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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체님의 서재입니다.

오늪의 이젠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아히체
그림/삽화
@jo_9o
작품등록일 :
2015.10.03 15:53
최근연재일 :
2016.02.20 09:13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7,327
추천수 :
59
글자수 :
288,708

작성
15.12.09 18:53
조회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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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원추리 연가 _ 7. 어둠의 구렁

DUMMY

"어머나 세상에. 거창하게 날뛰었구나."


또각 거리는 구두 소리가 공허한 공간 안에 울려 퍼졌다. 깨진 창문으로 빗물이 침범해 들어와 실내의 공기를 축축하게 적셔낸다.


주방 안쪽의 쪽방에서 커다란 짐 꾸러미를 질질 끌고 나온 아이힌은 근처에 쓰러져 있는 팔이 꺾인 사내를 가만히 응시했다. 빠진 이빨 몇 개가 굴러다니는 얼굴 주변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가만히 손가락을 대보자 요동치는 맥이 미약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피 냄새가 진하게 내려앉은 어두운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예닐곱의 남자들 사이에서 홀로 서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신음 하나 새어 나오지 않는 공간 안에서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다.


멍한 얼굴의 루가는 새까맣게 타 버린 지폐 더미를 발밑에 두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루가의 앞으로 하얀 봉투 하나가 날아와 툭 떨어진다.


"받아. 20만 에폰이야. 너희 돈. 그 정도는 될 거야."


루가는 무거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텅 비어있는 금빛 눈동자에는 생기가 비치지 않는다.



원추리 연가 _ 7. 어둠의 구렁



아이힌은 책장으로 걸어가 거래 장부를 한 권 빼 들었다. 한장 한장 넘겨질 때마다 그녀의 붉은 손가락이 스친 종잇장이 파드득 소리를 내며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책장을 다 넘겼을 때는 이미 책의 형태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손에 남은 재를 털어내며 아이힌은 루가를 돌아보았다.


"너 신분을 숨기고 있는 거지? 캐묻지는 않을게. 나랑 같이 일하지 않을래?"


"도둑질…. 말이야?"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너의 눈동자에는 광기가 있어. 잔인하게 일그러져있는 본능은 위장된 겉모습으로 쉽게 숨길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난 돌아갈 거야."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줄 알아? 넌 세로의 전 재산을 훔쳐서 도망쳤어."


"웃기지 마!"


루가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습기 어린 그의 목소리는 가시를 삐죽삐죽 내세운다.


"돌아가겠다고? 어딜? 넌 말이야. 세로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일 뿐이야."


루가는 덜덜 떨리는 손을 자신의 눈앞에 내밀어 허공을 그러쥐었다.


"네가 뭘 알아! 지키고 싶었던 모든 걸 전부 내 손으로 부숴 버리고 숨 쉬는 일마저 비참했어. 나조차도 내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손을 내밀어 준 녀석이 바로 그 녀석이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손끝에 달려있던 물방울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린다. 몸과 마음이 서서히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그게 진심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거니?"


"도구라 할지라도 나는 그 신뢰를 배신할 수는 없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둠 속에서 홀로 헤매다 지쳐 모든 걸 놓아버리려고 할 때 갑자기 나타난 불꽃이었다. 처음에는 신전의 짧은 여흥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온기에 취해 홀로 남겨지는게 두려워졌다.


작은 불빛이 사그라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두 손에 감싸 쥐고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불꽃이 온몸에 옮겨붙어 타오른다 하더라도 기꺼이 제 몸을 맡길 것이다. 업보와도 같았던 어둠의 구렁 속을 밝힐 수만 있다면.


"넌 아직도 순진하구나. 세상은 언제나 혼자야.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는 거야."


아이힌은 두 번째 장부를 꺼내 들었다. 팔랑거리며 넘어가던 종잇장은 어느새 한 부분에 멈추었다. 아이힌은 소리가 나도록 책을 덮고선 등 뒤의 꾸러미를 향해 내던졌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까딱거리며 루가를 향해 웃는다. 그 고운 미소와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언담이 쏟아졌다.


"신뢰? 우정? 그런 것들은 궁지에 몰리면 가장 버리기 쉬운 것들이지. 아무리 허울 좋은 살을 갖다 붙여도 인간의 본질은 고독뿐이야."


루가는 털썩 주저앉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바닥에 떨구어진 손에 닿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집어던져댔다. 아이힌은 책장에 기대어 삐딱하게 서 있던 몸을 바로 세우고 붉은 손가락을 내밀어 나무의자의 토막을 가볍게 내쳤다. 나무는 순식간에 불꽃에 휩싸여 새까만 형태의 재만 남기고 으스러지며 구석으로 처박힌다.


"난 잃을 게 두렵지 않아. 그렇기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가지지 않는 게 내 원칙이지. 이게 바로 고독 속에서도 외롭지 않게 사는 방식이야. 언제까지 신뢰라는 둥 달콤한 환상 속에서 헤맬래."


아이힌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루가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녀의 빠알간 손가락이 루가의 젖은 망토의 끝을 들어 올려 붉은 입술을 꾹 찍는다.


"버림받기 전에 버리라고. 순진한 신관님."


날카롭게 솟아올라 공기를 찔러대는 불안정한 살기와 함께 루가의 몸의 떨림이 멎어든다. 그의 변화를 빠르게 눈치챈 아이힌이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루가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퍼져나가는 먹물이 아이힌의 다리를 삼킬 듯 일렁였다. 그녀는 웃음이 서린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대로 다리를 들어 어둠 위를 되밟았다.


"루가디.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적은 내가 아니야."


어두운 그림자는 그녀의 몸을 붙들지 못하고 그 곁을 맴돌았다. 아히힌이 허리를 숙여 구두를 벗고 맨발로 섰다. 투명한 발 위로 붉은빛이 어른거렸다. 그녀의 신체가 점점 붉게 물들어갈수록 그 빛은 강렬해져 갔다. 아이힌의 움직임을 전혀 구속하지도, 전의를 상실시키지도 못하는 그림자를 거둬 들이고 루가는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이미 팔뚝 전체가 벌겋게 달아오른 그녀의 팔에 루가의 주먹이 닿자마자 치이익 소리를 내며 그을음이 생긴다. 신체발화능력- 그녀는 접근전에 능한 이젠이었다.


살갗이 타는 아픔에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고 루가는 그대로 밀어쳐 그녀의 여린 몸을 날렸다. 욱신대는 팔을 털며 아히힌은 뒤로 밀려난 상태로 발을 디뎌 루가와 더욱더 멀리 떨어졌다.


그녀의 팔을 때렸을 때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던 돌멩이들이 루가의 발밑으로 굴러와 칼날과 같은 날카로운 불기둥이 되어 찌르듯 솟아오른다. 순간 루가의 주변이 화염이 휩싸였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팔을 내밀어 허공을 끌어 잡았다. 짙은 암흑의 막이 천정에서부터 떨어져 내려 순식간에 불길을 앗았다. 아이힌은 즐거운 듯 소리를 내어 웃었다.


"너 진짜. 물건이구나?"


다시 한 번 루가가 성큼 다가섰다. 그의 손이 뒤로 물러서는 아이힌의 곱슬 거리는 금빛 머리카락 끝을 잡아챘다. 하지만 붙잡힌 머리카락은 타올라 사그라졌다. 몸이 가벼워 날렵한데다가 온몸이 불꽃과 같았다. 그녀는 닿을 듯 말듯 잡히면 금세 빠져나와 루가의 공격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루가는 접근을 멈추고 발을 굴려 바닥이 부서지도록 내리찍었다. 그와 동시에 모든 빛과 소음은 그의 발밑으로 빨려들어 침묵의 밤이 찾아왔다. 그제야 웃음기를 거둔 아이힌은 두 눈을 굴렸다. 천장도 바닥도 빗소리마저도 삼켜버린 검은 공간에 갇혀, 마주하지만 마주하지 않은 것 같은 사내의 살기를 쬐고 있노라니 저절로 마른 침이 삼켜졌다.


그녀는 꾹 쥔 주먹을 펼쳐 새빨갛게 달아오른 두 손가락을 문지르며 반짝이는 가루를 흩날렸다. 그녀의 동그란 입술이 만들어낸 입김을 타고 가루는 루가의 머리 위에 끼얹어졌다. 머리와 피부에 닿자마자 가루는 폭발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루가의 머리통이 화염에 휩싸였다. 하지만 불타오르는 인영은 허상처럼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아이힌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루가가 허공이 맺어준 도끼를 들어 올렸다.


"멈춰!"


루가의 귓전에 미미한 경적이 와 닿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흉구는 아이힌의 어깨를 쪼개버릴 듯한 기세로 날아든다.


"루가!"


환상이 아닌, 다시 한 번 선명하게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루가의 움직임이 순간 멈추었다. 그 찰나를 놓칠 아이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루가의 턱밑으로 무릎을 세워 올렸다. 붉게 물든 무릎에서 터져 나온 열기가 용암처럼 이글거렸다.


"아이힌! 멈춰!"


열린 문이 빗방울과 함께 뱉어낸 그림자가 빠르게 두 사람 사이를 향해 달려든다. 그 뒤로 몸을 내민 소녀가 창을 크게 휘두르자, 압력이 빚어낸 바람이 세로의 오른손에 휘감긴다.


"라울."


무유의 창이 일으킨 바람은 세로의 목소리에 반응해 루가와 아이힌의 사이에서 폭발했다. 그 압력에 부닥쳐 떠밀린 아이힌은 뒤에 있던 소파의 손잡이에 걸려 그 위로 나동그라졌다.


반대쪽으로 밀려난 루가가 책장에 부딪혀 바닥에 주저앉자 그의 어깨 위로 장부와 책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하지만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바람을 헤치고 아이힌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


살기등등한 루가에게서 이성도 그리고 생기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거기 서 있는 남자는 여태껏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던 낯선 사내였다.


"그만둬! 루가."


세로는 그에게 달려가 어깨를 붙잡았다. 사람의 체온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차가운 기운이 피부를 덮고 있는 옷 위로 생생히 느껴졌다. 세로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세로의 젖은 손을 뿌리치고 루가는 두 손을 들어 허공을 받들었다. 어둠이 내려앉아 흉물스러운 형태로 굳어져 간다.


"멍청아. 이성을 잃지 마!"


세로는 다급히 그를 돌려세운 후 오른손을 들어 바람을 휘감았다. 그리고 곧,


"진정해!"


뺨을 후려치는 마찰음이 바짝 긴장한 공기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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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국가 및 용어, 캐릭터 설정집 (업데이트 15.12.20) +2 15.10.08 543 0 -
48 원추리 연가 _ 27. 번뇌 16.02.20 404 2 17쪽
47 공지 16.02.06 258 2 4쪽
46 원추리 연가 _ 26. 악몽의 편린 16.02.03 328 0 15쪽
45 원추리 연가 _ 25. 별을 헤매는 아이들 + 후기 16.01.30 418 1 16쪽
44 원추리 연가 _ 24. 환상 서곡 16.01.27 283 0 18쪽
43 원추리 연가 _ 23. 살인귀의 본능 16.01.23 451 0 18쪽
42 원추리 연가 _ 22. 빛과 어둠의 춤 16.01.20 278 0 18쪽
41 원추리 연가 _ 21. 새하얀 심연 16.01.16 304 0 16쪽
40 원추리 연가 _ 20. 별을 헤는 아이들 16.01.13 348 0 17쪽
39 원추리 연가 _ 19. 붉은 바위 너머 비밀 16.01.09 504 0 17쪽
38 원추리 연가 _ 18. 작은 도둑 16.01.06 256 0 14쪽
37 원추리 연가 _ 17. 황야의 꿈 16.01.02 484 0 14쪽
36 원추리 연가 _ 16. 제박 15.12.30 418 1 21쪽
35 원추리 연가 _ 15. 기적을 위한 한 걸음 15.12.26 333 1 16쪽
34 원추리 연가 _ 14. 사랑은? 전쟁! 15.12.23 282 0 13쪽
33 원추리 연가 _ 13. 사랑은! 전쟁? 15.12.20 177 0 15쪽
32 원추리 연가 _ 12. 태양의 의무 15.12.19 442 0 13쪽
31 원추리 연가 _ 11. 화원의 자장가 15.12.16 270 1 11쪽
30 원추리 연가 _ 10. 결혼 축제(2) 15.12.13 281 0 11쪽
29 원추리 연가 _ 9. 결혼 축제(1) 15.12.12 263 0 11쪽
28 원추리 연가 _ 8. 결의 15.12.12 463 0 12쪽
» 원추리 연가 _ 7. 어둠의 구렁 15.12.09 288 0 10쪽
26 원추리 연가 _ 6. 함정 15.12.06 229 0 10쪽
25 원추리 연가 _ 5. 마녀 아이힌(2) 15.12.03 348 0 11쪽
24 원추리 연가 _ 4. 마녀 아이힌(1) 15.12.01 496 0 11쪽
23 원추리 연가 _ 3. 여행의 시작(3) +3 15.11.29 411 1 9쪽
22 원추리 연가 _ 2. 여행의 시작(2) +2 15.11.29 511 3 9쪽
21 원추리 연가 _ 1. 여행의 시작(1) 15.11.25 283 1 11쪽
20 미궁의 빛 _ 14. 미궁의 빛 15.11.22 374 1 14쪽
19 미궁의 빛 _ 13. 의외의 탈주로 15.11.20 432 1 15쪽
18 미궁의 빛 _ 12. 루인의 망령(3) 15.11.18 244 1 14쪽
17 미궁의 빛 _ 11. 루인의 망령(2) 15.11.17 318 1 11쪽
16 미궁의 빛 _ 10. 루인이 망령(1) 15.11.15 410 1 15쪽
15 미궁의 빛 _ 9. 공동묘지의 소녀 15.11.13 261 2 15쪽
14 미궁의 빛 _ 8. 악마 루아브(2) 15.11.11 299 1 14쪽
13 미궁의 빛 _ 7. 악마 루아브(1) 15.11.08 397 1 14쪽
12 미궁의 빛 _ 6. 가짜들의 싸움 15.11.06 333 2 9쪽
11 미궁의 빛 _ 5. 탈출의 전야제(2) 15.11.04 353 1 9쪽
10 미궁의 빛 _ 4. 탈출의 전야제(1) 15.11.01 403 0 12쪽
9 미궁의 빛 _ 3. 시연의 뜰 15.10.31 342 0 15쪽
8 미궁의 빛 _ 2. 새장 속 소년(2) 15.10.30 298 3 12쪽
7 미궁의 빛 _ 1. 새장 속 소년(1) 15.10.28 289 2 12쪽
6 하빌리스의 형제 _ 6. 하빌리스의 형제 15.10.25 408 1 16쪽
5 하빌리스의 형제 _ 5. 미친 예술가의 사학(2) 15.10.23 279 0 13쪽
4 하빌리스의 형제 _ 4. 미친 예술가의 사학(1) 15.10.21 368 0 14쪽
3 하빌리스의 형제 _ 3. 재회 15.10.18 220 0 13쪽
2 하빌리스의 형제 _ 2. 안내인 15.10.17 376 2 14쪽
1 하빌리스의 형제 _ 1. 북문 입국소 15.10.15 43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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