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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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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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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63
추천수 :
181
글자수 :
172,566

작성
12.01.1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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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7쪽

3. 아버지 - 1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MainStory ; 아버지


루마트 왕국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녹림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침엽수로 이뤄진 숲은 일년 중 푸르지 않은 날이 없고, 그러면서도 매 계절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지요. 특히 겨울에 나무들이 눈을 잔뜩 이고 있는 광경은 가히 절경이라 불릴만합니다. 오죽하면 한 때, 루마트 국왕이 눈이 내리는 날에는 절대로 녹림로에 들어가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렸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지금은 가을입니다. 여기저기에 죽은 잎들이 발견되고, 바싹 마른 을씨년한 모습. 하지만 그조차도 아릿한 애수가 느껴지기에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바삭 바삭

저는 죽은 잎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무감각하게 낙엽을 밟고 쉬지않고 앞으로만 나아갔습니다. 제가 향하고 방향은 루마트에서 절대 출입금지구역으로 정해놓은 곳과 일직선상에 있었습니다.

흉터.

그곳은 이런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 순수해 보이기만한 곳도 과거의 한 때, 거대한 '파괴'의 진통을 겪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단 한 번의 파괴였지만 그와 함께 수많은 것들이 함께 부서져 버렸었지요.

지금 막 도착한 곳이 바로 그 때의 파괴의 흔적이 가장 생생히 남아있는 곳.

저는 눈앞에 자리잡은 거대한 바위 둔덕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간간히 머리만 달랑 남아 굴러다니는 석상도 보였고, 이제는 골동품이라 불려도 좋을법한 식기와 가구들이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이가 빠지거나 돌에 깔려 부서져 있었기에 금전적인 가치는 없을 듯 했습니다.

그런 부분까지 세세히 살피며 찬찬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과거의 잔재 속에서 저는 그 옛날 이곳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떠올렸습니다.

녹림로에 유례없는 파괴를 자행하고 그 자신조차 파괴되어버린 자의 잔해가 남은 곳.

미르유 남작가의 성.

지금은 멸망한 가문의 흔적.

저는 아무 말없이 바위둔덕으로 다가가 바위를 들추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순식간에 둔덕이 있던 곳에 평평한 흙바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바위를 근처에 던져두고 이번에는 맨손으로 흙을 파냈습니다.

원래 흙이 설었던건지 제 손이 돌만큼 단단한건지 저는 곡괭이질을 하는 것처럼 흙을 퍽퍽 퍼냈습니다. 저는 한참을 파내다 속도를 줄이고 흙을 조심스럽게 한 움쿰씩 들어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사람의 손이 드러났습니다.

작업을 계속할수록 팔, 다리, 몸, 목, 얼굴이 드러났지만 그것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거대한 구덩이 안에 산자에게 능멸을 당한 시체 한구가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저는 사자를 모욕하고나서도 별다른 감흥없이 굳은 어깨를 펴고 작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찬찬히 그것의 모습을 살폈습니다.

그것은 시체라 보기에는 너무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분명 깊은 땅 속에 묻혀있었을 터인데도 그것이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고, 매우 온화한 웃음을 짓고 있으며 죽기 전에 주름살이 몇 개나 있었는지 셀 수 있을 정도였지요. 눈만 뜨고 있었다면 살아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저없이 양손을 시체의 가슴팍에 꽂아넣었습니다. 시체의 가슴에서 이미 죽어 거무죽죽한 피가 울컥하고 솟아나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문을 열듯이 시체의 가슴뼈를 들어냈습니다. 그러자 시체의 내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내장마저도 거뭇한 색을 띄고 있을 뿐 썩어 문드러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

제 시선은 시체의 '심장'에 머물렀습니다. 시체의 심장은 살아있는 자의 것보다도 더욱 새빨갰지만 조금도 움직이지는 않았는데, 마치 영롱한 빛을 내는 거대한 루비같았습니다.

제 주린 배가 외칩니다. 저 심장을 먹으면 허기가 조금 가실 것이라고.

그것에 손을 뻗었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성급히 그것을 잡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제 움직임을 더디게 했던걸까요.

죄악감? 기대감? 희열?

하지만 저는 그저 일그러진, 구겨진 종이처럼 사정없이 일그러진 표정을 지을 뿐이었습니다.

이윽고 제 손끝이 그것에게 닿는 순간, 시뻘건 빛이 폭발하듯 뿜어져나왔습니다. 덕분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지만, 그 상황에서도 그것에게서 손을 떼지않았습니다.


-...............


갑자기 눈앞으로 어떤 영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마치 주마등처럼, 끊겨있지만 연속적으로 늘어진 영상이 끊임없이 빛에서부터 뿜어져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참을 시체의 주위에서 맴돌다가 천천히 제 눈을 통해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제 머릿속에서 작은 입자로 분열되고 조합되기를 반복하여 하나의 길고 긴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곧 그 이야기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사랑하기에 사랑을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단 한 사람, 내가 바라는 한 사람이 이것을 봐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그렇기에 나는 그 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내 이름은 팜페슈 미르유. 미르유 가문의 4대 가주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인 규란테 미르유의 엄한 교육을 받아왔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귀족이 되기 위해 배워야할 모든 것을 열다섯이 될 때까지 가르쳤고, 나는 그것을 모두 소화해냈다. 솔직히 억지로 밀어부친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난 그냥 하라는대로 했고, 받아들이라는대로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매우 흡족해하셨고, 나는 별감흥이 없었다.

잠시... 그날의 일을 회상해보도록 하겠다.


아버지께서는 내 열다섯살의 마지막 날, 마지막 수업을 마치시고 지금껏 본적없던 진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중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내가 너에게 억지를 부렸다는 것 잘 알고 있다. 내 억지를 따라와준 네가 정말 자랑스럽고 기쁘구나."

알이 작은 안경을 벗어내려놓으시고는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셨다. 나는 시키는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맹새코 아버지는 그 때까지 한 번도 내게 제대로된 애정표현을 해본 적이 없으셨다. 도대체 무엇이 따스한 말 한 마디 건넨 적 없는 늙은 아버지의 마음을 울렸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았고, 아버지의 품은 의외로 따뜻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파슈. 정말 잘 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더욱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씀하셨다.

"파슈.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네가 걱정이 된단다."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앞으로 배울 '한 가지'를 네가 제대로 배울 수 있을지가 걱정스럽구나."

"걱정마십시오. 지금껏 잘 배워오지 않았습니까."

내 대답에 아버지는 작게 고개를 저으셨다.

"아니란다, 얘야. 그건 지금까지 네가 해온대로 해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거란다. 나도 가르칠 수 없어. 좀 더... 좀 더..."


심장이 격하게 뛰어야만 한단다.


아버지는 내 어깨를 잡고 나와 눈을 맞추셨다. 나는 혹시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을 제대로 본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랐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눈에 자그마한 불이 넘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촛불만한 크기였지만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게 이상할 정도로 환한 불빛이었다.

"잘 들으렴, 파슈. 옛부터 미르유 가의 사람은 특유의 기질을 타고 난단다."

'미르유는 심장이 약하다.'

나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가져다대어 보았다. 비록 약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손바닥에 떨림이 전해져왔다. 분명 격렬하게 움직이면 더욱 확실해지리라.

아버지께서는 내 행동을 보시더니 작게 고개를 저으셨다.

"생물학적인 의미로 심장이 연약하다는 뜻이 아니란다. 그저, 심장 박동이 일반인에 비해 여리고 여릴 뿐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것을 동일한 의미로 해석했으니까.

내 의문을 눈치챘는지 아버지께서 작게 한숨을 쉬셨다.

"역시 이해를 못하는구나."

"죄송합니다."

"아니, 미안할 건 아니지. 어쩔 수 없는거니까. 하아... 그럼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일단 들어두도록 하렴."

"네."

아버지는 말을 하려다말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내게 손을 내미셨다.

"좀 걷자꾸나."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뒤따라갔다. 참 오랜만에 다정하게 손을 잡아보는 거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다지 기쁘다거나 하진 않았다. 혹시 아버지는 내가 이런 아이임을 알고 지금껏 그리 대해오신걸까? 그렇다면 왜 이제와서 이렇게 대하시는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내 부족한 식견으로는 도저히 아버지의 의중을 알아챌 수가 없었다.

이윽고 아버지와 내가 도착한 곳은 저택에 마련된 거대한 회랑이었다. 수많은 미술품과 더불어 바로 앞쪽에 선대 미르유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초대, 2대... 그리고 아버지께서 3대, 내가 곧 4대가 될터였다.

미르유는 지금 이 위치에 있는게 신기할 정도로 짧은 역사를 가진 가문이다. 지금 이 위치에 올라오기까지 선대 가주님들께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을까. 솔직히 말해, 그 선대에는 도저히 아버지를 넣을 수가 없었다.

객관적으로 봤을때도 아버지는 가문보다는 내 교육을 더 중시하셨고, 아버지 대에서 미르유 가문이 처음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껏 상승세를 타던 가문에 처음있던 일이었다.

아버지는 초상화 앞에 멈춰서셨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말없이 초상화를 우러보기만 하셨다. 분명 아버지께서는 초대 가주님이나 2대 가주님을 직접 만나뵈었기에 나와는 달리 감회에 젖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윽고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다.

"파슈, 너는 세간에서 우리 미르유를 무어라 부르는지 알고 있느냐."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왠지 아버지가 말씀하시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아마 너라면 알면서도 나를 배려해주었겠지. 너는 나보다 뛰어나니 말이다."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했더라도 그냥 쓴웃음만 지으실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이러나저러나 결국 쓴웃음을 지으시고 말을 계속하셨다.

"파슈. 넌 사랑을 해본적이 있느냐."

"아니요, 없습니다."

나는 딱 잘라 대답했다. 정말, 단 한순간도,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내가 정상인지 의문을 가진 적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다시금 내게 물어보셨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언지는 아느냐?"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입니다. 남을 돕고 이해하려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래, 내가 그렇게 가르쳤지. 그리고 또 하나가 있었지."

"네."


가슴을 덥히는 것입니다.


이 대답을 듣고나서야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나를 지그시 쳐다보시다가 다시 초상화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언젠가 사랑을 할 때가 올테지."

"연인을 말씀하는건가요? 저번에 오갔던 가흐르 가문과의 약혼이..."

아버지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꼭 그렇지만은 않단다. 네 증조할아버님, 초대 가주님께서는 가문을 사랑하셨단다. 그래서 미르유라는 가문을 만드시고, 평생을 가문을 위해 힘쓰다 돌아가셨지. 정말... 가문만을 바라보시며 가문만을 사랑하시던 분이셨단다."

회한에 젖으신 아버지를 닥달하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가슴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장에 습기가 찬 것처럼 먹먹해서, 한시라도 빨리 아버지께 여쭙고 싶었다.

한시간 같은 1분이 지나고, 아버지께서 말을 이으셨다.

"그리고 너희 할아버님, 2대 가주님께서는 그런 증조할아버님을 사랑했단다. 성적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존경하셨다고 봐야겠지. 그래서 네 할아버님께서는 증조할아버님의 유언을 받들어 가문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단다. 역사가 짧은 미르유가 단시간내에 이렇게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데에는 두 분의 인생이 담겨있기 때문이란다."

나는 은연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미르유의 비정상적인 성장속도에는 이유가 있던 거였다. 솔직히 상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업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다시 말을 멈추셨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머리보다 가슴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실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무엇을 사랑하셨습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보며 살포시 웃어보이실 뿐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결국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화제를 바꾸셨다.

"나도 예전에는 너처럼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았단다. 그건 네 할아버님도 마찬가지셨고, 증조할아버님도 마찬가지셨지. 미르유는 대대로 심장이 약하단다. 하지만."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시고, 숨을 들이 쉰다음 이어 말씀하셨다.


허락된 단 하나의 사랑을 만났을 때, 그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뛰기 시작한단다.


"미르유에서 대대로 물려져온 특질이란다. 인생에서 단 하나의 사랑을 찾을 때까지는 심장이 박동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천천히 뛴단다. 하지만 이 시기를 거쳐 때가 되면 심장이 타오르는 것처럼 뜨겁게 달궈지고, 심장이 아니라 온몸이 박동하는 것처럼 세차게 뛰기 시작한단다."

나는 손을 잡지않은 손으로 내 왼쪽 가슴을 지그시 눌러보았다.

......과연.

지금은 텅 빈 것처럼 그 어떤 떨림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내가 쓴웃음을 짓고있자 아버지께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시더니 양손을 내 어깨에 살짝 올리셨다. 그리고 분명 심장만큼이나 가라앉은 내 눈동자를 바라보셨다.

"이제... 4년이다. 4년 후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네 성인식이다. 너는 앞으로 4년 후면 성인이 되어 나의 품을 떠나게 된다. 나는 그 때, 네게 가주의 직위를 물려줄 것이다."

"그 때는 너무 이릅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눈을 감고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아냐, 너는 할 수 있어. 초대부터 너까지 넷의 미르유를 보았지만 너만큼 미르유에 어울리는, 미르유다운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단다. 그러니, 너는 할 수 있어."

도대체 '미르유답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나는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버지께서는 내게 그 짧은 질문의 시간조차 넘겨주지 않으셨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말을 쏟아내셨다.

"여기에서 나가게되면 그 때부터는 더 이상 내가 네게 가르칠 것이 없게 된단다. 그러니 너는 앞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든, 공부를 더 하든, 녹림로를 둘러보든 마음대로 하려무나. 다만 4년 후, 네가 열아홉의 생일을 맞이하는 날에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 성인식을 치뤄야한다. 알겠니?"

"네."

한꺼번에 말을 쏟아내시고 난 뒤에야 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쉬시고 내 어깨를 놓으셨다. 그리고 다시 내 손을 잡고 살포시 웃으셨다.

"그럼, 이제 나가볼까?"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왠지 내가 아직 이곳에 남아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것만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막연한 느낌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을테지만... 지금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아마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이곳을 나가면 무언가가 바뀌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지으셨지만 다시 인자하신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시곤 홀로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촛불 대여섯개만이 타오르는 회랑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고개를 들어 선대 가주님들의 초상화를 보았다. 증조할아버님이나 할아버님을 뵙지 못했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역사책에서 봤던 '신의 아들, 쥬란데 그르하'의 초상화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닿지않을 것을 알고있기에 가질 수 있는 감정.

나는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렇게 가만히 서서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마음 속에 품은 한가지 질문을 사진에 갇힌 선대님들께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사랑이 뭔가요?

그것이 무엇이길래, 평생 그것에 모든 것을 바치고

그것을 심장으로 삼으셨나요?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깁니다. 그리고 잠적... 안하길 빌어야죠 ㅋ?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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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버지 - 1 +3 12.01.10 266 3 17쪽
28 XX. 그대를 위한 누군가의 외침 +1 12.01.09 248 4 2쪽
27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9 end +2 12.01.04 237 4 5쪽
26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8 +2 12.01.03 255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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