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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체님의 서재입니다.

오늪의 이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아히체
그림/삽화
@jo_9o
작품등록일 :
2015.10.03 15:53
최근연재일 :
2016.02.20 09:13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7,258
추천수 :
59
글자수 :
288,708

작성
15.10.25 03:32
조회
406
추천
1
글자
16쪽

하빌리스의 형제 _ 6. 하빌리스의 형제

DUMMY

"이러다가 불이 더 커져 버리면 어떡하죠?"


"괜찮아."


묘하게 힘든 기색의 세로는 색색거리며 손가락의 반지 위로 가만히 숨을 불어넣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반지는 그 낡음이 무색하게 영롱한 빛을 띠며 윤이 나고 있었다. 그는 문을 다시 열었다. 그새 복도는 일렁이는 검붉은 화염에 삼켜지고 있었다.


몸을 굴려보아도 더더욱 들러붙을 뿐인 불 꽂을 어떻게든 피해 보고자 겉옷을 벗어젖힌 매든은 매캐한 연기를 많이 들이마신 탓 인지 아까와 같은 몸놀림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세로는 숨을 들이마시며 작게 중얼거린다.


"힘들겠지만 한 번 더 부탁해."


세로는 그 자리에 보이지 않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세로가 뻗은 손을 움켜쥐며 비틀자 타오르고 있던 복도의 불꽃의 기세가 주춤거리며 점점 움츠러들기 시작한다.



하빌리스의 형제 _ 6. 하빌리스의 형제



"공기의 압력을 다루시는 겁니까? 분명 이젠이 아니시라고…."


안내인은 그저 멍하게 사그라지는 불꽃을 바라보고 입을 턱 벌렸다.


"이젠이 아니요. 그저 닌딘은 세로의 친구라오."


"친구요?"


"불 끄기는 사실 닌딘보다는 라울이 잘하지."


안내인의 의문을 더욱더 미로로 끌어놓는 세온의 대답에 그는 그저 머리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우리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 해."


세로가 턱짓으로 매든을 가리키자 세온이 나서서 그를 들쳐 메고 복도를 가로 질러나갔다. 세온을 따라 일어서는 안내인의 불편한 걸음걸이를 눈으로 좇던 세로는 그의 겨드랑이 아래로 어깨를 들이밀며 그를 부축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거대한 괴수의 몸속 같이 꿈틀거리던 복도와 계단은 다시 썩어빠진 나무 바닥과 발길질 한 번으로도 쉽게 부서지는 벽을 가진 폐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들은 반쯤 타들어 가다 만 나무 가시들을 발로 차내어 퇴로를 만들었다. 건물의 뒤뜰로 겨우 빠져나오며 먼지와 재를 잔뜩 뒤집어쓴 세 사람은 폐가의 망령의 모습과 가까워져 있었다.


"이 미친놈은 도대체 여기서 뭘 하려던 거야."


세온의 어깨 위에서 쿨럭거리며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 매든을 그대로 엎어 쳐서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제야 축 늘어진 매든을 뒤뜰에 파놓은 구덩이 위로 던진다.


"나도 궁금해. 아마도 그 붉은 목걸이. 누군가가 일회성으로 쓰기 위해 위험한 놈을 하나 건져 이곳에 보낸 것 같은데…."


머리만 땅 위에 남겨 놓고 그를 옴짝달싹도 못 하게 파묻어버리는 세온을 보며 세로는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세로 씨. 무슨 원한을 사셨습니까?"


"나에게 원한이 있기보다는 나를 여기 서신국에 묶어놓은 그 사람에게 원한이 있겠지."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다만 어쩌다 그런 상대에게 원한을 사게 됐는지는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거다.'


'그런 상대요?'


안내인은 매든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매든 정도 되는 강력 범죄자를 지하 미궁에서 끌어내 계약을 내 걸 만한 위치의 사람은 안내인의 머릿속에 지금으로썬 단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바로 에디온 위리안. 서신국과 서부 아르니카의 치안을 책임지는 이젠 보안국의 총사령관이었다.


"묶어 놓다니. 세로! 도대체 서신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세온….."


그제야 세온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된 세로는 1년 전의 건강함을 찾을 수 없는 술에 찌든 형의 몰골을 보며 눈을 꾹 감았다.


"세온. 잘 들어. 앞으로 두 번 다시 여기에 찾아오지 마."


다시 열린 그의 녹색 눈동자에 서려 있는 건 아카데미에서 세온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바로 그 비정함이었다. 세로는 전에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계속 말을 내뱉었다.


"이 말을 전하고 싶어서 어렵게 만들어놓은 탈출로 하나를 포기할 각오로 나온 거야."


동생의 단호함에 세온의 가슴 속에서 겨우 지탱해 왔던 이성의 둑이 무너져 내리며 눈앞이 새하얘졌다. 아까 너무 많은 코피를 쏟아낸 탓일까. 세온은 점점 멀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생각을 이어붙이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억제된 감정은 모이고 모여 이윽고 하나의 분노로 폭발했다.


"그게 네가 원하는 인생이라면! 나 따위 형이 네 인생의 걸림돌이라면 영원히 치워 줄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아무런 말 없이 가지는 말라 이 말이다.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정이 있다면 이러는 거 아니야!"


"세온. 도대체 뭐라는 거야."


충격의 재회가 이루어졌던 낮보다 점점 더 냉랭해지는 형제의 분위기에 안내인은 두 사람을 만류하며 나무란다.


"두 사람 다. 제대로 대화를 나눠야지요. 세로 씨 제대로 이해를 시켜주지 않으면 세온 씨는 이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세온 씨도 다그치지 마시고 침착하게 세로 씨의 말을 들어보세요. 누구보다도 서로를 생각하고 계시잖아요."


그의 말에 세로는 세온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의 부재 동안 형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라는 건 세로에게도 큰 걱정거리였었다. 한숨을 내 쉬며 좀 더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말을 꺼냈다.


"코스웰 할멈한테 분명 사정을 설명한 편지가 갔을 텐데. 당분간은 힘들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편지 뭐 그딴 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


"하아. 내가 그러니까 진작에 글자 정도는 공부하자 했잖아."


"흥. 땅 파는 일에 글자가 왜 필요해. 네가 읽으면 되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게 힘들다니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서 떠날 수 없는 건데! 도대체 왜?"


"그건…. 알아봤자 별 도움이 안 돼."


"세로 이 녀석! 뭐라?"


투닥거리며 열을 올리는 세온을 보니 그제야 겨우 생기를 되찾은 것 같아서 한시름 돌린 안내인은 유치한 말싸움을 이어가는 하빌리스 형제를 보며 작게 웃음 지었다. 그런 안내인에게 시선을 옮기며 세로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세온을…. 형을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돌봐주다니요. 오히려 기름 부은 격이 됐는 걸요."


"부탁이 있어요."


폐가 안에서 호령하던 늠름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급하게 공손해진 세로를 향해 안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알 것 같아요. 당신의 그 이 능력. 비밀로 해달라는 건가요?"


"알리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전 이젠은 아니니까…."


세로의 눈은 손가락에 끼여진 오래된 반지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자신을 지켜보는 안내인의 눈을 의식해 고개를 돌렸다.


"저는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앙다문 안내인의 입술은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세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안내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감춘다고 해도 곧 비밀은 드러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당신의 신변을 묶어놓은 사람이 미스티아 중앙대의 총수. 참관 나라인 이상."


세로가 놓인 상황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 안내인의 마지막 말에 세로는 더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든 정황 상 이유는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의기소침해 보이는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세온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세로.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으마. 같이 가자."


"내가 지금 따라나서면 나뿐만 아니라 형도 돌아갈 곳을 잃게 돼. 코스웰 사단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혼자의 힘으로 맨땅에서 살아가기 힘들어."


넘쳐나는 힘을 빼고는 아무런 재주가 없는 세온에게 있어서 발굴단은 천직이었다. 그런 그가 머물 곳을 빼앗기게 된다면 세온이 살아갈 앞날은 참담할 게 뻔했다.


"하지만 세로 넌!"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어."


세로는 지금쯤 비어있는 방을 보고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호일 박사를 떠올리며 폐가 바깥으로 향하는 좁은 담길을 향해 걸어나간다.


"내가 돌아갈 집은, 내 가족은 단 한 명뿐이니까."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발이 붙어 있는 땅 위는 이렇게나 좁은데 그가 간절히 원하던 드넓고 자유로운 낙원은 언제나 머리 위에 있었다.


"그때…. 강에서 죽었어야 할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줘서 고마워."


타인에게는 쉽게 내뱉으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과 나누기엔 쑥스러운 말인지 세로는 오랫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을 표정을 숨긴 채 등으로 말한다.


"세온. '루인의 창'은 내가 가지고 있어. 좀생이 할멈에게 돌아갈 여비나 든든히 준비해달라고 전해둬."


"세로…."


"걱정 하지 마. 그리고 술 좀 줄여."


세로의 뒷모습은 담길을 벗어나 이윽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세온은 당분간은 다시 만나기 힘들 동생의 모습을 놓칠세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뭔가 모를 후련한 기운이 묻어나오는 세온의 얼굴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던 안내인은 문득 고요한 동네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의 움직임이 하나둘 가까워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군요."


폐가의 벽이 부서지는 소란과 한 층을 반쯤 태워버린 화재 때문에 신고가 들어갔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빠른 대응이 뭔가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어찌 되었건 여기서 보안대에게 붙들린다면 형제의 극적인 상봉의 결말이 비극으로 끝이 날 것이 분명했다. 안내인의 불안한 눈빛에 세온은 양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만 붙잡히기 전에 얼른 빠져나갑시다."


"네? 으왓!"


세온은 아카데미를 도망쳐 나올 때처럼 가볍게 안내인의 허리를 들어 어깨에 들쳐 멨다. 그는 안내인이 뭐라고 항변하기 전에 폐가 뒤편으로 흐르는 하천을 향해 뛰어내렸다. 비명이 새어나갈세라 입을 꼭 틀어막은 그의 반응을 뒤로 한 채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걸음으로 북문 입국소가 있는 외곽의 진입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굳게 닫힌 국장실의 문을 조용히 살짝 열어 그 안 손님의 확인하던 안내인은 붉은 목걸이를 찬 애꾸눈 사내의 얼굴에 소스라치게 놀라 벽 뒤로 몸을 숨겼다. 그래 봤자 광범위 투시능력을 갖춘 그에게 있어선 소용없는 짓인 건 알지만 마주칠 때마다 빈정거리며 신랄한 욕을 쏟아내는 그 앞에서 작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갑자기 움직이는 통에 갈비뼈 아래의 통증이 밀려 올라온다.


"손님이 와 계신 모양입니다."


안내인는 가슴께를 문지르며 국장실에서 멀리 떨어져 세온을 대기실 안쪽으로 데리고 나왔다.


"감사하다고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구려."


"제가 꼭 전해 드릴게요. 지금으로썬 한시라도 바삐 서신국 밖으로 나가시는 게 세온 씨를 위한 길인 것 같습니다."


세로는 이 상황을 예상했던 것일까? 자유의 기회를 포기한 그의 바람대로 세온을 무사히 밖으로 보내는 게 안내인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안내인은 접수처 안으로 들어가 출국 서류를 작성하고 대충 날인을 한 후 출국의 문으로 안내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문에 걸린 걸쇠를 내리는 세온을 보며 안내인이 재차 물었다.


"이제 괜찮으십니까?"


"세로 녀석 건강해 보이니 그걸로 다행이오.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으니, 그럼 꼭 돌아올 녀석이오."


주렁주렁 짊어지고 온 많은 생각과 미련을 내려놓은 듯 세온은 경쾌해진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신세만 지고 가는구려. 미안하게 되었소. 안내인 양반."


"이렇게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서신국에서의 일이 잘 풀린다면 이다음에 세로와 함께 정식으로 놀러 오리다. 그때 다시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소?"


세온은 바지춤에 쓱쓱 비벼 닦아낸 오른손을 내밀었다. 세온의 얼굴과 내밀어 진 손을 번갈아 쳐다보던 안내인은 장갑이 벗겨져 나간 자신의 흉측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세온은 손을 쭈욱 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내인은 그의 투박한 손을 붙잡았다.


"제 이름은 치카리타 위젠입니다. 유라 국장님을 통해서 불러주세요. 언제든 안내해 드릴게요."


"치카리타 씨 정말 고맙소."


세온이 씩씩하게 인사를 하며 입국소 문을 열고 발을 내디뎠다.


"건강하시구려."


세온의 등을 향해 힘차게 팔을 흔들던 치카리타는 점점 느려지는 손을 내려놓고 문에 기대선 채 저 멀리 작아지는 세온을 멍하게 응시했다.


"드디어 떠났는가."


갑자기 치카리타의 어깨 위로 불쑥 내밀어 진 얼굴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노인의 얼굴을 밀어냈다.


"놀랐어요! 국장님. 손님은 돌아가셨나요?"


"참관 나라의 잔심부름이나 하는 놈한테 손님은 무슨. 세온 놈과 주황색 목걸이의 제복을 입은 학생이 아카데미와 술집에서 난동을 피웠다지? 도대체 어떻게 들쑤셔놨길래 참관실에서 이게 오게 된 거냐."


한 손에는 술병을, 한 손에는 푸른색 천에 싸인 두루마리를 들고 선 유라 국장은 술병을 입으로 가져다 대며 혀를 찬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참관실이군요."


치카리타는 자신이 예상했던 가장 최악의 상황에 딱 맞아 떨어진 사실에 허탈하게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그게 뭔가요?"


"뭐긴 뭐야. 형벌 통지서지."


"하하하."


"덕분에 안 그래도 쥐꼬리 월급…. 10년 감봉처분이라니 이건 용납할 수가 없구먼. 밀린 세금 낼 여유가 없잖아."


"아니 안 그래도 독촉장이 쌓여가고 있는데. 더 미루면 어찌하시려고요."


"남 말 할 처지가 아니다. 너도 사회봉사 1000시간 추가다."


"네????"


유라 국장에게 건네받은 통지서를 펼쳐 등 뒤의 불빛에 의지해 내용을 읽어내려가던 치카리타는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맙소사. 이제 겨우 절반 해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참관 나라 그 자식은 사람을 공짜로 부려 먹는 재주가 비상해. 서신국 십로회인 날 뭐로 보고 망할 자식. 저를 참관으로 밀어준 은혜를 쌈 싸먹고 있구먼."


"한동안 경위서는 쌓아놓고 사셔야 하겠는데요. 이번에는 도와드릴 시간조차 없을 것 같아요."


"뭔 소리. 치카리타 넌 하루도 빠짐없이 와서 하루에 다섯 장씩 써놓고 가!"


"살려주세요."


장난스레 울상을 지어 보이는 치카리타의 결 좋은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 놓으며 유라 국장은 통지서를 들고 입국소 안으로 들어갔다.


"클클클. 그래서 동생은 만났고?"


"네. 어렵사리 요."


"이제 세온 놈이 여기서 깽판 칠 일이 없어지겠구먼. 어차피 그놈은 앞으로 영구 입국금지야."


홀가분 하다는 듯 말하는 유라 국장의 목소리에는 알게 모르게 섭섭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그 소동의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면서도 세온의 사정을 돌봐준 유라 국장이야말로 진정한 의인이었다. 과거부터 변함없이 쭉 이어온 그의 마음 씀씀이에 도움을 받았던 지난날의 일들을 되짚으며 치카리타는 국장의 늠름한 등을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너! 꼴이 그게 뭐냐! 몸은 또 왜 그렇고?"


그제야 온몸에 시커먼 재를 여기저기 묻힌 채 고통스러운 듯 상체를 웅크리고 있는 치카리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유라 국장은 소리를 빽 내질렀다.


"뭘 하고 돌아다닌 거냐!"


"아하하. 오늘 굉장한 사람을 만난 것 같습니다."


"굉장한 사람? 누구?"


치카리타는 대기실 한쪽 소파에 가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맞은 편 벽면에 걸려있는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마도 하빌리스 형제의 성은 머지않아 아르니카와 에포니엄에서 제일 유명한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 그림은 세 명의 아이가 별을 떠받치고 있는 추상화였다. 세 명의 아이는 서신국의 세 가지 주요 시설인 미스티아 중앙대, 이젠 보안국, 카부 아카데미를 뜻하기도 했고 서신국이 신전에서 신국으로 독립할 무렵, 그 뜻을 함께했던 신전 근교의 세 개의 가문과 그 영토를 뜻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받치는 별은 서신국에서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신의 의자에 앉은 평화의 상징. 바로 '신좌' 였다.


"그건 하빌리스 형제에게 축복일까요. 아니면 저주일까요."


우수가 서린 그의 눈빛은 홀가분하게 출국의 문을 나선 세온의 환영을 쫓고 있었다.




하빌리스의 형제 _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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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원추리 연가 _ 27. 번뇌 16.02.20 403 2 17쪽
47 공지 16.02.06 256 2 4쪽
46 원추리 연가 _ 26. 악몽의 편린 16.02.03 327 0 15쪽
45 원추리 연가 _ 25. 별을 헤매는 아이들 + 후기 16.01.30 418 1 16쪽
44 원추리 연가 _ 24. 환상 서곡 16.01.27 280 0 18쪽
43 원추리 연가 _ 23. 살인귀의 본능 16.01.23 448 0 18쪽
42 원추리 연가 _ 22. 빛과 어둠의 춤 16.01.20 278 0 18쪽
41 원추리 연가 _ 21. 새하얀 심연 16.01.16 302 0 16쪽
40 원추리 연가 _ 20. 별을 헤는 아이들 16.01.13 348 0 17쪽
39 원추리 연가 _ 19. 붉은 바위 너머 비밀 16.01.09 501 0 17쪽
38 원추리 연가 _ 18. 작은 도둑 16.01.06 255 0 14쪽
37 원추리 연가 _ 17. 황야의 꿈 16.01.02 483 0 14쪽
36 원추리 연가 _ 16. 제박 15.12.30 417 1 21쪽
35 원추리 연가 _ 15. 기적을 위한 한 걸음 15.12.26 333 1 16쪽
34 원추리 연가 _ 14. 사랑은? 전쟁! 15.12.23 278 0 13쪽
33 원추리 연가 _ 13. 사랑은! 전쟁? 15.12.20 177 0 15쪽
32 원추리 연가 _ 12. 태양의 의무 15.12.19 440 0 13쪽
31 원추리 연가 _ 11. 화원의 자장가 15.12.16 267 1 11쪽
30 원추리 연가 _ 10. 결혼 축제(2) 15.12.13 281 0 11쪽
29 원추리 연가 _ 9. 결혼 축제(1) 15.12.12 262 0 11쪽
28 원추리 연가 _ 8. 결의 15.12.12 462 0 12쪽
27 원추리 연가 _ 7. 어둠의 구렁 15.12.09 285 0 10쪽
26 원추리 연가 _ 6. 함정 15.12.06 229 0 10쪽
25 원추리 연가 _ 5. 마녀 아이힌(2) 15.12.03 348 0 11쪽
24 원추리 연가 _ 4. 마녀 아이힌(1) 15.12.01 494 0 11쪽
23 원추리 연가 _ 3. 여행의 시작(3) +3 15.11.29 409 1 9쪽
22 원추리 연가 _ 2. 여행의 시작(2) +2 15.11.29 510 3 9쪽
21 원추리 연가 _ 1. 여행의 시작(1) 15.11.25 283 1 11쪽
20 미궁의 빛 _ 14. 미궁의 빛 15.11.22 366 1 14쪽
19 미궁의 빛 _ 13. 의외의 탈주로 15.11.20 431 1 15쪽
18 미궁의 빛 _ 12. 루인의 망령(3) 15.11.18 243 1 14쪽
17 미궁의 빛 _ 11. 루인의 망령(2) 15.11.17 317 1 11쪽
16 미궁의 빛 _ 10. 루인이 망령(1) 15.11.15 410 1 15쪽
15 미궁의 빛 _ 9. 공동묘지의 소녀 15.11.13 259 2 15쪽
14 미궁의 빛 _ 8. 악마 루아브(2) 15.11.11 298 1 14쪽
13 미궁의 빛 _ 7. 악마 루아브(1) 15.11.08 395 1 14쪽
12 미궁의 빛 _ 6. 가짜들의 싸움 15.11.06 332 2 9쪽
11 미궁의 빛 _ 5. 탈출의 전야제(2) 15.11.04 352 1 9쪽
10 미궁의 빛 _ 4. 탈출의 전야제(1) 15.11.01 402 0 12쪽
9 미궁의 빛 _ 3. 시연의 뜰 15.10.31 342 0 15쪽
8 미궁의 빛 _ 2. 새장 속 소년(2) 15.10.30 296 3 12쪽
7 미궁의 빛 _ 1. 새장 속 소년(1) 15.10.28 286 2 12쪽
» 하빌리스의 형제 _ 6. 하빌리스의 형제 15.10.25 407 1 16쪽
5 하빌리스의 형제 _ 5. 미친 예술가의 사학(2) 15.10.23 277 0 13쪽
4 하빌리스의 형제 _ 4. 미친 예술가의 사학(1) 15.10.21 367 0 14쪽
3 하빌리스의 형제 _ 3. 재회 15.10.18 220 0 13쪽
2 하빌리스의 형제 _ 2. 안내인 15.10.17 376 2 14쪽
1 하빌리스의 형제 _ 1. 북문 입국소 15.10.15 43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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