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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의 사무라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1.05.16 10:51
최근연재일 :
2021.06.29 10: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704
추천수 :
135
글자수 :
158,650

작성
21.06.12 10:00
조회
70
추천
3
글자
7쪽

16. 유언

DUMMY

16. 유언



그 대결이 있기 며칠 전이었어.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옹진성으로 가서 백가를 만나라.”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몰라.


“알아들었냐?”


아버지가 말을 한다.

저 입에서 말이 나온다.


“사람이 알아는 들어도 다 하는 건 아니잖유.”


말을 뱉었는데 더럭! 겁이 나.

까불다가 오늘 기절하겠구나.


“자꾸 여기 말 쓸 테냐?”

“여서 태어나고 자란 것을 나떠러 워쩌란 말여.”


“말한 것에 대한 답이나 해라. 싸게.”

“똑같은 말 쓰시면서 그류.”


“피떡 되고 말할 테냐.”

“관리에게 물어봐유. 나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답할라니까.”


“매를 솔찮이 쉰 모양이구나.”

“맞을 자식놈도 이젠 아니구만요.”


“자식도 남이다. 너에게 내가, 나에게 네가, 그렇게 남이어야 산다.”


“매몰차기로 아조 작정을 하셨어요?”


“지금 한 말을 일찍 마음에 들이면 넌 남자가 될 것이고, 그 말을 들이지 못하면 평생 엄니 찾다가 울면서 죽는다.”


“아니 그러니까, 어떠어떠한 이유다, 말을 해주셔야 따르건 말건 할 거 아닙니까. 옹진에 가면 어떤 사람이 우리 모자를 먹여줘요?”


“아니, 너 혼자만 가야 해.”

“참 예나 지금이나 너무하시기는 환웅과 같으시오.”


“난 분명히 말했다.”

“그러니까. 왜 그리 뭐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씀하신가 말이지요. 혹시 떠나실 요량이십니까? 그 사람들이 무서워서 다른 곳에 피신하렵니까?”


“너 무슨 소리냐.”


“처자 버리고 협객이라도 되고 싶으셔유? 그럼 저에게 문자를 가르쳐 뜻일 이루라 함은 다 거짓이 아니오. 아니 그러하옵니까?”


“그런 말을 하려면 입에 무 조각이라도 넣어서 씹어라.”


“왜요?”


“씹을 땐 말을 안 하니까.”


“사람이 왜 말을 안 해야 해요?”

“말을 함과 동시에 머리가 멍~해지니까.”

“왜 멍해지지요?”


“생각을 하니까.”

“생각을 하라고 가르치신 거 아닙니까?”


“생각은 평상시에 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는 생각하면 안 된다. 발이 땅을 밀고 칼을 든 손이 이미 공중을 날아야 한다. 생각에 앞서, 이미 상대방의 목이 내 발 아래 떨어져 있어야 한다.”


“어떻게 벤 걸 모르고.”

“베기의 가장 높은 실력은, 베는 순간을 못 느끼는 거야.”

“......”

“이미 베어져 있는 거야. 너도 나중에 경험한다.”


“싫으면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넌 제명에 못 죽는다. 어차피 그럴 것이면, 어차피 그리 바보처럼 죽을 것이면 내 먼저 옥황상제께 보내드릴까?”


“말이 심하지 않으신가요?”

“아무리 그리해도 부자간이 아니옵니까.”


“겁 좀 준다고 말이 공손해지네. 이놈 이거, 되겠어?”


“셋을 세라.”

“예?”

“셋을 세라.”


“하나도 세지 않을 테야요.”


“그럼 내가 세주지. 하나...”


등골이 서늘...


“하하하하하. 옹진성. 백가.”


사실, 몸이 얼어붙어. 나에게 말을 걸다니.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말이 많아진다잖여.


“왜 답이 없니?”


질문이 싫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갑자기 내 입이 대화를 못 하는 거다.


지금은 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늘에는 달이 떠 있고, 부친과 나는 집 앞에 부친이 손수 만든 평상에 앉아 있었다. 왜 그날 잠들지 않고 같이 있었지? 명절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답을 안 하자 부친이 좀 당황하는 듯했고, 나이가 있으니 그런 분위기가 왜인지 나보다는 더 알지 않겠어? 난 좀... 이런 말 해도 되나? 음... 거북했어. 부친이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 기분? 막대기로 날 불시로 치고 피하게 하고 말은 없고. 하지만 모친이나 나나 진짜 걱정은 난이 터졌을 때 부친이 군사로 나가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었지. 피할 사람이 아냐.


음마, 까깝한 것이?


아마도 난 시험을 하고 있었나 봐. 나도 컸는데, 저 얼음덩어리 같은 남자와 내가 비교가 되나. 응? 하문, 비교가 되고 싶었지. 나도 집에서 나무나 때워 밥이나 하고 싶겄어? 칼 차고 활 메고 말을 달리고 싶었지.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고.


창피하잖여. 나를 낳은 사람은 저란치 외관이나 말이나 얼굴이나 무시무시한데, 난 뭐냐 이거지. 게다가 옹진성은 지에미 무슨 옹진이여. 버린다 소리 아녀. 도망치진 않더라도, 싸움이 나면 또 칼을 뽑아 결단을 보겠단 소리 아녀. 그만치로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냐고.


난 떨면서도 대들고 있었어.

사실은 대드는 척하면서 떨고 있었지.

지금 생각하니 안직도 오금이 저리네.


내가 대들었다니,

물고기처럼 말 내뱉었다가,

저 사람 내 목을 치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니께!


입은 열렸고, 말은 들었고, 살다 보면 꼭 이런 날은 날씨도 좋아서 사람 짜증 나게 한다니까. 그런 아름다운 날에 그런 수상한 말을 듣고 말이시.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 저런 모습이 되고 싶다.


그렇게 살았어.

하지만 안 될 것 같더라고.


근데 요상혀. 남들은 또 날 그렇게 보는 거여. 나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그 남자처럼 되고 있는 거여. 만물이 희한해.


“답을 꼭 안 해야겠냐.”


말을 하려고 하는데 목구멍에서 소리가 안 나와.


“옹진과 백가는 기억하겠지?”


그때 눈이 마주쳤어.

난 끄덕였어. 옹진성? 백가?


그날.

다른 것은 곁가지로 두더라도, 처음 봤어... 왜 웃으셨을까.


모르지. 물어본 것도 아니고, 물어볼 엄두도 안 나지. 얼마나 무서웠는데. 좋게 생각을 해도 기억 속에서 부친이 가찹게 다가올 수가 없어. 다 좋게 생각하는 거지.


긴 수염에 하얗게 빛나는 치아. 치아가 한여름 바닷가의 칼처럼 빛나.


대체 저 사람은 무슨 생각하며 살까.


곰곰이 생각하고 답을 하나 구했어. 그 장면도 웃기고 지금부터 할 내 말도 웃기겠지만, 답은 구했다고 생각이 드어.


아버지는 날 보고 웃고 싶었다고 말이야.


그거지. 그거였지.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이때라도, 한번 웃어주고 싶으셨다고 말이야... 웃어주는 아버지를 딱 한 번, 잠깐이라도 해 보고 싶으셨던 것 같아.


참 희한하게 멋진 사람이라니까.


참. 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난 말할 수 있어.

우리 아바이는 정말 멋졌어!

나가 왜 용장이 됐겄어.

핏줄 주신 분이 원래 멋있었던 게지.


게다가 이 아들을 보고 웃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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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5. 산성에서 21.06.29 134 2 17쪽
38 24. 탈곡 21.06.17 97 3 12쪽
37 23. 잡놈 21.06.17 85 4 18쪽
36 22. 동검의 무사 21.06.16 80 3 17쪽
35 21. 접신 +1 21.06.16 79 5 19쪽
34 20. 옹진의 살수 21.06.15 82 5 15쪽
33 19. 패잔 21.06.15 68 4 11쪽
32 18. 손들의 싸움 21.06.14 79 4 14쪽
31 17. 옹진 큰물 21.06.13 77 4 8쪽
» 16. 유언 21.06.12 71 3 7쪽
29 15. 옛날 옛적 그 자리 2 +1 21.06.11 74 4 8쪽
28 15. 옛날 옛적 그 자리 1 21.06.10 111 3 7쪽
27 14. 눈이 결정한다 2 21.06.08 89 4 7쪽
26 14. 눈이 결정한다 1 21.06.05 98 3 8쪽
25 13. 그 사람은 멋졌다 2 21.06.04 92 3 7쪽
24 13. 그 사람은 멋졌다 1 21.06.03 80 4 7쪽
23 12. 물 건너편에 2 21.06.02 85 2 7쪽
22 12. 물 건너편에 1 21.06.01 93 2 7쪽
21 11. Intermezzo 21.05.31 92 3 9쪽
20 10. 입신양명 3 21.05.30 104 3 7쪽
19 10. 입신양명 2 21.05.29 86 3 7쪽
18 10. 입신양명 1 21.05.28 89 2 7쪽
17 9. 계루에서 사는 법 2 21.05.27 98 3 9쪽
16 9. 계루에서 사는 법 1 21.05.26 92 3 8쪽
15 8. 목경 2 21.05.26 79 3 7쪽
14 8. 목경 1 21.05.25 95 3 7쪽
13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2 21.05.25 85 3 7쪽
12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1 21.05.24 107 4 7쪽
11 6. 검은머리 짐승 3 21.05.24 94 4 8쪽
10 6. 검은머리 짐승 2 21.05.23 93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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