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55B

금성의 사무라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1.05.16 10:51
최근연재일 :
2021.06.29 10: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705
추천수 :
135
글자수 :
158,650

작성
21.05.26 10:00
조회
79
추천
3
글자
7쪽

8. 목경 2

DUMMY

웃는 얼굴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가 섞여 있다.


‘너, 우리나라와 싸우다 누구를 잃었구나.’

‘그럼, 우린 절 천지 원수 아니냐.’


‘정말로 미워하냐?’

‘사실 아니지. 왕들끼리 말싸움에 우리가 죽을 뿐.’


‘잘 아네. 왕들께서 서신으로 비꼬다 감정이 상했지.’

‘자기보다 높은 놈이 없어야 단잠에 드는 것이 왕인게.’


‘그게 우리의 역사지.’

‘맞아, 어쩔 거야 그런데...’


“웃는 얼굴로 마지막으로 말한다. 집에 가서 칼을 가져올래 말래!”


자존심. 자존심과 싸워 이기는 것은 다르다. 남쪽은 우리 거친 문화와 그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방식을 유목의 저급함으로 말하고, 그러면서 두려워한다. 북은 남을 볼 때 조악한 산천에서 오밀조밀 모여 작은 떡을 빼앗는 어린아이 싸움으로 본다.


이렇게 풀도 잘 나고 먹을 것과 물도 풍부한 곳에서 오순도순 살지 무엇이 모자라 앙탈인가. 우린 이런 작은 땅에 흥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쪽 나라들은 북을 향해 전면적인 침공을 한 역사가 없다.


왜? 얼마나 춥고 험한 곳인지 이들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땅에 도달도 하기 전에 이미 엄청나게 가파르고 높은 뫼(山)들을 넘어야 한다. 우리에겐 이곳에 마음껏 달리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다. 우리가 내려오면 산성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먹을 것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자존심. 그것은 각자의 관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려오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별다르지 않으며, 좁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외려 작은 것에 무척이나 치열하게 목을 건다는 것.


남자가 겉옷을 벗고 속옷 소매를 걷으며 팔을 편하게 한다.


“널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네가 상처를 입어 암 껏도 못하면 내가 이긴 것으로 끝난다. 내가 혹 널 죽여도, 너의 처자는 내가 거두어 보살펴주겠다. 내가 네 처자를 노비로 쓸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싶어. 죽는 것보다 그런 게 더 창피해. 조건은 서로 같은 어여 이? 자, 걱정 말고. 날 죽여 봐.”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본다. 실실 웃으며 뽀얀 얼굴로 만담을 하던 이 사람. 몸새와 표정이 변하면서 눈이 비수처럼 바뀐다. 갑자기 인상이 바뀌면서, 그 갑작스런 반전 때문인지 서너 갑절 무섭다. 야수의 눈이, 과한 불에 넘치는 국물 같이 끓는다.


이게 뭐지. 아, 진짜 무서운 놈이었구나. 부릅뜬 얼치기 외관으로 노려보는 눈보다 이게 더 무섭다. 오늘 하나 배운다. 여유를 가진 놈이 무서운 것이로구나! 그게 갑작스럽게 큰 겁을 주는구나!


“시나브로 즐기시자고.”


말의 여유.


남자가 칼을 뽑고 칼집을 땅에 던졌다.

“전장터에선 칼집이 여간 거치적거리지 안해, 안 그려?”


나도 뽑았다. 칼집은 버리지 않는다.


남자는 칼을 들어 내 목을 겨누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냥 편안하게 칼끝을 내려 날 바라본다. 내가 그랬듯, 날 살피는 거다. 예전의 일과는 다르다. 남자는 나와 비교해 약간 작고 손목도 가늘다. 심지어 우리 남자들이 겉멋으로 평가하는 수염도 가늘고 숱이 적다.


‘저건 어떤 형태지?’


웃음이 날 뻔했다. 남자가 자기 머리의 모자를 문득 느끼더니, 자기 칼을 올려 옆으로 툭 쳐 떨어트린다. 결코 볼 수 없었던 자유로움. 또 반대인 불타는 눈. 과거 우리와의 전쟁에서 형제라도 잃은 눈이다.


다혈질. 저건 정말 다혈질이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이 확 변하지.


남자가 특별한 품새도 없이 늘어트린 칼을 슬슬 흔들며 다가온다. 말이 필요 없다. 먼저 할 테면 하라는 거다. 저러다 내가 공세를 취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자기가 공격하겠다는 물음으로 보인다.


나는 기다린다. 시간이 길어진다. 길어진 시간이 참기 힘들어진다.


녀석이 입을 연다. 갑자기 격식이 사라진 말을 쓰기 시작한다. 여기 무뢰배들의 말이다. 내가 관찰에 빠지자 도발한다.


“해봐, 해봐 이. 어뜩하나 한번 보게. 어떤 수를 쓰고 술을 쓰시나 해봐. 아따 해봐. 귀경하러 왔으니께. (칼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푼다) 뭐 이렇게 할라고? 먼저 요라 칠 거여? 가장 잘하는 걸 하시오. 뭐 다른 거 없을까? 서둘루시오. 해가 질라니까.”


내 눈에 살기가 없자 날 긁는 거다.


나도 모르게 뛴다.


‘평범한 그 첫수로 내려치는 척하다가 수평으로 비어!’


불안하고 무서운 것은, 몰라서다. 일단 부딪쳐야 실물이다. 옛 생각으로 가자. 그래. 내 목숨을 너에게 던진다!


‘저 꽃다운 옷을 반으로 갈라!’


챙!......


손목이 울린다.


합.

첫 합이 나왔다.


챙! 끼이이이이이익....


이 자의 몸은 무르다. 나보다 힘이 한참 덜하다. 하지만 부드럽다.


떨어져 멀어진다. 놈이 이빨을 보인다.


첫 합이... 난 전형적인 방법을 피해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려찍었고, 놈은 내 것을 막고 다시 치려 했는데, 내가 무의식중에 막았다. 하지만 그다음...


이전의 싸움에서 경험 못 한 생소한 방향으로 치고 들어왔다. 튕겨진 내 칼을 다시 수평으로 치려 했는데, (처음 본다) 몸을 가로 서면서 양손을 높이 들어 하방으로 찌르려 했다.


분명, 분명. 내 목 옆 양쪽의 쏘옥 들어간 곳을 노렸다. 내가 수평으로 치는 걸 못 본 것이 아니다. 몸을 돌리면서 쏜살같이 내 몸쪽으로 붙이고 내 칼 거리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고로, 내가 수평으로 치면 오른팔부터 놈의 몸통에 걸리는 거다.


놀라 자빠질 뻔했다. 이런 건 처음이다.


난 수평 치기를 올려 놈의 칼날을 옆으로 쳐내고, 헉! 물러섰다.


‘그래 까먹었어. 전장이 아냐. 우린 갑이 없다고. 나무 갑도 없어.’


너는 여전히 겁이 없다. 놀라지도 않고 신기한 눈으로 날 본다.


‘이상해? 난 말갈 돌궐이 아냐. 그런 마구잡이 상상했냐?’


놀랐다... 하지만 진심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내가 막을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보는 그림이 무척 느리게 보였다.


‘후............’


난 내 호흡을 더듬는다. 호흡을 풀어라. 아니면 맘대로 안 된다.


다시 놈이,

이제 칼을 생소한 법으로 빙빙 돌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당나라 무엇을 배운 것 아냐? 저건 장난은 분명 아니고, 막 지르는 칼 아니다. 돌리다 내가 공격하지 않으면 틈을 보아 들어온다는 것으로 보인다.


‘돌리는 방향을 봐. 그 방향 중에 하나에서 날아온다!’


옆으로 누운 팔(八) 자로 칼을 돌린다.


‘이 자는 확실히 무얼 배웠어!!!’


뒷 척추를 타고 밑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더니

뒤통수로 타고 머리 꼭대기에 다다라 찌리릿 올라간다...

볼에 뜨거운 열이 두루뭉술, 아래턱이 떨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금성의 사무라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 25. 산성에서 21.06.29 134 2 17쪽
38 24. 탈곡 21.06.17 97 3 12쪽
37 23. 잡놈 21.06.17 85 4 18쪽
36 22. 동검의 무사 21.06.16 80 3 17쪽
35 21. 접신 +1 21.06.16 79 5 19쪽
34 20. 옹진의 살수 21.06.15 82 5 15쪽
33 19. 패잔 21.06.15 68 4 11쪽
32 18. 손들의 싸움 21.06.14 79 4 14쪽
31 17. 옹진 큰물 21.06.13 77 4 8쪽
30 16. 유언 21.06.12 71 3 7쪽
29 15. 옛날 옛적 그 자리 2 +1 21.06.11 74 4 8쪽
28 15. 옛날 옛적 그 자리 1 21.06.10 111 3 7쪽
27 14. 눈이 결정한다 2 21.06.08 89 4 7쪽
26 14. 눈이 결정한다 1 21.06.05 98 3 8쪽
25 13. 그 사람은 멋졌다 2 21.06.04 92 3 7쪽
24 13. 그 사람은 멋졌다 1 21.06.03 80 4 7쪽
23 12. 물 건너편에 2 21.06.02 85 2 7쪽
22 12. 물 건너편에 1 21.06.01 93 2 7쪽
21 11. Intermezzo 21.05.31 92 3 9쪽
20 10. 입신양명 3 21.05.30 104 3 7쪽
19 10. 입신양명 2 21.05.29 86 3 7쪽
18 10. 입신양명 1 21.05.28 89 2 7쪽
17 9. 계루에서 사는 법 2 21.05.27 98 3 9쪽
16 9. 계루에서 사는 법 1 21.05.26 92 3 8쪽
» 8. 목경 2 21.05.26 80 3 7쪽
14 8. 목경 1 21.05.25 95 3 7쪽
13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2 21.05.25 85 3 7쪽
12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1 21.05.24 107 4 7쪽
11 6. 검은머리 짐승 3 21.05.24 94 4 8쪽
10 6. 검은머리 짐승 2 21.05.23 93 4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