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55B

금성의 사무라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1.05.16 10:51
최근연재일 :
2021.06.29 10: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708
추천수 :
135
글자수 :
158,650

작성
21.05.31 10:00
조회
92
추천
3
글자
9쪽

11. Intermezzo

DUMMY

11. Intermezzo




눈앞에 두툼한 눈송이만 보인다.


칼바람 바람 때문에도 크게 눈을 떠 볼 수가 없다. 다만 볼 것도 없다.


사방팔방이 평화로운 하얀색이며, 수염은 얼고 살이 에인다. 어떤 것을 입어도 파고드는 칼바람을 더는 못 피한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다. 이대로 놔두면 봄이 되어 땅이 풀릴 때 그대로 드러나 짐승의 먹이가 될 것 같다. 그 무엇이라고 먹고픈 들짐승들이 겨우내 도사린다. 파야 한다. 그리고 돌로 눌러야 한다.


여기서 살지 않는 사람들은 짐승의 씨가 말랐다고 생각할 것이다. 특히 엄동설한이 되면 어디 숨을 곳이 없어 보인다. 겨울잠을 자려 비빌 언덕도 없다. 겨울잠을 자기 전에 먹을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방관은 금물이다. 짐승도 이 땅에 대대로 오래 살았다.


작대기가 땅에 들어가지 않는다. 찍어 긁어내려 해도 허탕만 치며 작대기만 짧아진다. 이미 감각이 사라진 손이 까진다. 아프지도 않다. 남자는 거의 드러난 맨몸에 짐승의 가죽을 둘러쓰고 기를 쓴다.


그 가죽은 지상의 강자, 호랑이 혹은 표범의 것인데, 눈이 들러붙어 단단해지면서 자세히 보기 전에는 하얀 바위와 같아졌다. 그 가죽 바깥으로 맨 정강이가 드러나고 발에는 어떤 풀로 만든 새끼를 감고 있다. 그 드러난 다리와 팔이 강풍과 혹한에 시달리나...


남자는 계속한다.

그걸 하려고 이 땅에 서 있다.


툭! 작대기 끝이 또 부러졌다.


잠시, 남자는 고개를 들어 - 역시 똑같이 하얀 - 하늘을 보여 팔들 든다. 저 높은 곳에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그에게 고통이나 주십니까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높으신 당신과 나, 꼭 이럴 필요까지 있는가, 의아함과 협상을 하는 듯한 마음을 가진 것으로 간주한다. 곧 얼어 죽을 수도 있지만, 자못 당당하다.


하지만 하늘도 잠시, 그는 다시 작대기로 땅을 판다.


너르다 표현도 무색하게 평평한 벌판과 가끔 민둥산. 너르다고 말해도 듣는 사람을 이해시킬 수 없는 땅. 말을 타고 며칠을 가봤자 그저 같은 풍경. 아무리 말을 재촉하며 달려도 구름은 그대로다. 그래서 인간이 걸어도 말을 타고 달려도 지신의 손바닥 안에서 노는 기분이 들 것이다.


쌓인 눈. 그래도 모자라다 퍼붓는 눈 빨. 하얀 조각들이 강한 바람에 범벅이 되어 휩쓰는 눈보라.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땅을 하려고 한다. 주워다 놓은 돌도 여럿. 이 정도 날씨면 자기 목숨을 보전할 생각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 다른 동물이 보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할까. 먹고 살기 위한 것 외에도 독특한 행동을 한다. 다른 동물은 싸우고 잡아먹고 본능적인 생의 유지 외에 없고, 껏해야 새끼를 기르는 것. 인간은 사냥 외에 기이한 행동이 적지 않다. 특히나 인간들이 모이면 또 여러 가지가 일어나고.


지금 하는 행동도 짐승들이 보기에 수상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구경할 짐승도 나돌아다닐 수 없다.


남자는 지금 생각이 없다. 이곳에서 말(馬)이 없으면 죽는다. 남자는 홀로다. 겨울잠을 망각한 들짐승이 나타난다 해도 작대기 하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잃었다.


땅 아래,

송장이 다섯 구. 이제 돌덩어리가 되어 간다.


남자가 손을 놓고 허리를 편다.


이제 남자도 다른 동물의 생존과 마찬가지로 행동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는 얼룩덜룩한 동물 가죽의 안쪽을 뒤진다. 얼어서 곱은 손이 꺼낸 것은, 역시 작은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 곱은 손으로 오랜 시간에 걸려 끈을 풀어 안의 것을 꺼낸다.


말라버린 겉의 껍질을 뜯어내는데 손톱으로 잡히지 않아 자꾸 반복한다. 이빨로 찢으려 해도 잘 안 된다, 그렇게, 그렇게 하나를 깠다. 그리고 입에 넣는다. 오독오독 씹기 시작한다. 반은 얼었기에 얼음 조각이 깨지는 소리가 치아에서 난다.


어떤 표정을 낼 수 없는 동결된 얼굴 피부가 미세하게 움직인다. 그래도 변화하는 마음과 신체, 어떤 표정이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눈치를 챌 수가 없다. 결국, 그것은 눈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오기 전까지 남자의 눈은 냉혈한 짐승의 눈 다름 아니다.


만족. 향기. 혀에서 오는 얼얼함. 속을 타고 내려가면서 울긋불긋 매운 감을 주는 것. 남자는 다시 하나를 까려고 한다. 겉을 까면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반달 같은 도톰한 것이 나온다. 모양은 잣이지만 크기가 잣의 다섯 배는 큰.


멈춘다.


귀가 열렸다.

그쪽을 바라본다.


소리는 희미하나 온다.


희망? 구원? 피붙이?


잠시 후, 말에 탄 다른 남자가 하얀 눈보라 속에서 어두 컴컴 그림자를 형성한다. 하얀 속에서 어두운 물체가 커진다. 방향을 잃은 듯 느린 달그락달그락. 말도 힘겹게 걷고 있다. 그림자는 거의 검은색으로 드러나고, 말에 탄 남자는 땅을 파던 사람이 본 것인지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정 방향으로 제대로 온다.


소리는 가까워지고

서 있는 남자는 급하게 까던 것을 마무리해 입에 넣는다.


가까워지자 말에 탄 남자는 높고 서 있는 사람은 낮다.

보통의 인간 행동과 달리 땅에 서 있는 남자는 당당하다.


결국, 말이 멈춘다.

둘은 바라본다. 가늘게 뜨고 서로를 본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예절이 있는 듯 보인다.


말에 탄 남자가 허리춤을 뒤지고, 뒤이어 무엇을 꺼낸다.

팔뚝만 한 비파나무 나뭇잎 모양 동검. 이를 보자, 서 있는

남자 눈이 예리해지면서 작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의외였다.


말에 타고 있는 자는 동검을

땅에 서 있는 남자에게 던진다.


서 있는 남자는 땅에 떨어진 동검을 보지 않고

동요 없이 말 탄 자를 바라만 본다.


다시,

말 위의 남자가 비슷한 칼 또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이것은 일종의 대화였다.


그러자 드디어 땅의 남자가 칼을 주워든다.

칼을 주어든 남자가 작대기를 버리고 눈으로 의문한다.


‘괜찮아?’


말에 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 법이니까.’


말에서 내린다. 자세히 보니 말을 탄 남자는 더 큰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썼다. 특히나 죽은 동물의 머리 부분을 투구처럼 썼기에, 말에서 내린 사람이 훨씬 더 커 보인다. 커 보이기만이 아니라 죽은 동물이 마지막으로 벌린 입의 송곳니 때문에 외면 겁이 날 모양을 풍긴다.


말에서 내린 남자가 딱딱하게 굳은 다리를 연신 펴면서 발로 땅을 다진다.


칼을 쥐고 서로를 보며 섰을 때 둘은 알았다. 서로 같은 종족이 아니다. 말도 통하지 아니한다. 다만 비슷한 이곳에 살고 있다. 큰 가죽을 둘러쓰고 말을 타고 온 사람이 훨씬 더 험악한 인상에 근육이 크고 강해 보인다.


땅을 파던 남자는 오른손에 동검을 들고 흔들며

눈으로 감사를 표한다.


말 내린 자가 거만하게 턱을 들며

그 의미를 받고 몸으로 응답을 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나 사람을 속이는 거지.’


어쩌면 그것은 자기가 더 강하다는 자신감.


이것은 누구 시선 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니다.

본연의 그것이다. 이들은 항상 그래왔다.


촉발.

그것은 시작!

그것을 누가 표현하지 않기에 촉발, 그 말이다.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 아무도 못 본다.


챙!

금속이 출동하는 소리가 하얀 속에서 들렸다.


연이어, 챙! 챙!


“이 악~~~!!!”


하지만,

눈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보라는 두 남성의 자존감을 가려준다.


다만 얼마 후,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떠난다.


주워온 돌이 있는 곳에 여섯이 누워 있다.


말을 탄 남자는 자신의 가죽을 버리고

더 크고 따뜻한 곰의 가족으로 바꿔 썼다.


자신이 쓰고 있던 호피는 누운 어미를 덮어주었다.


남자는 쉬이 떠나지 못하는 마음에

마늘을 어미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금성의 사무라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 25. 산성에서 21.06.29 134 2 17쪽
38 24. 탈곡 21.06.17 97 3 12쪽
37 23. 잡놈 21.06.17 85 4 18쪽
36 22. 동검의 무사 21.06.16 80 3 17쪽
35 21. 접신 +1 21.06.16 79 5 19쪽
34 20. 옹진의 살수 21.06.15 82 5 15쪽
33 19. 패잔 21.06.15 68 4 11쪽
32 18. 손들의 싸움 21.06.14 79 4 14쪽
31 17. 옹진 큰물 21.06.13 77 4 8쪽
30 16. 유언 21.06.12 71 3 7쪽
29 15. 옛날 옛적 그 자리 2 +1 21.06.11 74 4 8쪽
28 15. 옛날 옛적 그 자리 1 21.06.10 111 3 7쪽
27 14. 눈이 결정한다 2 21.06.08 89 4 7쪽
26 14. 눈이 결정한다 1 21.06.05 98 3 8쪽
25 13. 그 사람은 멋졌다 2 21.06.04 92 3 7쪽
24 13. 그 사람은 멋졌다 1 21.06.03 80 4 7쪽
23 12. 물 건너편에 2 21.06.02 85 2 7쪽
22 12. 물 건너편에 1 21.06.01 93 2 7쪽
» 11. Intermezzo 21.05.31 93 3 9쪽
20 10. 입신양명 3 21.05.30 104 3 7쪽
19 10. 입신양명 2 21.05.29 86 3 7쪽
18 10. 입신양명 1 21.05.28 89 2 7쪽
17 9. 계루에서 사는 법 2 21.05.27 98 3 9쪽
16 9. 계루에서 사는 법 1 21.05.26 92 3 8쪽
15 8. 목경 2 21.05.26 80 3 7쪽
14 8. 목경 1 21.05.25 95 3 7쪽
13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2 21.05.25 85 3 7쪽
12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1 21.05.24 107 4 7쪽
11 6. 검은머리 짐승 3 21.05.24 95 4 8쪽
10 6. 검은머리 짐승 2 21.05.23 93 4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