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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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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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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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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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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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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1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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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 아버지 - 2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나는 결국 아버지께서 제안하셨던대로 여행을 떠나려고 마음을 먹고, 회랑에서 나왔다. 그리고 벌써 여행준비가 끝나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 정도는 쉽게 꿰뚫어보신 모양이다.

마차에 필요한 여행장비가 챙겨져 있었고, 호위병도 다섯이나 붙여주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내 손에 여행경비와 미르유 가문의 상징을 쥐여주며 신신당부하셨다.

"난 네 능력을 믿는다. 비록 성인은 되지 않았지만 성인 못지않게 잘 해낼 수 있겠지. 내 가르침을 잘 되새겨보기만해도 이번 여행은 무사할거다. 하지만 다시 당부하마. 절대로 열아홉 생일에는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와 성인식을 받아야한다. 알겠느냐?"

어차피 그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할 생각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는건 간단했다.

나는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창 밖에서 호위대장이 내게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난 대답했다.

"닿는대로."



여행은 단조로움을 넘어 지루했다. 사람들이 칭송해마지 않는 녹림로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쏘다니던 공원에 불과했고, 유명한 고승이나 유적을 찾아가봐도 책에서 보고 읽었던 그대로의 모습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모든 것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 강하게 생각하고 만다.

'도대체 나의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애초에 이 여행을 나온 목적이 나의 심장이 되어줄 '사랑'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나는 기대감이 하나씩 무너질 때마다 점점 내 심장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천년빙처럼 싸늘하게 얼어 피에 얼음결정이 섞여 흐르게 될 것만 같았다.

점점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때에 어디에선가 갑자기 바이올린 연주가 들려왔다. 이제 막 활을 잡은 초보자의 연주였는지 음정이 들쑥날쑥했고 음이 탁해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연주가 내 가슴에 부딫혀 부서지고.


두근!


딱 한 순간

정말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찰나와도 같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확실히 느꼈다.

내 심장박동을!

그 날, 회랑에서 나온 이후로 처음으로 듣는 내 심장이 살아 움직이는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짧은 희열을 맛봄과 동시에 옆에서 강한 인기척을 느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 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하얀... 순백의 그림자와 같아서 나를 보는지조차 알 수가 없지만 강렬한 눈길을 주는, 악마를 보았다. 왠지 그는 웃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짧은 순간, 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공포에 사로잡혔으나 한시라도 빨리 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에게 가보아야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움직이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악마는 내가 몸을 움직이자마자 바로 안개처럼 흩어져버렸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었나라는 의문은 뒷전으로 미루고, 혹시 이 연주를 하는 자가 나의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마차를 세우라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커다란 바위 앞에서 홀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은 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여성이었는데, 내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꼴을 보곤 연주를 멈추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그 형...컥, 편없는 연주... 헉, 헉... 당신이 한 겁니까?"

내게 있어 연주의 미적가치는 중요하지 않았기에 섣불리 형편없다는 말을 꺼냈지만, 나는 곧 내 행동을 후회했다. 아버지의 교육에 반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사과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당신은 누구시죠?"

그녀는 의외로 혹평에 신경을 쓰지 않고, 눈앞에 있는 나부터 신경썼다. 그 태도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나는 심호흡을 크게하여 숨을 고르고 자기 소개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르유 가문의 팜페슈 미르유라고 한답니다."

그녀도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정중히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라라네 가흐르랍니다."

그것이 나와 그녀의 첫만남이었다.



난 그녀와 바위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드물게 기대감에 한껏 흥분했었고, 그녀는 그녀대로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가흐르 가문과는 몇 번인가 아버지께서 혼담을 주고받으시는 걸 보았기에 그것으로 금새 대화의 물꼬를 틀 수가 있었다.

"정말 신기하네요. 어떻게 똑같이 여행을 나와서 이렇게 만날 수가 있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혼담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뵙지 못했는데 이런 곳에서 뵙게될 줄은 저도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가흐르 양은..."

"라라네라고 부르셔도 괜찮아요."

"네, 그럼 라라네 양. 음악여행을 하고 계셨다고요?"

그녀는 옆에 두었던 바이올린을 무릎위에 놓았다.

"저는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거든요. 물론 연주는 형편없지만요, 아하하."

한 손으로 바이올린의 현을 어루만지며 쑥스럽게 웃어보였다.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이 부러웠다. 당당히 좋아하는 것을 밝히고 그것을 추구하는 모습이 아름다워보였다.

"아니요... 정말 좋은 곡이었습니다."

제 심장을 뛰게 만드셨으니까요.

"후훗, 아까 형편없다고 하신거 다 들었는걸요?"

"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확실히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 나는 쓰게 웃고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위로 든채 말없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내 시선을 눈치채고 다시 쑥스럽게 웃었다.

"아, 죄송해요. 실례했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그리 뚫어져라 보고 계셨습니까?"

라라네는 희고 긴 손가락으로 내 뒤쪽을 가리켰다. 나는 저 손가락이라면 정말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분명 커다란 바위에 무언가 그려져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바위 바로 아래였기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라라네에게 옆에 앉아도 되겠냐는 양해를 구한다음, 옆에 앉아 바위를 보았다.

바위에는 음표에 둘러싸인 한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있었다.

아마 유화로 그린게 아닐까 싶었는데 투박한 돌 표면에 붓으로 그렸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유려한 그림이었다. 그녀는 홀린 듯 그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네, 정말 그렇습니다. 훌륭한 그림이군요."

"혹시 저 여인이 누구인지 알고계신가요?"

"아니오. 가르쳐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내 요구에 되려 그녀가 기쁜 얼굴을 했다. 자기가 아는 것을 설명하려하니 그런 모양이었다.

"음악의 천사, 제네렐이에요."

듣고보니 음표들이 마치 날개의 형상을 만들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듣기론 제네렐은 처음보는 악기라도 그것을 잡기만하면 아름다운 음색을 낼 수 있다고해요. 게다가 목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 하늘의 다른 천사들이 흥에 겨워 춤을 출 정도라고 하네요."

"그렇군요."

"저는 언젠가 꼭 제네렐처럼 되는게 꿈이에요. 제 손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서 사람들이 흥에 겨워 춤을 추게만들고 싶어요. 악기야, 바이올린이면 되지만 많으면 더 좋겠죠. 아하하, 욕심쟁인가요?"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은 꿈입니다. 반드시 그 꿈,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마워요."

욕심쟁이라... 나는 될 수도 없으니까. 욕심도 사랑이 있어야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다시 씁쓸해졌다.

"팜페슈 씨는 그냥 관광여행을 하고 있었나요?"

라라네에게 내 여행의 목적으로 말해줘도 괜찮을 것인가. 난 대답대신 그녀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기로 했다.

"잠시... 몇 가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아, 네. 얼마든지요."

"사랑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네."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덕분에 도리어 질문을 하던 내가 당황하고 말았다.

"어떤 사랑을 하셨기에 그렇게 당당히 말씀하시는겁니까?"

"아마... 팜페슈님께서 알고있는 것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하고 있을거에요. 팜페슈님? 제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봐주시겠어요?"

어차피 다음으로 할 질문이었지만... 난 그녀가 내 생각을 앞질러 읽은 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올린을 들고 일어서 사뿐히 걷기 시작했다.

"당신은... 사랑이 무어라 생각하십니까."

"사랑이란."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에요.

"겨우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게 사랑이라면 저는 이미 사랑을 하고 있지요. 저는 제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귀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가족도, 자연도, 제 바이올린도, 음악도 모든 것을. 그래서 저는 덕분에 매일 웃음지으며 살 수 있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녀와 내가 정반대의 세계에 살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봄바람이 살랑살랑거리는 따스한 꽃발.

싸늘한 한기만이 느껴지는 달빛이 내리쬐는 황야.

겨우 서너걸음 떨어진 곳에서 우리 사이에 그어진 범접할 수 없는 세계였다.

-남을 돕고 이해하려는 마음이에요.

"솔직히 이것도 앞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요. 남을 소중히 아끼고 귀중하게 여겨주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행위가 될테니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에요.

"저는 아주 옛날부터, 어떤 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 분께서 음악에 조예가 있으시다는 말을 듣고 음악을 시작했고, 학식을 쌓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책에 파묻혀 살았지요.

조금이라도 그 분과 가까워지고 싶었으니까요."

'그 분'을 떠올리고 있는지 그녀의 뺨이 조금 불그스름하게 바뀌었다. 나는 사랑을 품은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 분은 참 행복하시겠군요. 당신의 사랑이 성취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말이 끝나지 않았는지 다시 두어걸음 걸어가서 한 눈에 '제네렐'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섰다. 그리고 활을 든 손을 가슴에 얹고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이곳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죠.


저릿, 하고 가슴이 아려왔다. 혹시 그녀는 알고있는걸까. 나와 아버지만이 알고 있는, 미르유에게 물려지는 '사랑'을.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라라네 양."

"예?"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난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바이올린을 가리켰다.

"다시 한 번... 연주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곡을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말없이 바이올린을 팔에 얹히고 턱을 대었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들어 활을 가져다대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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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 아버지 - 3 +2 12.01.15 257 4 6쪽
» 3. 아버지 - 2 +1 12.01.12 324 4 12쪽
29 3. 아버지 - 1 +3 12.01.10 265 3 17쪽
28 XX. 그대를 위한 누군가의 외침 +1 12.01.09 248 4 2쪽
27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9 end +2 12.01.04 237 4 5쪽
26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8 +2 12.01.03 255 4 15쪽
25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7 +1 12.01.01 244 3 14쪽
24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6 +3 11.12.30 304 4 7쪽
23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5 +2 11.12.28 261 2 9쪽
22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4 +2 11.12.27 334 6 7쪽
21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3 +1 11.12.26 232 3 7쪽
20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2 +3 11.12.24 32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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