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5.01 00:47
연재수 :
261 회
조회수 :
30,079
추천수 :
315
글자수 :
3,647,771

작성
22.06.30 22:17
조회
58
추천
0
글자
39쪽

77

DUMMY

급하게 벨루디스에서 오느라 계속 교복 차림이었던 리아는 공국에서 준비해준 연한 분홍색의 드레스로 갈아입고는 어제 성의 안내를 해줬던 사용인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즐거워 보여 마치 콧노래라도 부를 듯했다.



“흐흥~ 흐응흐흥~”


아니다. 정말로 즐거웠나, 어느 지역의 것인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노래를 정말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예의가 아닌 건 알아서인지 목소리는 무척 작긴 했다.


하지만 앞에서 걷고 있던 사용인에겐 들렸는지 그녀는 살짝 뒤돌아보더니 물었다. 따스한 눈초리로.



“식사는 괜찮으셨습니까?”


설마 사절단을 안내하는 프로 중의 프로라 할 수 있는 사용인이 걷는 도중 말을 걸 줄이야.


리아는 생각지도 못해 당황했지만, 조금 전 식사가 떠올라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엇, 네. 정말 맛있었어요. 여태 먹어본 것 중에선 가장 으뜸이었어요.”

“준비한 자들이 무척 기뻐할 말씀이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전해줘도 괜찮겠습니까?”

“실례라뇨! 제 쪽에서 꼭 부탁드리고 싶은걸요. 정말 잘 먹었는데 감사도 못 전하니 아쉬웠거든요.”


식사 때 옆에서 총주방장이라는 높아 보이는 사람이 요리에 관해 뭔지 잘 모를 설명해주긴 했지만, 식사 예절 때문에 따로 감사를 전할 틈은 없었다.


대놓고 아쉬움이 드러난 리아의 얼굴을 부드러운 눈으로 본 사용인은 고개를 숙였다.



“허락해주셔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혹시 레, 레시피를 얻을 수 있을까요? 너무 맛있어서 다음에도 먹고 싶어서······ 무, 물론 폐가 되지 않는다면요.”


레시피라는 것은 요리사에겐 목숨과 동등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얼핏 듣긴 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일 테고, 함부로 알려달라 부탁할만한 것은 아닐 거다.


송구한 마음 반영된 리아의 말은 뒤로 갈수록 흐려졌다.



“이스피리아 님께서 원하신다면 주방 쪽에선 기뻐하며 선뜻 알려주실 거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정말요?!”

“예. 말씀을 전할 때 레시피 건도 말해두겠습니다. 내일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받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고마워요!”


사용인 여성은 기뻐하는 리아를 보곤 조용히 미소 짓더니 멈췄던 발걸음을 옮겨 다시 앞으로 나아가 안내하였다.


그 뒤를 따라가는 리아는······


벌써 다시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그렇지만 이렇게 기대하는 건 자신만이 아닐 거다. 에르 또한 기미를 봤을 때 상당히 놀라워했으니.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나 에르도 조금 기대된다는 기색을 풍겨왔다.


그리고 아이리스는······ 침착하니 있기만 해서 잘 모르겠다.


‘어쨌든 공국 사람들은 마음씨가 넓네. 저런 맛난 음식의 레시피를 대가 없이 선뜻 건네주다니.’


루비아를 보건대 공국은 까탈스러운 사람이 많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 선입견이 훌륭히 깨졌다. 루비아만은 세상 사람들이 다양하듯 어쩌다 성격이 조금 그런 모양이다.



《어이! 내 것도 제대로 알아놔야지!》


갑자기 들려온 잔뜩 성난 울음소리에 리아는 고개를 내렸다.


‘아, 이 고양이도 있었구나.’


루비아가 말을 해줘서 그런지는 몰라도 몬스터를 기른다는 공국답게 성내에서도 페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간간이 슈페리얼 래퍼드라는 종이 얌전히 있는 게 신기한지 빤히 쳐다보는 자도 있긴 했지만, 학원과는 달리 크게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페리도 그런 성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제 밤늦게까지 혼자 빨빨 돌아다녔었다.


꽤 즐거워 보였기에 잘 때는 돌아오란 말만 하고 그냥 내버려 뒀는데, 그 덕이랄까 방금 말을 걸기 전까지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코 아침 식사가 너무 맛있어서 그런 것으로, 절대 페리를 뒷전 취급한 건 아니다.


‘음음! 열심히 키우기로 했는데 밥이 먼저일 수야 없지.’



“저기, 죄송한데 페리의 레시피도 함께 받을 수 있을까요?”

“아, 예. 물론입니다.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사용인은 바로 미소 짓고 대답해줬지만, 페리가 소리 지른 거에 좀 놀란 모양이다. 그렇지만 프로답게 곧장 멈춰선 발걸음을 움직여 안내를 재개했다.


그 뒤를 따르면서 리아는 허리를 살짝 내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페리. 그렇게 소리 지르니까 저분이 놀라셨잖아요. 그러다간 맛난 것도 달아날걸요?”

《다, 달아난다고?!》

“그럼요. 누가 괴팍한 고양이에게 맛난 걸 주겠어요. 먹을 걸 주기나 하면 다행이지. 그러니까 되도록 갑자기 큰 소리 낸다던가, 아무 데나 발톱으로 긁으면 안 돼요. 알았죠?”

《으음······ 난 어딜 막 긁거나 하진 않지만. 알았다.》


먹을 것이 걸려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순순히 말을 들어주는 페리다.


리아는 그런 대견한 페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덩치가 크다 보니 걸으면서 쓰다듬기도 딱 좋은 위치였다.


페리는 귀찮은 듯 잠시 손길을 피하긴 했지만, 내심 이 마성의 손길을 거부할 순 없었는지 한숨을 쉴 듯한 모습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걸음을 나란히 해주는 페리와 걷던 리아는 고개를 꼬았다. 사용인이 안내해주는 장소가 묘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가는 방향 쪽은······ 아마 연병장 같은 곳이었지?’


공국 성내는 어제 여기저기를 제법 돌아다녀 봤기에 구조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아마 맞을 거다.



“도착했습니다.”


감사를 전한 리아는 의아해하면서도 예상대로의 장소인 연병장으로 들어섰다.


‘어쩐 일로 여기로 부르신 거지?’


흙바닥을 밟으며 사용인과 나아가던 리아는 대리석 같은 흰 암석의 고풍스러운 벤치에 천을 깔고 앉아있는 루비아와 곁에 대기하고 있는 레딧츠를 발견했다.



“저 왔어요~ 루비아 씨. 먼저 오셨네요?”


손을 흔들면서 말하니 지루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던 루비아의 고개가 움직였다.



“매번 말하지만 늦어! 이 나를 기다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뭐······ 어차피 주역이 다 도착하지 않아서 별 상관없지만.”


‘그, 그렇다면 굳이 뭐라 핀잔줄 필요가 없지 않았나? 이쪽도 부르신다길래 아침 먹자마자 바로 온 건데―― 아, 생각하니까 또 먹고 싶네.’


다짜고짜 쏘아붙이는 것은 조금 불만스러웠으나 오늘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런 일 정도는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루비아도 그런 리아를 알아봤는지 의아한 듯이 쳐다봤다.



“뭐야.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 보인다?”

“헤헤. 아침 식사가 정말 맛있었거든요.”

“식······사?”


멍하게 쳐다보는 루비아에게 리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했다.



“네! 여태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어요. 향도 그렇고 채소만으로 어찌 그런 맛을 냈는지. 특히 고기처럼 씹히는 질감의 표현은 정말 기가 막혔어요!”

“으흥~ 그렇군.”


뭘 이해했는지 루비아는 재밌어하는 얼굴이 되었다.



“응?”

“아냐. 그렇게 마음에 들었으면 레시피를 달라고 해줄까?”

“괜찮아요.”

“어라, 의외네. 너라면 그 이상하게도 잘 어울리는 비굴한 얼굴을 해서라도 얻어낼 거로 생각했는데.”


비굴한 게 아니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불쌍함인데······


아니, 그보다 나는 마구 떼쓰는 아이로 비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어제도 라프리트 씨에게 비슷한 걸로 주의받지 않았나? 응? 어,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필살기를 너무 남발해온 대가로 몸에 배어버린 건가?! 그래서 평상시에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굉장히 그럴싸한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물론 더 이상의 깊은 고찰로 이어지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저······ 이어가는 게 내키지 않았던 거다.


언뜻 답이 보였건만, 리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미래의 자신에게 정답을 찾도록 떠넘겨 버리고는 루비아의 옆에 앉았다.



“어, 어쨌든, 그런 뜻이 아니라요. 이미 부탁드려서 괜찮다고 한 거예요.”

“······너 이런 건 철저하구나.”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루비아의 시선에 페리 때라든가, 조금 짚이는 점이 있어 리아는 모르쇠 전법을 취했다.


그러자 루비아가 더욱 어이없어하는 기색이 짙어졌으나······ 굳이 입 아프게 걸고넘어지긴 싫었는지 다른 걸 물어왔다.



“아무래도 좋지만. 그보다 어제는 재밌었어?”

“으음. 재밌긴 재밌었는데요······”


말을 흐린 리아는 어제 성내를 돌아다니며 있었던 일을 떠올려봤다.


루비아가 여기저기 동물이 많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반응―― 어쩌면 예상했던 그대로의 반응에 제대로 즐겼다고 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에인샤론드 씨랑 비슷했다고 해야 하나······ 어쩐지 다들 무서워하더라고요.”

“그래? 왜 그런지는 물어봤어?”

“그게 듣는 척도 안 하더라고요.”

“호······ 그거참 신기하네. 왜 그런 걸까나. 성에 있는 마수나 마물들은 다 사람을 잘 따르는데.”

“그러게요. 저도 알고―― 응?”


말을 하던 리아는 멈추고 고개를 돌려봤다.



“왜 그러니, 아이리스.”

“······.”


곁에 앉은 아이리스가 툭툭 두드리길래 물어봤지만, 입은 열지 않고 어쩐지 한숨 쉴듯한 모습으로만 있었다.



“아이리스는 네게 눈치를 준 거야.”


아이리스를 대신해 들려온 말에 리아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루비아 씨······? 근데 뭘요?”

“네가 마수들과 대화할 수 있는 걸 막 불어대니까 막으려고 한 거겠지.”

“······.”

“――아!!”


뒤늦게 반응한 리아는 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래. 그래야 리아지. 예상을 벗어나질 않는 좋은 반응이야. 하아······ 하지만 적어도 아닌 척 정도는 해라. 아, 그렇다고 지금 와서 아니라고 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고.”

“그, 그러면은······아! 진짜 어떻게 아신 거예요?”

“뭐야, 숨길 생각은 있었던 거야?”

“네······ 일단은.”


루비아는 다시 어이없어하는―― 아니다. 좀 더 심해져서 기가 차 보인다.



“너 애초에 나한테 숨길 생각도 없었잖아, 페리랑도 평범하게 자주 대화했고. 나름 몰래 하는 듯했지만, 이 내가 그걸 몰라볼 거 같아?”

“어······”

“됐어. 그만큼 날 믿어줬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앞으로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만 조심하면 되겠지. 그보다 마물과도 대화할 수는 있어?”


리아는 아이리스와 에르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에르는 뜻에 맡긴다는 듯 보였고, 아이리스도 못 말리겠다는 듯 마음대로 하라는 느낌이었다.


이에 리아는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루비아에겐 별로 숨기고 싶지 않기도 했고.



“모르겠어요. 마물과는 대화해 본 적이 없거든요.”

“음. 그렇군······ 뭐, 시도해보면 알겠지.”


루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벤치에 등을 기대 자세를 편히 했다.



“저, 루비아 씨? 그런데 여기론 어쩐 일로 부르신 거예요.”

“응? 아아. 조금만 기다려봐. 두 번 설명하긴 싫으니까 모두 모이면 말해줄게.”

“네······.”


안 한다고 하면 절대 안 할 거 같은 루비아다.


이런 그녀의 입을 열기란 불가능할 거 같으니 리아는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잠시 맑은 공기와 느긋이 흘러가는 시간을 만끽하고 있으니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이 다가왔다.



“공주님. 오셨습니다.”

“알았어요.”


사용인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리아는 바로 물어봤다.



“누가 오시는 거예요?”

“직접 봐. 저기 오네.”


리아는 자신이 왔던 방향과는 반대편을 가리키는 루비아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마력으로 누구인지를 먼저 파악해버렸다.


상대가 누구인지 안 리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넌 진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처신이 좋은 듯하면서도 어떨 때는 대담하기도 하니.”


약간 비꼬는 뉘앙스지만, 아무래도 좋다. 지금 다가오는 사람은 이 나라의 제일 높은 사람―― 국가 원수이다. 그런 사람에게 밉보일 순 없는 게 아닌가.


경직된 리아를 보며 피식 웃은 루비아가 일어서고, 아이리스도 일어나 다가오는 공왕 부부 내외, 그리고 함께 오는 라프리트도 맞이했다.


‘라프리트 씨? 같이 식사라도 하셨나.’


의아하게 라프리트를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그란 공왕도 이쪽을 의아하게 쳐다본다.



“잘 쉬었는가.”


물어보는 말에 리아는 대표로 나서서 답했다.



“네, 넵! 배려해주신 덕에 어젯밤은 정말 편히 보냈습니다!”

“그런가. 다행이구료.”


적당히 말을 나눈 그란은 바로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루비아를 쳐다봤다.



“그럼 이제부터 모두를 불러 모은 이유를 말해줄게.”


모두를 쭈욱 둘러본 루비아는 환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사실 별거 아니야. 리아, 너 여기 우리 근위대장 디카이로트 경과 대련해봐.”

“······네?! 가, 갑자기요?!”


비단 자신만 놀란 건 아닌가 보다. 라프리트와 공왕 부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루비아를 바라봤고, 대련 상대로 불린 디카이로트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시선을 향했다.


황당한 말에 라프리트는 루비아에게 다가와 우리들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루, 루비아 님. 정말 갑자기 어인 일로 리아 양과 근위대장님을?”

“아~ 우리 부모님들이 막상 해충들과 제대로 붙으려고 하니 겁이 나나 봐. 그래서 대충 안심 좀 시켜주려 한 것도 있긴 한데······.”


라프리트와 달리 전혀 목소리를 낮추지 않던 루비아는 말을 멈추고는 리아를 쳐다봤다. 이 일의 개요를 전혀 듣지 못했는지 눈을 휘둥그레 뜬 공왕 부부를 무시한 채로.



“실은 나도 궁금해서. 리아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리모르랑 싸웠다는 말은 듣긴 했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진 못했잖아? 그래서 보고 싶은 거지.”

“그런······ 이유로요?”

“쯧쯧. 라프리트, 한 번 더 생각해봐. 수중에 있는 패가 어느 정도의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면 어떨 거 같아?”


가르치는 듯한 말에 순간 라프리트의 눈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지만, 곧 루비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는지 눈을 가늘게 하곤 진정했다.


라프리트가 수긍하며 한 발짝 물러나자, 갑자기 대련의 당사자가 된 디카이로트 근위대장이 말을 걸었다.



“공주 전하. 이스피리아 님과 그······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응? 디카이로트 경은 그리모르 교수를 모르시나요? 예전엔 상당히 유명했던 모험가로 길드 마스터직을 역임했었다는데.”


디카이로트는 고개를 꼬더니 고민했다. 그러다 떠올렸는지 눈이 살짝 커졌다.



“아하! 아네픽시르 중앙지부의 그 폭주하는――. 그자와······ 이스피리아 님이?”

“네. 교내에서 전파된 소문에 의하면 리아가 그리모르 교수와 대련하여 흠씬 두들겨 패서 울려버렸다는군요.”

“그 그리모르를?! 은퇴했다지만 A랭크――”


놀라 소리치는 디카이로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루, 루비아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선생님을 두들겨 팼다니요!”

“소문이 그렇다는 거야. 나도 레딧츠를 통해서 들었어. 그런데 네가 왜 모르냐―― 아항, 차마 본인 앞에서 떠들 순 없어서 듣지 못한 모양이네.”


혼자 납득하는 루비아를 내버려 두고 리아는 진위를 확인하려 레딧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아의 시선을 받자 레딧츠는 바로 대답해줬다.



“평소 그리모르 교수에게 불만이 쌓였는지 실제 목격한 자들이 그리 퍼뜨린 모양입니다. 현재 교내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이는 자가 태반입니다.”

“어, 어어······얼마큼 소문이 퍼져있는 건가요?”

“워낙 목격자도 많았으니 추정하기로는 학생들 말고도 교직원 사이에서도 말이 돌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정도로 퍼져있다면 조만간 베르다드 전체에 퍼져나가는 건 시간문제이지 않을까.


굳은 표정으로 어떻게 저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종식해야 하나, 고민하려던 리아는 눈앞에 있는 공왕 부부가 눈에 띄었다. 둘은 놀람을 숨기지도 않은 채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뒤에 있던 디카이로트도 경악하는 눈을 그대로 보내왔다.


그리고 라프리트는―― 어색하게 눈을 피했다. 안네도 함께.


‘두, 두 분은 들으신 적이 있었구나. 여······역시! 그래! 라프리트 씨는 마음이 착하셔! 안네 씨도! 난 정말 좋은 분들과 친해진 거야.’


자포자기한 듯 리아는 괜한 곳에 주의를 돌렸다만······


실은 알고 있었다.


――교내 전체에 퍼져있을 거 같은 소문의 종식 따윈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앞으로도 소문은 무럭무럭 자라날 거다. 여기저기 살이 뒤룩뒤룩 붙어서.


순간 최후의 보루로 에르의 마법에 의지하면 한방에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만······ 그렇게까지 하는 건 아무래도 좀 그랬다. 가능할는지도 모르겠고.


덕분에 공왕 부부라든가 디카이로트에게 오해를 풀 힘도 안 났다.



“그게 그렇게 충격이야?”

“당연하죠! 제가 그런 마초남을 울려버렸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절 무서워할 거 아니에요!”

“아~ 거기가 문제야?”

“그럼요! 아무도 저랑 친해지지 않으려 할 거라구요!”

“저 소문이 없어도 한동안은 친근하게 굴 용자는 별로 없어 보이는데······ 어쨌거나 진정해. 만약 그렇게 되면 내가 적당히 돌봐줄 테니까.”

“······.”

“뭐. 불만이야?”

“아, 아뇨······ 고, 고마워요.”


루비아가 돌봐준다는 모습이 전혀 상상이 안 돼 떨떠름했는데 역시 들킨 모양이다.


리아는 매섭게 노려보는 부담스러운 눈빛을 피해 슬금슬금 에르의 뒤로 이동했다.



“하아······ 나중에 벌충하기로 하고. 디카이로트 경도 괜찮으시겠죠?”

“하, 하지만 정말······”

“음.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죠. 리아!”


리아는 에르 뒤에서 옷깃을 붙잡은 채로 얼굴만 슬쩍 내밀었다.



“네······”

“······.”

“······.”

“뭐라 하고 싶지만 네가 어울려주는 거니 넘어갈게. 그보다 너, 디카이로트 경과 대련해봐도 문제없지?”


리아는 걱정이 한가득인 디카이로트를 살펴봤다.


――저 정도라면 문제없지 않을까.



“으음······ 네. 괜찮을 거 같아요.”

“호오――”

“응? 뭐라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바로 준비해 우린 여기서 보고 있을게. 아, 검 필요하지? 받아 가.”


고개를 끄덕인 리아는 에르의 뒤에서 나와 미리 준비했는지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있는 디카이로트에게 다가갔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잘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디카이로트의 얼굴에선 걱정이 떨어지지 않았다. 공주의 명이기도 하니 차마 못 한다고는 할 수도 없고.


영 내켜 하지 않는 그의 심성 좋아 보이는 모습에 리아는 슬쩍 얼굴을 가깝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말했다.



“서로 루비아 씨에게 휘둘리느라 고생이네요.”

“그, 그렇―― 허헙!”


황급히 입을 틀어막은 그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아마 들렸나 확인하려 한 것일 거다.


‘본인도 무심코 동의했으니 불경죄라든가 걱정하는 거려나.’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루비아의 위치는 제대로 확인했고, 안 들릴 정도로 조절했다. 그리고 실제 루비아가 들었다 한들 의외로 그녀는 털털하니 넘어가 줄 거라 생각한다. 잘못하면 무서운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디카이로트도 공왕 부부와 함께 벤치에 앉아 관람을 준비하는 루비아를 보곤 안심했는지 작게 숨을 내쉬었다.



“허흠······ 그럼, 가시죠.”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디카이로트와 연병장―― 크기로 보자면 베르다드의 연무장 반 정도 되는 이곳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적당히 20m쯤 거리를 두고 마주 선 리아는 찬찬히 디카이로트를 살펴봤다.


‘잘 생겼네. 근위대장은 얼굴 보고 뽑나?’


왕의 곁에서 계속 따라다니는 사람이니 외모도 평가 요소 중의 하나가 아닐까. 물론 그것만으로 근위대장을 뽑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나름대로 반영될 거 같았다.


왕의 곁을 수호하는 꽃미남 기사――


좋은 그림이다.


쓸데없는 평가였지만 마음에 든 리아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이번엔 제대로 디카이로트를 바라봤다.


아직 좀 딱딱하긴 했지만, 루비아로 한 농담이 통했는지 확실히 긴장이나 걱정으로 인해 굳었던 몸이 좀 풀어진 듯했다.


‘다행이야.’


이유야 뭐든 간에 공국의 근위대장이라는―― 무력으로는 한 나라의 상위에 들어가는 사람과 대련할 기회다. 쉽게 찾아올 기회가 아닌 걸 알기에 기왕이면 최선을 다하는 디카이로트와 마주하고 싶었다.


아직도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대련하다 보면 슬슬 제 실력을 내겠지.


기대감이랄까, 슬슬 기분 좋게 뛰어가는 심장을 느끼며 리아는 검을 뽑았다.


‘좀······ 짧은가.’


학원에서 자주 빌리는 검보다 두 뺨 정도는 짧았다. 두께는 비슷했지만.


하지만 검의 전체적인 품질만은 뛰어나서, 무게 중심도 중앙에서 조금 밑 정도로 너무 처지지도 않았고 딱 적절했다. 강도 또한 얼추 느끼기에 2배 정도는 단단해 보였다.


‘영 애매하긴 하지만 이 정도로라면 쉽게 망가지진 않으려나.’


자신의 검만을 쓸 땐 몰랐지만, 의외로 검이란―― 쇠붙이란 금속은 꽤나 말랑말랑 무른 거였다.


――살짝 힘 좀 줬을 뿐인데 찌그러질 정도로.


무협 영화에서는 평범한 쇠칼로 산을 가르고 하던데 순 말도 안 되는 과장이다 못해, 실제 판타지 세계에서도 통용되지 않을 판타지보다 더한 판타지였다.


상식과 마찬가지다. 평범한 쇠칼로는 산을 가르기 이전에 절대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다.


장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직접 해봤으니까.


산은커녕 단단한 암석에 부딪히는 순간 칼날이 댕강이다.


마력을 주입해도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확신도 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직접 시험해봤으니까.


쇠―― 금속은 자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마력이 한정되어있었다. 즉 강도의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이상 억지로 집어넣을 수도 있었으나, 그러면 몸에 억지로 마력을 담는 것과 같은 결과가······ 쇠가 흩날리면서 폭발하는 참사가 벌어졌었다.


‘그 폭발은 마치 수류탄이나 크레모아 같았었지······ 그땐 참······ 아팠었어.’


그 사건 이후로 신체가 안정되고 어느 정도 쌓여왔던 자신감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지만, 그래도 덕분에 자신의 검을 준비하려는 생각에 이르게 됐으니 나름 전화위복이었다.


하지만 무른 검도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학원에 와서 검을 빌려 쓰다 보니 알게 된 것이지만, 무른 검의 최대 장점은 섬세한 훈련에는 제격이란 것이다.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심리적――돈이 없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자연스레 정교한 움직임을 강요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러나 암만 좋다 하더라도 계속하면 질리―― 아니다, 이 경우엔 검이 손상되지 않도록 집중해야 하니 신경이 긁혀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게 지속되어가니 자신도 모르게 쌓이고 쌓여 마침 좀이 쑤시던 참이었다.


때마침 이라고 해도 좋았다. 왠지 모를 해방감까지 느낀다.



“몸 좀 풀어도 될까요?”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학원에서 빌리는 검보다는 짧다곤 하지만 리아의 신장에는 맞지 않는 길이였다.


그래서 익숙해지려 한 것인데, 디카이로트는 그리모르가 첫 수업에서 보였던 것과 비슷하게 안절부절못하는 낌새로 있었다.


‘뭐, 별일 아니겠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리아는 검을 좌에서 우로 휘둘렀다.


핑!


날카롭게―― 공간을 가른 듯 착각이 이는 소리가 퍼졌다.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어우. 놀래라. 예상보다도 아주 가볍네. 역시 준비운동은 필요해. 자칫 실수해서 큰일 날 뻔했어.’


단순 길이가 조금 짧아진 거뿐인데 체감상 느껴지는 건 배 이상이었다.


조금 무거운 나뭇가지를 든 느낌은 영 익숙해지지 않지만, 그래도 방금 연습으로 휘두를 때 필요한 힘을 알았기에 컨트롤 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한 리아는 한 손으로 검을 쥐고 힘을 쭉 뺀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이제 준비됐어요! 시작하셔도 괜찮아요!”

“······아, 아! 예! 알겠습니다.”


어쩐지 그리모르 때처럼 디카이로트도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표정이 진지해졌다. 자세라든가 취하지 않아도 괜찮냐는 말도 없었다.


‘아마도 대충하면 상대에게 실례라 생각하신 거겠지. 그보다 처음은······ 라프리트 씨가 하시던 검법으로 해볼까. 분석만 해놨지 실제로 해본 적은 없으니.’


두근두근하는 심정으로 리아는 먼저 발걸음을 옮겨 선공에 나섰다.







한 발, 두 발――


단 두 걸음만으로 디카이로트에게 접근한 리아는 허리를 향해 검을 찔렀다.


그런 리아가 생각보다도 빨랐는지 디카이로트는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근위대장의 자리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침착하게 왼발을 뒤로 빼면서 리아의 검을 완벽히 막아냈다. 그런데 예상보다도 일격이 무거웠는지 디카이로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결국 반격에는 이르지 못하고 한 박자 늦어진 틈에 재차 리아의 공격이 이어졌다.


왼손의 상완, 오른손의 이두, 오른쪽 허벅지, 왼쪽 정강이, 다시 왼쪽 손목.


한 번의 기회를 놓친 대가는 컸다. 다양하게 파고들어 찌르는 리아의 공격을 디카이로트는 막기에 급급했다. 처음 걱정하며 손대중하려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니지. 그런 건 처음 연습한다며 휘두를 때부터 없어졌던가. 그렇지만 설마 강하다고는 해도 디카이로트 경을 이리 압도할 줄은 몰랐네.’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속도에 디카이로트가 당황하여 힘을 못 쓰는가 싶었지만,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지긴커녕 점차 막기도 벅차지는 듯 보인다.


간간이 이대로 계속 공격만 당할 순 없었는지 반격하려 틈을 보는 듯도 했으나, 리아의 작은 체구 때문에 노리기 쉽지 않은지 섣불리 손을 뻗지 못했다.


이와는 반대로 물 만난 고기처럼―― 드레스 차림이라는 건 안중에도 없는지, 리아는 빠르게 움직이며 한 손에 든 검을 찌르거나 휘둘러 견제하고 있었다.



“저건······”

“왜, 라프리트.”

“아, 아뇨······ 리아 양이 지금 하는 검술이 눈에 익어서요.”

“익숙하다고?”

“네······ 제가 배운 검술이에요. 다만 원래 얇고 가벼운 검으로 시연하는 검술인데 구성이나 연계 동작을 손보셨는지 제법 간결하게 바뀌었어요.”

“네가 가르치기라도 한 거야?”

“그런 적은 없는데······ 리아 양은 처음 저와 대련하면서부터 곧장 따라 하시긴 했어요.”

“흐음. 그래?”


‘격투술 수업 때 대련했다면······ 대충 4번 정도. 그거만으로 따라 하는 걸 넘어 변형까지 했다면 나름 굉장한 재능······인가?’


검술 같은―― 몸을 써 무언갈 하는 거완 연관이 없는 루비아로서는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마법의 술식을 보고 바로 따라 하는 거라고, 마법으로 비유하면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레딧츠. 네가 보기엔 어때?”

“한 달여 만에. 그것도 제대로 배운 게 아님을 고려한다면······”

“그러네. 고작 그 시간만으로 우리나라의 근위대장을 압도할 정도면.”

“다만――”


이 정도라면 자신이 제압 가능한 수준이다―― 라며 레딧츠는 눈으로 전해왔다.


‘그렇다는 건 전력이 아니라는 거지······ 뭐, 보면 알겠다만. 하~ 쟨 진짜 날 놀래주는 재주가 좋아.’


묘한 감탄을 할 때였다.


쾅!!!


진동을 동반한 큰 소리가 났다.


생각을 접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디카이로트가 날아가고 있는 참이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검술을 바꾸신 모양입니다. 이번엔 전과 달리 강한 일격들에 중점을 둔 검술 같습니다만. 디카이로트 님께서 방비를 굳히기 전에 공격이 먼저 들어와 다리가 떨어지셨습니다.”

“그런 거야 보면 알아. 그거보다 검으로 반쯤 중무장인 성인을 저리 날릴 수도 있어?”

“강검사인 경우 그러한 일도 있습니다만······ 상당히 강한 일격이었나 봅니다. 꽤나 호쾌하게 날아가시는군요.”


근위대장에게 내린 감상평치고는 좀 그랬지만, 사실이기도 한지라 아무도 레딧츠에게 눈총을 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레딧츠에게 눈총을 줄 만한 사람―― 그란과 레이니는 놀라움이 가득해져선 대련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보다 이걸 대련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7m쯤을 날아간 디카이로트는 공중에서 용케도 자세를 바로잡아 안정적으로 착지해냈으나, 그 이후로도 회피 일변도―― 훙훙 매서운 소리가 나는 리아의 일격을 정면으로 막기엔 부담스러운지 되도록 흘리기에 치중했으며 변변찮은 대항은 하질 못했다.


그나마 명중하는 공격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과연 근위대장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검이라는 것도 꽤 심오한 영역인가 봐.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성질이 변하기도 하고 말이지. 하지만······ 너무 일방적이라 그만 끝내야 하나. 대충 볼 것도 다 본 거 같은데.”

“――아니다. 좀 더 지켜보거라.”


여태 레이니와 조용히 관람만 하고 있던 그란이 말했다.



“우리 루 몬테르의 근위대장이 한낱 16살의 여식에게 그저 당할 뿐인 한심한 자라고 생각하느냐. 너도 완벽해 보이면서 이러한 것엔 조금 부족하구나.”

“무슨 소린데?”


약간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목소리를 낮게 깔았으나, 그란은 관심조차 없는지 짧게 대꾸할 뿐이었다.


“난 바쁘다. 네 가신에게 묻거라.”


원래부터 전혀 눈을 떼고 있지 않았지만, 저 말을 끝으로 그란은 정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으니 루비아는 레딧츠를 쳐다봤다.



“디카이로트 님께선 지금 전력을 다하신 게 아닙니다.”

“음······ 그럼 굳이 저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필요가 있어?”

“아마 고민하시는 듯합니다. 그······ 이스피리아 님의 외견이 저러시니.”

“······.”


레딧츠가 하는 말은 이거다.


――꼬마한테 차마 어른이 전력을 다할 수 없다고.


리아를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닐 거다. 지금도 밀리고 있는데 무시를 어떻게 하겠는가.


다만 기사로서, 어른으로서의 가치관이 꼬맹이처럼 보이는 리아에게 전력을 다하는 건 좀 어떤가 싶은 모양이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게 또 어렸을 때부터 보아오던 디카이로트 다운 모습이긴 했다.


그래서 이해는 하겠는데······



“진짜 바보네······”


무심코 속마음이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제 마음을 정하신 거 같습니다.”


레딧츠의 말에 자세히 디카이로트를 살펴보니, 그는 정말 진지한 눈이―― 한 명의 기사가 되어 있었다. 이제 리아를 단순 아이 취급하지 않기로 한 듯하다.


그런 디카이로트는 강자라 인정하는 분위기마저 풍기며 처음으로 리아의 검을 정면으로 가로막았다.



“[철벽]!”


키이이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여태 거침없이 나아가던 리아의 검이 거대한 방패에 막힌 듯 우뚝 멈춰졌다.


리아도 상당히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 틈을 타 디카이로트는 그대로 검을 밀어 리아를 날려버렸다.


보기에도 가벼운 리아는 저항하지 못하고―― 아니다, 사태를 보고 싶었는지 흐름에 맡겨 스스로 뒤로 물러났다.


서로의 거리가 처음 시작하기 전만큼 떨어지게 되고, 리아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디카이로트는 다시 외쳤다.



“[전능력증강], [반응보조], [예측시야].”


말을 끝마친 디카이로트는 보기에도 한결 몸이 가벼워진 듯했다.



“그렇군. 투기술이 있었나. 하지만 암만 투기술을 쓴다 한들 달라질 게 있어?”


――라고,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으면 분명 그리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떨어진 이 거리에서도 강한 마력의 파동을 뿌리며 쩌릿쩌릿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디카이로트를 보노라면 그런 말은 나오질 않았다.


‘이거 내 생각을 수정할 필요가 있겠는데. 투기술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겠어. 마법에 비하면 애들 장난 정도의 기술로 여겼는데 말이야······ 그렇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조금 전과는 완전 딴판인 기척을 풍기는 디카이로트를 보고 왜 그란이 좀 더 지켜보라 한지 잘 알 수 있었다. 정말 귀찮지만, 앞으론 무예라는 것도 눈여겨봐야겠다 싶을 정도로.


그런데······


그에 비해 지금 막 땅에 다리가 닿은 리아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시련을 넘은 자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손을 잡고 있어도 마력의 잔재조차 느낄 수 없었지만, 격렬한 대련 중인 이 순간에도 여전했다.


‘생각할 수 있는 거라면――’


카앙!!!


떠오르는 가능성을 정리하던 루비아의 고뇌는 다시 부딪치는 둘로 인해 끊어졌다.






설마 투기술이라는 변수가 이리도 클 줄이야.


처음 검을 맞대고 디카이로트는 기본적인 기술이나 그 완성도 측면, 육체적인 능력 면에서도 그리모르보다는 상당히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건 완전한 오인이었다.


그리고 새삼 마력레벨―― 마력량이라는 게 전투에 중요 요소긴 하지만, 절대 핵심은 되지 못한다는 걸 명확하게 다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암만 마력이 많더라도 정작 투기술이나 마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단순히 육체가 어느 정도 튼튼해질 뿐이니까.’


덤으로 근접전투 위주인 사람은 육체적인 능력 또한 뒷받침되어야 투기술로 인한 능력 향상의 혜택을 더욱 많이 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역시 내 마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게 훈련한 건 잘한 행동이었어. 솔직히 꽤 아슬아슬한 순간들은 많았지만.’


쿵.


힘껏 발을 디디는 소리가 났다.


생각을 멈춘 리아는 검을 휘둘렀다.


카앙!!


완벽하게 공격이 막혔지만 디카이로트는 예상했다는 듯 바로 검을 돌려 어깻죽지를 노려왔다.


――강하다.


투기술을 사용한 이후 힘과 속도는 물론이고 반사신경과 행동을 예측하는 것까지. 확연히 달라진 디카이로트는 이전 대련해봤던 그리모르보다도 강했다.


물론 그리모르는 그때 투기술을 사용하지 않아 둘 중 누가 더 강한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려치는 디카이로트의 일격은―― 오랜 시간 동안 훈련해온 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일격은 강하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투기술을 사용 전보다는 체감상 6배 이상은 강해진 기분이다.


동시에――


――약하다.


이게 마력레벨 200에 도달한―― 인간들 중 상위에 들어간다는 사람의 전투력이란 말인가.


아연실색할 정도로 약하다.


그렇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베르다드 학원에 왔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 이명도 있다던 강자 축에 들어가는 바지탄스가 나에게 자그마한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인간은 약하다고.


자신 또한 인간이건만 상당히 오만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 사람의 상황이 그렇다.


바지탄스들이 온 도시 이베시온은 몬스터의 군대로 인해 멸망했지만, 실질적으론 단 한 마리의 마물을 막지 못해 벌어진 일. 단 한 개체에 수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이었던 거다.


그뿐만이 아니다.


산속에 있을 때 자주 덤벼들던 강아지조차도 여태 만나왔던 강자들―― 그리모르, 레딧츠, 여기 디카이로트와 바지탄스들을 포함한 마족 주민 전원이 맞서 싸워도 절대 이기지 못할 상대였다.


더 가까운 예시는 비젠탈이다.


비젠탈 또한 방금 언급한 모든 인원이 달려든다 한들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고 순살일 거다.


이렇듯 이 세계의 생태계에서 하위에 머물지 않을까 싶은 게 현재 자신이 보아온 사람의 위치였다.


그런데 문제는······ 적이 다른 종족만 있는 게 아닌, 같은 동족인 인간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데 만약 상대―― 일신성단과 심판관이라는 자들이 심상마법을 사용하는 데다, 투기술을 이용한 근접전투에도 능하다면?


그렇다면 일단 마법이 장기인 마법사는 그들과 대항하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술식마법의 전투에서의 한계는 명확하니.


그나마 투기술만큼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으니 어느 정도 대항은 가능하겠다만, 투기술과 심상마법 모두 능숙한 사람에게 닿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모든 걸 뛰어넘을 만큼 실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면 또 모르지만, 마력의 압축조차 모르던 이들이다. 인제 와서 뒤늦게 배운다 한들 처음부터 마력의 압축을 익혀온 자들과는 숙련도 면에서 차이가 날 거다.


분명 일신성단과 심판관보다 더 뛰어나 지긴 어렵겠지.


물론 이 모든 건 자신의 상상이다. 그 특활공작부대가 심상마법을 사용한다든가 시련이라 불리는 마력레벨 300의 고지―― 마력의 압축을 할 수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묘한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적어도 심판관만큼은 반드시.


그러니 아군이 될 이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맞상대할 그들이 얼마큼 강한지. 당신들은 얼마큼 강해져야 하는지를.


순간 머리를 맑게 한 리아는 상단에서 배어들어 오는 검을 막아 떨어뜨리지 않게 붙이고는 강하게 밀쳤다.


계속 맞춰줬던 것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갑자기 실으니 디카이로트는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붕 떠 거리를 벌리게 되었다.


노린 대로 떨어지게 되자 리아는 들고 있던 검을 손에서 놓았다. 그러자 디카이로트가 의아한 눈을 했지만 리아는 개의치 않고 외쳤다.



“에르!”


그저 이름만 불렀을 뿐이지만, 아이리스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에르는 이해해준 듯―― 검을 버린 순간에 이미 차원수납을 열고 있었다.


‘역시 에르.’


부부는 일심동체란 뜻 그대로를 체험한 리아는 감동하면서도 허공에 손이 들어간 에르를 주시했다. 그리고 곧 빼내는 에르의 손엔 거대한―― 리아 정도는 가릴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기다란 은빛 대검이 들려 있었다.


끝의 뾰족한 지점만은 금색이지만, 그 외에는 검신과 마찬가지로 은빛 일색인 검집에 들어가 있는 대검은 언뜻 보면 그냥 커다란 쇳덩이로 보인다.


그 대검을 에르는 즉시 마법으로 총알을 쏘듯 날려 보냈다. 잔상을 남기듯 빠른 속도였지만 리아에게는 오히려 좀 느리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보였다.


짧지만 기다린 끝에 도달한 대검―― 자신의 검을 리아는 몸을 한 바퀴 돌려 손잡이만 잡아 발검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돌아오는 순간에 검집을 잡았다.


드레스의 치맛자락을 펄럭거리며, 거의 한순간이라 할 찰나에 검을 바꾼 리아는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디카이로트에게 미소 지었다.



“흐름을 끊어 죄송하게 됐어요. 하지만 전력을 다하시는 근위대장님께 저만 배워갈 순 없으니 이에 응하려 했답니다. 그러니 부디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어, 어······ 아.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 써주셔 감사드립니다.”


‘이분도 정직하니 사람이 좋구나.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데 용케도 루비아 씨만 잘도 심술궂게 자랐네.’


가까웠으면 분명 이런 생각을 한걸 루비아에게 들켰겠지.


그것이 왠지 재밌어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으나 리아는 필사적으로 참아내고 검집을 천천히 땅에 내려놓았다.


쿠우웅······


살짝 내려놓았는데 무게 때문에 긴 여운을 남기는 진동이 발생했다.


‘으음. 이건 좀 불편하네, 살살 내려놔도 이러니. 아예 땅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아야 하나. ······아! 학원장실의 문! 그 문처럼 [경량]을 걸어두면 되지 않을까? 조금 조정하면 어떻게든 될 거 같은데.’


내심 골치였던 문제이니 해결하는 건 좋았지만 자세한 건 이 대련이 끝난 다음 구상하기로 하자.


잡념을 날린 리아는 처음과 똑같이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그럼 갑니다!”


작가의말

오늘의 6번째 화입니다!


아마 이게 마지막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히로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2 80 22.07.01 54 0 28쪽
81 79 22.07.01 51 1 40쪽
80 78 22.07.01 58 0 39쪽
» 77 22.06.30 58 0 39쪽
78 76 22.06.30 55 0 14쪽
77 75 22.06.30 63 0 27쪽
76 74 22.06.30 66 1 37쪽
75 73 22.06.30 59 0 19쪽
74 72 22.06.30 66 0 39쪽
73 71 22.06.30 68 1 38쪽
72 70 22.06.30 82 0 40쪽
71 69 22.06.29 72 1 40쪽
70 68 22.06.29 72 0 24쪽
69 67 22.06.29 112 1 36쪽
68 66 22.06.29 80 0 33쪽
67 65 22.06.29 82 0 21쪽
66 64 22.06.29 81 0 38쪽
65 63 22.06.29 85 0 38쪽
64 62 22.06.29 78 2 39쪽
63 61 22.06.28 77 1 23쪽
62 60 22.06.27 84 1 33쪽
61 59 22.06.27 86 0 25쪽
60 58 22.06.27 87 0 26쪽
59 57 22.06.26 100 0 35쪽
58 56 22.06.25 93 1 12쪽
57 55 22.06.25 114 1 18쪽
56 54 22.06.25 103 1 33쪽
55 53 22.06.23 102 1 26쪽
54 52 22.06.23 112 0 42쪽
53 51 22.06.23 106 0 3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