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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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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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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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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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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68

DUMMY

“고마워요, 레온.”

“아니네. 나야말로 도움을 받지 않았나. 갚은 것에 지나지 않아.”

“그건······ 잊어주세요.”


새삼 꽤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사실에 리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바지 끄덩이를 붙잡는다던가, 왕자에게 설교를 나불거렸다든가······ 흑역사에 들어가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 나는 여기서 실례하지.”


살짝 미소 지은 레온하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리아는 정중하게도 방 앞까지 따라와 준 레온하트를 배웅했다. 타이밍이 좋지 못했는지 여태 만나보진 못했지만, 그의 방은 같은 1층에 있다고 한다.


레온하트가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리아는 밑을 내려다봤다.



“페리, 여기가 제 방이에요.”

《그러냐.》


페리는 귀를 후비적 파는 것처럼 늘어지게 대꾸했다.


‘거참, 태평하네.’


이 의욕 없는 고양이가 학원에 무사히 출입할 수 있을까 상당히 불안했으나, 의외로 페리의 출입은 너무 쉬웠다. 학생들도 마차를 끄는 말 같은 걸 키운다고도 하니 동물을 데리고 오는 거 자체는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페리의 덩치를 보고 놀라는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방 앞까지는 왔다.


집이었다면 막강하기 그지없는 필리아를 뛰어넘어야 하는 무시무시한 일이 기다렸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여긴 학원이다. 여기에선 에르와 아이리스라는, 필리아보다는 솔직히 조금 만만한 관문만 돌파하면 된다.


에르는 막연하게 어찌어찌 군말 없이 넘어가 줄 거 같아 낙승처럼 보였지만, 아이리스는 잘 모르겠다. 고양이를 싫어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뭐가 됐든, 같이 사는 가족에게 숨길 수가 없는 일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리아는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에르~ 다녀왔어요······”


걸리는 게 있는 리아의 목소리는 작았고.


잠시 후 방안에서 문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느껴졌다.


‘으응? 라프리트 씨와 루비아 씨도 계시네.’


마력을 탐지하는 김에 시선이 쏠려 잠시 살펴보니 그녀들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어서와, 리아······”

“에, 에르 일단 들어가서 설명할게요.”


에르는 느긋한 고양이의 존재를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는지 다소 눈빛이 예리해졌으나, 손을 잡고 올려다보자 아무 말 않고 안으로 들어가 줬다.


그리고 페리는 누구보다 먼저 들어가 너무나 여유롭게 제집이 될 방을 탐색했다.


――정말 낯짝이 두껍다.


‘앗! 그 전에 따라가야 해. 두 분이 놀라겠다.’


리아는 서둘러 페리의 뒤를 따라 거실로 향했다.



“늦어! 날 기다리게 하고 말이야. 좀 일찍 일찍 다녀······”

“어서 오세요, 리아양. 실례하고 있었―― 꾸꾸?!!”


두 사람―― 아니, 네 사람이 놀랐다.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던 아이리스는 신기한 걸 본 정도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리아는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선 레딧츠와 안네를 보곤 다급하게 외쳤다.



“위험하지 않아요! 이 아이 착해요.”


말을 함과 동시에 리아는 페리의 몸을 눕혀 턱과 배를 쓰다듬었다.


억지로 배를 드러나게 하는 것에 페리가 약간 저항했으나 눈을 부라리니 얌전히 몸을 맡긴 채 그르렁댔다.


역시 처신을 잘하는 고양이다. 그런 주제에 털은 부드럽고 따땃하니 제법 만지는 맛이 좋았다.



“자 봐요. 그냥 덩치 좀 큰 고양이에요.”


아무런 해가 없습니다―― 라는 어필을 열심히 하니 달아올랐던 공기가 사그라들었다.



“괜찮아요, 안네.”

“하, 하지만 아가씨.”

“안네······”


조용히 부르는 말에 안네는 허벅지 안쪽에서 꺼내든 단검을 집어넣고 라프리트의 뒤에서 대기했다. 레딧츠 또한 루비아의 손짓에 한 발짝 뒤로 빠져 사선에서 비켜났다.


모두 상당히 격양된 반응이었는데, 페리의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경계하는 맘은 이해됐다.



“일단 앉아봐. 이야기나 들어보자.”


대표로 나선 루비아의 말을 모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는 루비아가 며칠 전에 멋대로 늘려놨기에 앉을 자리는 부족하지 않았고, 아이리스 옆에 앉으니 페리도 따라와 발밑에 드러눕듯 앉았다. 그리고 방에 들어왔을 때 바로 준비해줬는지 에르가 차를 따라줬다.


감사를 전한 리아는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 하면요.”


리아는 페리와의 만남과 이곳에 오기까지의 경위를 설명했다. 물론······ 비둘기에게 습격받은 일은 당연히 뺐다. 믿기도 힘든 그런 일을 스스로 말하기는 창피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주위의 반응은―― 대체로 어처구니가 없는 듯 보였다.


그 외에도 여러 감정을 품고 있는 게 보이긴 했지만 리아는 눈을 돌렸다.



“진짜 여러모로 대단하네. 근데 그거 먹어도 되는 거야?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무슨 소리예요! 정말 맛있다고요.”


버린다는 말에 페리가 벌떡 일어났다.


리아도 이렇게 맛있는 걸 버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들고 있던 곰보 코코넛을 재빨리 에르에게 넘겨 차원수납에 넣어달라 부탁했다.


에르는 군말 없이 넣어두었고, 무사히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리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페리는 갑자기 에르의 손 위에서 곰보 코코넛이 사라지자 없애버린 줄 알고 성을 냈으나, 보관한 거라고 설명하니 곧 진정하여 다시 드러누워 버렸다.


과민한 이 반응에 루비아는 눈을 끔뻑거렸다.



“진짜 괜찮았나 보네······”

“괜찮은 정도가 아녜요. 최고라고요!”


허응――!


페리가 동의했다. 그런데 페리가 낸 울음소리에 루비아와 안네가 움찔했다. 레딧츠도 약간의 경계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 의외로 라프리트는 담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고양이를 많이 봐왔는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에르나 아이리스는······ 고양이보다 한참 무서운 용이니 제외고.’



“·········그런데 리아? 넌 저―― 페리라고 했지. 쟤의 종이 뭐라고 생각해?”

“고양이요.”


리아의 즉답에 루비아는 침묵했다.



“엣, 아닌가요?!”

“에휴······ 저거의 어딜 봐서 고양이라는 거야?”


리아는 찬찬히 페리를 다시 살펴봤다.


바깥으로 살짝 튀어나온 날카로운 송곳니, 큼지막한 발바닥, 잘 빠진 몸매와 근육, 날렵한 몸놀림······


어딜 어떻게 봐도 조금 큰 고양이다.



“고양인데요?”

“그래그래. 고양이의 먼 친척쯤은 될 수도 있겠다.”


한숨을 푹 쉬며 말하는 루비아는 좀 지쳐 보였다.



“너는 보는 눈이 참 이상한 거 같아. 세상에 슈페리얼 래퍼드를 고양이라고 부르는 애도 다 있고 말이야.”


‘슈페리얼 뭐······?’


뭔가 굉장히 있어 보이는 이름이다. 이 늘어져 있는 페리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리아는 밑에 있는 페리에게 작게 물어봤다.



“페리. 페리는 슈페리얼 래퍼드라는 종이었나요?”

《몰라. 난들 아나. 하지만 괜찮은 울림이다. 너도 부하로써 이 몸의 위대함을 알았다면 앞으로도 맛있는 거를 많이 바치도록 해라.》

“누, 누가 부하에요! 페리야말로 제 애완동물이잖아요.”

《흥. 그건 여기에서 지내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 뻔뻔한 고양이가······!’


나중에 시종일관 드높은 페리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간식을 좀 뺏어 먹도록 하자.


여태까지의 모양새를 본다면 먹는 거에 사족을 못 쓰는 고양이다. 효과는 엄청날 터. 주인에게 대드는 애완동물에게 절망감을 심어줄 테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꽤 음흉한 계획이지만, 페리의 예절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눈물을 머금고 철저히 할 것이다.



“리, 리아 양. 진정하시고. ······흠흠. 페리라고 했죠? 저 아이는 마수종으로 분류되는 종이에요.”


조금 눈치를 주면서 말하는 라프리트의 신호에 리아는 페리에게 신경을 껐다. 루비아라면 들켜도 상관없다 생각되지만.


‘그런데 마수종이라······’


마수종이나 마물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마수와 마물인 종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제 막 교양수업 시간에 배우기 시작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마수종의 대표하는 종으로는 드래곤, 또는 대형 파충류들이 있다고 한다.


마물종은 냄새로 먹잇감을 유혹해서 체액을 빨아먹는다는 이상한 식물과 땅속에 숨어 있다가 덮치는 벌레가 있다 정도만 들었다.


그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일반교양에서는 배우지 않고, 전문적으로 다루는 수업을 따로 들어야 하는 모양이라 아는 게 없었다.



“그러면 이상한데요. 페리는 그냥 평범한 고양이에요. 아직 마수가 아닌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바뀐 거야. 원래는 마수종이라 하면 마수가 될 확률이 높거나, 사람에게 해를 끼칠 동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어. 근데 전쟁으로 인해 그런 걸 일일이 따질 상황이 안되니 전부 마수로 싸잡는 말로 변모 한 거지. 일단 사는 곳부터 지켜야 할 거 아니야? 그러니 일일이 따질 틈은 없었겠지.”

“대신 설명 감사합니다, 루비아 님. 역시 공국은 몬스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네요.”

“공국의 내세울 점이 그거밖에 없으니 이런 거라도 잘 알고 있어야지.”

“저······ 그거 말인데요. 아마 그것도 잘못 와전된 게 아닐까 해요.”


리아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상치 못한 사람의 의견에 다들 신기한 걸 본 듯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다들 마수나 마물을 어떻게 알아보시나요?”

“어······ 생김새나 흉포한 기운 정도로 알아보지?”


의견을 묻는 루비아의 시선에 라프리트도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것으로 확실해졌다. 수업에서 배울 때도 뭔가 다르다고 느꼈던 게 착각이 아니었다.



“네. 비슷하긴 한데 일반 동식물과 몬스터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어요.”

“그게 뭔데?”

“마력의 질이 다르거든요. 루비아 씨가 말한 흉포한 기운 같은 거랑 얼추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요.”


리아는 손을 펼쳐 살짝 마력을 모았다.



“느껴지시죠? 이게 평범한 동물의 마력 정도 될 거예요.”

“······”


루비아나 소베르비아가 일부러 느끼기 쉽게 하려 했다지만, 리아가 모은 마력의 양은 방대했다.


대충 따지자면 리카드라는 세기의 대마법사가 지닌 마력량의 절반 이상.


잘도 그저 손 위에서 머물게 하는 마력조작 능력도 대단했지만, 이런 마력을 한순간에 모아서 방출하는 것에 에르와 아이리스를 제외한 주위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를 알았음에도 리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평범하죠? 하지만 마수는 여기서――”


손 위에 원형처럼 모여있던 마력이 작아졌다.


아니―― 압축한 것이다.



“이렇게 밀도 높게 압축된 마력을 동식물들이 쌓는 순간부터 외형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린 그 모습을 보고 마수나 마물―― 몬스터라고 칭하는 거고요. 그리고 마수종은 처음부터 압축된 마력을 쌓는 종을 가리키는 말일 거예요. 아마도······”


마지막은 유추한 내용이었기에 자신감 없게 말을 흐린 리아는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조용했다.


‘어, 엉뚱한 소리였나?! 그, 근데 할아버지에게는―― 나트알에서는 이렇게 배웠는데?’


조용한 반응에 혼자 좌불안석처럼 있던 리아에게 혼잣말이 들렸다.



“그렇군······ 리아에게서 나온 말 치고는 꽤 일리가 있어. 전체적으로 수준이 떨어졌으니까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커. 뭔가 나누는 기준이 모호했던 건 이 때문일지도. 그래서 대충 모아 뭉뚱그려 부르기 시작했다―― 인가. 학회에서 발표할 만한 내용인걸······”

“루비아씨······ 자, 잘못된 점이 있나요?”

“응? 아니, 별로 이상한 점은 없어.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야기였어, 너 치고는 말이야. 그런데 어디서 배운 거야?”

“고향에서요.”

“아······ 먼 시골이라고 했지. 그러면 그렇지, 리아의 머릿속에서 나올 리가 없지. 잠깐―― 그래서 그런가. 어쩌면 사라진 지식들이······ 오호라, 그렇군.”

“뭐, 뭐 가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네가 왜 이렇게 큰 건지 대충 알았을 뿐이야.”

“좋은 말씀이시죠?”

“글쎄다.”


능글맞은 루비아에게 잠시 성내던 리아는 손바닥을 쳤다.



“아! 그러고 보니. 루비아 씨! 라프리트 씨. 그리고 레딧츠 씨랑 안네 씨도!”


갑자기 사용인들까지 부르자 다들 리아에게 의아한 시선을 보내왔다.



“마력의 압축이요. 사람이고 전혀 다르지 않으니까, 앞으로 모두 연습하시는 게 좋아요. 마력레벨이 300쯤 되면 슬슬 필요하니까요.”

“응?”

“네?”

“흐음.”

“······예?”

“아아, 제어만 되는 선에서 압축한다면 위험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부터 하더라도 마력조작 숙련도에는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잠시만······요.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떨리는 음성으로 라프리트가 물었다.



“뭘요······?”

“숙련도 전이요.”

“어. 제어하면 위험하지 않다, 요?”

“아니요! 더 전이요!”

“힛! 마, 마력레벨 300쯤에 필요하다는 거요?”

“네!! 그거요!”

“그게 왜요······?”

“확인을 위해 물어볼게요. 마력의 압축은 마력레벨 300을 넘기기 위한 과정인 거죠?”

“네. 안 그러면 이미 몸에 마력이 가득 찼는데 더 쌓을 수가 없잖아요.”

“역시나······”


당연한 걸 묻는 라프리트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던 리아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는데······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안네. 표정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마력이 흔들리면서 동요하고 있는 레딧츠. 이제는 이 멤버들 앞에서 잘 꺼내지 않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는 루비아.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나 모두 공통된 감정―― 경악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한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던 리아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설마······ 하는데요. 300 이상 마력레벨을 높이는 방법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거나······”

“잘 알려졌다 하는 수준이 아니에요. 리아 양, 현재 마력레벨이 300 이상인 사람이 누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 학원장님이요?”


입학식장과 학원에 다니면서 간간이 살펴보았던 사람 중에서는 리카드 뿐이었다.



“정확히는 리아 양과 학원장님뿐이죠. 물론――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더 있을 수도 있어요.”


루시아스 교단의 특활공작부대라는 일신성단이라던지······


그런 의미를 담은 말에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말씀드린 거예요. 교단과 대척점에 서는 한 언젠가 그들과 부딪칠 거 같으니 대비하시라고요.”

“하아······. 그럴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리아양은 엄청난 사실을 너무나 쉽게 발설하세요.”

“정말. 비전으로나 전해질 만한 내용을 마구 나불대긴 하지. 위험한 짓인지도 모르고.”

“루비아 씨마저······”


앞으로는 입단속을 하면서 조신하게 지내야 하는 게 아닌가. 리아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했다.



“당연한 거야. 어느 누가 신의 시련이라 불리는 고지를 뛰어넘는 걸 술술 불어대겠냐? 그래도······ 덕분에 레딧츠에게 도움은 되겠어. 일단은 감사할게.”


그 말과 함께 루비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레딧츠 또한 함께 깊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그런 둘에 당황한 리아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말렸다.


하지만 곧 일부러 감사하는 모양새를 내비친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레딧츠는 과연 루비아가 호위라 칭하며 은연중 과시할 만큼――루비아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마력레벨도 299로, 자신과 에르를 제외하면 리카드 다음으로 높았다.


다만 그럼에도 300을 넘기진 못했다.


그런데 설마 방법을 몰라서 위로 올라가지 못한 거라고는······



“역시――랄까, 이미 도달한 만큼 잘 알고 있네. 사실 베르다드에 온 목적 중엔 시련을 뛰어넘는 방법을 알아내려는 목적도 있었거든.”

“학원장님에게요?”

“그래. 시련을 넘었다고 알려진 사람으로는 리카드가 유일하니까. 너도 추가됐긴 했지만. 어찌 됐든 벌써 알게 될 줄이야······ 후후, 넌 진짜 복덩이네. 어때, 섭섭하게 대하진 않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공국으로 올래?”

“조, 조금 더 생각해볼게요. 교단이라든가 학교도 지어야 하니까요.”

“좋아, 천천히 생각해. 공국의 문은 언제든 열려있으니까.”

“네에······”


어색한 대답에 루비아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걸. 네 말대로라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구조적으론 전혀 다를 거 없다는 소리잖아. 인간 우월주의인 해충들이 알면―― 상층부 쪽은 알고 있겠네, 일신성단도 있고 하니. 쯧, 더러운 해충 놈들······ 앞에서는 그따위면서 말이야.”


이야기를 못 따라가겠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루비아는 조금 험악하게 굳혔던 얼굴을 풀었다.



“해충 따위야 아무래도 좋겠지. 어쨌든 넌 저 슈페리얼――”

“페일테스. 페리에요.”

“그래. 저 페리의 마력을 느끼고 마수가 아닌 걸 알고 냉큼 데려왔다는 거지? ······아니, 그래도 마수종인 건 알았을 거 아니야?”

“윽.”

“너······”


루비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뿐만 아니라 라프리트도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왔다.



“귀, 귀여워서 키우고 싶다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페리가 따라오니 어쩔 수 없이······ 그래요! 정말 곤란하지만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온 거예요!”

“네네. 귀여워서 데려왔다고요. 뭐, 얌전히 있으니 나름 귀엽긴 하네. 고양이는 아니지만.”

“아뇨······ 어쩔 수 없어서.”


루비아는 변명하는 리아의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렇지만 잘도 데리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방에서 키울 수도 있게 됐네. 레온하트에게 감사하도록 해.”

“레온, ······핫! 레온하트 전하요?”

“헤에~ 레온?”


루비아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해졌다.


그리고――


뒤에 있던 에르가 살짝 움찔했다.


바람피운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결혼하기 전과 후에도 가끔씩 스쳐 갔던, 에르가 아이리스를 데리고 떠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 리아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에르! 오해하시면 안 돼요. 레온······하트 전하랑은 어쩌다 보니 조금 친해진 것뿐이에요.”


옆에서 “왕자를 어쩌다 친해졌을 뿐인 존재라니, 불경죄다?” 같은 소리도 들려왔지만, 리아의 눈은 에르에게만 고정됐다.


다른 건 전혀 신경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에르가 떠날 수도 있는데 그런 거에 눈길이 갈 리도 없다.


어느새 꽉 잡은 손을 에르가 살포시 감싸주었다. 그러고는 다정하기만 한 미소를 지어주는데――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깃들어있지 않았다.


에르는 아내가 바람피운다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는 것이다.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걸 못 알아볼 리가 없다. 리아의 표정은 급격하게 밝아져 헤실헤실 미소 지었다.


그래서 안심한 나머지 작게 중얼거리는―― “왕자를 족치면 아무리 그래도 학원에 남아있기는 힘든가······” 이 말을 듣지 못했다. 아니, 듣긴 했는데 흘려버렸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오직 아이리스만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에르를 쳐다볼 뿐이었다.



“레온하트 전하가 왜요?”


콧노래라도 부를 것 같은, 완전히 회복한 리아의 목소리는 밝디밝았다.



“······너 진짜 성격 참 편하고 좋겠다야.”

“하하······ 제, 제가 말씀해드릴게요, 리아 양. 학원에 들어오실 때 전하께서 먼저 말씀하셨다고 했죠.”

“네. 페리를 보고 놀랄 수 있으니 먼저 가서 말을 전해―― 아······ 그때 허락을 받아두신 건가요?!”

“그럴 거라고 봐요. 그리고―― 학원장님에게도 알려두셨을 거로 생각해요.”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분명 알려둘 필요성은 있었다. 방으로 돌아오면서 보았던 사람들의 반응이라던가, 페리는 좀 평범한 고양이는 아닌 모양이니.


리카드―― 학원장이라면 교내 전체에 알리기에는 제격이다.


다만 그 모든 일을 레온에게 전부 맡겨버린 모양새라 편치가 않았다.



“제 일인데 전하가 다 처리하게 했네요······”

“전하께선 아마······ 리아 양이 곤란하지 않게끔 하셨을 거예요. 예외라는 상황을 소연하게 넘기려면 아무래도 국빈보다는 왕자라는 이름이 좋잖아요?”


확실히 국빈이라지만 벨루디스 안에서 멋대로 일을 벌인다면 반발이 따라오는 건 불가피할 거다.


더욱이 그 국빈이라는 자가 평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감히 평민이 유서 깊은 벨루디스에서 전통도 무시하고 설치고 다닌다는 이야기들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중에 전하를 만나 뵈면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겠네요.”

“네, 그렇게 하도록 해요.”

“리아, 그렇다고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은 자제하도록 해. 아무리 레온하트가 책임을 지는 걸로 됐지만, 아예 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니까.”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이야기도 얼추 정리되어 리아는 얌전히 이야기를 경청해준――아마도―― 페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잠시 그러고 있으니 편안해진 리아에게서 무심코 불만이 새어 나왔다.



“고양이일 뿐인데 다들 너무 유난스러워요.”

“아직도 고양이 타령이야? 따지자면 범과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데.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거보다 빨리 가자. 네가 늦는 바람에 시간이 별로 없어.”

“어, 약속은 잡지 않았는데요?”

“됐으니까, 가자고. 레딧츠, 먼저 가서 내 이름으로 준비해줘.”

“예.”


레딧츠는 용건도 듣지 않았건만 바로 대답함과 동시에 곧바로 방에서 나갔고, 루비아는 사용인 한 명 대동하지 않은 채 홀로 있게 되었다.


공주인 그녀의 직위 특성상 다른 사람과 만나는 장소에서 이러한 행보는 상당히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의미였기에 리아의 기분은 좋아졌다.


그렇기에 억지로 끄는 루비아를 순순히 따라갔다. 여러 의문 같은 건 머나먼 기억 속 어딘가에 버려졌다.


하지만 그곳에 남아있던 상식인―― 라프리트는 당당할 뿐인 루비아의 행동에 태클을 걸었다.



“루비아 님? 어딜 가시려고 하는 거죠?”

“응? 넌 뭐 하는 거야, 라프리트. 너도 가는 거야. 얼른 따라와.”

“저, 저도요? 도대체 뭘 하러 가시길래.”

“뭐긴 뭐야, 마법 실습장이지. 당연한 걸 뭘 묻고 그래.”

“실습장이요? 갑자기??”

“어. 언제 시간이 빌지 알고. 미리미리 시간이 있을 때 연습해 둬야지.”

“연······습이요? 아――”

“그래. 마력의 압축인가 뭔가 그거 연습하러 가는 거야. 거기 라프리트의 사용인, 안네라고 했나? 너도 참가하는 거니까 열심히 해둬.”

“뭘 멋대로! 리아 양은――”

“보다시피~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 그리고 시련을 넘긴 선생님에게 직접 지도를 받는다는 게 흔한 일로 보여? 다른 사람들이 알았다면 득달처럼 달려들걸. 기회가 있을 때 재빨리 받아 가지 않는 건 현명하지 못한 게 아닐까.”

“그렇지만······ 너무 억지에요.”

“음. 그래? 저기, 리아 선생님. 라프리트가 마력의 압축이라는 걸 배우고 싶다는 데 가르쳐 줄 수 있어?”


선생님――!


너무나도 듣기 좋은 울림을 가진 말이었다. 왠지 들리는 것부터 이미 성인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리아는 허리를 피고는 가슴을 탁탁 두드리면서 외쳤다.



“저만―― 이 선생님만 믿고 따라오세요! 반드시 여러분들 모두가 습득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겠습니다!!”


루비아는 이런 자신만만한 리아를 가리켰다.



“봐. 의욕이 넘치지?”

“······.”


한숨을 쉰 라프리트도 침묵했고 더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반대는 없어졌고, 페리는 훈련하러 간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안 간다고 선언했다. 리아도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페리를 보고 놀랄 수 있으므로 찬성했다.


하지만 처음 온 곳에 페리 혼자――전혀 신경 쓰지 않을 거 같지만―― 남겨두기가 좀 그랬는데, 아이리스가 같이 남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시름 던 리아는 레딧츠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공국의 공주라는 명함으로 통째로 전세를 낸 마법 실습장으로 향했다.


――상위로 올라가기 위한 첫걸음인 마력의 압축을 가르치러.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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