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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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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5,860
추천수 :
181
글자수 :
172,566

작성
12.01.27 18:01
조회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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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0쪽

3. 아버지 - 8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사랑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아니 원래 있지도 않았다는 허무함에 빠져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붉은 눈물은 꺼려져서 마시지 않았고,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 성에 내가 취할 술은 차고도 넘쳤다.

매일 술독에 빠져산지 일주일쯤 지나자 하인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걱정만 태산이었다. 그들은 내 명령으로 술을 가져오면서도 꼭 두서번은 건강 좀 챙기라고 말했지만 난 조용히 타이르고 술병을 받을 뿐이었다.

어쩌면 차라리 내가 술주정이나 부렸으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걱정할 필요도 없을테니까.

그리고 라라네의 걱정은 그보다 한층 더 했다. 요즘 몸도 안 좋다는데 매일마다 말없이 방에 들어와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눈물 짓다가 다시 바라보다가 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몸이 안 좋으면 생기넘치던 눈은 축 쳐졌고, 얼굴도 파리해진 데다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 모습은 덜컹거리는 내 심장을 한순간이나마 아릿하게 했지만 그뿐이었다.

'당신은... 나의 사랑이 아니오.'

그녀가 힘들어하는 것도 전부 내 탓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내가 멋대로 착각해서 그녀를 반려로 삼은 내 탓이다. 사랑도 아닌 애매한 감정을 사랑인체하고 그녀를 끌어안은 내 탓이다. 그녀가 나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버린 내 탓이다. 그녀를 사랑으로 여기지 못하는 내 탓이다.

이도저도 내 탓이다. 모두 내 탓이다.

짧게나마 나의 사랑이었던 사람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 심장박동을 더욱 어긋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술을 들이킨다. 술을 윤활유삼아 '미르유에게 알아서 찾아온다는 사랑'이 찾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움직여달라고.


어느샌가부터 라라네가 방으로 완전히 발을 끊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아쉬워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그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그녀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고, 나의 무너진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건 잠깐뿐이었다. 하지만 나란 놈은 그렇게나 사랑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라라네의 사랑'이 얼마나 커다란지는 까맣게 잊고있던 모양이다.

내가 평소처럼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조용히 문이 열리고 라라네가 들어왔다. 그녀는 마지막에 봤을 때와는 달리 얼굴에 혈색도 좋아졌고, 눈에도 알 수 없는 강한 것이 넘실대고 있었다. 난 그것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그냥 라라네가 기운을 차렸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그걸로 좋소. 무너지는건 나 하나로 족하오.

나는 라라네가 손에 든 것을 가슴께까지 올리고나서야 그것의 존재를 눈치챘다.

바이올린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나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이올린을 팔에 올리고, 그것에 턱을 괴고 활을 높이 치켜들었다.

도대체, 그녀는, 무엇을, 하려는건가.

그녀의 몸이 가볍게 흔들리고 활이 부드럽게 현을 어루는 순간에 깨달았다.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그녀의 연주. 처음으로 내 가슴을 떨리게 만든 연주.

음악의 천사 제네렐의 축복을 받으며 함께 들었던 우리의 결혼행진곡.

전보다는 더 능숙해진 솜씨로 손끝으로 팔로 온몸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선율이 마치 나를 걱정해주는 라라네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사랑해요.'

이윽고 그녀가 연주를 맺고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말했다.

"당신의 마음은... 전달된 것 같소. 하지만... 미안하오."

잠시나마 라라네의 얼굴이 웃음을 띄는가 싶었지만 곧 다시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로 끝나지 않고 그녀는 더욱 결연한 빛을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한 마디를 남기곤 방을 나갔다.

"반드시 다음에는 당신의 마음을 돌려놓겠어요!"

아마 다시 연주를 하러 갔으리라. 나를 위해서. 그 날처럼 다시 한 번 나의 심장을 떨리게하기 위해서. 그 노력의 끝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알고 있는 나는 다만 안타까운만큼 술을 들이킬 뿐이었다.


그 이후로 라라네는 한 달이 시작하는 날에 찾아와 연주를 하러 찾아오기 시작했다. 비록 갈수록 연주는 나아져 내가 들어도 훌륭하다는 평이 나올만하게 되었지만 결코 내 심장을 다시 뛰게하는 연주를 듣지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달, 오지 않는다 싶었더니 그 이후 석달이 지나도록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다시 한 달이 지나 라라네가 연주를 하기위해 찾아오는 날이 되었다. 곁눈질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퀭한 눈구덩은 움푹패여서 마치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얼굴살이 홀쭉하게 빠져있어서 더욱 그래보였다.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있지는 않았지만 꺼끌꺼끌해보이는 데다가 삐죽삐죽 나있어서 마치 키위라는 과일의 겉표면을 연상시켰다.

이제 그만 죽을 떄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할 즈음, 갑자기 문이 열렸다. 당연히 라라네일줄 알았지만, 그곳에 서있는 건 바이올린을 들고 선 라라네가 아니라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하녀였다. 하녀는 허겁지겁 무언가를 말하려했다. 하지만 숨이 막혀서 제대로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진정해라.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라. 무슨 일이길래 그리 뛰어온거냐?"

하녀는 내 말을 듣고 손을 가슴에 얹은 다음,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훨씬 진정한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부인께서 산통을 겪고 계셔요!"

난 처음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가, 잠시 후 하녀를 제치고 부리나케 라라네의 방으로 뛰어갔다.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집사의 주도하에 하녀들이 뜨거운 물을 받아오거나 깨끗한 천을 나르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집사는 양쪽 소매를 걷고 천으로 가려진 곳 안에서 계속 라라네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라라네님. 천천히 밀어내듯 힘을 주세요. 숨을 짧게 들이쉬시고."

"으으윽! 으으으윽...!!!"

라라네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입에 천을 악물고 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접하는 그 원초적인 광경에 눈을 빼앗겨 어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얼마나 그러고 서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집사의 모습에 정신을 퍼뜩차리고 황급히 물었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보시다시피 라라네님께서 산고를 겪고 계십니다."

설마... 넉달 간 나를 찾아오지 않은 이유가?

집사는 씁쓸하면서도 조금 원망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저희가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가주님에게 찾아가셨겠지요. 조리를 하시면서도 끝까지 손에 바이올린을 잡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난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시선을 돌려 아직도 고통에 신음하는 라라네를 보았다.

"가주님. 가주님께서 라라네님을 걱정하시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시다면 지금이라도 가서 손을 잡아주십시오. 라라네님께는 세상 모두의 응원보다도 가주님의 작은 손길 하나가 더욱 크게 다가올테니까요."

나는 터덜터덜 발을 옮겼다. 집사가 말을 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그러고 싶었다. 내가 가서 라라네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왜지? 왜일까. 왜 이제와서 그녀에게 신경을 쓴단 말인가. 동정? 연민? 미안함? 아니었다.


...두근 ....두근


기대였다.

작게, 아주 작지만 몸이 느낄 수 있을만한 떨림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떨림은 분명 심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고, 이는 곧 한가지를 뜻했다.

'나의 사랑이... 저곳에.'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라라네의 바로 옆에 서 있었고, 내가 손을 뻗은 기억도 없는데 내 한 손은 그녀의 이마에, 다른 손은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라라네는 힘겹게 눈을 떠서 나를 보더니 힘없이 웃어보였다.

"여, 여보..."

"아무 말 마시오. 지금은. 무사히 이 상황을 이겨내는 것만을 생각해주시오."

"네에......"

천천히 눈을 감은 그녀에게 나는 가만히 속삭여주었다.

"여보. 비록 당신이 나의 '미르유의 사랑'은 아니나 '팜페슈가 사랑하는 사람'이오. 나의 제네렐. 음악의 천사. 제발 무사히 일어나주시오."

과연 내 말이 효과가 있던걸까, 아니면 때가 되었던걸까.

라라네는 그 이후로 2시간의 고투끝에 아이를 낳고 그대로 탈진했다. 하녀들은 피를 닦고, 땀을 닦아주느라 서두르는 사이 집사가 가만히 내게 다가왔다. 손에는 내 손보다 조금 큰 핏덩이를 안은 채였다.

그는 내게 그 핏덩이를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가주님. 아드님이십니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그것에게 손을 뻗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심장, 심장고동이... 내 전신이 심장과 하나가 된 것처럼 격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쿵 쿵 쿵 쿵


난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받아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몸 아랫쪽을 받았다. 끈적한 양수와 피로 더러워진 그것은... 내 아이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채 몸을 꿈틀거리며 우렁차게 울어대고 있었다.

그 울음이, 내 심장을 때렸고, 내 심장은 그 울음에 반응해 세차게 피를 뿜어내었다.


아,

아아...

나와 라라네의 아이.

나의... 미르유의 사랑.

드디어 찾았다.


피가 옷에 묻는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 조그만 것의 머리에 뺨을 살짝 가져다대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내 덕분에 네가 태어났고.

네 덕분에 내가 태어났단다.

자, 우리 서로 들어보자꾸나.

서로 덕에 태어난 심장의 두근거림을 들어보자꾸나.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행복하세요.

...근데 아버지 6편 조회수 왜 저런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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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0. 이야기의 시작. +4 12.02.08 305 4 6쪽
39 4. devil deal +2 12.02.03 310 7 6쪽
38 3. 아버지 - 10 end +3 12.02.02 247 4 8쪽
37 3. 아버지 - 9 +1 12.01.29 247 4 8쪽
» 3. 아버지 - 8 +1 12.01.27 296 4 10쪽
35 3. 아버지 - 7 +1 12.01.22 366 4 10쪽
34 3. 아버지 - 6 12.01.22 287 4 9쪽
33 3. 아버지 - 5 +2 12.01.19 364 3 8쪽
32 3. 아버지 - 4 +2 12.01.17 286 3 11쪽
31 3. 아버지 - 3 +2 12.01.15 257 4 6쪽
30 3. 아버지 - 2 +1 12.01.12 324 4 12쪽
29 3. 아버지 - 1 +3 12.01.10 265 3 17쪽
28 XX. 그대를 위한 누군가의 외침 +1 12.01.09 248 4 2쪽
27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9 end +2 12.01.04 237 4 5쪽
26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8 +2 12.01.03 255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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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6 +3 11.12.30 304 4 7쪽
23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5 +2 11.12.28 261 2 9쪽
22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4 +2 11.12.27 334 6 7쪽
21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3 +1 11.12.26 232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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