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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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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5,842
추천수 :
181
글자수 :
172,566

작성
12.02.18 18:03
조회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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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1. 차별없는 사랑 - 2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D - 7


첫소개를 마치고 유레아가 식사를 가져다주고, 다시 시시한 잡담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왜 죽으려고 하는건데?"

"신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지 못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 나말고 다른 수녀한테 하지마. 다섯시간 정도 너를 교화시키려고 성전을 읊을테니까."

"저는 별 상관 없습니다만."

"나까지 들어야되니까 그렇지."

사바아다는 계속 옆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소녀가 이성의 노골적인 시선을 받으면 부끄러워할 법도 하건만 그녀는 그냥 똑같이 마주보는 것으로 대응했다.

"내가 쉬는데 문제라도 있어?"

"할 일이 없나보죠?"

"응, 여긴 변방이니까. 수녀도 나 포함해서 세 명 정도밖에 없고. 가끔 꼬맹이들이 놀러오는 정도야. 그래도 난폭한 녀석들이 없으니까 편하지."

하지만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사바아다는 처음으로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녀는 저 석고상도 표정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상하군요."

"확실히 이상한 수녀지."

"당신의 시간을 엿볼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엿본다'는 표현은 흔히 점술사들이 사람의 미래를 점쳐본다는 뜻으로 쓰였다.

"너 점쟁이었어?"

"전 신께 편애를 받은 탓에 만물의 시간을 꿰뚫어 볼 수 있답니다. 과거와 미래까지."

"그럼 내가 오늘 저녁에 무얼 먹을지 말해봐."

"그러니까 당신의 시간이 제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하군요. 유독 당신만 그렇습니다."

꽤나 당황한 모양인지 그는 유레아의 얼굴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물론 유레아의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안 놓으면 내가 친히 널 죽여주겠어."

"그러면 감사하겠습니다만."

사바아다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유레아를 놓아주었다.

"아무래도 죽을 수는 없거든요."

"그럼 자살하지를 말든가."

"사람이든 신이든 괴로울 때가 있으면 죽고싶어지는건 같죠."

"아, 그러세요."

유레아는 언짢은 듯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 요란하게 문을 닫고 나갔다.

갑자기 방이 적막해졌다. 하지만 사바아다는 유레아가 있으나 없으나 평소처럼 바르게 앉아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 '생각에 잠긴다'는 뜻은 곧 '신과 마주한다는 뜻'과 같다.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의 마음 속으로 한발 내딛는다.

그러자...

세계가 나를 맞이한다.

연금술사들이 그리도 갈구하는 세상의 진리라는 것이 바로 이곳 천지에 널려있다.

이곳에는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탄생과 죽음이.

선과 악이.

과거와 미래가.

너무나 당연하고, 아무도 모르는 것들이 이곳에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나같은 한낱 피조물에게, 이 방대한 진실은 수십톤의 바위를 머리위에 얹은 것과 같다. 아니, 끝없이 팽창하는 것이 내 머릿속에 있어 언젠가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감각이다.

이것들은 모든 인간들의 진리이니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수만큼 이곳도 불어난다. 그러니 내 연약한 육신은 견뎌낼 수가 없다.

신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기에 신이다.

이 괴리감을 이해할 수나 있겠는가.

나는 분명 신이라 여기고 있는데 신으로써 존재하기에는 너무 약한 존재라는 괴리감을, 모멸감을.

하지만, 이곳에서도 오직 나만의 것이 있다.

- 인간을 이해하라. -

나만을 위해 주어진 사명.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나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D - 6


사바아다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눈앞이 뿌얗다. 얼마나 오랫동안 감고있던걸까. 그곳과 이곳은 시간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직접 확인해봐야 한다.

그런데 눈앞에 무언가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흐려졌다고는 하지만 눈을 감기 전에 보았던 수도원 벽을 기억하지 못할리는 없었다.

다시 두어번 눈을 깜빡이고 자세히 바라보자...

유레아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그의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지금이 몇 시인가요?"

"새벽 8시."

"으음, 하루가 꼬박 지나갔군요."

"너... 왠지 내가 나갔을 떄랑 똑같은 자세를 하고 있는걸? 설마 그 자세 그대로 잤다는건 아니겠지?"

"그렇습니다만."

이번에는 유레아가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꽉 잡고 으르렁거렸다. 그렇다해도 위협이라기보다는 귀엽다는 느낌이 더 강했지만.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몰라?"

"자살하려다가 실패했기 때문이지요."

"그럼 네가 쉬어야돼? 그러고 있어야돼?"

"말했다시피 전 신에게 총애를 받아서..."

"이. 곳. 은! 네가 어떤 신을 믿든 그 신에게서 총애를 받든 아무래도 상관없어. 여기에서는!!"

그녀는 그의 얼굴을 확 밀쳐내고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언저리를 꾹 누르며 외쳤다.

"내가 신이야!!"

대체 이 당돌한 수녀의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까. 사바아다는 생애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화신의 얼빠진 표정이라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앞에 두고도 소녀는 그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듯 한쪽 뺨을 힘껏 잡아 주욱 늘렸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그를 손가락질하며 박장대소했다.

"푸하하하! 얼간이 같애!"

"시스터어!!"

그 때 예고없이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악귀의 형상을 한 중년의 수녀가 난입해왔다. 그것을 보고 유레아는 꼴사납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사바아다는 악귀의 수녀와 신을 자칭하는 수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가 수도원이 맞겠지? 내가 신의 능력을 의심해보는건 처음이군.'



늙은 수녀에게 질질 끌려간 유레아는 그 후로 두시간이 지나서야 사바아다의 옆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옆침대에 쓰러졌다.

"힘들어어~"

"힘드셨겠네요. 설교받느라."

"아니, 수도원 청소하고 왔어. 삭신이 쑤신다."

역시... 그녀의 시간을 볼 수는 없는가.

그는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유레아도 그의 행동을 보고 불쾌해졌는지 얼굴을 팍 구겼다.

"왜 날 보고 인상을 찡그리는데?"

"답답해서 그럽니다."

그녀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얼굴을 베개에 묻어버렸다.

"솔직히 내가 털털하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답답하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

"다른 뜻이 아닙니다. 제 눈 앞에서 세상은 발가벗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만물의 이치를 알 수 있지요. 하지만 당신은 다릅니다. 유일하게 제 앞에서 철갑을 두르고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고 할까요."

"흐응~ 알기쉬운 예네. 그리고 난 그쪽이 좋아. 누가 내가 했던 일을 들춰보거나 이제부터 할 일을 알아버리는건 싫거든."

"그런데 시스터 유에니리. 혹시 당신은 저를 사랑하십니까?"

유레아는 단칼에 그의 말을 자르고 대답했다.

"몰라."

그리고는 딱히 묻지도 않았는데 부연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좀 행동거지가 이렇잖아? 남자들한테도 막 들이대니까 오해도 많이 받더라. 좋아하냐고 묻더라고. 대답은 항상 같아. 난 남녀노소 가리지않고 사람을 보기만하면 먼저 다가가고 싶어지거든. 이 나이 먹도록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야."

"...아마 그건..."

사바아다가 그녀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다시 문이 벌컥 열리며 악귀 수녀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리고 유레아의 뒷목을 덥썩 잡고 끌다시피 데리고 갔다.

"오늘은 수녀님이 세탁할 차례가 아니던가요? 자, 빨리 움직이세요."

"아아~ 조금만 쉬게 해줘요."

"수녀 생활은 원래 고난이 있는 법이랍니다. 그것을 뛰어넘어야 신의 앞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요."

"그럼 세탁물 대신에 가시밭길을 주시던가요!"



- 인간을 이해하라.

익숙한 목소리. 동시에 매일 낯설은 목소리.

신이시여, 당신은 제게 사명을 맡긴다는 크나큰 잘못을 하셨습니다. 당신이 할 수 없던 일을 제가 어찌해낼 수 있겠습니까.

- 인간을 이해하라.

저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행복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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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1. 차별없는 사랑 - 4 +2 17.01.27 161 4 7쪽
43 1. 차별없는 사랑 - 3 +2 12.03.04 274 5 11쪽
» 1. 차별없는 사랑 - 2 +2 12.02.18 307 5 9쪽
41 1. 차별없는 사랑 - 1 +3 12.02.13 298 4 5쪽
40 0. 이야기의 시작. +4 12.02.08 304 4 6쪽
39 4. devil deal +2 12.02.03 310 7 6쪽
38 3. 아버지 - 10 end +3 12.02.02 246 4 8쪽
37 3. 아버지 - 9 +1 12.01.29 247 4 8쪽
36 3. 아버지 - 8 +1 12.01.27 295 4 10쪽
35 3. 아버지 - 7 +1 12.01.22 366 4 10쪽
34 3. 아버지 - 6 12.01.22 286 4 9쪽
33 3. 아버지 - 5 +2 12.01.19 363 3 8쪽
32 3. 아버지 - 4 +2 12.01.17 285 3 11쪽
31 3. 아버지 - 3 +2 12.01.15 257 4 6쪽
30 3. 아버지 - 2 +1 12.01.12 323 4 12쪽
29 3. 아버지 - 1 +3 12.01.10 265 3 17쪽
28 XX. 그대를 위한 누군가의 외침 +1 12.01.09 247 4 2쪽
27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9 end +2 12.01.04 237 4 5쪽
26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8 +2 12.01.03 254 4 15쪽
25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7 +1 12.01.01 243 3 14쪽
24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6 +3 11.12.30 304 4 7쪽
23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5 +2 11.12.28 260 2 9쪽
22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4 +2 11.12.27 333 6 7쪽
21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3 +1 11.12.26 231 3 7쪽
20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2 +3 11.12.24 32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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