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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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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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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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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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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쪽

67

DUMMY

“네. 전 여기 베르다드 학원에 다니거든요. 우리 집이 아니니 허락받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기숙사로 향하며 페일테스―― 페리는 리아에게 앞으로 살 곳인 베르다드에 관해 물어왔다.


솔직히 리아도 그다지 자세히 아는 건 없었지만, 아는 한도 내에서는 전부 이야기를 전해줬다. 학원이라든지, 학생이라든지 전혀 연관이 없을 고양이이건만 페리는 생각보다도 똑똑한지 별 무리 없이 모든 내용을 이해했다.


반대로 페리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부모는 잘 모른다고 하며 기억이 있었을 때부터 홀로 이 공원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덕분에 리아가 반드시 허락받겠다며, 보호욕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기도 했다만 정작 페리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둘은 대화하며 학원으로 걷던 도중이었다.


공원에서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드문드문 기합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이런 데에 사람이 있네.’


비둘기에게서 너무 열심히 도망쳤는지, 현재 위치는 벽을 넘었던 곳에서 정반대쯤 위치한 곳이었다. 학원의 터 자체도 어지간한 축구경기장 1,000개쯤은 합쳐놓은 듯한 넓이였기에 정문과는 상당히 멀었다.


엄청난 크기에 수업 들으러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특히 그다지 체력에 자신 없는 사람은 매우 곤란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엘문리아는 아무리 평균 밑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구의 스포츠선수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신체적 능력이 뛰어났다.


몸이 약했던 리아가 평범한 아이 정도로 상태가 개선되었을 때 체력만큼은 이미 전생의 청년, 전성기 수준이라고 느낄 정도이니······ 성인이라면 신체 능력이 제일 밑바닥에 있는 사람조차도 올림픽에 나가면 나가는 종목마다 세계신기록――영원히 깰 수 없는――으로 메달을 휩쓸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한 사람들만 있는 세계이니 이곳 사람들은 이 정도 크기의 학원이라도 그냥 좀 크다고만 여길 뿐이었다. 이동하는 것도 그저 귀찮다고 하는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 같다.


‘하물며 지난번에 봤던 교회조차도 베르다드보다 넓지 않았을까 싶었지. 옹기종기 좁은 지역에 밀집해 있다는 말과는 달리 여기 수도도 무지하게 넓었고. 뭔가 전체적으로 크지?’


처음 베르다드의 웅장한 크기를 보고 놀란 건 자신밖에 없지 않을까.


잠시 딴생각하고 있던 리아는 고개를 내려 페리를 쳐다봤다.


페리는 심드렁하니 있었다. 아무래도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어떻게 할까······”


혹 누군가가 싸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들리는 기합 소리는 하나뿐이었다. 느껴지는 마력으로 봐서도 혼자 있는 건 분명했다. 또 차분한 상태이므로 급박한 상황도 아닐 거다.


그래도 궁금하달까.


어지간하면 아무도 오지 않을 듯한 곳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는 누군가······


무척 구미가 당긴다.


간만에 탐정 된 기분으로 리아는 페리에게 말했다.



“잠시 구경 좀 하고 가도 될까요?”


초롱초롱한 눈에 페리는 한숨을 쉬는 듯한 동작을 보였다. 왠지 모르게 이리저리 종잡을 수 없는 아이의 행동에 지친 부모 같았다.



《마음대로 해라.》


걸으며 한 대화로 익숙해진 탓인지 좀 더 명확하게 들리는 페리의 말에 리아는 기뻐했다. ――한심하게 쳐다보는 시선과 뒤이어 이름 대신 멍청이라고 부른 거 같기도 했지만 애써 의식하지 않았다.


곧바로 살짝 자세를 낮춘 리아는 [발판]을 만들어 기척을 죽이고서는 소리의 진원지로 향해 나아갔다.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리아를 따라 페리도 야생에서 생활해왔던 고양이답게 풀 밟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뒤를 따랐다.






슉! 슷!


소리가 들린다.


빠르고 신속하게 나무의 그림자 사이를 지나며 잠입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던 리아는 가까워짐에 따라 속도를 늦췄다.


페리도 잘 따라온 것을 확인한 리아는 그대로 나무에 바짝 붙어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흣!”


공터의 한복판에서 남성 한 명이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주위의 나무들로 가려져 있는 공터는 몰래 훈련하기 좋은 장소로 보였다.


‘응? 저분은······ 어쩐지 마력이 낯익다 했네.’


마력을 탐지할 때 아주 조금만 눈여겨봤으면 바로 알았을 것을······ 마음이 너무 들떴었다.


‘무안하네.’


이런 장소에서 뭘 하나 싶었던 사람은 그저 훈련하고 있었을 뿐이다. 날카롭게 바람을 베는 소리는 단순히 검을 휘둘러 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기왕 온 거니 잠시 살펴봤다.


남성은 무언가 초조한 것이 있는지, 잡념이 들어간 검은 휘두를수록 끝은 떨리고 날은 무뎌져 갔다. 오랫동안 해 온 티가 나는 그라면 흐트러졌다는 것을 모를 수 없다.


역시나 이런 상태로는 훈련이 될 리가 없다는 걸 느낀 남성은 잠시 멈춰서고는 심호흡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훈련에서는 잡념 따윈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것을 증명하듯 한껏 몰두해가는 남성은 서서히 무아에 빠져들어 검 끝이 살아나며 날카롭게 베어나갔다.


마력도 안정되어있고 열심히 집중하는 남성을 보며 리아는 조용히 몸을 돌려 돌아가기로 했다.


‘잠입 영화의 요원은 무슨······ 괜한 헛걸음이었네. 방해하기도 미안하니 돌아갈까.’



“어어어, 자······잠깐. 밀지 마요, 페리.’


그런데 자기도 보자며 페리는 슬금슬금 리아의 엉덩이를 밀었고――


츠슥.


풀 밟는 소리가 났다.



“누구냐!!”


날카롭게 소리치며 남성은 검을 겨누었다.



“그······것이 참, 뭐라고 해야 할까나······”


순순히 모습을 드러내 어색하게 웃는 잠입 요원의 등장에 훈련하고 있던 금발벽안의 남성―― 벨루디스의 제2 왕자, 레온하트 디안 벨루디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스피리아 양? 그대가 어찌······ 응?”


어설픈 요원이 리아인걸 안 레온하트는 곧 차분해지며 다가왔다. 그러다 가려진 나무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페리와 눈이 마주쳤다.



“위험해!! [능력증강]!”


갑작스러운 경고와 함께 마력을 끌어올리는 레온하트.


그 모습에 리아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맑게 한―― 각성 상태로 돌입했다. 그러고 한순간에 주변을 살펴봤지만······ 주위엔 페리와 레온하트 뿐이었다. 다른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뭐가······’


생각을 끝마치기 전에 리아는 알아차렸다. 아니, 알아버렸다고 해야 하나. 잔뜩 적의를 향하면서 검을 치켜드는 레온하트를 보면 무슨 오해를 했는지 일목요연했다.


‘그나저나 엄청 빠르시네. [능력증강]이라든가 외치셨지. 마법인가?’


지난번 대련했을 때 비해 2배 가까이 빠른 속도로 레온하트가 질주해왔다. 당시 레온하트가 봐준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건만 이런 전력을 지니고 있었나.


하지만 놀라운 상황이긴 해도 대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잘 까먹지 않으니 기억을 더듬으면 뭔지 분석할 수 있겠다, 리아는 일단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


딱!


지이이잉―――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만들어진―― 페리를 감싸는 보호막이 검과 격돌하며 작은 진동음을 만들어냈다.



“[방벽]의 술?!”


공격이 막혔다는 것에 눈을 부릅뜬 레온하트는 페리가 보호막을 만들었다고 착각했는지, 더욱 많은 마력을 끌어모아 강력한 일격을 준비했다.


리아는 서둘러 레온하트를 막아섰다.



“기다려주세요!”

“무슨?! 피, 피하게!”


레온하트는 인상을 쓰며 최대한 검을 멈추려 했지만, 상당한 힘이 실려있었기에 쉽지 않아 보였다.


‘하긴 이미 휘두르는 걸 멈추기는 힘들겠지. 만화에서는 잘도 하더만. ······역시 갑자기 끼어드는 건 위험하네. 다음부턴 절대 따라 하면 안 되겠다.’


아무래도 좋은 소감을 한 리아는 말리기 위해 움직였다.



“자, 진정하세요. 두 분 모두.”


리아는 손을 뻗어 들고 있던 그릇으로는 레온하트의 검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고 뛰어드는 페리는 뒷덜미를 잡아 멈춰 세웠다.



“괘, 괜찮은 건가?! 이스피리아 양!”

“네. 멀쩡해요. 페리도 그만 멈춰요.”


다짜고짜 공격당한 것이 분에 차는지 페리는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상태에서도 앞발을 휘둘러댔다.



“페리! 규칙 잊지 않았죠?”


움찔하더니 멈췄다. 이에 리아는 바닥에 페리를 내려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물론 페리의 잘못은 전혀 없어요. 가만히 있었는데 공격받는다면 누구라도 화날 거예요. 그래도 이번엔 착각으로 인한 거고, 다치지도 않았으니 용서해줄래요? 레온하트 전하도 미안해하고 계실 거예요. 그렇죠?”


‘그렇다고 해줘요!’


물어오는 질문에 레온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으나, 이내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분명 간절하디 간절한 이쪽의 눈빛과 얌전히 이야기를 듣는 페리의 모습에 어떤 상황인지 이해한 것이리라.



“미안······하네. 그녀가 위험한 줄 알고 그만 오해했다. 갑자기 공격하여 면목이 없네. 이스피리아 양, 그대에게도 사과하네.”

“전 괜찮아요. 모두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페리도요, 계속 바보 취급하는 제가 이렇게 쉽게 용서했는데~ 설마 당신이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건 아니시겠죠? 그렇게 좁은 아량으로는······ 후후. 잔뜩 멍청이라고 매도해왔지, 실은 제 쪽이 훨씬 멋진 여성인 게 아닐까요?”

《허, 헛소리! 난 너보다 한참 전에 용서했다. 그리고 난 수컷이다! 멋진 거로는 내가 뒤질 리가 없다!》

“어······ 남자였어요? 이렇게 귀엽고 이쁜데? 그래도 뭐가 됐든 장해요. 듬뿍 쓰다듬어 줄게요.”

《필요 없다! ――그릉그릉. 그, 그만둬 ――그릉. ――라!》


내심 싫은 기색을 계속해서 내비치지만, 눈까지 감고는 턱을 쭉 뺀 상태로 페리는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거의 끙끙대는 수준이다.


고양이는 턱을 쓰다듬어 주는 거에 사족을 못 쓴다고 듣긴 했다만, 지구가 아닌 여기에서까지 통용될 줄이야. 말은 거칠어도 역시 명실상부한 고양이였다.


‘츤데레 고양이······ 오! 그게 아니라, 어쩌면 나 재능있는 거 아니야?!’


리아는 상상해보았다.


살며시 쓰다듬는 손길에 홀라당 넘어온 고양이들이 서로 이번엔 나라며 아우성치는 모습.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자신.


······의외로 괜찮달까. 생각보다도 보기 좋게 그려지는 상상의 나래였다.


‘언젠가 고양이들이 많은 곳에 간다면 손쉽게 고양이를 매혹할 수 있는 이 마성의 손을 시험해보기로 하자.’



“전하, 봐요. 얌전하죠?”

“어음······. 그렇군.”


레온하트는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어쩐지 소꿉놀이 중인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닮았다고 느낀 건······ 착각이려나?



“으음. 그런데 그대는 왜 이곳에?”

“헛! 그······러게요. 정말 왜일까요. 하하······”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니 레온하트가 순간적으로 화제를 돌렸다는 건 알아봤다. 왕자에게 딴지를 걸기도 뭣하니 그건 괜찮다만······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


사실대로 말하면 비둘기의 영역에 침범해 자취를 남겼다는 이유로 쫓겨 학원의 담벼락을 넘어 도망치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가 된다.


그런데 아무리 비둘기가 컸다고는 하지만 여기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초인이나 마찬가지이니 지구의 비둘기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취급이었다.


쉽게 말해 평범한 동물이라는 거다.


마수로 성장했다면 또 모를까. 꼬맹이도 쫓아낼 만한 비둘기에게 습격당해 도망쳤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다.



“설마······?”


레온하트는 페리를 슬쩍 쳐다봤다. 의심 가득한 것이 그는 페리가 억지로 데려온 것이라 착각한 모양이다.


더는 페리가 오해받도록 할 순 없기에 리아는 서둘러 변호했다.



“아니에요! 뭐랄까······ 걷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 제가 가보자고 한 거예요. 페리는 내키지 않아 했어요.”

“응······?”

“······응?”

“아, 아무것도 아니네. 그, 페리라는 건······”

“그러고 보니 소개도 아직이었네요. 여기, 이 귀여운 고양이는 페일테스예요. 페리라고 불러요. 제 애완동물이에요.”

“고······양이? 애완동물?”

“네.”


리아는 슥 얼굴을 내밀어 손으로 입을 가린 뒤 작게 말했다.



“사실 페일은 흰색 계통의 밝은색을 말하는 건데, 페리에게는 비밀이에요. 알았죠?”

“어, 어. 알겠네······”


갈색에 검은 줄이 그어져 있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페리에게 이름이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지적받기 전에 선수를 친 것이다.


――는 변명이고, 그냥 리아가 입이 근질근질했던 것뿐이다. 여러 가지 페리의 이름으로 인해 생긴 미안함을 덜기 위해서. 그냥 도둑이 제 발 저린 거다.



“전하께서는, 여기에 자주 훈련하러 오시나 봐요?”

“그렇긴 하네만. 그보다······ 이스피리아 양. 그, 오, 옷을 좀······ 정리해야 할 듯싶네.”

“옷······이요?”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고 최대한 위를 바라보며 말하는 어색한 모습의 레온하트.


의아해하면서도 리아는 고개를 내려 살펴봤다.


교복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평소 입는 사복 수준의 마법을 걸기에는 눈에 띌 수 있으니 사양했지만, 적어도 찢어지지는 않아야 한다며 에르가 마법을 걸어뒀기에 속살이 드러나는 참사는 없었다.


하지만 곰보 과일을 따올 때 빼놨던 블라우스는 그 상태 그대로였으며, 나무의 사이를 오갔던 일 때문에 여기저기 풀과 자잘한 나뭇잎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좋게 본다면 숲에서 뒹군 정도이고, 안 좋게 본다면 누군가의 습격에서 도망친 꼴이 아닐까.


‘딱 여기 페리에게라든가 말이지.’


레온하트가 왜 그리도 격렬한 반응을 보였는지······ 알 것 같다.



“죄송해요. 오해 살만한 모습을 보였네요.”

“괘, 괜찮다네. 나는 저쪽에 가 있을 테니 정리하게나.”

“아뇨!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세요. 잠시 뒤돌아 계시면 금방 끝낼게요.”

“으음, 알았네.”


이미 진작에 뒤돌아서 걷던 레온하트는 리아의 말에 우뚝 멈춰 섰다.


로봇처럼 딱딱한 움직임에 리아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한 걸 참고 서둘러 돌아서서 옷을 정리했다.


몸 전체에 청결마법을 사용하고는 진동하듯 몸을 털었다. 그걸로 끝. 옷에 붙은 이물질은 모두 정리되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하면 옛날에 루데릭이 말했듯이 신발에 땀이 고여 완벽히 배출될 동안 찜찜함을 참아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마 머리가 은발로 되고 나서부터는 전혀 땀이 안 났기에 상관없었다.


‘백발이었을 때는 그래도 에르와 격하게 대련하면 땀도 나고 그랬는데······’


그다지 심한 체취가 안 나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이질적인 뭔가가 된 듯한 느낌에 마냥 좋아할 순 없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리아는 옷을 정리했고, 제대로 꼼꼼히 이상한 점은 없나 살핀 다음 말을 걸었다.



“다 됐어요. 이제 돌아보셔도 괜찮아요.”

“미안하네. 먼저 말해줬어야 하는데.”

“아니에요. 그렇게 따지면 계속 같이 있던 페리가······ 맞아요! 페리, 왜 말해주지 않은 거예요?! 우응?”


부끄러운 사태를 방지해주지 않은 페리를 향해―― 생사람······이 아닌, 생고양이를 잡는 것임에도 개의치 않고 리아는 불만을 말하였다.


그러다 뜻밖의 모습에 멈칫했다.


돌아본 페리는 옷을 정리할 때 내려놓은 그릇에 눈을 떼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곰보 과일을 몽땅 뺏겼을 때와 비슷할 정도로 넋이 나간 모습에 리아는 슬그머니 그릇을 들어 살펴봤다.


‘아······’


그릇은 두 군데 금이 가 있었다.


하나는 레온하트의 검과 부딪친 곳, 다른 하나는 리아가 손으로 잡고 있던 곳이었다.


아무리 마력으로 보호했고 레온하트도 최대한 힘을 가감했다지만, 자기그릇이 검과 부딪쳐서 금 간 정도로 끝난 거다. 리아로서는 나름 괜찮았다고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페리에게는 아니겠지. 저 그릇에 강한 애착이 있는 듯했으니까.


‘어쩐지 조용하다 했더니. 이, 일단 빨리 고쳐야겠다.’



“미안해요, 페리. 금, 금방 고쳐줄게요!”


멀리 떠나버린 페리의 혼이 돌아올 수 있도록 리아는 서둘러 마법을 써 그릇을 고치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어요.”


대련으로 인해 흐트러진 옷을 리아는 다시 정리하며 미소 지었다.



“후우······후······ 자네야말로. 일부러 어울려줘서 고맙네.”

“뭘요. 저도 공부가 되고 좋았어요. 앞으로도 부담 없이 말씀해주세요.”

“······.”


레온하트의 훈련을 방해한 것의 사례로 먼저 이야기를 꺼내서 한 대련이었지만, 반대로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특히나 투기술이라는 건 꽤 흥미로웠어.’


게임에서의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들, 그것들이 이곳에서 평범하게 부르고 있는 마법으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전사 같은 전위에 서는 직업이 사용하는 스킬 같은 것―― 예전에 루데릭과 첫 대련에서 발사한 마력의 검 같은 마법은 사실 투기술이라 부르는 거였다.


나트알 주민들이 자신도 모르게 사용하는 신체강화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이 투기술이란 것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까 레온하트가 사용한 [능력증강]도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투기술이었다만, 잭이 화살을 쏠 때와 마찬가지로 의도하여 행해진 기술이었기에 능력 향상의 폭은 컸고, 마력도 생활마법 수준인 것과는 다르게 몇십 배는 많았다.


다만 잭과는 달리 투기술 또한 발동어를 외치는데, 이건 마법처럼 이미지를 명확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어 보였지만 더욱 강한 효과를 끌어내기 위함인 것 같았다.


참고로 [능력증강]은 순간적으로 한계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주기에 효과가 사라지고 나면 신체의 탈력이 느껴질 정도의 반작용을 동반한다고 한다. 덕분에 대련은 레온하트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하게 됐다.


정리하자면, 마력조작이 서툰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마법을 훈련하며 터득하는 것이 투기술이고, 마력조작이 능숙한 사람이 터득하는 게 술식마법이다.


하지만······ 사실 마력조작이 능숙한 사람이나, 간혹 태어난다는 대기 중이나 자신의 마력을 전혀 못 다루는 사람 또한 투기술을 익힐 수 있다.


리아가 볼 땐 그렇다만······ 뭔가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어쩐지 여기서는 마법이 훨씬 우대받는 느낌이지?’


물론 술식마법은 만든 사람이 굉장하게 느껴질 만큼 엄청났지만, 전투 쪽으로 보자면 상당히 불안한 면이 있었다.


당연히 일차원적으로 술식을 만들어 마법을 발동하는 만큼 느리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유연성도 부족했으며, 움직이고 있는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서는 머리가 불타오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계산 능력이 필요했다.


솔직하게 평가하자면 어지간한 공격 마법은 스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지만, 영 이상한 생각은 아닐 거다.


그 증거로 마법실기 수업과 이론 시간에서 배우는 마법 중에서는 폭발력이 강한―― 직격하지 않아도 피해를 주는 마법들이 주류였다.


정확히 맞춰야 하는 마법은······ 일단 보지 못했고, 아마 극소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보조하는 마법들도 멈춰있는 상대에게 쓰는 것뿐이었고.


즉 전투 면에서는 투기술을 쓰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듯 예상됐다.


‘그런데도 마법이 훨씬 우대를 받는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땀 흘려 훈련하는 모습이 귀족들의 입장에선 천박해 보여서 그런가?’


다음에 리카드를 만나면 물어보기로 하자고 생각하던 리아였는데, 문득 입을 다물고 고민이 가득해 보이는 레온하트가 보였다.



“무슨 일이 있나요?”


묻는 말에도 레온하트는 말이 없이 오히려 더욱 표정이 굳어갔다.



“그대는······ 괜찮은 건가?”

“뭐 가요?”

“내 입장 말일세.”

“아~ 확실히 미묘한 입장이시라고 하셨지.”

“그렇다네······”


레온하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저, 저기요, 전하. 그게······”


‘어――’


심장이······ 가슴이 술렁였다.


무의식적으로 가져간 손에서는 큰 맥박이나 고동은 느껴지진 않았다. 평소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슨 사태이든 간에 저런 표정의 그는 보기 싫었다.


――힘든 일에 직면했어도 성실히 차근차근 넘어서는 당당함이 그에게······ 레온하트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뭡니까 그게?! 왕자님이나 되시는 분이!”


갑자기 다그치듯 소리치니 레온하트가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리아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이어서 말했다.



“누구에게나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요? 물론 힘들고, 화나고, 짜증 나겠죠! 아무것도 안 했는데 주위에서 수군거린다든가, 길 좀 물어보려고 말을 걸었는데 바퀴벌레를 본 것처럼 경멸하고! 학생 식당에서 밥 먹는 거 가지고 빈곤하다고 비웃음 사고!! 또, 흙밭도 아니고 깨끗한 풀밭에 흘린 쿠키 좀 주워 먹은 그까짓 일로 이상한 소문이나 만들어대고!!!”

“아,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네만. 그리고 쿠키를 주워 먹거나 한 적은――”

“――하지만!!”


리아는 척 손가락으로 레온하트를 가리켰다.


“뒤에서 수군거리고 욕보면 뭐 어때요. 세상에 욕 하나 안 듣는 자가 어디 있겠어요? 어차피 정면에서는 아무런 말도 못 하는 겁쟁이 들인데. 전 그런 쫄보 같은 짓거리밖에 못 하는 사람들이 겁나지 않아요. 전하는 안 그런가요?”

“······.”

“전하는 무얼 위해 이렇게 열심히 검을 단련하시는 거죠. 이 나라, 벨루디스를 파국에 치닫게 하는 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함이 아닌가요? 조심하시는 건 이해해요. 최대한 할 수 있는 범위인 검 수련에 매진하는 것도요. 물론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요.”


레온하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하신가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저는커녕 그리모르 선생님조차도 못 이기시는데. 개인이 한 나라의 파국을 막으려고 하는 건데 도대체 얼마나 강해야 가능한 건가요? 전하께서도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그러면 나의 노력은 헛수고인 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경멸은 아니다. 그렇다고 질책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의사가 담긴 시선에 레온하트는 흠칫 몸을 떨었다.



“피땀 어린 자신의 노력을 일부러 낮추거나 비관하지 마세요.”


리아는 레온하트의 손을 잡았다.



“봐요. 왕자님이라는 분이 이렇게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한 거잖아요. 이런 곳에서 혼자 훈련하시는 것도 다른 학생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하신 거고.”

“나는 그런――”

“절 봐요, 레온.”

“······”

“추하게 발버둥 치면 어때요. 보답받지 못하면 뭐 어떤가요. 그럼 아무것도 안 하시고 가만히 계실 건가요? 그걸 못 하시니 이러시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당당하게 나아가도록 하세요. 제가 장담할게요. ――당신의 노력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아요.”

“정말······. 정말 의미가 있는 건가······?”

“네. 물론이죠.”

“난······ 바보 같은 짓을 한 게 아닌가?”

“말했죠? 레온은 멋지기만 해요. 자신을 갖도록 하세요.”


멍하니 바라만 보는 레온하트에게서는 말이 없었다. 그래도 리아는 그 눈에 깃든 광채가 밝아지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할 거다.


암만 주변에서 격려해주더라도 결국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법이다. 앞으로는 레온하트 스스로가 자신감을 얻고 일어서야 할 일이다.


‘너무 걱정이 많아서 탈이야, 레온은. 이거저거 고민만 하지 말고 좀 더 당당하셔도 될 텐데 말이지. 어······. 레······온?’



“죄, 죄송해요! 함부로 존함을······”


‘그것도 생략했다!!’



“저기, 어쨌든 정말 죄송해요. 감히 애칭으로······, 아. 애칭도 내가 정해버렸네.”


왕자에게 여태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지난번엔 땅에 구르게 하기도 했다.


사색이 된 리아는 진자운동을 하듯 반복해서 고개를 숙였다. 귀족식의 예법 따위에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뭣도 아닌 제가 건방지고 불쾌한 말을 하여,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부디 처벌만은······ 이라며 벌벌 떨던 리아는 보았다.


자신으로 인해 전학 가는 아이리스의 환상을――


덜떨어진 사고뭉치에게나 보일 법한 차갑고 싸늘한 눈빛. 엄마를 무시하는 언행과 행동. 그리고 점점 불량아로 거듭나는 아들.


당연히 그런 아이리스를 두고만 볼 수 없기에 말을 꺼내 봤지만 돌아오는 말이라곤······



“함부로 말 걸지 말아 줄래? 특히 밖에서는 아는 척 좀 하지 마. 쪽팔리니까.”

“어······엄마에게 그, 그런 거친 말하면 안 되잖니. 좀 더 고운 말을······”

“아아! 시끄러워 꼬맹이. 너나 잘하시지. 이 집에서 사고는 누가 다 치고 다니는데 어디서 짜증 나게 설교 질이야?! 퉷!”


침을 뱉으며 거칠게 문을 걷어차 나가는 아이리스―― 그리고 털썩 주저앉고는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나.


――눈물이 나올 거 같다.


주저함 따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 게 있을 터가 있나. 신속하고도 빠르게 손을 놓은 리아는 곧바로 레온하트의 바지 끄덩이를 붙잡았다.


순식간에 사라지듯 발밑으로 향하는 리아에게 레온하트는 반응 하나 제대로 못 하였다.



“퇴학만은 안 돼요! 아이리스가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불량아가 될 거라고요!! 제발,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절절한 외침에 레온하트가 움찔했다.


질색하는 게 아니면 좋으련만······


그렇지만 당당해라 어쩌고 잘난 척 떠들어대던 여자가 이런 비굴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바램은 이루어지기 어렵지 않을까.



“고개를 들어주―― 아, 아니. 그전에······ 이, 일단 바지는 놓고 일어나 주겠나. 이스피리아 양?”


꽉 붙들고 있는 리아를 떨쳐내기란 레온하트에겐 불가능했다.


애당초 이렇게 붙어있다면 강제로 힘주어 떼어낼 수밖에 없는데, 레온하트는 여자에게 그런 거친 행동은 하지 않을 거였다.


그런 식으로 그가 곤란해하는 걸 느꼈지만 리아는 절박했다.



“용서해주시기 전까진 안 돼요!”

“용서라······”


‘역시 안 되는 건가?!’


진지한 음성으로 말을 흐리는 레온하트의 모습에서 닥쳐올 미래를 예감했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리아는 더욱 처절한 사죄 말을 올리려 했다.


필리아에게 혼나는 일이 많았기에 잘못을 뉘우치는 반성문 같은 구절들은 많이 떠올랐다. 이것들을 듣는다면 레온하트라도 마음이 흔들릴 거다.


그런데 구구절절한 대사를 꺼내기도 전에 다정하기만 한 레온하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서할 게 어디 있나. 그대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네.”


그리 말해주는 것에 리아는 혹시나 하면서 힐끗 레온하트를 쳐다봤다.



“저, 정말요? 바······방심하게 만든 사이 벌을 주시려는 건 아니죠?”

“왕자인 것을 떠나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대를 질책하다니. 이스피리아 양, 그대는 내가 허튼 트집을 잡고 처벌을 내릴 거로 생각하나? 그렇다면 나를 상당히 잘못 봤다네.”

“그렇게 보이시진 않지만······ 지, 진짜죠? 진짜진짜 진짜죠? 제가 떨어지자마자 불경죄라든지 죗값을 묻지 않으실 거죠?”

“약속하네. 정말 그대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네. 애칭 건도······ 공식 석상에서는 안 되겠지만, 그런 자리만 아니라면 앞으로도 계속 그리 불러줬으면 한다.”


아련하게 웃는 레온하트를 보며 리아는 그가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는 상황에 놓인 걸 떠올렸다.


가족이라면 모를까, 동년배에게는 분명 레온이라 불린 적이 없을 터다. 분명 친구 한 명 없을 텐데, 그런 적이 있다면 그게 이상하다.


며칠 전 다짐했었다.


이래저래 정신없던 날이었지만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 그 다짐을 이행하도록 하자.


그의 상황? 왕자?


나는 이스카르와 필리아의 딸이다.


왕자는커녕 세상의 조율자라고도 할 수 있는 에르, 용왕에게조차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받아들여 준 부모님. 당시에는 에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잘 와닿지 않았지만, 부모님들은 용왕이란 의미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 두 사람의 딸인 거다. 겨우 이런 거에 내뺄 수야 없다.


리아는 바지를 놓고 일어서, 가슴을 펴고 똑바로 레온하트를 바라봤다.



“저도 리아로 불러주세요. 존대하실 필요도 없어요.”


사람이 바뀐 것처럼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에 레온하트도 자세를 똑바로 했다.



“알았네, 리아. 그대도 편히······ 적어도 너무 존칭으로 말해주진 않았으면 하네.”

“네, 그렇게 할게요.”


미소를 지은 리아는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러면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도록 하죠, 레온.”


내민 손에 레온하트―― 레온은 여러 생각이 교차하듯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본인으로 인해 미칠 피해라든가, 정말 친하게 지내도 괜찮은 건가 등 생각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좋은 느낌으로 흘러왔는데 여기서 레온이 다시 부정적인 감정에 잠기는 건 원치 않는다.


리아는 가만히 있는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러곤 흔들면서 말했다.



“악수는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번엔 제가 도와줬지만, 다음에는 레온이 먼저 해줘야 해요. 알겠죠?”

“······고맙네.”


어렵사리 말을 꺼낸 레온은 여전히 복잡한 심경인 듯 보였다. 그래도 조금은 가벼워졌는지 입가에 살짝 미소가 어려있었다.


마력을 읽어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나름 만족한 리아는 손을 놓고 기지개를 켰다.



“후~~ 그럼 이제 돌아가 볼까요? 생각보다 오래 있었네요. 페리, 슬슬 가도록 하죠.”


부르는 말에 레온과 대련할 때부터 드러누워 자고 있던 페리가 일어났다.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용케 잘 자는 고양이다.


그렇게 자면서도 발을 올려 사수하고 있던 그릇을 물고 페리가 다가왔다.


곁에 놔둔 곰보 과일은 내버려 둔 채로.


입에 그릇이 있으니 물리적으로 과일까지 챙겨오는 건 힘들 테지만, 애초에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울 정도로 좋아했으면서.’


어이가 없지만, 자신이 만들어준 그릇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거니 여러모로 참 애매했다. 어쩔 수 있나, 결국 리아가 회수했다.



“그건?”

“과일이에요.”

“과······일? 미, 미안하네만. 먹어도 괜찮은 건가.”

“네. 생긴 건······ 좀 그렇지만 정말 맛있어요. 헛! 안 돼요! 이건 아이리스를 줄 몫이에요.”

“아니. 달라할 맘은 없네······.”


정말 먹어도 되는 건지 의심하는 눈초리지만, 레온도 한 번 맛을 본다면 앞으론 공원에서의 훈련은 뒷전인 채로 과일만 찾으러 돌아다닐 거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요 곰보 과일을 따러 내일 또 담을 넘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레온이라도 과육 한 조각, 과즙 한 모금을 마신다면 분명 그렇게 될 터.


암만 친한 사이―― 라프리트와 루비아라도 자신에게 돌아올 몫이 충분히 있는지 파악이 되면 그때 나눠줄 생각인데, 이 공원에 곰보 과일이 열리는 나무가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는 판국에 쓸데없이 경쟁자를 늘릴 필요는 없다.


‘응. 알려주진 않을 거지만, 나눠줄 땐 레온도 불러줘야겠지?’


한 입 먹고 깜짝 놀라는 레온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대된다.


그렇게 즐거운 상상을 하며 리아는 걸었다.



“리아, 볼일이 남았는가? 정문은 이쪽이라네.”

“······아핫! 그, 그렇군요! 바, 반대편에서 걸어와서 헷갈렸어요.”

“반대편에서? 상당히 멀리서 걸어왔었군.”

“그······러게요. 신기한 것들 좀 구경하다 보니 어쩌다······”

“그런가.”


어색하게 웃는 이쪽을 전혀 의심스러워하지 않는 레온이지만······ 방금 자신이 가던 방향은 학원의 외벽이다.


별생각 없이 다시 외벽을 뛰어넘으려 했던 것으로, 이는 페리를 데리고 간다는―― 켕기는 것이 있었기에 나온 무의식적인 행동의 말로였다.


‘아하하······ 아무래도 벽을 넘어가는 건 이상하겠지?’



“맞다! 레온, 학원에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 금지돼 있나요?”

《누가 애완동물이냐?!》


페리가 크르릉거리며 성을 냈다.



“페리! 레온이 놀라잖아요. 사람들에게 이리 성질내면 같이 살기 어렵단 말이에요.”

《그건······ 곤란하다.》

“그쵸? 그러니까 얌전히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릇도 내려놓은 김에 제가 가지고 갈게요. 좀 이상하게 보일 거 같아요. 이번엔 깨트리지 않을 테니까요.”

《아, 알았다.》


약속대로 말을 따라주는 페리를 칭찬할 겸, 본인의 욕구도 채울 겸 해서 리아는 페리의 머리와 턱을 쓰다듬어 주었다.


리아는 잠시 끙끙대면서 좋아하는 페리의 복슬복슬한 털을 마음껏 즐겼다.



“정말 잘 따르는군.”

“네. 약간 속물적이긴 하지만 착한 애예요.”

“음. 어쩌면 키우는 게 가능할지도······”


작게 한 레온하트의 혼잣말에 리아는 반색했다.



“정말요?!”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 리아, 혹시 관리장이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어, 네······ 보긴 했어요.”


라프리트와 학원 내를 둘러보기로 약속한 것 때문에 사육장이라고도 불리는 관리장으로 가본 적이 있었다. 사전답사 때 한번, 안내해 줄 때 한번, 총 두 번을 가봤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다가간 것도 아니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인데 그곳에 있던 동물들이 모두 불편해했었다. 의사를 알아들을 만한 동물도 말을 걸어봐도 아무런 대꾸도 안 하고 자신이 있던 주변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눈조차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지구에선 보지 못한 네 발 달린 커다란 새라든지, 랩터의 친척쯤은 될 듯한 공룡이라든지 제대로 구경조차 못 하고 서둘러 다른 곳으로 갔다.


모처럼 판타지다운 것과 조우했는데 충격적이었다.


그런 반응 탓이랄까, 전혀 경계 없이 다가온 페리를 키우는 것도 그다지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긴커녕 오히려 환영이다.


모처럼 살갑게 대해주는 페리다. 정성껏 돌보면서 실컷 귀여워해 줄 거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곤충이나 동물을 만난 적이 별로 없네? 먼저 다가온 건 어렸을 때 만났던 사슴 씨와 아이리스의 알을 안고 있던 잠자리, 산에 있을 때 가끔 덤벼들던 강아지 정도뿐이지 않나? 아! 오늘 만났던 비둘기······도 있네.’


좋지 않은 기억······ 추억이다.



“으음. 아무래도 여성이 가긴 불편한 곳이겠지.”

“아, 그건 아니에요. 전 저기 멀리 있는 시골에서 살았거든요. 고향에선 가축도 있고 하니 냄새라든가 익숙해요. 어······? 잠깐, 설마 내가 가축 담당에서 제외된 건······”


당시에는 마을 어른들이 배려해주는 걸로 알았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산에서 돌아온 이후 가축들이 피한 게―― 도망갔던 게 분명했다.


‘왜, 왠지······ 달걀이라든지 안 낳더라 했더니, 스트레스를 받던 거였나?! 다가가기만 했는데?!!’


순전히 배려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눈을 번뜩인 리아는 힐끗 옆을 봤다. 그곳엔 느긋하게 하품을 하면서 따라오는 안면 두꺼운 고양이가 있었다.


진짜――, 어쩌면――, 혹시 먼저 다가오는 동물은······ 페리나 비둘기같이 뻔뻔하고 괴팍한 녀석들 뿐이지 않을까.



“왜 그런가?”

“아, 아무것도 아녜요. 저······ 근데 페리도 관리장에서 지내야 하는 거예요?”

“원래라면 그래야 하겠지만······.”


페리가 엄청 싫은 티를 팍팍 냈다. 리아도 모처럼 키우기로 마음먹었는데 따로 떨어져 생활하는 건 좀 싫었다.



“아아, 그래도 괜찮을 걸세. 관리장이 있다는 건 사육 자체는 가능하단 소리니, 그 연장선으로 평시에도 같이 다니는 걸로 말해두면 될 거야. 좀 억지지만······ 그대 같은 경우엔 직위가 있으니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네.”


――물론 페리가 얌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덧붙여줬다.


‘역시 페리를 데리고 생활하는 건 꽤 엉망진창인 일이었나 보네.’


창피하기까지 한 국빈 같은 권위를 내세우는 짓은 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리아에겐 이제 페리를 내버리고 가는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질 않았다. 저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내키지 않는 일에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그래도 몰래 벽을 넘고 들어가 상담하려 했던 과정――혼나는――은 생략되었기에 리아는 만족했다.


작가의말

오늘의 4번째 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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