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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의 사무라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1.05.16 10:51
최근연재일 :
2021.06.29 10: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709
추천수 :
135
글자수 :
158,650

작성
21.06.02 10:00
조회
85
추천
2
글자
7쪽

12. 물 건너편에 2

DUMMY

저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아직도 뭔가 뒷심이 있을 것 같아 구부린다. 겁을 줄 때 확실히 줘라. 어중간하게 올랐다가 떨어지면 바로 대든다.


농민들이 전쟁에 찌들어 먹을 것이 없고, 일대를 지나가는 군대에 몽땅 빼앗기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엄격히 금하지만, 진영이 이동하다 마을에서 밤을 보내면 유부녀를 겁탈하는 일도 벌어진다. 열을 지어 이동하는 엄청난 숫자에 대항할 민중은 없다. 정병 무리가 깃발을 들고 걸으면 산짐승들도 숨을 죽인다.


군대의 무리는 정련된 것이면서 차가움을 몰고 다닌다. 조선을 침공하기 전부터 시작되어 아직도 이어지는 전란. 대오에 걷는 무리 중 다수는 인명을 살상해보았다. 더 법문에나 나올 이상적인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라지 않는 무리, 군대가 길을 걸을 때 공기를 차갑게 밀고 나간다.


밝지 않다. 웃지 않는다. 전투는 눈에 핏발을 만들고, 내일의 전투에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투 전야는 밥이 쉬지 먹히지 않는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동이 트면 충혈된 눈으로 전장을 향해 걸어간다.


그러니, 소문만 들리면 농민들이 곡식을 숨기고 여자들을 산중으로 보낸다.


여기 번주는 잘못된 다이묘에 붙었다가 집안이 망했다. 패배하고 번주 자신도 죽은 것으로 들렸다. 이 일대도 곧 이긴 쪽에서 새로운 번주를 보내고, 이들은 얼굴을 익혀 새로운 주인을 맞아들여야 한다. 새 번주가 오기 전까지 농민들은 이판사판 가리지 않는다. 그동안 법은 없다.


농민들은 새로운 것을 알았다. 저 냉험한 무리도 겁은 있다는 것. 강해도 두려움은 가진다는 것. 언제 알았는가? 패배하고 나서, 농가를 털러 온 한두 명을 힘 합쳐 죽이고 나서, 군병도 흩어지면 제대로 힘쓰지 못한다는 걸 눈치챘다.


이제 도리어 찾는다. 찾아 돌아다닌다. 오치무샤를 죽여서 현상금을 노리거나 칼과 창 갑옷까지 빼앗아 내다 판다. 그것은 농민 입장에서 적지 않은 가격으로, 어찌 보면 전쟁은 군사만 미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미치지 않은 사람을 보기 힘든 세상 속에서 나날이 죽어간다.


“히데요시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 아니었어.”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셋. 장정은 길었고 고향에서 멀리 떠나왔다. 그들이 기억하는 건 여기까지 오면서 봐뒀던 큰 산들. 지나왔던 평평한 지대를 걸어서 돌아갈 수 없다. 누군가에게 걸리면 압송되어 목이 잘릴 수도 있다.


전투에서 졌다. 수많은 병졸이 들판에 누웠다. 마을을 지나면 농민들이 사냥을 나선다. 오치무샤 중에는 팔다리가 잘린 사람도 있다. 외다리 외팔로도 피를 흘리며 도망친다. 누가 미워서 죽이고 싶어 나온 것이 아니요, 나오라서 나왔고, 단지 자기 번주와 무사를 따랐을 뿐이다. 게다가 하루아침에 저것이 적이었다... 우군으로 바뀌어 어리둥절이 온다. 그 반대는 더욱 시리다.


‘이제 남 생각할 처지가 아냐...’


한 명은 긴 칼. 한 명은 창, 나머지 하나는 금속이 끝에 달린 몽둥이를 들었다.


해는 지고,

무엇을 태우는지 저 멀리 농가의 불빛을 보니 거리감이 생긴다.


“오이! 숨 좀 돌리자.”


둘러보아도, 올라가는 산중은 인적 없이 검기만 하다.


“뭐 잡을 것이 없나?”


칼을 든 사람이 말한다.


“뭐라도 잡아야 배를 채우지 않겠어?”

“불은 뭐로 피우고.”

“그러네.”


“들짐승 사시미는 충이 있어. 사람을 잡아먹고 눈으로 나와.”

“아무리 배고파도 더러운 소리 말아.”


완전히 저물기 직전, 저 멀리 그들이 생각하는 높은 산이 보인다. 한 명이 옆을 툭 치고 손가락으로 산을 지시하니, 옆 사람이 고개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지시한 사람이 다른 방향으로 팔을 뻗는다. 저 방향으로 가야 돌아갈 길이라 말하는 것 같다. 역시 끄덕인다.


날은 어둡고 갈 길은 멀다. 살아서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다. 옷을 바꿔 입고 외딴 마을에서 농사나 짓고 살아? 가능하기 힘들다. 논밭을 가는 젊은 남자는 당연히 수상하고 적(籍)을 따진다. 물론 댈 것은 없다. 흔히 말하던 주제가 나온다.


“돌아가다 산중의 과부를 만나서 사는 거야, 어때?”


“얼마나 걸리려나. 또 도착해도 우리 괜찮아?”


“우리 고향이 하메츠 됐다고 생각하고. 그냥 아무 데나 살자고?”


“우리가 진 것이 끔찍하네. 안 죽어서 행복한 것이 아냐. 너무 멀리 왔어.”


“그래서 무조건 이기는 거야. 편하다고 그게.”


“우리 같은 처지가 낭인들로 뭉쳐 산도적이 된다고들 해. 웃을 이야기가 아니지. 그냥 겁만 주는 깡패가 아니니까.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쉽게 사람이 죽는지 목도가 기십인 우리야.”


둘은 힘에 겨워 풀에 드러눕는다.


“이런 건 어때? 과부가 엄청 이뻐. 엉덩이 가슴도 크고 살도 뽀얗고 말야. 오치무샤가 되어 산중 농가에 들어갔더니 그런 과부만 있어. 그리고 밥을 차려주다 눈이 맞아. 그릇을 받다가 손이 스윽 스치면서 눈길이 오가는 거지. 당연히 요렇게 요렇게 일이 밤에 벌어지고. 여자는 오래 못 채운 욕망에 근사한 밤을 보내는 거야. 헌데 알고 보니 과부가 아닌 거지. 몸도 섞고 밭도 갈고 나무도 해주면서 사는데, 어느 밤 괴한이 들어오는 거야. 이 새끼 내 아내를 가져? 내 것을 취해? 단칼에 댕강!”


“재미없다.”


“그래서 무사는 잘 때도 단토를 품에 넣거나 베개 밑에 두어야 해.”


“나 같은 놈 때문에?”


“그렇지. 오입이라면 환장한 놈.”


“유곽에 가고 싶다. 목욕하고 진한 사케에 풍성한 유방. 핫!”


“쟤는 재미가 없나?”


둘은 떨어져 앉은 남자를 지목한다. 두 사람에 비해 체구가 크고 표정이 무척 어둡다. 두 사람도 그렇지만, 모든 걸 놓은 자포자기가 공기 중에 흐른다.


“말을 잘 못 하잖아. 그러지 마.”


칼 가진 자가 입을 쩝쩝 다신다.


“근데, 믿을 수는 있는 거야?”

“봤잖아. 용감하지. 가차 없지.”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그러는 거 아냐?”

“내 보기에 듣기는 들어. 그러니 막말하지 마.”


“벌써 말했어.”


“중요한 말을 할 때는 우리 지방 사투리를 쓰자고.”

“알았어. 쟤가, 좀, 평범하지 않다.”


떨어져 않은 남자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눈은 두 명의 말에 반응하고 있었다.


“쟤는 우리보다 고향이 더 멀지.”


“배를 훔쳐야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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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5. 산성에서 21.06.29 134 2 17쪽
38 24. 탈곡 21.06.17 97 3 12쪽
37 23. 잡놈 21.06.17 85 4 18쪽
36 22. 동검의 무사 21.06.16 80 3 17쪽
35 21. 접신 +1 21.06.16 79 5 19쪽
34 20. 옹진의 살수 21.06.15 82 5 15쪽
33 19. 패잔 21.06.15 68 4 11쪽
32 18. 손들의 싸움 21.06.14 79 4 14쪽
31 17. 옹진 큰물 21.06.13 77 4 8쪽
30 16. 유언 21.06.12 71 3 7쪽
29 15. 옛날 옛적 그 자리 2 +1 21.06.11 74 4 8쪽
28 15. 옛날 옛적 그 자리 1 21.06.10 111 3 7쪽
27 14. 눈이 결정한다 2 21.06.08 89 4 7쪽
26 14. 눈이 결정한다 1 21.06.05 98 3 8쪽
25 13. 그 사람은 멋졌다 2 21.06.04 92 3 7쪽
24 13. 그 사람은 멋졌다 1 21.06.03 80 4 7쪽
» 12. 물 건너편에 2 21.06.02 86 2 7쪽
22 12. 물 건너편에 1 21.06.01 93 2 7쪽
21 11. Intermezzo 21.05.31 93 3 9쪽
20 10. 입신양명 3 21.05.30 104 3 7쪽
19 10. 입신양명 2 21.05.29 86 3 7쪽
18 10. 입신양명 1 21.05.28 89 2 7쪽
17 9. 계루에서 사는 법 2 21.05.27 98 3 9쪽
16 9. 계루에서 사는 법 1 21.05.26 92 3 8쪽
15 8. 목경 2 21.05.26 80 3 7쪽
14 8. 목경 1 21.05.25 95 3 7쪽
13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2 21.05.25 85 3 7쪽
12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1 21.05.24 107 4 7쪽
11 6. 검은머리 짐승 3 21.05.24 95 4 8쪽
10 6. 검은머리 짐승 2 21.05.23 93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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