스피리아 님이 국빈만 아니었더라면 한 번쯤은 꼬드겨서 알아낼―― 아, 아니. 잠깐······ 어쩌면 라프리트님은 내 이런 본성을······ 눈치채서?’


고개를 돌려 라프리트를 쳐다봤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은은한 미소만 짓고 있으니까.


다만 자신의 이런 마음이 들킨 것이라 필므는 확신하고 두려움을 품음과 동시에 감탄했다.


놀랍도록 뛰어난 선구안과 공국의 공주에게도 핀잔을 줄 수 있는 담력까지. 공국과의 알력이 발생할 수도 있는 짓이건만, 이 또한 라프리트라면 문제없이 해결할 준비도 모두 끝마쳐놓았을 것 같았다.


‘이······것이 우리나라 귀족의 자제 중 정점에 서 있는 영애인가······’


평민인 자신에게도 들릴 정도로 귀족계에선 뛰어난―― 완벽한 영애라 소문이 자자하지만, 필므가 볼 때는 조금 똑똑하고 여린 평범한 영애로 보였던 라프리트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소문 그대로의 뛰어난 사람인 것이다.


나름대로 자신 있던 사람 보는 눈이 흐려진 기분이다.



“지금처럼 필므 씨와 대가를 받고 계약하는 것은 괜찮겠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적정선을 유지하시고, 또 제대로 된 계약인지 반드시 꼼꼼히 확인하세요. 리아 양이 가지고 계신 그 모든 것들은 리아 양에게 힘이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해요.”


알아들었냐는 시선에 이스피리아는 놀라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도 말씀드리고 싶은 건 많지만······ 나중에 제가 따로 뵙고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라프리트는 고개를 필므에게 돌렸다.


그 시선을 받은 필므는 두렵고, 다시 속이 타오르는 듯했다.


‘솔직히 무서운 건 소베르비아 님뿐이라 여겼건만, 한참을 착각하고 있었어.’


마음 때문인지 입을 여는 라프리트의 모습이 느리게만 보였다.



“자. 그럼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예요. 필므 씨의 볼일을 보셔요.”

“에······?”


이렇게 넘어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필므는 멍했다. 최소 무언가의 압박이나 협박을 할 거라 여겼건만.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멍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필므는 자신의 짐 속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책이나 공책은 못 챙겨도 계약서만큼은 반드시 들고 다녀야 할 필수품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상인 말고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게 좋을 거다.


최대한 신속하게 계약서에 내용을 채운 필므는 고개를 들어 이스피리아를 쳐다봤다. 그러자 다가온 찬크에르에게 필므는 계약서를 넘겼다.


검수를 한 것인가.


한 차례 쭉 훑어본 찬크에르가 건네줬고, 이스피리아도 마찬가지로 찬찬히 계약서를 읽어봤다.



“무······문제는 없으십니까?”


계약 내용에 관해선 전혀 허튼짓하지 않았다.


애당초 그럴 마음도, 생각도 전혀 없었다.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평소에도 그런 짓거린 절대로 하지 않았다.


악덕 상회나 몸집이 커질 대로 커진 대상회라면 어느 정도 불공정 거래를 제안하고 감당할 여력도 있지만, 멜리다 상회 같은 작은 곳은 당장 눈앞의 이득을 취하기보단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오랫동안 거래하는 게 훨씬 이득이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거래만큼은 정당하게 서로가 이득을 봐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거기다 이번 거래 상대는 국빈인데다가 본능적으로도―― 아니, 이 자리에 참여했다면 누구라도 알 정도로 그녀는 큰돈을 낳는 사람인 걸 느낄 수 있었다.


목숨이 달려있기도 했지만, 이러한 사람과는 틀어져 버릴 만한 짓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 때문에 무언가 실수하지 않았나 조마조마했다.



“여기 이 부분이요.”

“네, 넵!”


거리가 제법 되어 필므는 최대한 리아가 가리키는 곳을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다.



“저에게 돌아올 수익이 년으로 산정돼있는데. 년이 아닌 달로 바꿔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수령인도 제가 아닌 리카드 씨―― 학원장님으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대답은 했지만 혼란스러웠다.


‘년에서 달로 바꾸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쳤지만, 왜 학원장님에게 돈을 받도록 하는 거지?’


그런 의문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이스피리아는 웃으며 대답해줬다.



“확실한 건 없으니 얼마나 팔릴지 모르지만, 1년이나 팔잖아요. 필므 씨도 잘 팔릴 거라 말씀해주셨고. 그러니 꽤나 금액이 모이지 않을까요? 나르는데 좀 힘드실 수도 있고요.”


옮기는 거야 마차를 통해도 되고, 많아도 주금화로 지급하면 그리 무겁지도 않을 거다.


의문만 더 짙어지는 가운데 리아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금액이 커지다 보면 조금 욕심이 나실 수도 있잖아요. 주기를 짧게 하면 그럴 걱정도 없죠. 학원장님이 수령인인 건······ 제 나름의 보답이기도 하고 필므 씨도 학원에 오시니 지급하기 좀 더 편하지 않을까 해서요.”


즉, 년 단위로 모인 돈을 막상 남 주자니 아까워 액수를 줄이는 걸 방지한다는 건가.


확실히 달 단위면 판매량을 추적하기도 년 단위보단 수월하고, 만약 빼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금액 또한 많이는 챙겨가지 못할 거다.


누차 언급하지만 그럴 의도 따윈 전혀 없었다. 그러나 조심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계약에 신중해서 나쁠 건 없으니.


‘학원장님이 수령인인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말 그대로 보답한다고 보면 되는 건가?’


어떤 보답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둘 간의 무언가 그럴만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의아하지만 자신이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는 일이다. 내용은 크게 변동도 없고, 합당하다 할 것이었다.


그렇게 필므는 수긍하고 변경한 내용으로 다시 계약서를 작성하려 했으나······ 순간적으로 번득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이스피리아는 학원장이 데려온 사람이다. 유명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거였다. 그만큼 친밀할 테고, 돈도 맡길 수 있는 걸 거다.


이것이 뜻하는 건 무엇인가······


필므는 아니겠지 하면서도 무심코 이스피리아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닮은 곳은······ 없어 보이는데. 아니야, 오히려 그래서 갑작스레 데려온 건가?’


예외라 할 만큼 빠르게 국빈으로 처리된 것을 보면, 아마······ 그리 예상은 틀리지 않을 거다. 사실은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력레벨이라든가, 굉장한 전투력이나 기술을 가지고 아티팩트를 만든다든가 하는 일들이 모두 이해되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결혼했다는 소리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는데 뭔가 그쪽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 나라에서 공들여 준비한 것일 테지.


보통 한 사람을 위해 나라가 나서서 이러한 일은 하지 않을 거다.


당연했다. 폐하나 다른 중진들이 바보도 아니고 뭐하러 중요 안건을 제쳐두고 이런 일을 우선하여 처리하겠는가.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그럴만했다.


그녀는―― 이스피리아는 그 위대한 마법사이자, 이 벨루디스가 자랑하는 학원의 장인 리카드 디안 클로디아노의 딸일 테니까.


들리는 말에 의하면 혼자서 타국의 압력도 무력화한다는 그 리카드의 딸이라면······ 그러한 귀찮은 노력들이 전혀 아깝지 않을 거다. 그녀 또한 리카드만치 뛰어난―― 자신이 보기엔 그보다 더욱 대단한 사람이 될 예정인 자를 얻는 것이니.


굉장한 비밀을―― 거의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알아버렸다는 것에 필므는 나았던 속이 드디어 다시 부글부글 끓어왔다.


‘······전부 굉장한 사람들만 모여있네. 난 어쩌자고 이런 곳에 발을 들이민 거냐.’


하지만 무엇이고 간에 안 사실들이 너무 많았다. 앞으론 정말 입조심이 무엇보다 최우선인 과제가 되어버렸다. 라프리트의 눈치도 보이고.


‘아······ 도망치고 싶다.’


속마음이 어떻고 간에 필므는 빠르게 다시 작성한 2장의 계약서를 모두 건네줬고, 이스피리아는 읽어보더니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서명란에 제 이름만 쓰면 되는 건가요?”

“옙! 그렇습니다!”

“아, 맞다. 에르, 종이 좀 꺼내주실 수 있나요?”


살짝 고개를 숙인 찬크에르가 다시 허공에 손을 집어넣어 질 좋아 보이는 양피지를 한 장을 꺼냈다.


그걸 받은 이스피리아는 테이블 위에 펼쳐놓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한순간에 아무것도 없던 양피지에 간단한 술식이 2개 그려졌다.


신기하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지만, 필므는 그냥 ‘편하네!’라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는 의문을 제기할 여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쪽은 마광석에 따로 새길 술식이에요. 이건 [광구]이고요.”


이스피리아가 가리키는 대로 술식을 살펴보던 필므는 조금 전 감정이 무색하게 감탄했다.


술식이 2개인지라 손은 두 번 갔지만, 술식 자체는 지금 당장 자신이 한다 해도 실패할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어찌 보면 맥이 빠질 정도로 너무나 쉬운 술식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원하던 물건이다. 원래 있던 술식을 손봐서 만드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잘 알기에 불만 따윈 조금도 없다.


다만······ 지금 이스피리아의 행동은 조금 경솔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되었지만, 잠시 싱글벙글 웃고 있는 그녀를 보고 마음을 정했다.



“외람되옵니다만, 이스피리아 님.”

“네?”

“아직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 물품을 미리―― 물건 자체를 거래하는 게 아닌, 지금처럼 보고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을 만한 물품이라면 계약 이후에 건네주시는 게 좋습니다. 안 그러면 이스피리아 님만 손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으으윽! 속이 쓰려온다!!’


아무리 마음을 정하고 용기를 냈다지만, 자신의 몸속까진 제어할 순 없다.


필므는 이스피리아만이 아닌 다른 둘의 눈치도 살폈다.


성질이 더러운 귀족이라면 감히 나에게 지적질을 하느냐며 화를 낼 대목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이 세 명이 자신에게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될진 모른다. 여태 믿어왔던 자신의 눈도 오늘 하루만으로도 잔뜩 틀려왔으니.


가장 파악하기 쉬웠던 이스피리아조차도 어리숙하기만 한 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합리적인 의견과 지적인 대화가 가능했던 게 특히나 예상 밖이었다.


‘학원장님의 딸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저분은 그저 남들보다 상식이 높게 자리 잡고 있을 뿐이야.’


이젠 사람 보는 자신의 안목에 신뢰가 가질 않았다.


차마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질 않았던 필므는 살피던 것도 포기하고 얌전히 앉아 판결을 기다렸다.



“아하! 그렇지요. 당연한 일인데 잠시 까먹고 있었어요.”


이스피리아는 헤실헤실 웃으며 서둘러 양피지를 말아 감추는 ‘척’했다.


하지만 더는 속지 않는다. 분명 거래하기 좋은 상대인가 시험한 걸 거다.


그렇지만 아무도 화내지 않은 것에 안도감이 몰려와 속이 조금은 편해졌다.



“하하······ 조심하셔야 합니다. 정말로.”

“네. 고마워요, 필므 씨.”


이스피리아가 다시 마법으로 서명하고 계약서가 넘어왔다.


잠시 계약서를 살펴본 필므는 따라 서명했다.


이로써 향후 7년간 리카드에게 손전등의 판매금 2%를 매달 지급하는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 대가인 술식이 적힌 양피지도 건네받은 필므는 볼일도 끝났으니 어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 침대에 드러누워 잠을 자고 청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다음 수업이 있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신적 압박이 너무나 심해 대낮임에도 다음 날 아침까지 쭉 잘 자신이 있었다.



“축하드려요, 이스피리아 양. 학원에 오자마자 벌써 활약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셔요.”

“고마워요, 루비아 씨.”


살짝 손뼉을 치며 기뻐해 주는 소베르비아. 그리고 마주 보며 쑥스러워 하는 이스피리아.


‘끄, 끝났다. 돌아갈 수 있어!’



“그런데······”


말을 흐리는 소베르비아를 보며 필므는 뭔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왜 그러세요?”

“모처럼 초대를 해주셨는데 정말 아쉽게도 저는 다음 수업이 있어서요.”

“아! 그러면 어서 가보셔야죠. 늦진 않으셨나요? 어떡하지.”

“괜찮아요. 슬슬 가면 늦진 않는답니다.”

“휴우······ 다행이에요. 그리고 미안해요. 제 일 때문에 너무 신경 써드리지 못했네요.”

“아녀요. 저도 오늘은 정말로 즐거웠어요.”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오늘 본 미소 중 가장 진실한 것으로 보이기에.



“이스피리아 양은 이제······”

“전 수업도 없으니 여기서 좀 더 아이리스를 구경하려고요.”

“그러하신가요. 필므 씨는?”

“허엇! 험······ 저, 저는 아직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어머나! 그건 정말 부러운······ 저도 꼭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만.”


‘그렇게 부러우시다면 제가 대신 수업에 나가도 될까요?! ――가 아니라, 어, 잠깐만. 어라? 왠지 나는 여기 남아있어야 하는 느낌이 드는데??’


불안한 마음과 함께 침대가 멀어지는 환상이 보였다.


그러한 이쪽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카트를 정리하고 철수하는 사용인들과 함께 소베르비아가 일어섰다.



“어쩔 수 없이 먼저 실례하겠어요. 너무나 안타깝네요. 그러니 부디 세 분이 함께 제 몫까지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래요.”


‘어······’



“네. 저도 오늘은 즐거웠어요, 루비아 씨.”

“조심히 가십시오, 소베르비아 님.”

“드, 들어가십시오.”


리아와 라프리트, 둘을 따라 교양으로서 익혀놓은 예법으로 배웅한 필므는 침착하게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래, 다시 앉은 것이다. 침대는 아직 멀었던 거다.


수업이 있으니 미리 준비하러 간다는 이유도 댈 수 없었다. 소베르비아가 ‘세 분이 함께’라 못 밖은 상황에 어찌 그러겠나.


이제 와 아니라고 하기엔 늦었고, 그때 감히 공주의 말을 자를 수도 없었다.


정신적 압박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소베르비아 님이 가셔서 부담이 줄어든 것을 위안 삼아······ 위안은 개뿔! 흐흑······ 어서 돌아가고 싶어엉!!’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 입니다!


오늘의 마지막 분량입니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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