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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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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5,857
추천수 :
181
글자수 :
172,566

작성
12.02.02 00:02
조회
246
추천
4
글자
8쪽

3. 아버지 - 10 end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조금 후면 하루가 지나간다. 나는 곤히 잠든 라라네와 레네르의 옆에 앉아 번갈아가며 둘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에 겨워 웃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이 둘을 남겨두고 사라져야 하는가.

뒤늦게 고뇌가 밀려왔다. 싫었다. 이대로 라라네와 함께 레네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겨우 찾아낸 내 사랑을 남겨두고, 사랑을 주지도 못하고 사라지는건 싫었다.

그렇다고 레네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잠시나마 삶을 누린 나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레네르를 위해, 내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사라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으음... 여보?"

그 때, 라라네가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어눌하게 말했다. 나는 그녀가 깨기전에 살며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가만히 속삭였다.

"그렇소. 나요. 아직 피곤할테니 더 주무시오."

그녀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팔을 허우적거리며 들어올려 내 뺨에 가져다대곤 물었다.

"당신... 왜 울고 있나요?"

"울고 있다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거울을 보니 그녀가 말했던대로 거울 속의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눈치채지 못한게 이상할 정도로 얼굴을 처참하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 거울 속의 나를 봤다가는 결심이 흔들릴 것만 같아 급히 고개를 돌리고 다시 그녀를 안심시켰다.

적어도 목소리에는 물기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럴리가 있겠소.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서 그러오?"

"그런...가요?"

"그렇소. 그러니 어서 눈을 감으시오. 아직 당신이 자는 모습을 더 보고 싶으니."

"당신은... 참......"

라라네의 눈이 도로 감기자 나는 뺨에 닿은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감싸고, 도자기를 내려놓듯 침대에 살며시 두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만큼 작게 속삭였다.

"네 시험에 답하겠다."

대답은 곧바로 들려왔다.

-- 너의 답을 보여다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주위의 시간이 멈췄지만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 갈등. 이번만 이겨내면 레네르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갈등을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라라네의 곁에 있고 싶다.

레네르를 더 안아보고 싶다.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선을 레네르에게 돌리자--- 레네르의 새파란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 한 쌍을 보며 나는 마지막에야 진심에서 우러나는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를 올려 웃고, 악마에게 물었다.

"시체는 네가 처리해주지 않겠지?"

악마는 이미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 있는걸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할 수는 없다.

난 발을 옮겼다. 선대님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회랑으로 가서 그 앞에 무릎꿇고 앉았다.

"당신들이 넘겨준 악마 때문에 오랫동안 방황하고, 라라네를 상처입혔습니다."

품에서 준비해둔 단검을 꺼냈다. 언제인가 아버지께서 선물로 주신 단검.

"당신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야만 합니다."

단검의 칼집을 빼내고 날카로운 빛을 뿌리는 날부분을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큰 힘을 줄것도 없이 살짝 밀기만해도 제 여린 살갗을 뚫고 죽음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그 전에...

"하지만."

나는 행복하게 웃으며 말했다.

"악마 덕분에 라라네를 만나고, 레네르를 낳고, 이렇게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악마여, 이것이 나의 대답이다.

그리고 나는.

단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레네르.

내가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하고도 후회되는 일은 없구나.

라라네에게 잘 있으라는 말도 못했고, 내 가문의 미래도 걱정해두지 않았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조차 생각해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들아. 내가 무엇보다도 후회되는 것은 너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거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너와 보낼 시간이 없을거라는게 가장 미련이 남는구나.

아들아.

아버지는 좀 더 너를 안아 어루어보고, 키스도 해주고, 잠도 재워주고 싶었단다. 네가 좀 더 자라 어눌하게나마 말을 떼면 너를 내 무릎에 앉혀두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목마를 태워 네가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듣고 싶었단다.

분명 그 이상 자라면 나는 너에게 엄격하게 대해야만 하겠지. 넌 장차 가문을 이끌 가주가 될테니 여러 교육도 받으며 내게 혼도 많이 나겠지. 지금부터 이 때를 상상하기만해도 가슴이 저릿하지만 그래도 너를 곧게 키우기 위해 매를 드는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었단다.

아들아.

네가 성인식을 치룰 나이가 되어 내가 입었던 예복을 갖춰 입은 모습을 보고 눈물짓고 싶었고, 다 큰 너와 한 번쯤 포옹도 해보고 싶었고, 네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듣고, 네가 신붓감을 데려오는 것도 보고, 네 혼인식에 참석하고, 기쁘게 웃고 울고 웃고 울고... 그렇게 너와 함께, 너를 위해 일생을 살고 싶었단다.

그게... 아버지라는 사람이란다.

아들아.

지금 너를 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잘 봐두렴. 이게 네 아버지라는 사람이란다. 훗날, 네가 컸을 때는 보지못할 아버지의 모습이란다.

아들아.

네가 언젠가 나에게 '아버지'라고 불러줄 날이 왔으면 한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아...

나의 하나뿐인 아들아!


사랑한단다.


천년, 만년이 지나고 세월에 바래져 탁해지더라도 이 아버지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주렴


세월이 지나, 그의 아들은 이곳에 섰다.

가문을 사랑하여 아버지를 소홀히 한 고조할아버님을 보고, 그를 사랑한 증조할아버님처럼.

아버지를 사랑하느라 반려에게 소홀히 한 증조할아버님을 보고, 반려를 사랑한 할아버님처럼.

반려를 사랑하느라 아들에게 소홀히 한 할아버님을 보고, 아들을 사랑한 아버지처럼.

그의 아들은 세상을 돌아다니다 사랑을 찾아, 사랑을 하기위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저는 새빨갛게 빛나는 아버지의 심장을 손에 올려두고 그 위로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당신의 사랑까지 바쳐서 만들어진 '희생'을 손에 쥐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 사랑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저의 하찮은 사랑보다도 더욱 고귀한 희생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눈물로 경의를 표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어릴 적, 저는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어째서 저를 버리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버리고 자살 따위를 하실 수 있느냐고 회랑에 걸린 아버지의 초상화에 대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를 점차 제 마음 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동시에 '미르유'인 저를 지워버렸습니다. 저는 아버지 당신께 받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니, 미르유를 받지 못했으니.

이제 나 스스로 앞을 걸어가겠노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곳으로 돌아와 당신의 '희생'을 받아들었을 때, 아직도 제 앞을 묵묵히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아... 아버지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언제나 자식의 앞에서 걸어 길을 만들고

구태여 사랑한다는 말 대신, 고되고 지친 뒷모습만으로 자식에게 모든 것을 표현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제가 다가가보렵니다. 겨우 두어걸음 떨어져있던 거리를 뛰어가 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그제서야 저를 돌아보시며

환하게 웃어주셨습니다.


그렇게 비로소 저는, 레네르 미르유는 팜페슈 미르유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행복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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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 차별없는 사랑 - 1 +3 12.02.13 299 4 5쪽
40 0. 이야기의 시작. +4 12.02.08 305 4 6쪽
39 4. devil deal +2 12.02.03 310 7 6쪽
» 3. 아버지 - 10 end +3 12.02.02 247 4 8쪽
37 3. 아버지 - 9 +1 12.01.29 247 4 8쪽
36 3. 아버지 - 8 +1 12.01.27 295 4 10쪽
35 3. 아버지 - 7 +1 12.01.22 366 4 10쪽
34 3. 아버지 - 6 12.01.22 286 4 9쪽
33 3. 아버지 - 5 +2 12.01.19 364 3 8쪽
32 3. 아버지 - 4 +2 12.01.17 286 3 11쪽
31 3. 아버지 - 3 +2 12.01.15 257 4 6쪽
30 3. 아버지 - 2 +1 12.01.12 323 4 12쪽
29 3. 아버지 - 1 +3 12.01.10 265 3 17쪽
28 XX. 그대를 위한 누군가의 외침 +1 12.01.09 248 4 2쪽
27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9 end +2 12.01.04 237 4 5쪽
26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8 +2 12.01.03 255 4 15쪽
25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7 +1 12.01.01 244 3 14쪽
24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6 +3 11.12.30 304 4 7쪽
23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5 +2 11.12.28 261 2 9쪽
22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4 +2 11.12.27 334 6 7쪽
21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3 +1 11.12.26 232 3 7쪽
20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2 +3 11.12.24 32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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