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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5,858
추천수 :
181
글자수 :
172,566

작성
12.01.22 23:07
조회
286
추천
4
글자
9쪽

3. 아버지 - 6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나는 성인식을 마치고 사람들의 축하의 인사를 피해 도망치듯 성 안으로 들어갔다. 몸이 뜨거웠다. 목이 바싹바싹 마르고 머리가 시뻘겋게 익어버릴 것만 같았다.

한손을 이마에 짚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복도를 성큼성큼 걸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발을 세게 굴러도 열기는 가라앉을 생각을 않았다.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이상하게 되었는지 알고있었다.

술을 마셨을 때부터다.

분명 나는 술기운이 다른 무언가에 취해있었다.

도대체 나는 그 때 무엇에 취해있던걸까. 어쩌면 술 그 자체에 취해있었을지도 모른다.

붉은 눈물.

그 안에는 '미르유'가 녹아있었다. 그래서 내가 마시는 순간, 나에게 미르유가 무언지를 가르쳐주었다.

나는 어느새, 아버지의 서재쪽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붉은 눈물이라면 누구보다 아버지께 여쭈어보는 것이 가장 빨랐기 때문이었다. 이 술이 무언지, 어떻게 한낱 술에 그런 장대한 것이 담겨있을 수 있는지, 도대체...


미르유와 악마가 무언지!


거친 발구름으로 서재앞까지 다가간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답이 없자 그냥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갔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내겐 '평소'를 가질 여유도 없었다.

"아버지! 어디 계십니까!"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사람이 숨을 수 있을만한 곳까지 샅샅이 뒤지고 난 다음에야 서재의 커다란 창 앞에 거대한 상자가 놓여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상자는 물건을 담는 부류의 것들과는 달랐다. 아래가 긴 육각형인 그것은 길고 납작한 그것은 물건 외에 다른 것을 담는, 익히 쓰이는 용도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상자를 구별지어 이렇게 부른다.

관.

난 이유 모를 불안함을 느끼며 그것에 가까이 다가갔다. 관 위에는 두툼한 책 한 권과 목이 긴 와인병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관의 내용을 알고 싶다면 합당한 순서를 거치라는 것처럼 보였다.

우선 갈빛이 감도는 가죽 표지의 책을 집어들었다. 잘 생각해보니 이 책이 가끔씩 아버지의 책상에 올려져있는 걸 본 것도 같았다. 표지를 넘기자 바로 무언가가 뺴곡하게 적혀있는 면이 나왔다.

나는 그 면의 가장 첫줄을 읽자마자 이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성인식 이후부터 최근에 이르는 기록이 적힌 아버지의 '일기장'이었다.


---------


XXXX. XX. XX

눈이 가려진 소의 목을 내리치는 것으로 성인식을 마쳤다. 이미 전에도 두어번은 연습해봤으니 그다지 감흥은 없다. 그런데 끝나고나니 상태가 이상하다. 전신이 불타는 것처럼 뜨겁고, 정신이 몽롱하다. 그러면서도 요상하게도 머리는 더욱 팽팽 돌아가며 몸은 뛸 듯이 가볍다. 이 이질적인 감각을 무어라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생각해보건데, 분명 성인식에서 술을 마시고나서부터 이렇게 된 것 같다. 하인에게 다그치니 아버지께서 주신 술이라 그도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내가 아버지에게 가 따지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이미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말없이 등돌려 어디론가 걸어가셨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


이후에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셨던 것처럼, 할아버님께서 아버지께 회랑에서 '사랑'을 가르쳐준다고 적혀있다. 이어서 아버지께서는 할아버님께 여쭈었다고 한다.


"아버지. 어째서 제 몸이 이렇게 뜨거운 겁니까? 술에 취했다는 말도 안되는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술에 취하다니. 나도 입에 못대는 독한 술을 두 병이나 들이킨 네게 할 말은 아니지."

"아버지!"

"그래, 말해주마. 그러니 일단 거기에 앉거라."

솔직히 얌전히 앉아있을 자신은 없었지만 일단 아버지의 말씀을 따랐다.

"우선... 네가 마신 술이 무언지부터 묻고 싶겠지. 그건 '붉은 눈물'이라는 술이다. 오직 미르유에게만 전해지는, 미르유만 마실 수 있는 술이지."

"그런 술이..."

"방금 마시고 오지 않았느냐. 그 술에 담겨있던 미르유를. 나에게 물어볼 것이 있겠지? 말해보거라."

난 그 때 내 핏속으로 흘러들어온 '미르유'를 떠올리고, '목소리'가 말했던 것을 여쭈었다.

"아버지... 도대체 '미르유'는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즉답하셨다.


"'악마'다."


그리고 어느 새, 품에서 와인병을 하나 꺼내 병을 기울여 내용물을 들이키시고 이어 말씀하셨다.

"악마의 성경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느냐?"

"아니오."

"옛날, 자칭 인간연구자라는 자가 쓴 책이다. 물론 이름만 거창하고 내용물은 꼬마애들의 몽환적인 세상을 글로 적어낸 것 뿐이지."

"그런데 그 책이 어떻길래."

"그 자기만족으로 휘갈긴 책에도, 우리 미르유가 절대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진실'이 적혀있었기 때문이지."

"진실이라 하심은?"

아버지께서는 답은 않으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술병을 비우고 거칠게 숨을 토해내셨다. 그 걸죽한 입김이 마치 책에서 언급된 악마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신 아버지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시다 한 마디만 남기시고 휘적휘적 회랑에서 나가셨다.

"미르유의 가슴에는... 신께서 박아넣으신 악마가 살고 있다는... 그런 진실이다."



---------------


XXXX. XX. XX.

아버지께서는 성인식 이후로 방에 틀어박히셔서 나오실 생각을 않으신다. 그래도 가주의 역할은 잊지 않으셨는지 가끔 방문 앞에 처리된 서류가 놓여있곤 한다.

나도 아버지 못지 않게 방에 들어가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얹어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갈비뼈가 내장을 깊숙히 찌를 때까지 힘껏 손을 눌러보아야 겨우 발악하는 심장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제서야 나는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손을 뗀다.

하인에게 부탁하여 악마와 관련된 모든 서적을 뒤져보았다. 겨우 스물 남짓한 수 밖에 없었는데다가 대부분이 종교 서적이었기 때문에 느낌이 오는 것은 찾지 못했다. 워낙 중구남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기억이 나는 책에서는 악마를 '사랑을 탐하는 사랑스런 존재'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이해는 할 수가 없었다.

요즘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저 밖 어딘가에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내 사랑이 있을까.


XXXX. XX. XX.

요즘 그림을 그리고 있다. 풍경화나 인물화도 그려봤지만 공허한 느낌뿐이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그저 규칙없이 나의 마음을 그대로 캔버스 위에 표현하는 것이 제일 마음에 든다. 다른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

난 오늘도 나의 그림을, 내 마음을 다섯 점이나 그렸다.

하나는 그저 새카만 그림이고, 하나는 그 새카만 곳에 홀로 서있는 사각형과 원으로 이루어진 어린아이의 그림이고, 하나는 새카만 곳에 쇠사슬로 칭칭 묶인 누군가의 그림이고, 하나는 가운데에 진하게 선이 그어져있을 뿐인 그림이고, 마지막 그림은... 거울을 가져다 붙였다.

그 안에 죽어있는 내 모습이 그려져 있다.


----------------------


XXXX. XX. XX.

고심끝에 내가 직접 사랑을 찾아가겠노라,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는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미르유에게는 죽기 전에 반드시 사랑이 제 발로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원한다면 그리 하거라."

난 정말 필요한 물품과 돈만 챙기고 바로 나왔다. 지금은 아직 녹림로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노숙을 하고 있다. 과연 내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간만에 가슴 떨려 잠을 못 이룰지도 모르겠다.


---------------------


XXXX. XX. XX.

성에서 나온지 102일 째, 아직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흔히 감동을 받는 것들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았지만, 아니었나보다.

.

.

.

XXXX. XX. XX.

258일 째. 아직도 사랑을 찾지 못한 채다.

이틀 째 비가 추적추적 오고있어 눅눅한 내가 진동하는 술집에 갖혀있다. 벌써 '마녀의 눈물'을 다섯 잔이나 마셨지만 취할 기미는 없다. 왜일까... 갑자기 붉은 눈물이 마시고 싶다.

.

.

.

XXXX. XX. XX.

1년하고도 나흘 째. 이제... 더 이상 찾아볼 곳이 없다. 혹시 이 세상에 나의 사랑은 없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아직도 내 심장은 작게 숨죽이고 있다. 나는 다시 가슴을 힘껏 움켜쥐었다.

.

.

.

-------------------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음, 설연휴 잘보내세요

행복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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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 차별없는 사랑 - 2 +2 12.02.18 307 5 9쪽
41 1. 차별없는 사랑 - 1 +3 12.02.13 299 4 5쪽
40 0. 이야기의 시작. +4 12.02.08 305 4 6쪽
39 4. devil deal +2 12.02.03 310 7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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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 아버지 - 9 +1 12.01.29 247 4 8쪽
36 3. 아버지 - 8 +1 12.01.27 295 4 10쪽
35 3. 아버지 - 7 +1 12.01.22 366 4 10쪽
» 3. 아버지 - 6 12.01.22 287 4 9쪽
33 3. 아버지 - 5 +2 12.01.19 364 3 8쪽
32 3. 아버지 - 4 +2 12.01.17 286 3 11쪽
31 3. 아버지 - 3 +2 12.01.15 257 4 6쪽
30 3. 아버지 - 2 +1 12.01.12 323 4 12쪽
29 3. 아버지 - 1 +3 12.01.10 265 3 17쪽
28 XX. 그대를 위한 누군가의 외침 +1 12.01.09 248 4 2쪽
27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9 end +2 12.01.04 237 4 5쪽
26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8 +2 12.01.03 255 4 15쪽
25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7 +1 12.01.01 244 3 14쪽
24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6 +3 11.12.30 304 4 7쪽
23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5 +2 11.12.28 261 2 9쪽
22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4 +2 11.12.27 334 6 7쪽
21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3 +1 11.12.26 232 3 7쪽
20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2 +3 11.12.24 32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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