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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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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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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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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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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DUMMY

오전, 찬크에르가 차려준 아침을 먹은 리아는 교복이 아닌, 베르다드에 올 때도 입었던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는 라프리트가 준비한 마차에 올라탔다.


참고로 아이리스는 둘이서 즐겁게 놀라면서 학원에 남기로 했다.


그렇게 모처럼 아들의 배려를 받으며 탑승한 마차는 후작 가의 것답게 굉장히 승차감이 좋았지만, 이미 리카드의 마차를 시승해본 경험이 있는 리아로서는 그저 그랬다.


마치 서스펜션이 좋지 못하던 옛 시절의 초창기 자동차를 타던 느낌이랄까. 혹은 경운기라든가.


쉽게 말하자면 상당한 흔들림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왠지 모르게 그리움이 드는 기분이었기에 불만은 없다. 기왕 라프리트가 자신을 위해 준비해준 것이기도 했고. 다만 라프리트가 집에서 홀대해지는 것이 아닌가, 조금 염려스럽기도 하였다.


이러한 감상평과 함께 마차는 계속 나아갔고, 리아는 이 세계에서 대도시라는 곳을 처음으로 구경했다.


잠시 후 적당히 마차를 세울 곳을 발견하여 내린 뒤, 처음으로 향한 곳은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시장 같은 장터였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귀족으로 보이는――라프리트는 진짜 귀족이지만―― 일행들이 오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몰렸다.


그로 인해 잠시 조용해지기도 했으나, 이내 사람들은 관심을 끄고 본인들의 할 일로 돌아갔다. 아마 귀족 아가씨들이 놀러 왔다는 인식 정도이지 않을까 한다.


더군다나 귀족이니 그들로서는 잘못 걸려 트집이 잡히는 것도 싫었을 테고, 무엇보다 각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거다. 보기 드문 귀족을 구경하는 것보단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고, 더 싸게 사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읽은 리아는 좋은 가족애라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주위를 둘러봤다.


시장은 소리를 내어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부터, 구매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흥정들로 인해 떠들썩하다. 활기랄까, 이 세계에선 느끼지 못하였던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아아. 우리 마을이 척박하다는 건 아니지만, 좀 규모라든지 다르잖아?’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변명을 한 리아는 천천히 라프리트와 함께 돌아다녔다. 그리고 의외로 높은 건물들을 둘러보던 리아는 앞을 바라봤다.


‘오! 선남선녀에 꽃중년들이 판타지스러운 복장으로 돌아다닌다!! 몇 명 없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사람이 많으니 이건 꽤나······ 오오옷! 저 사람들은 모험가인 걸까나? 저게 전사와 마법사 패션인가?! 크~~ 정말 아들 녀석이 부러워하겠는데?’


전생의 아들을 떠올린 리아는 주변 풍경이 아닌, 다양한 복장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느긋이 시장을 거닐었다.



“귀족 아가씨! 한 번 보고 가시라요.”

“······”

“거기 은발의 아가씨 말여요!”


자신을 부르고 있는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리아는 주위를 보며 지나쳤지만, 정확히 은발이라 짚어 말하는 상인의 말에 돌아봤다. 아직 많은 사람을 만나보진 않았으나, 은발은 자신 말고는 본 적이 없었으니.



“네? 저요?”

“그려요. 맛 좋은 싱싱한 과일이 들어왔구먼요. 한 번 보시라요.”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의 말에 리아는 슬쩍 라프리트를 봤다.



“리아 양이 좋으실 대로 하세요.”

“그럼 한 번······”


초롱초롱한 눈으로 리아는 가게 앞으로 다가가 반겨주는 주인을 보곤 진열된 과일들을 스윽, 살펴봤다.


‘으음······?’


과일들의 생김새가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아저씨. 여기 이 과일 이름이 뭐예요?”


리아는 부풀어 오른 뚱뚱한 하트 모양의 어두운 노란색인 과일을 가리켰다.



“‘사과’이라요. 잘 익었지유?”

“사과······?”


지구에서 듣던 것과 완전히 같은 이름의 이 ‘사과’라는 과일에 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야 제법 다르게 생겼잖아. 먼 친척이나 선조쯤으로 보이기야 하다만은.’


고향인 나트알에서는 약초 종류가 다양하게 많이 자생했지만, 과일의 종류는 적었다.


그런데다가 초월자에 진입하고 나서는 마을에 돌아올 때까지 물 말고는 거의 먹은 것이 없었기에 과일에 대해선 생소했다. 그나마 알고 있는 건 마을에서도 볼 수 있었던 산딸기, 산포도 같은 베리류의 작은 과일 정도였다.


물론 에이브안에게 기본 상식들을 배웠기에 사과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물을 본 적은 없어 알아보지 못하였고, 에이브안도 이상하리만치 이쪽을 똑똑하다고 여겼던데다 가르칠 건 많았기에 설명이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렇게 제법 신기하게 쳐다보니 주인은 귀족으로 보이는 리아가 막 딴 원형의 사과를 처음 본다고 생각했나,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과도를 꺼내 들었다.



“하하. 사과를 깎기 전엔 이렇게 생겼슴다요. 서비스로 하나 깎아줄 터니 드셔보실래요?”


상인은 무지로 인해 전혀 몰랐지만, 리아는 귀족의 앞에서 날붙이를 꺼내는 게 어떠한 행동인지―― 여차하면 재판도 받지 않고 즉결 처분할 수 있는 상황임을 라프리트에게 배웠다.


그랬기에 안네도 움찔하였는데, 이를 라프리트가 조용히 손짓으로 말렸다.


리아도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에―― 설마 이곳에서도 시식이라는 걸 할 수 있을 줄은 몰랐기에 기뻐했다. 주변의 상인들이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것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정말요?! 그럼, 실례가 안 된다면 맛 좀 봐도 되겠나요?”

“실례는 무슨. 이게 다 장사지라요.”


솔직하게도 장사의 일환이라고 말한 주인은 금속 통에 담긴 물속에 과도를 집어넣었다.



“[닦여라].”


‘청결마법 같은 기초 마법도 발동어를 외치는구나. 학우분들도 마찬가지이려나? 뭐, 이곳에 있는 사람들처럼 큰 지팡이를 들고 다니진 않으니 쉽게 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데 저 물······ 조금 탁하지 않나?’


과도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을 보고 있던 리아는 통에 담긴 물을 보고는 움찔했다. 아마 몇 번은 이런 식으로 사용한 물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흙탕물에 담가도 살균 소독한 것처럼 깨끗하게 만드는 청결마법의 원리를 떠올리고는 찝찝한 마음을 떨쳐냈다.


지구와 상식이 다른 것이다. 순응하기로 했다.


마을을 나왔으니 차차 이런 일도 많을 거다. 거기에 청결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할 것 같은 이미지의 귀족인 라프리트가 그다지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꼭 라프리트씨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저리 닦는 건 평범한 거겠지.’


평소 근면 성실한 라프리트의 모습을 떠올리며, 리아는 주인이 작은 나무 접시에 담아 내밀어 오는 과일을 봤다.


노란 겉면과 달리 과육은 뽀얗다. 씨가 있는 위치도 지구의 사과와 크게 다르지 않은지, 깎은 모양새도 비슷하였다.


리아는 접시에 있는 것 중 가장 커 보이는 걸 집어 들었다.



“앗. 리아 양, 여기 포크가······”

“잘 먹겠습니다.”


라프리트가 말하는 게 들렸지만, 리아는 눈앞에 있는 사과를 우선했다.


우물우물.


작은 입을 열심히 움직이던 리아는 눈을 번쩍 떴다.



“맛있어!! 라프리트 씨도 드셔보세요. 아삭한 식감이랑 함께 나오는 과즙이 달콤해서 기분까지 좋아져요!”

“그, 그런가요? 그렇다면 저도······”


조심스럽게 대답한 라프리트는 웃는 얼굴의 주인이 내민 접시의 사과 하나를 리아처럼 맨손으로 집었다. 그리고는 엄청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안네의 시선도 무시한 채 모른 척 그대로 한입 베어먹었다.



“네. 정말 맛있네요, 리아 양.”

“그렇죠?!”


지구의 사과보다 더 뛰어남에 리아는 맛있다며 칭찬 일색이었지만······ 사실 이 사과는 평범했다. 분명 라프리트도 자주 맛보던 것일 거다.


즉 특별한 것이 없다는 소리로, 그저 어떻게든 라프리트의 기분을 띄우려고 밝게 행동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러한 노력이 통했는지 라프리트는 정말 오늘따라 각별하다며 좋아했다.


‘다행이야. 뭔가 고민이 많아 보이셨는데······’


라프리트가 웃는 모습을 본 리아는 기분이 좋아져 신선하고 맛있기도 한 이 가게에서 사과와 배, 그리고 별 모양의 과일―― 이름도 생긴 그대로인 별과를 각각 한 박스씩 샀다.


이때 잠시 값을 지급하는 것으로 라프리트와 작은 실랑이가 있었지만, 자신이 권유한 것이고, 친구를 위해 사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주장에 리아는 얌전히 뜻을 굽혔다.


대신 속으로 지난번 약속한 학원의 안내만큼은 완벽하게 한다며 의욕을 불태웠지만.



“감사해요.”

“제가 감사하지유.”


그냥 들고 가더라도 일반인도 들만한――오엘문리아 기준이다―― 무게이기에 손쉽게 운반할 수 있었지만, 그냥 [차원수납]에 넣어버리기로 했다. 일부러 엄한 힘 쓸 필요는 없으니.


그렇게 에르가 박스를 허공에 집어넣자 주변에서 보던 사람들이 놀랐다. 하지만 이내 귀족만의 뭔가 특별한 마법일 거라며 넘어갔다. 일부 몇몇 상인들은 눈을 빛내는 듯도 했지만.



“아저씨, 수고하세요.”


기분 좋게 인사한 리아들은 가게를 떠났으나······


곧장 수많은 호객행위가 덮쳐들었다.


이는 조금 전 가게 주인에게 보인 행동을 통해 너그럽고 털털한 귀족들이란 인식이 생겨났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붙잡으며 강매하는 듯한 거친 짓까진 하지 않았지만, 마음에 들었다며 박스째로 사들이는 큰 손을 놓치고 싶진 않았던지 상인들은 열성적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꼬치나 육류음식을 권하는 사람도 있어, 되려 라프리트가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상인들은 흠칫 떨며 호객을 멈추고 어색하게 떨어져 나갔다.


리아는 살짝 안도하며 말했다.



“휴우······ 에르, 고마워요. 솔직히 조금 곤란했거든요.”


소량의 마력을 잠깐 내뿜었던 에르는 짤막한 미소로 답했다.


지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미소에 피격된 일부 피해자들이 생겨났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멍하니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리아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도리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복잡한 시장에서 이제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게 된 리아들은 편하게 둘러보다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이곳 시장에는 한 가지 소문이 남, 여 조금 다르게 퍼졌다.


상인의 신에게 축복받아 전설의 [차원수납]을 사용할 수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더럽게 잘생긴―― 귀족의 사용인이 있다고.






시장 이후에도 리아들은 여러 곳을 둘러봤다. 전망대에서 드넓게 펼쳐진 도시의 경관을 구경하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거나 했다.


도중 채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찾지 못한 라프리트가 아쉬워하는 일도 있었지만, 리아에게는 별문제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구에서보다 기본적으로 몸이 건강한 이곳에서는 채식주의 같은 식습관을 가진 자는 매우 드물어 보였다.


‘무슨 개인적인 신념이나, 종교적 가치관이 아닌 한은 없겠지.’


그래서 아무래도 괜찮았고, 공원에 앉아 에르가 준비해 준 도시락을 먹음에도 전혀 불만 따윈 없었다. 나트알에서의 추억이 떠올라 좋기만 했다.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요.”


슬슬 어두워질 무렵 기숙사로 돌아온 리아는 방문 앞까지 따라와 준 라프리트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뭘요. 제 쪽이야말로 같이 가주셔서 고맙죠. 즐거우셨나요?”

“네! 물론이죠! 정말 재밌었어요.”

“다행이네요.”


정말 안심한 듯 크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라프리트와 잠시 복도에서 떠들다 리아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차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약속이 있다고 하는 라프리트를 붙잡을 순 없었다.


리아는 아쉬워하면서 에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다녀오셨어요?”

“응! 다녀왔어! 아이리스”


리아는 방으로 들어오자 반겨주는 아이리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진정하세요, 어머니.”


아이리스가 곤란해하고 있었지만, 리아는 한동안 볼을 비비며 마음껏 아들을 귀여워했다.



“헤헤. 정말 재밌었어. 아이리스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둘이서 놀 때도 있어야죠. 저도 오늘은 약속이 있었고.”


리아의 손길에서 풀려난 아이리스는 슬그머니 소파 쪽으로 피난했다.



“어······ 약속?”


그런 이유가 있었나?



“네. 반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거든요.”

“와~ 벌써 친구도 생긴 데다가 초대까지 받았니?”

“초대라고 말할 정도로 거창하지 않아요. 그냥 애들끼리 모여서 논 거예요.”


흥미가 생긴 리아는 아이리스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오늘 일과를 물었다. 에르도 관심이 있는지 잽싸게 차를 끓여와 리아의 옆에 앉았다.


둘의 흥미 가득한 눈초리에 아이리스는 조금 부담스러워하며 말했다.



“으음······ 그냥 정자에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각자 준비한 차와 다과를 먹거나 했어요.”

“오오! 다과회 같은 건가. 아이리스는 뭘 가져갔니?”

“전 그냥 지금 마시는 이 홍차 잎을 가져갔어요. 떫지도 않고 나름 맛이 괜찮아서요.”

“헤에~ 요즘 남자아이들은 고상하게 노는 구나······”


고등부는 나이대가 막 성인이 된 사람부터 중년까지 다양하고, 실력과 능력에 따른 분류도 존재했다. 그에 비해 아이리스가 있는 중등부의 사람들은 11살부터 15살의 아이들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리아가 요즘 애들이라고 할 정도로 중등부의 사람들과 나이 차가 나진 않는 것.


그랬기에 리아는 아들인 아이리스의 친구라니까 자신보다 한참 어리게 여겼고, 전생의 아이리스만 한 나이에 흙을 푸고 놀던 거와 비교하며 감탄한 것이었는데······


들려온 말은 뜻밖이었다.



“아뇨? 여자들이었어요. 오늘 만난 애들은.”

“어······? 여자···?”

“네.”

“며, 몇 명이 만난 거니?”

“저 포함해서 5명이요.”

“······.”


설마 여자라고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리아는 패닉에 빠졌다. 그런 모습에 아이리스는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4명의 여자아이와 티타임을?! 나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는데 그런 부러운······이 아니지. 역시 우리 아들이야. 잘 생기고 천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착하니까 인기가 많은가 봐. ――하지만 그건 그거! 엄마로서 아들의 교우 관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


다행인 건 아이리스가 남녀와의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감정은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 점에 대한 건 엄마이자, 어른인 자신이 가르쳐야 할 것이다.


책임감에 리아는 열정을 불태웠다.



“아이리스! 잘 들으렴!”


리아는 기숙사에 있는 중후한 테이블에 손을 얹고 얼굴을 바짝 내밀었다.



“네······?”

“아직은 멀었겠지만, 아이리스도 언젠가는 그러한 시기가 올 거야. 그러면 뽀······뽀 라든가······”


말을 하다가 한 번뿐이었던 에르와의 키스를 떠올린 리아는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기세등등할 땐 언제고, 그대로 입을 벌린 채로 굳어 혼자 알아서 격침된 리아.


누구 때문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어린 나이에 상당히 조숙해져 버린 아이리스에게는 엄마의 위엄을 보여줄 기회가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얼마 없는 기회가 이리도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 통탄할 사실을 모른 채 리아가 정신을 차리는 건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더불어 기회가 날아갔음을 깨닫고, 땅을 치며 억울해하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늦은 밤이 되어 아이리스가 자신의 방으로 가고, 에르와 함께 자는 부부의 침실에서 리아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상태로 말했다.



“으으으······ 미안해요. 추한 모습을······.”

“어디가? 나는 리아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했어.”

“으윽······!”


분명 웃고 있을 에르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리아의 심장에 타격이 들어갔다. 목소리도 위로해주려 무척이나 부드러웠기에 평소보다 깊숙이 들어와 박혔다.


한참을 리아가 말없이 조용히 있자 걱정이 되었는지 에르가 다가와 침대 옆에 앉았다.


움찔.


진정이 덜 된 리아는 몸을 떨었다.



“지금도 잘 믿기지 않아······”


나지막하니 말하는 에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아는 여전히 자세를 유지한 채 대꾸했다.



“뭐······가요?”

“나에게 사랑하는 아내가 생긴 것. 그리고 그 우리의 아이와 함께······ 가족을 이뤄 사는 것. 매 순간순간이―― 하루하루가 나에겐 믿기지 않는 일의 연속이었어. 가끔은 지금 꿈이 아닐까 생각도 해.”

“저, 저도 에르와 결혼한 게 꿈이 아닐까 걱정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나름 평범하지 않아요?”

“응.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이지.”


여운이 느껴지는······ 정말 만족스러운 듯한 에르의 목소리가 울렸다.


잠시 멍하니 있던 리아는 물었다.


“에르는······ 저에게 바라거나, 고쳤으면 하는 점이 있나요? 제가 말하긴 좀 그런데, 전 이래저래 폐도 많이 끼치고 손이 많이 가잖아요.”

“전혀. 오히려 날 신경 쓰느라 리아가 위축되지 않았으면―― 음? 리아에게 바라는 점이 하나 있었군.”

“어······떤거요?”


에르가 여태 자신에게 뭔가를 바란 적은 없었기에 리아는 긴장했다.



“리아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거야. 남의 눈치는 볼 필요 없어. 걸림돌이 생기면 내가······ 아니지, 우리가 함께 극복하면 되니까. 그게 부부가 서로 믿고 의지하는 일이겠지.”

“기억하고······ 계셨어요?”

“리아가 했던 말인데다, 내 마음을 크게 뒤흔들기까지 한 말이야. 어떻게 잊겠어.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몇 년이나 지난 겨울날에 한 말을 기억해주다니······


‘그때는 그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상담을 했는데.’


어느새 진정된 심장을 느끼며 리아는 베개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옆을 바라보니―― 언제나 보여주던 환한 미소를 띤 에르가 있었다.



“에르······”


벅차오른 마음이 된 리아는 침대에 앉아있는 에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등 뒤로 손을 돌렸고, 에르도 살포시 마주 끌어안아 주었다.


그의 품은 여전히 든든했고, 따듯했다.


두근대는 고동 소리를 느끼며 살짝 고개를 든 리아는 에르와 눈을 맞추었다.


검고 맑은 투명한 그의 눈동자에는 자신이 담겨 있었다.


빠져들 듯 바라보고 있던 리아는 다가오는 에르의 얼굴과 머리를 살며시 감싸주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쪽.


짧은 순간 붙었던 얼굴이 떨어지자마자 리아는 바로 에르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


‘아, 좋다.’


처음은 부끄러움에 빨개졌던 얼굴도 다 진정되고, 리아는 긴 시간 껴안았다. 그 순간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이대로 자도 괜찮다 싶을 만큼 편안했다.


하지만 그런 때에―― 에르가 갑자기 떼어냈다.



“우으응?”


멍하니 의아함을 드러내자 에르는 활짝 웃었다. 그런데 진하디진한 미소는 뭔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자아, 리아. 나도 내 마음을 솔직히 말했으니 이번엔 리아의 차례야.”

“······네?”


무엇을 말하는 건지 궁금하여 되물었으나, 에르는 대꾸 없이 마법을 사용했다.


보기로는 차음마법―― 그것도 공간을 단절시키는 마법 같았는데, 지금 이곳에서는 [차원수납]도 열 수 없지 않을까 싶을 만큼 견고한 것이었다.


그러한 철통같은 보안이 몇 겹이나 방을 둘러싼 것이다. 몰래 훔쳐 듣기는 굉장히 어려울 듯했다.



“에르??”

“리아······”


에르의 미소가 사라졌다.



“무슨 일이었던 거야?”

“뭘······ 말이에요?”

“후우. 아까 라프리트와 수도를 둘러볼 때 말이야. 건국 기념상인가? 초대 벨루디스 왕의 동상 앞에서 리아의 반응이 이상했어.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 학원에 오고 나서부터 뭔가 고민이 많은 듯했어. 왜 그런 거야?”


에르가 눈치채다니.


리아는 자신의 반응에 민감하게 알아차린 에르에게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왜냐하면, 그 동상은――


――이미 봤던 거니까. 분명 처음 왔음에도.



“······.”


리아는 침묵했다.


말이 없는 리아를 잠시 보고 있던 에르가 말했다.



“리아, 예전에도 말했지. 나는 언제 어느 때라도 그대의 곁에 있을 거라고. 그러니 나에겐 숨김없이 말해줬으면 좋겠어. 리아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진지한 말과 눈빛에 리아는 시뮬레이션을 멈춰 머리를 깨끗하게 만들고는 그와 똑같이 진지하게 마주 봤다.



“······에르는······ 만약 제가 이 학원과······ 오늘 광장에서 본 그 동상을 봤다고 하면······ 믿으시겠나요?”

“여기를? 리아가 이 나라에 온 적은······”

“없어요. 고향인 나트알을 벗어나 본 건, 우리가 함께 산속에 5년간 있던 것 말고는 이번이 처음이죠.”

“그런데······”

“네. 본 적이 있어요, 여기 베르다드와 그 건국 기념상을. ――전생에서 말이죠.”

“전생······ 지구라는 곳에서?”


살짝 눈을 동그랗게 뜬 에르를 보며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손녀가, 전생의 제 손녀가 하던 ――게임에서 봤어요.”


리아는 아직은 어렸었던 손녀가 하던 게임을 떠올렸다.


여러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잘생긴 남자들이 나와 사랑을 키우는―― 연애 시뮬레이션이라 불리는 장르의 게임이었다.


아들과 손녀에게 어울리기 위해 같이 여러 종류 게임을 해봤던 리아에게도 무척 생소한 장르로, 기억하는 거라곤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소설 같은······ 게임이라 부르기 모호하지 않냐는 인식밖에 없는 분야였다.


그 만큼 관심 있는 장르가 아니라 잘 알지는 못하였으나, 확실하게 보긴 했다.


이곳의 풍경을······



“게임이라······ 혹시 컴퓨터라는 기계에서 하는 거야?”

“비슷해요. 컴퓨터로도 할 수 있지만, 게임만을 하기 위한 기계―― 콘솔이라는 거 말해줬죠? 손녀는 그 기계의 휴대용 버전에서 했어요. 하지만······ 혼자 하는 게임이라 전 플레이해 본 적이 없어서 내용은 잘 몰라요.”


그렇다. 그래서 손녀가 하는 걸 간간이 구경만 했었는데, 그때 보게 된 것이었다.


유려한 그림체로 그려진, 세월이 무색할 만큼 화려하고 하얀 베르다드의 정문과 수도 광장에 우뚝 솟은―― 검을 치켜세운 역동적인 동작의 동상을 말이다.


처음 베르다드에 왔을 땐 긴가민가하긴 했었다. 그렇지만 설마 싶은 의혹만이 전부로, 이곳과 게임과의 관계를 연관 짓지는 않았다. 꿈이 넘칠 시기는 진작에 지났던 것이니.


하지만 오늘 동상을 보고 확신하게 됐다.


――이곳은 손녀가 하던 게임의 배경이라고. 그리고 나는 이것을 봤다고.



“믿기시진 않겠지만――”

“――나는 리아의 말을 믿어.”


리아는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오엘문리아라는 이세계를 게임에서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은 불안이었다.


자신이 태어나 부모님을 만나고, 마을 가족들을 만나고, 에르와 아이리스를 만나고, 다른 여러 사람을 만났던 모든 일이 꿈이나 상상이 아닐까 불안한 것이었다.


사실 자신은 지구에서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었다.


물론 여태까지 느껴왔던―― 바람을 느끼는 예민한 감각과 냄새, 섬세하게 느껴지는 촉감들이 현실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었다. 그러나 자꾸만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을 자른 에르에겐 한 치의 의혹이나 망설임 따윈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올곧은 시선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에르는······ 우리가 게임 속에 등장하는, 한낱 데이터에 불과한 존재이진 않을까 불안하진 않아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르가 리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어때, 리아. 난 리아의 손에서 따듯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나의 코를 간지럽히는 향기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어. 리아는 안 그래? 과연 가상의 세계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 그런 건 우리가 그렇게 느낀다고 만들면······. 그게 아니면 뭔가 이유 모를 버그가 발생했다던가요.”

“아니. 우리는 살아있고, 존재하고 있어.”


강한 시선과 함께 에르는 단언했다.



“그리고······ 이곳이 가상의 데이터라는 곳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것에는 조금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

“······네?”

“리아. 우선 리아가 알고 있는 그 게임에 관해 설명해줘.”


의혹이 가득했지만 리아는 그가 바라는 대로 자신이 알고 있는 그 게임, ‘Let is the Lover’라는 흔해빠진 이름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알려줬다.


손녀는 앞 글자만을 따 발음되는 대로 ‘리틀’이라 부르는 이 게임은 이쪽 장르의 여느 게임과 다를 바 없는, 선택지를 골라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1인 개발자라는 것과 고퀄리티의 일러스트로 인해 나름의 화제를 모으기도 한 리틀은 게임을 좋아하던 아들이 출시와 동시에 샀던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막상 플레이하고 나서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상당히 상이하여, 좋아하는 사람은 인생 게임이라 하며, 싫어하는 사람은 채 1시간을 못 넘기고 그만뒀다.


아들은 후자 쪽이었다.


그리고 방치된 타이틀은 따로 게임만 보관하는 책장 구석에 박혀있다가 손녀가 발견하게 되었다.


손녀도 아들처럼 금방 그만두겠지 싶었지만, 마음에 들었는지 꽤나 오랜 시간 게임기를 붙들었다. 덕분에 보조배터리니, 뭐니 주렁주렁 추가 지출금도 생겼지만, 귀여운 손녀가 기뻐하니 자연스레 지갑을 열기도 했었다.


그렇게 손녀는 종종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서 플레이한다든가, 아니면 리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다만, 그다지 흥미가 없던 분야였기에 손녀의 이야기임에도 귀담아듣질 않았었다. 그저 대충 맞장구만 쳤을 뿐이었다.


지금에 와선 아쉽지만, 덕분에 리아가 리틀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더불어 요즘은 쉽게 까먹는 일이 없어졌으나, 전생이나 어렸을 적에 대한 건 흐릿하기만 했다. 얼추 기억나는 거라곤, 많은 양의 엔딩이 존재한다는 것과 남녀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선택폭이 있다는 것인데······


무슨 소리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리고 금발벽안의 되게 느끼한 남자가 나왔던 거 같은데······’



“으음. 무슨 사자왕 같은 이름이지 않았나······?”

“사자왕?”

“지구에 있었던 왕이에요. 번역의 오류로 그렇게 불린다나 뭐라나 아들이 떠들어댔는데······ 아! 하트! 레온하트!! 그분이 거기에 나왔어요!”

“레온하트라면······ 이 나라의 제2 왕자?”

“네! 맞아요. 그분이에요! 기억하는 것과 달리 느끼하게 생기진 않았지만 확실해요!”

“그렇군······ 더 기억나는 건 없어?”

“미안해요. 아마 이게 마지막 같아요.”

“괜찮아. 리아가 미안해할 필요가 어디 있어.”


에르는 침울해하는 리아의 쓰다듬어줬다.


약간 어린애 취급이지 않을까 했지만, 에르라면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리아는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고, 기분도 조금이지만 풀리는 듯했다.


그렇게 아이를 달래는 듯한 모습으로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에르가 입을 열었다.



“흠······ 지금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두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어.”


헤벌쭉 표정이 풀어졌던 리아는 정신을 차리고 이어지는 에르의 말에 집중했다.



“하나는 리아의 말대로 정말 이곳이 게임의 세상일 경우.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내 주관이지만.”

“다른 하나는요?”

“처음은 비슷한 장소를 보고 리아가 착각한 건 아닐까도 싶었지만, 왕자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거라면 아니겠지. 그러면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마 다른 세계이지 않을까 싶어.”

“아뇨! 제가 본 건 분명 베르다드였어요! 안쪽도 똑같았는걸요.”

“그거야. 이곳과 완전히 닮은 비슷한 세계라는 거지. 등장하는 인물도 완전히 닮은.”

“아······”


그런 우연이 있겠는가도 싶으나······ 말은 됐다. 적어도 현실감이 넘치는 이곳을 게임 속 세상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믿을 만했다.


리아는 정보가 적어 정확한 판단은 할 수 없다고 덧붙이는 에르에게 물었다.



“에르. 만약에 정말 완전히 똑 닮은 곳이라면, 벌어지는 일들도 비슷할까요?”

“모든 것이 같다면······ 높은 확률로 같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

“그런가요······ 아쉽네요. 앞으로의 일을―― 미래를 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정말 같은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어. 이 모든 건 단지 가정일 뿐이니.”

“그렇죠.”

“응. 그런 거야. 그저 굉장한 우연이라 생각하고 그다지 고뇌에 빠지지 않으면 해.”


에르 이상의 그럴듯한 가설을 세울 수 없었던 리아는 아직 께름칙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색 색, 조용한 숨소리를 내면서 자는 리아의 곁에서 에르는 몸을 일으켰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최대한 조심하는 그의 행동은 신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흐트러진 이불을 리아에게 제대로 덮어주고, 깨진 않았나 확인을 한 에르는 살짝 발을 띄워 날아서 거실로 나왔다.


소리조차 안 나도록 문을 닫고 나니 답답한 심경으로 인해 갈증과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마시거나 먹거나 하는 일은 필요 없었음에도 시원한 것으로 풀고 싶었다.


그 기분대로 소파에 앉은 에르는 즉석에서 대강 유리로 된 컵을 만든 다음, 물과 얼음도 만들어 채워 넣었다.


창그랑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물을 마시니 조금은 나아진 듯했다.



“후우. 지구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지구라는 곳과 오엘문리아는 무슨 관계인가.


리아가 없었다면 전혀 알지 못했을 다른 세계를 떠올리며 에르는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고민은 떨쳐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 문제는 반드시 신이 개입한 문제일 테니······


사실 리아에게는 말하지 않은 한 가지의 가설이 더 있었다. 그건 리틀이라는 게임의 배경이 정말로 이곳 오엘문리아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는다. 그러나 차원을 넘어 다른 세계라는 규모라면 신 말고는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것이다.


‘정령조차도 불가능하겠지. 그런데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에서 벌어지거나, 벌어질 일들을 기록한 듯한데······’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은 존재를 신들 중에서 추리면――



“또 운명의 신인가.”


무슨 목적으로, 뭘 위해?


다시 한번 신이 개입한 듯한 정황을 발견하니 화가 나는 것을 넘어 그냥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물론 단지 가설일 뿐이다. 확실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리카드에게 뭔가 개입한 전적이 있었다. 에르로서는 이 가설이 가장 유력하게만 여겨졌다.


‘선택지를 고르면 그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라······ 그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듯한 게임이로군.’


개인적으론 엄청나게 악취미적인 유희라 생각되었다.


그래도 나름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한 교훈이라든가 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그저 단순히 공상의 누군가가 되어보는 재미를 느껴본다든가.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리아가 살았다는 지구는 이곳보다는 몬스터의 위협도 없고 평화로운 곳이라고 했다. 그곳도 나름의 분쟁이라든가 전쟁도 있다지만, 이곳보다는 생존의 위험은 적을 거다.


‘그만큼 여유가 있고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희들이 발달했을 수도······’


잠시 다른 주제로 흘러갔지만 에르는 원래의 주제―― 다른 세계에 간섭하면서까지 무언가를 하려는 운명의 신의 의도를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러한 게임을 만들었지? 직접 만든 건가, 아니면 다른 존재가 만든 걸까······. 그리고 지구에서의 기억이 있는 리아는 무슨 연관이 있으려나.’


이것저것 의문은 많이 떠오르지만, 정작 답을 낼 만한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다.


‘동포를 만나봐야 하나?’


그렇지만 여러 이상한 의혹이 있는데 리아의 곁에서 떨어지는 건 좀 마음이 안 내켰다.


‘지켜보는 자도 있었고.’


현재도 지켜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처음 발각당하고 난 이후로는 리아에게서 아무 말이 없었다. 직접 찾으려 해보기도 했으나 여전히 시선조차 느낄 수 없다.


아마 더욱 조심히 지켜보거나, 훔쳐보는 일 자체를 그만둔 거겠지.


결론적으론 지금 자신은 리아의 곁에서 떨어질 수 없고, 정보를 구하러 다닐 수도 없다는 거다.


‘거기에 요즘 근처를 얼쩡거리는 놈들도 꽤 생겨났으니.’


마력측정을 하고부터였을 거다. 묘한 자들이 감시하듯 근처를 서성거리던 것이.


다들 기척도 제대로 숨기지도 못하는 잔챙이에 불과하니 그다지 걱정은 없었지만, 딱 한 명―― 은밀히 움직이는 것이 능숙했던 자가 있었다.


마력을 감추는 것부터 아무런 소리가 안 나도록 하는 움직임까지. 전해져오는 감각마저도 강자의 느낌이 나는 그 사람은 방심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가족에게 위해를 가할 정도로 대단한 자는 아니지만.’


아이리스도 걸어둔 방어벽 정도로 충분할 거다.


‘응? 그러고 보니 라프리트······. 그 여자도 처음 학원에 왔을 때 몰래 숨어서 보고 있었지. 어떻게 우리가 올 줄 알고? 오랫동안 기다렸나?’


다른 사람을 기다린 건 아닐 것이다. 라프리트는 자신들이 사라지고 나서 바로 기숙사로 왔으니까.


그 일 때문에 라프리트를 경계하긴 했었다만······ 평소 그녀가 리아를 대하는 행동으로 보면 악의는커녕 선의로 가득했다. 가끔은 너무 친하게―― 너무나도 친밀한 모습을 보일 때면 질투도 날 정도였다.


그래서 잠시 경계를 거두었으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묘한 일이다.


‘복장으로 보건대 그런 수풀에 오래 숨어있긴 힘들어 보여. 안네라는 사용인이 그렇게 둘 거 같지도 않고.’


그러면 자동으로 결론은 하나다.


――우리가 오는 시간을 라프리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만 어떻게?


‘국경을 통과해왔으니 전해 들었나? 아니면 지나쳐온 관문에서? 그렇다곤 해도 너무 정확해.’


국경에서 학원까지 올 때는 하루하고 반나절이 걸렸다.


관문에서 자신들이 통과한 것을 바로바로 전달하였다 하더라도 연락받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 시차라면 분명 몇 걸음씩 늦는다.


거기에 마차는 비젠탈이―― 나름 유명한 마수인 듯한 그가 끌었다.


분명 평범한 말보다는 빠른 속도였을 테고, 거기에 도중 휴식도 가졌던 우리들의 이동하는 페이스도 함께 계산해야만 했다. 그러니 정확한 시간을 계측하기란 더욱 힘들 거다.


‘라프리트는 그걸 해냈다는 건가. 보기와는 달리 더 똑똑한 건가?’


하지만 이것도 자신의 예상일 뿐이다. 이것 또한 정보가 부족했다.


모시는 자를 성심성의껏 충실히 보필하는 안네와 딱 봐도 리아를 무척 아껴주는 친구인 라프리트······


둘 다 상당히 호감이 가는 인물들이고, 우리들―― 리아와 아이리스에게 상처 주는 짓을 할 거라는 느낌은 전혀 들진 않았다.


그렇지만 에르는 주시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정보를 얻을 수 있길 바라며.


그렇게 복잡한 기분을 떨쳐내려 다시 물 한잔을 만들어 마시는 에르와 함께 날은 밝아왔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 입니다!


즐거운 주말 끝까지 잘 보내시길 바라며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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