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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의 사무라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1.05.16 10:51
최근연재일 :
2021.06.29 10:0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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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6
추천수 :
138
글자수 :
158,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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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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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5. 산성에서

DUMMY

남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괭이를 땅에 던진다.


여기서 남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큰 갈등을 한다. 그 순서가 바뀐다고 무엇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두 가지가 본능적으로 모두 해야 할 일인데, 인륜인즉슨 사람에게 가야 하고, 그에 반해 통제할 수 없는 손은 물건으로 가려 한다.


사람인가 물건인가. 혹자는 벌써 ‘사람’을 떠올리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물건이 앞서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선후의 문제. 평범한 일상이었다면 우리는 사람에게 먼저 가고 사람을 보살피리라.


두 가지 행동에 드는 시간은 길어야 밥 두 숟갈을 떠서 씹어 목구멍으로 넘기는 시간 정도가 될 것. 그 중간에 남자가 서 있다. 양쪽 어느 곳으로도 결정하지 못한 순간은 찰나였지만, 그 잠깐에 남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갈등을 겪었다. 그로 인해 자신의 마음속이 남들 생각처럼 냉혈의 딱딱함만이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남자가 발길을 옮긴다.

누운 자 앞에 선다.


또 알아서 발이 투구를 찬다. 차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목에 걸린 가죽끈이 끊어져 얼굴을 제대로 보기 위함... 수차례 강하게 발로 차자 투구를 위로 벗어나 얼굴이 드러났지만, 뒷덜미로 눌린 탓에 투구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수염. 벌어진 입에 드러난 누렇게 더러운 치아. 어제오늘 이놈이 씹어 삼킨 것의 여물이로니. 내 괭이에 맞은 모가지에 얼핏 보면 군침이 돌 시뻘건 살코기가 드러난다. 고기 맛을 잊은 지 오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지만 가르친 사람의 서칙에 따른다.


[죽은 놈은 이미 적이 아냐. 망자를 훼손하는 것은 의미 없다.]


남자는 쪼그리고 구부려 누운 자 옆구리의 줄을 푼다. 누운 자의 옆구리와 허리춤에 참 복잡하게도 묶었다. 화가 치밀어 확 뜯어버리고 싶지만... 참고 손가락 끝을 부단히 움직여 요술을 부린다. 한참 괭이를 휘두른 까닭에 아귀힘이 많이 떨어졌다. 자기 손 위로 땀방울도 떨어진다. 풀면서 보이는 것이, 갑주가 이 땅의 것에 비해 참으로 아롱지고 공 많이 들어갔다.


그렇게 잠시 후, 남자는 일어섰다. 팔을 든다. 길이는 대략 넉 자에 달하고, 봐오던 것에 비해 꽤 긴 편이다. 투구가 화려한 까닭이니라.


남자는 곧바로 돌아서 이제 물건이 아닌 ‘사람’에게 가려 했다. 한 걸음을 디뎠다.


‘응?......’


열린 투구 사이로 두 개의 실선이던 것에, 동그란 것이 뜬다. 눈을 떴다. 남자 몸은 가려는 사람에게로, 고개는 아래 누운 사람에게로, 누운 자는 갑주를 입었기에 어디를 어떻게 다쳐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피가 흘렀다면 밑으로 흘러 더욱 안 보인다.


눈.


‘다를 게 없네?’


챙. 칼집이 비고,


장도의 끝이 누운 장수의 머리와 어깨 사이로... 칼은 빗장뼈를 파고들어 간다. 죽. 죽. 계속 들어간다. 누운 자는 마지막 신음을 토해낸다.


선 자의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사투리.


“뭐 보냐 이...”


칼은 계속 들어가... 반절이나 삽입되고 나서야 멈췄다.


“사람 눈을 봐야지... 기여 아녀!”


남자는 칼을 뽑고 돌아서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을 다시 넣으면 집 안이 더러울 텐데. 어쩌지?“

아주 간단한 해결이 눈에 들어온다.

천.


몸을 돌려 다시 쪼그리고, 널찍한 바지 천을 움켜쥐고 중간에 칼날을 넣어 슥삭 슥삭 닦는다.


‘원래 이러는겨?’


드디어 남자가 발길을 돌린다.

뒷모습이 드디어 칼을 칼집에 넣는다.


‘발도 하나에 목숨 하나... 후 삽도.’


누운 자가 가슴에 품고 있던 보다 작은놈도 허리띠에 꽂았다.


백 보를 걸어가 또 다른 누운 사람을 내려 본다.


눈을 부라리고 죽었다. 남자는 이런 것을 안 보지 않았다. 아낙들이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고, 남자들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리며, 사람을 멕이려고 끓이는 국 냄새는 항상 같이 있었고, 상모를 쓴 남자들은 지팡이를 깎았다.


잠시 보자니 남자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으로도 여겨진다. 누워 잔 얼굴이 원래 잠시는 목불인견 헛갈릴 때도 있는 것처럼, 죽은 사람의 얼굴이 곧바로 달라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몸에 힘이 빠지면 그러하다고들 했다.


‘암 껏도 느껴지질 않아야이... 나가 금수여?’


고개를 들어 뜨겁게 빛나는 하늘의 큰 것을 보고, 시선을 사방으로 돌린다. 허옇게 쓰러진 것은 이곳 사람들이오, 쓰러졌으나 검어 잘 안 보이는 것은 왜놈이려니. 하얀 사람들이 더 구슬프다. 왜냐면, 그 하얀 천에 빨간 꽃이 피며 죽기 때문일 터.


원뿔 모자를 쓴 사람들은 안 보이고, 풀과 나무 위로 솟았던 놈들의 군기는 이제 하나도 뵈질 않는다. 태양이 강하니 풀과 나무 밑은 이를 데 없이 진한 검정. 그리고 빛남과 검정 사이사이 중간중간 뻘건 것들이 뿌려져 있다. 녹색 잎사귀에 떨어진 핏방울이 진하다. 너무 진하다. 어디서 불에 타는 냄새도 난다. 밥할 시간은 이미 지났고마.


시선이 다시 누운 자에게 돌아왔다.

형.


“뭐더냐. 너가 볼 것이 있다. 언능.”


걸어와 말을 건 할머니 얼굴은 비를 맞은 양 젖어 있다.


허리가 굽어 힘도 못 쓰는 할머니가 솥뚜껑 같은 남정네의 손을 끄는데, 핏줄이 있어서인지 마치 아기에게 말하드끼, 그러고, 남정네도 잠시 아기가 일부러 되어주어 할미를 따라간다. 약하고 초라해도 사람이 져주어야 할 것이 있다.


할미 발은 빠르되 남자의 발은 천천히 저벅저벅. 가는 와중에 할미의 억지 곡이 아닌 진짜 곡이 흘러 가느다란 허리가 자꾸 더 굽어진다. 할미의 심금을 울리는 곡은 비실한 몸의 초라함과 함께 마치 노랫가락처럼 들린다. 사방에 우는 아낙 한둘이 아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더욱 심란하다.

더욱 심란하다.

더욱더 마음을 모르겠다.


태산 같았던 사람이 역시 쓰러져 있다. 할미는 옆에 앉아 주먹으로 땅을 치며 통곡한다. 남자도 핏줄이지만 누운 사람은 할미의 더 가까운 핏줄이려니.


‘이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가 있지?’


어지럽다. 물을 마시고 싶다. 용을 너무 썼다. 괭이로 모가지를 후려치고, 놓치면 짱돌을 들어 얼굴을 내려찍고, 다시 괭이를 잡아 휘두르고. 몸을 잡아 들어 바위에 허리를 부러트렸다. 이럴 수 있는 사람들은 일이 벌어지기 앞서 농부들이었다. 돌을 나르는 것도 농부의 가족들이다. 관군은 어디 가고 이런 지경에 몰렸단 말이냐. 왕은 어떤 우라죽을 씨벌넘이여.


이... 이 사람은. 안 죽어야 했다. 죽을 수가 없는 사람이 왜 이러지.


양팔을 위로 든 채 죽은 반백의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허연 옷에는 뻘건 것을 머금은 물기가 반은 점령했다. 어디를 맞았나. 어디를 찔렸나.


마음이 흔들린다.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


남자는 할미에게 손을 내민다. 곡이 끊이질 않고, 손을 잡아도 입이 벌어지고 허리가 굽고, 송송 이빨이 빠진 입에서 기다린 침이 밑으로 끈적끈적 늘어진다. 남자는 허리를 굽혀 할미를 들었다. 할미가 가벼워서 원통하다. 품에 아기처럼 안아 쥐는데, 나이와 품별을 가리지 않고 할미는 남자의 품에 목을 감고 구슬피 운다. 아기 같은 모습을 마다하지 않는다. 생각에 앞서 울음을 자신이 그칠 자력이 없다.


남자는 할미를 안아 들어 가까운 그늘로 간다.


수십 걸음을 걸어 할미를 그늘에 내려놓는데, 할미는 아기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지금 떨어지면 영원히 못 볼 것처럼. 혼자 된 아낙은 나이가 불문하여 살아 있는 남정네가 필요하다. 그래서 아낙들은 아들 아들 한다. 논을 갈아야 하고 밭을 일궈야 하며 초가의 주춧대는 남정네 없이 세울 수가 없다. 놓으려 해도 할미는 뿌리치고 다시 옷자락을 움켜쥔다.


“그냥 있소. 좀.”


손으로 밀어내 잡아채는 손길을 무마시키고 남자는 두리번두리번. 잠시 뛰어가 호롱을 들고 온다.


“아......”


할미가 입을 벌리고, 남자는 조심스레 조금씩 물을 입에 흘린다.


몇 모금 삼키면서 할미 눈이 차분해지고, 다시 곡을 하다가 물을 빨아 삼키고, 입으로 들어가는 물이 아기가 먹는 양만치 적어 남자는 할미가 왜 이리 가엽나. 조금만 많이 부어주면 금방 삼키지 못하고 할미의 볼이 부풀어 오른다. 양껏 먹어본 기억이 너무 오래인 사람. 한 번에 많은 것을 삼키지 못하는 삶을 살았고, 지금 슬픔에 자지러져 그 조그만 물을 더욱더 삼키기 힘들어한다. 불쌍하다. 하지만 여자도 젊어서 애를 낳을 시기면 모질지. 그러다 이렇게 지팡이가 필요하게 굽어. 하지만 건장한 사내놈도 다 이런 몸에서 나왔다!


남자는 천천히 할미를 밀어 누이면서 호롱 병을 목 뒤에 넣어준다.


“카만 있어. 다시 올라니까.”


동생이 안 보인다.

다시 발길을 재촉하던 차에, 저 멀리서 일성이...


“어쩌까!!! 이것을 어쩌까!!!”


남자는 그리로 먼저 가야 함을 깨닫는다.


중천에서 기운 태양. 갈증. 죽여버린다. 죽여버린다, 살면서 입이 말은 많이 토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건 처음 본다. 고작해야 입관하기 전에 눈 감은 사람을 어쩌다 종종 본 것이지.


지금은 너무 많다. 걸어가는 와중에, 검은 놈은 그러려니 말거니 관심도 없지만,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의 나자빠진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다. 생이 이다지 금방인가! 팔다리가 제멋대로 구부러지고 돌아가고, 벌어진 입에 놀라서 굳은 눈. 그걸 보기 힘든 인척들은 어디서 배우지 않아도 손가락을 밑으로 누르면서 눈을 감겨준다.


어지럽다. 남자는 어지럽다.


이 정도를 못 버틸 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지럽다. 눈앞에 자꾸 캄캄해질라 그런다.


비로써 남자도 안다.


이것은 나의 몸이 기력이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님을. 지금 몸에서 열이 올라온다. 그것이 위로 뻗쳐 얼굴에 도달하고, 그 열기가 마지막으로 눈으로 뿜어, 현기증이 오고 잠시 잠시 앞이 안 보인다.


그렇다. 남자는 말로 할 이유 없이, 화가 났다. 이를 데 없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예전에 화가 나면 몸이 부들부들 떨렸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이 평온한 가운데 시야가 흐려지고 굴절되고 왜곡된다. 그 차이는 하나. 과거는 그로 인해 칼이 흔들렸지만, 만약 지금 뽑으라면 칼끝이 동요 없이 차분할 것 같다.


‘전의 것은 화가 아니라 내 잘못을 허락하지 않는 분풀이였어. 지금 진짜 화가 나고 있어. 처음으로. 나는, 또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우린 그냥 먹고살았다. 힘겨웁게 관에 바치고 남은 것으로 연명하며 먹고 살았다. 그리고 이놈들이 천지풍파와 죽음을 몰고 왔다. 진짜 화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을 때,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것을 알았으니 난 이제 쉬이 어떤 놈에게 당하지 않는다. 강해지려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고함이 가까워진다.


“성깔 좀 있네. 마음에 든다 씨벌넘.”


무리를 뚫고 들어가 눈에 들어온 다섯 놈.


남자는 문득 자기 손의 든 칼을 본다.


‘이것이 다르구나.’


이 만곡의 왜놈 칼은 장식이 없다. 진짜 쓰려고 만든 칼이다. 장수도 쓰는 칼을 원하고 가지고 있다. 전장이란 검술이 八할은 소용치 않는 곳이니, 마구 썼을 때 부러지고 휘지 않도록 집중해 만든 칼이다.


우리 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찬 칼이 화려했다. 장식이 있고 깨끗하고 위엄을 상징했으나 쓰는 칼이 아니었다. 그건 칼을 마구 쓰고 전장을 아는 사람이 만든 칼이 아니다. 하지만 이놈들은 그런 거 없다. 칼은 칼이다. 단단하고 베기 좋은 단련을 대장장이에게 받은 칼. 장수의 칼인데도 겉으로 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도로 평범해 보인다. 쓰임새만을 생각한 칼이다. 이런 칼을 가진 장수가 도망칠 리 만무하다.


사람들 시선이 남자에게로 모인다.


싸우면서 사람을 죽였어도 되, 지금은 모두 망설이고 있다. 나 죽이려고 오는 놈을 죽이는 것과는 다르고, 또한 사람 모가지만 바라보던 정신들이 회귀하니, 막상 찔러 죽이는 것을 망설인다. 책에 적힌, 인명은 재천 어쩌고저쩌고 떠오르는 모양이다.


‘사람이 생각을 굳이 할 필요가 없을 때가 있지.’



남자는 고함을 지른다.

“아낙들은 안 보이는 곳으로 멀리 물렀거라~~~!”


왕의 포효처럼 아낙들이 물러난다. 어쩌면 보고도 싶지만 안 보고 싶어 했나. 복수를 보고 싶으나 사람이 또 죽는다. 일갈에 아낙들은 군말 없이 시선을 돌려 사방으로 떨리는 발걸음을 걷기 시작한다.


“어쩔 거야.”

“왜국의 법대로.”

“우리가 왜국을 어찌 알아.”

“이들이 해온 대로 하면 왜국의 법이지?”


다시, 여기서 남자는 속에서 올라오는 것과 싸운다. 아니, 이미 졌다. 벌써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다른 것을 이기고 올라섰다.


‘수급. 글자가 너무 매혹적이야.’


남자는 가장 높아 보이는 놈에게 다가가 칼집으로 뒷덜미를 톡톡 친다. 꿇어앉은 놈은 남자를 올려다본다. 남자가 턱을 들어 ‘해!’ 강요하자, 왜놈 무사는 눈을 앞으로 돌려 전과는 다르게 무엇을 생각한다. 상념? 회상? 모욕? 그 생각의 와중에 날카로웠던 눈은 살기가 풀리고 인상을 찡그린다. 무사의 고개가 스르륵 떨어진다.


그러자 남자가 칼집으로 뒷덜미를 톡톡 치고, 다시 무사는 올려다본다.


그러자...

눈이 마주치자...

남자가 웃는다.

모욕.


‘살고 싶어? 빌어봐.’


순간 가차이 있던 사람들이 뒷걸음질을 치고, 남자의 찡그린 코끝과 함께 천천히 번쩍이는 금속이 칼집에서 빠진다.


느리게 빠진 것이 빨라진 것은 순간이었다.


‘ 한 합.’


목이 댕강, 땅에 떨어졌다.


‘발도 수급!’


다섯 중에 무사 복장이 하나 더 있다. 남자는 바로 그 두 번째 무사에게 눈을 맞추며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 묻는다.


‘뭐해?’


상황이 급변한다. 무사가 무릎을 꿇고 사정한다. 왜놈 말은 모르지만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고 또 무엇이? 칼 쥔 남자는 즉각 반응했다. 이리저리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한다. 푸줏간의 고기처럼 팔, 어깨, 목, 마구 베인다. 저벅저벅 고기를 다지는 것과 같고, 그러면서 피가 사방으로 죽죽 뿜어 사람들이 더 물러선다. 기괴해진 형상은 피를 머금고 앞으로 엎어졌다. 마지막으로 꼬르륵~~~! 소리...


시간은 여유가 없다.

남자가 세 번째 남자를 향해 고개를 갸우뚱... 묻는다.


‘이놈처럼 죽을래, 저놈처럼 죽을래?’


이것 봐라.

밑에 놈이 더 당당하다.


수급(首級)이 세 개로 늘었다.

이제 남은 하나.


“그만하지?...”


노인이 나선다.


“보기 안 좋아. 우린 저놈들이 아녀.”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어차피 그럴려 그랬슈.”


노인도 처음 보는 장면에 군침을 계속 삼킨다.


“저놈은 살릴 거야?”


“그럼. 그러지... 봐야 할 거 아녀. 넘들이 여기와서 지들이 어처케 죽었나 볼 거여? 지들이 저기 강변에서 사람을 일렬로 놓고 수급을 친 것을 보여준 거여. 느그들이 치면 우리도 친다. 저그들 법이 이제 이 땅에서도 저그들의 법으로 쳐준다고 말하는 거지. 문자 좋아하는 우리 왕은 모를 일이여! 어차피 이놈 안 죽일라 했소. 되았소. 이놈 보내시오.”


“이놈을? 처음부터?”


“이놈을 남겨둔 까닭은... 일착으로 똑똑해 보였으니까. 이놈이 본 것을 차분히 말할 유일한 놈으로 보였어. 안 그려? 보라니까.”


남자는 다가가 왜복 가슴 깃을 움켜쥐고 칼을 닦는다.


“말을 알아들을까 모른다만, 여기 법도 바뀌었다고 일러라.”


‘예전엔 많이 살려줬지. 그래서는 안 되는 종족이여...’


“쫌만 참어 이?...”


남자가 남은 왜병의 얼굴을 칼끝으로 찍! 긋는다.


“표시를 해놔야 다시 오면 알 것이 아니여?”


“그래서 뭐 할라고.”

“코도 자르고, 귀도 자르고...”


노인이 손짓으로 남자의 말을 왜군에게 보여준다.


“혀도... 자지도 잘라서.... 살려줄게!”


“가 이 씨벌늠아. 가. 가! 가라고!!!”


남자는 다시 무거워진다.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든다.

자신에게 의지하려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마음 찌가 하지 않아?... 내 옆에서 나를 지켜줄라 했다니까.”


괜찮지 않지.

아직도 눈앞에 어질어질해.

하지만 책에 없는 중요한 걸 알았어.


삶과 죽음이 붙어 있었다는 것.


‘난 오늘 죽었다. 그러니 너희들은 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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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25. 산성에서 21.06.29 135 2 17쪽
38 24. 탈곡 21.06.17 97 3 12쪽
37 23. 잡놈 21.06.17 86 4 18쪽
36 22. 동검의 무사 21.06.16 81 3 17쪽
35 21. 접신 +1 21.06.16 80 5 19쪽
34 20. 옹진의 살수 21.06.15 83 5 15쪽
33 19. 패잔 21.06.15 68 4 11쪽
32 18. 손들의 싸움 21.06.14 80 4 14쪽
31 17. 옹진 큰물 21.06.13 78 4 8쪽
30 16. 유언 21.06.12 71 3 7쪽
29 15. 옛날 옛적 그 자리 2 +1 21.06.11 74 4 8쪽
28 15. 옛날 옛적 그 자리 1 21.06.10 111 3 7쪽
27 14. 눈이 결정한다 2 21.06.08 90 4 7쪽
26 14. 눈이 결정한다 1 21.06.05 98 3 8쪽
25 13. 그 사람은 멋졌다 2 21.06.04 92 3 7쪽
24 13. 그 사람은 멋졌다 1 21.06.03 81 4 7쪽
23 12. 물 건너편에 2 21.06.02 86 2 7쪽
22 12. 물 건너편에 1 21.06.01 93 2 7쪽
21 11. Intermezzo 21.05.31 93 3 9쪽
20 10. 입신양명 3 21.05.30 105 3 7쪽
19 10. 입신양명 2 21.05.29 86 3 7쪽
18 10. 입신양명 1 21.05.28 89 2 7쪽
17 9. 계루에서 사는 법 2 21.05.27 99 3 9쪽
16 9. 계루에서 사는 법 1 21.05.26 93 3 8쪽
15 8. 목경 2 21.05.26 80 3 7쪽
14 8. 목경 1 21.05.25 96 3 7쪽
13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2 21.05.25 85 3 7쪽
12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1 21.05.24 108 4 7쪽
11 6. 검은머리 짐승 3 21.05.24 95 4 8쪽
10 6. 검은머리 짐승 2 21.05.23 93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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