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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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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5,853
추천수 :
181
글자수 :
172,566

작성
11.12.26 19:47
조회
231
추천
3
글자
7쪽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3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세계에서 제일 많은 글이 모이는 인쇄소인 '광장'의 책임자답게 내겐 휴일이 없어. 도대체 글쟁이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하루종일 글을 읽고 분류해서 일을 전부 끝내도, 다음 날이 되면 책상에 새로운 글이 수북하게 쌓여있지.

그래서 언제나처럼 그 날도 책상에 눕듯 앉아서 글을 읽고 있었어.

이번에 잡은 글은 글쓴이 나름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쓰려고 한 것 같은데... 애절은 커녕 손톱만한 처절함도 느껴지지도 않는 글이었지. 결국 반 정도 읽다가 포기하고 겉장에 '좀 더 많은 습작을 써보세요.'라는 글을 남기고 다음 글을 잡을 때였어.

"형!"

내 귀여운 동생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지. 난 녀석의 환하게 빛나는 미소를 보고 왜 나를 찾아왔는지 깨달았지. 형제라서 교감이 된다던가 그런 문제가 아니야. 저 녀석이 저런 얼굴을 할 때면 항상 같은 용건으로 찾아왔으니까.

아니나다를까, 자누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새하얀 장갑을 낀 오른손으로 내게 종이뭉치를 건네주었지.

"여든일곱번째 신작이야! 읽고 감평 좀 해줘!"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콧김을 뿜는 녀석을 보고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어.

"녀석아, 겨우 한 달 전에 나한테 새로운 글이라면서 가져왔던거 기억 안나? 글을 하나 쓰는데 겨우 한 달 걸린다는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도 엄청 실례가 되는 짓이라고."

내가 방금 던져놓은 글도 글씨체가 사이에 몇 번이나 바뀐 걸로 봐서는 겨우 한두달만에 완성시킨 글은 아닐 터. 내가 하는 일은 곧 그런 노력의 흔적들을 읽고 평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 노력을 인정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어.

언젠가 매정하게 원고를 서장과 본문 서너장만 설렁설렁 읽고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다는 감평가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직접가서 그 놈 머리를 쓰레기통에 박아넣고 왔던 적도 있었지.

매일 '이야기'를 먹고사는 내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

"알겠어? 나는 사람들이 노력을 쏟아부은 글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읽고 있어. 그런 나에게 이 수많은 노력을 제쳐두고 내 귀여운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네 글을 먼저 읽어달라고 하는건 한낱 어리광일 뿐이야."

내 힐난하는 말에 자누는 금새 버림받은 강아지 마냥 고개를 푹 수그렸어. 나는 잘못한건 잘못한 줄 아는 동생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서 피식 웃어버렸어.

"거기에 두고 가. 이틀 안에 읽어볼테니까."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듯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하게 피어났지.

"응! 아, 맞아. 감평이야, 감평. 느낀 점 말해주는거 잊지마!"

자누는 뭐가그리 좋은지 싱글싱글거리며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서재로 뛰어들어갔지. 아마 책을 보면서 영감을 얻으려는 모양이었어.

내가 자누에게 노력이다 뭐다 질타하긴 했지만 실은 녀석이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지. 말했듯 나는 매일마다 노력을 읽는 사람이야. 글 하나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성의가 담겨있는지 정도는 문체에서, 사소한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낄 수 있지.

자누의 글은 겨우 한 달만에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노력과 열의가 담겨있어. 그래서 나는 녀석이 쓴 글을 높게 평가하는 편이야. 내 경험상 열의가 있다면 그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내 앞으로 훌륭한 글을 가져오기 마련이거든.

나는 곁눈질로 자누가 놓고간 글을 보았어. 마음같아서는 지금 바로 집어들고 싶었지만... 거창하게 한 마디 한 다음에 바로 잡으면 볼썽사나울 것 같아서 적어도 동생이 집에 돌아가면 보겠다 마음 먹었지.

그래서 비서에게 차를 한 잔 부탁한 다음, 다시 일을 시작했지.



꿈을 꾸었어.

그곳에 한 소년이 있었지.

소년은 같은 간격을 두고 선 돌기둥이 있는 곳에서 차갑게 식은 돌바닥 위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지.

소년은 생각했어.

지금 나의 별은 어디에 있을까.

소년은 흐리멍텅한 눈을 굴려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기 시작했어. 저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었지. 소년은 도저히 자신의 별을 찾지 못했어.

왜일까. 분명 바로 전까지만해도 내 별들이 저 하늘에 한가득 매달려있었는데, 지금은 한 개도 찾을 수가 없는걸까.

그 대답을 알고싶던 소년은 가만가만,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보기 시작했어.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무사히 밤을 지낼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을 하셨단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태초에 사람들의 마음 속을 새카만 어둠으로 채워넣으셨고, 그 안에 꿈과 사랑, 열정을 태우는 촛불로 밝히며 살아가게끔 했는데, 이 불빛에 이끌려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단다.

그래서 하느님은 마음속의 불빛을 먹고사는 이것들이 불빛을 꺼뜨리지 않도록, 마음을 밝히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도 '꿈'을 끄집어내어 하늘에 걸어놓으셨단다.


아아... 저 수많은 별들은,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었구나. 그렇다면... 내 꿈은?


얘야, 네 꿈이 흔들리고 미래가 뿌옇게 흐려질 때면 얼음이 동동 떠있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저 별하늘을 올려다보려무나.

아름답지 않니? 사람들의 꿈은 저렇게 예쁘게 반짝거린단다.


하지만... 내 꿈은 보이질 않는걸요. 그런데 내가 이 말을 어디서 봤더라?

내게 이 말을 해준 당신은 대체 누구죠?


이 의문이 들자마자 그토록 많던 별들도 소년에게서 눈을 돌리고, 달마저도 눈물에 아롱지는 것처럼 뿌옇게 흐려졌지. 마치 밤하늘이 소년을 위해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어. 하지만 소년은 손등으로 눈가를 부벼본 후에야 그 슬픔은 모두 자신의 것이었으며 하늘은 여느 때처럼 아름다운 달이 세상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

소년은 무언가에 홀린 듯 허망한 눈으로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어.

"세상은 바뀌지 않아."

그래, 세상은 바뀌지 않아.

아무리 하늘에 떠있는 꿈을 바라봐도 그것은 그저 꿈의 흔적일 뿐이야. 저 많은 별들 중 하나둘쯤 빛을 잃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아.

소년은 하늘에서 눈을 돌리고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어. 소년의 눈은 공허함이 가득했고, 눈에 비치던 별들도 모습을 감추어버렸지.

무언가를 잃어버린 소년의 머리위로는 수많은 별들이, 수많은 꿈들이, 그리고 수많은 글자들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어.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어제는 감기 때문에 골골거리느라 못 올렸네요;;
지금도 조금은 감기 기운이 있지만 많~이 괜찮아졌슴다.

행복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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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1. 차별없는 사랑 - 3 +2 12.03.04 274 5 11쪽
42 1. 차별없는 사랑 - 2 +2 12.02.18 307 5 9쪽
41 1. 차별없는 사랑 - 1 +3 12.02.13 298 4 5쪽
40 0. 이야기의 시작. +4 12.02.08 305 4 6쪽
39 4. devil deal +2 12.02.03 310 7 6쪽
38 3. 아버지 - 10 end +3 12.02.02 246 4 8쪽
37 3. 아버지 - 9 +1 12.01.29 247 4 8쪽
36 3. 아버지 - 8 +1 12.01.27 295 4 10쪽
35 3. 아버지 - 7 +1 12.01.22 366 4 10쪽
34 3. 아버지 - 6 12.01.22 286 4 9쪽
33 3. 아버지 - 5 +2 12.01.19 364 3 8쪽
32 3. 아버지 - 4 +2 12.01.17 285 3 11쪽
31 3. 아버지 - 3 +2 12.01.15 257 4 6쪽
30 3. 아버지 - 2 +1 12.01.12 323 4 12쪽
29 3. 아버지 - 1 +3 12.01.10 265 3 17쪽
28 XX. 그대를 위한 누군가의 외침 +1 12.01.09 248 4 2쪽
27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9 end +2 12.01.04 237 4 5쪽
26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8 +2 12.01.03 254 4 15쪽
25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7 +1 12.01.01 244 3 14쪽
24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6 +3 11.12.30 304 4 7쪽
23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5 +2 11.12.28 261 2 9쪽
22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4 +2 11.12.27 334 6 7쪽
»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3 +1 11.12.26 232 3 7쪽
20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2 +3 11.12.24 32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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