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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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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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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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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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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DUMMY

‘우선 주의도 줄 겸 가볍게 가보자.’


리아는 한 발짝 내밀면서 비어있는 왼손의 손가락을 슬며시 튕겼다.


목표는 디카이로트의 발밑이다.


마법은 술식이라든지 번잡한 과정이나 마력을 꺼내는 일도 없이 그 즉시 발동하여 리아의 뜻대로 마력이 변환되었다.


쿠쿠쿠쿵······


디카이로트가 디디고 있던 땅이 울퉁불퉁 모양을 바꿔갔다.



“으, 엇! 무······뭣! 마법?!”


눈을 크게 뜬 디카이로트는 빠르게 균형을 잡으려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의 자세는 점점 흐트러져갔다.


역시나. 예상했던 그대로다.


라프리트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학원에서 보아왔던 학생들. 그것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했을 때 디카이로트 또한 영창이 없는―― 심상마법엔 익숙하지 않을 거라고 봤다.


그렇지만 일부러 마력이 새어 나오게 했는데 아무런 대지조차 못한 건 너무 아쉬웠다.


‘어쩔 수 없나. 한 번에 바로 반응하긴 쉽지 않으니.’


마법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 못 했을 수도 있으니 점차 나아지길 기대할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주의를 주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리아는 디카이로트의 왼쪽으로 붙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동작으로 빠르게 이동하던 리아는 만족감에 무심코 손에 든 은빛의 대검을 슬쩍 쳐다봤다.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묵직한 게 이제야 뭔가를 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안정감이라 해도 좋은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어쩐지 오랜만에 잡아 본 듯하다.


‘어쩐지가 아니라······ 정말 마을에서 나온 뒤로는 처음 잡았어!! 열심히 하기로 하지 않았나?!’


아무리 학원에서의 생활이 하루하루가 너무 재밌고 신선했다지만 훈련 같은 건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너무 태평했다······


‘······이, 일단 대련에 집중하자. 반성은 나중이야.’


리아는 앞을 봤다.



“윽!”


당황한 디카이로트는 어떻게든 자세를 잡고는 있지만 아직 발밑이 좀 불안하다. 공격은커녕 방어에 치중해야 할 거다.


거칠 게 없는 리아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쾅!!


대련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휘두른 것임에도 디카이로트는 검의 옆면을 어깨에 붙여 방패처럼 활용해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막아냈다.


끝까지 상대의 공격을 놓치지 않는 좋은 집중력과 눈이다. 하지만 저런 식의 방어는 몸으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크윽!”


역시 견디지 못했는지 디카이로트에게서 신음이 솟았다.


‘[철벽]이라고 했던가? 보기엔 한순간 몸을 바위처럼 굳히는 마법 같았는데, 그 투기술을 쓸 여유도 없으셨나.’


리아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고 높은 소리가 울리자 디카이로트는 바로 경계했다. 한번 본 것만으로 마법 쓰기 전 손가락을 튕긴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대단하다며 리아는 감탄했다.


다만 거기까지다. 아무리 뭔가 한다는 걸 알아도 지금 디카이로트는 검을 막고 있다.


그런 상태로는 옆에서 날아오는―― 바람의 망치를 막기엔 무리다.


퍽!


묵직한 소리가 나며 디카이로트가 맥이 풀린 인형처럼 날아간다.



“앗!”


공왕과 루비아의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들에게서 환성이 나왔다. 무심코 나온 외침 같았는데, 그만큼 디카이로트는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디카이로트는 직격하기 직전 몸을 슬쩍 기울이면서 형체를 갖춘 듯 단단해진 바람의 옆면을 찼다. 지금 날아가는 건 순전히 본인이 민 힘만큼 날아가는 것뿐이었다. 데미지 같은 건 전혀 없다.



“훌륭하네요.”


짧게 칭찬한 리아는 다시금 손가락을 튕겼다.


디카이로트는 아직 하늘에 떠 있다. 이만큼 좋은 공격 타이밍이 어디 있겠나. 놓치긴 아깝다.


이번에 노리는 건 착지하는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움직일 방법이 있다면 모를까, 없다면 무조건 맞을 수밖에 없는 악랄한 타이밍이다.


탁.


바닥을 딛는 소리와 함께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마법실습 수업 때 라프리트가 선보였던 마법을 따라 한 것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불길이 치솟는 범위와 온도랄까. 너무 크게 다치면 안 되기에 적절히 뜨거울 정도로만 배려했다.


하지만 보기에는 매섭게 치솟는 불길에 다시 관람하던 사람들에게서 환성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약간의 틈을 두고 디카이로트가 불길을 뚫고 달려온다.


마력으로 몸을 감싸 피해를 최소화한 것을 감지했던 리아는 예상하고 손가락을 까닥――



“[각력증강]!”


발에 스프링을 단 듯 디카이로트가 튀어왔다.


이전 디카이로트의 움직임에 눈이 익은 상태라면 그가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것으로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불의의 일격을 허용하겠지.


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재 몸의 상태는 마법과 투기술을 활용하여 고의로 모든 능력치를 제한하여 디카이로트와 비등하게 놓았다. 반사신경, 오감이라 부를 만한 애매한 감각까지도. 분석틍 통해 디카이로트의 신체 능력은 거의 판명해냈기에 오차범위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리모르나 레온하트와 대련할 때도 한 방법이다. 실수할 리는 없고, 확실히 디카이로트와 비등한 신체 능력이 됐다. 덕분에 리치가 짧은 만큼 이쪽이 불리하다.


하지만 여기는 오엘문리아. 마법이 있는 세계다. 불리한 그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는 마법―― 투기술이 있다. 물론 능력치를 떨구는 게 아닌, 제대로 향상의 효과가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이미 신체 전반에 걸쳐 마력을 집중, 투기술을 사용한 상태였다. 그러니 통하지 않는다.


발동어는 필요 없다. 마법과 마찬가지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오버도 하지 않는다. 정확히 디카이로트의 마력량 내에서만 마력을 운용한다.


그만큼 투기술은 익숙했다. 단순히 투기술이라는 명칭만 몰랐을 뿐, 잭이라든가 마을의 어른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봐오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연습도 철저히 해뒀다. 강해지려 했는데 이런 방편을 놓치겠는가.


반대로 익숙한 편이다. 산에 있을 때는 한 달 내내 투기술을 사용한 상태로 있던 적도 많았다.


오히려 투기술을 사용할 줄 몰랐으면 이 무식하게 무겁고 큰 대검을 들 수나 있을까. 어찌 보면 이 검 때문에 투기술을 훈련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이 검을 들고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검의 영향은 제외한―― 맨손으로 있다는 가정하에 능력치를 맞출 수밖에 없다. 온전히 디카이로트, 그의 능력에 맞추면 이 검은 절대 못 들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에르는 정말 대단해. 아무렇지 않게 드는 것도 모자라서 마법으로 빠르게 날릴 수도 있으니.’


뜬금없는 곳에서 남편의 멋짐을 재확인한 리아는 검을 치켜드는 디카이로트를 바라봤다. 투기술로 끌어올린 지각 능력에 의해 배속이 느린 비디오를 재생한 것처럼 천천히 디카이로트의 동작이 흘러갔다.


오른쪽에서 대각선으로 베려 하는 궤적까지 읽은 리아는 움직이고 있던 손가락을 마저 튕겼다.


사악――!


빠르게 다가오던 검은 리아의 뺨 앞에서 멈췄다.


――땅과 연결된 듯 보이는 두 개의 얼음 기둥에 의해. 디카이로트의 팔꿈치 안과 바깥에 생긴 얼음 기둥이 그의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눈을 부릅뜬 디카이로트는 순간 얼음을 부수려고 했으나, 그러기엔 자세가 좋지 않고 또 그럴 시간도 없다.


코앞으로 다가온 리아의 검을 피해 디카이로트는 한 손을 검에서 떼고 팔을 빼내어 옆으로 굴렀다.


‘멋진 판단이네요.’


촹!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얼음이 잘렸다.


잘린 얼음이 떨어지며 소음을 만드는 동안 디카이로트는 빠르게 일어나 태세를 정비했다.


추격하여 몰아붙일 수도 있었으나 굳이 그러진 않았다.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디카이로트. 피로가 누적된 게 역력했다.


‘역시 단기 결전으로 끝을 보려 한 거였구나.’


상대가 자신의 속도와 힘에 익숙해졌을 때 한층 능력을 끌어올려 단번에 승부를 본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좋은 전략이다.


다만 그걸로 승부가 나면 다행이지만, 실패했을 때 돌아오는 리바운드는 만만찮다.


디카이로트는 이미 신체 능력의 전반적인 능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전능력증강]―― 레온하트가 쓴 [능력증강]의 상위 버전이라 생각될 투기술을 쓴 상태였다.


저 투기술은 신체에 억지로 부하를 주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인데, 당연히 레온하트와 마찬가지로 반작용도 심할 터다. 오히려 능력치의 상승 폭이 더 큰 만큼 반작용 또한 더욱 엄청나지나 않을까.


그런데 그는 거기에 더해 반사신경을 올려주는 [반응보조]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상황을 빠르게 예측하게 만드는 [예측시야]라는 투기술까지도 사용했다.


리아가 볼 때 저 상태로는 길게 싸워봐야 10분. 그 이상이면 육체의 한계로 인해 스스로 자멸이었다. 그만큼 디카이로트의 신체에 걸리는 부담은 상당해 보였다.


그런 버거운 상태인데 한 번 더 다릿심을 한계까지 올리는 [각력증강]까지 보태졌다.


대련은 시작한 지 5분 정도밖에 안 지났지만, 저런 페이스로는 슬슬 한계겠지.


――하지만 눈은 죽지 않았다.


루 몬테르 공국의 근위대장 디카이로트――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직접 맞대고 있으니 싫어도 차이를 느꼈을 텐데도.



“힘드시면······”


아니다. 이런 말은 그에게 실례다.



“마지막 한 합이 되겠군요.”

“그렇군.”

“부디 후회를 남기지 않는 최고의 일격을―― 당신이란 사람을 제게 보여주세요.”

“물론이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지.”


기백이 담긴 멋진 말이다.


숨을 진정시키면서 검을 중단으로 겨누고 있는 디카이로트. 그를 보며 리아는 입술을 틀어 올렸다.



“――오세요. 디카이로트 근위대장.”

“우오오오!!”


스스로 격려하기 위해서인가. 기합을 내지른 디카이로트가 빠르게 육박했다.


이후를 고려하지 않은―― 뒤가 없이 모든 걸 쏟아붓는 그의 속도는 신속. 무시무시한 속도와 압박감은 결사의 각오를 한 사람처럼도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기백에 몸이 움츠러들어 그대로 일격을 허용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무렇지도 않다. 조금의 동요라도 있을 법하건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리아 자신도 의외라 생각할 만큼 마음은 잔잔하다. 그래도 굳이 언급하자면 산들바람을 맞이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이제 와서지만 새삼 익숙한 느낌이야. 대련 같은 건 그다지 하질 않았었는데.’


리아는 묘하다고 생각하면서 디카이로트를 응시했다.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디카이로트는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검]!”


명칭과 느껴지는 기척으로 판단하건대 파괴력을 중시한 투기술인 모양이다. 검에 담겨가는 많은 마력을 보면 상당한 위력이 나오리라.


하지만 리아는 아쉽게 생각했다.


‘초조했나? 저건 악수이지 않을까 싶은데.’


파워를 중시한 이유는 알겠다. 힘에서 꽤 뒤처지고 있으니 그걸 메꾸고 싶었을 거다.


그렇지만 그에게 부족한 건 힘만이 아니다. 속도 또한 힘 못지않게 뒤처지고 있었다. 아니, 그냥 전반적인 모든 능력 자체가 자신에게 밀리고 있었다.


암만 위력적인 일격이라도 일단 그건 맞아야지 의미를 갖는 거다. 맞출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랴. 괜한데 힘을 쓸 뿐이다. 상대에게 틈을 제공하는 꼴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차라리 좀 더 속도를 올리는 데 치중했다면 자잘한 피해라도 입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걸 디카이로트 씨가 모를 거 같진 않은데 어째서.’


의아스러웠으나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대충할 순 없다. 의식을 집중한 리아는 다가오는 검을 격추하려 팔을 움직였다.


그 순간―― 디카이로트의 눈에 광채가 번득였다.



“[능력증강]! [뇌력섬]!!”


‘이건?!’


번쩍이는 섬광처럼 디카이로트가 검을 내려치고―― 베는 자세 그대로 리아를 스쳐 지나갔다.


······.


관람하던 모두가 숨을 삼켰다.


그 조용한 침묵 속, 리아는 자신의 왼손등을 내려다봤다.


‘······굉장하군.’


기백이 가득한 그의 일격은 정말 빨랐다. 찰나였지만 눈에서 놓쳤을 정도로.


그리고 강력했다.


그것은 손등에 새겨진―― 비록 까진 정도로 작긴 하나, 살갗이 베인 상처와 얇게 흐르는 붉은 선이 착각이 아니라는 듯 이를 증명했다.


분명, 이 일격은 디카이로트, 그의 모든 걸 담은 최고의 일격이다.


솔직히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어찌 보면 자만심이나 거만함이 가득하게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만, 그건 아니다. 이건 순수하게 디카이로트를 칭찬하는 거다.


왜냐하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상처입히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수많은 실험과 검증을 해왔기에 틀릴 리도 없다. 그렇기에 확언할 수 있다. 그는―― 디카이로트로는 지금의 그로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는 걸.


그런데 어찌 이 멋진 기사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기다――’


리아는 뒤를 돌아섰다.


그곳엔 짧게 참은 숨을 내뱉고는 무릎이 구부려지고 있는 디카이로트가 있었다.


리아는 방금의 일 합과 지금의 모습을 혹여나 잊지 않도록 눈에 잘 새겨놓으면서 그 등을 향해 입을 열었다.



“굉장하셨어요. 순간 정말 긴장했어요. 이런 적은 에르 말고는 없었는데.”

“하아······ 하아. 그런가······ 두 번······째였는가. 아쉽게 됐군.”

“그렇게 아쉬워하시지 않아도 돼요. 에르―― 제 남편은 엄청나니까요. 그러니 디카이로트 씨도 당당히 가슴을 펴세요. 저에게 이런 상처도 남기셨잖아요.”

“하하······ 어린 여성에게 상처입힌 걸 자랑스러워할 순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분이 좋군.”


모든 걸 쏟아내어 후련한 듯 만족스러운 음색으로 말한 디카이로트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슉, 소리가 나고――


땅을 향해 기우는 디카이로트 앞으로 이동한 리아는 그의 허리춤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듯 몸을 지탱했다.



“수고하셨어요.”


큰 이상은 없는지 조사한 리아는 마법을 사용해 [발판]을 길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딱 성인 한 명은 충분히 눕힐만한 [발판]에 디카이로트를 눕혀야 하는데······ 검이 거추장스럽다. 무지막지하게 큰 대검이니 더욱이나.


‘뭐, 머리 3개 이상은 큰 남성을 눕히는 거니 한 손으로 하기엔 불편한 것이 당연하다만······’


어떡할까 고민하던 리아는 그냥 땅에 꽂아두기로 했다.


그리곤 즉시 푹――


무게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날카로움으로 인한 것인지 분간은 안 가지만 대검은 저항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그대로 검받이까지 쑥 파고들어 갔다. 보이는 거라곤 칠흑의 가죽이 감긴 손잡이의 끝부분뿐이다.


――동시에 엄청난 소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듯한 울림이 발생했다.



“꺄앗!”

“무, 무, 무어냐?!”

“저, 적습?! 공습······ 공습경보를 울려라!!”


······


‘적습이 아닌데요. 그냥 검을 꽂아 넣은 거예요······’


하지만 원인을 알 리가 없는 성내에선 놀라 지르는 여성들의 비명과 갑자기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기척을 느낀다.


아니다. 덩치 큰 생물들이 바둥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아마 마수나 마물이려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렇게 리아가 멍한 눈으로 자신의 검을 보고 있으니 곧 넓은 성내 전체를 마력이 둘러쌌다.


이것이 마법으로 인한 것임을 안 리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 익숙한 마력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워낙 마력조작이 탁월해 마력이 거의 느껴지진 않지만 착각할 리가 없다.


역시나 바라본 방향엔 에르가 있었고, 그는 상대방을 진정시키기 위한, 강제로 진정제를 투입하는 느낌의 마법을 사용했다.


끝 모를 정도로 마력이 많은 에르이니 할 수 있을 것 같은 우격다짐 식의 방법이다.


마법은 제대로 발동하여 넓은 범위였지만 성내의 모든 자에게――몬스터를 포함한―― 이상 없이 효과를 발휘했다. 덕분에 조금은 소란이 가라앉은 듯 성내는 그리 시끌시끌하지 않게 되었다.



『고마워요, 에르.』


에르는 살짝 미소 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에 완전히 회복한 리아는 원래 하던 일―― 기력을 완전히 소진하여 이 소란에도 깨지 않은 디카이로트를 조심스럽게 발판에 눕혔다.


‘흐음. 아무래도 이 상처들은 내가 치료해주는 게 좋겠지?’


부축하고 있을 땐 몰랐지만 눕히려 디카이로트의 몸을 만지다 보니 여기저기 근육과 인대의 손상이 느껴졌다.


하긴 생각해보면 무리에 무리를 거듭한 투기술의 운용이 있었는데 멀쩡하면 그것도 이상하다.


직접 다치게 한 건 아니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기에도 뭔가 좀 찝찝하다. 아무리 오엘문리아의 사람들은 상처의 회복이 빠르다지만, 근위대장이라는 사람이 며칠을 병석에서 몸조리하는 건 좀 어떨까.


······그것도 반쯤 자신에 의한 건데.


아주아주 짧게 고민한 리아는 바로 [치유]를 사용해 디카이로트의 몸을 완전 회복―― 대련을 시작하기 전, 시간을 돌린 듯 말끔하게 고쳤다.


뭔가 부족한 곳이 있나 꼼꼼히 체크까지 한 리아는 발판을 옆에 따라오게 조작하곤 루비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고했어, 리아.”

“고생하셨어요, 어머니.”

《그 정도는 되어야 내 부하지.》

“응. 고마워, 아이리스. 에르도 고마워요. 그리고 페리······ 제가 부하가 아니라, 페리가 제 반려묘예요.”


페리만은 좀 그랬지만 미소로 반겨주는 가족을 향해 리아도 같이 미소 지었다.


그러한 때에 루비아가 다가왔다.



“뭐야. 디카이로트 경 죽은 거야?”

“네?!!”


슬쩍 발판에 누워있는 디카이로트를 보며 한 그녀의 말에 리아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루비아의 뒤에서 수고했다며 인사해준 레딧츠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루비아의 옆에서 따라온 라프리트도 같이 나무랐다.



“대련인데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리가 없잖아요!”

“라프리트 씨 말이 맞아요! 보세요. 숨도 잘 쉬고 계시잖아요! 그저 마력 고갈로 인해 정신을 잃으신 거라고요!”

“어······ 그냥 농담한 건데. 반응 한번 격렬하네.”

“루비아 님이 말씀하시면 전혀 농담으로 안 들려요.”

“맞습니다! 루비아 씨의 농담이라니 장난으로라도 들을 수 없다고요! 그리고 보통은 그런 걸로 농담하지 않아요!”

“······.”

“헛――”


고운 이마에 힘줄이 귀엽게 솟아남과 동시에 루비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잽싸게 입을 다문 리아는 슬그머니 에르의 뒤로 피신했다.


그런 리아를 노려보던 루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맥이 빠지는 기운 없는 무거운 한숨이다.



“정말로 난 어떻게 보이는지 설문해봐야 하나.”


혼잣말하듯 작은 목소리였지만 들렸던 리아는 신경이 쓰여 에르의 뒤에서 머리만 내밀고 물었다.



“뭘요?”

“······그거 또 하는 거냐? 하······ 됐다. 그것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네 책임도 있어.”

“제······ 책임이요?”

“그래. 저기를 봐.”


루비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벤치에서 일어나 다가온 공왕 부부 내외가 있었다.


둘은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발판에 누워있는 디카이로트를 보고 있었는데, 그 둘뿐만이 아니라 아까 안내해준 사용인과 공왕 부부의 전속 사용인 같은, 꽤 연세가 있는 여성도 염려된다는 눈빛으로 근위대장을 보고 있었다.



“봤지? 가볍게 대련하는 줄 알았더니, 세상에나~ 진짜 누구 하나 죽는 건 아닌가 싶은 박터지는 결투가 펼쳐질 줄이야.”

“······.”


‘아······ 생각해보니 확실히 뭔가 해방되는 느낌에 너무 즐거워하긴 했어.’


그 외에도 디카이로트의 다양한 투기술이라든가 배울 점이 은근 많았기에 더욱 즐거워져 다른 곳에 눈 돌릴 생각은 하질 못했다.


솔직히 대련이란 것조차도 살짝 잊고 있었다······


변명하자면 알려주려는 뜻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다.



“어흠. 훌륭했다네, 이스피리아여.”


본인들의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 온 걸 들었는지 디카이로트를 보고 있던 그란은 다가와 흐름을 끊듯 말을 걸었다.



“엇. 네네! 가, 감사드립니다.”


루비아가 말한 처신을 잘한다는 게 이런 걸까.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리아는 바로 에르의 앞으로 튀어나와 고개를 넙죽 숙이며 예를 취했다.


더욱이 그란의 곁을 지키는 근위대장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리아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음. 혹시나 한 데, 자네는――”


‘······으응?’



“아니라네. 그보다 디카이로트를 이리 압도하다니. 루비아가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 이유도 알 만한 좋은 대련이었네.”

“보잘것없었지만 좋게 봐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디카이로트도 보잘 게 없다는 뜻이 되지 않겠나. 너무 겸손할 필요는 없구료.”

“아, 아뇨! 그런 건······”

“후후. 알고 있네. 자네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 말이 아니야.”


‘이게 높은 사람의 유머라는 건가······’


도대체 뭐라 반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벌을 주지 않아 다행일까.


눈앞이 핑글핑글 돌고 있으니 루비아가 껴들었다.



“리아, 아버님 같은 건 그만 신경 쓰고 이제 놀러 갔다 와도 돼. 볼일은 끝났어. 아, 그리고 여기 어머님도 같이 데리고 가.”


루비아는 아직 디카이로트의 곁에서 걱정스레 보고 있던 레이니 공왕비의 팔을 잡고는 건네줬다.


어딘가 짐짝 취급당한 레이니도 예상치 못한 루비아의 돌발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데 루비아는 개의치 않는 건 물론, 즐겁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어머님. 리아, 쟤 ‘만능언어’ 사용자야.”


레이니의 눈이 더욱 커졌다.


‘만능언어······? 뭐야 그게.’


의문이 가득해 물어보려 했으나 입을 열기도 전에 어깨를 덥석 잡혔다.


리아는 자신을 붙잡은―― 레이니를 올려다봤다.


루비아의 언니처럼 보이는 공왕비는 아름답고 우아한 누님 같은 인상이었다.


분명······


그런데 지금은 콧김을 거칠 게 내뱉는 것도 모자라 눈에는 핏발이 설 듯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이미지는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그것만이라면 그래도 괜찮았지만······ 필사적인 것이 어쩐지 좀 무섭다.


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려 발을 뒤로 뺐으나, 꽉 붙들려 있어 결과는 시원찮았다.



“이스피리아 양! 으응······ 저도 루비아처럼 리아로 불러도 되겠죠?! 리아! 당신, 정말······ 정말로 만능언어 소유자여요?!”


바짝 얼굴을 들이미는 레이니.


리아는 살짝 몸을 뒤로 눕혔다.



“저······ 마, 만능언어가 뭔가요?”

“――모든 동식물과 하물며 몬스터와도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리아 양.”

“라······프리트 씨?”


차갑게 톤으로 대신 말해준 라프리트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 못지않게 차갑게 식어있는 눈빛으로 루비아를 노려봤다.


하지만 루비아는 여전히 즐거운 기색으로 가볍게 흘려내는 여유를 보였다.



“역시 넌 알고 있었네. 리아가 만능언어 소유자라는 걸. 하긴 근처에 있으면 페리랑 자주 떠드는 걸 못 볼 수야 없지. 아니면 다른 게 있나?”

“······.”

“미안~ 떠보지 않을 테니까 그리 무섭게 보지 마. 뭘 어떻게 할 생각도 없으니까. 그리고 공국에선 만능언어 능력은 신성시해. 그 소유자인 리아를 공국이 함부로 대할 일은 절대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더욱 미심쩍은지 라프리트는 날카로운 눈빛을 전혀 풀지 않았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한 루비아는 레이니 공왕비를 보며 이어 말했다.



“거기에 우리 어머님은 동물과 대화하고 싶다는―― 꽤나 소녀 같은 꿈을 갖고 있어서. 나이에 안 맞게 말이야. 뭐, 어쨌든 부모의 꿈을 이루어주는 것도 효라는 거 아니겠어?”


더더욱 미심쩍어하는 눈빛이 강해졌다.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다. 혹여 다른 무언가를 노리고 있나 루비아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낌새만 느껴졌다.


너무 예민한 것처럼도 보였으나 이번만큼은 라프리트에게 절실히 공감했다.


그렇지 않은가.


저 루비아가 그런 기특한 효심을 보이는 게 연상이나 되나. 분명 다른 뭔가를 노리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되었다.


‘그럼그럼. 루비아 씨가 그렇게 기특할 리가――’



“리아?”

“흐잇! 넵!”

“어머님과 어울려줄래?”


루비아는 맑은―― 사심 하나 느껴지지 않는 눈을 똑바로 직시해왔다.


아무리 성격이 얄궂다곤 하나 루비아는 자신의 친구였다. 애초에 아주 글러 먹은 사람이었다면 친해지려 하지도 않았을 터.


그런데 당연히 무례한 생각을 읽혀 잔소리를 들을 거라고만 봤다.


너무 부끄러웠다······


‘아니야. 그럴 틈이 있다면 하나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게 좋아.’


그게 사죄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할 거다.


고개를 흔들어 억지로 창피한 마음을 떨쳐낸 리아는 가슴을 폈다.



“네! 공왕비 전하를―― 어머님을 저에게 맡겨주세요! 제가 반드시 꿈을 이루어드려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어머나.”

“······.”


레이니가 놀라며 입가를 가리고, 다른 사람들은 할 말을 잃은 듯 조용해진 가운데 루비아는 즐거이 웃었다.


그 중 그란만은 잠시 눈을 번뜩이는 듯도 하였지만 리아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는 레이니의 꿈을 이루어주는 게 훨씬 중요했다.



“그래. 잘 부탁할게.”

“맡겨줘요! 그럼 바로 가죠! 공왕비 전하.”

“어······ 그래요.”

“아이리스랑 에르도 가요. 페리도 따라와요.”


사명감에 가득 찬 리아는 발판을 현 위치에 고정하고 디카이로트를 옮길 때까지 유지되도록 조정했다. 그리고는 냉큼 레이니의 손을 잡았다.



“잠깐 기다려.”


상당히 놀란 기색인 레이니의 앞에서 한걸음 발을 떼던 리아는 뒤를 돌아봤다.



“왜요? 루비아 씨.”

“얘도 데리고 가야지.”


루비아는 라프리트를 가리켰다.



“예? 루비아 님, 이야기하실 건?”

“까놓고 우리끼리 의논해봤자 벨루디스 측이 협조하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잖아? 거기다 대충 이야기는 다 들었고. 남은 거야 내일 대강 하거나 학원에 돌아가고 나서 해도 괜찮아.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봐야 하고. 그러니 너도 어여 같이 다녀와.”

“······.”


잠시 말없이 루비아를 보던 라프리트는 몸을 돌렸다.



“가죠, 안네.”

“예, 아가씨.”


다가오는 둘을 보며 리아는 물었다.



“······루비아 씨는 같이 안 가세요?”

“음. 난 아버님께 좀 말씀드려야 할 것도 있어서. 솔직히 아무 말도 안 하고 데려왔거든. 거기에 디카이로트 경도 걱정되고 하니 남아 있도록 할게. 내가 부탁해서 대련한 건데 옆에 없으면 너무 무정하잖아? 아아, 그래도 저녁쯤엔 같이 다닐 수 있으니 맘 놓고 다녀와.”

“아~ 알겠어요. 그럼 저녁때는 같이 다녀요.”

“그래그래.”


생각보다도 루비아는 아버지 바라기인가보다.


아무리 똑똑하고 멋진 성인인 루비아라도 기껏 해봐야 16살이다. 지구였으면 아직도 청소년기다. 당연히 부모님이 그리울 수 있을 나이이고, 타지에 나가 살면 나이에 불문하고 누구나 부모가 생각나는 법이다.


분명 오랜만에 만난 아버님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려 한 것이겠지.


그렇지만 역시 루비아는 대단하고, ――두려웠다.


설마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고 자신의 어머님―― 레이니를 꿈을 이루라고 보내 효녀를 연기함과 동시에 방해꾼을 제거하는 이득을 모두 챙겨가다니.


착각이나 그런 게 아니다.


루비아는 확실히 자신과 그란 이외의 모든 사람을 빨리 내보내려 하고 있었다. 거의 쫓아내는 분위기다.


‘그게 아니라면 별다른 대화조차 없이 대련을 이제 막 끝마친 사람에게 자신의 어머님을 맡기는 몰상식한 일을 하진 않았겠지.’


인정하긴 절대 싫지만, 눈치가 별로 없다고 주위에서 듣는 자신조차도 루비아의 의도가 보일 정도이니 그냥 눈치를 주는 게 아닐까. 빨리 가라고.


다만 그 대상이 자신의 어머님까지 포함이란 건······ 정말 무시무시할 뿐이다.


‘저, 정말 가차 없으시구나.’


목적을 위해선 가차 없다. 그녀다운 이미지긴 하다.


뭐가 됐든 이런 루비아의 심기를 건드리면 뒤가 안 좋을 거다. 그런데다 동기야 어쨌든, 루비아는 나쁜 마음으로 부탁한 건 아니었고 개인적으로도 레이니의 꿈은 이루어주고 싶다.


결과, 이곳을 빠르게 벗어나는 게 모두의 신상에 이로울 거라는 걸 안 리아는 엄격, 근엄, 진지한 얼굴이 되어 레이니의 손을 이끌었다.


그렇게 대충 한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배웅해주는 루비아를 뒤로한 채 모두와 함께 연병장을 벗어났다.



“저기, 리아 양······?”


공국 왕성 내 복도를 한동안 매우 비장하게 걸어가던 리아는 말을 거는 게 들려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어딜 가시는 거예요?”

“네? ······아, 그러고 보니.”


목적지 같은 건 당연히 정하지 않았다. 그냥 서두르기만 했을 뿐이다.


그걸 알아봤는지 밑에 있는 페리에게서 한심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양이에게 무시당할 순 없다.


리아는 필사적으로 어디를 갈지 정하려 머리를 굴렸다.



“저······ 리아? 그러면 제가 정해도 될까요? 그곳에 꼭 대화하고 싶은 마수가 있어요!”

“물론 괜찮죠. 공왕비 전하를 위한 건데.”


애초에 이 파티의 목적은 레이니의 꿈을 이룬다는 게 주였다. 이제 와서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레이니가 가자는 데로 가면 되지 않았을까.


······의욕이 과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반대가 나올 리가 없고, 이번엔 레이니가 리아의 손을 잡아끌어 선두에서 안내했다.


얼마나 다급한지 따라온 사용인이 눈총을 주며 본인이 앞장서려고 하는데도 레이니는 전혀 거들떠보지도, 양보하지도 않았다.


‘왠지 모르게 루비아 씨의 성격이 어디서 이어져 왔는지 보이는 듯하기도 하―― 앗! 아냐 아냐. 난 모르는 일이야.’


똑바로 인식하기엔 나중에 루비아에게 들킬까 두렵다. 리아는 재빠르게 생각을 접었다.


그렇게 안쪽으로, 안쪽으로. 상당히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요 구역으로 진입하는지 점점 경비를 서는 사람이 늘어났는데, 그들은 왕비의 등장에 경례하면서도 선두에 앞장선 레이니가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했다. 물론 호감만 담긴 시선만을 보냈다.


‘응??’


아니다. 대부분이 열렬하면서도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이쪽이 본다는 것도 모를 정도의 대단한 집중력이다.


어쩌면, 정말 그냥 어쩌면 이지만······ 다들 그냥 레이니가 이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마에 살짝 땀을 흘리면서도 서두르는 미인.


그것도 신이 직접 빚은 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지구였으면 범세계적으로 추앙받을 만한 미인이다. 남자의 입장으로는 확실히 눈길이 쏠리지 않을까――


일단 자신이 남자였으면 빤히 쳐다보다가 분명 어딘가에 부딪혔을 거 같았다.


‘그전에 왕비님에게 노골적으로 저런 시선을 보내도 되는······ 건가? 불경하다거나 그런 거 아니었나. 아니아니! 왕비란 말 자체가 유부녀 아니야······?’


모르겠다.


왕의 아내를 노리는 간 큰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알아서 잘하겠지.


그란도 걱정이 되겠지만, 그게 미인인 아내를 둔 자의 행복한 고뇌라고―― 옛 친구도 말해줬으니까 어련히 알아서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겠지.


‘그러고 보면 제수씬 확실히 미인이긴 했지. 울 마눌도 이쁘긴 했지만, 솔직히 비교하긴 좀······ 그, 그렇지? 하. 그놈이랑 아들 녀석, 손녀는 잘 지내려나.’


아들이 보던 만화에선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거나 하는 설정들이 많았기에―― 아니, 그 이전에 시간의 흐름이 같다고 하더라도 이세계다.


――그들과 만날 일 같은 건 없다.


마음 같은 거야 10년도 더 전에 정리했지만,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에 조금은 씁쓸하다.



“리아?”

“어, 네?”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힘내어요.”

“고, 고마워요.”

“네.”

“······.”


이 눈치의 빠름과 어설프게 마음 써주는 모습은 딱 루비아 같았다.


‘아니다. 반대로 루비아 씨가 공왕비님을 닮은 거겠지. 딸이니.’


물론 이쪽까지도 배시시 미소를 짓게 만드는―― 마음까지도 포근해지는 미소만은 루비아는 조금도, 발톱의 끄트머리도 닮질 못했다. 분명 레이니와는 성격의 방향이 완전히 정반대를 향해있을 거다.


닮은 듯하면서도 전혀 닮지 않은 이 점이 너무 웃겨 하마터면 터질뻔했다.


그건 아무래도 너무 무례하니 간신히 참아내며 리아는 자신의 손을 잡고 이끄는 레이니를 따라 묵묵히 발을 놀렸다.


하지만······ 금방이라고 한 것과 달리, 레이니의 발걸음이 멈춘 건 약 10분이 지난 후였다.


‘······옹기종기 모여있다고 하지 않았나. 진짜, 너무 넓은 거 아니야? 아니면 내가 성 같은 걸 처음 봐서 넓다고 느끼는 걸까. 지구의 성들도 이만큼 넓으려나.’


평범하게 걷기에는 너무 넓은 오엘문리아에 불만을 토하면서 리아는 앞을 봤다.


거기엔 한사람 정도는 지나갈 만한 아담한 문이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대충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려보니 여긴 성내에서도 꽤 숨겨진―― 벽과 벽 사이에 가려진 은밀한 곳이었다.


즉, 이 문 앞은 비밀장소라는 거다.


피가 끓듯 요동치는 걸 참고 리아는 물었다.



“여기인가요?”

“맞아요.”

“공왕비 전하.”


여태 조용히 따라온 사용인이 날카롭게 쳐다봤다.



“이곳은 공왕가의 사람만 출입 가능한 유서 깊은 곳입니다만.”


‘엑?! 그런 곳에 우릴 데려오신 거야?!’


하지만 정작 레이니는 태평하기만 했다.



“뭐, 어때서요. 요 리아와 리벨리타스 양은 우리 루비아의 친우이고 하니 괜찮잖아요.”


‘아뇨. 그런 걸로 괜찮으면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을 정한 의미가 없잖아요.’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슬슬 주름이 많아지는 사용인의 얼굴에 더욱 깊은 주름이 생겼다.


그렇지만 레이니는 추가 타를 가하듯 여유롭게 이어 말했다.



“그리고 우리 루 몬테르 공국은 자유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자랑이자 긍지이어요. 저기 세인트리안처럼 쫀쫀하고 딱딱하게 굴어서야 우리의 체면이 말이 아니어요.”

“······알겠습니다.”


세인트리안이라는 말은 강력했다. 사용인은 반론은 고사하고 엮인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손님인 자신들이 없었다면 아마 왕비인 레이니에게 따지려 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공국에서는 세인트리안을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지 잘 전해졌다.



“그럼 [개방]. 자자, 어서 들어가죠.”


찰칵.


등록된 마력으로 제어되는 잠금장치가 풀리고, 신나 하는 게 그대로 표출된 가벼운 동작으로 레이니는 문을 열었다.


열리는 문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빛――?’


문이 완전히 열리고 차례차례 문을 지나갔다.


혹시나 하였는데 문밖의 공간은······ 밖이었다. 정확히는 성벽에 둘러싸여 하늘만 뻥 뚫린 가로세로 50m 정사각형의 공터다.



“여기는 비밀 연회장······ 같은 그런 곳인가요?”


자연스럽게 자생해 아름답게 펼쳐진 꽃밭과 공터 한가운데 있는 정자를 보노라면 그렇게 생각되었다.


딱 피크닉에 좋지 않을까.



“비슷해요. 여긴 공왕가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한숨 돌릴 휴식을 취할 안식처 같은 곳이에요.”

“아. 왕가라면 쉬는 것도 맘 편히 못 하겠네요.”

“네. 누구라도 쉴 땐 편히 쉬고 싶잖아요. 여긴 그런 곳이죠.”


향긋한 꽃내음과 따사로운 빛이 내리쬐는 것이 확실히 쉬기 편한――


‘응? 따사로워?’


아무리 사방의 벽에서 바람을 차단한다지만, 하늘은 뚫려있다. 그런데 초봄의 쌀쌀한 계절이라 할 수 없는 이 따듯함은 좀 이상하다.


리아는 주위의 마력을 탐지해봤다. 이런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면 반드시 마법이 관련되어 있을 거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이 장소에는 온도를 일정하게 맞추는 마법과 공기를 순환시키는 마법이 걸려있었다.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마법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세세한 온도 조절과 이 공간 전체의 공기를 맑게 순환시키는 계산들로 인해 생각보다는 훨씬 복잡한 마법이다.


그리고 마력을 보급하는, 마광석 같은 마력 축적 도구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마법은 유지되고 있느냐?


답은 간단했다. 이 마법은 심상마법으로 발현한 것이었다.


이것을 알아차린 리아는 혼란스럽지만,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확실······히 심상마법으로 한 거 같지? 술식마법으론 추가 마력 없이 유지하는 건 힘들 거 같고. 그렇다 하더라도 이걸―― 개념을 고정할 수 있다면 상당한 실력자였겠는데. 다만, 근원이 되는 부분의 방비를 좀 허술하게 했네.’


다른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가운데 리아는 레이니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공왕비 전하.”

“으음······ 아직 안 왔나―― 네? 부르셨나요?”

“네. 죄송한데 저기 정자 좀 둘러봐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그도 아직 안 온 듯하니 저기에서 쉬도록 하죠.”


그라는 건 대화하고 싶다는 마수라는 걸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리아는 정자로 향해갔다.


정자엔 넓게 원으로 대리석 같은 암석을 파서 만든 긴 의자가 있었기에 인원수에 비해서도 자리는 넉넉했다.


그렇게 대충 자리를 정하자 에르는 아무렇지 않게 [차원수납]을 열어 차를 준비하였다.


그 틈에 리아는 되도록 자연스러운 행세로―― 그냥 입으로 휘휘 거리는 듯한 어설픈 휘파람을 불며 정자의 가운데에 있는 기둥에 다가갔다.


정자의 지붕과 중심을 잡는 듯한 이 기둥이 마법의 근원이었다.


리아는 그 기둥을 노려봤다.


‘으음··· 마법은 제 역할을 잘하고 있고 고정도 되어 있으니 굳이 손대지 않아도 될 거 같고. 하지만 고정된 근원을 지킬 다른 마법은······ 아예 없네. 응? 아니,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아예 못 한 건가.’


자주 할 만한 실수다. 자신도 처음엔 마법만 고정하면 끝인 줄 알았었으니까.


하지만 고정한 마법은 영구지속 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영구지속 할 순 있으나, 그 핵이라 부를만한 근원이 보호된다는 전제하에 가능했다.


지금 여기 기둥처럼 간단한 보호조차 안 되어 있으면 혹여라도 마력이 잘못 닿으면 망가진다고 해야 하나, 효과가 발휘되지 않을 수 있었다. 심하면 마법이 사라질 수도 있었고.


이런 개념을 고정하는 마법은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일단 들어가는 마력이 보통 마법보다 몇 배나 많다. 여러 많은 기능이 추가되면 될수록 그 양은 또 배로 뛸 거다.


그러니 넓은 범위와 꽤 섬세한 동작이 설정된 이 마법에 들어간 마력은 상당한 양이겠지.그런데 이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마법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많이 아깝다.


며칠 숙박 신세를 지고 있으니 밥값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레시피도 받기로 했는데.


기특한 생각에 리아는 스스로 흡족해하면서 발돋움했다.


간단히 평소처럼 손가락만 튕겨도 됐으나, 이 마법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막을 덧씌우기엔 아직은 마력조작이 불안하다. 그만큼 꽤 섬세한 마법이다.


지금의 상태로는 직접 만지고 하는 편이―― 되도록 가까운 편이 아무래도 좀 안전할 거 같다.


기둥 가운데쯤에 손을 뻗은 리아는 근원에 접촉하여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그때, 뒤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아가, 거기에 손 대지 말그라.》


맑게 울리는 새의 지저귐이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화르륵――이라고 할까. 어째서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자신의 상반신쯤 되는 커다란 새가 불타며 날고 있었다.



“부, 불이야!! 새, 새가 불에 타고 있다!”


패닉에 빠진 리아는 다급히 손가락을 튕겼다.


비록 새에 불과할지라도 한 생명을 구하는 거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곧장 불을 끄려 했다. 정말로 최대한 빨리 이 불에 타는 가여운 생명을 구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리아는 ‘최선’을 다했다.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막대한 리아의 마력이 꿈틀대고, 의지대로 변환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 동그란 구체안에서 멍하니 아쿠아리움이 된 정원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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