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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의 두근두근 판타지 서재!

악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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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어스
작품등록일 :
2012.03.04 23:26
최근연재일 :
2018.01.12 12:31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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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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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글자수 :
172,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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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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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2

옛날에 썼던 글이에요




DUMMY

옛날, 옛날 글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가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했느냐하면 한 번 들었던 이야기는 절대로 잊지않았고, 처음 듣는 이야기를 하는 꾼이 있다고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야기를 듣고 말았지요.

그렇게 그는 평생동안 수많은 글을 읽고, 접하고, 들으며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사람들은 그를 '이야기왕'이라고 부르며 그에게만 슬쩍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야기를 들을망정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은 적이 없다는 것의 의미를 말이지요.

-이름없는 작가의 '이야기왕' 中



비록 내가 수많은 글을 접하고 편집하고 그것을 찍어내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나는 당최 작가가 되겠다며 날뛰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 어째서? 도대체 작가가 되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수 있고, 얼마나 큰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단 말이야.

"형은 바보야!"

자누 세페리, 나의 사랑스러운 동생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을 때, 나는 순진하기만하던 동생에게 처음으로 욕을 받았어. 솔직히 이 정도는 욕이라기 보다는 귀여운 앙탈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동생이 그날 처음으로 나에게 덤벼들었단 말이지.

나중에 알고보니 이 놈이 은근히 마음속으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거야. 은근히...는 아니었지. 나는 예전부터 녀석이 글을 사랑하고 있으며 작가를 동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릴 때부터 양손이 불편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펜을 오랫동안 쥐는 일이 힘든 자누에게는 맞는 직업이 아니었지.

그런데 말이야. 이상한 일이 생긴거야. 어느 새부턴가 자누는 필사가 뺨칠 정도로 아름다운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었어. 다만 그것은 오른쪽 뿐으로 왼손은 지금까지도 불편한 상태인 채였지. 왜 그런지 알아보려고해도 의원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 현상을 내가 알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냥 자누의 글을 향한 '사랑'이 기적을 행했다고 생각하는 수 밖에.

그리고 왜인지 녀석은 항상 오른팔을 답답하게 천으로 둘둘 말아두고, 손에는 하얀 장갑을 끼고 다니기 시작했어. 혹시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기적이 날아갈까봐 그랬을지도 몰라. 시간이 지나도 애같은 녀석이니까.

그런데 훌륭한 팔이 생기고 막 작가가 되려는 꿈을 펼치려는 찰나에 레렘테에서 제일 많은 글이 모이는 '광장'의 최고권위자라는 놈이 그런 말을 했으니 녀석이 오죽 마음이 아팠겠어. 난 슬쩍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지.

언젠가 몰래 자누의 비밀서랍을 열자, 아니나다를까, 아직 미숙하기만한 글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어. 내 눈에는 아직 젖내가 풀풀 풍기는 글에 불과했지만... 충분히 발전 가능성은 있어보였어. 하지만 수많은 원고들이 퇴고를 당할 때, '발전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좀 더 노력하세요.'인 것을 고려해보면 그리 고무될만하지도 못했지.

그래도 나는 그 종이뭉치들을 가지런히 모아서 도로 서랍에 넣었어. 그리고 '서랍 요정'에게 두 손 모아 간절히 빌고 서랍을 닫았지. '제발 동생의 꿈이 이루어지게 해주세요.'라고 말이야.



혹시 '서랍 요정'이라고 알지 모르겠어.

서랍 요정은 구전 형식으로 내려져오는 이야기로 글로써 제대로 정리되어본 적 없는 미신이라고 해. 서랍요정 이야기는 간단해. 잠깐 들려주자면...


옛날옛날에 으레 요정들이 그렇듯 장난을 좋아하는 요정이 있었답니다.

요정들은 각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난 하나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요정은 '서랍'이었던게지요.

이 요정은 마음에 내키는 서랍 이곳저곳에 들어가 무조건 자기가 들어가고나서 '처음으로 들어온 물건'을 다른 서랍에 넣는 장난을 쳤지요. 그리고는 몰래 숨어서 사람들이 그 물건을 찾으며 서랍을 뒤적이는 모습에 키득거리곤 했답니다.

하지만 요정의 장난이 무조건적으로 용납되지는 않았어요. 요정의 장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무너졌을 때', 그 장난은 영구히 금지되고 장난을 만든 요정은 영원히 무너진 사람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요정들은 장난을 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어떤 면이 무너지기 쉬운지 면밀히 관찰하고 장난을 쳤답니다. 요정이야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정돈 쉬웠겠지요.

여느 날처럼 그 요정은 쪼르르 날아서 한 고급 책상서랍 속에 숨었답니다.

책상 주인은 매우 커다란 인쇄소의 총관리인이었답니다. 요정은 그가 이 서랍에는 업무에 관련되지 않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을 넣어둔다는 것을 이미 조사해둔 뒤여서 안심하고 장난을 칠 생각이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지요. 서랍으로 빛이 들어오고, 입을 딱 다문 손이 서랍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어 어떤 물건을 두고 도로 나가버렸지요.

요정은 들떠서 쫄랑쫄랑거리며 서랍 안쪽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곧 자기가 장난을 칠 물건을 찾아냈지요.

그것은 요정의 몸보다 조금 작은 반지였습니다. 반지의 겉에는 뭐라 알 수 없는 글자가 휘갈겨져 있었고, 안쪽에는 요정들이 좋아하는 보석이 촘촘하게 박혀있었어요. 그리고 한쪽에는 요정 머리만한 구슬이 박혀있었답니다.

그 구슬은 맑은 하늘색인 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흐릿한 안개같은 것이 구름처럼 보였기 때문에 마치 맑은 하늘의 일부를 떼어다가 구슬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예뻤어요. 요정은 그 반지가 탐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 예쁜 구슬을 어떡해서든 자기가 가지고 싶었지요.

그래서,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반지를 가지고 도망쳐버리고 말았지요.


이 다음부터는 솔직히 뻔하지. 규율을 어긴 요정 때문에 총관리인이라는 사람이 무너졌고, 이 요정은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마음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이어져.

그렇게 뻔한 이야기는 진행되고, 드디어 마지막 장에 다다르게 되지.


요정은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그쪽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깜짝 놀랐어요. 그가 자신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분명 사람은 요정을 볼 수 없을 터인데도 그는 마치 몇 년이나 함께해온 친구를 보는 듯한 애정어린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는 당황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요정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그 요정이구나."

"내가 어떻게 너를 볼 수 있는지 궁금한거지?"

"글쎄... 내가 죽을 때가 된 모양이야."

"너도 몰랐던 모양이지? 요정의 장난 때문에 무너진 사람은 죽기 직전에만 요정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해. 누가 그랬냐고? 다른 요정이 찾아와서 설명해주더군."

"네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확실히 이건 네게 가혹할지도 몰라. 너 때문에 무너져버린 내가 너를 곱게 볼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요정은 확실히 전보다 빠르게 날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그가 말했듯 그가 자기에게 어떤 말을 할지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요정은 사람들의 시커먼 감정에 오래 노출되면 말라 죽어버리기 때문에 더욱 그랬지요.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그 어떤 힐난이나 원망도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 보았던 그대로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요.

"아마 지금쯤이면 눈치챘을거야. 그래,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아."

"왜냐고?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네가 대답해주었으면 하는게 있어."

그는 잠시 뜸을 들이곤 이렇게 물었어요.


"네가 가져간 반지는 지금 어디에 있어?"


요정은 언제 그의 눈빛이 돌변할지 몰랐기에 불안에 떨며 자신의 몸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어 반지를 꺼냈어요. 반지는 옛날 그 상태 그대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지요. 요정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보며 또 다시 황홀경에 빠지게 되었지요.

만약 그가 요정에게 그 반지를 달라고 하고, 요정이 이를 거부했다면 요정은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의 눈에는 오히려 더욱 짙은 애정이 서렸지요.

"오오... 아직 옛 그 광채를 유지하고 있구나. 아아,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아마 너도 이 광채에 눈을 빼앗겼겠지. 그래서 너도 모르게 그것을 가지고 달아났던 거겠지."

요정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만약 그가 이 반지를 달라고 하면 자기는 속절없이 그에게 반지를 건네줘야만 했지요. 하지만 이 아름다운걸 넘겨주기 싫었어요. 영원히 품에 안고 살아가고 싶었지요. 하지만 넘겨주지 않는다면 그의 눈빛에 쏘여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어요.

요정의 고민을 알아챈 그가 작게 웃으며 말했어요.

"걱정하지마. 네게서 반지를 돌려받을 생각은 없으니까. 오히려 앞으로도 네가 그 반지를 맡아주었으면 해."

요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그는 분명 반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붕괴한 사람이 아니던가요. 그럼 대부분은 그것을 돌려받아 허해진 마음을 되돌리고 싶어함이 정상인데, 그것을 계속 맡겨두겠다고요?

"궁금하겠지. 하지만... 그 이유를 풀어놓을 시간은 없는것 같아. 아무래도 슬슬 죽을 때가 온 모양이거든. 요정은 한 번 약속을 하면 절대로 그것을 어겨서는 안된다지?"

"그래, 나는 네게 반지를 건네주는 대가로 악속을 하나 받고 싶은거야."

그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어렸어요.


'요정의 약속'을.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여기까지는 이야기꾼들이 입을 하나로 맞추지만 다음부터는 제각각 풀어나가지. 반지를 영원히 사람들 눈에서 감추라는 둥, 반지를 약혼자에게 전해달라는 둥 별의별 이야기가 떠돌지만 무엇하나 내 마음에 와닿는건 없었어.

그렇다곤 해도 내가 직접 이어서 쓸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였기에 더욱 내 손으로 다음을 쓸 수는 없었지.

나는 결국 이야기라는 건 '듣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야기에는 다른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이 녹아있지.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설령 같은 줄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되는거야. 지금 예를 든 서랍 요정 이야기처럼 말이야.

내가 이어서 글을 완결한다? 좋아,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글이 되겠지. 하지만 그건 나에게 있어 더 이상 '이야기'가 아니게 되는거야.

그래서 나는 절대로 내가 직접 이야기를 쓰지않아.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어쨌든 잠깐 말이 새긴 했지만 서랍 요정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 아니야. 이게 참 웃기게도 결말은 같아. 마치 계속 한 줄기로 흘러오던 강물이 잠시 갈라졌다가 하류에서 다시 만나는 것처럼 말이야.

그 결말은 이래.


요정은 이후로도 계속 서랍에 남아 장난을 쳤어요. 하지만 평생 같은 장난을 치는 요정의 습성을 버리고 새로운 장난을 치기 시작했지요.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사람들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여기, 바로 이 서랍으로 가지고 오는 장난을 말이에요.


과연 이야기에 나오는 '바로 이 서랍'은 어디에 있을까? 글쎄, 나는 혹시 내 책상 서랍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해. 왜냐하면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애정'을 잔뜩 쌓아두고 이것을 평가하는 사람이니까.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작가의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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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3. 아버지 - 1 +3 12.01.10 265 3 17쪽
28 XX. 그대를 위한 누군가의 외침 +1 12.01.09 247 4 2쪽
27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9 end +2 12.01.04 237 4 5쪽
26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8 +2 12.01.03 254 4 15쪽
25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7 +1 12.01.01 244 3 14쪽
24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6 +3 11.12.30 304 4 7쪽
23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5 +2 11.12.28 260 2 9쪽
22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4 +2 11.12.27 333 6 7쪽
21 여든여덟의 추도문 - 5. 후로나 키인 - 3 +1 11.12.26 231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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