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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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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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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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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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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DUMMY

수업을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소베르비아는 소파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봤다.



“후후후······”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곁에서 차를 따라주는 레딧츠가 물었다.



“그래보였어?”

“예. 이스피리아 님과 점심 이후로 그러신 듯한데······”

“뭐, 그렇긴 해.”


레딧츠는 학원 내에서 움직일 때는 따라오지 않는다.


호위로서 같이 온 것치고는 부적절했지만, 그는 벨루디스에 있는 정보원을 통솔하는 일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소베르비아의 자잘한 심부름도 하고 있으니 상당히 다망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일이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학원 내에서는 따라다니지 않고, 이처럼 방과 후에 의견을 주고 받고 있었다.


‘뭐, 그것도 조금 있으면 끝이지만.’



“아~ 정말······ 정말 예상 못 한 일들만 일어나네. 베르다드는 그저 나라 간 정세나 보려 심심풀이로 온 건데 말이야.”


온갖 계층의 신분의 사람들이 모이는 베르다드는 한눈에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사교의 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서민들은 그 나라가 어떤 상태인지를 대변해주는 좋은 지시등이었다.


위에 있는 자들이야 원하는 건 쉽게 쉽게 얻을 테지만, 제일 밑에 있는 서민들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만족할 만한 것들이 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서민들의 행색이나 말투에서 나라의 교육이나 발전, 현재 그 나라의 치세 상황까지도 모두 엿볼 수 있다.


반대로 귀족들에게선 파벌이 나뉜 모습과 우위로 대강의 정계의 흐름을 살필 수 있었다. 권력을 지닌 이들이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물론 겨우 사람들을 살펴본 것만으론 이 모든 걸 알아낼 순 없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하지만 그녀―― 소베르비아는 가능했다.


특히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기에 이곳은 소베르비아에게는 정보의 보고인 동시에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부러 다른 나라에서 찾아와서 자신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이 어찌 재미가 없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것도 벌써 질려가던 참이었다. 알만한 건 거의 다 알았고 예상하던 것들도 전부 들어맞기만 했다.


그러던 때에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예 예상하지도 못했고, 예상과는 전혀 반대의 일이.



“재밌어······”


예상이 틀린다는―― 많이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소베르비아는 웃었다. 하지만 그런 때에 말하는 레딧츠의 이야기에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그렇군요. 이스피리아 님이 결혼하셨을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만. 역시 주인님 말대로 남자를 준비하거나 하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비꼬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자신이라도 저런 애라고 부를 만한 이스피리아가 결혼했다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저 외견을 가지고 정치나 외부적 이유와는 거리가 먼 평민이,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쏘냐.


언뜻 소시민들은 빨리 결혼한다는 걸 듣기도 했지만 저리 빠르지도 않거니와, 아무것도 몰라 보이는 이스피리아를 볼 때 그런 건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잠시 어색한 시간을 보냈었다.


한참 어린아이로 여겼던 사람이 사실은 자신보다 까마득한 어른이었다는 사실에······


덕분에 비슷한 마음이 된 라프리트와 조금 친밀해진 듯하여 연줄 만들기의 일환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누군지 모를―― 어린이 외견을 좋아하는 듯한 그녀의 짝을 속으로 욕하곤 소베르비아는 존경 어린 시선을 내비치는 레딧츠를 쳐다봤다.



“벼, 별거 아니야.”


물론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다.



“오오.”

“······.”


‘기억하고나 있을까. 나는 결혼했다는 이유로 남자를 준비하지 말라고 한 게 아니었는데······’


레딧츠는 멍청하진 않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좋게 봐준다.


기분 나쁜 건 아닌데······ 조금 부담스럽다.


존경 어린 시선이 더욱 강해지는 걸 느낀 소베르비아는 서둘러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오늘 어떻게 봤어? 네가 접근하기가 힘들다고 해서 일부러 자리까지 만들어놨는데 모른다곤 하지 않겠지?”

“능력이 부족해 면목이 없사옵니다. 하지만 제대로 이스피리아 님의 취향을 봐뒀습니다. 주인님께선?”


즐거웠던 그 순간을 떠올리니 나올 것만 같은 웃음을 참고 소베르비아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다는 건 숨길 수 없어 목소리에 그대로 드러났다.



“나도 제대로 봐뒀지. 먼저 말해보자면······ 가장 의외는 라프리트랄까? 난 처음에 그녀를 우물쭈물하는 애 정도로 봤었어. 중요한 일에는 한 발 빼는 그런? 타이밍이 나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야. 그런 일들은 대부분 본능적인 심리가 선택하는 것인데―― 어려운 이야기는 넘어가고. 어쨌든 그녀가 이스피리아랑 친구라 말하더라도 정말 그리 아낄 거라곤 상상치 못했지.”


이야기를 듣고도 레딧츠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라프리트―― 그녀는 이 나라, 벨루디스보다도 이스피리아를 더 아낀다는 소리야.”

“흠······ 주인님께 한소리를 한 것 때문입니까?”

“정확히 나를 콕 집어서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문제는 일어날 만하잖아?”

“그렇긴 하겠군요. 트집 잡을 정도는 아니나, 잡아끌면 어느 정도는 문제로 삼을 순 있겠지요.”

“그래. 후작 가의 사람이 나라보다도 친구를 우선한 거야. 후후······ 정말 예상하지 못했어. 조금이라도 더 이스피리아의 능력을 알아보려 했는데 말이야. 앞으론 떠보는 짓도 못 하겠어. 배짱 좋은 모습에 조금 다르게 봤다니까. 음? 어쩌면 배짱만이 아닌 걸 까나······ 뭔가 있는 걸려나? 그게 뭘까······?”


즐거워 보이는 소베르비아의 흐름을 끊긴 싫었지만, 할 이야기가 제법 있었기에 레딧츠는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없으십니까?”

“아, 그렇지. 음······ 또 다른 건, 이스피리아랄까······”

“그분이 어떻기에?”

“넌 걔가 어떻게 보였어?”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레딧츠는 이스피리아를 보며 느꼈던 점을 솔직히 말했다.



“순진한······ 다른 말로 하자면 나이는 넘어가더라도 외견에 어울릴 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정도로 봤습니다만.”

“그래! 나도 처음엔 그렇게 봤단 말이지.”

“그런데 아니었습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으려나······ 만약에 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는 아이가 있다 쳐. 그 애한테 어른이 혼내면 어떻게 반응할 거라 보여?”

“풀이 죽거나, 분을 못 참는다든가 하려나요.”

“아니면 얌전히 받아들이는 정도겠지. 뭐, 거기까진 어떻게든 그럴 수 있다 칠 수 있는데, 거기서 계약했잖아.”


그것이 어떻다는 건가, 라는 시선으로 레딧츠가 쳐다보았다.



“답답하네. 진짜 단순한 꼬마라면 계약조건의 수정이라든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하. 그렇군요.”


알겠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소베르비아의 눈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숨을 쉰 소베르비아는 추가로 설명해줬다.



“손익 계산을 정확히 할 수 있으니 수금 날을 바꾼 거잖아.”

“생각보다 머리가 좋으셨군요.”

“하아······ 그럴 줄 알았어.”

“무언가 더 있습니까?”

“그건 표면적으로 봤을 때야.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잖아. 애초에 저런 말이 왜 나왔을 거 같아? 사람을 의심하기에―― 필므를 아직 신용할 수 없으니 그런 거잖아. 그저 순진해 빠진 애는 아니라는 거지.”

“그, 그럼. 평소 보이시는 맹한 모습은 연기인 겁니까?”

“······아니. 그런 거 같진 않은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나한테 애칭으로 불리는 것도 거절한 걸 보면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는 거 같으면서도, 어딘가 쉽게 휩쓸려 다닐 거 같기도 하단 말이지. 주제 파악 못 하고 까부는 느낌도 아니고. 종잡을 수 없달까?”


소베르비아가 이리 말하는 자는 여태 없었다. 놀라움에 레딧츠는 눈을 크게 떴다.



“덧붙이자면 학원장을 수령인으로 지정한 건, 인맥을 과시함으로써 돈을 절대 떼먹지 못하게 하려는 것과 학원으로 가져와야 하니 수금 날을 못 맞춘다는 핑계를 제거하기 위함이겠지. 필므도 학원에 다니니까 말이야.”

“단순한······ 그런 분은 아니시군요.”

“그래. 절대 만만한 사람은―― 아니, 영~ 잘 알 수 없는 사람이지.”

“과연······ 그러한 분이라면 주인님이라도 예상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완전 반대였지. 그저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래서 더 재밌지만.”


말을 마친 소베르비아는 잠시 이 기분을 만끽하며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레딧츠가 조합한 공국 산의 블렌디드 찻잎의 깊고 진한 향을 음미하며 한 모금 마셨다.


레딧츠, 그의 출신으로 생각하면 깜짝 놀랄 만큼 훌륭한 차였다. 팔면 꽤 인기를 끌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물론 그럴 생각 따윈 전혀 없다. 일반 서민들이 자신과 똑같은 걸 마신다고 생각하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이번에도 여전히 적절히 잘 우려낸 맛을 느끼며 그녀는 레딧츠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네 차례야.”

“음? 필므 님은?”

“그건 그저 돈 냄새를 잘 맡고, 조금 자기 처신을 잘하는 놈일 뿐이야. 거기다 여기저기 뭔가가 좀 모자라고. 신경 쓸 가치도 없어. ······아닌가? 위험한 일에 돈 좀 쥐여줘서 버리는 패 정도론 쓸 수 있으려나? 나름 머리 회전이 되고 입도 무거우니.”


수긍한 레딧츠는 이번엔 자신이 안 것들을 말했다.



“헤에~ 채식만 한다라. 나도 보고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그렇군.”


확실히 이스피리아는 가져온 도시락을 다 먹고, 준비해놓은 음식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막상 먹으려고 하진 않았었다.


사양하는 낌새는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인상을 썼던 걸 생각해보면 그냥 꺼리는 것 같았다.


특이한 그런 식습관 때문에 못 큰 게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깊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신체의 성장이란 제각각이니.



“일부러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다양하게 음식들을 준비했는데 잘했네. 다음에 초대할 땐 그 부분은 잘 신경 써줘.”


레딧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법인지 뭔지 모르겠다고?”

“예.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도 않았고, 뒤에 있던 사용인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마법인지 아티팩트를 쓴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러면······ 역시 원래의 진짜 마법인 걸까?”

“죄송합니다. 본 적이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겠지. 아버님도 말씀해주질 않으니. 조금만 생각해보면 원형이 존재한다는 건 확실한데 말이야.”


마수나 마물이 마법을 쓰는 모습만 봐도 확실했다.


몬스터가 발동어를 외치며 마법을 쓰는가?


그렇진 않다.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몬스터는 그냥 빠르게 무영창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그건 분명히 사람이 사용하는 마법과는 체계가 다른 마법이었다. 그뿐이랴,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똑같은 마법을 쓰는 건 드물었다.


간혹 비슷한 마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같은 마법이라 보긴 힘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 자유자재로 마법을 변형하는 폭넓은 활용도를 볼 때, 분명 지금 자신들이 사용하는 마법보단 진보된 것이었다.


단순한 몬스터가 문명을 이룩하고 사는 사람들보다도 진보되어 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교과서에도 이러한 특성이 쓰여있고, 직접 체험할 일도 있으니 꼬마 아이까지도 다 아는 이 일을 아무도 의아하게 생각하질 않는다. 그저 몬스터니까 다르다 정도로만 여길 뿐이다.


말없이 생각에 빠져든 소베르비아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생각해봐야 쓸모없겠지. 알 수도 없고. 그 외엔?”

“주인님의 말씀대로 만약 이스피리아 님이 ‘고대 마법’을 사용하신다 치면 한번은커녕, 전혀 가망이 없습니다. 기습도······ 전 길드 마스터를 이길 정도의 근접 전투 능력까지 갖추고 계신다면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 그런데 그 소문은 진짜야? 그리모르라면 꽤 유명했던 모험가잖아. 날뛰는 근육 돼지인가 뭔가로. 근데 겨우 꼬맹이한테 진단 말이야? 사실은 명성과 달리 약했다거나?”

“그건 아닐 겁니다. 제가 보기에도 명성에 뒤지진 않을 정도의 실력으로 보입니다. 그저 이스피리아 님이 강하셨을 테지요. 소문도 목격자가 워낙 많아 오히려 뒤죽박죽됐을 정도입니다.”

“그게 안 믿겨서 그래. 그 근육이 무색하게 질질 짠다는 게 상상이나 돼? 그렇게 될 정도로 이스피리아가 쥐어팼다는 것도. 그거 때문에 수업에서 다들 그리모르를 보면 킥킥거리며 웃는다고. 대놓고 그러진 않지만. 더불어 이스피리아에게도 이상한 호감을 보이고 말이야.”

“으음······ 추가로 일반반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소문도 최대한 추리면 ‘검으로 그리모르와 대등하게 싸웠다.’ 정도가 진실로 보입니다만.”

“뭐라고 해야 하나······ 굉장하네? 정말 저런 사람이 어디에서 뚝 떨어져 나타났을까. 나도 격투술 쪽에 같이 수업을 들었어야 했나? 하지만 전혀 체면도 살지 않고, 하기도 싫은데······”

“······.”

“응?”


이상했다. 자신이 아는 레딧츠라면 “그럼 어디에서 왔는지 조사해볼까요?”라고 말할 차례였다.


의구심이 든 소베르비아는 물었다.



“왜 그래. 뭐가 있어?”

“아닙니다······. 그분에 대해선 이게 끝입니다.”

“흐음? 그러면 다음은 그 남자나 가족이라는 아이는?”

“아이리스 님은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또래들보단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아마 여기 오시기 전에 상당한 실력자에게 수련을 받은 듯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에 교육용이 아닌, 실전용의 무술을 익혀오신 듯 보입니다. 그 외엔 같이 수업을 듣는 여성분들에게 호감을 받고 있다고 전해 들은 정도입니다.”

“반반하게 생겼긴 하지만, 그건 또 왜?”

“말하기를 일반반에서는 보기 힘든 신사적임과 또래답지 않은, 빠져들 듯한 깊고 어른스러운 눈빛이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꼬맹이들이. 참나, 됐고. 그 남자는?”


레딧츠는 멈칫하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진짜 왜 그래?”

“면목 없습니다.”


대뜸 레딧츠는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 모습에 소베르비아는 놀랐다기보단 황당하기만 했다.



“정말 면목 없습니다, 주인님.”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그 남자 사용인에게 제가 살펴보던 것을 들킨 듯합니다.”

“에······?”


최근에 한 번 있었지만, 소베르비아에게선 정말 보기 힘든 얼빠진 표정이 나왔다. 자신의 방이기도 하지만 평소라면 부채로 가렸을 상황인데도 지금은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딧츠는 고해성사하듯 술술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고개도 들고. 레딧츠, 네가 들켰다고? 아무 정보도 못 얻을 만큼 멀찌감치 떨어졌다고 했으면서?”

“······예. 최대한 조심해서 확실히 경계했음에도 들켰습니다. 주인님의 발목을 잡아 정말 죄송합니다!”

“화, 확실한 거야?”

“경고의 의미 같긴 했지만······ 저를 바라보는 한순간에 살기를 띠셨습니다.”

“난 아무것도 못 느꼈는――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아, 어떡하지?!”


보통은 자신의 종자와 의견을 주고받는 일 따윈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소베르비아는 자신이 완벽하다거나, 본인 이상의 능력을 갖춘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망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뛰어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난다. 저 리카드나 이스피리아 일행들처럼.


그래서 순순히 레딧츠가 발견한 점을 듣고 정보의 빈칸을 채울 수 있는 거였다.


물론 자신이 인정한 상대에 한해서지만, 소베르비아는 그러한 정보들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 자신은 전혀 모른 일을 레딧츠는 알려주지 않았는가.


이상 사태가 발생한 게 한 장본인이 레딧츠라는 건 크게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어차피 그가 없었어도 다른 누군갈 보낼 거고, 결국 들키는 수순이다. 바뀌는 건 없다.


하지만 안 것까진 좋았지만······ 막막한 건 매한가지였다.


바란 건 최소 어느 나라에도 힘을 보태지 않는 거였다. 기왕이면 이스피리아 일행이 많은 걸 도와주진 않아도 졸업 이후에 공국에서 지내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었지만.


가장 최고는 이스피리아 일행들이 아예 공국에 속해 힘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힘들 거라고 느끼고 있었다. 어렴풋이 자신을 꺼리는 이스피리아의 행동이 느껴졌으니까.


그래도 점차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다.


가장 최악인―― 그녀들과 척을 지진 않았으니까······


아티팩트도 만들 수 있으며, 그 리카드보다도 거의 모든 방면으로 뛰어나다고 예상되는 이스피리아가 원한을 품고 타국에 속해서 공국을 압박한다? 그리고 그녀 못지않다는 남자까지 함께?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하기만 했다.


그나마 벨루디스에 속하면 리카드에 더해져 자원들을 싸게 넘기라는 등의 압박을 가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게 되겠지만, 중립을 지키는 벨루디스라면 적어도 반대로 공국에 압력을 가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다.


유일하게 그 점만이 안심이 된다.


뭘 이 정도로 호들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베르비아는 알고 있다. 사람은 한 번 박힌 미운털을 빼내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앞으론 어떤 짓을 하더라도 달갑지 않게 보인다는 것이다. 자기 뒤를 캐내려 했다는 데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조심하면 될 문제도 아니었다. 더 싫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어지간해서는 ‘좋다’로 바뀔 리도 없다.


만약 자신이라면 그딴 짓을 하고도 뻔뻔하게 다가오는 상대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는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 거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아직 시간이 있다는 건가.’


오해는······ 아니지만, 이런 일은 되도록 시간을 끌지 않는 게 중요했다.


소베르비아는 아직 무릎꿇고 있는 레딧츠에게 말했다.



“그건 그만하고 어서 방문 소식을 전하고 와! 빨리!!”


그녀의 호령에 레딧츠는 신속하게 일어나 다른 사용인을 시켜 이스피리아의 방으로 보냈다. 심적으론 자신의 실수이기에 직접 가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리아들의 경계심을 증폭시키기만 할 뿐이다.


확실히 전달할 내용을 숙지했는지 확인하고 배웅까지 한 레딧츠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 소베르비아의 곁에 대기했다.


소베르비아는 그런 그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리하기 바빴다.











“어머니, 언제 또 이런 계약을······”


수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아이리스는 평소보다도 격렬히 반겨주는 리아에게 한동안 곤욕을 겪었다.


그러고는 졸졸 쫓아다니며 기대하는 눈빛으로 있는 리아를 보곤 또 뭔가 있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물어보자마자 계약서를 들이미는 것이었다.



“흐흥~ 아까 점심 먹을 때 했지.”

“하······”


득의양양하면서도 어딘가 뿌듯해 보이는 리아를 아이리스는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물론 그럴만했다.


리아는 그저 돈도 벌어오는―― 능력 있는 엄마로서의 위엄을 자식에게 뽐내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걸 이해하라는 건 가혹하기만 한 처사다.



“응? 그런데 왜 수령인이 학원장님이에요? 기껏 어머니가 만드셨는데.”

“그건 나도 궁금했어, 리아. 왜 리카드 따위에게······”


둘의 궁금하다는 표정에 리아는 어색하게 볼을 긁적거렸다.



“아~ 그게, 우리의 입학금은 물론 생활비도 리카드씨가 주시잖아요. 그걸 변제······라고 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돌려주기도 할 겸해서 여러모로 신경 써주신 답례를 하고 싶어서요. 달로 바꾼 것도 년 단위면 계산이 복잡해서요. 바로바로 하면 편하기도 하고, 매달 월급이 생기는 느낌이니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잖아요?”


이 말에 에르는 감격에 겨운 눈을 했다.


아니······ 어쩐지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듯 보였다.



“겨우 그깟 일 가지고 리아의 첫 성과를 쉽사리 넘겨주다니······ 역시 내 아내야. 배려부터 이거저거 조건을 거는 좀팽이 같은 리카드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어.”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아이리스의 눈은 매우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하고 이거나 얼른 넣어둬. 잘 보관해야 할 거 아니야.”


한숨을 쉬며 말하는 아이리스의 말에 에르는 정신을 차리고 계약서를 받아 훼손되지 않게 여러 번 마법을 걸고 [차원수납]에 고이 모셔 넣었다.


본심은 리카드와는 상호 주고받는 것이 있으니 전~혀 줄 필요가 없고, 오히려 감추던 일과 위험성으로 볼 땐 더 받아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모처럼 리아가 해낸 일이다. 마음엔 안 들지만, 허투루 다룰 순 없었다.


기분 좋게 에르가 나트알에서 가지고 온 허브로 차를 타러 갔다.


그 틈에 리아는 여전히 눈빛이 흐린 아이리스에게 바짝 들러붙었다.



“아이리스는 이제 뭐 할 거니?”

“어······ 아. 글쎄요.”


아이리스는 창밖을 쳐다봤다.



“아직 날도 밝으니 훈련이나 더 할까······ 루데릭에게 뒤처질 순 없으니.”

“오. 좋은 마음가짐이구나. 그런데 친구와는······ 놀러 가지 않니?”

“친구요?”

“그래. 여러 여자아이와 친해졌다지 않았니.”

“놀러 갈 정도로 친해지진 않았어요.”

“어라. 같이 차도 마시고 그랬었지?”

“그 정도는 인사 같은 거예요. 별로 특별하진 않아요.”

“그, 그렇구나. 요즘 아이들은 정말 고상하네······. 어, 다른! 남자친구들은 있니?”

“음······ 제가 어려운지, 남자애들은 선뜻 다가오질 않더라구요. 말을 걸어도 조금 피하는 느낌이라.”

“무, 뭣?!”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아이를 어찌······


왕따, 혹은 은따를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리아의 표정은 심각해져만 갔다.



“어머니, 그냥 가까이하기 어렵다는 느낌이에요. 딱히 따돌린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요즘 들어 먼저 말을 거는 애들도 이따금 있어요.”


생각이 들킨 리아는 움찔했다.



“저, 정말이지?”

“네. 그럼요.”

“다행이네······ 아! 혹시 마음에 든 아이라도 있니? 요번에 같이 차를 마신 아이 중에라도.”

“어······ 전부 친절하고 마음에 드는데요?”

“저, 전부?!”


벼락을 맞은 듯 충격받은 표정이 된 리아는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전부 마음에 들 수도 있지. 남자는 꿈이 클수록 성장한다고 하잖아. 아니······ 그래도 너무 헤픈 거 아닌지 몰라. 이러다 어쩌면 카, 카사노바가―― 아니! 내 아들이 그럴 리가 없어. 만약 그러더라도 내가 바로잡으면 돼! 마음이 아프지만, 어머니에게 직접 몸으로 전수받은 그거라면 충분할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리아.


그런 어머니를 곤혹스럽게 바라보던 아이리스에게 구명줄이 내려오듯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왔나 봐요. 아아, 제가 나가 볼게요. 어머니는 그대로 계세요.”


도망치듯 선수를 쳐 문으로 다가간 아이리스는 문을 열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 입니다.


좋은 하루들 되셨는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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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히로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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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80 22.07.01 54 0 28쪽
81 79 22.07.01 51 1 40쪽
80 78 22.07.01 58 0 39쪽
79 77 22.06.30 59 0 39쪽
78 76 22.06.30 55 0 14쪽
77 75 22.06.30 63 0 27쪽
76 74 22.06.30 66 1 37쪽
75 73 22.06.30 59 0 19쪽
74 72 22.06.30 66 0 39쪽
73 71 22.06.30 69 1 38쪽
72 70 22.06.30 82 0 40쪽
71 69 22.06.29 72 1 40쪽
70 68 22.06.29 73 0 24쪽
69 67 22.06.29 112 1 36쪽
68 66 22.06.29 81 0 33쪽
67 65 22.06.29 82 0 21쪽
66 64 22.06.29 81 0 38쪽
65 63 22.06.29 85 0 38쪽
64 62 22.06.29 79 2 39쪽
» 61 22.06.28 78 1 23쪽
62 60 22.06.27 84 1 33쪽
61 59 22.06.27 86 0 25쪽
60 58 22.06.27 87 0 26쪽
59 57 22.06.26 100 0 35쪽
58 56 22.06.25 94 1 12쪽
57 55 22.06.25 114 1 18쪽
56 54 22.06.25 104 1 33쪽
55 53 22.06.23 103 1 26쪽
54 52 22.06.23 112 0 42쪽
53 51 22.06.23 106 0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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