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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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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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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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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DUMMY

라프리트가 무례하게 자리를 떠난 왕성의 집무실에서 누군가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폐하.”

“아니다. 괜찮다.”


엘리아드 후작의 사과를 받은 아크티알은 천장을 잠시 바라봤다.



“이 짐에게 저리 말하고 자리를 뜰 수 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


농담처럼 가볍게 이야기를 한 말임에도 엘리아드 후작과 아즈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하. 정말로 괜찮다네. 오히려 저런 딸을 둔 자네가 부럽구먼. 내 아들놈과 바꾸고 싶은 기분이야.”


두 명 있는 왕자 중 누굴 말하는지 안 엘리아드 후작은 조금 인상을 쓰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아주 차갑고 딱딱하게 말했다.



“거절하도록 하죠. 귀여운 데다 이쁘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라프리트가 훨씬 아깝습니다.”


왕자를 낮추는 듯한 발언에도 아크티알은 파안대소했다.



“여전히 딸아이에게는 극진하구나, 엘리아드.”


자연스레 왕이라는 감투를 내려놓은 아크티알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고, 엘리아드도 그에 왕과 신하의 사이가 아닌, 형제로서 편하게 대꾸했다.



“사랑스러우니까요, 형님.”

“크큭. 아즈랄이 섭섭해하지 않겠나. 아들에게도 잘해주어야지.”


엘리아드는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로 화제가 넘어와 곤란해하는 아즈랄을 바라보곤 살짝 콧방귀를 뀌었다.



“아즈랄은 이미 성인입니다. 저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는 진작에 지났습니다.”

“그러는 라프리트도 어엿한 성인이지 않으냐?”


쳇.


엘리아드는 작게 혀를 찼다.



“아즈랄. 너도 이 아비에게 그.러.한.걸 바라느냐?”

“아, 아닙니다. 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 그런 것보다 하실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저에 대한 건 아무래도 좋으니 그쪽을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당연한 소릴 하지 마라.”


최근 골치 아픈 문제들만 생각하느라 여유가 없었던 아크티알은 이러한 둘의 모습에 유쾌하게 웃었다.


그렇게 잠시 웃던 아크티알은 주위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후에 다시 왕으로 돌아와 위엄을 갖췄다. 그 모습에 엘리아드와 아즈랄은 바짝 자신을 긴장시켰다.



“후작. 찾아본 자료는 어떠했는가?”

“예. 전승부터 고서까지 모두 뒤져보았습니다만, 암룡왕에 대한 문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른 용왕에 관한 이야기는 간간이 보였지만. 폐하께서는?”

“짐도 거의 비슷하다. 다만 왕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역사서의 한 문장에서 그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떠한······?”

“‘마법의 실패로 인한 영향이 광범위한 대지에 미치기 전, 심연처럼 어두운 드래곤이 나타나 주변 일대를 모두 쓸어버려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라고 하더군.”

“그곳은 어디입니까?”

“당시 다른 대륙과 해양 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 강대해진 나라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풀 한 포기 존재하지 않는 사막이지.”


이 대륙에서 사막은 북서쪽 끝에 있는 비탄의 초원이라 불리는 곳밖에 없다.


그런 곳에 원래 나라가 있었다니······


사막인데 왜 초원으로 불릴까 언뜻 궁금했었는데, 그 해답을 듣게 된 엘리아드는 놀란 눈으로 아크티알을 바라봤다.



“그래. 아마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 비탄의 초원이겠지.”

“그때 시기가 어떻게 됩니까?”

“역사서의 손상이 심해서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수천 년 전의 일일 거라 추측은 하고 있지만.”

“예?”

“아아. 근무 태만 같은 건 아니라네. 성에서 수백 년은 보관된 듯했다만, 보아하니 공국에서 흘러들어온 걸 당시 서기관이 시장 같은 곳에서 찾아 넣어 놓았던 모양이야.”

“그렇군요. 허나 그만한 시간이 지나고도 잡초 하나 자라지 않는다니······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알 수 있었습니까?”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려고 연구했다더군. 아마 바닷가 인근에 있던 나라이니 곡식을 재배할 토지가 부족했겠지.”

“그리고 실패했다는 거군요.”

“그렇지. 반대로 마법은 폭주하여 대지를 죽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


침묵하는 후작을 보며 아크티알은 이어 말했다.



“이 이야기는 넘어가도록 하지. 역사 공부를 하려 모인 게 아니니.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결국 아는 게 없다는 거다.”

“그렇지요. 그럼 우선 확인을 위해 제 쪽에서 먼저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음.”


무엇을 확인하기 위함인지 아는 아크티알은 말해보라 눈짓했다.



“아즈랄.”

“예.”


엘리아드에게 지목당한 아즈랄은 자신이 조사한 것들을 말했다.



“먼저 저희 영지의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예상대로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교단의 선교 활동이 늘어났다는 건가?”


아크티알의 물음에 아즈랄은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선교 활동이야 언제든지 있긴 했지만, 이번엔 확실히 그 규모나 은밀성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대담하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사제들의 자율적인 선교 활동으론 보이지 않는다는 건가?”

“예. 교단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행해지는 계획으로 판단됩니다.”

“놈들······ 그리도 돈이 좋다는 건가.”

“그것만이 아니겠지요.”


곁에서 조용히 생각하고만 있던 벨페르가 끼어들어 부연 설명을 했다.



“혼란한 상황을 만드는 목적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면 다치는 자도 많이 늘어날 테니 말이죠.”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말이냐?”

“꼭 전쟁이 일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분쟁이 늘어나기라도 한다면 그들로선 만족스럽겠지요.”

“하아······ 그 계획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게 벨루디스라는 건가?”

“그렇지요. 우리나라는 치유사에게―― 교단에게 주는 금액, 그들의 말로 표현하자면 헌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극도로 적으니 말입니다.”


겨우 그딴 이유로······


어이없음에 아크티알뿐만 아니라 엘리아드도 화가 났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한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아즈랄?”


아즈랄은 조금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 폐하나 벨페르 공작님과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자라면 그러한 일이 없을 테지만, 일반 서민들에게 요구하는 치료의 비용은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의 가격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작은 상처라면 4인 가구 기준으로 한 달 치의 생활비가, 중상이라면 나름 건실한 가계가 기울 정도의 금액을 요구합니다.”

“그 정도라면 치유를 받더라도 생계의 유지는······ 무리겠군.”

“예. 그래서 치유를 마다하고 그대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합니다.”

“벨페르. 이 이야기가 나에게 올라오지 않았던 건······”

“폐하가 생각하시는 대로. 아마 영지를 관리하는 귀족들도 한통속이겠지요.”

“알렌나시안 후작의 파벌들 말인가. 벌써 그들이 이리 깊숙이 침투해있다는 건가······”

“그것만이 아닐 겁니다. 모든 귀족이 후작의 파벌은 아니니.”


아크티알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자들도 뭔가를 대가로 입을 다물고 있다?”

“약점을 잡혔다거나, 혹은 치유를 대가로 그랬을지도요.”


벨페르의 말을 엘리아드가 덧붙여 확인시켜줬다.



“저희 영지 쪽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발견했습니다. 전부 거절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로 인해 영지에 있는 치유사들이 치료를 거절하는 사태도 일어났다고 합니다. 분가는 금방 해결할 문제 정도로 여겨 저에게 말해주지 않은 듯합니다만······ 그 아이의 말대로라면 아마 더 큰 일이 벌어지겠지요.”

“‘벨루디스의 계시’인가······.”

“그 아이는 그리 불리는 걸 싫어할 겁니다. 실제로 저희에게 알려주려는 의도도 없어 보였고, 말하는 것들도 전부 두루뭉술한 내용뿐이니.”

“신의 의지―― 운명을 어찌 한낱 인간이 알 수 있겠나. 최대한 그 의중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수밖에.”

“이번에 영지 내 교단의 움직임을 체크한 것도 그 아이―― 라프리트가 알아보려 했기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벨페르 공작님. 학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혼자 이리저리 정보를 모아 보고 있었지요.”

“나름의 정보망도 구축해놓았다는 겐가······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다지만 대단하군. 아버지로서 자랑스럽겠네.”

“말씀은 감사드립니다만······ 저를 믿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 마냥 기뻐하긴 힘들군요.”

“그도 그렇겠군······”


잠시 창문 밖에 있는 하늘을 보던 아크티알이 힘없이 입을 열었다.



“좀 더 그 아이―― 라프리트가 미래를 알고 있단 사실을 빨리 알았더라면······”


그 말을 벨페르는 즉시 반박했다.



“만약 그랬더라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을 겁니다. 지나간 일은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렇지······”


냉혹하지만 옳은 말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셔 기분을 달리한 아크티알은 아즈랄을 쳐다봤다.



“아즈랄. 오면서 보았던 다른 영지도 비슷한 상황이더냐?”

“예. 상황에 약간의 차이는 있어 보였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라프리트가 미래를 안다는 건 부정할 수도 없겠군. 하지만······ 이 문제를 대처하는 건 좀 난해하구나. 자네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잠시 고민하던 엘리아드가 말했다.



“역모나 무언가 반역의 낌새라도 드러낸다면 좀 상황이 나아질 수는 있겠습니다만······ 자체적으로 치유사를 확보하지 못한 게 뼈아픕니다.”

“실로 옳은 말이군.”


교단을 경계했음에도 정작 그들의 힘이 되는――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존재인 치유사의 확보에 소홀했었다.


그리고 그 반동이 지금 찾아온 거라 보면 씁쓸할 뿐이었다.



“너무 무책임한 발언이지만, 어쩔 수 없던 것도 사실입니다. 공국과 제국이 압박을 가하는 판국에, 내부도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건만 적을 더 늘릴 수도 없었지 않았습니까.”


아크티알은 이번에도 옳은 말만을 해주는 벨페르가 조금 얄밉게 느껴졌다. 물론 그게 재상의 역할이니 문책을 두려워하지 않고 충언을 아끼지 않는 그의 행동은 만점을 줄 수 있을 만큼 완벽한 것이긴 했다.


하지만 아크티알도 사람이기에 조금은 기분이 나빠져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는가? 인제 와서 치유사를 키우거나 발굴하자는 건가?”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괜찮은 방안으로 보입니다만,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숙청이라도 하지 않으면 단기간에 해결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자네, 설마 싶다만. 날 폭군으로 몰아가게 하고 싶은 겐가?”

“폐하가 폭군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이 나라를 지켜낼 수만 있다면 그 또한 괜찮은 방법이지 않습니까.”

“하아. 농담하지 말게. 날아가는 목이 하나둘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도 아니지 않은가.”

“흠. 농담이 실패한 모양이군요. 다만 정말 숙청도 염두에 두시길 아뢰옵니다.”

“······알았네.”


작게 숨을 내쉰 아크티알은 이야기를 정리하기로 했다.



“지금은 딱히 답이 나오지 않으니 이 문제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지.”


시급한 문제이고 마음 같아서는 관료들과 같이 밤새 회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교단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쳤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말이 새 나가는 게 두렵다.


그 뜻을 이해한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읊조렸다.


그들을 확인하며 아크티알은 무겁게 입을 열어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본론으로 넘어가서, 조금 전······ 라프리트가 알려줬듯이 그는 세상에 다섯밖에 없다는 용왕이다. 이 말에 이의 있나?”


확인하듯 묻는 말에 벨페르가 대답했다.



“리카드의 말과도 일치하니 확실할 듯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지금까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내, 이스피리아와 아들인 아이리스도 포함하여 예를 보이면서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아크티알은 엘리아드와 아즈랄의 의견도 들어보려 쳐다봤으나, 다른 말이 나올 리가 없다. 둘은 예를 표하면서 긍정했다.



“그런데······ 라프리트가 한 말은 무슨 의미로 보였는가?”


묻는 말에 벨페르는 라프리트가 보였던 눈빛이 떠올랐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저희에 대한 충고로 여겨지지만, 다른 한편으론 경고······이지 않을까 합니다. 혹은 위협이거나.”

“우리가······ 무언가 일을 저지른다고?”

“상황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저희, 아니면 저희 중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게 해를 끼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대가가 돌아온다’라고 해석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스피리아를 말하는 거겠지. 그리고 그로 인해 대가라······ 보복을 당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미 그녀를 비롯한 일행들 모두에게 자신들은 조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뭔가 저지를 것이란 상상이 들기나 하겠는가.


모두에게 그러한 공통된 의문이 떠올랐고, 벨페르는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알 수는 없지만, 저희의 메시아가 경고한 것이니 유의해야 할 겁니다.”

“음······ 그래야 하겠지. 용왕에게 나라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는 가운데, 아크티알은 분위기를 전환하려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들은 또 뭔가 생각나거나 궁금한 것이 없는가?”


왕이 직접 묻는 말에 아직 차기 가주의 위치밖에 안 되는 아즈랄은 딱딱하게 굳은 자세로 대답했다.



“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사옵니다. 무능하여 죄송합니다.”

“그리 긴장하지 말게. 질책하려는 것이 아니야.”

“그, 그럼······ 궁금한 게 있사옵니다.”

“뭔가?”

“영지에서 돌아오는 김에 조금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이상한 소문?”

“예······”


침을 삼킨 아즈랄은 작게 말했다.



“용사······가 벨루디스에 나타났다는 소문이옵니다.”

“······”


뜻하지 않은 말에 아크티알과 벨페르는 침묵했다.



“벨페르······”

“알고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간추리면 아마――”

“――레오노반인가. 오는 도중 들었다면······”

“곧 벨루디스 전역에 소문이 퍼지겠지요.”

“후우우······”


둘의 모습에 이야기를 꺼낸 아즈랄은 쩔쩔매고 있었으나, 그의 아버지인 엘리아드는 무심하게 물었다.



“용사라니. 그게 무엇입니까? 폐하.”

“얼마 전 리카드가 이계에서 소환한 인물이라네. 그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마왕을 무찌르거나 세계를 구할 사람이라고 떠들어댄다만.”

“마왕을?”


순간 엘리아드와 아즈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마왕은 천년이라는 단위로 마국을 다스리고 있는 패왕이었다. 그만큼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도 있겠지만, 마왕 본인이 강대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벨루디스 초대 건국왕도 이루지 못했던 일을, 듣도 보도 못한 용사라는 작자가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 따윈 조금도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비록 인마전쟁이 발발하기는 했지만, 마왕은 기본적으론 나름 온건하다는 평이었다.


지금도 침략은커녕 문고리를 완전히 틀어막은 마국이건만, 구태여 싸움을 걸 필요가 있을까?


――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게다가 세계를 구한다는 말도 너무나 추상적이었다.


무엇을, 무엇에게서 구한단 말인가?


헛소리하는, 정신 나간 사람의 말로밖에 안 들린다.


엘리아드는 이해할 수 없는 심정으로 아크티알을 바라봤다.



“왜 리카드가······”

“모른다고 하더군.”

“예?”

“리카드 본인도 그 일을 행한 이유를 모른다고 하더군. 거짓말은 아닌지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다. 소환한 방법도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게 무슨?!”

“사실로 여겨진다. 은밀히 다른 자에게도 확인해봤지만 이계에서 누군가를 소환한다는 마법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만한 일을 했으면 설비라든가 비용이 엄청났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그의 연구실에는 남겨있는 자료나 설비는 거의 없었다. 치웠던 흔적도 전혀 없었고.”

“······.”

“리카드 공은······ 치유사들이 설치는 이러한 상황을 몰랐던 걸까요······”


혼잣말할 셈이었겠지만, 조용했던 실내에는 크게 울렸다.


다들 말을 꺼낸 아즈랄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아니 그게······ 조금 마음에 걸려서 말입니다. 리카드 공이 아무리 학원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탐험이라든지 왕성으로의 출입도 이따금 하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리카드 공은 그것이······”

“이름만 귀족이란 말인가? 거기에 서민들과 자주 어울리니 모를 리 없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즉 리카드가 짐을 배반하려 한단 말이렷다?”

“아, 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만······”


아크티알은 벨루디스에 막대한 이점을 가져다주던 리카드를 의심하는 말에 인상을 썼으나······ 영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니 의문이 들었다.


얼마 전에 리카드는 왕성에 방문했었다. 그때 말해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즈랄의 말마따나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치유사의 만행이 널리 펴져 있다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런 심중을 읽은 건지 벨페르도 이견을 드러냈다.



“싫어하실 것만이 아닙니다, 폐하. 생각해보면 용왕의 일행이 온 타이밍도 기묘하지 않습니까. 만약 리카드가 벨루디스를 배반한다면 그 피해는―― 저희의 예상보다 더 엄청날 겁니다.”


잠시 말이 없던 아크티알은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짐은······ 리카드를 의심하고 싶지 않다. 혹여 짐에게 숨기고 무언가 일을 진행하더라도 말이다.”

“······.”

“하지만 그대들의 걱정도 지당하니······”


한 번 숨을 멈춘 아크티알은 왕으로서 각오를 다지고 말했다.



“리카드가 묘한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지 감시하도록 하라.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들을 선별하도록.”


별것 아닌 이 명령조차 리카드를 굳게 믿는 아크티알이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이자, 단호한 결정이었다.


이를 알기에 벨페르 또한 더 이상 다른 의견은 보이지 않고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겠다 표현했다.


이것을 끝으로 집무실은 무겁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를 아무것도 없는 공간.


허무의 공간에서 보고 있던 여성은 반대로 날뛰고 기뻐하며, 이 이야기를 꺼낸 아즈랄에게 축복이라도 내려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늘의 2번째 화입니다!


3번째도 아마 올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잠시 후에 또 뵙도록 하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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