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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의 사무라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1.05.16 10:51
최근연재일 :
2021.06.29 10: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664
추천수 :
135
글자수 :
158,650

작성
21.06.17 16:00
조회
95
추천
3
글자
12쪽

24. 탈곡

DUMMY

“아부지. 하나 물어두 되요?”


“글쎄. 무엇을 물을 건지 네 눈에서 못 보겠구나.”


“칼은 커서 갈쳐준다 했지만, 어차피 쓸 거면 일찍 배우는 것이 안 나아요?”

“네가 칼을 좋아할지 안 할지 모르잖아!”


“저는 좋아하는데요.”

“그건 네가 배 갈라진 것과 피를 보지 않아놔서 그렇다.”


“피를 보면 마음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럼. 그럴 수 있다. 후회할 수 있어.”


“아부지는 후회해요?”

“반 반.”


“음마? 좋아서 배운 것이 아니라고요?”


“그래. 할아버지는 그러셨지. 마땅한 놈이 없어 나에게 가르친다고.”


“저는 마땅한 놈인가유?”

“내가 아니 네가 아니.”


“뭘 어른이 아는 게 하나도 없으셔.”

“내가 널 다 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알아가고 있는 거지.”


“근디, 할아버지 말윰...”

“왜, 무서워서? 나와 달라서?”


“왜 할아버지는 아부지를 그렇게 무섭게 했는데, 아부지는 나를 무섭게 하지 않고 잘 해주나요?”


“잘 해주는지는 모르겠고. 내가 받은 식으로 하고 싶진 않다. 아버지들이 모두 너의 할아버지와 같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해와 달은 떴다 지고 사람들도 조금씩 변하는 법이야. 중간에 나 같은 사람도 끼고 그러는 것이지.


잘 생각해보면 애비들도 예전에는 너 같은 아들이었단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자기 아비와 똑같이 하는 것이고, 난 내 아버지와 좀 다르게 하는 것이고. 잘못될까 봐 어려서부터 단도리 모질게 하는 건 좋은 방법이지만 난 안 그럴 거다. 네 삼촌들도 할아버지와 똑같잖니.”


“형제 중에 칼은 아부지 혼자 배운 거 아녀?”

“맞다.”


“그럼 아부지도 한 놈 한티는 갈칠 거 아뉴.”

“아마도 그래야 할 성싶은데.”

“게 나 아닌가?”


남자의 눈이 잠시 변했다. 아들도 움찔... 그것을 깨달은 남자는 다시 전력을 다해 온화한 마음으로 돌아가려 애쓴다. 아비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이럴 때 봄, 아부지도 대단히 안 무섭진 않아요.”

“작대기를 피하라고 때린 건 너만이 아냐. 형제 골고루 했다.”


“개중 하나 고르려고 합나요?”

“그러지는 않아. 잘 피해도 쇠를 잡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도 있어.”


“아는디. 내가 모르는 아부지가 있는 것 가튜.”

“본 것이 전부는 아니다만, 그 나머지를 네가 볼일은 없다.”


“냄들은 아부지가 부인에게 잡히 산다고 해요.”

“이겨서 되는 일이 있고 져줘야 하는 일이 있다.”


“아들만 있어서 그런 것도 있나요.”

“딸이 나왔다면... 네 모친을 대신해 이미 옮아갔지. 허허.”

“피이... 우끼셔.”


“젊어서 그걸 썼슈?”

“쇠붙이 이야기 더 해?”

“삼거리 가서 물어봐유. 얘기 안 끝났다 해요.”


“난 너에게 진심이 아니면 말하기 싫은데, 꼭 듣고 싶니? 들어야겠니?”


“불편하더라도 말은 해주시면 어떨까요. 저는 아부지의 몸을 닮아서 나왔는데 내가 어떨지는 아부지가 반은 결정한 것이 아닙니까. 내가 모르던 안에서 툭 튀어나와도, 거슨 원래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말주변도 그렇고 넌 책을 좀 읽는 게 어떻겠냐.”

“문자도 수십 외에 모르는데 어처케 읽나유.”


“책을 구해다 주고, 천자(千字文)는 내가 가르쳐줄게.”

“앉아 있는 것 싫은데...”


“일단 읽어봐. 애비가 읽는데 따라하고 싶지 않아?”

“손에 쥐는 걸 따라 하고 깊은데 어쩌면 좋을까요 이.”


“많이 컸구나. 맞는 말만 골라서 하니 영 곤란한걸.”

“정신이 오락가락 노인 되기 전에 좀 털어놔 보심이 어떨까요.”


“했다.”

“목숨을 걸고 겨루기도 했나요?”


“이거 곤란하구나. 난 너에게 거짓말할 생각이 없는데...”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 꼭 비극은 아닙니다요.”


“말할 때 보면 엄니를 더 닮은 듯도 해.”

“엄니처럼 더 바닥바닥 달려들어 볼까요?”

“그래 했다.”


“얼마나?”

“음... 저 가지에 달린 잎사귀만큼 싸웠다.”


“다 이겼시우. 살아 기시니까.”

“아니. 진 것도 있어. 상대가 목숨은 허락한 거지.”


“더 크기 전에 내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세게 안 따릴 터이니 작대기 피하는 것을 열심히 해봐.”


“작대기는 작대기지 칼은 아닌데.”

“아니다. 결국은 같은 거다.”

“그래서 그런데. 밤에...”

“내가 수련하는 것, 봤니?”

“죄송합니다.”


“뭐 별 거 있던??? 그냥 버릇 삼아 하는 거지.”

“그러니까 나도 하게 해주십시오. 부친 어른.”


“이 놈이 말을 이거저거 막 섞네.”

“부디 뜻을 보살펴...”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냐.”

“동원에서 하던디요.”


“그럼, 봉을 가르쳐줄게.”

“작대기 봉유?”

“그래.”


“칼을 배우고 싶다니까요.”

“지다란 무기는 다 봉으로 통한다. 날 믿어.”


“봉을 이렇게 막 돌려요?”

“너... 내가 밤에 돌리는 그림을 봤구나.”

“네. 칼을 막... 휙 휙 휙.”

“그럼 일단 봉을 돌려봐.”


“봉은 어디에 있어요?”

“니가 배우고 싶으니 니가 만들어야지.”

“가끔은 남보다 모던 말을 툭툭 하셔...요.”

“음. 싫어. 그러니 네가 시작해.”

“어떻게 만들어 와요?”


“길이는 네 키. 자랄 것을 대비해 좀 더 길게 해도 되나, 너무 길면 돌릴 때 땅에 걸린다. 엄지와 검지를 합친 두께. 최대한 구부러지지 않고 매끈한 놈이어야 되고, 구하기 힘들면 봉의 중간만 평평해도 큰 이상은 없다.”


“워떤 나무요?”


“알아서 낫으로 깎아봐. 실패를 거듭하지 않도록 충고를 하면, 나무가 봉으로 잘 휘어져야 무예를 위한 봉이다. 뭐든 바닥부터 모든 시작부터 배워야 한다. 봉부터 여러 나무를 시험해봐.”


“에게... 휘는 놈으로 치면 뭐가 아파요?”


“안 휘면 부러진다. 휘는 놈은 때려도 안 부러지고 때린 것에 차악 감긴다.”


“그게 다예요?”


“아니. 어디서 구할지 모르겠다만, 나무를 잘라 봉을 만들었을 때, 나무에 물기가 완전히 마르면 금이 가고 휘어지지도 않고 딱딱해진다. 그때는 그냥 작대기 몽둥이가 되는 거야. 마른 상태에서는 사람 심하게 때려도 부러진다.”


“그럼 어떻게?”


“물기가 다 빠지지 않도록 겉에 기름칠해야 해. 그 기름이 나무 안으로 스며들면 휘는 것이 더 좋아지기도 하지.”


“먹을 기름도 없는데 언 놈이 기름을 줘요.”


“사람들이 기름으로 짜는 채소나 열매가 있지? 그걸 많은 양을 쥐어짜서 만드는 것이고, 그 안에 기름이 있으니까 기름이 나오는 거시 아녀. 그런 것을 지속 문대면 스며들지.”


“포졸들은 봉에 기름 바른다 소리 없던데.”

“계속 속에 잡고 있어서 그래.”


“뭔 소리래요?”


“손에서도 조금씩 기름이 나온다. 인간의 고혈이 있어. 그래서 따로 기름을 안 발라도, 계속 잡고 연습하고 만지는 봉은 자연스레 인간의 손 기름이 칠해져. 그래서 병기가 망가지는 건 사람 손을 안 타고 광에 쌓아두다가 그러는 거야. 집이 인간의 기가 없어지면 무너지는 것처럼. 병기에 깎아 넣은 나무는 사람 손 기름이 안 타면 마르고 금 가고 부러진다. 그걸 다시 꺼내면 창봉에 기름부터 칠해서 며칠 기다려야 한다. 습기와 기름기가 중간까지 스며들도록.”


“하지만 칼과 봉은 다르죠. 봉은 휘두르면 휘지만, 칼은 아니잖우?”


“머리가 좀 자라면 니가 아는 걸 어른들이 많이 모르는 것 같지? 우리 귀여운 아들 싸가지가 없구나. 철이라고 항상 곧은 게 아니다. 빨리 돌리면 칼도 휘어지면서 날아가는 거야.”


“말이 되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전에 말했잖아. 좋은 칼은 잘 휘어지는 거라고.”


“안 휘어져야 잘 잘리는 거 아뉴?”

“아니. 강한 것을 만나면 그런 칼은 부러진다.”


“왜유.”

“음... 이걸 커서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다만.”


“배울 거라니까요.”

“모르겠지만, 음... 무엇을 예로 들지?”


“잊고 까먹을 것이니 사람 몸으로 해도 뭐 그렇게.”


아비의 무서운 눈에 입만 웃는다. 눈은 말하고 있다. 넌 포기할 거야. 넌...


“말하기 전에 일침을 놓는다. 네 인생이 달라져도 이것은 너의 선택이다. 난 네가 후계자가 되면 어디서 죽지 말라고 진심을 말하겠다. 칼이 몸에 들어가서 무리가 되는 것은 등골이다. 동짝의 우아래로 지다란 뼈. 손을 허리로 넘기면 직립 되어 만져지는 뼈. 칼이 너무 강하게 들어가다가 뼈를 만나면 박히거나 부러진다. 살은 약하지만 뼈는 약하지 않다.”


“뼈를 피하고 배만 그으면 되잖유.”


“닥치고 귀를 열어... 이와 마찬가지로 백이면 구십, 칼은 굵은 나무를 제대로 치면 부러진다. 박혀서 빼도 박도 못 할 수도 있고. 좋은 칼은 너무 단단한 것을 만나면 박히는 것이 아니라, 딱딱한 것을 만나는 순간 휘어지면서 타고 넘어간다. 사람 몸을 수평으로 베어도 그 면은 일직선 수평 같지만 사실 휘어진 곡면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게 공을 많이 들인 비싼 칼이다.


팔뼈는 세게 치르면 자를 수 있다. 날이 제대로 섰을 때는 잘린다. 하지만 살도 두터워 다리뼈는 안 되고, 만약 이것이 큰 싸움터라면 상대의 갑에도 싼 칼이 박히거나 부러진다. 좋은 칼은 휘면서 타고 넘어가 다시 돌아오니, 다시 공격할 수가 있으나. 그렇지 않은 칼은 이제 나를 무방비상태로 만든다.”


“칼이 뭐 그래요?”


“칼을 길게 만들었을 때 휘는 걸 말하는 거야. 아주 오래전의 칼처럼 짧은 검이면 그렇게 큰 상관없다. 대신 가차운 거리에서 서로 너 죽고 나 죽고지. 먼저 치려고 칼이 길어진 거니까. 자기 팔뚝만 한 길이 검을 쓰던 시대에는 잘 휘도록 연마할 필요가 없었고, 철이 아니라 동처럼 무른 것을 써도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었어.”


“그럼 전장터에서는 창이 좋아유?”


“모든 무기는 사용이 좋을 처가 있고, 나쁜 거시기도 있는 거다.”


“본보기를 들면요?”


“숙련된 장수는 창이 내 몸에 들어오는 걸 보면서, 자기 칼로 창의 나무 장대를 잘라버린다. 그럴 때 좋은 칼이 필요하다. 장대를 수직을 쳐서 자를 때.”


“다 이기기 위해 그런 걸 다 배웁니까?”


“아니. 그걸 다 배우다 머리만 복잡해진다. 무기 두 개. 전법 두 개. 나머지는 거기서 조금씩 바꾸어 상대에 따라 맞추어야 하지. 뭔 말인지 알아듣겄냐?”


“작대기나 칼로 사람 후까 패는 건데 이렇게 복잡하게 해야 합니까?”


“안 해도 된다. 하라고 안 했다. 잘 기억해. 내가 말하는 요지는 많지 않다. 니가 내 아들로 섣불리 배워서 나섰다가 이름 모를 산야에서 죽을까 봐 나도 좋은 소리 못하는 거다. 아직 널 산에서 주워왔다는 애미 말을 믿지는 않지? 너의 시작은 버젓한 봉을 깎는 것에서 시작한다.


시작하는 모든 것에서 요만한 빈틈도 보이지 말고 꼼꼼하게 해라. 그게 애비로써 너를 가르치는 근본이고, 모든 것은 그렇게 가르칠 것이다. 틈이 생기면 언젠가 그걸로 병신 되거나 죽어. 손이 잘려 일보고 밑을 자기가 못 닦는 것을 떠올려봐라. 칼은 순식간이여. 그것을 위해서 후회할 정도로 힘들어질 거다. 느그 엄니에게 발설하면 다시는 안 가르쳐준다.”


“많이 힘듭니까?”

“몸이 힘든 것보다 다른 것이 있다.”

“무엇이오?”


“이걸 시작하면 떠나고 싶어진다. 그게 가장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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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5. 산성에서 21.06.29 132 2 17쪽
» 24. 탈곡 21.06.17 96 3 12쪽
37 23. 잡놈 21.06.17 85 4 18쪽
36 22. 동검의 무사 21.06.16 80 3 17쪽
35 21. 접신 +1 21.06.16 79 5 19쪽
34 20. 옹진의 살수 21.06.15 82 5 15쪽
33 19. 패잔 21.06.15 66 4 11쪽
32 18. 손들의 싸움 21.06.14 79 4 14쪽
31 17. 옹진 큰물 21.06.13 77 4 8쪽
30 16. 유언 21.06.12 70 3 7쪽
29 15. 옛날 옛적 그 자리 2 +1 21.06.11 72 4 8쪽
28 15. 옛날 옛적 그 자리 1 21.06.10 110 3 7쪽
27 14. 눈이 결정한다 2 21.06.08 88 4 7쪽
26 14. 눈이 결정한다 1 21.06.05 97 3 8쪽
25 13. 그 사람은 멋졌다 2 21.06.04 90 3 7쪽
24 13. 그 사람은 멋졌다 1 21.06.03 80 4 7쪽
23 12. 물 건너편에 2 21.06.02 83 2 7쪽
22 12. 물 건너편에 1 21.06.01 90 2 7쪽
21 11. Intermezzo 21.05.31 92 3 9쪽
20 10. 입신양명 3 21.05.30 104 3 7쪽
19 10. 입신양명 2 21.05.29 85 3 7쪽
18 10. 입신양명 1 21.05.28 89 2 7쪽
17 9. 계루에서 사는 법 2 21.05.27 97 3 9쪽
16 9. 계루에서 사는 법 1 21.05.26 91 3 8쪽
15 8. 목경 2 21.05.26 79 3 7쪽
14 8. 목경 1 21.05.25 94 3 7쪽
13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2 21.05.25 85 3 7쪽
12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1 21.05.24 105 4 7쪽
11 6. 검은머리 짐승 3 21.05.24 93 4 8쪽
10 6. 검은머리 짐승 2 21.05.23 92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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