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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체님의 서재입니다.

오늪의 이젠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아히체
그림/삽화
@jo_9o
작품등록일 :
2015.10.03 15:53
최근연재일 :
2016.02.20 09:13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7,324
추천수 :
59
글자수 :
288,708

작성
15.11.04 01:28
조회
352
추천
1
글자
9쪽

미궁의 빛 _ 5. 탈출의 전야제(2)

DUMMY

"세로 님 여기 계신가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달빛이 비쳐드는 창문 아래에 앉아 기울어진 달을 응시하고 있던 세로는 멀리서 호일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목을 타고 등으로 스며드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미안해서 어쩌지 찾고 있는 그분이 아니라서."


분명하다. 낯익은 이 목소리는 휴조였다.



미궁의 빛 _ 5. 탈출의 전야제(2)



호일 박사는 벽에 기대어 서 있는 휴조를 발견하고 단박에 표정을 구겼다. 뒷걸음질 치며 벗어나려는 순간, 휴조가 성큼성큼 다가와 그의 멱살을 붙잡고 뺨을 내리쳤다. 골이 흔들리는 충격으로 흐려지는 시야를 바로 잡으니 어느새 호일 박사의 몸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왜 이래! 미쳤어?"


"그렇게 날 피하다간 찾아야 할 사람을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창고의 그늘 밖으로 걸어 나와 얼굴을 드러낸 휴조가 턱짓으로 창고의 문을 가리켰다. 호일 박사는 욱신거리는 머리통을 한 손으로 누르며 정신을 가다듬고 창고를 향해 뛰어가 쇠문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여기 계신가요? 몸은 괜찮으신 건가요? 세로 님!"


세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천장 밑에 매달린 높은 창문을 노려보았다.


"정말 여기 세로 님이 계신 게 맞아?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똑똑한 도련님이군. 얌전히 입 다물고 있는 다고 독 안에 든 생쥐가 없어지는 법은 아니지."


"거짓말 마. 세로 님은 그렇게 쉽게 붙잡히실 분이 아니다."


"도련님을 꾀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지. 이상할 정도로 그 괴상한 종이 인형에 집착을 보이니 말이야. 미끼를 쉽게 물더군."


휴조가 몸을 두르고 있던 검붉은 망토를 벗자 우락부락한 그의 상체가 드러났다. 온몸을 할퀴어놓은 듯한 화상 자국 위로 불쑥 칼날이 솟아오른다. 그는 흉기로 변질한 주먹을 말아쥐고 호일 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호일 박사가 머리를 붙잡고 주저앉자 쇠문을 들이받은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퍼진다. 박사의 머리통 위로 쇠문을 뚫고 들어간 휴조의 주먹 끝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휴조는 박사의 머리칼을 거세게 움켜쥐고 그의 얼굴을 구멍으로 들이밀었다. 뚫린 면이 고르지 못해 호일 박사의 뺨을 사납게 찔러댔다.


슬쩍 벌어진 눈으로 시선을 모으니 달빛이 어슴푸레 비쳐드는 창고 안의 형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창문 아래에서 놀란 듯 쳐다보는 얼굴은 분명 호일 박사가 애타게 찾던 그 얼굴이 맞다.


"세로 님!"


휴조는 호일 박사의 머리칼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실어 그의 몸뚱이를 등 뒤로 내던졌다. 호일 박사는 금세 구석의 담 아래까지 굴러가 몸을 늘어뜨렸다.


부들거리는 팔을 뻗어 겨우 상체를 일으키니 호일 박사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떨어져 내린다. 그는 휴조를 올려다보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야…. 하지만 휴조 자네는 이젠이 아니었잖아…."


"5년 전 그 날. 난 이미 눈꺼풀 하나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움직이기 위해 그 죽은 몸을 팔 수밖에 없었다. 복수를 위해서 말이지."


이젠은 위험한 힘을 가지고 태어나기에 올바른 교육과 그 힘이 올바르게 쓰일 수 있는 소속이 필요한 존재였다. 평범한 인간이 이젠의 타고난 힘을 갖게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호일 박사는 있어서는 안 될 생체실험을 상상하며 소름이 돋아 오른 양팔을 부둥켜안았다.


"그 창녀는 어디에 있지? 말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전부 잘라놓겠다. 어서 대답해."


호일 박사는 앙다문 입가에 맺어진 피를 닦으며 고개를 휘저었다. 휴조가 창고를 가리키며 입꼬리를 올리자 호일 박사의 새파랗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핏기가 가신다.


"…. 지금 서신국에는 없을 거다. 회담장에 따라간다고 들었으니 지금쯤 동신국에 있겠지."


"젠장. 미꾸라지같이 잘 빠져나가는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휴조는 얼룩덜룩한 피부 조각이 이어 붙은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의 음성은 분노로 젖어들었다.


"이 몸에 새겨진 저주받은 불꽃의 흔적들이 내 몸을 갉아먹지. 보이지 않은 화염으로 온몸이 타올랐던 그 날의 기억과 고통이 되새겨 지고 있는 거야. 매일매일 말이지."


"그 날의 일은 사고였어! 너뿐만 아니라 그 녀석도 아직 아카데미로 돌아오지 못한 채 죗값을 치르고 있다고."


"그런 사고가 아카데미에서 있던 날 이후 나는 아무도 모르게 병원에 가둬졌다. 그리고 그 사건은 누구도 알지 못했지. 그 모든 게 너의 잘나신 아버지의 권력이란 걸 모를 줄 아나 보지? 아카데미 총장 와일츠의 숨겨둔 막내아들 되시니까 더러운 소문에 휘말려선 안 되었겠지. 그 날의 나와 똑같은 고통을 심어주겠다."


"날 태워 죽이든 찔러 죽이든 맘대로 해. 하지만 세로 님은 풀어줘 저분은 가득 담긴 눈동자로 창고를 돌아보던 호일 박사는 섬뜩한 살기를 내뿜으며 이죽거리는 휴조의 비웃음에 식은땀을 흘렸다.


"소중한 신좌 님이라고?"


"너…. 그걸…."


"너의 그 가짜 성은 비밀리에 신좌를 보좌하기 위해 위장한 신분이 아니었나? 응? 호일 레닐슨. 아니 호일 와일츠"


"거기까지 조사를…. 나한테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


"총장의 아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지키려 드는데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신좌 말고는 누가 있을까. 잘됐군. 네 녀석 때문에 온 세계가 기다려 왔던 신좌의 아이는 즉위도 전에 살해당하는 거지. 네 녀석의 목숨값보다 더 값어치 있겠어. 네 녀석 스스로 죽고 싶도록 만들어주마."


굳게 닫힌 창고에서 물건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호일 박사는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불안감에 손을 덜덜 떨었다.


와장창- 창고 안에서 뻗어나온 잡동사니와 함께 유리 조각들이 반짝거리며 허공 위를 흩날린다. 그리고 곧이어 양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린 세로가 깨진 유리를 뚫고 뛰어내렸다. 그는 그간 수없이 도망쳤던 실력을 발휘하여 완벽한 자세로 착지한다.


"달리세요! 세로 님!"


호일 박사가 휴조의 허리에 매달리며 소리쳤다. 세로는 잠시 멈춰 서서 호일 박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등을 돌려 뒤뜰의 문을 향해 내달린다.


휴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박사의 어깨를 밀어내 배를 걷어찼다. 하지만 밀려나지 않으려 호일 박사는 휴조의 다리를 팔로 감았다. 발길질이 쏟아져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 널 두고 가진 않을 거니까."


휴조의 손이 호일 박사의 오른쪽 다리를 잡았다. 손아귀의 칼날이 꿈틀거리자 호일 박사의 바지는 금세 피로 물들었다.


"아아아악!!!!"


그제야 휴조에게서 두어 걸음 멀어진 호일 박사는 고통이 밀려드는 다리를 붙잡고 몸을 웅크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겉옷을 발로 차내며 휴조가 다가왔다.


"어딜 도망가시려고? 꿈도 못 꾸게 발목부터 끊어내 주마."


휴조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오자, 박사는 앉은걸음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금세 반대쪽 발목까지 그의 손에 붙들린다. 피가 배어 나오는 다리로 발길질해댔지만 휴조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칼날이 튀어 오르는 걸 보며 호일 박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는 감각에 얼어붙은 호일 박사의 어깨가 느슨하게 풀어진다. 더는 휴조에게 잡힌 발목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가 스르르 뒤로 밀려나는 소리에 놀라 한쪽 눈을 슬며시 뜨자, 집중된 돌풍에 박사의 등 뒤로 밀려나 겨우 중심을 잡고 서 있는 휴조가 보였다. 호일 박사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가 몰려 새빨개진 그의 얼굴은 또 한 번 하얗게 질려버린다.


"하아. 호일 박사님. 오늘따라 낯빛이 알록달록하시네요."


"세...로 님!"


깨진 유리창에 걸려 찢어진 채 너덜거리는 세로의 소매 밑으로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되돌아온 세로의 손은 여태껏 본 적 없는 낡은 가죽 장갑이 감싸져 있었다.


"왜 돌아오셨어요!! 지금이 애타게 기다려오셨던 탈출의 기회잖아요!!"


"저 녀석을 치워놓고 가도 늦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세로는 커다란 장갑이 흘러내리지 않게 끈을 고쳐 매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라니 세로 님 당신은 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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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원추리 연가 _ 25. 별을 헤매는 아이들 + 후기 16.01.30 418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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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원추리 연가 _ 23. 살인귀의 본능 16.01.23 451 0 18쪽
42 원추리 연가 _ 22. 빛과 어둠의 춤 16.01.20 278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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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원추리 연가 _ 19. 붉은 바위 너머 비밀 16.01.09 504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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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원추리 연가 _ 16. 제박 15.12.30 418 1 21쪽
35 원추리 연가 _ 15. 기적을 위한 한 걸음 15.12.26 333 1 16쪽
34 원추리 연가 _ 14. 사랑은? 전쟁! 15.12.23 281 0 13쪽
33 원추리 연가 _ 13. 사랑은! 전쟁? 15.12.20 177 0 15쪽
32 원추리 연가 _ 12. 태양의 의무 15.12.19 442 0 13쪽
31 원추리 연가 _ 11. 화원의 자장가 15.12.16 270 1 11쪽
30 원추리 연가 _ 10. 결혼 축제(2) 15.12.13 281 0 11쪽
29 원추리 연가 _ 9. 결혼 축제(1) 15.12.12 263 0 11쪽
28 원추리 연가 _ 8. 결의 15.12.12 463 0 12쪽
27 원추리 연가 _ 7. 어둠의 구렁 15.12.09 287 0 10쪽
26 원추리 연가 _ 6. 함정 15.12.06 229 0 10쪽
25 원추리 연가 _ 5. 마녀 아이힌(2) 15.12.03 348 0 11쪽
24 원추리 연가 _ 4. 마녀 아이힌(1) 15.12.01 496 0 11쪽
23 원추리 연가 _ 3. 여행의 시작(3) +3 15.11.29 411 1 9쪽
22 원추리 연가 _ 2. 여행의 시작(2) +2 15.11.29 511 3 9쪽
21 원추리 연가 _ 1. 여행의 시작(1) 15.11.25 283 1 11쪽
20 미궁의 빛 _ 14. 미궁의 빛 15.11.22 373 1 14쪽
19 미궁의 빛 _ 13. 의외의 탈주로 15.11.20 432 1 15쪽
18 미궁의 빛 _ 12. 루인의 망령(3) 15.11.18 244 1 14쪽
17 미궁의 빛 _ 11. 루인의 망령(2) 15.11.17 318 1 11쪽
16 미궁의 빛 _ 10. 루인이 망령(1) 15.11.15 410 1 15쪽
15 미궁의 빛 _ 9. 공동묘지의 소녀 15.11.13 261 2 15쪽
14 미궁의 빛 _ 8. 악마 루아브(2) 15.11.11 299 1 14쪽
13 미궁의 빛 _ 7. 악마 루아브(1) 15.11.08 397 1 14쪽
12 미궁의 빛 _ 6. 가짜들의 싸움 15.11.06 333 2 9쪽
» 미궁의 빛 _ 5. 탈출의 전야제(2) 15.11.04 353 1 9쪽
10 미궁의 빛 _ 4. 탈출의 전야제(1) 15.11.01 403 0 12쪽
9 미궁의 빛 _ 3. 시연의 뜰 15.10.31 342 0 15쪽
8 미궁의 빛 _ 2. 새장 속 소년(2) 15.10.30 298 3 12쪽
7 미궁의 빛 _ 1. 새장 속 소년(1) 15.10.28 289 2 12쪽
6 하빌리스의 형제 _ 6. 하빌리스의 형제 15.10.25 408 1 16쪽
5 하빌리스의 형제 _ 5. 미친 예술가의 사학(2) 15.10.23 279 0 13쪽
4 하빌리스의 형제 _ 4. 미친 예술가의 사학(1) 15.10.21 368 0 14쪽
3 하빌리스의 형제 _ 3. 재회 15.10.18 220 0 13쪽
2 하빌리스의 형제 _ 2. 안내인 15.10.17 376 2 14쪽
1 하빌리스의 형제 _ 1. 북문 입국소 15.10.15 43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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