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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의 사무라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1.05.16 10:51
최근연재일 :
2021.06.29 10: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715
추천수 :
138
글자수 :
158,650

작성
21.05.27 10:00
조회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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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9. 계루에서 사는 법 2

DUMMY

정녕 그러한 것을 보고 소상히 적었다면 아무도 전쟁하려 들지 않으리라. 오히려 칼로 싸우지 않으리라. 사람이 할 소리가 있는 것이다. 진짜를 책으로 썼다가 천자나 읽은 아해들이 보고 얼마나 당혹에 빠지겠는가. 하지만 연의를 쓴 사람들은 그 자세한 서술로 보아 아마도 무예를 직접 보긴 본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를 위해서라도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은, 만약 장수든 병졸이든 두 명이 장검을 들고 싸울 경우, 한 명이 죽더라도 - 죽인 사람도 거의 반다시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같은 칼의 거리 안에서 싸우다 한 명이 치명상을 입는다.


‘같은 칼의 거리’가 문제다. 당나라 무협 책처럼 한 명이 완전히 허공을 가른 상태에서 완벽허니 베는 것은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오랫동안 무예를 닦은 사람도 실제로는 젖 먹은 힘을 다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마구 휘두르고 찍는다. 공을 들인 좋을 칼도 한계는 있다.


무예는 공백이 많은 술이고 전쟁터는 공백을 보메 죽는다. 외려 기력의 싸움이었다. 칼을 가장 센 힘으로 이십 회 휘두를 수 있는 사람과 오십 회 휘두르는 사람 중에 누가 살까. 이를 악물고 내려쳐야 나뭇값이나 가죽 갑을 뚫고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찌르기는 상대가 주춤할 때나 가능한 것이다. 찌르기를 무작정 하면 목과 어깨와 팔이 무방비로 빈다.


내가 구경한 무술 무예는 전쟁터보다 화려했다. 즉, 평시에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으니 법이 화려해지는 거다. 실제는 훨씬 빠르고 단순하다. 一百 회를 때릴 수 있다면 전장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다. 내가 맞다가 치명상을 밑으로 눌릴 것 같으면 씨름처럼 넘겨버려 죽을 때까지 때린다.


또한 전장에서는 칼이 부러지고 창봉이 부러지고, 그렇게 맞고도 사람이 안 쓰러진다. 전투가 끝나고 나면 맞았던 곳이 붓고 피멍이 들고 아프다. 큰 싸움이 끝나고 살아도, 다음 날 아침 멀쩡하게 일어나는 사람이 없다.


내 숨을 고르는데 남자도 숨을 고르며 말을 던진다.


“배불리 먹고 올걸...”


동감했다. 중국 병법서에서 못 봤소? 병사들을 배불리 먹여. 병사들 새벽밥을 배불리 먹여. 병사들은 든든히 먹여 일찍 재우고.


농에는 답을 해야 예의지.


“그러니까 내 말이...”


몇 수와 합이 있었는지 난 모른다.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단전에 호흡을 넣고 입을 다물었다. 내 손도 떨리고 남자 손도 떨린다. 솔직히 둘 다 누워서 한숨 쉬고 다시 했으면 싶었다. 허나 남자의 허세 때문에 그러자고 묻질 못한다. 묻는 놈이 굴복하는 기분이 든다. 정말 말하고 싶었다. 힘들어서.


‘오늘은 그만. 내일 이 시각 여기서 다시.’


몸은 간절히 물을 바란다.


불알 달린 것들의 자존심은 때로 많이 지나치다. 아무 지켜보는 사람 없어도 그렇다. 누가 물 좀 마시고 하자 했어도, 우리 서로 어디서 떠벌릴 것도 아니다. 성격상 둘 다 못한다. 남자가 입이 걸고 농도 달지만 속은 우직하다. 어쩌면 그 허허실실에 당한 사람 제법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거기서 그만두어야 했다.


난 그 남자가, 그 어린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꾸미는 것이 없고 겉치레보다 강한 인간이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사내. 싸움만 아니라면 알고 지내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무엇을 배운 것인지 나도 좀 알고 싶었다.


“허...... 어디서 배우셨나!”


“싸움에 통성명하는 건... 당나라 놈들이나 하는 게요!”


“그놈들 명분은 기나긴 축문과 같지.”


“그람. 그람. 그라지.”


이때 그만두어야 했어.

누군가 하나가 ‘그래, 내가 졌다.’

선언 한마디면 서로 웃으면 파했을 거야.


헌데 그 친구가 먼저 일갈로 알렸지.


“오늘 마지막 終 一 合 !”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


바로 그 친구 뒤로 열 걸음 물러선다.


“아악~~~~~~~~~~~~~~~~~~!!!”


그리고는 몸을 크게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기울면서 날 향해 달린다. 야산을 울리는 괴이한 고함과 함께 발이 안 보이도록 날 향해 내달린다. 그리고 내 앞 다섯 보 앞에서... 내 앞에서... 공중에 떴다.


난 인간이 그렇게 높이 솟아오른다는 사실에 넋이 나가 하늘을 바라봤는데, 느리다 말할 정도로 그 모습이 낱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에 칼을 쥐고 뛰다가 대(大)자로 사지를 펴면서 공중에 치솟았고, 그 가장 높은 정점에 다다랐을 때, 왼손이 검으로 와서 두 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들고, 양다리가 양옆으로 벌어지면서 말 타는 자세로 구부려 나를 향해 떨어진다.


그때 나는 피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 그 친구는 날 내려다보고 있었고 아무리 옆으로 몸을 숙여봤자 어디라도 정확히 내려칠 거란 기분이 들었거든. 왼쪽으로 피하나 오른쪽으로 피하나 내려오면서 사선으로 내려치면 난 맞는 거다.


그런 건 처음이었다. 묘상의 석상처럼 그 자세로 하강한다.


‘나만 죽을 수 없다!’


난 보폭을 좌우로 벌리고 무릎을 구부리면서 수평 치기를 시도했다. 나도 모르게 목이 거북이처럼 움츠렸다. 원래는 머리 위 수평으로 막아야 했는데, 그 기세가 막아봤자 내 칼을 부러트리고 내 머리를 칠 것 같았다. 그때 처음, 왼손으로 날을 잡고 지지해야 부러지더라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마저도 날이 내 손을 자를 것 같았다.


고로 나는 양손으로 잡은 검을 오른쪽으로 돌렸고, 녀석의 허리가 내 어깨선에 올 즈음을 어림잡아 왼쪽 수평으로 그었다. 진정 죽기를 각오하면 차분해지고, 그런 중요한 합의 순간에는 강하게 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치는 것이다. 칼날은 바람에도 비틀리면서 날이 아니라 면으로 친다. 손목이 약간만 비틀려도 면으로 때려서 무익하다. 면으로 칠 때 값싸게 단련된 칼은 뚝! 부러진다.


나는 침착하게, 칼을 잡은 내 양손이 정확히 수평으로 흐르는 걸 봤다. 하강하는 사람을 보지 않고 칼날이 가는 길만 본 것이다.


내가 긋는 데 성공해도 내 머리나 어깨가 철로 파고들 것이고 난 쓰러진다...


푹석 소리를 듣고,

나도 왼쪽으로 돌면서 뒤로 벌렁 넘어갔다.

내 칼이 무엇이 닿았는지 경황이 없다.


사실 의복에나 걸러야 스치는 느낌이나 오지, 그저 사람의 살만 친다면 검이 무거울수록 뭘 쳤는지 모른다. 연한 두부를 가른다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뼈에만 안 걸리면 살은 칼에 딱딱하게 대항하지 못한다. 칼의 무게와 빠르기가 관건.


내가 눈을 감았는지는 모르나, 어느 정적, 나무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아까보다 누그러진 태양.


‘나 죽는다...’


허나 아직 정신이 있다. 조금 더 기다려도 정신이 있다. 난 왼손으로 내 머리를 만졌는데... 뭣이 없다. 어깨도 더듬었다. 양팔을 움직이자 붙어 있다. 축축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내 살 어디가 파일 것인데?


그때 챙! 퍼덕! 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산을 넘는 것이오, 물을 건너는 것이오.

얼마나 멀리 가는 것이오. 거게가 어드메.

가면 다시 못 돌아오는 것이고? 귀신은 무엇.

헌데, 먼저 갈 사람을 누가 정하는 것이오?


“의관 좀 잡아주어.”


아무렴.

난 내장을 가지런히 넣어주고 의복으로 가벼이 묶어, 양팔로 안아 경치 좋은 소나무밭으로 걸어간다. 남자는 불쌍하고 애달프게 날 보지 않으려 노력했어. 사내답지 못한 걸 보이기 싫은 거이 아니라, 나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내색이 있었어.


난 떠날 사람에게 말했지.


“내가 뛰어나서 이런 건 아니오. 이긴 게 아냐.”


“와이라쇼. 이긴 건 이긴 거지...”


“아퍼?”


“괜찮아. 이랄 줄 알고 우리는 사는 거여.”


어린 사람이 생각도 많이 세상을 살았구나. 이 사람 학식으로 가도 되는 사람이었어. 일부러 방자한 체 살고 있었어. 내 보기에 책도 많이 읽고 세상도 배우려고 돌아다녔어. 밭을 갈 집안의 여력은 아니니까.


마지막 말이 뭐였냐고?


“우리가 죽인 사람처럼 조신하게 뒤져야 되야.”


그래.

대신 나도 너처럼 도전을 마다하지 않으마.


“헌데 누구한테 뭘 배운 거야?”


“큰 물가 옹진성의 백가라고...”



그날따라 연부가 집 앞에 서서 날 바라보는 모양새가 고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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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4. 탈곡 21.06.17 9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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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2. 동검의 무사 21.06.16 80 3 17쪽
35 21. 접신 +1 21.06.16 79 5 19쪽
34 20. 옹진의 살수 21.06.15 82 5 15쪽
33 19. 패잔 21.06.15 68 4 11쪽
32 18. 손들의 싸움 21.06.14 79 4 14쪽
31 17. 옹진 큰물 21.06.13 78 4 8쪽
30 16. 유언 21.06.12 71 3 7쪽
29 15. 옛날 옛적 그 자리 2 +1 21.06.11 74 4 8쪽
28 15. 옛날 옛적 그 자리 1 21.06.10 111 3 7쪽
27 14. 눈이 결정한다 2 21.06.08 89 4 7쪽
26 14. 눈이 결정한다 1 21.06.05 98 3 8쪽
25 13. 그 사람은 멋졌다 2 21.06.04 92 3 7쪽
24 13. 그 사람은 멋졌다 1 21.06.03 80 4 7쪽
23 12. 물 건너편에 2 21.06.02 86 2 7쪽
22 12. 물 건너편에 1 21.06.01 93 2 7쪽
21 11. Intermezzo 21.05.31 93 3 9쪽
20 10. 입신양명 3 21.05.30 104 3 7쪽
19 10. 입신양명 2 21.05.29 86 3 7쪽
18 10. 입신양명 1 21.05.28 89 2 7쪽
» 9. 계루에서 사는 법 2 21.05.27 99 3 9쪽
16 9. 계루에서 사는 법 1 21.05.26 93 3 8쪽
15 8. 목경 2 21.05.26 80 3 7쪽
14 8. 목경 1 21.05.25 95 3 7쪽
13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2 21.05.25 85 3 7쪽
12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1 21.05.24 107 4 7쪽
11 6. 검은머리 짐승 3 21.05.24 95 4 8쪽
10 6. 검은머리 짐승 2 21.05.23 93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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