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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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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5,849
추천수 :
181
글자수 :
172,566

작성
12.01.19 18:38
조회
363
추천
3
글자
8쪽

3. 아버지 - 5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요 수년간 손님이라고는 양 손가락으로 꼽을만큼 사람의 왕래가 없던 미르유 가에 사람이 북적거리는 모습은 꽤나 생소했다.

한가로움에 찌들어 살던 하인들이 눈코 뜰 새없이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거나 손님을 접대하기 바빴고, 나 역시 라라네와 함께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을 웃는 낯으로 맞이해야 했다.

장담하건데, 내가 환영한 사람들 중 과반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을터다.

난 막 한 분과 악수를 끝내고 안보이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여전히 웃는 낯으로 손님을 반기며 라라네에게 속삭였다. 라라네는 일관 웃는 얼굴이었는데 나와는 달리 조금도 지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아버지는 겨우 성인식에 얼마나 일을 벌이신거지? 나를 황자라도 만들 생각이신걸까."

"뭘 그래요. 전 이보다 더한 손님도 받아본 적이 있는걸요? 저희 아버지께선 하루가 멀다하고 음악회를 여시니까요. 이 정도는 제겐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미안해. 겨우 성인식 때문에 당신을 힘들게해서."

내 말에 라라네는 조금 짖궃은 웃음을 흘리며 다정하게 내 팔을 휘어감았다.

"그러고보면 당신도 꽤나 부드러워진거 알아요?"

"내가... 부드러워졌다고?"

"그래요! 예전에는 나한테 그런 말도 안해줬잖아요? 그나마 최근에 잠자리에서 해줬고요."

고혹적인 웃음을 흘리는 라라네를 보며 나는 곤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라라네도 이렇게 복잡할 때에 오랫동안 나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인지 금새 팔을 풀고 다시 손님에게 달려갔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 가슴을 살짝 밀고 말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좀 쉬어둬요. 손님은 제가 받을테니까. 주인공은 가서 리허설이라도 하고 오세요!"

하지만 라라네는 몇걸음 가지 못하고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놀라 달려갔다.

"라라네! 무슨 일이야!"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모르겠어요. 갑자기 역한 냄새가 나서 그만... 우윽...!"

"그런 상태로 뭘하겠다는거야? 당신이나 좀 쉬어둬."

"고마워요, 미안하지만 잠깐만 쉴께요.."

하인을 불러 라라네의 몸을 부축하게 하고 계속 방문객을 받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하인들이 발벗고 나서서 내가 할 일을 대신하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나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성 안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의 무도회장과 맞먹는 소란이었다. 난 로비 뒤쪽으로 슬쩍 돌아갔다.

그리고 바깥쪽 복도에서 바로 보이는 아버지의 서재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약속하셨던대로 지금까지 옷자락 하나 내비치지 않으셨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너는 아직 사랑을 찾지 못했구나.'

난 내 가슴을 있는힘껏 움켜쥐고 서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하듯 창문을 향해 중얼거렸다.

"저는 이미 라라네 가흐르... 아니, 라라네 미르유라는 사랑을 찾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변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아버지 앞에서 직접 말할 수는 없었다. 용기나 대담성의 문제가 아니라 말을 한다해도 또 다시 내가 사랑을 찾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는다? 무엇을?

난 그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웅장한 협주곡이 로비를 가득 메운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누던 대화를 잠시 멈추고 희미하게 조명이 내리쬐는 단상 위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그 단상의 계단 앞에 나와 라라네가 다정하게 서있었다.

우리는 급하지 않게,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갔다. 라라네는 계단을 반쯤 올라오다가 고개숙여 인사하고는 그곳에서 멈췄고, 나는 그 인사를 받아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다시 계단을 올랐다.

단상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원래 아버지께서 계셔야할 자리였다. 사람들은 왜 나 홀로 단상에 있는지 잠시 의아해했지만 내가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자 받아들였다. 그만큼 성인식이라는건 가문간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난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무대 조명을 받아 시퍼렇게 선 날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나는 이 검이 가보라기에는 미흡할만큼 형편없는 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손잡이만 요란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마치 이 검이 미르유 가문의 모든 영광을 짊어진 성스러운 물건인 양 높이 치켜들고 성인서약을 시작했다.

"나, 팜페슈 미르유는 이 자리를 빌어 맹세하노라!

이 검에 깃든 가문의 영광을 이어받아 내 육신이 바스러지는 그 날까지 미르유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아갈 것을 맹세하노라!

진정한 미르유의 일원이 되어 선대를 공경하며 그들의 의지를 받들어 미르유를 위한 미르유가 될 것을 맹세하노라!"

검을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에 꽂아넣고, 라라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라라네가 천천히 나머지 계단을 올라와 나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난 무색투명한 술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더불어 술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이 자리에서 팜페슈 미르유는 미르유의 일원이 되었음을 선포한다!!"

술을 한 번에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미르유를, 미르유를.


말뿐이 아닌 진정한 미르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색투명한 술이 목을 넘어흘러와 그대로 나의 피에 고루 섞여들어갔다.

내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르유는 선택받은 일족이다.

세상은 그에게 말했다.

-미르유는 저주받은 일족이다.

하지만 두 목소리는 서로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음에도, 이어 두 목소리가 중첩되어 내 머리를 두들겼다.


-미르유는 악마를 품에 안은 일족이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나'를 되찾았다. 나는 술잔을 기울이던 그대로 움직임이 멈춰있었고, 아무도 내게 이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이어질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 라라네에게 술잔을 건네주었다. 내 상태를 알아챈 라라네가 은근슬쩍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몸이 안 좋아요?"

"아, 아니오. 그냥... 아무 것도 아니오."

난 그대로 다시 성인식을 진행하려다 불현듯 든 궁금증에 라라네에게 물었다.

"이 술... 이름이 무엇이오?"

내 물음에 라라네는 고개를 갸웃하곤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가져다주신 술이었는데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나는 힘 있는 위용을 자랑하는 검의 손잡이를 잡고 생각했다. 만약 그 때도 이 술을 마셨다면...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검을 힘차게 뽑아낸 후에는 더 이상의 의문도 없었다. 검을 뽑는 순간, 내 마음 속에 있는 무언가가 뽑혀져 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고, 지금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다.

단 하나... 단 하나만 있다면

그래, 나에게 어울리는 단 하나의 사랑이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강렬한 욕구가 솟았다.

난 검을 높이 들고 힘껏 소리쳤다.

"삶이란

다른 무언가의 죽음으로서 성취되는 것.


미르유의 성을 짊어진 자로써

나 자신의 삶을 위해 자신을 죽이겠노라."

무대 반대편에서 검은 천으로 덮인 커다란 상자가 옮겨졌다. 분명 그 안에는 아직 살아있는 무언가가 있을터였고, 나는 그것을 검으로 찔러죽여야 했다. 이것이 미르유의 각성의식.

나는 검을 바닥과 평행하게 들고 상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윽고, 섬뜩한 소리와 함께 무대에 누군가의 피가 고여들었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행복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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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1. 차별없는 사랑 - 6 18.01.12 49 2 9쪽
45 1. 차별없는 사랑 - 5 +1 17.01.30 151 4 7쪽
44 1. 차별없는 사랑 - 4 +2 17.01.27 162 4 7쪽
43 1. 차별없는 사랑 - 3 +2 12.03.04 274 5 11쪽
42 1. 차별없는 사랑 - 2 +2 12.02.18 307 5 9쪽
41 1. 차별없는 사랑 - 1 +3 12.02.13 298 4 5쪽
40 0. 이야기의 시작. +4 12.02.08 305 4 6쪽
39 4. devil deal +2 12.02.03 310 7 6쪽
38 3. 아버지 - 10 end +3 12.02.02 246 4 8쪽
37 3. 아버지 - 9 +1 12.01.29 247 4 8쪽
36 3. 아버지 - 8 +1 12.01.27 295 4 10쪽
35 3. 아버지 - 7 +1 12.01.22 366 4 10쪽
34 3. 아버지 - 6 12.01.22 286 4 9쪽
» 3. 아버지 - 5 +2 12.01.19 364 3 8쪽
32 3. 아버지 - 4 +2 12.01.17 285 3 11쪽
31 3. 아버지 - 3 +2 12.01.15 257 4 6쪽
30 3. 아버지 - 2 +1 12.01.12 323 4 12쪽
29 3. 아버지 - 1 +3 12.01.10 265 3 17쪽
28 XX. 그대를 위한 누군가의 외침 +1 12.01.09 248 4 2쪽
27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9 end +2 12.01.04 237 4 5쪽
26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8 +2 12.01.03 254 4 15쪽
25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7 +1 12.01.01 244 3 14쪽
24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6 +3 11.12.30 304 4 7쪽
23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5 +2 11.12.28 260 2 9쪽
22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4 +2 11.12.27 333 6 7쪽
21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3 +1 11.12.26 231 3 7쪽
20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2 +3 11.12.24 32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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