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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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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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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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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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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DUMMY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도구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마광석에 부여하고자 하는 술식을 얼마나 정확하게 세공시키느냐입니다. ”


교탁에 선―― 기다란 흰 수염이 인상적인 나이 지긋한 교수가 준비된 가루로 된 마광석에 [각인]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의 효과에 의해 의지를 가진 듯 가루가 스스로 움직이더니 투박해 보이는, 색도 연하고 탁한 광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러나 돋보기를 사용한다거나 시력이 좋은 사람들은 광물의 안쪽엔 뱀이 기어가는 듯한―― 색이 진한 선이 일정한 규칙을 뛴 문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완성하면 됩니다. 부여하고자 하는 술식이 복잡할수록, 발동하는 데 많은 마력이 필요할수록 질 좋은 마광석이 필요합니다만, 오늘 할 [광구]처럼 간단한 마법이라면 색이 탁한 저급의 마광석으로도 충분합니다.”


학생들을 둘러보던 노교수가 어느 지점을 보더니 도인같이 인자하던 얼굴이 작게 일그러졌다.



“거기 졸고 있는 학생. 그만 조시고 나와서 마도구를 사용하는 시범을 보여주세요. 그렇게나 잘만 주무시니 손쉽겠지요.”

“······.”


하지만 졸고 있던 학생―― 굉장히 보기 드문 은발이 눈에 띄는 소녀는 도통 일어나질 못했다.


노교수의 심기가 점점 불편해지는 것을 느낀 곁에 앉아 있던 여성이 다급히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리, 리아 양, 일어나세요. 교수님이 부르세요.”

“우으응. 선생님이요?”


우드드드득 하고 뼈가 부러질듯한 소리를 내며 느긋하게 기지개를 켠 소녀, 리아는 입을 가리고 작게 하품을 내쉬었다.


외관은 보호욕을 불러일으키는 가녀린 소녀의 모습이었지만――


노교수의 관자놀이엔 핏줄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수업에서 이리도 잘 자는 학생을 만나보긴 얼마 만인가.


적어도 우수한 학생들이 어렵사리 입학해 열성을 가지고 배우려 하는 베르다드에선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대놓고 자는 게 아닌 나름 버티려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긴 했지만,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5분도 안 돼서 지금까지 계속 저러는 건 용납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국빈이라지만 열심히 준비한 내 수업에서 계속 졸기만 한다고?’


이미 그녀를 거쳐 간 동료 교직원들이 저래 보여도 수업은 듣고 있다는 말을 해줬으나 믿기지 않았다.


애당초 저리 세상모르게 자는 모습을 보고 믿으라는 게 무리였다. 동료들이 필시 잘못 봤으리라.


분노에 찬 노교수는 터벅터벅 걸어 나온 작은 소녀를 내려다봤다.



“자, 이스피리아 씨? 모두에게 먼저 시범을 보일 기회를 드릴까 합니다. 마도구의 작성부터 발동까지 당연히 전~혀 무리 없이 해내실 수 있겠지요?”


요구가 늘어난 것 같았지만, 잠시 생각하던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제없을 거 같아요.”


노교수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무조건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수업을 잘 들어도 힘들 판국에 아무리 기초반이라 하더라도 저리 자기만 해서는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어떤 말로 훈계를 할까 고민하는 노교수를 뒤로하고 리아는 교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높았다. 발돋움해야 겨우 교탁 위가 보일 듯했다.


저런 모습으로는 시연은 무리겠지.


기회는 공평하게, 불편함은 없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자리는 만들어줘야 한다. 비록 마음에 안 드는 학생일지라도. 그것이 노교수의 교육에 관한 지론이었다.


받침대가 어디 있었나 생각하고 있던 노교수에게 짧게 ‘딱’ 손가락을 튕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출처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허공에 떠 있는 리아가 있었다.



“비, 비행 마법?!”


무려 4급에 이르는 고난이도의 마법을 본 강의실은 소란스러워졌다.


‘무영창이라고?! 저런 마법을?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비행] 같은 마법조차도 할 수 있단 말인가? 과연 학원장님이 추천할 만하군.’


하지만 감탄 어린 시선을 받고 있던 리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비행]이 아니에요. 그냥 [발판]을 만들어서 그 위에 서 있는 거예요.”


리아의 말에 강의실은 수군거렸다.



“발······판?”

“네. 투명해서 안 보이시겠지만. 자, 여기요. 만져보세요.”


계단을 내려가듯 내려온 리아가 가리키는 곳을 노교수는 손을 뻗어 만져봤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나무판자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이건······ 부유···판인가?”

“[부유판]이요? 여기도 비슷한 마법이 있나 보네요?”

“응? 여기······? 자네, 베르다드에 와서 배운 게 아닌가?”

“아니에요. 제가 만든 마법이에요. 보호막을 조금 활용한 건데, 땅이 안 망가지게 하려고 만들었어요.”


노교수는 경악했다.


[부유판]은 그렇게까지 어렵다고 할 마법은 아니었지만, 직접 만들었다고 하면 이야기는 달랐다.


마법을 만들기 위해선 술식―― 심층적인 마법의 근본에 관한 전반지식이 필요했다. 단순히 선구자들이 만들어놓은 술식을 따라 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인 거다.


거기에 마력 대비 효과의 성능비도 나쁘지 않다면 어지간한 일류 마법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용된 술식을 알진 못했지만 무영창으로 이리도 빨리 만들 수 있고, 30kg 이상은 되어 보이는 소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으로 보면 잘 만들어진 마법 같았다.


어설픈 초보가 대충 만든 마법은 확실히 아니다. 땅이 망가지지 않게 만들었다는 소리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지만.


‘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수업 중이라는 걸 깨달은 노교수는 학생들을 둘러봤다.


직접 만들었다는 의미를 이해한 사람은 적어 보였다.


전문지식을 미리 심도 있게 배우는 고위 귀족이라면 모를까, 이 수업은 그러한 귀족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다. 물건을 만드는 건 밑에 있는 자들이나 하는 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도구 작성 같은 장인 직종의 일을 배우는 자신의 수업은 귀족이 별로 수강을 신청하지 않는다.


노교수로서는 한탄스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있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열정을 쏟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고, 그럴만한 힘―― 지위도 없었다. 순응하며 져갈 수밖에.


‘그나마 학원장님 같은 분이 계시니 다행이지.’


씁쓸한 마음을 숨기며 노교수는 마음에 안 드는 학생에서―― 재능은 있지만, 여전히 마음에는 안 드는 학생으로 바뀐 리아를 쳐다봤다.



“이스피리아 씨, 시범을 부탁드립니다. 자, 여러분도 지켜보시고 본인의 실습 때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아직 저마다 수군거리던 학생들은 화제의 인물인 리아가 발판을 밟고 교탁에 서자 집중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베르다드에 온 학생들이기에 눈빛은 진지했고,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나름의 기대 어린 시선을 받으며 리아는 또 손가락만 튕겼다.


스르르.


노교수 때처럼 마광석의 가루가 움직이더니 준비되어있던 원형의 마광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번에도 무영창으로 [각인]마법을 펼친 리아에게 놀라며 노교수는 완성된 마도구를 살펴봤다.


[광구]의 술식이 정확히 새겨져 있었다.


다만······



“자네. 술식이 조금 다른 듯하다만?”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달랐다.



“아, 그거요? 여기 이 부분이요.”


말로 설명하긴 어려웠는지 리아는 발판에서 내려와 칠판으로 갔다.



“거기가 아니란다. 저기서 쓰는 거란다.”


직접 적는 건 줄 알았는지 커다란 칠판 앞에서 필기구를 찾는 리아에게 노교수는 교탁 옆 책상을 가리켰다.


‘한 수업만이라도 자고만 있지 않았다면 알았을 것을······ 여태 전부 졸았구나.’


노교수는 한숨을 참았다.


그와 함께 마찬가지로 발판을 만들어 올라간 리아는 책상 위에 놓인 펜을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 슥슥 적기 시작했다.


노교수는 조금 기대하고 칠판을 쳐다봤다.


거기엔 귀여운 필기체로 이리 적혀있었다.



――정말 적히는 건가?



“그렇단다. 잘 적히고 있단다.”

“오오!”


강의실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무엇이 그리 놀랍고 만족스러운지 리아는 수업 때나 보여줬으면 싶었던 생기발랄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혈압이 올라왔지만, 노교수는 참아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리아는 우왕좌왕할 뿐, 뭔가 적을 기미가 없었다.



“왜 그런 겐가?”


리아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저······ 이건 어떻게 지워요?”


‘참자. 지우는 건 모를 수도 있지.’


암만 그래도 쓰는 곳도 몰랐던 건 너무 했지만, 노교수는 인내심을 갖고 설명해줬다.



“그 펜으로 세 번 두들기면 전체 지우기고, 수정할 부분은 펜의 뒤를 가져다 대면 된단다.”

“아하~ 이 세 개가 세트인 마도구군요.”


잠시 펜과 책상, 칠판을 보던 리아는 드디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이번엔 제대로 된 거겠지?’


기대감이 바닥을 치게 된 노교수는 감흥 없이 무심히 칠판을 쳐다봤다.


그곳엔 제대로 술식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려진 건 리아가 제작한 마도구에 새겨진 술식이 아니었다. 평범한 [광구]의 술식이었다.


설명을 바라는 눈치인 노교수에게 리아가 말했다.



“여기 이 부분을 보세요.”


리아는 술식의 한 부분에 동그라미를 쳐 놨다. 집중해서 보니 리아가 만든 마도구에 새겨진 술식의 다른 부분이었다.



“그곳이 어떻다는 겐가?”


전혀 문제없어 보였다. 고칠 이유는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이 부분이 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건데, 애초에 이 마도구의 목적은 전등이잖아요?”

“그렇지.”

“그럼, 제어하는 부분은 없어도 되지 않아요? 단순하게 마력을 주입하는 양으로 밝기를 조절하면 되잖아요. 별로 필요도 없는데 여기서 나가는 마력이 아깝잖아요. 아, 물론 안전을 위해 한계치 이상의 마력은 커트해 놓았어요.”

“발상은······ 나쁘지 않다만, 마력조작의 숙련도가 높아질 거 같구나. 그런데다 설치형에서는 반대로 필요 이상의 마력이 사용될 듯하다만.”


자고로 마도구란 누구나,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저 술식은 거기에서 멀어진 듯했다.



“아뇨. 오히려 더 다루기 쉽게 됐어요. 설치형에서도 반 이상은 마력이 더 절약될 거예요.”

“응?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나?”

“으음. 직접 해보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노교수는 리아가 건네주는, 다른 술식이 새겨진 마광석을 받았다.


술식은 복잡하고 할 수 있는 기능이 많아질수록 마력의 소비가 많아진다.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초급반에서도 알 정도로 당연한 상식이지만, 간단한 술식조차도 바꿔 고치기란 쉽지 않다.


혹시 몰라 노교수는 사용하기 전 꼼꼼히 살펴봤다.


학생이 어설프게 만든 마도구가 폭발하거나, 전혀 다른 효과가 나온다든가, 너무 과한 경우가 비일비재했기에······


하지만 리아가 술식까지 바꿔 만든 이 마도구에서는 큰 위험이 없어 보였다. [광구] 자체가 큰일이 벌어질 정도로 대단한 마법도 아니기도 했지만.


‘설마 죽거나······ 하진 않겠지······?’


마음 같아서는 만든 리아가 하라고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교수의 체면과 다른 학생들의 쳐다보는 시선이 이를 막았다.


노교수는 힘들게 마음을 정하고 마도구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그리고 이제 마력을 조작하려 하는데······


바로 켜졌다.


‘마력만 주입했는데?’


밝기 또한 너무 밝지 않았다. 딱 어두운 곳을 밝힐 정도는 됐다.


잠시 마도구를 살피던 노교수는 원리를 깨달았다.


‘마력을 주입한 대로 밝힌다는 게 무슨 뜻인가 했더니 아예 밝기를 고정한다는 거였나.’


필요 이상의 마력은 마광석에 저장되어 보이니 낭비도 없었다.


‘비법은······ 마광석에 따로 새겨놓은 이 술식인가.’


매우 간결한 이 술식은 오직 일정하게 마력이 메인인 [광구] 술식에 흘러가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리아가 말한 대로 일정 이상의 마력은 대기로 방출되게 하는 안전장치도 있었다.


확실히 이렇다면 별다른 조작은 할 수 없었지만, 술식 내에서 조작을 통한 것보다는 마력의 소비는 매우 낮아질 거다.


‘거기다 손은 두 번 가지만, 제작 난이도 자체는 낮아진 듯하군.’


마력의 소모만을 극단적으로 줄이기 위한 설계와 안전성에 노교수는 조금 감탄했다. 무척이나 예상 밖이었지만······



“켜고 끄는 기능은 없는 거니?”

“스위치를 뺄수록 그만큼 마력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마력조작도 덜 필요하다는 거구나.”

“맞아요.”


모든 것이 일리는 있었다.


스위치를 구성하는 부분만큼의 마력 절감과 사용성의 편이함. 마도구라는 이념에는 충실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기능이 빠져있는 듯하구나. 끌 수조차 없다면 설치형에서는 제법 불편할 거란다.”


침실에 놔두는 전등이라면 이제 막 자려 하는 데, 끄지도 못하고 주입한 마력이 다 떨어지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아니면 마광석을 분해하거나.



“아······ 그런가요.”

“으음. 그래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따라선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거 같구나. 훌륭했단다.”


노교수는 황급히 칭찬하며 말을 끝냈다. 자라나는 학생의 기를 죽일 순 없는 것이다.


표정이 밝아지는 리아를 보고 노교수는 안도했다.



“이스피리아 씨, 수고하셨습니다. 자리로 돌아가세요.”

“네. 감사했습니다.”


멋들어진 인사를 하며 들어가는 리아에게 학생들은 손뼉을 쳐줬다.


그런 상황이 어색한 듯 쑥스러워하는 리아.


그 모습을 조금은 흐뭇하게 보던 노교수는 다른 학생들도 실습해보도록 지시했다.






“수고하셨어요, 리아 양.”

“즉석에서 술식을 수정할 수 있다니 훌륭했답니다, 이스피리아 양.”

“고마워요.”


자신을 반겨주는 라프리트와 소베르비아에게 미소 짓고 답례한 리아는 곁에 서 있는 에르에게 말을 걸었다.



“에르, 혹시 남는 금속 같은 게 있나요?”


리아는 방금 만든 마도구를 보여줬다.


의도를 깨달은 에르는 가지고 있던 물건 몇 개를 꺼냈다.



“마음에 드시는 거로······”


자신에겐 평소와 같은 말투로 들리는 에르의 말을 신기하게 여기며, 리아는 꺼낸 물건들을 쳐다봤다.


예식에서나 사용할 법한 이상한 형태의 티아라와 마찬가지로 보석이 박히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팔찌······


모두 너무나 값비싼 물건 같았다.



“저······ 에, 에르? 저는 손전등을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아가씨께서 처음으로 만든 마도구지 않습니까. 이까짓 것들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이 물건들도 아가씨 손에 새로이 태어난다면 기뻐 마지않을 겁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않나요?’


내가 뭐라고 예술작품도 아니고 겨우 손전등으로 보석이 줄줄이 박힌 물건들보다 값이 나갈 리가 없지 않은가.


봐라, 라프리트와 소베르비아도 황당하다는 눈치로 쳐다보지 않나.



“아, 아까워요! 그건 집어넣으시고 다른 건 없나요?”


리아가 질색하자 에르도 어쩔 수 없었다. 매우 아쉬워하며 다시 [차원수납]에 보관하고는 평범한 쇳덩이처럼 보이는 것을 꺼냈다.


‘멀쩡히 있으면서!’


리아는 어처구니없어하면서 건네주는 쇳덩이를 받았다.



“이건 평범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쇠죠?”


그래도 만약을 위해 물어봤다.



“음······ 에이브안을 돕다가 구한 평범한 것입니다.”


할아버지 집의 요새를 보강할 재료들을 구해줬었나 보다.


내심 말도 안 되는 희귀금속이라도 꺼낼 줄 알았던 리아는 안심하고 손전등을 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저기? 두 분은 실습하지 않으셔도 돼요?”


빤히 쳐다보던 라프리트와 소베르비아는 화들짝 놀랬다.



“네! 해야죠!”

“그렇죠. 저희도 물론 실습할 겁니다.”


허둥지둥 본인들의 재료에 손을 뻗어 무언가 하는 듯했지만······ 그녀들의 신경은 온통 이쪽에 쏠려있었다.


어쩔 수 없지.



“······궁금하시면 보셔도 좋아요. 대신 전부 보시면 제대로 본인의 실습도 하시는 거예요? 알았죠?”

“물론이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궁금했나?’


화색이 돌며 호흡이 척척 맞는 둘을 보며 리아는 만들려는 손전등의 모양을 떠올리곤 손가락을 튕겼다.



“음. 좋아.”


손 위에서 구불구불 쇳덩이가 움직이더니 생각한 그대로 형태가 바뀌었고, 최종 결과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만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남은 쇳덩이를 에르에게 돌려준 리아는 자신이 만든 마광석을 들었다.



“끝난 건가요?”

“아뇨. 이제 여기에다가 끼우면 돼요, 루비아 씨.”


손에 딱 잡힐만한 7cm 정도의 쇠 막대기의 안, 우산이 펼쳐진 듯한 곳에 리아는 마광석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서 마법으로 다시 쇠를 변형시켜 떨어지지 않게 고정했다.


이것으로 끝. 쇠 막대기 형태의 투박한 손전등이 완성되었다.


앞에 이물질이나 충격에 보호할 유리가 없는 것이 불만스러웠지만, 처음 만든 것치고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사실은 나사선도 제대로 만들어서 분리도 가능하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만 마력을 전력원으로 사용하기에 건전지를 넣었다 뺐다 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분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나사선을 제대로 만들 자신도 없었다. 시간이 조금 주어진다면 할 수 있을 거 같았지만, 지금 당장 하기엔 약간 불안했다.


물론 혼자라면 그냥 시도해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라프리트와 소베르비아가 구경하고 있다.


나사선은 약간만 틀어져도 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조금······ 아니, 많이 창피했다.


리아는 틀을 만들 때 반들반들하게 세공해놓은 우산 부분을 살펴보고는 시험 삼아 마력을 넣어봤다.


반짝.


교실의 천장에 제대로 불빛이 비쳤다.


우산 부분에 반사된 빛 때문에 원래의 마광석에서 나오는 빛보다는 밝았지만, 의도대로 한점에 모으려 했던 거니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예상외로 더 잘 만들어진 것 같았다.


‘영화에서 보던 광선검 느낌도 나고.’


뚝.


딱 바로 꺼질 정도의 마력만 주입했기에 손전등에서 나오던 불빛이 사라졌다.



“특이하게 생겼네요.”

“응? 그런가요?”

“네. 보통은······”


잠시 생각하던 소베르비아는 자신의 공책에 무언갈 그리기 시작했다.



“휴대용은 보통 이러한 형태가 많아요.”


소베르비아가 보여주는 공책엔 위에 손잡이가 나 있는, 넓은 범위를 밝히는 등불이 그려져 있었다. 빠르게 그렸음에도 뚜렷한 묘사가 굉장했다.


‘와~ 루비아 씨 그림 잘 그리시네. 의외로 취미이신가?’



“한 번 살펴봐도 되겠나요?”

“네. 여기요.”


이상하게 에르가 살짝 움찔했으나, 무례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던 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움찔하고는 손전등을 건네줬다.


소베르비아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마력도 주입하여 작동해 보았다.



“굉장히 잘 만들어졌네요. 사용되는 마력의 양도 다른 것들보다는 적고, 의외로 가볍기도 하군요. 그런데 끄는 게 없으니 조금 불편하긴 하네요.”

“아, 끄는 건······ 잠시만요.”


‘안쪽은 비워뒀으니 가볍겠지만, 역시 전원 버튼이 없는 건 불편한가.’


자신이야 직접 만든 거니 얼마큼의 마력으로 작동하는지 잘 알고 정밀하게 마력도 주입할 수 있으니 큰 불편함은 없었다만, 소베르비아가 불편할 정도라면 확실히 개선할 점이라 생각되었다.


아직 켜져 있는 손전등을 받은 리아는 남아있던 마력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남의 마력을 조작하는 모습에 소베르비아만이 아니라 라프리트와 그녀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안네조차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대수로운 것도 아니니 리아는 흘려넘겼다. 그보단 스위치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룰루랄라 흥겹게 작업을 하던 리아는 재차 손전등을 내밀었다.



“자요. 이 버튼에 손을 대고 켜진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강도의 보강도 해놓았기에 리아는 자신만만했다.



“어디······”


소베르비아는 조금 튀어나와 있는 부위에 손을 올렸다.


팟.


아무런 문제 없이 작동됐다.


몇 번 껐다 켜기를 반복하던 소베르비아는 곁에서 궁금한 듯 보고 있던 라프리트에게 건네줬다.



“감사······합니다.”


넘겨줄지는 예상 못 했나, 라프리트는 놀란 눈치로 있다가 마찬가지로 손전등 보았다.


여러 번 껐다 켜보는 걸 지켜보던 리아는 물었다.



“이제 불편하지 않죠?”

“네. 불편하긴커녕 이건······”


말을 하다 말고 라프리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을 받은 소베르비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쏙 빼고 뭔가를 눈으로 대화하는 둘을 리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봤다.



“굉장히 편하고 잘 만들었어요, 리아 양.”


무슨 일인지 궁금했으나 아직 수업 시간이었다. 둘의 실습은 하지도 않았으니 라프리트가 돌려주는 손전등을 얌전히 받아들었다.



“그럼 이제 구경도 다 하셨으니까 두 분도 해보세요.”


군말 없이 라프리트와 소베르비아는 본인들의 실습을 했고, 할 것이 없던 리아는 다른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거나 둘의 상황을 지켜봤다.


‘다들 익숙해 보이시네. 그런데 술식이라······ 참으로 신기한 방식이야.’


마법의 이해라는――, 입학식 때 리카드가 소개해주었던 세리오의 수업에서 술식이라는 마법 체계를 배웠을 때는 상당히 놀랐었다.


자신이 배웠던 마법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우선, 마법에 대한 현상 원리를 파악하고 체계화 한 점이 신선했다.


리아가 배운 마법은 그 감각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했기에 가르치는 것도 모호할뿐더러, 숙달되는 과정 자체도 혼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독학하는 수준이었다.


그에 비해 체계가 잡힌 술식마법――리아는 편의상 이렇게 부르고 있다――은 원리만 파악하면 됐다.


즉 깨우치기 힘든 감각적인 부분을 ‘암기’라는, 상당히 편하고 보편적인 방법으로 메꾼 것이다.


‘이거라면 우리 마을 사람들도 다들 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면 일도 생활하실 때도 편하시겠지?’


물론 이 술식마법도 나름의 숙달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익히기 쉬운 정도를 따지자면 획기적이라 할 수 있는 차이였다. 적어도 마을주민들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은 넓혀질 것이다.


‘이 체계를 만든 사람이야말로 할아버지가 그리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사람이었겠지. 역시 학원에 오길 잘했어.’


그렇게 과거의 자신에게 잘했다며 자화자찬할 때였다.


문득······ 바지탄스들도 발동어를 외치니 비슷한 마법 체계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와 더불어 ‘그럼 마을에서도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오랜만에 떠올린 마을 생각에 리아는 그리움으로 이 모든 걸 넘겨버렸다.


절대······ 자신이 간과한 점 때문에 얼렁뚱땅 넘기는 게 아니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몇 명 약간 힘들어하긴 했지만, 전원 문제없이 마도구 제작을 마친 것을 확인한 노교수가 수업을 마쳤다.



“으으음.”

“왜 그러세요? 리아 양.”

“아뇨. 수업이 하나인 날은 처음이다 보니······ 점심은 싸 오긴 했는데······.”


우물대는 리아를 보며 리프리트는 미소 지었다.



“그럼 오늘은 연무장 쪽에서 드실래요? 아이리스의 수업이 있지 않나요?”

“네! 구경하면서 먹어도 괜찮을 거 같아요.”


라프리트의 일정이 있을까 걱정하던 리아로서는 안심되었다.


‘다행이다. 오늘은 딱히 도시락을 맡기지 않으셔서 같이 드시지 않을 줄 알았어. 그런데 연무장이라······ 나도 저렇게 고급스러운 어휘를 쓰면 어른스러워 보이려나.’


모든 부분에서 자신과는 전혀 동갑으로 안 보이는 라프리트에게 감탄할 때였다.



“저, 저기. 실례합니다.”


‘오늘 반찬은 뭐려나.’


에르는 맨날 자신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준비해놓으니 반찬 하나 알 수 없었다. 나름 그것이 즐거움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전부 맛있기도 하고.’



“저기요?”

“리아 양. 이 분이 부르셔요.”

“어엇? ······저요?”

“네, 맞습니다. 잠시 여쭤볼 게 있어서······”


리아는 변성기가 이제 막 지난 듯한 앳된 목소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목소리대로 또래보다는 조금 작은, 묘한 동질감이 생기는 어두운 금발의 소년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필므 멜리다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스피리아 님.”


자세는 제대로 잡혔지만 조금은 어색한 귀족식 인사에 리아도 똑같이 예를 갖춰 답했다.



“정중하게. 이스피리아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필므 멜리다 씨. 그런데······ 님 자는 붙이지 않으셔도 돼요. 전 평민이에요.”

“네?!”


믿기지 않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필므는 황급히 주위를 살피면서 소리를 낮췄다.



“시, 실례했습니다.”

“실례는요. 그런데 저에겐 무슨?”

“아, 그게······ 방금 이스피리아 양께서 만든 마도구가 조금 궁금해서······”

“손전등이요?”

“예. 술식까지 바꿔서 만든 작품이니 어떤 것일까, 호기심이 들어서요.”


‘작품이라고까지 할 정돈 아닌데.’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묘하게 기분은 좋았다.


그래서 리아는 선뜻 건네주려 했으나······



“그 전에. 식사하러 가시려던 게 아니었나요?”


도중 말을 거는 소베르비아였다.



“네. 그렇죠.”

“그러면 우선 식사부터 하도록 하죠. 규칙적인 식습관이 건강에 좋답니다. 교실도 비워야 하고요.”


지당한 말이었다. 일정한 시간대에 식사하는 것이야말로 속이 쓰리지 않고 소화도 잘되는 법이었다.


생생한 경험에서 오는 절실한 실감으로 리아는 고개를 깊이 끄떡였다.



“그럴까요?”

“그러면 저도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친구인데도 이스피리아 양과는 함께 식사해본 적이 없네요. 필므 씨도 같이 어떤가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라프리트를 보며 리아는 수락했다.



“네. 같이 드시죠. 필므 씨도 괜찮나요?”


루 몬테르 공국의 공주가 기껏 먼저 권유하는 걸 거부할 수 있을 만한 자는 별로 없다.


그리고 필므는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


곧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끄덕인 필므와 함께 리아들은 교실을 빠져나와 격투술 훈련장, 라프리트는 연무장으로 부르는 곳으로 향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 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 다음 화에서 또 뵙죠!


그건 오늘이 될 거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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