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5.01 00:47
연재수 :
261 회
조회수 :
30,063
추천수 :
315
글자수 :
3,647,771

작성
22.06.29 16:59
조회
81
추천
0
글자
21쪽

65

DUMMY

‘이것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라프리트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멍하니 얼이 빠진 채로 리아를―― 마찬가지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넋이 나간 그녀를 쳐다봤다.


수는 적지만 안 보는 척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던 연무장의 학생들도, 옅은 은빛 구체가 생기는 이상 사태가 발생하자 몰래 보던 것도 잊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괜찮다. 그들은 그저 고위 신분의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는 보기 드문 장면에 눈을 떼지 못한 거니.


문제는 그중에서 다른 목적으로 관찰하던 자들이다.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없을 리가 없다. 반드시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제국과 벨루디스에서 보낸 사람들이겠죠.’


목적은 뻔하다.


이 시기에 최고 국빈이 된 리아의 탐색. 소베르비아와 마찬가지로 리아가 어느 정도의 능력이 있는지, 구슬려내기 좋은 것들―― 예를 들어 약점이나 선호하는 취미나 물건 등을 알아내려 하는 걸 거다.


‘그게 우호적으로 접근하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국은······ 없을 거다.


소베르비아, 그녀의 말을 모두 믿기란 절대 불가능하다만, 딱히 거짓말하는 낌새는 아니었다. 그럴 이유도 없고, 모처럼 리아의 호감을 얻었는데 하루아침 만에 밉보이는 짓을 할 리가 없다.


거기에 저 카딜라신디의 레딧츠가 있다.


그가 눈앞에서 관찰하는 거다. 다른 자들의 어설픈 눈썰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소베르비아 루 몬테르―― 그녀가 있다.


그녀는 레딧츠조차도 감히 동일선상에 둘 수 없는 ‘괴물’이다.


오히려 같은 선상에 설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소베르비아는 마법은 상당한 수준이지만 괴물이라 불리기는 아득하게도 멀다. 신성들의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육체적인 능력 어떠냐 하면, 일반 서민들보다도 못할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괴물이라 지칭하는 건, 그녀의 안목―― 심안 때문이다.


꼭 물리적인 힘이라는 분류에 들어가야만 이리 불리는 건 아니다. 괴물이라는 건 사람의 상궤를 벗어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괴물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같은 사람인지조차 의문이 드는 그런 사람을 통칭하는 의미인 거다.


――딱 남의 마음, 감정, 생각까지도 모두 꿰뚫어 보는 그녀와 같이.


그저 단순히 기분이 좋다, 아니다를 알아보는 게 아니다. 소베르비아는 심층 깊숙이 있는―― 당사자 본인조차도 모르는 감정과 생각들까지도 읽어 낼 수 있다.


상대에 민감하다는 수준을 까마득하게 넘어섰다. 조금 전 리아의 속마음을 알아본 것처럼.


또 어느 날의 일이지만 몸소 겪어보기도 했다.


그러니 단언할 수 있다.


저건 분명 ‘이상’이며 ‘괴이’다.


전혀 리아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거나 치욕스럽다고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녀는 특별하고―― 상이했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자신이 소베르비아를 믿는 일 따윈 할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건 뭐란 말인가.



“마력이었지, 방금?”


뜬금없는 사태에 퍼뜩 머리를 숙이며 계속 사과하는 리아를 쉬라며 돌려보낸 뒤 나온 소베르비아의 물음이었다.


그리고 나온 레딧츠의 대답.



“그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눈으로 보일 정도의 마력이라니. 과연 굉장하네.”


반응으로 봐서는 근처에 있었으면서도 마력을 못 느꼈으리라. 그렇다는 건 조심성 많은 구경꾼들도 마력인지 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소리였다.


자신도 아무것도 안 느껴졌으니 그 점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후의 나온 광경을 라프리트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빤히 쳐다봤다. 어차피 소베르비아를 상대로는 쉽게 들키겠지만,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걸까? 첫 만남을 착각한 거부터 전부 나로 비롯된 거 같은데.”

“아닐 겁니다. 제가 볼 때는······ 평범한 대화의 흐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건들지 말아야 할 부분을 들쑤신 거 같지 않아?”

“누구나 그런 섬세한 부분은 있겠습니다만. 주인님께서는 나쁜 뜻을 품고 그러하신 게 아니시잖습니까.”

“당연하지! 그냥 리아가 그러고 있는 게 보기 싫었을 뿐이야. 내가 인정한 ――가 꼴사납게 널브러진 돌멩이 같은 놈들에게 얕잡아 보일 수도 있잖아. 멍청한 놈들일수록 쓸데없이 그런 데에 민감하단 말이야.”

“그러면 괜찮지 않습니까. 이스피리아 님이 마음에 두실 거 같습니까?”

“아니······ 걔라면 반대로 미안해하겠지.”

“예. 다음에 만나 뵈셨을 때 차분히 다독여드리시는 게 주인님께서 해드릴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 괜스레 딱딱하게 굴 테니 그래야겠지.”


저건 누구냐······


믿을 수가 없다. 저 소베르비아가 남의 의견을 묻고 듣기까지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그녀라면······


‘사람을 잘못 본 기분마저 드네요.’


괴이라 할 수준의 심안은 물론 굉장하다만, 단순히 상대만 꿰뚫어 본다고 해봐야 결국 정보만 얻었을 뿐이다. 암만 정보를 얻었더라도 무슨 정보인지도 모른다면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찌 일급 기밀이라는 것까지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활용할지 전혀 모른다면 돼지 목의 진주다.


오히려 입이 가볍거나 과시하려 드는 사람이었다면 불필요하게 상대방의 경계심만 자극하는 꼴이다. 과분한 능력이며 없느니만 못했다.


그렇지만 소베르비아는 상대를 꿰뚫어 눈만으로 괴물이라 부를 게 아니었다. 그 외에 알아낸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두뇌가 있었다.


이 두 개가 합쳐져 이상이며 괴물인 것이다.


얻은 정보를 토대로 실제 벌어질 일―― 미래를 놀랍도록 거의 오차 없이 정확히 그려내는 넓은 식견, 그리고 이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지혜. 이것이 소베르비아의 무서움이자, 두려움이었다.


더욱이나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어렸을 때부터 중심 안건을 손쉽게 해결해왔던 그녀는 자신과는 달리 공국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공왕 다음가는 권력자이기도 했다. 어쩌면 실질적인 최고 권력은 그녀에게 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소베르비아는 고고하며 고독했다.


남의 말 따윈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던 거다.


본인에게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쉽기만 한 문제를 한참이나 끙끙 싸매는 뒤떨어지는 자의 말을―― 그것도 뻔히 과정과 결과까지 모두 예상이 되는 의견에 주의를 기울이겠는가. 이미 입을 열기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할 줄도 전부 아는 데 시시할 뿐이다.


들을 가치도 없다. 열등한 자의 의견은 도움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던 것이 소베르비아였고, 그러므로 타인에 대해 극도로 잔혹해지고 냉혹해질 수 있는 인물이었다. 자신 이외의 사람은 전부 소모품일 뿐이다. 그녀에게는······


이러하기에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면 지금 보고 있는―― 남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도 모자라 리아의 걱정으로 근심 가득한 얼굴이 된 저 소베르비아는 누구란 말인가.


그녀는 이미 자신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했다. 연무장에 있는 학생들까지도.


절대 연기가 아니다. 저건 진심으로 남을 걱정하고, 진심으로 남의 의견을 듣고 있는 거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소베르비아에게?


그 순간―― 고작 이틀뿐이라지만 리아를 대하는 행동들이 떠올랐다.


답은 나온 듯했다만······


인정하기 싫다. 여태까지의―― 그때의 그녀는 무엇이란 말인가.


라프리트는 묻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루비아 님. 방금 리아 양은 공주님께서 싫어하시는 부류에 쏙 들어가지 않습니까.”


분명 조금 전의 리아는 기이한 행동과 더불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쳤다고 하는 말로 봐서는 소베르비아가 질색하는 사람에 들어맞을 것이다.


일부러 리아를 깎아내리는 발언은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해서라도 그녀의 본심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소베르비아는 똑바로 바라보곤 눈만 꿈뻑꿈뻑 거릴 뿐이었다. 의외의 말을 들은 듯, 아니면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것처럼도 보였다.



“에······”


깜짝 놀라 무심코 툭 나온 말에 소베르비아가 공주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빤히 쳐다본다.


분명 속내를 들여다보고 있을 거다.


숨기는 건 불가능하니 똑바로 마주 봤다.


잠시 후 우아한 미소인 채로 소베르비아가 말했다.



“그렇게나 신기했습니까. 제가 겨우 종자에 불과한 레딧츠와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실례이지만, 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그대도 그렇고 리아도, 절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


깊게 내쉬는 한숨과 함께 소베르비아에게서 힘이 빠졌다. 더불어 눈썹도 늘어지더니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제가 잘나긴 했습니다. 눈치는 빠르지, 머리는 비상하기 그지없는 데다 아름답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긴 합니다. 솔직히 말해 저와 비등한 자는 한 번도 보질 못했답니다. 그나마 있다면 방금 본 리아의 짝이라는 찬크에르 씨? 처음엔 이상성욕자인가 의심도 했지만, 그분은 뭔가 다르더군요. 깊이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역시나 대단했다. 본 것만으로 어렴풋이 느끼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그 외에의 건······ 못 들은 걸로 해야겠지요.’


다양한 감탄을 하는 사이 소베르비아의 늘어졌던 눈썹이 매섭게 올라갔다.



“하지만! 나뿐이라느니, 내가 최고다,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할 거 같습니까?! 저도 나름은 제가 뛰어나다고 알고는 있지만······ 그전에! 도대체 얼마나 자기애에 빠져있으면 그딴 정신을 가질 수 있는 거여요?! 전 그 정도로 자기애에 틀어박혀 있는 한심한 자는 아니어요!”

“아, 네······.”


기세에 몰려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머릿속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정리하기 바빴다.


그런 라프리트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베르비아의 투덜거림은 이어졌다.


그녀가 남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그만큼 자신이 편해졌다는 것이겠지만, 이것 또한 알고 있던 소베르비아가 아니었다.


더욱 혼란은 증대되었다.



“라프리트 양도 알고 계시······가 아니라, 오히려 제가 모른다고 여기고 있다는 게 더 나빠요.”

“어, 어떤 걸 말입니까?”

“뭐긴 뭐에요. 여기 있는 레딧츠를 봐요. 레딧츠는 그럭저럭 머리가 좋지만, 저와 비교하면 어린애 수준이죠. 하지만 그는 반대로 제가 엄두도 못 내는 일을 할 수 있죠. 정말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마다 잘하는 분야가 다르다는 거예요. ······무슨 짓을 하든 모두 대처할 자신은 있지만요.”


말대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정도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데―― 소베르비아는 자만도 아니고 정말 능력의 우위를 막론하고 모든 걸 뛰어넘는 것도 모자라 이용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에 그녀―― 알고 있던 소베르비아는 본인이 최고이자 끝이었다.


남을 인정하는 건 고사하고 추켜세워준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반대로 소베르비아가 저런 말을 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리아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도 100% 본심은 아니고 공국에 이용 가치가 있기에 그리 행동하는 줄로만 알았건만······ 물론 딴 뜻이 아예 없다곤 못하겠으나, 생각하던 것보다는 훨씬 본심이었을 수도 있어 보인다.



“······라프리트 양. 한 가지 충고하자면 자그마한 부분이라도 당신이 인정한 사람이라면 하등 어리석은 의견처럼 보이더라도 가볍게 무시하지 마세요. 본인이 인정한 거예요. 귀 기울일 가치는 충분해요.”


한참 뒤떨어지는 자의 의견이라도 그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아마 그러한 뜻이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온, 의외의 이야기에 라프리트는 눈과 귀가 정상인지 심히 의심스럽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 알겠노라고 했다.



“저기요······?? 아무리 저라도 그렇게 못 쓸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면 조금 충격입니다만.”


정말, 이 사람에게서는 무엇하나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라프리트는 시치미를 뗐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루비아 님을 대단하신 분이라 감탄했습니다만.”

“――좋아요, 그렇다고 해두죠. 단지 제 의견일 뿐이니 말이죠. 특히나 비밀이 많으신 라프리트 양이시니 언동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이해는 가요.”

“전 평범한 정도의 비밀만――”

“――일신성단.”


말이 잘렸다.



“누구나가 있다고는 확신하지만, 그 누구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베일에 싸인 특활공작부대―― 저의 레딧츠는 꽤나 정보를 잘 수집한답니다. 그런데 일신성단에 대해서만큼은 부대의 특성 하나 알아낼 수 없었죠. 그에 비해 라프리트양은 부대의 구성부터 상당히 자세하시네요.”

“벨루디스의 정보국 사람들은 뛰어나거든요.”


평정을 가장하며 하는 말에도 소베르비아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뇨. 벨루디스의 반응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모르고 있는 게 확실해요. 그렇잖아요. 나라까지 팔아치우는 놈들이 알았다면 지금은 저자세로 나오는 신관들을 멋모르고 더욱 압박하려 들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모르는 게 다행이죠. 만약 그랬다면······”

“저와 루비아님이 느긋이 차를 마실 수도 없었겠죠.”

“그렇죠.”

“대단하신 통찰입니다.”

“놀리는 건가요? 일신성단에 대한 정보인데, 이 정돈 해충과 결탁하고 있는 바보들도 알 수 있어요. 라프리트 양도 제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자 하신 거겠죠. 믿음이 안 갈 수도 있겠지만, 전 정말로 도와드리려고 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교단에 한 방 먹이기 위해서 말입니까?”

“네. 별로 없는 기회이니까요.”


솔직하기만 한 대답에 라프리트는 잠시 웃었다. 그다지 예의에 들어맞지 않음에도 소베르비아는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같이 미소를 지었다.


여태 경계하고 꺼리던 게 무색해질 만큼 호감······이 생겨났다.


이런 자신의 마음에 놀란 라프리트는 서둘러 불식시키려 최대한 올라오는 감정을 내리누르고는 물었다.



“가망이 있다고 보십니까?”

“······진솔하게 말씀드리자면, 모르겠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직 벨루디스 폐하나, 이 나라와 운명을 함께할 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판단할 재료들이 부족하거든요. 다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가능성이 크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다른 나라들이 700여 년 전에 겪었던 일을 이곳은 이제 겪는 거니까요.”


기반을 다지는 중이라 그만큼 대처할 가망이 크다는 거다.


거기에 리카드와······ 리아들이 있다.


이 나라의 백성도 아닌 친구가 말려드는 건 끔찍하게도 싫지만 그럴 생각이, 그럴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베르다드에 당도한 리아는 말려든다.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무언가가 많이 바뀌어있지만, 그건 분명할 거다.


리아의 성격상으로도 교단의 짓을 모른 척하지 않겠지. 실제로 리아는 상황을 알고 도움의 손을 내밀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로 인한 결과는 다양했지만······


어찌 됐든 결국 리아는 이번에도 이 나라, 벨루디스를 위해 힘을 보태준다는 거다.


‘뭐가 친구라는 건가요. 이래저래 핑계만 늘어놓고 나도 리아양을 이용할 뿐이지 않나요.’


정말 리아가 걱정된다면 당장 이 나라를 떠나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슬퍼할 일 따윈 없을 거다.


그런데 미래를 알게 되고 나서부터 그리 보고 싶었던 리아였다. 벌써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 떠나라고 떠날 리아도 아니었다.


‘비겁하네······’


비관으로 물들 때였다.



“이기면 그만이에요.”


굳세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의와 명분은 이쪽에 있어요. 유치하지만 이쪽이 정의라는 거죠. 이 내가 함께하는 거니 이기는 건 당연한 거고요. 그리고······ 라프리트 양에게는 미안하지만, 말려들었다 아니다를 결정하는 건 그대가 아니에요. 그건 리아의 문제에요.”


알고 있다. 왜 모르겠는가.


승산도 이미 초월자인 리아가 합류한다면 무력적으로는 차고도 넘쳤다. 신성을 대동한 무력 시위에도 상당히 자유로워진다. 승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다.


하지만 그 전제는 쉴 틈도 없이 벨루디스 전역을 돌아다녀야 하는 리아의 혹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거기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참혹한 광경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어떡한단 말인가.



“라프리트 양은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실 건가요?”


그 말에 라프리트는 어느새 내려간 고개를 멍하니 들었다.



“거기다가 찬크에르, 그가 여러모로 리아가 눈길을 끈다는 걸 몰랐을 리는 없어 보여요. 그런데도 가만히 내버려 뒀다는 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길 바란 거겠지요. 비록 그것이 상처로 이어질지라도 말이죠.”


라프리트도 곁에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찬크에르의 저의가 궁금해 잠시 리아가 차를 준비한다며 부엌으로 떠난 사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대답은······ 그 자리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소베르비아의 말과 일치했다.


찬크에르의 바람은 오직 리아가 바라는 것을 하는 것뿐으로―― 상처 입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리아가 선택한 것이라면 응원하고 지지할 뿐이라고 했다.


방치한다고도 생각되는 말에 울컥했지만, 리아를 바라보는 애정 가득한 눈빛과 따스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따질 맘은 전혀 들지 않았었다.


물론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소베르비아는 공감할 수 있나 보다.


흐릿하기만 했던 초점이 돌아왔다.



“당신도 벨루디스가 이 상황임에도 저에게 딴지를 걸 정도이시지 않나요. 많은 대비를 해놓으셨겠죠. 그때의 강단은 어디 갔나요?”


눈앞에는―― 소베르비아가 있었다.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있는 그녀였지만, 이제야 처음으로 똑바로 소베르비아를 바라본 듯했다.


‘······공국의 빛이라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네요.’


정말 과장도 없이 빛나는 듯한 사람이었다. 전해 받은 수많은 미래에서조차 단 한 번도 이리 느껴본 적이 없건만, 지금이라면 솔직히 인정할 수 있었다.


왜 소베르비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 누구도 떠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녀와 함께했는지 조금은······ 이해됐다.


‘리아 양이 마음을 연 것도 이 때문인가요······’


그렇다고 해도 순순히 신뢰하는 것도 왠지 화가 났다.


――진작에 이만큼의 반만이라도 괜찮은 사람이었더라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트집 잡는다는 건 알고 있으나 지고만 있기에는 분하다. 라프리트는 도발하는 소베르비아의 말에 맞받아쳐 같이 도발했다.



“루비아 님이야말로, 리아 양을 대할 때의 품위 없는 모습은 어디 갔습니까. 새삼 다시 촌극을 벌이는 것도 별로 우아하진 않네요.”


정도를 넘어서는 말이었음에도 소베르비아는 얼굴을 찡그리긴커녕, 리아와 있을 때의 틀어진 미소를 보였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재수 없지만 봐줄게. 귀여운 투정에 일일이 화내서야 어른스럽지 못하잖아? 후후······ 동생은 없지만,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네. 라프리트, 너도 리아와 함께 내 것이 되는 게 어때? 마음껏 귀여워해 줄게.”

“소름 끼치니 거절하도록 하죠.”

“······암만 그래도 너무 말이 심하지 않아?”

“그런 말씀을 하시는 루비아 님이 잘못한 거예요. 그리고 본인을 잘 돌이켜보세요. 능글능글한 귀족은 저리 가라 할 사람에게 그런 권유를 받는다면 당연히 까무러치는 걸 넘어서 공포일 뿐이에요.”

“진짜 너무하네.”

“너무하긴요. 자업자득이에요. 평소 행실의 결과죠.”

“············정말로? 내가 그 정도라고······?”

“주, 주인님.”


소베르비아라면 이쪽이 어떻게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싫을 정도로 상세히 알 터였다.


그렇게 댕, 충격받은 표정으로 소베르비아는 중얼거렸고, 레딧츠는 허둥지둥 그런 그녀를 달래보려 했다.


실로 성공적인 반격이다.


만족스러운 라프리트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그럼 전 실례하도록 할게요. 루비아 님은 다음 수업이 있으시죠? 자세한 건 리아 양이 함께 있을 때 하도록 할게요.”


아직 난 그런 글러 먹은 녀석이 아니란 부정과 정말로 내가 그렇게 보이느냐는 자기반성 중인 소베르비아를 뒤로 하고 라프리트는 몸을 돌렸다.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하였지만, 레딧츠가 전해줄 거다.


그다지 보이지 않는 과격한 언행과 행동에 안네도 당황해하며 인사하고는 따라왔지만······ 뭐어, 나쁘지 않다. 통쾌하기만 하다.


어느 날에 잔뜩 괴롭혀왔으니 이 정도는 괜찮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라프리트는 힐끔 소베르비아를 쳐다봤다.


‘아직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이건 빚으로 쳐두겠어요. 언젠간 반드시 갚도록 하죠.’


피식 나온 웃음과 함께 라프리트는 뒤돌아보는 일 없이 곧장 나아갔다.


작가의말

오늘의 2번째 화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히로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2 80 22.07.01 54 0 28쪽
81 79 22.07.01 51 1 40쪽
80 78 22.07.01 58 0 39쪽
79 77 22.06.30 58 0 39쪽
78 76 22.06.30 55 0 14쪽
77 75 22.06.30 63 0 27쪽
76 74 22.06.30 66 1 37쪽
75 73 22.06.30 58 0 19쪽
74 72 22.06.30 65 0 39쪽
73 71 22.06.30 68 1 38쪽
72 70 22.06.30 82 0 40쪽
71 69 22.06.29 72 1 40쪽
70 68 22.06.29 72 0 24쪽
69 67 22.06.29 112 1 36쪽
68 66 22.06.29 80 0 33쪽
» 65 22.06.29 82 0 21쪽
66 64 22.06.29 81 0 38쪽
65 63 22.06.29 84 0 38쪽
64 62 22.06.29 78 2 39쪽
63 61 22.06.28 77 1 23쪽
62 60 22.06.27 84 1 33쪽
61 59 22.06.27 85 0 25쪽
60 58 22.06.27 87 0 26쪽
59 57 22.06.26 99 0 35쪽
58 56 22.06.25 93 1 12쪽
57 55 22.06.25 113 1 18쪽
56 54 22.06.25 103 1 33쪽
55 53 22.06.23 102 1 26쪽
54 52 22.06.23 112 0 42쪽
53 51 22.06.23 105 0 3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