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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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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조회수 :
15,841
추천수 :
181
글자수 :
172,566

작성
12.01.29 19:13
조회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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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8쪽

3. 아버지 - 9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마음 속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물으셨다.

'네 사랑은 찾았느냐.'

나는 대답했다.

"네, 아버지."

그리고 나는 흐뭇한 눈으로 요람에 푹신한 천에 싸여 곤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제 사랑입니다."

팅팅 부은 살에 묻혀서 눈코입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내 손톱만도 못한 코를 벌렁거리고는 곧 입을 우물거렸다. 천이 꿈틀꿈틀 움직이는걸보니 분명 아래에서 발을 꼬물거리고 있으리라.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이 귀엽고, 또 사랑스러웠다.

"아버지도 나를 보고 이렇게 기뻐하셨을까."

"그럼요, 물론이죠."

옆에 함께 누워있는 라라네가 아직 수척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만든 원인인 나를 달갑게 받아들이실리가 없지 않은가.

"라라네. 당신이 들어주었으면하는 것이 있소."

나는 라라네에게 내가 알고있는 미르유에 관한 것을 모두 가르쳐주었다. 나의 사랑이기도 하며, 미르유의 사랑을 낳아준 그녀만큼은 반드시 알아주었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딱히 숨기라는 말도 없었으니 내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녀는 내 말을 모두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당신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네요."

"미안하오."

"미안해하지 않아도되요. 전 미르유보다는 '팜페슈'에게 사랑을 받는 걸 원했는걸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난 뒤늦게 밀려오는 미안함 때문에 그녀의 손을 이마에 가져다대고 조용히 눈물을 떨구었다.

"그건 그렇고 아이 이름은 어떻게 할까요?"

"글쎄... 당신은 생각해둔거라도 있소?"

"네, 물론이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방긋 웃었다.

"남자 아이라면 레네르, 여자 아이라면 리니야나라고 지으려고 했어요. 어때요?"

"그건 내가 아니라 이 녀석에게 물어봐야지. 어떠냐, 레네르?"

"당신도 차암... 갓난애가 무얼 안다고... 어머?"

레네르는 놀랍게도 자기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양손을 위로 번쩍들어 파들파들 떨다가 툭 떨어뜨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라라네도 이름을 불러보고는 귀엽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는 모르겠지. 내가 팜페슈라는 이름을 '원해서' 얻었다는 것을. 물론 나도 기억에는 없지만.

"결정이네, 레네르. 이제 네 이름은 레네르다. 레네르 미르유."

그 때, 갑자기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시험을 시작하겠다.


누구인지 고개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눈알조차 굴릴 수 없는 섬뜩한 상황에서 마음은 덜덜 떨리고 있었는데 얼굴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게다가 숨도 쉬지 못했고 심장도 뛰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 걱정말아라. 두려워말아라. 나는 그대이며 언제나 그대와 같이 있었다.

난 그 말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가느다란 성별조차 알 수 없게 울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 신과 미르유의 맹세에 따라 그의 4대손인 그대에게 내 직접 시험을 주리라.

시험? 그 시험이라는게 대체 무어란 말이냐! 넌 대체 누구냐!

목소리는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대답했다.

-- 이몸은 인간으로부터 태어나 인간의 사랑을 빼앗고, 신의 사랑마저도 빼앗은 악마.

-- 그대의 사랑을 희롱하기 위해 왔다.

목소리는 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운듯했다.

그 순간,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아버지의 기억에서 할아버님의 한마디.


'미르유의 가슴에는... 신께서 박아넣으신 악마가 살고 있다는... 그런 진실이다.'


단순히 무언가를 비유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이렇게 직접적으로 악마가 다가올 줄이야. 내 머릿속은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다.

-- 시험을 시작하겠다. 만약 그대가 시험을 통과한다면 그대는 사랑하는 것조차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시험에 실패한다면 영원히 허락된 하나의 사랑을 잃으리라.

기다려! 시험이 대체 뭐야! 난 허락한 적도 없는데 왜 멋대로 나타나서 시험 운운하는 거냐고.

하지만 악마는 내 항의에도 아랑곳않고 시험의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성적 절정에 달한 것처럼 희열에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즐겁고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 '시험'을 뱉어냈다.


-- 그대의 손으로 레네르 미르유를 죽여라.



나는 라라네가 잠든 것을 확인하자마자 방에서 나와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펜을 들어 라라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펜끝이 종이를 갉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악마가 내게 말해주었던 그 당시를 상기했다.


죽...여? 누가, 누구를?

난 한동안 악마가 내게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악마는 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히죽히죽 웃으며 기다렸다. 덕분에 나는 그 잔혹한 말을 스스로 이해하고 말았다.

물러나라, 악령아! 나는 네 시험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내 생을 바쳐 너를 저주하겠다. 썩 물러가라!

악마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 대답했다.

-- 이미 내 몸은 저주와 죄악으로 이뤄져있으니 그대는 나를 저주할 수 없다. 또한 그대가 시험에 응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선대의 약속 따윈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 그 따위 허언으로 나를 묶으려들지 마라.!

-- 그렇다면 그대가 자발적으로 시험에 응하게 하는 수 밖에.

갑자기 악마의 형상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그림자처럼 넓게 퍼져 내 주위를 감쌌다. 나는 어둠에 묶여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감각을 하나 잃은 듯한 느낌. 난 눈을 잃었다는 원초적 공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다잡았다. 만약 악마의 수법이 공포로 나를 위협하는 거라면 절대 굴하지 않으리라!

그런 내 앞에 돌연 어떤 장면이 나타났다.


숲이다. 선명한 녹빛이 아름다운 숲속에 거대한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마치 거대한 성이 한번 허물어진 폐허같아 보인다. 그 돌무더기의 작은 틈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앉아 눈물을 떨구고 있다.

그 자를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남자에게서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낄 수가 없다.

남자는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난... 널 죽이겠어."

남자의 그림자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그를 비웃는다.

- 죽여봐라. 네 불변의 사랑으로 내 심장을 찔러라. 그리하면 나는 영원히 소멸할 것이다.

- 이제 한 존재의 살해방법을 안 대가를 치뤄라. 네 육신을 나에게 바쳐라. 그리하여 나는 사슬에 묶여, 묶이지 않은 육신으로 세상을 활보할 수 있으리.

"나는 사슬의 한 끝을 잡고 네 심장에 사랑의 화살이 박힐 때만을 기다리겠다. 그리고 그 때가 오면 나는 사슬로 네 목을 졸라 죽이겠다. 또한 네게 사랑을 찔러넣은 자는 나의 허락된 단 하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남자의 말을 끝으로 영상이 끝났다. 동시에 악마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 방금 네게 보여준 것이 레네르 미르유의 미래. 나와의 거래, 그리고 영원히 자신의 육신에 갖혀 망부석처럼 마음이 굳어가는 존재. 그것이 바로 네 아들이다, 팜페슈 미르유여.


다시금 마음을 굳힘과 동시에 펜을 놓았다. 거의 스무장에 육박하는 양의 글이 완성되었다. 더 이상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는 내가 그녀에게 하고픈, 해야만 하는 말이 모조리 담긴 글이었다.

내가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도 놀라지 말라는 당부, 레네르를 잘 부탁한다는 부탁, 당신을 선택하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사과, 이런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감사... 그녀 덕에 받았던 모든 것을 담았다.

아버지께서 내게 물려주신 붉은 눈물에 내 피를 더해 넣고, 편지 위에 올려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없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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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버지 - 9 +1 12.01.29 247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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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 아버지 - 7 +1 12.01.22 366 4 10쪽
34 3. 아버지 - 6 12.01.22 286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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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 아버지 - 3 +2 12.01.15 257 4 6쪽
30 3. 아버지 - 2 +1 12.01.12 323 4 12쪽
29 3. 아버지 - 1 +3 12.01.10 265 3 17쪽
28 XX. 그대를 위한 누군가의 외침 +1 12.01.09 247 4 2쪽
27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9 end +2 12.01.04 237 4 5쪽
26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8 +2 12.01.03 254 4 15쪽
25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7 +1 12.01.01 243 3 14쪽
24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6 +3 11.12.30 304 4 7쪽
23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5 +2 11.12.28 260 2 9쪽
22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4 +2 11.12.27 333 6 7쪽
21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3 +1 11.12.26 231 3 7쪽
20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2 +3 11.12.24 32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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